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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7

거인들의 전설 - 호시노 유키노부 : 별점 2.5점

거인들의 전설 - 4점
호시노 유키노부 지음, 김완 옮김/애니북스

호시노 유키노부의 SF 중, 단편집. 오래전 북오프에서 구입한 뒤 묵혀두고 있었던 책인데 좀 무게감 있는 작품을 읽고 싶어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핵심 중편인 <<거인들의 전설>> 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단편 <<이카루스 계획>> 은 호시노 유키노부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작품이지만 지나치게 초기작이라 작화가 영 마음에 들지 않고요. 결론내리자면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작품별 리뷰는 아래와 같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거인들의 전설>>
6만년전, 빙하기 당시 정신력을 기반으로 한 고도 문명을 이루어 살던 거인족 타이탄이 목성을 태양으로 만들어 빙하기를 막으려다 실패하여 다른 곳으로 떠난다.
그리고 현재, 태양 에너지 감소로 인해 현대에 다시 닥친 빙하기 해결을 위해 거인족이 만든 피라미드를 이용하여 목성을 불태워 '제 2의 태양'을 만드려는 계획이 시작되는데...


호시노 유키노부의 SF 중편. 고대 타이탄 족의 이야기와 현대의 위기를 1, 2부로 나누어 그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긴 분량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여러모로 부족합니다. 특히 작가의 특기 중 하나인 과학적인 설정과 이야기의 결합 측면에서 많이 아쉬웠어요. 빙하기와 목성 태양화 계획 자체는 그럴듯하지만 지구의 극점 이론이라던가, 타이탄 족이 만든 피라미드를 활용해야 한다는 점 등 그다지 과학적이지 않은 설정이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특유의 반전을 통한 재미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위기는 목성 태양화 멤버의 내분에서 찾아오며, 반란파를 진압하고 우주선을 떨구는 게 이야기의 전부거든요. 여기서 반란파와 주인공 일행의 싸움은 단순한 액션물에 불과할 뿐이고요.

딱 한 가지, 마지막 주인공이 우주 공간에서 총을 쏴서 악당을 해치우고 구조선까지의 이동도 성공하는 장면은 호시노 유키노부스러웠지만 그 외에는 딱히 건질게 없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이카루스 계획>>
지구의 에너지 고갈을 태양 에너지를 끌어당겨 해결하려는 이카루스 계획이 시작되고, 주인공 일행은 이를 막으려는 테러 집단인 지구 해방 전선의 우주선과 우주전을 벌인다.

작가의 초기작으로 내용은 간단하지만 과학 지식이 곳곳에 녹아들어 있어 전작보다는 보는 재미가 컸던 작품. 지구 해방전선이 쏜 미사일이 태양의 인력 탓에 정상 궤도를 상실한다던가, 추락하던 이카루스호가 소혹성의 인력으로 기사회생한다는 내용이 그러하죠. 이 장면에서 그리스 신화 속 이카루스 이야기와 결합한 전개를 보이는 점도 아주 좋았고요. 
또 이카루스 계획 설정은 물론 에너지를 독점하려고 하는 악역 설정도 상당히 신선했습니다. 지금 읽기에도 그리 낡아 보이지 않았거든요.

주인공 약혼자의 죽음, 목숨을 건 수리와 죽음과 같은 신파조의 연출에 더해 정교하지 못한 초기 극화 스타일의 작화는 아쉬웠지만 이 정도면 호시노 유키노부다운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2018/05/26

속삭이는 자 1,2 - 도나토 카리시 / 이승재 : 별점 2.5점

속삭이는 자 1 - 6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시공사

속삭이는 자 2 - 6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시공사

<<아래 리뷰에는 본 작품의 핵심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섯 명의 소녀들이 차례로 유괴된 후, 여섯 명 소녀의 절단된 팔이 발견된다. "아돌프" 라고 명명한 범인의 도전에 게블러 박사가 이끄는 연방 경찰의 행동 과학 수사팀은 총력을 다해 응하지만 소녀들의 시체가 한 구 씩 차례로 발견되고, 발견된 장소와 얽힌 추악한 범죄가 함께 드러나며 수사팀은 서서히 와해되는데...

이탈리아 출신 범죄학자의 장편 소설 데뷔작. 회사 동료인 Y리님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Y리님 감사해요!)

천재적인 범죄자와 경찰과의 대결은 굉장히 많이 보아온 물릴대로 물린 구도죠. 제 블로그에서도 여러 편의 작품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한 모방작은 아닙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범죄자 "아돌프"가 여섯 명의 조력자와 함께 한다는 점이에요.
특히 두 번째 시체 발견 장소인 옛 고아원과 관련된 이야기는 아주 기가 막힙니다. 왜 고아원에 시체를 유기했는지? 에 대해 오래전 고아원에서 빌리라는 소년이 살해된 사건을 밝혀내고 진범 로널드 더미스가 지금 누구인지 정체를 밝혀내는 과정이 정말 손에 땀을 쥐게 만들거든요. 로널드 더미스가 "그" 라는 인물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진짜 흑막을 드러내는 연출도 괜찮았고요. 

작가로서의 첫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전 편에 걸쳐 치밀한 복선과 단서를 배치하는 전개도 인상적입니다. 실종 아동을 찾는 전문가로 팀에 투입된 밀라를 적대시하는 로사에 대한 묘사가 대표적이죠. 이는 로사가 발견되지 않은 여섯 번째 실종 아동의 어머니로 유괴 사건에 깊숙이 관련되어 있다는 반전으로 이어지는데 효과적으로 사용됩니다. 아울러 여섯 번째로 실종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샌드라가 최초의 목표였으며, 첫 번째부터 다섯 번째 실종 아동은 모두 샌드라의 조건에 맞춰 고른 것 - 때문에 모두 비슷한 또래의 외동 딸들임 - 이라는 이론도 아주 괜찮았어요. 약간은 <> 같은 아이디어인데 이 작품에서는 그다지 효과적으로 사용되는 못한 만큼 다른 작품 속 트릭으로 사용해도 좋겠다 싶더라고요.

그러나 이렇게 사체가 발견된 장소와 얽힌 다른 사건이라는 설정에 대한 작가의 욕심은 지나쳤어요. 두 번째 실종 아동이 발견된 사건까지는 앞서 말씀드렸듯 아주 괜찮지만 세 번째 실종 아동과 관련된 조지프 록포드, 네 번째 실종 아동과 관련된 펠더 사건은 그 규모와 잔혹성 모두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어린 시절 동료 고아를 죽인 고아 소년 이야기야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허나 엄청난 거부가 30여 명의 동성애 상대들을 모두 죽여 저택 인근에 매장한다던가, 별볼일 없는 고아 출신 일용직 노동자가 고급 주택가에 거주하는 일가족을 6개월 동안 지배하며 학대하다가 잔혹하게 살해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죠. 또 이 두 사건 모두 다섯 명의 소녀를 살해한 본 이야기와 비교해도 더 자극적이고 규모가 절대로 작지 않은 사건이라 본말전도가 된 느낌도 들고요. 
게다가 수사팀 본부에서 다섯 번째 소녀가 발견된 이유가 팀 내부에 있는 배신자이자 유괴의 조력자인 로사를 고발하는게 아니라, 수사팀의 실질적인 리더인 고란 게블러 박사가 저지른 살인을 폭로하는 것이라는 반전도 과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작품 전개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불필요한 반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앞서 여러 번 반복적으로 묘사된 게블러 박사의 일상이 모두 거짓이라는 것도 조금 입맛이 썼어요. 좋은 아이디이고 재미있는 이야기이기는 한데 이렇게 까지 해서 독자를 속일 필요는 전혀 없었으니까요. 

