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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31

2015 내 블로그 리뷰 총결산

2014 내 블로그 리뷰 총결산

12차, 열두번째 블로그 결산 보고입니다.
2015년 읽은 책 중 리뷰를 남긴 책은 추리 / 호러 장르문학 52 (48)권, 기타 장르문학 10 (11)권, 역사서 12 (19)권, 디자인 및 스터디 도서 5 (5)권, Food 및 구루메 관련 도서 7 (10)권, 기타 도서 21 (17)권으로 모두 107 (110)권입니다. (괄호는 작년)
작년에 워낙 많이 읽기는 했지만 올해도 나쁘지는 않군요.

참고로, 하기 베스트 - 워스트는 올해 발표된 작품 기준이 아니라 제가 올 한해 보고 읽은 것들 기준입니다.

2015년 베스트 추리소설 :
<대프니 듀 모리에>
단평 : 일상 속 기이한 사건과 우연들을 다룬 고전 걸작들. 단편이란 이런 것이다.
올해 추리, 호러 장르물 중 별점 4점 이상 작품은 세편입니다 <소름><특별요리>, 그리고 이 작품이죠.
<소름>과 <특별요리>는 이전에 읽었었고 그 당시에도 별점 4점 이상을 주었던 작품이기에 이 작품을 올해의 베스트로 꼽습니다.

2015년 워스트 추리소설 :

<데인가의 저주>
단평 : 오래되기만 했을 뿐, 작가 명성을 파먹고 사는 좀비.
2015년에는 별점 2점 이하의 작품이 무려 16편입니다. 어찌된 것이 매년 작품들 수준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52권 읽었는데 16권이면 1/3이나 평균 이하였다는 이야기잖아요?
그 중에서도 최악인 별점 1.5점짜리도 무려 일곱편이나 됩니다. 그 중 <명탐정 따위 두렵지 않다>는 팬픽이라 논외로 치고, <미스테리아 1호>는 잡지인데다가 볼만한 기사도 있기에 제외, <나를 아는 남자>는 핵심 트릭만큼은 나쁘지 않았기에 제외하면 아래 작품들이 워스트 후보가 됩니다.
<또다시 붉은 악몽><잠자는 숲><마술은 속삭인다>, <데인가의 저주>
다 별볼일 없고 괘씸하기는 매한가지이지만 그래도 딱 한 편을 꼽자면 <데인가의 저주>를 꼽겠습니다. 해밋의 대표작이 왜 몇편 언급되지 않는지, 왜 당시 "펄프 픽션"이라고 불렸는지 등을 잘 알게 해 주는 지루한 망작이었습니다. 제가 고전을 좋아라 하기에 이런 지뢰가 터지기는 하는데 상처가 크네요.

2015년 워스트 기타 장르문학 :
<펠루시다>
단평 : 이에 비하면 현대의 양판소는 삼국지 레벨일 듯.
올해 기타 장르문학은 대체로 고만고만해서 딱히 베스트를 꼽기는 어렵습니다. 허나 워스트는 확실합니다. 바로 이 작품 <펠루시다>죠. 유치하고 조잡할 뿐더러 완성도까지 낮은 싸구려 모험물이에요. 작가 스스로도 아무런 생각이 없지 않았나 싶네요.

2015년 베스트 역사 도서 :
<부르주아의 유쾌한 사생활>
단평 : 재미와 소장 가치 모두 최고! 이런 책은 사야죠.
역사 관련 책은 좀 가려 읽는 편이기에 항상 평타는 칩니다. 때문에 워스트는 딱히 없네요. 별점 4점짜리 베스트 후보도 이 책과 <100대 유물로 보는 세계사> 두권이나 되고요. 두권 모두 추천작이지만 공동 수상을 남발하는 연말 방송 연예대상도 아닌만큼 이 책을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보다 저렴하고 도판이 충실하다는 이유일 뿐, 책의 가치가 크게 차이 나지는 않습니다.

2015년 베스트 디자인 / 스터디 도서 :
<안자이 미즈마루>
단평 : 안자이 미즈마루의 팬에게는 보석과도 같은 책
올해 디자인 / 스터디 도서의 리뷰는 5편 뿐이지만 별점 4점짜리가 무려 2편이나 존재합니다. 이 책과 하라 켄야의 <포스터를 훔쳐라>죠. 이 책을 베스트로 꼽은 것은 팬심과 수록된 작품들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는 이유 뿐,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좋은 책들이에요.

2015년 워스트 디자인 / 스터디 도서 :
<젊은 목수들 : 일본의 새로운 가구 제작 스튜디오를 찾아서>
단평 :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책인가?
별점은 1.5점. 리뷰를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정말로 별로였습니다. 내용, 편집 및 디자인 모두 말이죠.


2015년 베스트 기타 도서 :
<클로디아의 비밀>
단평 : 재미와 교훈 모두를 잡은 최고 수준의 아동 문학
올해의 베스트 기타 도서는 미야자키 하야오도 추천한 이 작품입니다. 흠 잡을 데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해요. 제 딸이 빨리 커서 이 작품을 읽을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2015년 워스트 기타 도서 :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단평 : 제목과는 정 반대로 작은 책방의 미래에 대해 좌절감만 안겨준다.
올해 별점 1.5점짜리 후보는 이 책과 <2차 대전 독일의 비밀 무기>입니다. 모두 평균 이하이긴 하나 <2차 대전...> 은 그래도 건진게 약간이나마 있기에 이 책을 올해의 워스트로 꼽습니다.


결산평 :
총 독서 권수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100권을 넘겼으니 이 정도면 취미인으로 할만큼 한 해라 생각되네요. 올해 드디어 블로그 방문자도 100만명을 돌파했고 말이죠.
줌 닷컴에 인수 된 후 뾰족한 서비스의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 불만인데 뭐 그래도 쌓인 정이 깊으니 어쩌겠습니까. 별 탈 없이 오래오래 가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아울러 제 미미한 블로그에 들러주시는 여러분들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성취하시는 한해가 되셨으면 합니다. 제 블로그를 들러주실 정도라면 남들이 관심갖지 않는 사소하고 디테일한 것들에도 관심을 가지시는, 정말로 세심한 분임이 분명할테니 내년에는 더욱 잘 되실거에요. 사랑합니다~!

2015/12/29

부르주아의 유쾌한 사생활 - 이지은 : 별점 4점

부르주아의 유쾌한 사생활 - 8점
이지은 지음/지안

이전에 재미있게 읽었던 <귀족의 은밀한 사생활>의 후속작. 제목 그대로 귀족 이후 시대라 할 수 있는 1800년대 후반 ~ 1900년대 초반에 걸친 부르주아 계급의 문화와 유행을 다루고 있는 문화 - 미시사 서적.

구도시에서 도시 계획에 의거, 근대도시 파리로 진화하는 '현대 도시의 발명 - 모던 라이프' 에서 시작하여 총 10개의 목차로 구분됩니다. 각 주제별로 주제를 대표하는 당대의 그림으로 시작하여 자세한 자료, 도판과 함께 설명하는 방식은 전편과 같습니다.
그런데 전편은 유명 그림과 그림 속 등장하는 소품에 대한 설명에서 시작한다면 이번에는 다루는 주제가 훨씬 광범위해요. 단순 소품이나 골동품보다는 '문화'와 '시대' 그 자체 - 파리의 도시 계획에 근거한 정비 사업, 기차 시대의 도래, 백화점의 탄생 등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의 역동적인 변화 - 를 다루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왕과 귀족 중심의 예술과 문화가 일반인까지 확대된 시점을 다루고 있으며, 그들이 '유행'을 만들고 '시대'를 중세와 근대에서 점차 현대로 바꾸어 나가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죠.

단순 시대상 외에도 저자의 주특기 분야인 디테일한 소품들 역시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도시 계획에 의해 탄생한 새로운 거주 문화와 함께 당대 유행했던 가구들을 소개한다던가, 백화점을 설명하면서 당시 백화점 팜플렛 등을 통해 당시 생활 풍습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식이에요. '자포니즘'을 다룬 꼭지가 대표적인데 대관절 어떤 경위로 일본 물품이 유행했으며 당대 문화에 어떻게 녹아들었는지를 여러가지 그림, 소품 등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줍니다. '공작새의 방' 설명이 개중 백미에요. 유명 수집가 레이 랜드의 의뢰로 당대의 유명 화가 휘슬러가 직접 인테리어를 한 방으로 둘 사이가 틀어진 뒤 지금은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원형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고 하는 후일담까지 모두 재미있었어요. 도판만 보아도 아주 근사하던데 꼭 한번 실물을 보고 싶더군요.

또 우리에게도 친숙한 그림들이 대거 등장하여 설명을 돕는 것도 아주 좋았던 점입니다. 르느와르의 <보트 파티에서의 오찬>이라던가 <라 그러누이에르>가 기차 시대의 개막과 엮여 소개되는 것이 그러해요. 주말 휴양지에서의 여흥은 기차가 개통되어 파리 외곽이 유원지로 개발된 시대상과 맞물린다는 것인데 이러한 내용을 이만큼 잘 알려주는 도판이 따로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인상적이었거든요. 교과서에 도입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여성들에 대해 서술하면서 마네, 드가, 로트렉의 작품을 통해 보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든 '인상파 여자를 그리다' 항목도 마찬가지입니다. 작품들이 친숙해서 설명이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느낌일 뿐더러, 당대의 섹스 심벌이라고 불리었던 메리 로랑의 일대기나 <나나>의 모델 발테스 드 라 비뉴 등의 일화는 너무 재미있어서 말 그대로 지하철 정거장을 지나칠 정도였어요.
그 외 식당 문화를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어떻게 현대 프랑스 요리가 탄생했는지 당시 어떤 요리가 서비스 되었는지, 식문화는 어땠는지를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으며 백화점, 만국 박람회는 그야말로 소개 정도에 그치지만 소재가 흥미로와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아울러 백화점 여직원들의 가혹한 근무환경, 만국 박람회의 한국관 같이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가 섞여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요.

마지막으로 책의 편집도 아주아주 마음에 듭니다. 근거가 되는 참고 도판이 글의 설명과 분리되지 않고 어떻게든 한 장으로 구성되어 있거든요. 덕분에 페이지를 넘기지 않아도 됩니다. 아, 이게 당연한 것일텐데 고맙기까지 하다니...

프랑스 중심으로만 서술된 근대 역사라는 한계는 분명 존재할테고, 마지막 꼭지인 '19세기의 종언 카몽도'는 드라마로서는 재미있지만 내용은 책의 주제와는 많이 동떨어져 있습니다. 일부 내용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요. 그래도 재미와 자료적 가치 모두 뛰어난 책임에는 분명해요. 미시사 서적이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걸까요? 별점은 4점입니다. 이런 책을 소장해야지 안그러면 무슨 책을 소장하겠습니까. 지금 절판 상태이기는 한데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겠죠.

2015/12/26

클로디아의 비밀 - E.L 코닉스버그 / 햇살과 나무꾼 : 별점 5점!

클로디아의 비밀 - 10점
E. L. 코닉스버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비룡소

"비밀은 안전하면서도 한 사람을 완벽하게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 로트와일러 부인의 말.

가족 안에서 자신이 대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가출을 결심한 클로디아가 벌이는 1주일간의 모험 이야기.
전에 말씀드렸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동화책 추천 목록에서 보고 찜해 두었던 책으로 모처럼 시간이 나서 읽게 되었는데 역시나, 아주 즐겁고 재미있는 작품이었습니다. 누가 읽어도 추천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죠.

일단 단순한 가출 이야기를 '모험물'로 끌어올리는 설정과 전개의 힘이 참으로 탁월합니다. 특히나 가출해서 숨어지내는 곳이 미술관이라는 설정이 대박이에요. 미술관에서 보내는 일주일 간, 빠듯한 예산 안에서 뭘 먹고, 어디서 씻고, 어떻게 숨어 지내는지에 대한 디테일이 아주 설득력있고 재미나게 묘사되거든요.
또 이 설정 덕에 천사 조각상을 정말 미켈란젤로가 만들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 역시 마음에 듭니다. 조각상 바닥의 음각된 표식을 발견한 뒤 한번의 좌절을 거쳐 로트와일러 부인과의 승부를 펼치는 마지막까지 아주 흥미진진한 것은 물론, 아동 문학으로서 꼭 필요한 '성장기' 로의 역할에도 충실하기 때문이에요. 클로디아가 '날마다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라는 주장을 하며 여러 학습에 참여하는 교훈적인 장면도 괜찮았고요.

아동 모험물로서 주인공들의 매력도 확실합니다. 똑똑해서 계획성이 뛰어나며 행동력도 있는 클로디아와 구두쇠로 재치가 있으며 긍정적인 성격에 나름 승부사적인 기질이 있는 둘째 동생 제이미 컴비의 캐릭터가 아주 생생해요.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약 200 페이지 정도의 적절한 분량이라는 것도 빼 놓을 수 없는 장점이죠.  한 시간 정도면 다 읽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읽다보니 예전에 읽었던 작품이었지만 다시 읽어도 큰 재미를 안겨다 주는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어떻게 된게 기억나는 이야기가 목욕하던 분수대에서 동전 주운 이야기라던가, 사서함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것 같은 이야기 뿐 정작 중요한 미켈란젤로 이야기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기도 했고요. 저도 제이미같은 구두쇠과였기에 그랬던 걸까요?
여튼 별점은 5점! 단점이 없지는 않지만 '아동 문학'으로는 최고 수준입니다. 제 딸이 어서 커서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좋겠네요.

덧붙여, 당연한 이야기지만 1973년, 1995년 두 번이나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1995년 영화 (아래 포스터)는 왕년의 명배우 로렌 바콜이 등장하시네요. 영화로도 보고 싶어집니다.

 




월간순정 노자키 군 6 - 츠바키 이즈미 : 별점 3점

월간순정 노자키 군 6 - 6점
츠바키 이즈미 글.그림/학산문화사(만화)

추석 때 본가에 인사드리러 갔다가 형이 강추하여 덥석 빌려온 만화. 한분기가 지나서야 리뷰를 올리게 되네요. 4컷에 가까운 짤막한 개그가 이어지는 개그만화입니다.

캐릭터에 의존한 개그와 오해와 착각에 기인한 개그로 구분되는데, 이 중 캐릭터 개그는 이런 류의 개그 만화에서는 정석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뭐라 이야기할게 없네요. 190의 장신으로 과묵하지만 그 실상은 월간 연재 순정만화가라는 노자키군, 여학생들에게 인기많은 미남이지만 그 실상은 애니메이션 오타쿠에 수줍음 가득한 미코시바 등등등 비현실적이며 개그만화답게 과장되게 연출되어 있기도 하고요.
그래도 다행히 눈살 찌뿌려질 정도로 억지스러운 설정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특히나 노자키와 주변 친구들이 비교적 뻔한 것에 비해 상식적인 편집자를 주요 인물로 등장시킨 점 하나만큼은 높이 평가하고 싶어요. 조합이야 <아즈망가대왕> 시절 이래 하나도 변하지 않은, 대책없는 어른과 어떻게든 노력해서 도와주려는 어른 컴비이기는 한데 선생님이 아니라는 것이 포인트죠. 그러고보니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인 만화에서 "어른" 역으로 선생님이 등장하지 않는 만화는 거의 처음 본 것 같기도 합니다.

