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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30

유리의 도시 - 폴 오스터 / 데이비드 마추켈리, 폴 카라시크 / 황보석

유리의 도시
폴 오스터 원작, 폴 카라시크.데이비드 마추켈리 글.그림, 황보석 옮김/열린책들

국내에도 붐이 일었던 작가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의 첫번째 편을 만화로 펴낸 Graphic Novel 입니다.

단순히 만화로 보기 보다는 Graphic Novel 이라는 장르명이 어울릴 정도로 그림, 장면 전환, 심지어 대사 처리까지 고민하여 처리한 티가 역력합니다. 이러한 점은 작풍은 다르지만 슈피겔만의 "쥐" 와 유사한 부분인데, 뭔가 읽는 이에게 그림 만으로도 뭔가 생각할 꺼리를 던져주는 점이 특히 그러하죠. (아니나 다를까 그림을 그린 작가의 소개를 보았더니 슈피겔만과 대학 동창이고 친구라고 하는 글이 있네요) 유럽풍의 화사한 칼라 대신에 흑백톤으로 목판으로 찍어낸 듯한 거칠고 단적인 이미지 역시 비슷하고요.

워낙 다양한 이야기가 얽혀 있고 자아 성찰이나 해탈의 분위기 등으로 전개되는 등 스토리라인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뭔가 전해져 오는 느낌이 묵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초반부의 하드보일드 스러운 분위기로 진행되는 것은 추리 매니아로서 마음에 들은 부분이었습니다. 예상대로 추리물과는 거리가 먼 작품이긴 했지만 초반 분위기는 정말 그럴싸했거든요.

책이 좀 어렵고 복잡하며 그림도 취향을 탈 것 같긴 하지만 저는 무척 좋았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이고 외로운 느낌이 정말 잘 전해져 오거든요. 어른을 위한 그림책에 딱 맞는 그런 책입니다. 그야말로 Graphic Novel이라는 말이 잘 어울릴 것 같네요.

블루 타워 - 이시다 이라 / 권남희 : 별점 1.5점

블루 타워
이시다 이라 지음, 권남희 옮김/문이당

21세기 신주쿠에 살고 있는 말기 암 환자 '세노 슈지'는 뇌종양으로 인한 두통이 극심해진 어느날 자신이 200년 후 변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인 "황마"로 인해 인류의 90퍼센트가 사망한 23세기의 '세노 슈'라는 인물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23세기의 그 땅은 살아남은 10퍼센트의 사람들이 지상에서 도망쳐 거대한 '블루 타워' 안에 모여 사는 세계. 세노 슈는 타워의 지도층으로 그는 자신이 빙의(?)한 몸의 권력을 이용하여 타워의 차별철폐와 바이러스의 백신 개발을 위해 노력하게 되는데...

제법 유명한 작가인 것 같은데 읽은 적은 처음인 이시다 이라의 2004년 작품입니다. SF 스타일이긴 하지만 과학적 근거가 희박하고 비논리적인 부분이 많아 환타지 성향에 가까운 작품이더군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솔직히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바이러스에 의해 세상이 피폐해지고 여러 게릴라와 세력이 기득권을 놓고 싸우는 전개는 "에덴", 타워의 층에 의해 신분이 결정되어지고 땅에 사는 인간들이 가장 하위층이라는 개념은 "총몽", 멸망한 미래에서 거대 타워가 하나의 도시가 된다는 개념은 "강철도시"나 "불새" 등으로 이미 잘 알려진 것들로 신선함이 떨어지는 것들 뿐입니다.
때문에 전개를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했을텐데 이 작품에서는 전개도 만화와 다름 없이 뻔하고 식상함으로 일관하여 전혀 매력적이지 못해요. 일단 어린 나이의 해방동맹 전사나 하층 계급이지만 주인공을 도와주는 여성 캐릭터, 전설의 용병으로 주인공의 보디가드를 맡은 캐릭터 등 모든 캐릭터가 너무 뻔합니다. 그나마 주인공이 일종의 빙의(?)를 통해 두개의 세계를 오간다는 설정만 약간 특이하지만 이 중요한 설정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전무해서 단순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너무 글을 쉽게 쓴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물론 뇌종양으로 인한 두통이라는 설명이 있긴 하지만 솔직히 말도 안돼는 이유죠. 그나마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대한 설명만은 나름의 자료조사가 바탕이 된 듯 제법 치밀한 맛이 있는 정도입니다.
정통 SF를 표방한 작품은 아니기에 이러한 비방이 옳은 것은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소설가라면 어느 정도 납득할 만한 전개는 보여주어야 했을 것 같아요.

옮긴이의 말을 인용하자면 "SF소설이라고는 하지만, '황당무계한 공상 과학'이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소설... 한 편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고 난 느낌이다." 라고 하는데 저에게는 "황당무계한 공상 과학"의 전형이었고 한 편의 유사한 만화를 읽은 것 같은 느낌" 이었습니다. 아니 차라리 만화 되었더라면 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을지 모르겠네요. 소설로 읽기에는 싼티가 물씬 나는 애매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말미의 어설픈 해피엔딩도 불만스러웠어요.

저도 일본 추리 계열 작품은 좋아하지만 왠지 전체적으로 가볍다.. 라고 느껴지는 편이었는데 다른 쟝르물을 읽으니 그러한 느낌이 더더욱 커지네요. 작가의 팬이라면 한번쯤 읽어볼 만 하겠지만 저에게는 그다지 와닿지 않는 작품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에덴" 쪽이 비스무레한 세계관을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했다고 보여집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2006/10/28

이상한 생물 이야기 - 하야가와 이쿠오 / 데라니시 아키라 / 황혜숙

이상한 생물 이야기
하야가와 이쿠오 지음, 데라니시 아키라 그림, 김동성 감수, 황혜숙 옮김/황금부엉이


작년 말 제가 일본 여행갔을때 한창 히트치고 있던 책입니다. 그때도 살까 말까 고민했지만 좀 비싼 가격에 포기했었는데 국내에서도 저도 모르는 사이 출간되었더군요. 반가운 마음에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예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출간되었던 "학은 왜 한다리로 서서 잘까"라는 책과 거의 동일한 컨셉으로 쓰여진 책입니다. 어떤 동물에 대한 디테일한 일러스트와 함께 설명을 곁들여 한 장 정도 되는 분량으로 한 동물 (생물)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는 컨셉이 똑같죠. 하지만 차이점은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책이 기린이나 코끼리, 학 등 동물 중심으로 좀 잘 알려진 동물들의 신기한 행동이나 습관에 대해 쓰여졌다면 이 책은 "이상하고 기묘한" 생물들을 주제로 하여 쓰여졌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자면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갖가기 기묘한 생물들, 나팔잎갯민숭이라던가 코우가이빌, 보넬리아, 긴촉수매퉁이 등등 워낙 독특하고 희한한 생물들이 잔뜩 등장하고, 그 생물들의 신비한 생태가 자세하게 표현되어 재미를 더합니다. "약자들에게 왕따당하는 강자 - 쏨뱅이" 라는 식으로 구성된 각 항목의 제목만 보아도 읽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 정도죠. 또한 "그 동물은 지금 어디에" 라는 제목으로 실린 바다표범과 쯔치노코에 대한 이야기 역시 재미있었고요.