그래도 이렇게 과한 이야기들도 나름 재미가 없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사건의 진짜 흑막이자 진범인 "속삭이는 자"에 대한 설정이에요. 누군가를 조종해서 살인을 저지른다는 건 실제로도 여러 사건들이 있다고 하고, 저자가 범죄학자 출신이라 이런 사건들을 토대로 창작한 것으로 보이는데 작품 속에서 선보이는 그의 모습, 행적은 모두 모호하고 어떤 건 초능력에 가까와 보여서 설득력이 낮습니다.
물론 몇몇 디테일이 없지는 않습니다. 로널드 더미스 (와 펠더)는 어린 시절부터 세뇌했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방법도 조지프의 회상에서 살짝 선보이기는 하니까요. 그러나 이 역시 몇마디 말, 연극적인 무대 묘사에 그칠 뿐이라 별로 그럴듯 해 보이지는 않더군요. 알렉산더 버먼처럼 특별하게 세뇌하지 않고 약점을 잡고 흔드는 게 더욱 현실적으로 보였어요.
그리고 그나마 방법이라도 짐작할 수 있는 이 네 명은 그렇다 쳐도 어떻게 유괴할 타겟을 골라내었으며, 어떻게 실행범 빈센트 클라리소를 한 달만에 감방에서 교육시켜 원하는 대로 범행을 저지르게 만들었는지는 아예 설명되지 않아서 답답합니다. 이게 사건의 핵심인데, 결국 범행은 증명하지도 못하고 끝나버리잖아요. 여기에 더해 아돌프가 고란 게블러 박사가 살인을 저지르게 만들었다는 주장은 완전 억지에 가깝고요.
심지어 마지막 교도소에서의 모습은 자신의 DNA 정보를 절대로 흘리지 않는다는 식이라 그냥 전능한 존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렇게 전능한 범죄자의 비법(?)이 소개되지 않는 점에서는 마에카와 유타카의 작품들이 떠오르는데 좋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겠죠. 이럴 바에야 로널드 더미스가 진범인 서스펜스 스릴러로 끌고가는게 모든 면에서 훨씬 나았을 겁니다. 

또 반전에는 욕심을 냈지만 캐릭터 설정은 그렇지 못한 것도 옥의 티입니다. 고란 게블러 박사와 밀리 형사 모두 이런 류의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테레오 타입이라 굉장히 식상해요. 토마스 해리스제프리 디버 등 유명 작가들의 두뇌파 남성과 행동파 여성이 등장하는 작품 속 캐릭터들과 하등 다를 게 없거든요.
차별화를 두기 위한 여러가지 설정, 예를 들어 밀라가 과거 유괴된 경험이 있고 고통에 무감각한 캐릭터라는 식의 설정도 무리수에 불과합니다. 고통에 무감각한 캐릭터치고는 감정 기복이 심해서 왜 이런 설정을 넣었는지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여러모로 욕심이 너무 과해서 아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그래도 킬링 타임용으로는 적절한 수준의 재미를 선사해 주는 만큼 소일거리를 찾으신다면 한 번쯤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2018/05/25

그대 눈동자에 건배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별점 2점

그대 눈동자에 건배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현대문학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집. 2011년 ~ 2016년 사이 발표되었던 비교적 신작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실망스럽네요. 고민 없이 단순한 아이디어에 의지해 써내려 간 작품이 대부분이며 추리물 성향의 작품들의 경우도 트릭의 깊이가 부족하거나 지나치게 작위적인 등 정교한 맛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 꾼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답게 쑥쑥 읽히는 맛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기대에 미치지는 못하네요. 수록작 전체를 평균한 제 별점은 2점으로, 작가의 팬이시라도 구태여 찾아보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각 수록작 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 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새해 첫날의 결심>>
새해 첫 날, 신사 참배를 가던 다쓰유키와 야스요 부부는 신사에서 속옷만 입은 남자가 기절한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그 남자는 군수로 머리에 둔기로 타격을 입고 쓰러진 상태였다. 신사로 향하는 길은 외길로 부부는 아무도 보지 못한 상태에다가, 군수의 옷은 멀리 떨어진 공원에서 발견되는 등 사건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외길로 갇힌 공간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에서는 일종의 밀실 트릭이 사용된 작품이라 할 수 있고, 피해자의 옷이 전혀 다른 곳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순간 이동 트릭이 사용된 불가능 범죄물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추리적으로 대단한 의외성을 지닌 작품은 아닙니다. 신사로 오는 동안 범인을 보지 못한 이유는? 당연히 신사에서 아직 도주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범인은 경찰이 조사하지 않은 유일한 장소에 숨어있다는 것이 진상이니까요.
그래도 이 밀실 (?) 트릭은 그런대로 설득력있게 설명되는 편이나 군수가 옷을 벗은 이유부터는 문제가 아주 심각합니다. 한 여인을 두고 교육장과 벌인 달리기 시합에서 이기기 위해 벗고 뛰었다는데 전혀 설득력있게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옷을 벗고 뛴다고 더 빨리 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불편한 구두를 언급하며 신발 정도를 벗었다면 모를까, 속옷만 입고 뛴다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돼요.
또 결말도 문제에요. 사실 다쓰유키와 야스요 부부가 자살을 결심한 상태였으며, 이 둘이 이러한 황당 사건을 접하고 삶에 대한 희망을 품는다는 것인데 구태여 붙일 필요 없는 사족이었습니다. 시리즈 물도 아니고, 독자가 전혀 알 필요가 없는 쓸데없는 정보였어요.

추리 작가로서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솜씨가 엿보이기는 하나 여러모로 작위적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10>>
추리작가 미네기시는 10년 전 갑자기 사라진 옛 애인 쓰다 치리코의 연락을 받고 밸런타인데이에 재회한다. 둘은 옛 이야기, 그의 작품 이야기를 식사와 함께 이어가는데 갑자기 치리코는 옛 동아리 멤버였던 후지무라 에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미네기시가 10년 전 저지른 범죄에 대한 진상을 치리코가 풀어나간다는 작품. 증거는 치리코가 후지무라 에미의 친구인데 그녀에게 전해들었던 습작 줄거리가 미네기시가 발표한 소설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즉, 작품을 훔치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이야기죠.

설정도 진부하고 전개 역시 일방적인 치리코의 주장밖에 없지만, 사건 당시 데이터가 삭제되었던 후지무라 에미의 노트북을 복원하여 이를 가지고 미네기시의 범행을 증명하는 과정이 잘 짜여져 있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데이터를 몰래 훔쳐내고 노트북 데이터는 지웠지만 그녀를 죽이지 않았다는 미네기시의 주장을 논박하는 것이 핵심인데, 앞 부분에 살짝 등장한 미완성 휴재작 <<심해의 문>> 이 여기서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설득력이 높습니다. 아이디어가 고갈된 미네기시가 마지막으로 미완성작까지 손대었지만 결국 완성하지 못했으며, 그 마지막 데이터는 그녀가 살해당한 날 저장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정황 증거이기는 하나 이 정도면 결정적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죠.

미네기시가 아무리 별로라도 10년이나 프로로 활동했다면 최소한의 실력은 쌓았을텐데 너무나 무능하게만 그려진 것, 마침 치리코가 후지무라 에미의 친구였다는 점, 또 그녀가 경시청 형사라는 정체가 드러나는 장면 등은 지나치게 편의적이고 작위적이라 좀 더 고민이 필요했지만 이 정도면 단편으로는 괜찮은 수준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오늘 밤은 나 홀로 히나마쓰리>>
사부로는 딸 마호의 결혼 소식을 듣고 놀라지만, 상견례 자리에서 사돈 식구를 보고 더 놀란다. 사돈 가문은 큰 종합 병원을 운영하는 지역 유지였던 것.
엄한 시어머니 때문에 힘들어 한 자신의 아내를 기억하고 있는 사부로는 사돈 부인의 엄격함을 알게 된 후 마호에 대한 걱정이 심해지는데...

사부로의 죽은 아내 가나코는 시집살이가 힘들었지만 여러가지로 극복하고 즐기고 왔다는 것을 "히나마쓰리" 인형 장식과 사진을 통해 드러내는 일종의 일상계 작품. 

일상계는 제가 좋아하는 장르이기는 한데 이 작품 속 히나마쓰리 인형 장식을 가지고 한 장난은 추리라고 보기에는 너무 사소합니다. 지나치게 일본적인 소재라 우리에게 와 닿기 어렵다 치더라도 어차피 약간의 장난에 불과하거든요.
게다가 이 정도 만으로 "모든게 다 괜찮았고 앞으로 잘될거다" 라는 식으로 끝내는 결말도 안이했어요. 얼마나 시어머니가 괴롭혔으면 이렇게까지 몰래 숨어서 사진을 찍었을까 하는 애처로움이 생겨나야 정상일 것 같은데 말이죠.
제가 딸 자식을 가진 부모라 그런지 여러모로 마음에 들지 않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그대 눈동자에 건배>>
"나"는 우연히 나간 미팅에서 애니메이션 캐릭터같은 화장을 한 모모카를 만나 사귀게 된다. 하지만 둘은 애니메이션 관련 이야기만 나눈다. 그녀가 자신에 대한 것은 철저히 감춘 탓으로 그녀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나에게 모모카는 자신에 대해 알면 실망할 것이라며 콘텍트 렌즈를 뺀 모습을 보여준다.