여튼, 캐릭터 개그는 뭐 그냥저냥 평작은 되는 수준인데 오해, 착각에 기인한 개그는 정말 대박입니다. 사쿠라와 노자키 첫 만남에서 노자키가 사쿠라를 자신의 팬으로 오해하는 것에서 시작해서, 로렐라이가 유즈키인지 모르는 사와자키를 활용한 개그라던가 동료 만화가 미요코와 노자키가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들은 미요코 대학 친구들의 오해같은 것이 대표적이에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6권까지는 재미있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항상 이야기하지만 "만화가가 주인공인 만화"는 정말로 재미있네요. 제 평생 실패한 적이 없어요. <바쿠만>이나 <아오이 호노오>가 대박나기 전 부터 저는 알고 있었단 말이죠!

2015/12/25

미스터리 모텔 - 데이비드 매콜리 / 조동섭 : 별점 3점

미스터리 모텔 - 6점
데이비드 매콜리 지음, 조동섭 옮김/마루벌

북아메리카에서 홍보 우편물 발송 요금이 갑자기 내려 사람들이 홍보 우편물 홍수에 매장되고, 이후 공해 물질이 급작스럽게 지상을 덥쳐 지구상에서 가장 컸던 문명이 멸망한다.
그리고  4022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애독자인 하워드 카슨은 우연히 고대국가 유사 (USA)의 1985년 모텔을 원형 그대로 발견한다.


상기 줄거리처럼 하워드 카슨의 발굴 과정과 발견한 유물에 대한 이야기를 정교한 펜화와 함께 소개하는 어른을 위한 그림책. 2000여년 후 현재의 물건을 미래인들이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재치있는 유머와 풍자가 돋보입니다. 모텔 건물과 그곳에서 발견된 모든 물건이 '장례' 의식을 위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는데, 예를 들자면 서랍장과 그 위에 놓인 TV는 신과 연락하는 대 제단, 욕실의 욕조는 도자기 석관, 얼음통에 적힌 ICE는 장례 후 내장을 담았던 ‘내장 동봉’의 약자 ICE (Internal component enclosure) 라고 하는 식이에요. 그냥 봐도 재미있을 것 같지 않으신가요?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변기를 성스러운 항아리, 변기 뚜껑을 성스러운 목걸이라고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뒷받침하는 데이비드 매콜리의 섬세한 그림 역시 높은 가치를 지닙니다. 펜으로만 그려내었는데 디테일이 확실히 살아있는 것이 아주 마음에 들더군요.

또 하워드 카슨이라는 이름부터 하워드 카터를 연상케하며, 이후 미스터리 모텔 발굴에 관여했던 주요 관계자 (하워드 카슨과 해리엇 버튼 등)이 알수 없는 이유로 급작스럽게 사망했다는 후일담 등이 투탕카멘의 무덤 발굴에 대한 패러디 느낌을 주는 것도 재미요소입니다.
그 외 짤막하고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고요.

딱 한가지 문제라면 어린이용 그림책을 연상케 하는 큰 판형입니다. 섬세한 펜화 때문에 판형을 줄이는데에는 한계가 있었으리라 짐작은 되지만 여러모로 좀 아쉽더군요..
그래도 별점은 3점. 그림만 보더라도 충분히 즐거운 책입니다. 어른용 그림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시라면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참고로, 장르를 특정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SF로 봐야겠죠?

2015/12/22

시노부 선생님, 안녕 - 히가시노 게이고 / 김난주

시노부 선생님, 안녕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재인

얼마전 읽고 재미있었다고 리뷰를 남겼던 <오사카 소년 탐정단>의 후속 단편집. 모두 여섯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전편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파견 교육을 떠난 시노부 선생이 여전히 여러가지 사건에 얽힌다는 내용인데 전편의 장점이었던 시끌벅적, 요란하고 유머러스한 분위기는 여전합니다.

그런데 확실히 전편보다는 별로네요. 일단 추리적으로 부실하거든요. 시노부 선생과 제자들이 사건에 얽히는 것도 전편보다 훨씬 작위적일 뿐더러 억지스러운 사건이 많은 것도 영 마음에 들지 않고요. 왠지 모르게 캐릭터들이 조금은 얌전해진 것도 단점이에요. 악동 컴비 하라다와 뎃페이부터가 나이를 먹은 탓인지 전편만 못하더라고요. 마음에 들었던 신도 형사의 연적 혼마도 별로 등장하지 않는 것도 감점 요소고...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저 같이 전편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읽을 수 밖에 없기는 하지만 전편 대비 여러모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완결편으로 더 이상의 후속작은 없다는데 잘한 선택이라 생각됩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하니 참고하시길.

<시노부 선생님은 공부 중>
니시마루 상점의 구두쇠 회장 니시마루 센베가 상점가 대항 소프트볼 시합에서 용병으로 뛴 시노부 선생을 마음에 들어해서 초대한 날, 판매부장 요네오카 자살사건과 맞닥뜨린다는 이야기.

구두쇠 중의 상구두쇠지만 정 또한 넘치는 니시마루 회장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던 소품. 유명한 오사카 상인을 묘사하려 한 것 같네요.
사무실에 PC가 보급되던 시점, PC를 배울 것을 강요하는 사장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느꼈다라는 동기도 괜찮았어요. 제가 디자인과 출신인데 작업에 PC가 도입되기 직전 학번 선배님들이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것을 몇번 보기도 해서 와 닿는 점도 있었고요.

그런데 정작 이야기는 몹시 혼란스럽습니다. 요네오카가 죽은게 자살 시도 때문인지, 아니면 사고사인지 불분명하거든요. 부자연스러운 파일의 존재와 니시마루 센베가 현장을 정리하고 자살로 위장하려 한 것을 보면 사고사같은데, 뒤에서 또 자살 시도를 하다가 떨어졌다고하니 뭐가 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시노부 선생님은 폭주족>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학원을 다니는 시노부 선생이 연수 중 사고를 일으킨 이쿠오의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조사에 나선다는 내용

시노부 선생의 아침 연수를 방해하기 위해 집 앞에 개똥이 단서가 된다는 아이디어는 좋았습니다. 사소한 것의 중요성이야말로 추리소설의 왕도죠!

그런데 이번 이야기 역시 내용이 영 이해가 되지 않아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어요. 피해자 와카모토의 계획부터가 그러합니다. 공범자 고바야시를 죽이기 위해 이쿠오의 어머니를 이용하려 했다? 한명만 죽여도 되는데 두명이나 죽일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리고 차를 들이받는 것으로 사람을 죽이려 했다는 것도 이해불가. 뺑소니가 그렇게 쉬운 범죄는 아니잖아요?
그리고 집 앞에 개똥이 있다고 연수를 포기한다는 것 역시 말이 안되죠. 시노부 선생이 끝까지 연수를 참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운전에 서투르지만 용감하기는 한 시노부 선생의 질주는 코믹하지만 추리적으로 도저히 점수를 줄 부분이 없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도대체 이 짧은 리뷰에 물음표가 몇개인지.....

<시노부 선생님의 상경>
친구 결혼식으로 도쿄로 상경한 시노부 선생이 옛 제자 가족에게 닥친 유괴사건을 해결한다는 이야기.

오사카를 무대로 한 시리즈인데 이례적으로 도쿄 디즈니랜드가 주 무대인 작품.
대형 사건같지만 의외로 이혼 위기에 처한 부모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자녀들의 작전이라는 소재가 괜찮았습니다. 이야기의 주제,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적절한 수준의 소품이라고 할 수 있겠죠.
오랫만에 혼마가 등장하여 식지않은 사랑을 과시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고요. 별점은 3점. 이번 권에서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시노부 선생님은 입원 중>
맹장염으로 입원한 시노부 선생의 같은 방 환자인 후지노 할머니 남편이 당한 강도사건의 진상을 다룬 이야기.

시노부 선생의 옛 제자 하타나카가 주운 위조지폐가 사건과 연결되는 전개는 괜찮았습니다. 진상을 깨닫게 되는 장면, 즉 혼마가 후지노 할머니에게 받은 돈을 꺼내어 보는 장면도 임팩트 있었고요.

허나 작위적인 측면이 강하다는 것은 단점이죠. 위조지폐범이 너무나 어설프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았고요. 설령 소설이기에 이 정도 문제는 눈 감아 준다 하더라도 딱 한가지, 후지노 할머니가 너무나 밉살스러워서 어떻게든 벌을 받았으면 하는데 태연하게 넘어가는건 좀, 아니 많이 불쾌했습니다. 나이가 깡패도 아니고... 거의 범죄에 가까운 행동 (점유물 은닉)을 저지른 것에 대해 꾸중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말이죠! 게다가 혼마는 무슨 죄라고 거금을 날린답니까? 이건 고소감이죠.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 할머니만 응징했어도 0.5점은 더 줬을텐데 아쉽네요.

<시노부 선생님의 이사>
교육을 마치고 학교로 복귀하게 된 시노부 선생이 이삿짐을 꾸리는데, 시노부 선생의 옆집 가족이 살인사건에 연루되어 사건 수사차 나온 신도 형사와 함께 사건에 엮이게 된다는 이야기.

추리적으로는 뭐라 이야기할게 없을 정도로 부실했던 작품. 왜냐면 이 작품은 경찰의 부실 수사때문에 사건이 제대로 풀리지 않은 측면이 강하거든요. 마쓰오카 할머니에 대한 탐문 조사만으로도 안자이 요시코 가족과 그녀와의 관계는 쉽게 알아낼 수 있었을거에요. 이렇게 마쓰오카 - 요시코 - 치즈루의 관계만 알아낸다면 이 사건이 정당방위를 위장한 살인사건이라는 것을 파악하기는 어려운게 아니니까요. 한마디로 범인에 대한 기본적인 수사조차 하지 않은 것이라 변명의 여지가 없어요.

세상에 인정이 살아있다는 결말은 괜찮았습니다만 점수를 줄 만한 부분은 거의 없군요. 별점은 2점입니다.

<시노부 선생님의 부활>
다시 초등학교 선생으로 복귀한 시노부 선생. 그러나 새로 담임을 맡게 된 분부쿠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은 직전 담임인 야마시타 선생에 대한 그리움이 강하다. 야마시타 선생이 학교를 그만둔 이유는 뜀틀에서 시부야가 사고를 당했기 때문. 그래서 다른 아이들 모두 시부야를 싫어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나 세리자와 쓰토무는 이지메에 가깝게 아이를 괴롭히는데....

야마시타 선생의 과거 사진을 시노부 선생이 '우연히' 찾아본 것이 사건 해결의 계기가 되었다는 점은 작위적인 이야기 전개의 극치죠. 사고 직전 시부야 준이치가 목격한 아주머니의 노란 가방이 독자에게 공정히 제공되지 않는 것도 문제고요. 이래서야 제대로 된 추리물이라고 하기 어렵죠.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시부야와 반 아이들이 하나가 된다는 마지막 장면도 완전 별로였습니다. 청춘 학창 드라마스러운 결말인데 갑작스럽고 뜬금없어서 작품과 잘 어울리지 않았거든요. 시노부 선생이라면 세리자와에게 꿀밤이라도 먹여서 정신차리게 만드는게 더 어울리잖아요?

신도 형사의 프로포즈에 대한 시노부 선생이 1년만 기다려 달라는 답변이 여운을 남기나 전체적인 완성도는 그닥이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이로써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데 끝낼 때 잘 끝낸것 같긴 합니다. 후속작이 없다는 것이 그닥 아쉽지는 않네요.

2015/12/20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별점 3점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현대문학

수십년 전, 80년대 초반 고민 상담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빈집이 된지 오래인 나미야 잡화점에 3인조 빈집털이들이 숨어든다.
그런데 잡화점에 고민 상담을 위한 편지가 들어오고 3인조는 상담에 응하면서 알 수 없는 이유로 현재의 나미야 잡화점이 1980년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히가시노 게이고일상계 판타지 작품. 모두 5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베스트셀러로 알고 있는데 읽어보니 역시나 정말 재미있더군요. 3인조 어설픈 빈집털이범들이 잠시 몸을 피하기 위해 숨어든 잡화점에서 고민 상담글을 받은 뒤, 그 공간이 30여년전의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첫번째 이야기부터 눈길을 사로잡아 마지막 이야기까지 정말 숨돌릴 틈 없이 읽을 정도였어요.
사실 특정 공간이 시공을 초월해 연결된다는 아이디어는 그동안 많이 있어 왔습니다. 편지가 시간을 넘어 전달된다는 이야기는 <시월애>와 똑같고요. 하지만 이 작품은 5편의 이야기 속 등장 인물과 시대 배경이 거의 모두 다르지만 나미야 잡화점 고민 상담과 아동 복지시설 "환광원"을 중심으로 하나의 연결고리를 가진다는 독특한 구성으로 차별화하고 있죠.

상담이 중심인 작품답게 상담 과정의 디테일도 눈여겨 볼 만 합니다. 특히 상담이 일종의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과정'에 기초한다는 것은 나쁘지 않았어요. 의뢰인이 상담 결과에 따르던, 따르지 않던 모두 나름의 행복을 찾는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상담은 참고일 뿐 답은 결국 자신이 찾아가야 한다는 것인데 상당히 와 닿더군요.

아울러 개인적으로는 80년대 배경의 이야기가 많은 것도  마음에 들었어요. 사잔올스타즈의 음악 등의 세부 묘사는 아련하면서도 추억을 불러 일으켰으니까요.

그러나 마음에 들지 않는 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건 3인조 얼치기 범죄자들이 1장, 2장, 5장에 걸쳐 주요 상담자로 등장하는 거에요.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얄팍한 상담글들이라 감동이나 깊이를 느끼기 힘들었거든요. 상담이 성공하는 것(?)도 애초에 미래를 알고 있기에  - 일본은 모스크바 올림픽에 참가할 수 없다, 가쓰로는 사고로 죽지만 명곡을 남긴다, 일본의 버블경제가 80년대 시작되어 90년대 시작될 때 끝난다 - 가능한 것들 뿐이기도 하고요. 이래서야 제대로 된 상담은 아니죠.
이에 반해 4장에서의 나미야 할아버지의 직접 상담은 따뜻한 애정과 진지한 고민이 묻어나 확실히 비교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4장의 이야기만큼은 별점 5점을 줘도 될 만큼 마음에 들었어요. 상담에 따르지 않고 부모를 떠난 고스케가 나미야 잡화점 부활의 날에 동네를 방문한 뒤 우연찮게 부모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게 되고, 그 뒤 감사편지를 쓰는 장면에서는 울컥할 수 밖에 없었고 이러한 이야기를 비틀즈와 영화 와 엮여 풀어나가는 솜씨 또한 너무나 탁월했기 때문이에요. 70~80년대 감성에 더해진 감정을 건드리는 디테일한 묘사는 흡사 무라카미 하루키를 연상케 하더군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단점이 없지는 않지만 새롭지만은 않은 설정을 자신만의 아이디어로 변주하고 새롭게 풀어나간 솜씨는 탁월하며 읽는 재미만큼은 충분한 수작입니다. 잘 팔리는 작품은 역시나 이유가 있네요. 가슴 따뜻해질 읽을거리를 찾으시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이야기별 간략한 요약 및 이야기별 연결고리는 아래에 설명드립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하니 읽으시기 전 참고하세요~

제1장 답장은 우유 상자에
얼치기 빈집털이 3인조가 잠시 숨어지내기 위해 찾아든 빈집 "나미야 잡화점". 그곳에서 우연찮게 "달토끼"라는 닉네임의 의뢰인의 상담글을 받은 뒤, 나미야 잡화점이 뒤틀린 시간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고 상담에 응하게 된다.