그러나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저에게  있어서는 데라니시 아키라의 일러스트라 할 수 있습니다. 치밀하고 디테일한 묘사와 함께 왠지 모를 유머러스함이 넘치는 것이 딱 제 스타일이었거든요. 흡사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을 읽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저도 이런 그림을 한번 그려 보고 싶어질 정도로 마음에 들더군요.

개인적으로 이러한 짤막한 구성의 책을 워낙 좋아할 뿐더러 그림도 마음에 들어 꽤 만족스러운 독서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워낙 기묘한 생물들인지라 좀 징그럽고 불유쾌한 모양새의 생물들, 벌레라던가 이상한 연체동물들도 많이 등장해서 이쪽 취향이 아니신 분들은 좀 꺼려하실 수도 있을 것 같네요.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이런 기묘하면서 신기한 생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들께는 추천합니다.

2006/10/26

스티븐 킹 단편집 - 스켈레톤 크루 - 상 / 하 - 스티븐 킹 / 조영학 : 별점 2점

스티븐 킹 단편집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황금가지

공포소설의 대가이자 팔리는 책을 쓸 줄 아는 작가 스티븐 킹의 단편집. 상 / 하권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예전에 국내에 소개된 단편집 "옥수수밭의 아이들"을 이미 구입했었기에 별 관심은 없었는데 지인인 석원님이 선물해 주셔서 읽게 되었습니다.

상권은 스티븐 킹의 재치가 번득이는 머리말로 시작해서
안개 / 호랑이가 있다 / 원숭이 / 카인의 부활 / 토드 부인의 지름길 / 조운트 / 결혼 축하 연주 / 편집증에 관한 노래 / 뗏목 이 수록되어 있고

하권에는
신들의 워드프로세서 / 악수하지 않는 남자 / 비치 월드 / 사신의 이미지 / 노나 / 오웬을 위하여 / 서바이버 타입 / 오토 삼촌의 트럭 / 우유 배달부 1 : 아침 배달 / 우유 배달부 2 : 세탁 게임 이야기 / 할머니 / 고무 탄환의 발라드 / 리치 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다행히 제가 가지고 있는 단편집과 겹치지 않는 작품이 대부분이더군요. 게다가 번역이 전혀 다른, 한차원 높은 수준이라 이미 읽은 작품도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상권에 수록된 중편 "안개"의 경우는 여러 상황이나 괴물에 대한 묘사 등의 디테일과 묵직한 분량은 전혀 다른 작품으로 느껴질 정도였어요.

전부 일정 수준 이상의 재미를 선사해 주지만 제 개인적인 베스트를 꼽자면, 군부대에서 행한 수상한 실험때문에 다른 차원이 열려 안개속에서 괴물들이 습격을 시작한다는 줄거리의 "안개"와 지름길을 찾다가 결국 신들의 땅에까지 이르른다는 내용이 독특했던 작품인 "토드 부인의 지름길", 그리고 다른 단편집에서 이미 읽긴 했지만 자기 자신을 먹어치우는 엽기스러운 발상이 설득력 있게 그려지는 하권의 "서바이버 타입" 입니다.
무엇보다도 "안개"라는 작품의 임팩트가 상당하기 때문에 두권중 한권만 구입해야 한다면 상권을 우선 추천하고 싶네요. 제대로 된 번역으로 책을 읽는 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준 좋은 기회이기도 했고요. "안개"를 제외하고는 다른 작품들은 좀 뻔하긴 합니다만 앞서 이야기한 "토드 부인의 지름길"은 그다지 공포스럽지 않으면서도 환상적인 분위기가 넘쳐서 호러를 싫어하는 초심자에게 적합한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하권은 그다지 톡 튀는 작품은 없네요. "신들의 워드프로세서"는 많이 알려진 작품으로 그다지 호러스럽지 않은 것이 매력적이나 나머지 작품들은 그렇게 와 닿는 작품은 없었습니다.

아쉬운 점은 다른 단편집에서 접했던 걸작인 "금연 주식회사"와 "옥수수밭의 아이들"이 빠진 점입니다. 이왕 단편집을 낼 생각이었다면 최고작들만 모아서 내 놓는 것이 보다 좋았을 것 같은데, 솔직히 이 책은 너무 비슷비슷한, 뻔한 작품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고 보이거든요.
그래도 이 정도면 스티븐 킹의 매력과 진수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문제는 단점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이지만... 두권 평균 별점은 2.5점입니다.

PS : "하트포드"와 "캐슬록"이라는 지명에 굉장히 집착하는 태도는 좀 거슬리더군요.

2006/10/25

타이포그래피 에세이 - 에릭 슈피커만 & E.M 진저 / 김주성, 이용신

 

타이포그래피 에세이
에릭 슈피커만 외 지음, 김주성.이용신 옮김/안그라픽스


밑에 썼던 "디자인 기하학"과 같이 얇지만 디자인 관련 학과생에게 강추하고 싶은 책입니다.

제목 그대로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짤막한 내용들을 다양한 예제를 모아 소개하고 있는 책으로 타이포의 흐름이나 분위기, 간단한 타이포와 편집 디자인에 대한 노하우 등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많은 도움을 줍니다. 특히 한장, 두 페이지로 하나의 주제를 간략하게 마무리하고 있어서 쉽게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 알찬 정보를 제공한다는데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너무 쉬운 주제로 때우고 있는 부분도 제법 있고, 영어 타이포에 대한 내용만 있다는 것은 약간 아쉬운 부분이지만 그 외의 내용, 특히 풀 컬러로 실려있는 예제만 보아도 13,000원이라는 가격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내용을 지닌 책이니 이쪽 분야에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구입하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제가 한번 수업을 들었던 김주성 교수님이 번역을 하셔서 그런지 더 친근감이 드는군요.

제가 학교 다닐때 읽었더라면 저도 편집 디자인에 대해 보다 흥미를 가질 수 있었을지도....

2006/10/23

디자인 기하학 - 킴벌리 일램 / 김상학

디자인 기하학
킴벌리 일램 지음, 김성학 옮김/비즈앤비즈

이 책은 디자인 기하학, 그 중에서도 "황금분할"에 대해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 책입니다. 뭐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고 하더라도 102페이지 밖에 안되는 소책자지만요.

그래도 이 책은 정말 디자인 관련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꼭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자신있게 추천해 드릴 수 있는 책입니다. 황금분할의 역사와 이론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음은 물론이요 유명한 작가들의 여러 작품들을 황금분할의 비율에 맞추어 칼라도판으로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어서 이해를 높이며 실질적인 작업 도입 및 응용이 가능할 정도로 디테일하게 작업된 책입니다. 제가 학교 다닐때 읽었더라면 무지 도움이 되었을 것 같더군요.

