노래하는 백골 - 오스틴 프리맨 지음, 김종휘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
"과학수사"의 원조, CSI 수사대의 할아버지뻘 되는 존 손다이크 박사의 단편집으로 총 8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장점이라면 무엇보다도 추리소설 초창기인 1900년대 발표된 작품으로서는 굉장히 획기적이고 색다른 시도를 보인 작품들 (첫 두편만이지만)이라는 점입니다. 이 점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추리소설 역사에 이름을 남길 작품집이라 생각되네요. 프리맨 평소의 지론이었던 "독자는 범인이 누구냐보다는 수사 과정에 더 흥미를 느낀다"를 너무나 잘 구현했달까요?
그러나 손다이크 박사의 과학적인 증거 수집에 의한 범인 색출에 중점을 두고 있고 (ex : 1. 사건의 진행 과정 서술 (범인의 범행 및 간단한 증거인멸 작업 등) >> 2. 발견된 증거를 토대로 한 손다이크 박사의 조사 >> 3. 현장검증을 통한 범인 확정 / 검거)범인의 트릭이나 소설적 재미는 적어서 처음 2편의 단편은 추리적인 맛이 많이 부족하더군요. 아무런 트릭도 없고 복선이나 반전도 없이 단지 수사과정 자체만 보여주는 이야기 구성 역시 지루했고요.
처음 2편의 반응이 별로였었는지 이후 작품들은 위의 프리맨의 명제대로 서술된것이 아니라 전형적인 단편 추리물의 원칙에 충실한 작품들입니다. 때문에 약간 논지가 흐려지기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는 있었어요. 물론 추리적인 측면에서도 우연과 특정 상황에 기댄 것 같은 작품들이 많은 것은 분명 약점이지만요.
그래도 전체적으로 과학적 추리라는 뼈대는 계속 잘 살려 나가고 있으며, 동시대 라이벌들은 주로 "안락의자"형이지만 손다이크 박사는 어디까지나 증거 위주로 공정하게 게임을 진행한다는 점에서 다른 유명 단편집들과 차별화 되는 요소가 분명 있긴 합니다. 확실히 추리계에 한 획을 그을만한 작품들이에요. 개인적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부분도 있으나 시간이 너무 오랜 탓이지 작품의 흠결은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아쉬운 점은 동시대 라이벌 탐정들과 비교해 보면 손다이크 박사의 개인적 매력이 너무 드러나지 않는, 개성적이지 못한 평면적인 캐릭터로 그려진 점입니다. 손다이크 박사보다 오히려 범인들에게 촛점을 맞춘 전개 방식이나 전체적으로 건조한 묘사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간적이고 뭔가 평범한, 진솔한 묘사보다는 수사 방식과 해결에 너무 작가가 집중한 것 같습니다. 추리적으로는 마땅한 방법이겠지만 독자를 위해서, 그리고 극 중 탐정을 위해서라면 좀 더 따뜻한 묘사를 해 주어도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드네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재미를 떠나서 추리소설 역사에 남을만한 작품임에는 분명하기에 추리 애호가분들께서는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작품별 간략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오스카 브러트스키 사건 :
가장 잘 알려진 작품 중 하나로 다이아몬드 상인 오스카 브러트스키의 살인사건을 밝혀내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우발적이고도 우연한 상황에서 자살이나 사고로 보이게끔 위장한 사건을 파헤치는 것이 핵심으로 범인과 범행과정을 먼저 보여주는 도서 추리적인 성격에 손다이크 박사의 과학 수사를 결합한 독특한 작풍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손다이크 시리즈의 핵심 특징을 모두 갖춘 기념비적인 작품이죠.
그러나... 위에서 언급했던 모든 단점들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기도 합니다. 즉, 재미는 없다는 뜻이죠.
2. 노래하는 백골 :
역시 대표작중 하나.
사고로도 보일 수 있는 한 등대지기의 죽음을 시체 (백골)의 상처에 집중하고 현장 검증을 통해 진상을 알아내는 손다이크의 활약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재미면에서는 많이 떨어지는, 너무 설정과 과정에 집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작품입니다.
3. 계획된 살인사건 :
탈옥수 출신의 성공한 사업가가 자신의 과거를 알고 협박하는 전 간수를 죽이기 위한 치밀한 노력이 빛나는 괜찮은 단편.
손다이크의 활약보다는 범인 펜베리의 살인을 위한 계획과 그 과정이 더 길고 재미나게 그려진 이색적인 작품으로 추리적으로나, 과학 수사 측면에서나 상당히 읽을만한 작품입니다.
4. 전과자 :
절도 현장에서 자신의 지문이 발견된 것 때문에 범인으로 몰린 한 전과자가 손다이크에게 결백을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단편. 특징이라면 당시 지문에 대한 인식을 잘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5. 파란 스팽글 :
굉장히 독특한 작품. 우연에 기댄 것 같은 사건 자체는 조금 불만이지만 이른바 "사고"를 밝혀내는 손다이크의 활약이 드라마틱하게 보여지는 수작입니다. 재미있었어요.
6. 어느 퇴락한 신사의 로맨스 :
손다이크 박사보다 범인의 행동과 생각에 촛점을 맞춘 소품.
유일한 추리적 장치인 "범인의 유실물인 코트에 묻은 먼지"를 가지고 범인의 거주지를 알아낸다는 내용은 좀 억지스럽더군요. 당시 도시가 좁아서 거주지를 특정할 수 있었을 지는 모르겠지만요...
7. 모아브어 암호 :
뭔가 있을것 같다가 좀 허무하게 풀리는 단편.
제목 그대로 암호트릭은 아닙니다. "복잡하게 보이는 암호보다 그 종이 자체"에 집중한 트릭이죠.
트릭 자체는 꽤 매력적이지만 지나치게 산만한 느낌을 주어서 약간 아쉬웠어요.
8. 버너비 사건 :
상당한 수작으로 독살을 위한 색다른 방법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예정된 피해자의 특이한 체질이 전제조건이라는 약점이 있기는 하나 잘 짜여진 드라마와 반전으로 충분히 상쇄하고 있는 멋진 작품입니다.
개인적인 베스트 3편을 뽑는다면 "계획된 살인사건", "파란 스팽글" 그리고 "버너비 사건" 입니다. 베스트 오브 베스트는 "버너비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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