의뢰인의 고민은 암에 걸린 연인을 간호할 것인가, 아니면 둘의 꿈이었던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노력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어차피 일본이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것 (보이코트)을 알기에 연인 옆에 있기를 강조하는 3인조의 답변에도 불구하고 의뢰인 달토끼는 꿈을 위해 노력하고 결과를 받아 들인 뒤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된다는 결말로 이야기의 시작으로는 충분히 재미있었습니다. 3인조와 달토끼 사이의 오가는 편지도 상당한 긴장감을 전해주고요. 무엇보다도 3인조의 답과는 다르게 자신만의 결심을 굳히고, 결국 모든 것을 잃었지만 (올림픽 선수 선발 탈락과 연인의 죽음) 오히려 스스로 더욱 값진 것을 얻었기에 감사한다는 달토끼의 말이 짙은 여운을 남깁니다.

제2장 한밤중에 하모니카를
3인조가 아니라 가수지망생 가쓰로 (생선 가게 예술가) 시점의 이야기. 그의 고민은 가수가 되고 싶지만 이런저런 현실의 벽에 부딪혀 있다는 것이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라는 명제에 어울리는 이야기랄까요? 뭔가 세상에 남겼다면 그 자체가 의미있는 삶이었다는, 약간은 고전적인 사상이 담긴 이야기였습니다. 본인이 뭔가를 남긴다는 자각이 있었을 것 같지 않고 남겨진 가족들의 슬픔이 더 클 것 같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긴 했습니다만, 뭐 이런 삶도 있는 것이겠죠.

참고로 작품 전체의 관계도로 보자면, 1장의 3인조가 환광원 출신인데 2장의 가쓰로가 작곡한 노래가 환광원 출신 유명 가수 세리가 부른 노래의 오리지널이고, 가쓰로는 환광원 화재 당시 숨을 거두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3인조는 환광원 출신이라 잘 알고 있었기에 음악을 듣기 전에는 현실적이고 신랄하게 답변하지만 (배부른 소리 하지 마라!) 듣고난 후에는 전력으로 상담에 응하죠.

제3장 시빅 자동차에서 아침까지
나미야 할아버지와 아들 다카유키의 이야기.

나미야 할아버지는 자신이 상담한 미혼모의 사고사를 접하고 낙담하나 죽기 직전 나미야 잡화점이 시공을 초월해서 연결된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상담한 사람들에게 감사 편지를 받는데 그 중 미혼모가 낳은 아이의 편지를 통해 안식을 얻게 된다는 내용.
나미야 할아버지의 인격이 묻어나는 좋은 이야기. 잔잔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야기 중 가장 시공 이동을 잘 활용한 작품이기도 하고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작품 관계도로는 여기서 나미야 할아버지가 백지 편지에 대한 상담글을 쓰는데 이 백지 편지는 5장에서 3인조가 시험삼아 넣은 편지입니다. 미혼모가 낳은 아이는 환광원 출신으로 2장에 등장하는 유명가수 세리의 친구이자 현재는 그녀의 매니저고요.

제4장 묵도는 비틀스로
비틀즈 매니아 폴 레논 고스케가 야반도주하는 가족으로부터 도망치는 이야기.

앞서 말씀드렸듯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 오사카 만박이 열리고 비틀즈가 해체한 1970년대를 무대로 하여 비틀즈 매니아인 주인공 고스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배경 묘사도 좋지만 고스케 (폴 레논)의 고민에 대한 나미야 할아버지의 답글이 정말로 심금을 울립니다. 저 역시 아이 하나를 키우는 가장이기에 더욱 와 닿았던 것 같아요. '온 가족이 같은 배에 타고 있기만 하면 언젠가 함께 올바른 길로 돌아올 수 있다. 아무리 현실이 답답하더라도 내일은 오늘보다 멋진 날이 되리라.' 맞아요.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는 법. 가족은 아무리 힘들더라도 한 배에 타고 계속 항해해 나가야죠.

관계도로 보자면, 고스케가 위탁된 보육시설은 당연히 환광원, 환광원 화재 사건때 5장의 주인공 하루미를 만나게 됩니다.

제5장 하늘 위에서 기도를
환광원 출신의 하루미가 성공하는 내용. 그녀는 3인조의 예언으로 큰 돈을 벌게 됩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작품인데 하루미를 주인공으로 한 성공담과 3인조의 성장, 백지에 대한 나미야 할아버지의 답변 - 백지이기에 모든 것은 너 마음먹기에 달렸다 - 은 너무 뻔해서 좀 지루합니다.
그래도 하루미와 3인조가 결국 엮이고, 3인조가 나미야 할아버지의 편지를 받는 대단원까지 깔끔하게 이어지는건 괜찮더군요.

관계도로는 하루미는 1장의 상담자 시즈코의 이웃사촌이자 3인조 강도행각의 피해자입니다. 또 환광원의 설립자와 나미야 할아버지가 과거의 연인이었다는 연결고리가 밝혀지며, 3장에서 쓴 나미야 할아버지의 백지 편지 답변을 3인조가 받게 됩니다.

2015/12/18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 가쿠다 미츠요 / 염혜은 : 별점 2.5점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 6점
가쿠타 미츠요 지음, 염혜은 옮김, 모가미 사치코 그림/디자인하우스

일본의 여류 작가 가쿠타 미츠요의 에세이집. 작가의 작품은 단편집 <죽이러 갑니다>를 읽어보았는데 소소한 일상 속 디테일한 묘사가 마음에 들었더랬죠.

작가의 일상 속, 추억 속 요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작가가 어렸을 때에는 너무나도 편식이 심해서 못 먹는게 많았는데 서른살 즈음에 편식을 고치기로 결심한 후 이것 저것 먹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맛에 눈뜨게 되었다는 내용이 많더군요. 꼭 편식 때문은 아니더라도 어렸을 때에는 못 먹다가 나이 들어서 먹게된 음식은 누구나 있겠지만 이 작가는 그 정도가 정말 너무 심하더라고요. 거의 대부분의 야채, 생선을 안 먹은 듯 하니 어련하겠습니까.
아울러 요리 에세이기에 등장하는 간단한 레시피들도 충분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중 제가 해 보고 싶은 레시피 몇개만 소개합니다.
  1. <사랑스러운 햇양파> 얇게 썬 햇양파에 가다랑어포를 얹어 간장을 뿌린 간단한 안주. 저자의 친구가 만들어 준 술안주.
  2. <화이트 아스파라거스가 가져온 혁명> 판세타 (이탈리아식 베이컨)를 볶고 가볍게 데친 화이트 아스파라거스를 파스타 냄비에 넣은 다음 파스타와 생크림을 더해서 만드는 간단한 레시피.
  3. <세계 감자 여행> 리투아니아의 감자 팬케이크. 얇게 채 썬 감자를 어떻게 했는지 잘 간추려서 둥글게 만들어 구웠는데 그냥 먹어도 좋고 사워크림이나 이크라를 얹어 먹어도 잘 어울림.
  4. <연근 철학> 조금 두껍게 연근을 썬 뒤 양면에 가볍게 녹말을 묻히고 올리브 오일을 넉넉히 두른 후 천천히 튀기듯 볶는 요리. 연근이 투명해지면서 양면이 모두 약간씩 갈색으로 그을렸을 때 맛있는 소금을 뿌려 먹는다.
그 외, 본인이 접한 정보와 이야기를 엮는 솜씨도 눈여겨 볼만 했어요. '죽순을 삶을 때 잡냄새를 동백나무 잎으로 없앨 수 있는데 근처에 동백나무가 없고, 있어도 남의 잎을 슬쩍할 수가 없어서 삶아놓은 죽순을 사련다.' 라는 이야기가 대표적이겠죠.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어떤 이야기는 공감하면서, 어떤 이야기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면서 읽는 그런 책입니다. 한편 한편이 짤막한덕에 쓱쓱 읽기도 쉽워 주말을 보내기에 아주 좋더군요. 요리 관련 에세이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2015/12/16

책과 집 - 데이미언 톰슨 / 정주연 : 별점 2점

책과 집 - 4점
데이미언 톰슨 지음, 정주연 옮김/오브제(다산북스)

제 취미는 독서입니다. 대단하지는 않지만 가지고 있는 책도 제법 되고요. 이사를 계획 중인데 서재를 꾸미는데 관심이 많던 차에 보게 된 책입니다.

일단, 정말 제목에 충실하긴 하더군요. 책을 어떻게 보관하면 좋을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거든요. 그것도 서재, 책꽂이 탐구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부엌, 계단, 침실 등 집안 내 전 공간을 아울러 책 수집가들의 자택 위주로 좋은 사례들을 충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진의 비중이 높아서 다 읽는데 채 한시간도 걸리지 않는다는 것도 장점이 될 수 있을 테고요.

허나 한국 실정에는 전혀 맞지 않는 책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널찍하고 천장높은 집, 벽난로와 굴뚝 흔적이 남아있는 오래된 주택, 주인이 마음대로 내부를 시공할 수 있는 경우에 어울리는 사례들이 대부분이에요. 소개된 가구들의 가격도 만만치 않아 보이고요. 왠만한 부자가 아니라면 이 책에 나오는 것 처럼 서재를 꾸미는 건 아무래도 무리겠죠....

그래서 별점은 2점. 현실적이지 않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이 책의 가치라면 그냥 짧은 시간이나마 눈이 좀 호강한 것 뿐입니다.

2015/12/15

금단의 팬더 - 타쿠미 츠카사 / 신유희 : 별점 2점

금단의 팬더 - 4점
타쿠미 츠카사 지음, 신유희 옮김/끌림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리사 코타는 아내 아야카의 친구 미사의 결혼식에 참석한다. 미사의 결혼 상대는 퀴진 드 듀의 주인이기도 한 나카지마의 손자 기노시타 다카시. 그 덕분에 코타는 피로연에서 지고의 요리를 맛보게 된다.
그 뒤 기노시타 가문 회사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마츠노 쇼지가 시체로 발견되고, 사장 (다타시의 아버지) 요시아키도 실종된다. 경찰은 나카지마의 유산에 관계된 사건으로 의심하나 현경의 아오야마는 밀수에 관계된 것이라는 혼자만의 결론을 내리고 독자적인 수사에 착수하는데...


2008년 고노미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공모 대상 수상작.
미식 미스터리라는 별칭에 걸맞는 음식과 맛에 대한 묘사 하나만큼은 발군입니다. 코타가 결혼식에서 처음으로 퀴진 드 듀의 셰프 이시구니의 코스 요리를 맛볼 때의 묘사, 그리고 코타의 가게 '비스트로 코타'에 갓 나카지마와 이시구니가 방문했을 때 묘사 이렇게 두번이 개중 백미인데 정말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탁월하게 묘사되었어요.

그러나 그 외에는 전반적으로 별로네요. 특히나 고노미스 대상작이라고 보기에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추리적으로는 너무나 별볼일 없었습니다. 같은 대상 수상작이었던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은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죠.
일단 이야기부터가 너무 뻔해요. '워싱턴 조약에 위배되는 불법적인 재료를 조리한 미미극식회라는 모임이 있다', '그 어떤 재료를 가지고도 훌륭한 요리를 만들어 내는 천재 요리사 이시구니', '나카지마 가문의 주변 인물들이 한명씩 실종된다. 그것도 성별 나이 순으로...' 이 세가지를 더하면, 별다른 결론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풀어내는 과정 역시 별볼일 없기는 마찬가지로 아오야마가 처음에 가졌던 혐의를 증명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곤 성당에 침입하여 조사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수사 과정도 아오야마 덕에 짜증나는 심문과 사정 청취가 전부일 뿐 특별한게 없어요. 딱 하나, 아야카의 옥션 등록 이야기를 복선처럼 활용한 것 하나만큼은 괜찮긴 했습니다. 너무 자주 등장해서 속이 다 들여다 보이기는 했지만요...
진상 역시 앞서 말했듯 뻔하기에 독자는 모두 다 알지만 주인공들만 모르는, 기묘한 상황에 처하는데, 이 점은 여태까지 제가 알고 있던 추리소설의 정의를 근본부터 흔들긴 했습니다. 독자를 어떻게 속여넘길까를 궁리하는게 아니라 독자에게는 전부 알려주면서 등장인물만 모르게 하다니! 완벽하게 주객전도된 느낌이 들더라고요.

아울러 음식, 맛에 대한 묘사를 빼면 다른 묘사는 진부하고 별볼일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특히나 탐정역인 현경의 아오아먀 캐릭터는 정붙이기 힘든, 자기 멋대로에다가 예의는 찾아볼 수도 없는 재수없는 인간으로 묘사되어 영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보다 압도적으로 표현되었어야 할 뱅상 신부와 갓 나카지마 역시 그냥 말 많은 악당으로만 보일 정도로 피상적인 묘사에 그치고 있기도 하고요. 특히나 미식에 대한 집착이 대단한 나카지마에 비해 그냥 "젊어지기 위해" 인육을 먹으려 한다는 뱅상 신부의 동기는 전혀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직업 의식에 충실한 이시구니가 그럴 듯 하나 여러모로 포스가 부족했어요.

그래도 여태까지 제가 보아왔던 그 어떤 동일 설정의 작품을 능가하는 부분이 하나 있기는 합니다. 그것은 바로 앞서 말씀드렸던, 실제 요리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이 구역질나는 진상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는 것이죠. 구태여 비교하자면 <특별 요리>를 코스테인 시점이 아니라 스비로스 시점으로 그려낸 작품이랄까요? 이러한 시도는 비교적 참신했다고 보여지네요.
또 요리를 시험해 본 이시구니의 결론 - 인육은 냄새가 강하다. 숙성시키면 그 냄새가 더 심해진다. 가능한 한 신선하고 어린 고기를 사용하는게 제일이다. 특히 남자 고기는 냄새가 나고 딱딱하다. 여자 고기 쪽이 질이 좋고 냄새도 적고 부드럽다. - 덕분에 기노시타 요시아키 - 나카지마 유리 - 기노시타 미사 - 시바야마 아야카로 이루어지는 유괴의 연계가 설득력을 갖추게 된다는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 물론 인육이 아니라 모든 고기에 다 해당되는 이야기이긴 하죠? '애저찜' 이라는 요리도 있으니)
그리고 요리사 코타가 요리사로서의 호기심과 인육이라는 재료의 매력에 굴복하여 페이스트 (혹은 퐁)에 스푼을 꽂는다는 마지막 묘사도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어떻게 보면 요리사이기에 쓸 수 있었던 결말이 아닌가 싶어요.