솔직히 분량에 비해 19,000원이라는 가격은 좀 많이 아쉽지만, 디자인을 시작하는 분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볼만 하다고 보이네요. 제가 교수라면 필독서로 지정하고 싶을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내용에 있는 도판 몇개만 인터넷에 퍼져도 저 가격의 절반 이하의 값어치 밖에 못할 것 같아 추천하기가 약간 두렵기도 합니다...

2006/10/18

고독의 노랫소리 - 텐도 아라타 / 양억관 : 별점 2점

 

고독의 노랫소리
텐도 아라타 지음/문학동네

젊은 여성을 노린 잔혹한 여성 연쇄살인사건과 편의점을 노린 강도 사건이 일어난다. 편의점 강도 사건 담당자 아사야마 후키는 강도 피해자인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자 인디가수인 준페이를 알게 된다. 둘은 서로에게 묘한 친밀감을 느낀다.
그 후 후키의 옆집에 살고 있던 교코가 실종되고 후키는 준페이가 강도를 당할때 편의점에 있었던 손님과 살인사건과의 연관성을 의심하여 스스로를 미끼로 한 수사에 나선다...


이 바닥에서는 희귀본인 전설적 작품 "영원의 아이"의 저자 텐도 아라타의 초기작으로 1993년 작품입니다. 평이 좋아 구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나칠 정도로 [양들의 침묵]을 벤치마킹한 작품"이더군요. 스스로에게 있는 일종의 트라우마로 괴로워하는 여형사와 싸이코 연쇄살인범, 그리고 여형사의 조력자와도 같은 스스로의 세계에 갖혀있는 고독한 인물이라는 캐릭터 설정부터가 판박이에요. 거기에 연쇄 살인의 엽기성과 잔혹성을 더하기만 한 작품입니다. 표절까지는 아니지만 아류작에 불과한거죠. 그 외에도 고학력 살인범이 미모의 여성만 사냥하는 이야기 전개는 "천재 정신과 의사의 살인광고"와 비슷하고요. 살인의 이유가 불륜으로 태어난 아이 더하기 모친의 비정상적인 가정 형성에 따른 정신붕괴... 라는 것도 너무 뻔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물론 싸이코 연쇄살인범이 나오는 작품이야 널렸을 뿐더러, 93년도 발표 작품이라면 아무래도 "양들의 침묵"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라 생각되긴 합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범인을 어떻게 잡느냐"의 과정이겠죠. 그러나 이 작품은 이러한 서스펜스보다는 3명의 주요 등장인물, 즉 형사인 후키와 조력자인 준페이, 범인 마쓰다 3인을 1인칭으로 한 심리묘사에 주력하고 있어서 서스펜스가 극히 제한적입니다. 솔직히 너무 겉멋을 부린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더군요. 추리적으로도 따져보더라도, 경찰이 범인을 검거하는데 취하는 행동은 거의 없고 외려 준페이라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의 활약으로 두개의 사건이 해결된다는 것이라 허무하기 그지 없습니다.
또한 등장인물을 모두 1인칭으로 표현하는 등의 세밀한 묘사 방식은 돋보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불필요할정도로 과하게 사용되었다는 생각이 강했고 등장인물 모두 심리적인 상처나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설정은 당쵀 왜 필요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과거의 심리적인 상처가 너무나 작위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것도 문제로 보였고요.

물론 유명 작가의 유명한 작품답게 이러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몰입시키는 힘은 있습니다. 각 등장인물들의 1인칭 시점으로 시각을 계속 바꾸어나가며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솜씨 하나만큼은 일품이며 마지막 3인이 한자리에 모이는 장면까지의 서스펜스는 발군이거든요.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단점이 너무 크네요. 제 취향이라고 하기에도 힘들었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양들의 침묵"을 읽으셨다면 구태여 읽지 않으셔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2006/10/16

구름속의 죽음 - 애거서 크리스티 / 김석환 : 별점 3점

 

구름속의 죽음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석환 옮김/해문출판사

파리를 출발, 런던으로 향하던 여객기 프로메테우스호에서 프랑스인 사채업자 지젤이 살해된다. 살해방법은 독침에 의한 것으로 밝혀지나 비행기는 완전한 밀실과도 같았으며 승무원과 승객 모두 살인이 벌어졌을 때의 알리바이가 확실한 상태. 잽 경감이 사건을 맡게되고 마침 비행기를 타고 있던 포와로는 적극적으로 사건 해결에 동참하는데...

크리스티 여사의 17번째 장편으로 "비행기"라는 완전한 밀실 상태의 공간을 무대로 한 "불가능 범죄"에 도전하는 밀실 살인극입니다. 인위적으로 밀실을 만드는 쪽이 아니라 어떻게 아무에게도 눈치채이지 않고 살해할 수 있었는가가 핵심이라 다른 밀실 추리물과는 약간 다르긴 하지만요.

어쨌건 여사님의 최전성기 작품답습니다. 포와로가 얻는 대부분의 정보는 독자도 공정하게 얻을 수 있는 완벽한 정통 추리물이며 초심자도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포와로가 추리의 핵심을 딱딱 짚어주기 때문에 나름 머리를 굴리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거든요. 또한 포와로 역시나 한창때인 덕분에 다른 작품에서는 보기 힘든 영국과 프랑스를 오가는 행동파적인 모습에 더하여 특유의 독설과 일종의 재치, 마지막에 범인을 옭아매는 추리극까지 모두 보여주는 풀코스요리와 같은 최상급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으니 포와로의 팬이라면 꼭 읽어야 하는 작품이죠.
덧붙여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여사님 특유의 로맨스도 전체적으로 넘쳐나며 범인의 동기도 조금 억지스럽지만 작품 전체적으로 아주 잘 숨기고 있을 뿐더러 숨기는 과정 하나하나의 디테일이 탁월해서 끝까지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단점이라면 트릭이 너무나 많이 알려진 유명한 것이라 기발하거나 새롭지 못하다는 점인데 이것은 여사님의 잘못이 아니라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고 작품이 역시 많이 알려진 탓이니 어쩔 수 없죠.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 트릭이 쓰인 작품 중에서도 가장 설득력있게 쓰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외에도 무려 13명이나 되는 (피해자를 빼고는 12명이죠) 용의자들에 대한 비중이 다르고 때문에 대부분의 용의자들이 초반에 탈락한다는 점, 그리고 범인으로 지목될만한 인물에 대한 비중과 설명이 적은 점도 조금 아쉬웠어요.