표제작. 머리에 염색을 하고 빠칭코와 경마장을 출입하는 "나" 가 도박 중독자가 아니라 '미아타리 수사' 에 종사하는 경찰관이었다는 반전을 선보이는 작품.

그러나 '미아타리 수사' 라는 수사 방식에 대해 조사한 뒤, 지명수배자의 특징을 기억하여 범인을 찾아내는 이 수사 방법의 포인트가 나이를 먹어도, 살이 찌거나 빠져도, 성형 수술을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눈매라는 것에 착안하여 별 생각없이 작품으로 써 내려간 티가 물씬 납니다. 모모카가 지명수배자였다는 것을 알아내는게 콘텍트렌즈를 뺀 후였다는 장면 때문이에요. 아무런 고민 없이 그냥 "눈매" 를 숨기기 위한 방법으로 콘텍트렌즈를 선택한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거든요. 콘텍트렌즈 착용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인 정도만으로는 많이 부족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연에 기반한 작위적인 설정이 반전의 핵심인 탓이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제 별점은 2점. "미야타리 수사" 에 대해 알게 된 것 정도만 수확이네요.

<<렌털 베이비>>

에리는 장기 휴가동안 휴머노이드로 가상 육아 체험을 하게 해 주는 사업에 등록한 후, 파트너 아키라와 함께 육아에 고군분투하며 모성애에 눈을 뜬다.

히가시노 게이고 스타일이 조금 덧붙여지기는 했지만 호시 신이치의 쇼트쇼트 SF에 가까운 작품입니다. 휴머노이드를 이용한 가상 육아 체험 서비스 사업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에 더해 아키라 역시 가상 육아 체험을 위한 계약 파트너에 불과했으며 에리가 60살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반전 덕분입니다.

특히 반전이 핵심이에요. 아들 대신 가짜 로봇, 휴머노이드를 아들로 양육한다는 흔해빠진 이야기와는 다르게 육아를 체험하는 서비스를 내세운 것도 신선하지만 이 반전으로 인하여 모든 걸 가상 체험하게 만드는 미래 사회가 어떨지 잠깐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거든요. 정말로 귀찮고 힘든건 단지 잠깐의 체험만으로 끝나게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물론 이만큼 기술이 발달하면 귀찮고 힘든건 로봇이나 기계가 대신 해 주겠지만 말이죠...

이처럼 고전 쇼트쇼트에 대한 경의와 함께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좋은 소품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고장난 시계>>
"나"는 무직으로 모종의 브로커를 통해 수상쩍은 일을 가끔 수행하고는 한다. 이번의 의뢰는 한 맨션에서 흰색 조각상을 가져 오는 것. 하지만 "나"는 집을 뒤지다가 집 주인을 죽이고 마는 사고를 저지른다...

특정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아무런 상관없는 누군가에게 의뢰한다는 설정은 흔하지만 이를 의뢰인이나 피해자 시점이 아니라 수행 당사자 시점에서 묘사한게 조금 특이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 손목의 시계가 범행 시간에 딱 맞춰 고장나 멈춘게 이상해서 그것을 풀어 가져간 후 직접 고쳐서 되돌려 놓았다는 설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최소한 가져갔다고 하더라도 그걸 고쳐서 되돌린다는 건 상식적이지 않아요.
이 불필요한 행위로 꼬리가 밟혀 체포되는 결말도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고장난 시간이 범행 시각이 아니라 그날 아침이었다는 약간의 트릭인데 비록 10 여분 정도 차이가 났다고는 하더라도 이건 너무 지나친 우연이에요.
흰 조각상이 사실은 특수한 방법으로 굳힌 마약이라는 설정도 불필요했습니다. 그냥 상자 하나 가지고 오라고 하면 될 것인데 뭐 이리 과한 설정을 넣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제 점수는 1.5점. 상식적이지 않은 불필요한 행동, 있기 어려운 기이한 우연을 밀어 붙인 결과물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사파이어의 기적>>
미쿠는 신사에 나타난 떠돌이 고양이와 친해진 후 "이나리" 라는 이름을 붙여주지만 이나리는 트럭에 치여 죽게된다.
한편 "사파이어"라 불리우는 파란색 털을 가진 페르시아 고양이가 파란색 후손을 원하는 브리더들 사이에게 전설과 함께 떠돈다....

파란색 털을 가진 고양이와 고양이 뇌 이식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작품. 딱히 재미가 있다거나 새롭지는 않습니다. 고양이일 뿐 있을 수 없는 색을 가진 무언가를 다룬 작품은 흔하니까요. 대표적으로는 <<너버스 브레이크 다운>> 에서의 블루 앤젤 피쉬가 떠오르네요.
또 미쿠와의 인연을 뇌 이식으로 가져가는 전개도 딱히 필요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다운 따뜻하고 인정 넘치는 이야기이기는 했지만 이야기가 정리가 안되는 느낌이 강했거든요.

순종 페르시안이 아니라 잡종만 파란색 털을 가진다는 마지막 반전은 나쁘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는 평범 이하의 범작이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배우 쿠로스는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관계를 맺고 있는 연상의 각본가 야요이를 살해하기 위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알리바이 장치를 마련한 후 그녀를 찾아간다.
쿠로스의 범행 장면에서부터 시작하는 도서 미스터리. 하지만 쿠로스가 범행을 위한 독극물을 야요이로부터 훔쳐냈다는 형편없는 설정이 발목을 잡습니다. 아무리 멍청해도 그렇지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네요. 이 작품에서도 독극물의 분량을 확인한 후 야요이가 쿠로스에게 복수하기 위해 타살을 위장한 자살을 감행하니까요.

게다가 복수를 위해 그를 놓아주고 잘 해주는 척 하다가 뒷통수를 치며 자살한다는 야요이의 행동도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범행을 목격했다면 거미줄처럼 그를 더 옭아매어 아예 피를 쪽쪽 빨아 먹는게 상식적이잖아요? 실제 관계를 맺었던 다른 배우들을 파멸시켰다는 그녀의 전례를 비추어 본다면 이 정도로 상처를 입고 죽을 결심을 한다는 건 설득력이 낮죠. 그녀의 자살로 그녀가 얻을 건 단 한 개도 없고요. 쿠로스가 파멸한다고 해도 죽고 난 다음에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도서 추리로 전개되는 과정은 나름 흥미진진하지만 캐릭터 설정과 이야기의 핵심인 위장 자살의 설득력이 너무나 낮아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군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수정 염주>>
나오키는 지역 유지 와타라이가의 외동 아들이지만 안락하고 편안 생활을 포기하고 미국에서 배우로 성공하기 위해 7년 동안 고군분투하던 와중에 아버지가 시한부 인생이라는 누나의 전화를 받는다...
추리 장르와는 전혀 관계 없는 작품. 와타라이 가에 전해 내려오는, 타임 슬립을 가능하게 한다는 "수정 염주"를 가지고 풀어낸, 일종의 일상계 판타지입니다. 타임 슬립이 등장한다는 점에서는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이 떠오르는군요. 마찬가지로 아버지 신이치로가 이 힘을 사용한 건 아들이 꿈을 포기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는 마지막 결말을 통해 "끝까지 꿈을 포기하지 말고 노력하라" 는 희망찬가를 전해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어요.

늙은 나오키가 염주의 힘으로 아버지 회사를 뛰쳐나오기 전으로 돌아가 얌전히 회사를 물려받아 다닌다는 이야기가 현실적인 결말이 될 것으로 생각은 하지만, 뭐 판타지는 판타지로 남겨둬야겠죠.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이 작품도 재미있으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18/05/20

늑대를 요리하는 법 - M.F.K 피셔 / 김정민 : 별점 3.5점

늑대를 요리하는 법 - 8점
M.F.K 피셔 지음, 김정민 옮김/다른목소리

미국에서 태어난 M.F.K 피셔, 메리 프랜시스 케네디 피셔가 쓴 음식과 삶에 대한 에세이 모음집. 1942년 발표된 고전인데 제목의 "늑대" 는 "문가에 늑대가 나타났다" 라는 문구에서 따 온 것으로 '위기 상황'을 의미합니다. "늑대를 요리하는 법" 이라는 제목은 이러한 위기 상황을 벗어나는 방법을 의미하고요. 이러한 의미 그대로 미국 대공황기 등 여러 힘든 시기를 보낸 저자가 어려운 시기를 견뎌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소개됩니다. 그 중에서도 물자, 재료가 부족할 경우 무엇을 어떻게 해 먹는지에 대한 방법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생선, 고기, 빵, 수프 등 생각할 수 있는 주요 재료별로 상세하게 실려 있기도 하고요.