마지막으로 주 무대가 고베인데 주요 등장인물 몇명이 제대로 된 사투리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아주 마음에 든 점입니다. 이전 <오사카 소년 탐정단>  리뷰에서 사투리를 사용한 번역만으로도 현장감이 느껴졌을텐데 그런 배려가 아쉽다고 적었었는데 역시나, 사투리로 번역하는게 훨씬 좋아요! 누가 토박이이고, 누가 좀 재수없는지 등 캐릭터마저도 살아나는 느낌이었습니다. 고베에 대한 상세한 풍경 묘사는 약간 여정 미스터리 느낌도 들게 해 주었고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뻔한 설정에 추리적으로는 특별한게 없기에 감점합니다. 허나 뻔한 설정을 실제 요리사인 작가가 자신의 전문분야를 살려 차별화한 점 하나만큼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덧붙이자면, 제목은 영 이해가 안되는군요. '팬더'가 대나무를 먹게 된 것은 타의에 의해서가 강하고 원래 육식을 좋아하는 동물이었다라는 이야기를 가지고 금기되는 음식을 먹는 행위를 설명하려 하는 것 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팬더가 팬더를 먹었기 때문에 벌을 받았다라는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은 순전한 작가의 창작일 뿐이니까요.

2015/12/13

나는 예술가로 살기로 했다 - 에릭 메이젤 / 안종설 : 별점 2점

나는 예술가로 살기로 했다 - 4점
에릭 메이젤 지음, 안종설 옮김/심플라이프

'창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고민 해결 프로젝트'라는 부제를 가진 책. 별다른 정보 없이 창작하며 산다는 것에 대해 알려준다기에 읽게 되었습니다.

내용은 창작하는데 문제가 생긴 여러 사람들 - 전업 작가나 화가도 있고 전업을 꿈꾸는 직장인도 있는데 - 이 저자에게 고민 상담을 하고, 저자가 그에 대해 간단하게 코칭을 해 준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코칭 내용이 정말 별거 없어요. 창작 비법이나 발상력에 대한 크리에이티브한 비결도 없고요. 아침에 아주 잠깐이라도 창작하는데 할애해라, 실현 가능하고 최대한 단순하게 목표를 정해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표를 작성해라, 현재 생긴 문제에서 너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만 적어보아라, 정확하게 문제점이 무엇인지 적어보아라 등등등, 그냥 집에서 엄마가 할 법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죠.

때문에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창작하다가 벽에 부딪히게 된다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읽어볼만한 책이긴 합니다. 짤막하다는 것도 장점이고요. 그러나 창작에 크게 도움이 되는 책은 아닙니다. 점수를 줄 부분이 많지 않지만 그래도 무언가 창작하려면 일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시작하는게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기에 별점을 조금 더 얹어봅니다.

2015/12/11

불멸의 탐정, 셜록 홈즈 - 김재성 : 별점 3점

불멸의 탐정, 셜록 홈즈 - 6점
김재성 지음/살림

치과의사이자 추리 소설가, 아동 문학가인 김재성씨가 쓴 셜록 홈즈 가이드북. 살림 지식 총서의 489번째 책입니다.

살림 지식 총서는 특정 주제를 설명해주는 목적에는 충실하지만 100페이지 조금 넘는 분량으로 해당 주제에 대해 살짝 건드리는 수준에 그치는 것들이 많았죠. 물론 독자가 호기심을 느끼면 또다른 전문 도서를 찾아보게 하는 일종의 진입문, 가이드 역할에 충실하니 별 불만은 없습니다. 분량, 가격을 생각하면 적절한 내용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자주 구입해 보게 되지는 않더군요.

그런데 이 책은 정말 괜찮습니다! 짧은 분량임에도 셜록 홈즈에 대해 아주 잘 알려주고 있거든요. 셜록 홈즈의 기원과 주요 캐릭터들, 주요 장단편 이야기와 저자 코난 도일에 대한 상세한 소개는 물론이고 셜록 홈즈에 관련된 패스티쉬, 라이벌 탐정까지 알려주는 풍성함을 자랑합니다. 셜록 홈즈에 대해 알고 싶다고 생각하는 초심자들이 접하기에는 최고의 안내서가 아닐까 싶네요.

저와 같은 기존 셜록 홈즈 애독자들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 대부분이고 인용된 작품은 거의 다 읽어본 것이라 새로운 정보가 없다는 것은 단점이며 조금 체계적으로 목차를 분류하였으면 어떨까 싶기는 하나 분량과 가격을 생각하면 비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15/12/10

심야식당 : 부엌 이야기 - 아베 야로 / 강동욱 : 별점 2.5점

심야식당 : 부엌 이야기 - 4점 아베 야로 지음, 강동욱 옮김/미우(대원씨아이)

만화 <심야식당>에 등장했던 음식 중 스무가지에 대해 호리이 켄이치로가 쓴 에세이와 원작에 등장한 일러스트, 그리고 마지막에 관련된 추라 레시피가 짤막하게 소개되는 구성의 에세이집.

아마도 만화의 인기를 등에 업은 기획물일 것으로 추측되는데 비슷한 기획물인 <심야식당 단츄>와 비교하자면, 음식에 대한 전문성은 훨씬 떨어지는 대신 에세이 비중과 그에 대한 재미가 더 높은 책입니다. 저자의 다양한 경험과 박학한 지식을 쉽고 재미나게 풀어쓰는 글 솜씨가 빼어난 덕이죠.
가다랑어포 이야기에 재미나면서도 그럴 법 하구나! 싶은 실제 만담 - 가다랑어포 국물이 아니라 그것을 깎아낸 조각이 더 귀중하다 생각한 사람의 이야기 - 을 인용한다던가, 일본에 달걀 프라이가 언제 도입되었는지에 대한 기원 탐구, 나폴리탄 도입 후 영화감독 이타미 주조에 의해 나폴리탄의 축 퍼진 면발 일색이었던 일본 사회에 '알덴테' 스파게티가 널리 퍼진 사연, 어육 소시지의 사회적 시선 변화에 대한 이야기 등이 그러합니다.
이러한 "음식"에 집중한 이야기 외에도 저자 자신의 경험이 바탕이 된 에세이도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죽순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학창 시절 육상부 장대 높이 뛰기 선수로 뛸 때 장대는 대나무 가게에서 산 3m짜리 대나무였다! 라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네요.

또 저자가 <술 한잔 인생 한입>의 소타츠와 참 비슷하구나! 싶은 것도 재미요소에요. 음식에 대한 확고한 생각과 도전 정신이 비슷하거든요. 제일 좋은 김을 한번 먹어보자고 1만 5천엔!을 주고 5종류의 김을 사와서 먹어본다는건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죠. 참고로, 제일 비싼 김 (1만 5백엔짜리)은 누가 먹어도 가장 맛있었다니 음식은 비싼게 다 맛있는건 아니지만 재료는 비싼게 제 값을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 외, 레시피도 <심야 식당> 그대로가 아니라 나름 어레인지 된, 독특한 것들도 몇개 실려 있으며 <심야 식당>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추천 요리와 레시피가 수록된 것도 마음에 드네요. 특히 추천 요리는 기획물 의도에 충실하면서도 충분히 집에서 해 먹음직 한 것이라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다바타 토모코 (엔카가수 치도리 미유키 역 - 고양이 맘마편 -)가 추천하는 "타코라이스!"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기획물임에도 정작 <심야 식당> 본편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점입니다. 분량에 비하면 가격도 조금 센 편이고요. 그래도 짤막하니 부담도 없고  내용도 요리를 좋아한다면 한번 읽어봐도 괜찮은 에세이임은 분명합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15/12/09

오사카 소년 탐정단 - 히가시노 게이고 / 김난주 : 별점 3점

오사카 소년 탐정단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재인

오사카 오지 초등학교 교사인 25세의 여자 선생 다케우치 시노부 선생이 주인공인 5편의 단편이 수록된 히가시노 게이고의 연작 단편집.
딱히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의외로 즐겁게 읽었습니다. 오사카라는 곳에서 연상되는 시끌벅적하면서도 요란하고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아주 마음에 들었거든요. 몰랐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출생지가 오사카더군요. 그래서 현장감(?)이 더 뛰어났던게 아닌가 싶어요.
선명한 캐릭터 역시 볼거리입니다. 초등학교 선생으로 열혈 왈가닥에 뛰어난 추리력을 갖춘 시노부 선생이 생동감있으면서도 싱그럽게 그려지고 있으며 그녀를 놓고 티격태격하는 연적 사이인 말단 형사 신도와 엘리트 회사원 혼마, 그리고 시노부 선생의 악동 제자들 모두 아주 유쾌하면서도 즐겁게 묘사되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시노부 선생과 신도 형사, 혼마의 관계는 <명탐정 코난>에서 사토 형사를 놓고 벌이는 시라토리와 다카키의 다툼과 나중에 시라토리와 커플이 되는 고바야시 선생을 합쳐놓은 느낌이더군요. 아아... 저같이 사토-다카키 커플 팬에게는 완전 취향 직격!

이렇게 캐릭터가 돋보이면 추리적으로는 시원찮은 작품들이 많은데 추리 소설 애호가를 만족시킬만큼 적절한 트릭, 추리들이 이야기와 잘 맞물려 있다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시노부 선생과 학생들의 활약 역시 상식 선에서 딱 적당한 수준으로 그려지고요. 조금 작위적인 부분이 없잖아 있기는 합니다만 재미면에서는 충분히 납득할 만 했어요.

허나 딱 한가지, 오사카가 무대인데 그러한 지방색을 번역에서 잘 살리지 못한건 아쉽네요. 내용에 혼마가 도쿄 말을 써서 재수없다라는 묘사가 등장하는 등 말투가 꽤나 중요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최소한 사투리로 번역하는 노력 정도는 보여주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내용이나 분위기를 볼 때에 배경이 90년대 초반같은데 (게임을 CD로 실행하는 등) 지금 시점보다는 60년대, 아니면 최소 80년대 배경으로 하는게 훨씬 낫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그만큼 아날로그, 복고풍의 분위기가 돋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단점은 사소할 뿐,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워낙에 뛰어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평소의 히가시노 게이고 스타일과는 사뭇 다른데 정말 여러모로 재능이 많은 작가구나!라는 걸 다시금 느끼게 되네요.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 모두에게 추천드립니다.
마지막 이야기에서 미도리 선생이 파견 유학을 떠나 2년 뒤에 돌아오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빨리 후속편도 읽어보고 싶군요.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참고 부탁드립니다.

<시노부 선생님의 추리>
시노부 선생의 제자 도모히로의 아버지 후미오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내용의 작품.
시노부 선생이 사건에 얽히는 과정이 아주 자연스러워서 설득력이 높아요. 아버지가 살해당한 제자가 걱정되지 않는 담임이 있을리가 없으니까요.
그에 더해 추리적으로도 전개가 합리적이라 마음에 드네요. 특히나 제자가 쓴 작문과 우연히 마주친 다코야키 장수의 말 "그런 되지도 않는 소리 마쇼. 저렇게 좁은 데다 어떻게 차를 넣으라고. 집어 넣을 수야 있겠지만 운전석에서 나올 수가 없을 텐데." 에서 도모히로가 운전을 할 수 있다는걸 간파한다는,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딱 맞는 추리가 돋보였습니다. 후미오가 경트럭을 빌린 뒤 유키에를 죽이려 했다는 진상도 반전 매력이 있었으며 다코야키를 트릭의 주요 요소로 활용하는 것도 오사카스러워서 좋았고요.
도모히로를 믿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시노부 선생을 그린 결말 역시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직업에 잘 어울렸습니다.

허나 죽었다 하더라도 후미오의 빚이 없어지지야 않을텐데 이 모자의 앞길은 지옥 뿐이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 그래서 썩 개운치는 않네요. 딱 맞는 순간에 딱 맞는 재료 (작문, 노리오가 들고있던 후미오의 수첩, 다코야키 행상)이 연결되는 구조는 좀 작위적이었고요.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읽을만한 재미있는 작품으로 작품의 시작을 알리기에는 충분해요. 별점은 3.5점입니다.

<시노부 선생님과 집 없는 아이>
시노부 선생님의 제자 하라다와 뎃페이가 게임 CD를 도난 당한 것과 옛 제자 가지노 마치코의 이버지가 용의자가 되었다는 이유로 사건에 자연스럽게 엮이는 과정 첫번째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괜찮았습니다.

허나 기절했다고 자기가 죽였는지 안 죽였는지도 모른채 자백을 할까요? 마치코와 시노부의 대화를 통해 설명하려 하긴 하나 많이 약했어요.
또 아라카와 도시오의 자살 동기가 선명하지 않은 것도 별로이며, 살해로 위장하려 한 치에코의 공작도 딱히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시노부 선생님의 맞선>
시노부가 맞선을 보는 것에서부터 사건이 시작됩니다. 신도의 질투가 폭발하고 신도를 도와주려는 (혹은 놀려먹으려는) 하라다와 뎃페이 등 악동들의 활약이 어우러지는데 이런 부분은 과거, 우리네 유머 소설 그 중에서도 오영민의 007 선생와 같은 우리네 유머 소설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추리물로는 수록작 중 가장 처지네요. 진상에 다다르게 되는 핵심 단서인 모토야마 사장이 했다는 말 - '비온 뒤 땅이 굳는다' - 은 꼭 비가 오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특이하다는 오하라 유리코의 담배 '플레이어'를 가지고 한 연극도 지나치게 작위적일 뿐더러, 경찰이 이렇게 수사해도 되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습니다.
혼마가 너무나도 착한 사람이라 하청업자 도무라를 지켜준다는 것도 억지스러워요. 살인 사건인데 누구를 지켜준단 말입니까...

이중 횡령이라는 동기 하나만큼은 신선하고 그럴듯 했으나 이러한 단점들 때문에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시노부 선생님의 크리스마스>
친구들과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앞두고 시체로 발견된 다카노 치카코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이야기.
사건 직후 근처에서 목격된 UFO와 사건을 엮는 발상이 재치있더군요. 그리고 시노부 선생이 친구들이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을 보고 치카코가 정말 좋아한 것은 마쓰모토였다!라는 것을 알아내는 장면도 괜찮았어요.
허나 이 작품의 진짜 매력은 연적이 되어버린 혼마, 신도의 티격태격과 악동들의 활약입니다. 전편에 이어 깨알같은 재미를 전해 주거든요.

문제라면 첫번째는 풍선을 이용한 흉기 은닉이 작품에서처럼 과연 그렇게 잘 되었을지 의문이라는 점입니다. 뭐 이건 운과 우연에 의지하여 어떻게 넘어간다 치더라도 두번째 문제, 즉 손목에 주저흔이 없는 이유가 결국 설명되지 않는 건 조금 아쉽네요. 작중 경찰이 자살보다 타살쪽으로 생각하게 되는 계기이기도 한데 너무 대충 넘긴 것 같아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시노부 선생님의 은혜>
여공 기요코 살인 사건과 뎃페이 윗층에 사는 나나의 엄마 아사쿠라 마치코가 이불을 털다가 추락한 사건이 엮이는 내용으로 현실적인 트릭 - 이불을 아래층에서 당겨서 떨어지게 만들었다는 트릭 - 이 감탄사를 자아내는 작품.

그러나 범인 요코다의 행동이 너무 무리하기는 합니다. 자신이 용의자도 아닌 상황에서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를 이유는 없죠. 경찰이 기요코의 사진을 가지고 미도리야마 하이츠에서 탐문 수사를 시도했다는 묘사 정도는 등장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마지막 습격은 정말이지 무리수였고요. 나름 요코다가 소심하다는 식으로 설득하려 하지만 와 닿지는 않더군요.