그래도 결론은 추천작. 별점은 3점입니다. 여사님과 포와로 팬이시라면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2006/10/15

Japan 미스터리 걸작선 2 - 한국, 일본 추리작가협회 추천 / 정태원 번역 : 별점 2.5점

1권과 3권은 이미 이전에 읽었지만 2권만 구하지 못했었는데 블로그 지인인 석원님의 도움으로 드디어! 읽게 된 책으로 전쟁 직후, 주로 약 1950~60년대의 단편들을 모아놓았습니다.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전쟁 당시를 배경으로 한 작품도 제법 있는 편이고 작가들도 현대보다는 과거의 명작가들이 많이 포진해 있습니다. 이름만 아는 작가지만 사노 요, 츠츠이 야스타카, 시마다 가즈오, 도가와 마사코, 오카지마 후타리, 오오야부 하루히코는 워낙 유명한 작가들이기 때문에 목차만 보더라도 무척이나 풍성한 느낌을 줍니다.


특징이라면 정통 추리물보다는 이색적이고 변칙적인 작품들이 많이 실려 있으며 당시의 취향인지는 모르지만 대부분의 단편이 좀 집요하고 처절한 인간 본성을 건드리는 작품들이라는 것이겠죠.

그러나 지금 읽기에는 확실히 낡은 느낌을 주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 같고 정통 추리물 매니아를 자처하는 저에게는 썩 입맛에 맞는 작품들도 아니었습니다. 추리소설의 태동기에서 갖가지 실험적인 형식이 적용되던 과도기시대의 작품들이라는 느낌? 또 치정에 관련된 사건이 많다는 것 역시 장점이라고 보기는 어렵고요.

결론내리자면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 추리적 맛은 덜하나 여운을 남기거나 설정이 재미난 작품들이 많은, 석원님 표현을 빌자면 "별미"에 가까운 작품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개인적인 베스트는 배경 설정이 탁월하고 재치와 유머가 넘치면서도 정통파적인 매력을 잘 보여주는 아와사카 츠마오의 "기울어진 방", 그리고 사소한 발상이지만 내용 전개가 재기발랄하고 유쾌한 오카지마 후타리의 "늦게 도착한 연하장"을 꼽고 싶네요.

1. 도박 - 사노 요
대학의 조교수인 주인공은 주말 부부로 지내던 중 아내의 자살 사건을 접하게 된다. 유서를 통해 그는 이유가 도저히 들통날 수 없던 자신의 불륜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굉장히 여성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러면서도 결말 부분의 여운이 진한 작품입니다. 과연 그녀는 뭐라고 말했을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2. 그녀들의 쇼핑 - 츠츠이 야스타카
한 커피숍에 같은 단지에 거주하는 아줌마들이 모여 교외의 대저택으로 떠난다...

짧은 길이지만 반전에서 전해주는 인상이 강렬한 소품. 별점은 2.5점입니다.

3. 넹고넹고 - 가야마 시게루
한적한 마을에 식료품이 조금씩 없어지는 절도 사건이 발생하고 주인공 형사는 사건 해결을 위해 탐문하던 중 이상한 노파를 만나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다.

가야마 시게루는 잘 모르는 작가인데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절도 사건이 소재라 아예 추리물이 아니라 단정짓기는 뭐하나 환상문학에 더 가까운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1점입니다.

4. 까마귀 - 다키가와 교
쇠락해 가는 군 장성 가문의 남매는 집안 관리를 위해 하녀를 고용하고 오빠는 하녀와 관계를 맺게 되지만 결혼을 요구하는 하녀를 결국 살해할 결심을 하게 되는데...

줄거리만 보아도 내용 전체를 짐작할 수 있는 뻔한 소재와 내용의 작품으로 심리묘사와 까마귀에 대한 묘한 공포감을 자아내는 분위기는 그럴 듯 하지만 그 외에는 별로 특출난 부분은 없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5. 안마사 케이 - 시마다 가즈오
주인공은 한 온천에서 옛 하얼빈 특파원 시절에 알게 되었던 안마사 케이를 만난다.

여자의 집요한 복수를 그린 단편으로 별다른 트릭은 없지만 안마사 케이의 대사 하나로 사건을 압축하는 묘미가 있는 소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6. 마지막 인사 - 야마다 후타로
교외의 마을에서 발견된 죽은 쥐가 페스트에 감염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마을은 방역때문에 비워진다. 비워진 마을에 파견된 두 형사는 예전 공습때 소실된 한 마을의 모습을 떠올리는데...

전쟁 막판의 일본을 무대로 당시의 사회상을 리얼하게 묘사한 작품. 사회파의 선구자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나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순문학에 가까운 작품이더군요. 김성종 선생님의 "어느 창녀의 죽음"과 비슷했달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7. 수집광 - 야마구치 마사야
조지 매컬리는 SP음반 수집광으로 취미때문에 가족도 잃고 직장까지 바꾼 인물. 그런 그가 방문한 한 마을에서 그는 "보물"을 발견한다...

음반 수집광을 소재로 한 이색 단편. 그러나 내용 전개는 로얄드 달의 "목사의 기쁨" (단편집 "맛"에 수록)과 유사하여 예측 가능한 수준이라 재미는 좀 덜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뭔가 반전이 나와줄 것 같았는데 결말이 너무 뻔했어요. 별점은 2점입니다.

8. 방공호 - 에도가와 란포
전쟁 중 공습 때문에 피신한 방공호에서 주인공은 한 미녀와 우발적인 관계를 맺게 되는데...

란포 선생의 단편으로 1인칭 독백 형식으로 구성된 재치있는(?) 내용 전개와 나름의 반전이 인상적인 작품. 그러나 추리물은 아닙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9. 이중 동반살인 - 사사토 사카에
결혼을 앞둔 공무원이 호스테스와 밀폐된 방안에서 가스를 틀어놓은 시체로 발견되며 사건은 여러 증거를 토대로 자살로 처리된다. 그녀의 약혼자가 이의를 제기하나 그녀마저 시체로 발견되는데...

두건의 이중 살인이 벌어지는 정통 추리물. 하지만 2건의 사건 중 추리적인 가치가 있는 사건은 최초의 사건뿐으로 밀실 트릭과 자살로 보이게 만드는 유언장 트릭이 등장합니다. 두번째 사건은 별다른게 없고요.
트릭 자체는 나름 괜찮긴 한데 낡았다는 느낌이 강하고 무엇보다 범인역의 인물이 억지스러워서 그닥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10. 보석 - 구스다 쿄스케
야쿠자 보스가 총격으로 사망하고 그가 노리고 있던 다이아몬드가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여러가지 트릭 및 반드시 필요한 "명탐정"까지 등장하는 정통 추리물. 정황 증거만 가지고 추리하는 탐정의 실력도 놀랍지만 독자에게도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하는 점에서 고전 정통 퍼즐 미스테리의 맛을 진하게 풍기네요. 또한 결말 부분의 반전까지 있어서 상당히 만족할만한 수준의 재미난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11. 2월 2일 호텔 - 기타카타 겐죠
주인공 사진작가는 아프리카의 2월 2일 호텔에서 과거 운동권 동지를 20년만에 만나지만 수수께끼의 잡상인에게 협박을 받게 된다...