다양한 내용 중에서 우선은 눈물 겨울 정도의 절약 비법이 눈에 뜨입니다. 대표적인 예는 불 없이 요리하는 방법입니다. 건초 통을 감싸고 그 안에 음식을 넣은 뒤 통의 뚜껑을 덮는 방법인데, 발효(?) 열을 이용하는 것일까요? 또 당시 통화 기준이기는 해도 50 센트로 차리는 극빈 요리에 도둑질, 야생에서 얻은 식재료를 이용한 <<나는 자연인이다>> 스타일 요리, 심지어 음식 뿐만이 아니라 대체 커피라던가 술값 아끼는 비법으로 가짜 보드카 제조법까지 등장합니다. 가짜 보드카는 물 1쿼트, 글리세린이나 설탕 1 작은술, 레몬 1개의 껍질, 오렌지 1/2개의 껍질을 20분 동안 아주 약한 불에서 끓인 뒤 알코올 1쿼트를 더한 후 바로 뚜껑을 덮고 식힌 뒤 걸러서 만든다고 하는데 한 번 도전해 보고 싶네요.
진짜 위기 상황, 즉 "등화관제" 상황에 어떻게 요리해야 하는지 가스가 전기보다 빨리 끊긴다는 등의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반려 동물들을 위한 절약 방법도 관심 가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이라 생각되고요.

하지만 그냥 안 먹고, 아끼는 방법이 아니라 아무리 어려워도 먹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는 저자의 철학이 가득 담겨 있는, 궁상맞지만 매력적으로 보이는 요리 레시피도 많습니다. 단순한 미국 가정 레시피가 아니라 유럽, 심지어 간장과 누룽지 등 중국에서 비롯된 재료를 사용하는 요리를 가르쳐 주는 식이라 수준도 상당히 높은 편이에요. 그 중에서도 파리식 양파 수프,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큰 만족을 주며 언제나 위로가 되고 마음에 남는 소박한 수프라는 미네스트로네 레시피는 꼭 따라해 보고 싶더군요. 집이나 시장에서 가장 흔하고 싼 재료로 만드는 게 최고라니 더할 나위 없죠. 
가끔 집에서 궁상을 떨며 혼술을 즐기는 이와마 소다츠가 떠오르는 메뉴들도 좋습니다. 이런 저런 선반에 채운 통조림들을 결합해서 먹는 레시피들 처럼요.

이러한 레시피, 조리법 외에도 커피 찌꺼기를 바늘 겨레 안에 넣으면 바늘이 녹슬지 않는다, 핸드로션 대신 버터 포장지를 손에 문지르고 나서 버리라는 등의 생활 꿀팁도 많습니다. 지금 읽기에는 조금 시대 착오적인 내용들, 거기에 더해 말을 타다가 생긴 타박상은 말 바로 옆 축축한 잔디를 상처 부위에 고정한다는 말도 안되는 민간 요법이 대부분이긴 합니다만 당시 시대상을 느끼게 해 주어서 나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용을 요약하기 힘들 정도로 사방으로 튀어나가는 글의 흐름 속에서 저자의 여러가지 철학을 강하게 피력하는 장면들도 기억에 많이 남네요. 개인적으로는 어린이도 사람이기 때문에 맛, 질감, 자극 면에서 단순히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로운" 것을 얻기 위해 "생각하며" 먹게 해야 한다는 교육 이론이 와 닿았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항상 잘 먹는다" 는 중국 속담에서 시작하여 "우리 나라는 현명하지 못하다!" 고 일갈하는 장면은 <<맛의 달인>> 의 지로가 떠오르기도 했고요.

이렇게 재미있고 한 번 읽어보면 참고가 될 만한 내용이 많아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흰 빵을 증오하는 저자의 마음은 잘 알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집에서 직접 빵을 구워 먹기 까지 해야 하는지 등 내용 모두를 동의하기는 어려우며, 쓰여진 시기를 감안하더라도 많이 낡았고 번역 문제겠지만 문체가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다는 문제들, 무엇보다도 요리와 레시피를 소개함에도 불구하고 도판이 하나도 없다는 큰 문제는 있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추천작입니다. 별점은 3.5점인데, 도판과 번역만 충실했더라도 별점 4점이 아깝지 않았을 거에요. 요리, 음식 들에 관심이 많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그나저나 시대가 많이 바뀌었으니 현대를 무대로 <<좀비를 요리하는 법>> 과 같은 개정판이 나와 주어도 좋을 것 같군요.

덧붙여, 이 리뷰를 쓰기 위해 조금 찾아보았는데 이 책 발표 시점에서 저자 나이가 34살이라는 것에 크게 놀랐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할머니의 잔소리 섞인 "옛날에는 이랬지" 스타일의 글들로 크리스티 여사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빅토리아 시대 할머니가 썼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죠. 대체 젊었을 때 얼마나 고생을 한 건지 상상도 안 되는군요. 또 아래와 같은 평균 이상의 미모도 놀랍고요. 여러모로 관심을 가져볼 저자라 생각됩니다.

2018/05/19

회랑정 살인사건 - 히가시노 게이고 / 임경화 : 별점 1.5점

회랑정 살인사건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임경화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기업가 이치가하라가 사망한 뒤, 유언장 공개에 참석하기 위해 이치가하라가 소유한 여관 "회랑정"에 일족이 모인다. 이치가하라의 친구 아내로 이 장소에 참석한 70대 할머니 혼마 기쿠요의 정체는 반년 전 회랑정에서 일어난 화재 사고로 인해 연인을 잃고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기리유 에리코가 변장한 것이었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그녀는 복수를 위해 이치가하라의 유언장 공개 시 반년 전 사건의 진상이 담겨있는 기리유 에리코의 유언장을 공개한다고 말하는데, 그날 밤 유언장이 사라지고 이치가하라의 조카딸인 유카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국내 한정 일본 추리 소설의 제왕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편 추리 소설. 시리즈가 아닌 스탠드 얼론 작품으로 1991년에 첫 발표된, 비교적 초기작입니다. 일본 고전 추리물의 형태를 많이 따라가고 있다는 특징이 눈에 뜨입니다. 초기작이라도 '가가 형사 시리즈' 류와는 다른, <<십자 저택의 피에로>>나 <<가면 산장 살인 사건>> 과 유사한 류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십자 저택의 피에로>>, <<가면 산장 살인 사건>> 은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서 추리적으로는 꽤 볼만한 점이 있었지만 이 작품은 전혀 그렇지 못해서 실망스럽습니다. 이유는 독자를 속이려는 의도가 지나치다 못해 완전히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초반 기리유 에리코는 화상에서 죽지 않고 깨어난 후 연인 지로의 사체를 확인한 후 오열합니다. 그 이후 지속적으로 연인의 떠올리며 복수를 위해 회랑정에 다시 찾아왔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상기시키고요. 독자들도 탐정역인 기리유와 함께 진범을 찾기 위해 이치가하라 일족 구성원들의 다양한 동기를 고민하고, 몇 안되는 단서를 조합하여 머리를 싸맵니다. 중반 이후 지로가 이치가하라의 친아들임이 밝혀지면서 부터는 범행 동기가 유산임이 명확해져서 이치가하라 일족은 더욱 의심스러워 집니다. 친아들이 있다면 다른 형제, 친척은 유산을 상속받을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앞 부분에서 기리유가 확인한 지로는 그녀의 연인이 아니었고, 그녀의 연인으로 알았던 지로가 사실은 진짜 지로를 죽이고 그녀까지 죽이려 했으며, 그 정체는 변호사의 조수 아지사와 히로미라는 것이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 때문에 이 모든게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자신이 지로라고 속이고 대신 유산을 상속 받으려는 아지사와 히로미의 음모라는 것인데, 도대체 장황하게 앞 부분에서 복수 운운하며 여러가지 단서와 동기를 던져 놓고 고민한 게 만든 건 뭔가 싶거든요. 게다가 기리유는 자신이 알던 지로가 아지사와 히로미라는 걸 이미 오래전, 이치가하라의 장례식 때 알아챘다고 하는 장면은 정말 넋을 잃게 만듭니다. 흑막이 누구인지 아는데 복수 운운하며 200페이작 넘는 분량 동안 탐정 행위를 한 이유가 도대체 뭘까요? 독자를 속이려고 하는 의도가 지나치다 못해 억지스러워서 짜증스러울 정도입니다. 상식적으로 아지사와 히로미의 정체에 대해 안 시점에서 진범이 누군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구태여 회랑정에 일족이 모였을 때를 기다릴 필요 없이 변장해서 찾아간 후 복수를 하는 게 당연하죠. 