그래도 괜찮은 트릭에 더해 악동들과 선생님의 인연이 정리되는 졸업식 이야기는 꽤나 짙은 여운을 남기며, 지극히 경찰스러운 신도의 프로포즈도 인상적이었어요.
해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5점. 추리적으로 부족할 수는 있지만 읽는 재미 하나로 다른 단점들 전부 덮을 수 있을 정도로 유쾌한 작품이었습니다. 영상화되어도 아주 좋을 것 같네요.

2015/12/08

또다시 붉은 악몽 - 노리즈키 린타로 / 민경욱 : 별점 1.5점

또다시 붉은 악몽 - 4점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포레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리코를 위해>에서 니시무라 유지의 죽음을 방조한 후, 탐정이라는 업무에 대한 깊은 고민에 휩싸이게 된 노리즈키 린타로가 아이돌 스타 하타나카 유리나 나를 도와주면서 스스로도 다시 일어선다는 내용의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 장편.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제가 읽은 노리즈키 시리즈 중 최악이었습니다.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을 수 있는 추리물로서의 완성도가 별볼일 없어서 점수를 주기가 마땅치 않은 판국에 엘러리 퀸의 작품으로 철학을 하는 가당찮은 전개까지 보여주니 점수를 줄래야 줄 수가 없네요. 추리 소설로의 본질을 잊고 퀸에 미친 작가가 어설프게 신성화 작업을 한 결과물에 불과해요. 후기에서 작가 스스로가 1992년 작품 집필 당시에는 퀸에 미쳐있었다, 일종의 인격 장애였다라고 까지 이야기 할 정도니 오죽하겠습니까.
신성화 작업에 몰두했기 때문일까요? 이야기부터가 부실한 것도 큰 단점입니다. 우선 노리즈키가 요리코 사건으로 슬럼프에 빠졌다는 것에 공감하기 힘들어요. <요리코를 위해>에서의 니시무라 유지는 죽어도 싼 놈이거든요. 노리즈키가 니시무라의 자살을 도왔고 (방조했고), 설령 그것이 니시무라 우미에의 안배였다 하더라도 그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죠. 외려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해 준 건 자비에 가까운 행동으로 보입니다. 어차피 우미에가 흑막이라는 이야기는 철저히 사족이기도 하고요.
또 나카야마가 제수씨와 불륜을 저질러 아이까지 낳게 만든 것 역시 엄청난 잘못으로 죽어도 싼 범죄라 생각되는데 왜 나카야마와 미치오가 피해자인 것 처럼 그려지는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유리나가 살인자의 딸이라는 원죄의식을 벗어버린다 하더라도 엄마의 불륜으로 인한 부적절한 태생이며 그 불륜으로 두명이나 죽었다라는 또다른 원죄에 대해서는 벗어날 길이 없잖아요?
이러한 문제점 투성이인 본편 이야기보다는 차라리 모리야마 감독이 유리나를 주연으로 만드려는 영화의 원작인 요시모토 하기나의 <투 오브 어스> 소개가 더 매력적이었어요.

앞서 말했듯 추리적으로도 정말 별로에요. 애초에 가짜 칼로 찌르기로 했는데 그것을 착각했다는건 말도 안돼죠. 감촉으로 충분히 알 수 있을테고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쓰러진 다음에 피해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은 당연한거 아닐까요?
이후 모리야마 감독의 부인이자 유리나의 친어머니 나카야마 미치오가 사건에 급작스럽게 개입하는 것 역시 지나치게 작위적일 뿐만 아니라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 미야마에가 계획에 실패한 오스기를 만남 -> 모리야마 부인이 가짜 칼을 빼앗아 오스기를 찌르고 사라짐 -> 멀쩡히 일어난 오스기를 미야마에가 다시 칼로 찔러 살해 - 모두 운, 우연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것이라 정교하게 짜여진 이야기라 보기 힘듭니다.

그나마 괜찮은 것은 오스기 슌이치가 입었던 흰색 터틀넥의 등 쪽에 피가 묻은 이유에 대한 것과 오스기 슌이치의 계획을 간파한 뒤 방송국 의무실 담당자가 연루되어 있으리라 추리하는 것 정도입니다. 여기서 미야마에로 끈이 이어지게 되기도 하고요. 뭐 흰색 터틀넥 트릭이야 상의 앞을 잠그는건 별로 수상할 것 같지 않다는 문제가 있긴 합니다만.

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읽어볼 가치를 찾아보기 어려운 망작으로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 팬이라도 피해야 할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1점을 줘도 될 정도지만 중간에 나오는 80년대에서 90년대 초에 이르는 일본 연예계와 아이돌에 대해 설명해주는 부분, 그리고 아주 약간 건질만한 추리적 장치 때문에 0.5점 더 얹습니다.

덧붙이자면 후기에서 이 작품에 대한 반성의 글을 남기며 '미스터리는 작가의 말 그대로 보다 건전하고 순수하고 명랑하며 철저히 오락이어야 한다'라고 하는군요.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렸으니 다행입니다.

알라딘 독자 선정 2015 올해의 장르소설 Top 10

알라딘에서 올해의 장르소설을 뽑는 투표 이벤트를 시작했네요.

이벤트는 여기서

특이한 점은 모든 회원 대상이 아니라 장르 소설을 실제로 구매하였거나 리뷰를 작성한 회원들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한다는 점입니다. 구매 권수와 리뷰 작성 건수에 따라 최대 30표까지 차등 지급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좋아보이네요. 정말 장르소설에 관심있는 사람들만 대상으로 한 투표가 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저는 리뷰 작성이 많아 30표를 받았는데 거의 대부분을 <소름>과 <특별요리>에 투표했습니다. 후보작 100권 중 읽은게 14권 뿐인데 그 중 이 두 작품만 모두 별점 4점으로 압도적으로 좋았기 때문이죠. 참고로, 다른 12권은 별점 2.5점이 대부분입니다.

허나 투표 현황을 보니 두 작품 모두 20위권 내에서는 찾아볼 수 없군요. 추이는 지켜봐야겠지만 이래서야 좋은 순위는 힘들겠어요. 참 좋은 작품들인데, 역시나 시대를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이었나 봅니다. 그래도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 있으시다면 꼭 한번 찾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좋은 작품이니까요. 그리고 이 글은 어쨌거나 책 이야기로 끝냈으니만큼 도서 밸리로 보냅니다.

2015/12/06

알라딘, 2015 정산


알라딘. 2015 당신의 책
아직 한해가 다 가려면 제법 남았지만 체크해 봅니다. 알라딘 이용자라면 재미삼아 한번 해 보시길.
책 관련 이야기니 도서 밸리로.

사안은 월륜을 향해 날아간다 - 후지타 카즈히로 : 별점 3.5점


후지타 카즈히로의 단편. 자주 찾아뵙는 각시수련님 블로그에서 "단편 만화 중 재미있는 만화 스레" 라는 글을 통해 눈여겨 보았다가 읽게 된 작품입니다.

보는 사람 모두를 죽게 만드는 올빼미 미네르바를 잡기 위해 분투하는 미군 2명과 일본인 사냥꾼 우헤이, 무녀 린의 4인조의 활약을 그리고 있죠. 핵심은 사람의 살기에 반응하여 모든 공격을 무위로 만드는 미네르바에 대항해 "살기 없는" 총알을 쏘는 우헤이지만 손자와 같이 우헤이를 도와주는, "사냥개" 역할의 마이크와 나름의 복잡한 과거 및 과거를 살린 전투기 조종으로 마지막 일기토를 돕는 케빈, 순간이지만 미네르바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무녀 린의 조합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헌터 중심의 원거리 딜러들로 구성된 파티라는게 특이하네요.

이야기 전개는 전형적인 후지타 카즈히로 작품 스타일입니다. 강대한 적에 맞서 싸우는 주인공의 뜨거운 활약이라는 점이 그러하죠. 특히나 미네르바의 막강함에 대한 묘사가 아주 탁월해서 사악함과 강력함 측면 모두 후지타 카츠히로 작품 악역 중 최고 수준이에요. 무엇보다도 그냥 "새"라는 점, 아무 생각없이 목적없이 본능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설정이라 더욱 무서웠어요. "사악한 미물" 인 것이죠.
아울러 이에 대항하는 고독한 카리스마 미노년 우헤이 역시 뒤지지 않는 멋진 매력을 자랑합니다. 마지막에 우헤이가 가면을 벗는 장면에서의 간지는 정말이지... 뭐라 표현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멋졌어요!

그런데 딱 한가지, 미네르바 관련 설정 한가지가 약간 옥의 티네요. "미네르바를 본 모든 사람이 죽는다" 인지,  "미네르바가 본 모든 사람이 죽는다" 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케빈이 쌍안경으로 미네르바를 확인하는 걸로 봐서는 첫번째는 아닌 듯 한데, 그렇다고 후자라고 하면 너무 무적일 뿐더러 다른 사람들이 죽지 않는게 설명이 안되거든요. 또 우헤이가 장님인 것도 아무 의미가 없을테고...

이러한 설정 구멍이 조금 있기는 하지만 매력적인 캐릭터, 뜨거운 전개와 깔끔한 결말까지 완벽한 작품입니다. 해피엔딩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후지타 카즈히로의 팬은 물론이고 후지타 카즈히로를 잘 모르더라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2015/12/04

거짓말, 딱 한 개만 더 - 히가시노 게이고 / 양윤옥 : 별점 3점

거짓말, 딱 한 개만 더 - 6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현대문학

가가 형사 시리즈. 제목과 동일한 표제작 포함 모두 5편의 단편이 수록된 단편집입니다.
제목처럼 범인이 자신의 범행을 숨기기 위한 거짓말을 파악하여 범행을 증명한다는 전개를 보이는 작품들이죠.

단편집이라 그런지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에서처럼 (주로 초기작) 억지스러운 동기나 인간관계가 등장히지 않고 트릭과 추리에 집중하고 있어서 좋더군요.
아울러 가가 "형사"에 어울리는, 그야말로 끈질긴 수사가 추리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점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참고삼아 해당 수사 내역을 아래와 같이 올려 봅니다.

  • 첫번째 사건 : 화분을 구입한 날짜에 대한 수사
  • 두번째 사건 : 피해자가 입고 있던 옷에 대한 목격 증언 (옷을 갈아 입은 것을 알아냄), 담배를 피우지 않는 피해자 옷에 진하게 담배 냄새가 배인 것을 확인하고 그러한 장소가 어딜지에 대한 탐문 조사
  • 세번째 사건 : 친칠라 고양이에 대한 증언, 피해자가 먹은 청어메밀 판매 장소 탐문을 통한 취식 시간 확인, 용의자 단골 미용실에 대한 조사
  • 네번째 사건 : 나오코 집 근처 가게들을 대상으로 한 탐문 조사
  • * 다섯번째 작품은 친구의 가정사에 대한 내밀한 추리 중심이라 경찰 수사가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또 핵심 사건, 트릭 하나에 그치지 않고 나름 반전 (?) 요소들이 들어가 작품들의 복잡도와 재미를 더해주고 있기도 합니다. 두번째 사건에서 유타의 사체를 제한된 시간과 장소 안에서 들키지 않고 은닉하는 트릭, 네번째 사건에서 숨겨놓은 사체의 정체가 무엇인지? 같은 요소가 대표적이에요.

가가 형사의 비중보다는 주인공, 화자 역할의 범인 비중이 더 크다는 점은 팬에게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은 됩니다만 (가가라는 캐릭터에 매료된 팬이라면 당연히 불호겠죠) 이 정도면 아주 괜찮은 단편집이었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제가 읽은 가가형사 시리즈 중에서는 베스트로 꼽겠습니다.

수록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거짓말 딱 한개만 더>
유게 발레단의 발레리나 하야카와 히로코의 자살에 대한 진상을 밝혀낸다는 작품.

진상은 발레단 사무국장 데라니시 미치요의 범행, 그녀의 거짓말은 히로코가 이사할 때 화분을 만졌다는 것입니다. 화분은 사고 당일에 구입한 것으로 이사할 때에는 없었다는 것이 밝혀져 미치요의 범행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되죠. 화분은 히로코를 자살로 위장하여 살해할 수 있었던 트릭의 도구라 중요한 소품이기도 하고요.

발레단과 발레 공연, 연습에 대한 상세한 조사가 뒷받침된 묘사, 특히나 단순 협박 (안무가가 미치요의 남편 데라니시 도모야가 아니라는 것)이 아니라 난이도 높은 무대를 삭제하고 마지막 공연을 한 미치코의 자존심, 즉 히로코의 요구에 응해 15년 전 무대가 가짜였다는 것을 인정한 것을 감추기 위한 동기 등은 이전 <잠자는 숲>을 떠올리게도 하네요. 외려 "발레" 그 자체를 트릭으로 사용했다는 점에서는 더 뛰어나고요.

무엇보다도 표제작이면서도 이 단편집의 주제이기도 한 "범인의 거짓말"에 대해서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거짓말을 감추려면 좀 더 큰 거짓말을 하게 되지요 (가가)" 라는 말이 대표적이에요.

그런데 가가가 거짓말을 유도한 방법도 유치할 뿐더러 단지 말실수 한 것 뿐인데 뭐 그리 큰 꼬투리가 될까 싶기는 했습니다. 증거는 결국 아무것도 없으니깐. 버티면 빠져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요? 최소한 이렇게 쉽게 범행을 인정할 필요는 없었을텐데... 물론 이렇게 하면 단편 작품으로 성립하기는 어려웠을테니 문제라고 지적하기는 어렵죠. 제 별점은 3점. 발레에 대한 세밀한 조사가 바탕이 된 적절한 트릭과 합리적인 동기가 어우러진 수작입니다.

<차가운 작열>
주부 다누마 미에코가 교살되고 돌이 갓 지난 아들 유타는 실종된 사건의 진상은?

진상은 남편 요우지의 범행으로 동기는 아내 미에코가 빠찡코를 하다가 차에 둔 아이를 찜쪄 먹은 것이죠. 참고로 이 동기는 <너버스 브레이크다운>에서도 등장했던 것인데 실제 있었던 사건으로 알고 있습니다.
거짓말은 피해자가 죽기 전에 입었던 빨간 티셔츠가 세탁기 안에 있던 것. 요우지는 땀을 많이 흘려서였을 것이라 말하지만 빨간 티셔츠를 다른 빨래와 섞어서 빨아도 되는지? 와 같은 사소한 점에서 가가가 수상함을 느끼게 되는데 이 아이디어는 좋았습니다. 집안일에 관심이 없는데 유타의 옷차림을 기억하는 것 역시 괜찮은 착안점이었고요.
무엇보다도 다누마 요우지의 증언 중 차의 에어컨이 고장났다는 것을 앞의 거짓말과 엮고 - 차의 에어컨이 고장났는데 그것 때문에 땀을 많이 흘려 옷을 갈아 입은 것이다 -, 그것이 진상에 이르는 전개- 에어컨이 고장나사 아기가 차 안에서 열사 - 도 정말이지 탄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누마 미에코 사건 뿐 아니라 아이 사체의 부취를 막기 위해 수지로 밀봉했다는 곁다리 트릭도 돋보였어요.

그런데 딱 한가지, 티셔츠에 담배 냄새가 배었는데 집에 재떨이도 없고 부부는 담배도 피지 않는다는 것에서 수상함을 느꼈다고 하는데 이 정보가 독자에게는 제대로 제공되지 않아서 공정함을 느끼기 힘들다는 것은 좀 아쉬웠어요. 어딘가에서 살짝이라도 묘사해 주었더라면 좋았을텐데 말이죠. 이 점 때문에 약간 감점하여 별점은 2.5점. 그래도 읽을 가치는 충분한 좋은 작품이었어요.