솔직히 무슨 내용인지 잘 이해가 안 가더군요. 남자와 남자간에 있을 수 있는 알듯 모를듯한 관계를 그리고 있긴 한데 저는 크게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기나긴 이별"의 마지막 부분을 확대한 느낌이랄까요? 절대 추리물은 아닙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12. 어둠 속으로부터 - 도가와 마사코
주인공은 관계를 맺고 있는 여자가 있지만 명문가문의 여성과의 결혼을 위해 그녀를 버린다. 그러나 결혼식장에서부터 그는 그녀의 존재를 느끼고 서서히 신혼부부는 공포스러운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뻔하디 뻔한 소재와 상투적인 전개를 지닌 작품입니다. 너무 뻔해서 할말이 없을 정도죠. 반전조차 뻔합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14. 기울어진 방 - 아와사카 츠마오
"귀신 단지"라는 별명의 아파트에서 참혹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단지에 살고 있는 직장 후배의 권유로 자리에 모인 주인공 일행은 사건 해결을 위해 자체적인 조사에 나서는데...

제일 마음에 든 작품 중 하나로 정통 추리물이기도 하지만 "귀신 단지"라는 아파트의 묘사가 너무나 재미나고 참혹한 사건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한 느낌이 많이 묻어나서 무척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탐정 캐릭터도 독특하고 인상적이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15. 상자 속의 당신 - 야마가와 히사오
음.. 굉장히 짧은 소품으로 어디선가 읽은 듯한 느낌이 강한 작품이었습니다. 뭐라 평가하기 어렵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16. 늦게 도착한 연하장 - 오카지마 후다리
시부사와는 출근하자마자 회사내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을 알게된다. 이유는 그가 포르노를 판매한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인데...

사소하지만 꽤나 괜찮은 트릭(?)이 등장하는 귀여운 작품으로 재미나게 읽은 작품입니다.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약간 거리가 있긴 하나 이 정도 수준이라면 누구나 만족할 만한 단편이 아닐까 싶네요. 좀 낡은 감이 있긴 하지만요. 별점은 3점입니다.

17. 손님 - 오오야부 하루히코
기발한 반전으로 로얄드 달이나 스텐리 엘린의 느낌을, 정말 약간... 전해주는 짤막한 소품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06/10/13

상복의 랑데뷰 - 코넬 울리치 / 김종휘 : 별점 3점

상복의 랑데부
코넬 울릿치 지음, 김종휘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조니와 도로시와 결혼을 앞둔 사이. 어느날 약속장소에서 기다리던 도로시가 비행기에서 떨어진 술병에 맞는 사고로 사망하고 깊은 상심에 빠진 조니는 복수를 위해 당시 비행기에 타고 있던 승객들을 쫓기 시작한다...

최근에는 고전을 많이 읽게 되네요. 코넬 울리치 (윌리엄 아이리쉬)의 유명한 범죄 스릴러입니다. 코넬 울리치 특유의 도회적인 분위기에 더하여 남녀간의 감정 묘사가 섬세한 작품으로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죠. 사실 이 작품처럼 특정 사건이 벌어진 뒤 해당 관계자들을 추적하여 복수하는 복수극은 하늘의 별 만큼이나 많을 겁니다. 심지어 복수의 대상이 직접적인 범인들이 아니라 수수방관하고 있던 "목격자"들에게 복수하는 "살인 곱하기 다섯"이라는 작품까지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 작품만의 차별화 요소는 분명합니다. 일단 복수의 방법부터 이색적이에요.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픔"을 안겨다 준다는 것인데 발상이 아주 기발하다 생각되거든요. 거기에 더해 내용 전개도 재미있고 결말부분에서 밝혀지는 이야기로 사건의 이빨이 전부 들어맞는 치밀한 구성으로 전혀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더군요. 마지막 복수극에서는 제법 괜찮은 트릭이 등장하는 등 추리적인 요소에 있어서도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복수극 시나리오도 나름 치밀한 편이었고요.
또한 이 작품은 조니에 대한 서론 부분과 맨 뒤 결말 부분을 뺀다면 5명의 승객에 대한 복수를 "~번째 랑데뷰"라는 제목으로 한 Chapter씩 할애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역시 특이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 "~랑데뷰" 라는 각 복수극은 전부 주인공이 조니가 아니라 궁지에 몰린 남자나 사랑에 빠진 여자 등 복수의 대상자들이라는 점에서 차별화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각 Chapter 한편한편이 따로 읽어도 좋을 만큼 독립적으로 완성된 단편 느낌이 드는 것도 신선할 뿐 아니라 뻔한 1인칭 복수극과는 다른 재미를 안겨다 줍니다.
코넬 울리치 특유의 여성 심리묘사도 전편을 통해 두드러지는데 사랑에 빠진 여성, 진정한 악녀, 두려움을 느끼는 여성 등 인물들이 다양해서 읽을 맛이 나는 것도 좋았어요. 특유의 약간은 닭살스러운 문체도 여전하고요.

물론 아쉬운 점도 있기는 합니다. 조니가 여자를 후리는(?) 방법 등은 설득력이 많이 떨어지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으며 마지막 체포 부분을 너무 쉽게 넘어가는 등 부실한 부분도 눈에 뜨이긴 하거든요.

그래도 재미와 완성도 면에서 상당한, 그야말로 고전 범죄 스릴러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쪽 쟝르의 입문서로 적당할 정도로 말이죠. 특히 코넬 울리치의 특징이 잘 드러난 작품이니 만큼 팬이라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06/10/11

머니볼 (Money Ball) - 마이클 루이스 / 윤동구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구단주 빌리 빈의 이론을 담은 책입니다.


머니볼이라는 이름 자체를 빌리 빈이 작명하지는 않았겠지만 이론은 간단하죠. 고졸선수를 선호하지 않는다던가, 투수보다는 타자를 선호한다던가, 세이브투수의 능력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는 등 다양한 내용이 있긴 하지만 주된 포인트는 5-Tools Player라는 비싼(?) 유망주나 선수에게 고액을 투자하지 않고 그 중 특정 Tool에 최적화된 선수들을 저렴하게 영입해서 효과를 보는 야구를 뜻하는 것으로서 특히 "출루율"과 "장타율"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습니다. 즉 현대 야구에서 이제는 일반화된 공식처럼 쓰이는 OPS (출루율 + 장타율) 이 높은 선수를 선호한다는 말이죠. 출루율 관련된 내용은 야구만화 "원아웃" 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지만 허상과도 같은 타율보다는 팀에 가치를 훨씬 더 많이 안겨주는 기록이라는 점에는 적극 동의합니다. 이외에도 근대적 야구 통계의 창시자와 같은 빌 제임스 등 머니볼 이론의 근간이 된 야구 통계의 역사와 발달사, 관련된 수식 및 그 결과 등 야구 팬이라면 흥미를 느낄만한 내용이 가득해서 좋았습니다. 뭐 좀 지루한 부분도 있었지만요.