이렇게 이야기를 그려내려면 최소한 앞 부분에서 기리유가 지로의 사체를 확인할 때 굉장히 많이 타서 신원 확인이 어렵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관 지배인 고바야시 마호가 유카를 살해한 것이 기리유의 추리에 의해 밝혀진 후, 그에 따라 왜 아무런 동기가 없는 (즉, 유산 상속과는 무관한) 그녀가 왜 이전에 지로와 기리유를 동반 자살을 위장해 살해하려 했는지? 에 대해 누군가의 사주가 있었다고 설명한 뒤 아지사와 히로미가 마지막 순간에 등장했다면 적당히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말이죠. 여기에 더해 두 명의 화자를 두어 (가장 상식인인 나오유키가 적합했을 듯 싶습니다) 탐정 역을 번갈아 하게 했더라면 더욱 좋았을테고요.

그리고 이 마지막 장면을 제껴두더라도 전개에 있어 동기와 용의자 구성도 정교한 편이 못됩니다. 이치가하라의 유산이 거액이라는 이유만으로는 범행 동기가 일족 모두에게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소스케는 국회 의원 출마를 예정 중이라 돈이 필요하다, 요코 남편의 회사가 어려워 돈이 필요하다 등은 모두 추정일 뿐 사실로 밝혀지는 건 하나도 없으니까요. 오히려 일족 모두 그다지 돈에 궁핍하지 않다는 묘사만 있을 뿐입니다.
또 일족은 지로가 이치가하라의 친 아들이라는 사실을 아직 눈치채지 못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를 알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에 대해서 깊게 파고들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도 마지막 장면이 나오기 전 까지는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입니다. 

물론 속도감 있고 흡입력 있는 전개는 괜찮아요. 최소한 저 마지막 황당 장면 전 까지는 아주 흥미롭게 읽은 건 사실이거든요. 경찰이 기리유의 모발을 찾아낸 후 그녀가 점차 궁지에 몰리는 과정의 서스펜스도 좋고요. 추리적으로도 고바야시 마호가 유카를 살해한 범인이며, 과거 사건에서 공범임을 알아내는 장면도 그런대로 쓸만한 편이에요. (개인적으로는 그냥 '숨어 있으려고' 그 방에 들어갔을 가능성은 왜 전혀 고민하지 않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러나 이 정도 장점으로 단점을 덮기는 무리입니다. 탐정이 누가 범인인지를 이미 아는 상황에서 공범자를 알아내기 위해 벌이는, 무의미한 사기극에 불과하니까요. 제 별점은 1점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시더라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18/05/18

악몽을 파는 가게 1 - 스티븐 킹 / 이은선 : 별점 2점

악몽을 파는 가게 1 - 4점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황금가지

스티븐 킹의 최신작 단편집. 원초적인 공포보다는 순문학 쪽으로 이동하는 느낌을 물씬 풍겼던 최근 작풍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래전 분실한 초고를 다시 썼다는 <<130>> 만 옛 작품을 연상케하는 자극과 속도감을 보여줄 뿐 대체로 자극이 부족합니다. 옛날 작품들이 불량 식품 같았다면, 이 책의 수록작들은 녹즙같은 느낌이랄까요. 

물론 <<모래 언덕>>, <못된 꼬맹이>> 와 같은 기발한 발상과 섬찟함을 겸비한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고, 순문학스러운 느낌이더라도 <<죽음>> 은 이런 류의 단편에서는 손에 꼽을만한 걸작임에는 분명합니다. 거장다운 깊은 연륜도 작품마다 가득하고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좀 얌전하고 재미도 별로 없어서 아쉽네요. 최소한의 의외성은 가져갔어야 하지만 좀 쉽게 쓴 느낌으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작품 별로 조금 더 상세하게 소개해 드리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언제나 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30>>
버려진 휴게소에 사람을 잡아먹는 자동차가 나타나 여러 사람들을 해치운다. 그렇지만 몰래 숨어든 용감한 소년이 돋보기로 불을 붙여 괴물을 퇴치한다!

오래전 분실한 초고를 다시 썼다고 하는데 그 덕분인지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차의 등장과 묘사는 킹의 초기 크리쳐 단편 느낌 그대로입니다. 사람을 빠져들게 만드는 생생한 묘사 만큼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에요. 처음 버려진 휴게소로 탐험을 떠난 소년의 묘사, 그리고 뒤이어 등장하는 사람 잡아먹는 자동차와 희생자들에 대한 묘사로 이어지는 속도감도 대단해서 끝까지 눈을 떼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운운하며 희생된 첫 번째 희생자를 비롯한 죽은 사람들 모두가 "선의" 때문에 죽었다는 약간의 풍자도 젊은 시절 킹 작품이 떠올랐던 부분이고요.

그러나 안이한 결말로 이런 장점 모두가 희석됩니다. 10살밖에 되지 않은 꼬마 소년이 불 좀 붙였다고 사라져 버리다니! 죽어나간 여러 명의 어른들은 대체 뭔가 싶더군요. 그래서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원래 결말도 이러했다면 아무리 마약 중독 등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킹이 이 작품을 분실한 건 별로 아까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최소한 다시 썼다면 결말 정도는 고쳤어야 해요. 이렇게 대충 마무리 지을 내용은 절대로 아니었으니까요. 예를 들자면 흑인은 잡아먹지 않는다던가, 여자는 잡아먹지 않는다던가 하는 식으로 뭔가 차별이나 혐오에 대한 이야기처럼 포장하는 등의 설정과 반전처럼 말이죠. 흑인은 잡아먹지 않아서 흑인 한 명이 살아남지만, 도착한 경찰들에 의해 사살된다! 는 <<새벽의 저주>> 스러운 이야기였다면 걸작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프리미엄 하모니>>
조카 선물을 사러 마트에 들린 부부. 남편은 아내가 갑자기 쓰러져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다른 작품들과는 다른 조금 덤덤하고 건조한 묘사가 돋보이는 작품. 소개에서 킹이 "레이먼드 카버"의 책을 읽고, 그의 스타일로 썼다고 말하고 있는데 레이먼드 카버 작품은 읽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엄청나게 더운 날, 아내가 죽은 후 주차장으로 돌아오자 애견마저 차 안에서 쪄 죽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는 이야기는 소소하니 읽을만 했습니다.

문제는 너무 순문학스럽고 의외성이 없다는 점입니다. 죽은 게 애견이 아니라 다른 것이었다면 조금 나았을지 모르겠네요. 상상하기는 싫지만, 그게 뭐든 말이죠...

하여튼 저는 킹의 작품을 읽고 싶지 킹이 쓴 카버 스타일 카피를 읽고 싶지는 않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배트맨과 로빈, 격론을 벌이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함께 주말마다 식사를 하는 60세 노인이 우연히 일으킨 차 사고로 트럭 운전사에게 구타당하다가, 아버지가 운전사를 칼로 찔러 살아난다는 이야기.

치매에 걸렸건, 나이가 들었건 아버지는 영원히 아들 앞에서는 슈퍼 히어로라는 주제 만큼은 정말 마음에 듭니다. 저도 끝까지 딸 아이를 지켜주는 아버지가 되고 싶으니까요.

그러나 아쉽게도 좋은 작품은 아니에요. 무언가 복잡한 과거가 있는 듯 변죽을 울리다가, 갑작스러운 사고와 함께 이야기가 바로 절정으로 치닫고 끝나버려 내용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껏 고급차를 쓸고 닦아 광 내어 어렵게 시동을 걸지만 도착한 장소는 집 앞 편의점이랄까, 그냥저냥한 평범 이하 소품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모래 언덕>>
아흔살이 넘은 하비 비처 판사는 유언장을 작성하기 위해 변호사 앤서니 웨이런드를 부른다. 그리고 유언장에 적혀 있는, 한 섬을 영구 야생지로 공표하는 사항을 두고 그 섬에 얽힌 오랜 비밀을 이야기 해 주는데...

짧은 분량, 섬뜩한 느낌, 여기에 반전까지 삼위일체를 이룬 '기묘한 맛', '쇼트쇼트' 계열의 작품.