<제2지망>
이혼녀 미치코가 교제하던 남자 모리 슈스케가 집에서 교살된 시체로 발견된 사건의 진상은?

한마디로, 이 단편집 수록작 중에서는 최악입니다.
거짓말은 미치코가 댄스 교습을 마치고 샤워를 하지 않았다는 말로, 머리칼의 샴푸향을 가가가 눈치채서 그녀의 알리바이가 밝혀지게 되죠. 그런데 두번째 사건과 마찬가지로 샴푸향은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되지 않을 뿐더러, 동기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너무 큽니다. 리사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 주었어야 하는데 미치코 시점으로만 이약가 전개되니 범행을 이해하는게 불가능에 가까워요.
아울러 남자 목을 여자가 조르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포장지 20미터 정도를 이용하여 창 밖으로 체중을 걸고 뛰어내렸다는 트릭이 등장하는데 이 역시 그냥 그랬습니다. 어차피 밝혀져도 상관없는 것이었다면 (범행 은닉은 미치코의 의도이지 리사는 아무 생각도 없었으니) 뭣하러 이런담? 칼로 찌르던가, 아니면 불이라도 지르는게 낫지 않았을까요?
때문에 별점은 1.5점. 모호한 동기, 불합리한 범행, 별볼일없는 트릭 모두가 갖추어진 망작이네요.

<어그러진 계산>
남편 상을 당한지 얼마 지나지 읺은 사카가미 나오코. 그녀의 남편은 역 앞에서 트럭에 치여 즉사했다. 얼굴도 훼손된 채로. 그 와중에 불륜남 나카세 유키노부 실종 사건을 수사하는 가가와 만나는데...

나카세와 나오코의 과거, 그리고 범행모의가 현재 시점에서의 수사와 서서히 교차되어 전개되어 결과적으로 두개의 이야기가 만나 진상이 드러나는 작품.
솔직히 추리적으로는 별로였던 작품입니다. 거짓말은 천장에서 흐르는 물에 대한 것인데 이건 가가가 사기친 것에 불과하고요.

그래도 집에 숨겨놓은 사체가 유키노부의 것이었다는 또 한번의 반전은 괜찮았어요. 가가의 수사를 바탕으로 한 추리 - 냉동고에 대한 증언 -> 근방 약국 탐문을 통한 보냉제 구입 확인 -> 편의점 탐문을 통해 매일 얼음을 구입한 것을 확인한 후, 시체가 어딘가 냉동되어 있다! 는 것을 알아냄 - 는 수사과정이 합리적이라 설득력은 높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추리 외적인 매력이 더 괜찮았던 작품이에요.

<친구의 조언>
가가의 친구 하기와라가 고속도로에서 졸음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낸다. 가가는 그의 아내 미네코가 드링크제에 약을 탔다는 것을 추리해내는데..

단편집 다른 수록작들과는 다르게 가가의 일방적인 추리와 주장이 펼쳐지는 작품. 일종의 가가 추리쇼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추리하는 내용 모두가 아주 타당하고 설득력이 높아서 만족스러웠습니다. 하기와라가 출발 전 집에서 뭔가를 마셨다는 것을 따로 꺼낸 컵이라는 사소한 것 에서 밝혀내는 장면, 하기와라의 아들인 다이치가 그린 파란 물고기가 오른쪽을 향해 헤엄치는 그림에서 미네코의 동기와 행동을 추리해내는 장면이 그러합니다. 밀봉된 비타민제 안에 수면제를 넣는 트릭도 아주 효과적이고 괜찮아서 돋보인 부분이에요. 이런게 정말 현실적으로 와 닿는거죠!

그런데 딱 한가지 아쉬운 것은 미네코가 아트플라워 교실 강사 구즈하라 루미코와 레즈비언 관계라는 것을 효과적으로 써먹지 못한 것입니다. 나름 반전이라면 반전인데 말이죠. 이렇게 사용될거면 남자여도 큰 상관은 없지 않았을까요? 차라리 남자였다면 다이치를 데려갔다는 것을 하기와라가 알게된 후 아내를 용서치 않는 마지막 장면이 더 강해졌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도 단점은 사소할 뿐, 추리적으로 워낙에 뛰어난 작품이라 별점은3.5점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에서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국내 출간된 가가 형사 시리즈는 현 시점에서 다 읽은 만큼 개인적으로 순위표를 작성해 봅니다.
<거짓말, 딱 한 개만 더>
<악의>
<신참자>
<붉은 손가락>
<내가 그를 죽였다>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졸업 : 설월화 살인 게임>
<잠자는 숲>

2015/12/02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 - 김홍민 : 별점 2.5점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 - 4점
김홍민 지음/어크로스

필명인 마포 김사장으로 유명한 출판사 북스피어 사장 김홍민씨가 이런저런 매체에 기고한 글과 본인 블로그에 올린 글을 모아 출간한 책.
뉴스레터는 물론 블로그도 rss로 구독하고 있는 독자이기에 재기발랄한 글들을 책으로 만나보게 된 것은 아주 기뻤습니다. 개중 제약적인 예산 하에서 지혜를 짜내 자신이 출간한 책을 홍보하려는 노력에 제목이기도 한 그의 철학,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이 더해진 좌충우돌 에피소드들이 가장 재미있었어요. 1부가 그러한 이야기 중심인데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1. 이와 손톱의 봉인 페이지에 대한 이야기
  2. 뒷날개를 활용한 등장인물 소개 (이건 정말 필요한 책에는 아주 최고일 듯 싶어요)
  3. 과학 소설 전문 출판사 불새 관련 기가 막히는 이야기 : 공무원이었던 어느 남자가 로버트 하인라인의 은하를 넘어서를 읽고 출판사를 차린 뒤 과학소설을 내 놓는다. 일곱권의 책을 내고 문을 닫는다. 많은 이의 성원으로 재고를 처분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얻은 수익으로 불새 대표가 뭘 했느냐. 이런 빌어먹을, 다시 책을 펴내기 시작했다 (이 부분만큼은 원 글의 감동을 살리고자 거의 그대로 인용합니다)
등 입니다.
또 작가, 출판인을 꿈꾸고 있는지라 여러모로 참고가 되는, 실전에 기반한 에피소드들인 2장의 이야기들도 좋았습니다. 다짜고짜 투고는 옳지 않다던가 (출판사 절차를 따를 것), 공모전에 대한 팁 - 장면 전환에 전화를 이용하지 말라, 진부한 비유는 피하라, 평범한 보통명사는 제목에 쓰지마라, 불필요한 묘사로 시작하지 마라, 뻔한 기관 국정원 등을 주요 소재로 삼지 마라, 영화처럼 서술하지 마라 (주인공의 시선과 행동만을 쫓아 전개해 나갔을때의 문제), 짧은 장을 반복해서 만들지 말 것... -, 그리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왜 4의 배수인지, 판권 페이지 관련 이야기 등은 재미도 있고 유익했으니까요.

허나 몇가지 의견에는 동의하기 힘들긴 했어요. 미야베 미유키에도물 출간 논란이 대표적이죠. 일단, 북스피어가 키워놓은 시장을 날로 먹으려고 한 비채는 엄연히 상도의를 어긴 것이며, 도덕적인 면에서 비난받아야 함은 마땅하다는데 동의합니다.
허나 선인세는 엄연히 작가에게 돌아가는 돈입니다. 작가 입장에서 보면 경쟁으로 내 작품값, 내 몸값이 올라가고 출판사에서 그만큼 많이 팔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건 지극히 타당하면서도 고마운 일이에요. 즉, 좋은 작품을 썼고, 그것이 좋은 가격을 인정받고, 높은 판매를 보장받았다. 이게 전부입니다. 선인세 경쟁으로 한국 출판사가 글로벌 호구ㅏ 되었다!라고 주장하는건 이해가 되지 않네요. 마포 김사장 말대로 적정 금액이 암묵적으로 있다면 그건 담합이죠. 왜 유통사가 컨텐츠 창작자의 창작물 가격을 마음대로 정한답니까? 선인세가 높아서 독자가 피해를 본다는게 명백하게 증명되지 않는다면 (멀쩡한 책의 분책이나 동일 판형, 페이지 단행본 대비 가격 상승, 사재기를 통한 판매 부수 조작 등) 유통사들간의 분쟁일 뿐, 독자와 작가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뒤가 켕기는건 출판사지 독자가 아니에요.
딱 한가지, 통일된 디자인과 판형으로 시리즈를 모으지 못하다는 문제는 있지만 에드 멕베인의 87분서도 피니스 아프리카에 말고 검은 숲에서 나왔고 (<아이스>), 가가 형사 시리즈<신참자>만 출판사가 다른 등 이 바닥에 워낙에 비일비재한 일이라 문제 삼기도 뭐하네요. <경성 탐정록>은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음에도 1, 2부 판형부터가 다르니 더 말 해서 무엇하겠습니까.

그리고 한국 추리소설에 대해 언급하며, 한국의 히가시노 게이고가 왜 필요하지? 이미 히가시노 게이고가 있는데? 라는 생각을 드러낸 것도 섭섭한 부분이었어요. 한국 작가의 추리 소설은 투자 대비 성공하기 어렵다는 이유인데 한국의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라면 최소한의 애정은 보여줘야 하지 않았을까 싶거든요. 꾸준히 각종 공모전을 개최하는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 황금가지와 너무 비교되는 마인드가 아닌가 싶더군요. 이래서야 그냥 장사꾼 마인드죠. 미야베 미유키 작품만 영원히 팔 것도 아니고...

이렇듯 마음에 안 들거나 동의할 수 없는 이야기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앞부분, 1, 2부의 이야기는 괜찮았어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본인, 그리고 출판사를 지지하는 팬층이 두텁다는 것은 알겠고 그렇게 두터운 팬층을 만든 마포 김사장의 노력에는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도 북스피어의 건승을 기원하겠습니다.

덧붙이자면, 비록 이전에 제안했다가 거절당하기는 했지만 (거절의 이유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네요) 경성탐정록 장편을 여기서 내 주면 참 좋겠다 싶긴 하네요. 마포 김사장의 재기발랄한 마케팅이라면 뭔가 될지도?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뭐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2015/12/01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 백창화, 김병록 : 별점 1.5점

작은 책방, 우리 책 쫌 팝니다! - 4점
백창화.김병록 지음/남해의봄날

제 오랜 꿈 중 하나가 카리스마 헌책방 주인입니다. 뜨내기 손님이 들어와 책 가격좀 깎아보겠다고 하면 "당신한테 내 책은 안 팔아!"라고 호방하게 외칠 수 있는... 이러한 저의 꿈과 맞물려 있어 호기심에 읽게된 책입니다. 충북 괴산에 귀촌한 후 이른바 "가정식 서점"을 표방한 서점 "숲속 작은 책방"을 연 부부가 쓴 자신들의 이야기에 더하여 비슷하게 동네 서점을 표방한 서점들에 대한 조사,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통영에 있는 것으로 유명한 작은 출판사 남해의 봄날에서 출간되었더군요.

그런데... 아쉽게도 딱히 도움이 되거나 인상적인 내용은 없었으며 오히려 제 꿈이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것만 느껴져 읽으면서 답답하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별다른 아이디어 (후술하겠지만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없이 동네 서점이 중요하다, 이런 서점과 책방 하나쯤 동네에 있어야 한다, 라고 주장하는데 제가 봤을때에는 전혀 아니올시다였거든요. 저만 해도 1년에 약 백여권의 책을 읽는, 취미가 "독서"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만, 동네에 책방이 없어서 아쉽거나 제 삶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물론 있으면 좋겠죠. 허나 여기 나오는 것처럼 특정 주제에 집착하거나 카페처럼 만든 그런 곳이라면 제 취향과는 맞지 않아요. 동네 서점이 무슨 대단한 동네 문화 허브인 것 처럼 이야기하지만 가당치도 않고요. 저는 그냥 "책" 자체가 좋고 "책"만 많으면 상관 없기에 이런 동네 서점보다는 조금 멀어도 교보문고, 혹은 동네 도서관이 훨씬 낫습니다.
그리고 설령 동네 서점이 있다손 치더라도 책 속에 등장하는 꿈같은 동네 서점, 즉 지역 주민들이 사랑하고 도와주는 서점은 한국이라는 현실에서 거의 불가능해 보이기도 합니다. 전세난으로 2년마다 이사다니고, 학원에 직장에 치이는 인생에 무슨 동네 서점이랍니까. 그리고 이런 논리라면 옛 추억이 어린 동네 떡볶이집이나 오래된 어머니들 사랑방 역할의 미용실도 망하면 안되는거죠.

그나마 등장하는 동네 서점들도 책만 팔아서 먹고 살 수 있는, 서점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 거의 없어서 안타까왔습니다. 특정 주제에 집중해서 골수 단골을 확보하는 전략이 그나마 가능성 있지만 이 역시 서점 주인들이 온라인 판매를 병행하는게 더 접근성 좋고 많은 매출을 기대할 수 있을 뿐더러 동네 장사가 아니라 멀리 있는 손님이 일부러 발품팔아서 올 정도라면 그 자체가 이미 "동네 서점" 의 정의에서 벗어난, 일종의 맛집과 같은 관광 상품에 더 가까워 진 것이니 저자들의 주장과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소개된 서점들 중 다수가 홍대, 연남동 등에 터를 잡은 것도 결국은 동네 서점이 아니라 관광지 핫 플레이스를 꿈꾼다는 증거라 생각됩니다.
게다가 책이나 정보는 인터넷으로 훨씬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세상은 발전하는데 원하고 만들고 싶은 서점은 수십년전 스타일이면 곤란하죠. 인터넷 서점은 기본적으로 정가의 10% 할인될 뿐 아니라 마일리지에 카드사 할인까지 더하면 거의 20% 할인된 가격에 책을 구입할 수 있어요. 이런저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이벤트는 덤이고요. 과연 경쟁이 될까요?

이러한 답답함 외에도 뒷부분의 귀촌 후 서점을 만들어 가는 과정 이야기는 책의 주제와 거의 상관없는, 일종의 DIY 및 인테리어 이야기라 실망스러웠으며 전체적인 완성도와 디자인도 감점 요소입니다.  성격에 맞게, 동네 서점같은 편안하고 얌전한 디자인이 좋았을텐데 너무 튀고 산만한 느낌이었어요. 실려있는 사진들도 그닥이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동네 책방들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해보게 만들기는 하지만 내용은 전문성이 부족하고 이야기도 왔다갔다해서 건질건 없습니다. 동네 서점에는 미래가 없다는 기존 생각만 더 확고해 졌다는 것 정도가 수확이랄까. 이 정도의 내용치고는 책값도 비싼 편이라 추천하기 정말로 어렵네요.
그나저나, 소개된 서점 중 이 잔인한 자영업 사막화 국가에서 2년 뒤까지 얼마나 많은 서점이 살아남아 있을지 조금 궁금하긴 합니다.