사실 언론 등에서 많이 알려지고 현재는 일반화되어 통용되고 있는 이론이니만큼 지금 와서 읽기에는 그다지 색다르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메이저리그라는 보수적인 조직에서 이러한 이론을 바탕으로 적은 금액으로 엄청난 효과를 본 것은 빌리 빈 단장이 처음이고, 이러한 이론을 야구판에 정립시킨 인물이라는 점에서는 굉장히 높이 살 만 하며 나름 참고도 많이 되네요. 일반론으로 굳어진 생각을 뒤집고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인정받는 것은 어떤 분야에서든지 당연하겠죠. 특히 그 자신이 5-tools 유망주로서 좌절을 겪은 과거가 있기에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보다 나은 현재를 창출해 내었다는 점에서는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취재 등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빌리 빈을 다루는 부분도 많은 만큼 그의 성격적인 문제라던가 감독 이상으로 자기 자신이 구단을 좌지우지 하는 점 등 단점도 많이 지적하고 있지만 "결과"를 중시하는 프로스포츠의 세계에서 이만큼 능력을 보여준 단장이 또 있을까요? 책에 특히나 중점적으로 언급된 2002년 드래프트로 뽑은 선수들의 현재 모습도 무척이나 궁금해지는군요.

아울러 개인적으로, 그리고 야구 팬으로서 국내 야구 상황과 비교해 본다면 미국에서처럼 국내에서의 고졸 선수에 대한 투자는 지나친 감이 있었는데 오승환 선수의 성공 이후 대학 선수들의 활용도 꾸준히 높아지는 것 같더군요. 그러나 투수쪽에 치우친 국내 야구 현실상, 그리고 대학은 선수들이 공부하러 가는 곳은 분명 아니라 생각되기에 외려 불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선수들이 메이져리그에 비해 빨리 노쇠현상을 보이는 국내 현실에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프로 진출이 괜찮은 해결책으로 생각됩니다. 군대문제 등 외적인 부분도 많이 작용합니다만 무엇보다도 무식한 지도자에 의한 "혹사"라는 쟁점이 해결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죠. 물론 이게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만....

2006/10/09

북한 핵실험

향후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겠군요.

김정일의 마지막 카드인데, 대선을 앞두고 대형 쇼(?) 연출이 없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어차피 우리나라는 들러리밖에는 안되니까....

어쨌건 저쨌건 하아... 내 주식!

2006/10/08

4개의 시계 (The Closcks) - 애거서 크리스티 / 황해선 : 별점 2.5점

 

4개의 시계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황해선 옮김/해문출판사

셰일라 웨브는 캐븐디시 비서용역 사무실에서 일하는 속기 타이피스트. 어느날 손님의 요청으로 윌브러햄 크레슨트가 19번지라는 낯선 주소로 출장을 간 그녀는 그곳에서 시체를 발견하게 된다. 해양 생물학자이지만 영국 정보원으로 비밀리에 일하는 콜린 램은 크레슨트가에 있을지도 모르는 사회주의 조직을 조사하다가 우연히 현장을 목격한 뒤, 사건을 맡은 하드캐슬 경부의 조력자로 사건에 뛰어들지만 집 주인이 장님인 맹아학교 교사라는 것, 피해자가 누구인지 도무지 밝혀낼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현장에서 한시간 빨리 가도록 조작된 4개의 시계 등의 수수께끼를 해결하지 못하고 아버지와 자신의 친구인 에르큘 포와로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최근은 묘하게 크리스티 여사님 책만 열심히 읽게 되네요. 이 작품은 여사님의 54번째 추리 장편입니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특이한 점이 있다면 화자로 "콜린 램"이라는 배틀 총경의 아들을 내세워 완전한 1인칭 시점으로 전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콜린 램 혼자 행동하고 관찰하여 수집한 정보를 포와로에게 전달하는 방식이라서 포와로는 그의 말 그대로 "안락의자 탐정" 역할만 수행하고 있으며, 독자 역시도 포와로와 똑같이 정보를 제공받기 때문에 진정한 독자와의 추리 대결이 가능한 방식인 것이죠. 그야말로 정통파 고전 미스테리로서 완벽한 조건을 갖추었다고나 할까요? 트릭 역시 깔끔하고요. 무엇보다도 초보자도 쉽게 수긍하고 즐길 수 있는 간단한, 그렇지만 정교한 여러 장치를 통해 사건이 해결되는 구조였다는 점에서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제일 중요한 첫 사건 이후에도 관련된 살인사건이 2건이나 더 발생하기 때문에 독자의 흥미가 계속 유지되며 콜린 램의 정보요원으로서의 활약도 약간이나마 사건과 교차하여 벌어지고 있어서 읽는 재미도 뛰어난 편이고요.

그러나 제목이기도 한 "4개의 시계"가 사실은 별 의미가 없다는 점은 큰 맹점이라 생각되네요. 셰일라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과정의 설득력이 제로에 가까웠기에 더더욱 불필요한 장치로밖에는 보이지 않았어요.
또 트릭 자체도 분명 괜찮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단편으로 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등장인물들의 대화나 상황묘사를 통해 조금씩 밝혀지는 진상을 결론에서 터트리는 방식이라서 이야기가 길게 늘어지면 질 수록 단서를 숨기기는 쉬웠겠지만 여사님 내공이라면 보다 이야기를 압축하면서도 핵심만 짚어낼 수 있었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생각보다는 길어서 늘어지는 감이 있었거든요. 별반 중요치 않은 "비밀 정보요원" 콜린 램의 활약을 부각시킨 탓도 크겠지만.

그래도 역시 고수의 범작은 범인의 걸작과 맞먹는 법이죠. 아주 유명한 작품은 아닐 뿐더러 몇몇 단점들이 눈에 확연히 드러나 최고 걸작이라고 하기에는 모자라나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는 재미와 정교한 트릭이 곁들여진 두뇌싸움이 펼쳐진다는 점에서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06/10/05

2006 두산 시즌 결산 및 조금 이른 내년 전망 (그리고 바램)

드디어 오늘로 프로야구 정규 시즌이 모두 끝났습니다.

두산의 순위는 5위. 그러나 5할 승률을 넘긴 5위라 팬으로서는 무척 만족스럽습니다. 외려 막판에 4강 싸움에 빡세게 진행된 탓에 주축 선수들이 쉬지 못한것이 아쉽죠. 저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아주 충분히 만족스러운 성적과 결과였습니다.