우선 아주 짧다는 점에서 '짧은 분량' 조건은 충족합니다. 그리고 섬의 모래 사장에 곧 죽을 사람 이름이 쓰여진다는 아이디어에서, 특히 비행기 추락 사고 때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쓰여져 있었다는 묘사의 섬뜩함이 대단해서 두 번째 조건 역시 충족하고요. 마지막 조건도 유언장 작성을 서두른 이유에 대한 반전 때문에 완벽하게 충족합니다. 특히 결말은 아주 좋은 수준으로 킹 역시나 결말이 마음에 든다고 자찬할 정도에요.

때문에 결론적으로 별점은 4점. '기묘한 맛', '쇼트쇼트' 류 장르의 걸작만 모아 놓은 앤솔러지가 있다면 충분히 목록을 장식할만 한 교과서같은 작품입니다.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어느 못된 꼬맹이>>
사형수 헬러스가 국선 변호인이었던 브래들리와의 마지막 면회에서 그가 아이에게 총알 여섯발을 쏜 이유를 설명해 주는데...

장난꾸러기 어린 아이가 상황에 따라서는 공포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이색적인 설정에 더해, 이러한 공포가 직접 닥쳤을 때 벌어지는 무간지옥의 묘사가 압권인 작품. 읽는 내내 끔찍했고, 손에서 떼기 어려울 정도였어요.
또 인생을 파멸시키기 위해 악마가 누군가에게 나타난다는 뻔한 설정을 악마가 아이의 모습으로 위장했다는 약간의 변주만으로 대단한 몰입감을 선사한다는 점은 역시나 거장다웠습니다. 저 역시 악마같은 아이들을 몇 번 본 적이 있어서 굉징히 와 닿은 아이디어이기도 해요. 

그런데 헬러스에게 이 악마가 나타난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는다는 점은 좀 문제에요. 그냥 아픈 것, 자연 현상과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대충 넘어가는데, 그건 그렇다 쳐도 브래들리에게 이 꼬마가 나타날 이유는 또 없잖아요? 최소한의 설득력을 보장할 약간의 양념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 재미는 있지만 잘 나가다가 결말을 만들기 위해 지나치게 무리수를 둔 느낌이라 감점합니다.

<<죽음>>
동네 바보 트러스데일은 한 소녀를 죽이고 은화를 빼았은 죄로 교수형을 선고받는다. 보안관 바클레이는 그의 무죄를 확신하나 형은 집행되고, 이후 유일한 증거인 은화가 교수형당한 트러스데일의 분비물에서 발견된다...
일종의 '딜레마' 를 다룬 심리 드라마인데 한마디로 걸작입니다. 동네 바보 트러스데일이 무죄일 수도 있다는 분위기로 끌고 가다가 마지막에 반짝이는 은화가 분비물 속에서 발견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네요. 수감되어 있는 한 달 동안 발견되지 않은 이유는? 똥으로 나올 때마다 다시 삼킨 거라는 진상도 기발하고 말이죠. 무엇보다도 바클레이의 딜레마를 그리는 심리 묘사와 무엇보다도 어차피 교수형 당할거, 왜 자백을 하지 않았냐는 묵직함이 독자를 사로잡는 좋은 단편이에요.

그래서 제 별점은 5점. 수록작 중 최고로 치고 싶네요. 덧붙이자면, 트러스데일 시점의 번외편이 나와주어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납골당>>
정글 속 납골당으로 떠난 일행이 하나씩 죽어가는 과정을 술 먹은 사람의 독백으로 들려주는 특이한 작품.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과정의 묘사는 킹 다왔는데 그 외에는 솔직히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죽은 사람들이 되살아나 행진하는 죽음의 윤회 이야기인지? 아니면 술 주정뱅이의 주정에 불과한지? 킹 본인은 산문적 해설을 제거한 형식만 보았을 때 훌륭하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지금 보다는 훨씬 더 해설이 필요한 이야기였어요. 말하고 있는 술주정뱅이도 무슨 벌어졌는지는 모르는 듯 하고, 이게 더 현실적이기야 하겠지만 여러모로 일반 독자에게 잘 와 닿을 것 같지는 않네요.

한마디로 소갯글처럼 학교 작문 시간에 발표했음직한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습작에 불과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도덕성>>
가난한 부부에게 다가온 이십만 달러의 유혹, 그것은 아내 노라가 간병하는 부유한 신부 위니가 죄를 짓는 장면을 촐영하여 보여달라는 것.
유혹에 굴복한 채드와 노라 부부. 노라가 변장하여 어린아이를 때리고, 그것을 채드가 촬영하여 돈을 받지만 채드의 작가로서의 미래, 그리고 부부의 결혼생활은 끝장나 버린다.


소싯적 피를 팔고 리포트를 대신 써 주는 밥벌이를 했었는데 그 당시 자신을 매춘부라고 생각했다는 창작 비화가 더 인상적이었던 작품.

일단 재미도 없고 여러가지 문제가 많아 점수를 줄 부분이 많지 않네요. 일단 설득력 없는 등장인물들의 고민이 아쉽습니다. 얼척없는 도덕심보다는 돈이 더 이유를 가진다는 건 당연한 현실인데 이를 뭐 이렇게 진지하게 고민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아이를 때린 정도로 평생 죄책감을 느낄 것 같지도 않고 말이죠.
덕분에 위니를 통해 종교적인 시점에서 나쁜 짓, 회개에 대해 한번 쯤 생각해 보게 만든다는 발상은 좋지만 이를 풀어나가는 데에는 그다지 성공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점. 아이를 유괴하는 등 더 강력하고 심각한 딜레마를 초래하는 범행으로 묘사하는게 훨씬 나았을 것 같네요.

<<사후세계>>
대장암으로 죽은 빌은 기묘한 공간에서 해리스라는 남자를 만난다. 그는 과거 공장 문을 잠갔다가 화재로 146명의 여직원을 죽게 한 죄로 끝나지 않는 상담이라는 연옥에 갇힌 인물로 빌에게 환생과 사라짐을 선택할 수 있지만 다시 태어나도 변하는 것은 없을 거라 말한다. 그가 이곳에 온 게 다섯번 째이며 언제나 똑같은 말을 했다면서.
그러나 빌은 동생의 손가락을 잘랐던 실수 , 어렸을 때의 시계 절도, 성폭행 등의 실수 중 하나라도 막기를 바라며 환생을 선택한다. 


사후 세계에 대한 독특한 묘사와 설정, 그리고 동양적인 일종의 "윤회" 사상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인상적인 소품. 단, 묘사와 설정에 비하면 결말은 좀 평이한 편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우르>>
구식 영문학과 교수 웨슬리는 농구팀 감독인 애인 엘런과 헤어진 후 반쯤은 복수심에 킨들을 구입한다. 그런데 그가 구입한 킨들은 시판되지 않는 핑크빛 제품으로 '우르' 라고 불리우는 일종의 평행우주로 접속하여 작품을 찾아 제공하는 능력이 있는 기기였다. 웨슬리 스미스는 헤밍웨이의 미발표작 등을 검색하는데... 

아마존 킨들을 위해 집필했다는 소설인데, 한마디로 말해 광고를 위해 쓰여진 수준 이하의 졸작이었습니다.

이유는 명확해요. 소설을 쓰지 못하는 영문학과 교수가 핑크빛 킨들을 통해 다른 평행 세계에서 유명 작가들이 발표한, 이쪽 세계에서는 발표되지 않은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절반 이상까지 장황하게 펼쳐나가기 때문에 독자는 유명세를 위한 표절같은 이야기를 상상하게 되는데 정작 이야기는 급작스럽게 "내일 뉴스" 와 같은 이야기로 빠지기 때문입니다. 전혀 다른 설정을 하나로 묶어놓은 느낌이라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내일 뉴스" 이야기라도 재미있었더라면 모르겠지만 뉴스를 어떤 식으로든 미리 알고, 그렇게 알게 된 사고를 막기 위해 노력한다는 쎄고 쎈 유사 작품 대비 특별한 부분이 없어서 딱히 대단한 흥분과 재미를 불러 일으키지도 못합니다.

킹 작품에서는 보기 드문 지극히 극단적인 해피 엔딩이라는 결말은 특이하지만 그 외에는 건질게 거의 없는, 킨들 광고에 불과한 평균 이하의 범작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2018/05/06

금의 나라 물의 나라 - 이와모토 나오 / 김진희 : 별점 3점

금의 나라 물의 나라 - 6점
이와모토 나오 지음, 김진희 옮김/애니북스

고도의 기술력과 중계 무역으로 번성하고 있지만 자원 고갈로 멸망해가는 A 나라, 기술적 기반은 보잘 것 없지만 풍부한 인적, 천연 자원을 가지고 있는 B 나라는 오랜 앙숙으로 얼마 전 전쟁까지 치룬 관계. 중재에 나선 신의 명령으로 A 나라는 가장 아름다운 아가씨를, B 나라는 가장 현명한 젊은이를 각각 상대국에 신부, 신랑으로 보내게 되는데...