덧 1 : 저자들 책방에 들어오면 꼭 책을 사야 한다는 일종의 강매 행위는 정말이지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둘러보고 살만한게 없으면 그냥 나오는거지 이 무슨 말도 안되는 생각이랍니까.... 정착하여 삶을 꾸리는데 큰 노력을 기울인 것을 날로 먹으려는 외지인들에게도 분명 문제야 있겠지만 여기는 소매업을 하는 엄연한 가게잖아요? 관광지 비스무레한 곳에 뭔가 가게를 열면 당연히 받는 질문들인데 서점만 예외가 될 이유도 없고요. 뭔가 서점, 책을 판다는 것에 선민 의식이 작용하고 있는게 아닌가 의심스럽기까지 합니다.

덧 2 : "동네 서점"이 살아남기 위한 몇가지 방안을 생각해보라고 할 때 제가 떠올릴 수 있는 방법들과 이 책에 소개된 동네 서점을 해당 방법별로 분류한 것입니다. 역시나, 크게 별다른 건 없습니다.
1. 특이한 주제에 집중한다.
: 홍대앞 땡스 북스 (디자인), 서울 마포 짐프리와 서대문구의 일단 멈춤 (여행), 연남동 책방 피노키오 (외국 동화), 일산 알모 (동화)
수요층이 확실한 디자인, 여행, 그리고 어른들을 위한 예쁜책과 외국 동화들, 아동용 도서로 구분되는데 뻔하디 뻔한 발상이죠.
2. 카페와 결합한다
: 상암동 북바이북 (술먹는 책방) 외
북카페야 흔하디 흔하고 요새는 그 유행마저 사라졌죠
그나마 (소개된 곳 중 유일하게!) "책맥"이라는,  맥주 마시는 책방은 좀 신선했습니다. 허나 주객, 아니 주책이 전도된게 아닌가 싶은데 매출에서 맥주와 책의 비율이 궁금하네요.
3. 관광지와 결합한다
: 제주에 있는 책방들과 저자들의 "숲속 작은 책방"
역시나... 특별할게 없어요.
4. 책은 물론 다양한 인문학적 교류가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
: 부산 인디고 서원 외
서점이라는 공간에 대한 상식선 끝자락에 위치한 것이죠. 뻔할 뿐더러 이 정도면 동네 작은 책방의 범위를 넘어서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5. 유명인이 참여한다
: 책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홍대 여신이라는 요조가 책방을 냈다죠?
6. 독립 출판물에 집중한다
: 서울 마포 유어마인드, 서촌 더북소사이어티
1번과 유사하지만 성격이 조금 다르므로 별개로 치겠습니다. 이거 하나만큼은 제가 생각치 못한 신선한 것으로 일본으로 따지면 동인지 전문 판매샵쯤 되어 보이네요. 독립 출판물만 판매해서는 매출이 나오지 않을텐데 수익모델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조금 궁금합니다.

2015/11/30

화과자의 안 - 사카키 쓰카사 / 김난주 : 별점 3점

화과자의 안 - 6점 사카키 쓰카사 지음, 김난주 옮김/블루엘리펀트

모두 5편의 단편이 실려있는 가벼운 일상계 단편집입니다. '키 150cm, 체중 57kg'의 주인공 우메모토 교코가 고등학교 졸업 후 도쿄 백화점 지하에 있는 화과자점 "미쓰야"에서 일하게 된 후 만나는 소소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죠.

잘 모르는 작가의 작품으로 충동적으로 읽게 되었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꽤 괜찮았습니다. 쉽게 읽히는 재미는 물론 추리적으로도 제법이며 잘 몰랐던 "화과자"에 대한 현학적인 매력도 넘치는 덕이죠.
캐릭터들의 매력과 배분도 아주 적절합니다. 탐정역의 괴인 츠바키 점장, 단순 해설역이 아니라 빠른 눈치와 추진력으로 이야기를 템포를 유지시켜주는 우메모토 교코, 게이 성향이 있는 화과자 장인 지망의 베테랑 아르바이트생 다치바나가 화과자에 대한 여러가지 지식을 덧붙여 주는 식으로 황금분할이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에요. 연산 - 파워 - DB의 3위 일체랄까요?

허나 화과자에 대해 알고 있어야만 추리를 따라갈 수 있기에 평범한 일반인, 그것도 한국인 독자가 추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일상계이지만 전문가적 지식이 발휘되는 작품이라는 측면에서는 <비블리아 고서당> 시리즈<명탐정 홈즈걸>과 같은 스타일이에요. 물론 현학적인 재미로 보상해 주는 만큼 일방적인 단점이라고 보기는 어렵죠. 저 역시 아주 좋아하는 장르이기도 하고요.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갤러리 페이크>가 되는 것일테니깐...

그래서 별점은 3점. 전문가 일상계 추리물의 교과서같은 작품으로 추리소설에 입문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리고 싶네요. 이야기도 소소하니 따뜻하고 즐거우며 맛있기까지 하니 더 바랄게 뭐가 있겠습니까.

각 단편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는 가득한 점 참고하세요.

<화과자의 안>
회사원 아가씨가 생과자 "오토시부미" 1개에 "투구" 9개를 사간 이유에 대한 추리가 펼쳐지는 작품.
츠바키 점장의 추리는 오토시부미를 특정 인물 1명 앞에 내어 놓을 필요가 있었으며 그 이유는 "오토시부미"의 사전적 의미 -'공공연하게 말할 수 없는 내용을 쓴 무기명의 문서' - 에 따라 그 과자를 받는 사람은 뭔가 부정이 있다!라고 다도에 박식한 상관에게 넌지시 고하기 위함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다음에 회사원 아가씨가 과자를 사러 왔을 때에는 사건이 해결된 것을 알아차리고 '액막이용 과자'인 "물의 달"을 바로 내어준 것이고요.

화과자에 대해 잘 모르면 추리에 동참할 수 없다는 단점은 있지만 시리즈의 시작으로 캐릭터들의 소개와 더불어 이 작품이 화과자에 대한 일상계 추리물이구나! 라는 것은 충분히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현학적인 재미도 넘치고요. 별점은 2.5점입니다.

<1년에 한 번 하는 데이트>
견우와 직녀가 만난 후의 칠석 과자 "까치"를 사러 온 여대생은 대만에 있는 남자친구와 원거리 연애 중으로 비행기를 타야 했고, 단골인 스기야마 할머니가 사가는 과자는 사실 불단에 올릴 목적이었다는 것을 추리해 내는 작품
첫번째 에피소드와 동일한 문제는 여전합니다. 일반인이 추리하기 어렵다는 것이죠. 그나마 여대생의 원거리 연애 에피소드는 독자도 추리할만한 여지가 있긴 했습니다만 스기야마 할머니 이야기는 정말 무리에요. 특히나 할머니의 독특한 복장이 사실은 화과자의 "상제" 색 조합과 관련이 있었다는 것은 일반인의 영역은 아닐테니까요.
그래도 전문가적인 지식을 토대로 한 일상계 추리물로 교과서적 전개를 보여준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습니다. 캐릭터들이 나름 성장하기도 하고, 츠바키 점장의 개인사도 살짝 엿보이는 등 읽는 재미도 충분했고요. 별점은 3.5점.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에서는 베스트로 꼽고 싶네요.

<싸리와 모란>
야쿠자가 와서 시비를 거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다치바나의 사부가 가게의 전문성을 시험하느라 이런저런 전문용어를 사용한 것이라는 이야기.
요약된 줄거리 그대로 추리의 여지는 거의 없습니다. 그냥 화과자에 대한 정보 전달이 주인 탓에 일상계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갤러리 페이크>에 더 가까워요.
허나 워낙에 재미있는 내용들이라 지루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 아주 재미있었어요. 화투에 멧돼지와 싸리가 반드시 같이 그려져 있는 이유가 멧돼지 = 보탄 (모란) -> 모란떡은 오하기 -> 하기는 싸리, 그래서 같이 그린다ㅡ라는 언어유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인데 다른 작품에서 접하기 힘들 뿐 아니라,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를 야간 야쿠자스러운 말투와 엮어 재미나게 풀어내는 솜씨가 정말이지 탁월해서 감탄할 정도였습니다.
신 캐릭터인 다치바나의 사부도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이긴 합니다만 그런대로 작품과 잘 어울리고요. 별점은 3점입니다.

<스위트 홈>
백화점 내 양과자집 "황금사과"에서 일한는 아르바이트생 가쓰라자와가 팔다남은 케이크를 "오빠"에게 가져가는 이유는?
"오빠에게 가져간다"는 안이 착각한 것일 뿐 케이크를 "오빠", 즉 나이가 많은, 전날 팔다 남은 케이크라고 이야기했다는 내용인데 실제 자료 조사가 토대가 된 듯한 일종의 언어 유희가 돋보인 작품. 화과자에 대해 몰라도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도 큰 장점이죠. 곁들여 주류 코너에서 일하는 구스다씨가 떨이 도시락을 사재기한 이유가 함께 밝혀지는 구성도 참 좋더군요.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였으니까요.
아울러 양과자와 화과자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양과자와는 다르게 화과자는 이 나라에서 나는 재료를 사용해 이 나라의 기후와 습도에 맞게 만들어서 관홍상제를 채색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는 것인데 정말 공감갔거든요. 한천은 여름에도 녹지 않는다는 일종의 화과자부심(?)도 귀여웠고 말이죠.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쓰지우라의 향방>
미쓰야에서 판매한 새해맞이 과자 "쓰지우라" 안에서 이상한 암호문이 나와 그것을 해독한다는 내용 그대로 암호 해독이 중심인 작품.
종이는 누군가 바꿔치기 한 것에 불과하고 암호문은 일본어로만 풀어낼 수 있는 것이라 추리의 여지가 거의 없습니다. 화과자가 중요하게 사용되지도 않아서 시리즈와 연계성도 조금 떨어지고요.
점장이 기다리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2화에 언급된) 설명되어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주기는 하나 점장의 연인이었던 과자틀 장인 "형풍"이 죽기전 남긴 과자틀 반쪽을 안짱이 골동품 벼룩시장에서 건진 것은 우연이라도 너무 심하죠. 그래서 별점은 2점. 추리도 별로고 작위적이라 점수를 주기 힘든데 여러모로 마무리가 좀 약한 느낌입니다.

2015/11/28

토스카나의 우아한 식탁 - 미야모토 미치코, 나가사와 마코토 / 고세현 : 별점 2점

토스카나의 우아한 식탁 - 4점
미야모토 미치코 지음, 고세현 옮김, 나가사와 마코토 그림/라임북
일본의 작가 미야모토 미치코가 남편 나가사와와 함께 이탈리아에 보낸 몇개월의 일상을 기록한 에세이.

그런데 제목을 토스카나의 우아한 식탁이 아니라 <부르조아의 우아한 식탁>으로 바꾸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1990년대 초반, 거품경제가 무너지고 난 직후인데 이 때 이런 생활을 했다는 것 만으로도 평범한 사람들은 아니겠죠. 돈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는 것도 그러하고, 전원 생활을 위해 잠깐 머무는 곳이 백작가의 빌라라는 것 부터 시작해서 곳곳에 드러나는 저자의 부자 친구들 - 귀족 딸인 친구 줄리아나, 뉴욕 시절 친구로 화상으로 거부가 된 토마조와 네루 커플 등 - 에 대한 일화들, 대표적인건 친구 토마가 광대한 산과 땅을 산 뒤 그곳의 풍경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손을 엄청 많이 댔지만 사실은 손을 댈만큼 댄 자연이라는 것인데 스케일부터가 남달라 어리둥절할 정도에요.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설탕을 먹지 않는 등의 까탈스러운 식습관도 그렇고요.
하기사 저자의 여행 비결은 시간과 몸이 여유롭게, 최상의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인데 이런 여행이야말로 큰 돈이 드는 여행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물론 아주 건질 게 없는 건 아닙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함께 실려있는 저자의 남편 나가사와 마코토의 그림들이에요. 스케치와 간단한 수채화인데 그야말로 최고더라고요. 자도 이런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는 바람이 생길 정도로요.
또 등장하는 음식들에 대한 묘사 역시 기가 막힙니다. 소개된 것들 중 기억에 남는 것이라면
  1. 전원생활을 즐기면서 먹는 자가제 피자 - 그 중에서도 도우에 루꼴라만 얹고 올리브유만 더한 단순한 것
  2. 간단하지만 풍성한 샐러드들 : 올리브유, 레몬, 발사믹 식초, 소금, 후추 등을 입맛대로 뿌려 먹음
  3. 그롤라 커피 - 원두를 갈아 만든 에스프레소 커피를 주둥이가 여섯 개 나 있는 토기처럼 생긴 물건에 붓고 커피에 설탕과 그라파를 넣어서 오래 휘저은 후 성냥불을 붙여 그라파의 알코올 성분을 태운 뒤 주둥이에 각자 입을 대고 먹는다.
  4. 간단한 파스타들, 그 중에서도 친구 네루가 저자를 위해 만든 페스토 소스 - 잘게 썬 바질과 마늘, 파르미자노 레자노 가루와 최고급 올리브유와 소금을 한데 섞는다. 생크림은 저자의 바람으로 넣지 않고 대신 버터를 넣어 만든다 - 로 만든 트로피에테 (뇨키의 일종)

아, 정말이지 한번 먹어보고 싶은 것들이에요! 저자 말대로의 토스카나 요리의 3대 특징 - 복잡하게는 하지 않는다 / 너무 열중하지 않는다 / 별로 미묘하지 않게 한다 - 에 기반한, 신선한 재료에 기대어 대충 만든다는 요리법도 마음에 들고요.
아울러 귀족이 사는 곳이라 그렇지 별장 생활에 대한 이야기들은 제목 그대로 전원 생활이기는 해서 거부감이 좀 덜하긴 했어요. 특히나 백작가의 사위 필리포의 삶은 부르조아보다는 아라카와 히로무의 <백성 귀족>이 떠오를 정도였으니까요.

허나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으며, 특히나 부르조아 사상에 기반한 내용들은 영 거북하기만 해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군요. 토스카나에서 우아한 생활을 즐기려면 부자여야 한다는 씁쓸한 결론만 남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2015/11/24

가면 산장 살인 사건 - 히가시노 게이고 / 김난주 : 별점 2점

가면 산장 살인 사건 - 4점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재인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카유키는 사고로 죽은 약혼녀 도모미의 가족과 함께 여름 휴가를 보내기 위해 그녀 가족의 산장으로 향한다. 도모미의 부모, 오빠와 친지 등 모두 여덟명이 산장에 모인 당일, 두 명의 은행 강도가 침입하여 그들 모두를 감금한다. 은행 강도와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던 중, 도모미의 사촌동생인 유키에가 칼에 찔려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스탠드얼론 장편. 꽤 인기있는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네요.

줄거리 그대로 부유한 일족, 그리고 그들과 엮인 인물들이 모인 산장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룬  전형적인 클로즈드 서클 스타일의 미스터리로 흥미진진한 본격 추리물입니다.
두개의 살인 사건이 등장하는데 첫번째 사건, 즉 도모미의 죽음은 마지막에서야 진상이 설명될 뿐더러 범인은 관계자 증언 밖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동기 부여 목적에 가깝습니다. 허나 유키에 살인 사건은 고전 본격물의 원칙에 충실해요. 일종의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진 기묘한 범죄, 용의자는 공간 내 모두라는 상황이 그러하죠. 단지 상황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추리 역시 제법입니다. 이렇게 그녀를 살해하는 것은 인질인 아쓰코만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이 가능한 상황이라 그 전의 상황, 즉 레이코가 몰래 적은 SOS를 지우고 타이머를 망가뜨린 사람이 있다는 것에 주목한 뒤 그 사람이 범인일 것이다!라는 식으로 연결되는 추리 흐름이 꽤나 합리적이거든요. 타이머 관련 트릭 - 범인이 망가트린 것이 아니라 시간만 바꿔 놓은 뒤 시간이 지나고 나중에 망가졌다고 하는 순간에 부순 것 - 은 굉장히 간단하지만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기도 하고요.