일단 올해를 결산한다고 생각할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타자쪽에서는 이종욱 선수입니다. 군필에 젊은 1번타자. 출루율은 좀 낮지만 당당히 도루왕을 차지한 신인으로 예전같으면 신인왕이 되고도 남았을텐데 올해는 한화의 괴물덕에 상복은 없겠지만 첫 풀타임 출장 시즌에 이정도 성적이라면 내년이 더욱 기대가 됩니다. 현대에 감사할 뿐이죠. 그리고 안샘 이후의 2루를 누가 책임질지에 대한 포지션 경쟁의 승자인 고제트 고영민 선수 역시 앞으로가 기대되고요. 외야수 민병헌 선수도 내년에 착실히 성장한다면 두산의 향후 9번, 1번, 2번 테이블 세터진은 완벽한 형태로 몇년간 가동되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투수진에서는 리오스 선수의 눈물겨운 호투와 젊은 외국인 에이스 랜들 선수의 투혼이 빛났고 마무리 정재훈 투수도 괜찮았지만 이재우 선수의 공백을 결국 메꾸지 못한게 안타깝더군요. 시즌 중반 트레이드해온 김덕윤 선수가 그나마 두산 투수진에서 보기 힘든 안정감을 보여준 덕에 올 시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네요. 김승회 선수 초반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던 만큼 올 겨울 착실한 훈련으로 성과를 보여주었으면 하고요.

하여간 두산 선수들과 팬 여러분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개인적인 제 Best Player는 전 두산 선수들 모두와 관중동원 1위를 안겨준 팬 모두라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올해보다 알찬 내년 시즌이 되면 참 좋겠네요. 이제 중심 타자들이 FA를 앞두고 있는 만큼 모 신문 기사처럼 두산은 내년에는 한번 승부를 걸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건강한 김동주가 포진한 타선이라면 시즌 막판 잠깐(?) 위력을 보여주었듯이 두산에 평균득점 +1은 충분히 보태줄 것이라 보이거든요. 동계훈련과 주축선수들이 부상과 피로를 얼마나 빨리 회복할지가 관건이겠고 군대간다는 손시헌, 임재철, 용덕한 선수의 공백도 우려됩니다만, 내년 시즌 제가 생각하는 타선은 다음과 같습니다.

민병헌(우) - 이종욱(중) - 안경현(1) - 김동주(3) - 최준석(DH) - 홍성흔(포) - 강동우(좌) - 나주환(유) - 고영민(2) / 백업 : 김진수(포) - 이승엽(외) - 유재웅(PH).....

민병헌 선수가 올해 이종욱 선수만큼의 활약을 해주기를 기대하는 타선이고 외야수들이 거포가 없는 것이 최대의 약점이지만 1번, 2번의 빠른 발과 중심타선의 의외로 좋은 선구안 (두산의 강점이기도 하죠) 을 기대할 수 있는 타선이라 생각합니다.

투수진은 박명환 선수는 잡지 않는다고 본다면 이렇겠죠

선발 : 리오스 - 랜들 - 이혜천 - 김명제 - 금민철 (이경필)

중간 : 김덕윤 - 구자운 - 정성훈 (원용묵,김상현...)

마무리 : 정재훈

5선발이 좀 애매하고 내년에 돌아올 구자운 선수는 장차 선발로 키워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공백기를 볼때 중간으로 운영한다면 나름 필승조가 갖추어 질 것 같습니다. 리오스 선수 등 선발 투수들을 7이닝 안쪽으로 보호해 주면서 중간 로테이션이 돌아간다면 꽤 경쟁력 있는 라인업으로 보이거든요. 2군에 있는 숱한 유망주와 2006년 1지명으로 지명한 초고교급(?) 투수에게는 큰 기대하지 않지만 로또가 터져준다면 더할나위 없겠네요. (터져라! 서동환!)<

즐거운 추석 맞으세요

제 누추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올해 마지막 연휴를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추석이라는 날이 꼭 편하고 쉴수만 있는 날은 아니지만 그래도 재충전의 좋은 기회로 삼기에는 충분할 정도의 연휴니 심기일전하여 얼마 남지 않은 2006년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잘 보내셨으면 합니다. 지방 내려가시는 분들이나 먼거리 이동하시는 분들은 운전 조심하시고요.

모쪼록 좋은 한가위 되시길.

2006/10/03

타짜 (2006) - 최동훈

 


허영만의 만화를 원작으로 "범죄의 재구성"의 최동훈 감독이 영상화한 영화입니다.

한마디로, 저는 무척 재미있게 봤습니다. 원작 1부의 내용을 90년대로 끌어와 재구성했는데 상당히 긴 이야기의 원작을 잘 압축하고 넘어갈건 넘어가면서 각색을 잘 해서 원작팬도 충분히 수긍할 만한, 그리고 원작을 보지 않더라도 영화 자체만으로도 즐길 수 있는 좋은 영화라 생각됩니다. 저같이 화투로 섯다를 칠 줄 모르는 사람도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은 정말 박수를 보내고 싶더군요. 타짜들의 손동작이나 속임수도 핵심적인것만 잘 영상화하고 있으며 최동훈 감독 특유의 (두작품밖에는 안 찍었지만) 왠지 회를 쳐 놓은 듯한 화면빨(?)도 여전한데 이 작품에서는 "색채"를 상당히 강조해서 스타일을 더했습니다. 여러 세트들도 꽤 공들여 만든 것 같은 느낌이었고요. 중간중간의 유머들도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워서 영화가 물 흐르듯 유머와 긴장감을 잘 조율하며 흘러가는 것이 무척이나 탁월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 최대의 수확은 한국 영화사상 전무후무한 팜므파탈 "정마담"을 창조해 낸 점이겠죠. 이 캐릭터는 원작에서도 꽤 비중이 큰 캐릭터이긴 했지만 영화에서는 정말 독특하면서도 개성적으로, 그러면서도 스토리 자체를 쥐고 흔드는 역량과 카리스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감독과 각색의 승리이기도 하지만 엄청난 가슴을 자랑하며 화면을 장악한 김혜수라는 배우의 공도 크겠죠. 가슴하나는 정말 작살이었습니다. 좋은 배우가 좋은 배역으로 살아나는 모습을 보니 좋네요. 그 외에도 평경장 역의 백윤식이나 유해진 등 조연들의 캐스팅도 적역이고 연기력도 출중해서 모든 캐릭터가 잘 살아있더군요.

하지만 그에 비해 주인공 곤(고니) 역의 조승우는 카리스마가 잘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너무 어려보이는 듯한 외모 때문에 그러한 인상이 더했기 때문에 미스캐스팅이 아니었나 싶네요. 원작 2부의 주인공인 함대길 캐릭터가 외려 조승우에게는 적역이 아니었을까요? 남원 사투리를 쓰지 않는 것도 이상하고.... 조금 더 나이들고 묵직해 보이는 배우, 개인적으로는 강한 인상의 권해효 같은 배우가 좋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너무 코믹할지도...) 그리고 화면 밑에 일종의 타짜로서의 룰이나 격언 같은 것이 깔리는 연출은 좀 작위적이었던 것 같고 몇몇 장면에서의 이야기의 개연성이 떨어지는 점, 저는 아직도 정마담이 왜 평경장을 살해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최대의 승부가 너무 쉽게 시작해서 쉽게 끝난다는 점이 긴장감을 끌고가는 데 있어서는 좀 부족해 보였고요.