<<동네에서 소문난 텐구의 아이>> 로 알게 된 순정 만화가 이와모토 나오의 판타지 단편. 발표 당시 이런저런 상을 휩쓸은 바 있죠. 상극이라 할 수 있는 두 나라 (제목의 나라이며 "금의 나라"는 부유한 A국, "물의 나라"는 자원 부국 B 나라를 뜻합니다) 의 대립이 우연히 만나게 된 두 남녀 덕분에 해소된다는 이야기인데 이와모토 나오 특유의 개그 센스도 곳곳에 잘 살아있을 뿐 아니라 굉장히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선량하고 착하게, 노력하며 살면 언젠가는 복을 받는다는 교훈도 전해주기 때문에 나중에 ("정부" 라는 표현을 설명해 주지 않아도 될 때 쯤) 딸에게 꼭 읽어 보라고 하고 싶을 정도였어요.

이러한 이야기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건 실수투성이 실업자인 '똑똑한 젊은이' 나란바야르와 뚱뚱하고 예쁘다는 말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아름다운 아가씨' 사라 공주 캐릭터입니다. 예쁘고 잘생긴 공주들과 정부 문라이트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심성과 행동거지, 사고 방식이 훨씬 중요하다는 묵직한 메시지가 짧은 단편임에도 여러가지 묘사들로 캐릭터를 탄탄하게 쌓아 올린 작가의 솜씨 덕에 효과적으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형적인 미남 미녀 로미오와 줄리엣 류의 캐릭터를 비튼 발상도 돋보이고요.

물론 이야기가 너무 급하게 마무된다는 단점은 있긴 합니다. 단편인 탓인데 지금보다는 조금 길어지더라도 나란바야르의 수로 건설 계획과 이를 위한 양국의 수교는 조금 더 상세하게 다루어 주었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최종 보스인 왕을 설득하는 몇 마디 말로 모든 위기와 장애물이 해소되는 건 급작스러웠거든요. 사라가 한 "아버지가 왕이라서 다행이다" 라는 말이 보다 효과적으로 사용되는 것도 좋았을 텐데 말이죠.

그래도 여기저기서 받는 호평은 충분히 수긍이 가는 수작입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서사만 조금 보강해서 눈이 호강하는 화려한 비쥬얼의 애니메이션을 제작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애니메이션 시장도 새로운 것 보다는 과거의 히트작들의 리메이크와 리부트가 많아 보이는데 이렇게나 좋은 컨텐츠를 왜 묵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네요.

2018/05/05

슈뢰딩거의 고양희 - 반-바지 : 별점 3점

슈뢰딩거의 고양희 - 6점
반바지 지음/나무야미안해

인생 첫 텀블벅 후원 결과물. 반-바지 작가의 
SF 단편선(?) 입니다. 작가에 대해 별다른 정보는 없었지만 블로그 지인이신 함브루거 님의 추천을 본 후 방문했던 텀블벅 페이지가 멋져서 저도 모르게 후원하게 되었네요.

내용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상태에서 후원한 거라 도착한 책을 처음 접했을 때에는 이게 뭔가 싶었습니다. 만화라고 하기에는 이야기 한편, 한편은 완결된다고 보기도 힘든 한, 두 페이지 분량에 컷 몇 개가 실려있을 뿐이었으니까요. 한 편의 이야기로 완결성이 있는 비교적 긴 (그래봤자 몇 페이지 정도지만) 작품은 표제작 <<슈뢰딩거의 고양희>>라던가 <<퐁당퐁당>>, <<아공간의 님프>>, <<할아버지의 시계>> 등 일부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읽다 보니 빠져들게 되더군요. 짤막한 컷들도 반-바지 작가의 단상과 결합되어 꽤 근사한 경험을 하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야기가 완결되지 않고, 작가의 단상 일부만 드러나서 독자도 또 다른 상상의 여지를 많이 펼칠 수 있다는 예상 외의 장점 덕분이죠.

그리고 이야기의 길이를 떠나서 과학, 그 중에서도 양자 역학을 기반으로 펼쳐 놓는 상상력은 정말 발군이에요. 근접하기조차 어려운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공부가 부족한 저에게 여러모로 많은 자극을 주네요. 개인적으로 가장 감탄했던 건 백설공주의 어머니가 마법 거울에 "거울아 거울아 이 왕국에서 누가 가장 아름다우냐?"고 물어보고, 그 답변 속도를 측정하여 나라의 인구 수를 파악한다는 <<검색 알고리즘>> 이었습니다. 대상이 많아지면 검색 결과를 도출하는 게 늦어질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죠. 동화에서 이렇게 수학적인 내용을 끄집어낸 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건 제가 가장 만들고 싶은 이야기 중 하나라 부럽기만 합니다. 

물론 워낙에 많은 짤막한 단편 (?)이 가득한 탓에 모든 작품이 대단한 감흥을 불러 일으키는 건 아니에요. 타임머신 관련된 이야기가 지나치게 많은 등 특정 소재에 집착하는 경향이 많기도 하고요. 타임 머신, 시간 관리국, 특이점 등의 이야기는 충분히 긴 장편 안에 녹여낼 만한 좋은 소재와 설정들인데 이들을 모아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앞서 감탄했다고 설명드린 <<검색 알고리즘>> 만 해도 살을 더 붙여 훨씬 긴 호흡의 괜찮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을 거에요. 검색 결과가 0인 상황에서 검색 시간을 측정하는데, 검색 결과가 1이 되어 버려 이 측정 방식이 제대로 동작하지 못해 국가 운영에 지장을 초래하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주를 죽이려 한다는 식의 이야기가 충분히 가능하잖아요. 이 경우 아버지인 국왕이 계모의 범행을 방조(?) 하는 이유도 충분히 설명되고 말이죠.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이런 식이라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또 독립 출판사 "나무야 미안해" 에서 정성껏 만들기는 했지만 판형과 디자인도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그림을 못 그린 건 아니지만 그닥 밀도가 있다고 보기 어렵고, 대사가 많다고 해도 일부 작품에 불과할 뿐인데 왜 이렇게 큰 판형으로 나왔는지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이 정도면 추천 드릴 만 합니다. 워낙 기발한 발상이 많아 재미있고 장점이 더 많다는 건 부인하기 어려우니까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독립 출판물인 탓에 인터넷 서점 등에서는 구하기 어려운데, 제대로 정식 출간되기를 바랍니다.

2018/05/04

흐리거나 비 아니면 호우 2 - 반시연 : 별점 3점

흐리거나 비 아니면 호우 2 - 6점
반시연 지음, 김경환 그림/영상출판미디어(주)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시연 작가의 라이트 노벨 미스터리이전 권은 재미있게 읽었지만 걱정 반, 기대 반이라 읽어야 되나 망설였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읽기 잘 했네요. 우려했던 만화적인 설정은 캐릭터 설명이 필요했던 이전 권에 비하면 그렇게 도드라지지 않는 편이며 보다 현실 밀착형의 일상계 추리물로서 기본은 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화 속 해결사를 떠올리게 만드는 셔터 시절의 이야기는 호우가 셔터가 되는, 아동 성폭행범을 찾아 나서는 토막토막난 일부 전개와 셔터를 (아마도) 그만 둔 계기가 된 동생 백설과의 트러블 정도만 등장할 뿐이에요.

이야기는 크게 4개의 단락으로 구분되는데 각각 완결되는 이야기들이 구유 시인과 시집 <<밤벚꽃>> 에 대해 다루는 긴 호흡의 이야기로 묶여 있습니다.
<<호접 "Bad Guy">> 는 과거 호우가 셔터로 인정받기 위한 퀘스트인 아동 성폭행범을 찾는 추론, 그리고 현재 시점에서 사야가 응모하려는 추리 게임 이벤트에 대한 추론이 중심인 이야기입니다. 구유 시인과 시집 <<밤 벚꽃>> 도 구유 본인이 "해브닝" 에 나타나는 것으로 시작되고 있고요.
추리적으로는 과거 셔터 시절 추론은 단편적이라 평가하기 어렵지만 추리 게임 이벤트는 상당히 그럴싸했습니다. 추론 및 이벤트에 대한 견해 모두 말이죠. 서두를 장식할 만 이야기에요.

<<추억 "04:59">> 는 호우의 몸에 이상이 생겨 혹시나 금단증상이 아닐까 싶어 찾아간 금연 클리닉 선생님에 대한 추론, 그리고 기묘한 레미제라블을 사러 온 손님 예지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핵심은 스트레스로 정신병에 걸린 예지에 대한 이야기인데 탄탄한 묘사 덕분에 설득력도 높고 재미있었어요. 예지의 집 구조와 예지가 이야기한 회사 자리에 대한 설명이 일치하는 장면은 그 중 백미였고요. 호우의 추론이 아니더라도 드러난 단서만으로 예지가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건 쉽게 알 수 있다는 문제는 있지만 좋은 에피소드임에는 분명합니다.

<<버디 무비 "Bright lights">> 는 고지의 부탁으로 호우와 고지가 하루를 함께 하는, 말 그대로 버디 무비같은 이야기로 캐릭터를 드러내기 위한 묘사가 대부분입니다. 브로맨스를 굉장히 강조하는게 눈에 띄는데 호우가 있어야 할 장소에 대해 고민하자 분노하는 고지의 모습이 대표적이죠. 
반면 추리적으로는 부족해서 고지의 단골 목욕탕 수아탕에 대한 추론과 상가 거리 여관집 아들 영조의 여자친구 소미가 들었던 노래가 무엇인지에 대한 추론 정도만이 짤막하게 등장할 뿐입니다. 하지만 일상계 추리물로는 평균 이상 수준의 재미를 선사할 뿐 아니라 목욕탕에서 만난 만물박사의 시집 관련 묘사도 구유 시인 이야기의 중요 복선이기 때문에 빼 놓을 수 없는 에피소드에요.

<<미싱 링크 "Someone to love you">> 는 여고생 가영과 혜윤이 가져온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호우가 동네 해결사로 나서는 설정도 이질적이고 내용도 딱히 특별할 건 없습니다. 진상인 '노는 척 하는 건 연기일 뿐이다' 는 이십여년 전 <<시험의 제왕>> 에 이미 등장했던 소재라 식상하고요. 무엇보다도 가영이 혜윤에게 진실을 이야기했더라면 모든 게 해결되었을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한마디로 이번 권의 워스트, 구유 시인 관련 묘사를 제외하면 구태여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반대로 마지막 수록작 <<데드맨 워킹 "Break the Wall">> 은 아주 괜찮았습니다. 앞선 이야기에서 하나 둘 씩 선보인 여러가지 단서들을 통해 여관 주인 만조, 구유 시인과 상점가 만물박사에 얽힌 진상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데, 설득력도 높고 만물박사를 응징하는 호우의 모습은 권선징악의 표본과도 같은 모습으로 상당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거든요. 

이렇게 수록작들 대부분 재미도 있고 가치도 있지만 단점이 없는건 아닙니다. 가장 큰 단점은 전편을 관통하는 주요 등장 인물인 구유 시인에 대한 설정입니다. 절망의 시집 <<밤벚꽃>> 을 희망 가득한 찬가로 광고한 출판사와 편집자에게 실망하여 절필 선언, 잠적에 이어 자살까지 결심한다는 건... 여러모로 납득하기 힘들었어요. 본인 스스로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명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베스트셀러 시인이 그 정도의 자기 표현도 하지 못한다는 건 여러모로 설득력이 떨어지죠.
게다가 만물박사 홍기욱 설정은 더 별로에요. 그가 허세 가득한 거짓말장이라는 것 외에는 여러모로 '최종 보스' 로 보기에는 허술한 탓입니다. 그가 주변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피해를 주었으며, 특히 구유 시인이 그 때문에 자살을 기도했다는 건 그다지 설득력있게 묘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구유 시인과 만물박사 모두 이야기를 길게 끌고 나갈만한 캐릭터와 설정은 아니었어요.
이렇게 구유 시인의 <<밤 벚꽃>> 이라는 시집에 관련된 긴 이야기를 축으로 연작 형태로 구성하기 보다는 그냥 주인공 일행과 '해브닝' 손님들 사이에서 일어난 소소한 추론만으로 끌고 가는게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니면 긴 연작이 아니라 하나의 단편 에피소드로 처리하던가요. 

그리고 이건 개인 취향일 텐데 불필요한 묘사가 많다고 느껴졌습니다. 호우 시점에서의 독백, 완결되지 않는 과거사, 또 호우가 금단 현상인지 다른 병인지는 모르겠지만 시름시름 앓다가 갑자기 쓰러지기는 등의 묘사가 그러해요. 전후 일본 추리 소설에 봄직한 구태의연하면서도 불필요한 묘사들이라 생각되더군요. 아울러 호우가 넘버원 셔터와 해브닝의 셔터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설정과 묘사도 캐릭터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은 사족이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비교적 읽을만한 추리물이라는데 이견은 없습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조금 독특한, 그리고 읽기 편한 가벼운 일상계 추리물을 찾으시는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단, 앞서 말씀드린대로 묘사와 설정은 상당히 취향을 탈 수 있다는 점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18/05/03

피너츠 완전판 10 : 1969~1970 - 찰스 M. 슐츠 / 신소희 : 별점 3점

피너츠 완전판 10 : 1969~1970 - 10점
찰스 M. 슐츠 지음, 신소희 옮김/북스토리

대망의 시리즈 10권째. 작년에 구입했는데 이제야 읽어보게 되었네요.

이번 권도 지난 권과 마찬가지로 인기 있는 설정과 소재가 많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10년 차 되는 장기 시리즈답게 말이죠. 찰리 브라운의 야구팀, 연 먹는 나무, 루시의 정신 상담, 1차 대전의 격추왕 등등.... 하지만 지루하고 따분하다기보다는 여기에서 또 새로운 재미를 뽑아내는 작가의 솜씨가 놀랍기만 합니다. 찰리 브라운의 비참함이 가중되는 와중에 패자, 상대편을 배려하는 마음씨가 도드라지는 묘사들도 마음에 들고요.

새로운 설정도 몇 개 눈에 뜨입니다. 가장 놀라운 사건은 찰리 브라운의 사랑 빨간 머리 소녀가 이사를 가는 거죠. 이 와중에도 한마디도 못 하는 찰리 브라운의 모습은 그야말로 백미에요. 옆에서 라이너스가 "넌 생전 아무것도 안 해! 항상 제자리에 멍청히 서 있기만 하지! 너 때문에 다들 미치겠다고!"라고 소리 지르는 게 이해가 될 정도로 한심하면서도 너무나 찰리 브라운다워서 피식 웃음을 짓게 만들거든요. 그녀를 생각하며 잠 못 이루며 "절대로 그 애 얼굴을 잊고 싶지 않아, 하지만 만약 정말로 그 애 얼굴을 못 잊는다면 난 미쳐버리겠지... 어떻게 하면 잊을 수 없는 얼굴을 기억할 수 있지?" 라고 독백하는 에피소드도 명편이에요. 찰리 브라운 스스로는 컨트리 음악 가사라고 폄하하지만 상당한 울림을 주는 명대사이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스누피가 '헤드 비글' 이 되며, '우드스탁'의 이름도 처음으로 등장하고 스누피의 소설이 "어둡고 폭풍우 치는 밤이었다" 뒤로 제법 길게 이어지는 등의 이야기들도 새로왔어요.

가끔 등장하는 시대를 느끼게 하는 묘사들도 여전히 좋습니다. 당대 유명 스포츠 스타와 유명 인물들에 대한 언급, 모병제가 아니라 징병제였던 시대에 대한 묘사, 버트 바카락의 "Raindrops keep falling on my head" 노래 가사가 그러하죠. 야구 시합에서 라이너스의 제안 - "발한 작용의 증가에 따른 나트륨과 물의 손실은 체내의 순환 혈액량을 감소시키고 궁극적으로 순환계를 망가뜨리게 마련이지. 찰리 브라운, 우리의 문제는 '저나트륨혈증' 이야! - 으로 스포츠 음료를 도입하는 에피소드도 마찬가지고요. 당시 메이저리그 팀에서 애용되고 있다고 언급되니까요. 몇 권 더 출간되면 제가 태어난 해가 되는데 어떤 이야기들이 등장해서 반가움을 안겨줄지 벌써부터 두근두근합니다.

이렇게 팬이라면 즐길 수 밖에 없는, 재미 가득한 작품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를 좋아하신다면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