그래도 전작에 이어 그럴듯한 (물론 원작이 있긴 하지만) 범죄 스릴러 도박물을 성공적으로 촬영한 최동훈 감독의 역량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각색이 워낙 출중해서인 탓도 있겠지만 원작 팬으로서는 흥행에 성공해서 원작 2부도 영상화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생기네요. 물론, 최동훈 감독이 찍어야겠죠.

그나저나, 수출된다면 어떨까요? 도박판에서 속임수를 쓰면 바로 손모가지가 날아가는 한국적 상황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질까요? 이게 워낙 만화등에서 자주 쓰여서 익숙하기도 한데 과연 이게 한국적 상황이 맞기는 맞는걸까요? 궁금해지네요.

2006/10/02

최근 읽은 추리만화 짧은 평가 (2)

명탐정 키요시로 사건노트 1- 하야미네 카오루 / 에누에 케이

제목부터 뭔가 정통 추리 만화다운 포스가 풍기기는 하지만... 지나치게 아동용일 뿐더러 그림마저 제 취향이 아니더군요. 명탐정이라는 키요시로라는 주인공 역시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고요. 추리적으로는 정통스러운 맛은 약간 있지만 트릭도 전부 작위적이고 어설픕니다. 그나마 마음에 드는 것은 소박한 사건과 해피엔딩이라는 점? 4권까지 나왔지만 개인적으로 계속 보게 될 것 같지는 않네요. 아무리 추리만화팬이라도 연령대가 안 맞으면 사절입니다....


도시전설 탐정파일 1 - 에스노 사카에
제목은 그럴싸하지만 아니나다를까 추리만화라기 보다는 괴담+액션에 가까운 작품이었습니다. 도시전설이라 불리우는 (Urban Legend) 괴담을 소재로 한 단편 옴니버스 물인데 영화 "캠퍼스 레전드"와 유사한 설정이죠. 그래도 딸꾹질과 화장실의 하나코를 엮어 만든 탐정 캐릭터는 꽤 마음에 들었고 1권 제일 마지막 이야기인 "인면어" 이야기는 제법 수작이라 생각합니다. 나름 짜여진 복선과 이야기 전개, 반전까지 마음에 들었거든요. 이건 계속 볼까 해요. 어차피 4권 완결이니...

명탐정 코난 54 - 아오야마 고쇼
나온지도 읽은지도 좀 됐지만 쓰는 김에 씁니다. 뭐 여전히 추리적으로나 캐릭터적인 재미로나 평균 이상은 해 줍니다. 설산의 눈사람 트릭은 제법 괜찮았다고 생각되고요. 하지만 뒷부분의 "탐정 고시엔" 이야기는 너무 막가는 설정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간만에 등장하는 하쿠바 사구루나 하츠토리는 좋았지만, 뭐 팬 서비스 차원이라 생각해야죠.

검은사기 1~9 - 쿠로마루
추리만화는 아니지만 넓은 범위로 보면 추리쪽 쟝르에 속하는 범죄물이니 아주 다른 쟝르물은 아니겠죠? 사기꾼 (여기서는 "백로"라고 하죠)만 대상으로 사기치는 "흑로"라는 사기꾼 쿠로사키를 주인공으로 한 단편 옴니버스물입니다. 사기에 대한 나름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어서 사기라는 것이 너무 쉽게쉽게 진행되는 감은 있지만 이야기가 꽤 설득력 있는 것이 장점입니다.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의 배경이야기를 놓고 큰 줄기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도 괜찮고요. 전문가가 등장하는 만화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탓도 있지만 작품 자체가 꽤 재미있었던 만큼 앞으로도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고 싶네요.

신데렐라의 함정 / 살인 급행 침대열차 - 세바스띠앙 자프리조 / 지정숙 : 별점 2점

신데렐라의 함정
세바스티앙 자프리조 지음, 지정숙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이글루스의 문제로 먼저 썼던 글이 다 날아가서 다시 적습니다.... 사실 대단한 리뷰는 아니지만 꽤 길게 썼는데 약간 화가 나긴 하네요. 처음 쓸때의 기분이 전혀 들지 않으니 대충 짧게 요약하겠습니다.

자프리조의 작품은 그동안 두어개 읽어보았었는데 사실 다 제 취향은 아니었죠. 일단 너무나 "프랑스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특유의 몽환적이고 정신사나운 문체 때문에 추리라는 쟝르와는 약간 갭이 느껴졌거든요. 그래도 이 작품은 탐정이면서 증인,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라는 희대의 1인 4역 트릭을 구현한, 추리 소설 역사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 작품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기에 관심은 계속 갖고 있다가 여러가지 책을 사면서 같이 구입,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같이 실려있는 <살인급행 침대열차> 역시 꽤 관심가는 작품이기도 했고요.


그러나 읽어보니 생각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일단 앞서 이야기한 1인 4역의 트릭 그 자체는 꽤 그럴듯하게 구현해 놓기는 했으나 기억상실이라는 너무나 흔한 장치를 통해 주인공이 과연 누구인가? 라는 명제를 던져놓는 것이 전부라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문제가 있어 보이더군요. 어떤 단서나 실마리를 찾아간다기 보다는 주인공의 혼란스러운 심리묘사를 따라가다보면 작품이 끝나버리는 심리 스릴러에 가까웠습니다.

같이 실려 있는 <살인급행 침대열차>는 작가의 데뷰작으로 침대칸에서 발견된 시체와 같은 침대칸에 타고 있던 승객이 하나씩 살해된다는 연쇄살인극을 꽤 그럴듯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정통 추리물이라 할 수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동기가 너무 뜬금없이 밝혀지고 작품 전반에 걸쳐 탐정역을 수행하던 그라지아노 형사가 어느새 한켠으로 밀려나고 침대칸에 무임승차했던 애송이가 탐정으로 등장, 사건을 전부 해결해 버리는 내용 구성은 이색적이긴 했지만 수긍하긴 힘들었어요. 독자와의 공정한 승부도 아쉬운 부분이 많았고요.

하지만 위에서 말한 이 작품 (들)의 문제는 사실 사소한 것이고 진짜 문제점은 제가 구입한 동서 미스터리 북스의 번역이 너무나 엉망이라 뭐라 논하기 힘든 수준이라는 것이죠. 특히 주인공의 왔다리 갔다리 하는, 몽환적인 심리묘사가 작품 전반에 걸쳐 현란하게 펼쳐지는 <신데렐라의 함정>은 무슨 이야기인지 당쵀 감을 잡기 힘든, 제 머리로는 이해하기 힘든 수준의 번역이었습니다. 그나마 "사건"과 "인물" 묘사에 많이 치중하는 <살인급행 침대열차>의 경우는 이해는 가능한 수준이기에 약간이나마 낫긴 하지만 뭐 50보 100보죠.
동서 미스터리 북스의 기획과 작품 선정은 마음에 들고 괜찮은 작품은 계속 구입할 의사가 있긴 하지만 번역이 이정도 수준이라면 도저히 참고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닌것 같습니다. 좀 더 제대로 즐길 수 있었던 작품이라 생각되기에 씁쓸하기 그지 없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