허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너무나도 작위적이고 만들어진 이야기같다는 이유가 커요. 몇가지 예를 들자면 노부히코의 마지막 증언 - 레이코가 일기 페이지를 입에 넣었으며 그 페이지에 진상이 적혀있을 것이다 - 부터가 그러합니다. 칼에 찔렸는데 죽어가면서도 일기장의 특정 페이지를 찢어서 입에 넣는다... 인간의 정신력이 아무리 놀랍다 하더라도 이건 무리죠. 그리고 일기에 뭐라고 적혀있었을지는 모르지만 필케이스 약통의 약이 정상적인 것으로 밝혀진 이상, 그깟 일기가 뭐 그리 큰 증거가 되겠습니까. 심지어 확신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노부히코가 감금된 상태에서 유키에를 죽여야 하는 것에 대한 타당성 역시 찾아보기 어려워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억지로 누군가를 살해한다? 탈출 후 유키에를 따로 손 보는게 상식적일 것입니다. 아니면 풀려난 뒤 죽이고 범인들에게 뒤집어 씌우는 것도 훨씬 나았겠죠.
진범을 밝히지 않으면 다 죽이겠다는 후지의 협박 역시 이해가 되지 않는건 마찬가지로 범인을 밝혀낸다고 죽이지 않을 이유가 없거든요. 목격한 기억이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게다가 노부히코가 자살한 시점에서 이미 협박거리가 사라졌으니 다 죽이는게 당연할테고요.

하긴, 이 모든게 거대한 연극이니 작위적이라고 지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일까요? 그보다는 다카유키를 옭아매기 위해 이런 추리쇼를 펼친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단지 증거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은 타당치않죠. 도모미의 행동을 유키에가 보고 들었다는데 더 이상 무슨 증거가 필요했던 것일까요? 다른 추리소설에서는 복수를 하고도 남을 증거인데 기껏 그것을 보강하기 위해 거대한 연극을 꾸민다는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네요. 애초부터 목적이 범행의 증명이라면 이런 성공 가능성도 떨어지는 연극을 벌이느니 산장에서 다카유키를 제압한 뒤 고문으로 자백을 얻는게 훨씬 나았을 것이고요. 비용과 시간, 그리고 기분 모두.
또 마지막에 노부히코를 다카유키가 공격하지 않았더라면, 즉 연극이 실패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도 정말 모르겠습니다. 다카유키 역시나 그 순간에 노부히코를 죽인다 해도 빠져나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텐데 마지막에 이르러 이런 발악을 하는 것도 쉽사리 납득이 되지는 않았어요. 하긴 약혼녀를 죽이는데 남이 슬쩍 보고 다른 약임을 눈치챌 수 있는 약으로 바꿔칠 정도로 무신경한 놈이니 대책없는 행동도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아울러 상황이 조작되었다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어서 긴장감을 떨어트린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제목부터가 스포일러일 뿐더러 설정이 완전 말도 안되거든요. 은행강도같은 케케묵은 설정이 통할리 없죠... 핸드폰 세대에게는 도저히 먹힐 수 없는 설정이기도 하고요. 읽으면서 제가 생각했던 대로 후지가 죽은 줄 알았던 레이코고 그녀가 사람들을 동원해 도모미 사건의 진범을 밝히려고 한다는 정도로 각색하는게 어땠을까 싶더군요.
최근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문제인데, 화자라 할 수 있는 다쓰유키가 도모미 살해를 꾸몄다는 것은 반칙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려웠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 설정과 스토리를 보면 영상물, 혹은 만화가 더 어울리는 작품이에요. 허나 범인이 사랑하는 이를 잃은 뒤 도주 중인 흉악범을 가장하고 범행을 저지른다는 유사 설정의 작품인 소년탐정 김전일의 <비련호 살인사건>과 비교해 본다면, 누군지는 모르지만 다 죽이겠다! (비련호) 와 누군지는 알지만 확실치 않으니 확인해보자! (가면산장)의 차이인데 저는 <비련호>쪽에 점수를 더 주고 싶네요.
유일한 가치라면 모든 잠재적 범죄자들은 최후의 그 순간, 즉 경찰에게 체포되어 구속영장이 청구될때까지는 무조건 무죄를 주장하며 헛짓거리하지말고 버티라는 교훈 하나만큼은 제대로 전달해준다는 것? 그 외의 무언가는 딱히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그나저나, 최근 읽은 작품 중에서는 가장 리뷰하기가 힘들었는데 이유를 모르겠네요. 리뷰는 별거 없지만 거의 2주에 걸쳐 썼습니다. 리뷰 완성도도 낮고 별로 마음에 들지도 않지만 이게 한계인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2015/11/23

야경 - 요네자와 호노부 / 김선영 : 별점 2.5점

야경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엘릭시르

모두 6편의 단편이 수록된 요네자와 호노부스탠드얼론 단편집.
요네자와 호노부는 널리 알려진 <빙과>와 같은 일상계 단편의 강자인데 여기 수록된 작품들은 일상계라고 보기에는 묵직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대체로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기도 하고요.
그래도 일상계스러운 분위기가 살짝 묻어나는게 신기하기도 했고 추리적으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많아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석류> 라는 용서하기 어려운 쓰레기 망작이 하나 섞여있기는 하지만 다른 작품들의 수준이 무난하기에 전체 평균 별점은 2.5점이네요. <만원>이 워낙 잘 빠진 작품이라 멱살잡고 평점을 올려놓은 감도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요네자와 호노부 팬 분들께 추천드릴만 합니다. 이런 저런 상을 탄 이유는 확실히 있는 듯 싶군요.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리뷰인 점 참고하시길.


<야경>
신입 경찰 가와토 히로시의 순직 사고의 진상은? 모든 것은 가와토의 의도로 목적은 그가 실수로 발포한 총알을 은폐하기 위해서였다는 것. 가와토는 불륜을 가장하여 다바라를 자극한 뒤 발포하여 죽이고, 자기가 이전에 쐈던 총알을 현장에 버리는데 성공하나 다바라의 믿을 수 없는 생명력 탓에 목숨을 잃게 된 것이었다...

가와토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를 파출소장 야나오카 경사의 시점으로 풀어나가는 작품.
무려 두 명이나 사망하는 무거운 내용이지만 분위기는 외려 묘하게 일상계에 가깝습니다. 캐릭터가 선명하고 왠지 모르게 '실제 있을 법 하다'라는 인상을 강하게 전해주기 때문이에요. 개인적으로는 문제아 가와토보다는 경찰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왕따를 자행한 야나오카 경사가 더욱 인상적이긴 했습니다. 이놈, 정말 나쁜놈이더라고요....

딱 한가지, 가와토는 정말로 경찰에 맞지 않는 소심한 민폐덩어리였다는 결말이 약간 찜찜하나 그 외 전개는 깔끔한 수작입니다. 역시나 일상계 전문가 요네자와 호노부다운 작품이었달까요. 별점은 3점입니다. 가와토가 실수로 발포했다는 것에 지나친 우연이 겹쳐있다는 점에서 좀 감점합니다만 읽을만한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사인숙>
사라진 연인 사와코를 찾아 머나먼 시골 온천여관으로 향한 "나". 그곳은 자살의 명소로 알려진 곳으로 누군가 흘린 유서를 발견한 사와코가 어떤 손님이 죽으려하는지 찾아달라고 부탁하는데...

유서에 쓰인 글귀 중 "오늘로 이 년", "오늘 죽었다고 증언해 주시면 여한이 없겠습니다"를 통해 자살의 목적이 "보험"에 얽혀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보험"을 위해서는 이름과 날짜라는 중요한 요소가 빠져있다는 것을 알아낸 뒤 나머지 부분은 물에 흘려보낸 것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흐름이 괜찮았던 작품. 사와코의 힘겨움읗 이해하지 못했던 과거 때문에 사건에 몰두하는 "나"의 심리 묘사 역시 설득력이 넘쳤습니다. 마지막에 자살을 목적으로 한 사람이 사실은 2명이었다는 반전도 의외성은 충분했고요.

하지만 유카타 색깔이라는 단서는 많이 부족했으며 사와코가 그렇게까지 자실을 막고 싶었다면 입구쪽에 CCTV를 설치하면 되는 문제인데 이게 왜 사건이 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더군요. 이런걸 보면 사와코도 결국 죽음을 홍보에 이용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싶어요. 이러한 사와코의 가증스러운 기만때문에(?) 감점하여 별점은 2.5점입니다.

<석류>
딸 유코가 아버지 나루미를 남자로 느낀다는 야설 수준의 이야기. 둘이서 석류를 먹었느니 어쨌느니...하는, 두번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로 찝찝하고 기분 더러운 내용입니다.  유코가 쓰끼꼬를 매질한 반전 정도는 기억에 남으나 도저히 점수를 줄 수 없는 쓰레기. 별점은 없습니다.

<만등>
개발도상국 방글라데시의 가스전 개발을 위해 그것을 거부하는 마을 장로 알람을 살해한 이케다 상사의 이타미와 OGO의 모리시타. 하지만 모리시타는 죄책감에 회사를 그만두고 일본으로 향하며 불안해진 이타미는 그를 쫓아 입을 막으려한다.

모리시타가 콜레라에 걸렸으며 전 일본이 그를 쫓는다는 아이디어가 아주 좋았던 작품. 이타미와 모리시타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공항검역에서 이미 이상없는 것으로 밝혀진 이타미가 콜레라에 걸렸다면 원인은 모리시타와의 만남이라는 인과관계가 형성되며, 모리시타의 과거 행적을 쫓으면 잡점이 드러날테니 이타미는 빠져나갈 방법이 없을테니까요. 그 외에도 무자비한 자원 개발을 반대하는 알람의 사고방식 등의 디테일도 볼만했고요.
딱 한가지, 급작스러운 모리시타의 심경변화가 제대로 그려지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쉽지만 단편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큰 흠은 아닙니다. 독특한 아이디어의 현대판 개미지옥 이야기로 별점 3점은 충분합니다.


<문지기>
오다와라에서 세시간, 이즈 반도의 아마기 산맥을 넘어가는, 즈난정을 향하는 가쓰라다니 고갯길에서 벌어진 네건의 연쇄교통사고 - 파칭코프로 다카다, 사학과 학생 오쓰카, 기둥서방 다자와와 동거녀, 공무원 마에노가 죽은 사고 - 의 진상은 무엇인지?

이야기 자체는 제법 흥미로왔던 작품. 할머니의 수다가 결국 진상에 이르게 만드는 여러가지 복선들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나 고의적인 범행, 즉 살인일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되고, 흑막은 모든 것을 보았다는 휴게소 할머니일 것이라는 것 역시 너무 뻔해서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긴 합니다. 또 진상 - 모든 사건의 원인이 된 다카다의 죽음은 할머니 딸이 죽인 것이며, 흉기는 길가의 석불 행신으로 목이 당시 떨어져나갔는데 그것에 주목한 사람들을 차례로 죽였다는 것 - 의 설득력이 낮다는 것도 단점이에요. 석불 사에노카미 (행신) 목이 떨어진 정도가 무슨 증거가 될 수 있을까요? 그것도 몇년 전 사건인데 말이죠. 물론 할머니의 노파심이라는 측면에서 아주 말이 안되는건 아니지만 납득하기는 좀 어려웠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만원>
학창시절 흠모했던 하숙집 여주인 다에코가 살인사건 피의자가 되자 변호사인 주인공 후지이가 그녀를 위해 재판에 나서게 되는데...

가보인 족자에 피가 튄 것을 사건에 고의성이 없다는 유력한 정황증거로 사용하지만 (그렇게 귀중한 물건을 피해자를 만나는 자리에 내 놓을리가 없다) 사실 족자에 피가 튀도록 한 것 자체가 의도였다는 진상이 놀라왔던 작품. 해당 물건이 중요 증거로 검찰에 압수되도록 하여 다른 재산은 모두 차압당했지만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한 것이죠. 남편 우카와 시게하루가 병사한 뒤 상고를 포기한 것은 보험금으로 빚을 갚을 수 있어서 족자를 빼앗기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고요.
이렇게 법 자체를 변호사도 모르게 범인이 교묘하게 이용했다는 점이 정말 돋보였습니다. 다에코가 주인공과 법률관련 이야기를 들으며 법에 대해 스펀지처럼 지식을 빨아들였다 정도의 묘사만 있었어도 아주 완벽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딱 한가지, 상고를 포기한 것은 이해가 잘 되지 않네요. 죽어서 빚을 갚을 수 있다면 보다 빨리 출소하는 것도 방법이 아니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잘 안됩니다. 뭔가 타이밍 문제가 있었나....

그래도 변호사가 주인공으로 법의 맹점을 다룬 단편 중에서는 손에 꼽을만한 수작임에는 분명합니다. 다카키 아키미쓰의 <살의> 급이었달까요. 별점은 4점입니다.

2015/11/22

오무라이스 잼잼 6 - 조경규 : 별점 2.5점

오무라이스 잼잼 6 - 6점
조경규 글.그림/씨네21북스

<1권 리뷰>
<2권 리뷰>
<3권 리뷰>
<4권 리뷰>
<5권 리뷰>

조경규씨의 웹툰. 얼마전 박스셋트 유감이라는 글을 남기기는 했지만 만화 자체만 놓고 보면 국내 음식 관련 만화 중 손꼽을만 한 작품이죠. 발간된 것을 알고 주저없이 구입했습니다.

이미 5권 분량, 100화가 넘는 이야기가 발간된 터로 내용과 분위기면에서 새로운 것은 많지 않습니다. 이전 리뷰에서 언급했던 장, 단점 모두 거의 그대로에요. 그래서 예전처럼 길게 하나하나 리뷰를 쓰는 것도 큰 의미가 없어 보이고요. 허나 6권만의 특징을 조금 언급하자면, 일단은 이전권에 비하면 훨씬 두꺼워졌다는 점입니다. 4,5권이 488쪽인데 6권은 568쪽이니 80페이지나 늘어났거든요. 에피소드는 동일하게 24화 구성으로, 보너스 만화가 꽤 긴 길이로 실려있는 등 부록과 보너스가 진일보한 덕이죠. 가격도 천원 오르긴 했지만 내용에 비하면 뭐 적정한 수준으로 보이네요.

그리고 이전권의 장, 단점 모두 많이 희석되었다는 것 역시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장점이라고 언급했던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묘함이 그다지 눈에 뜨이지는 않더라고요. 거의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제목과 내용이 일치하는, 그냥 가족과 뭘 같이 먹었다 류의 일상 이야기거든요. 이것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만, 직전 권이었던 5권에서는 상당히 두드러졌던 장점인지라 비교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네요.
반대로 가장 큰 단점이라 생각했던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그렇게 거슬리지 않는 것은 다행스러웠어요. 앞서 말씀드렸듯 늘어난 분량은 모두 부록, 혹은 보너스라 할 수 있는데 예전처럼 가족 이야기로 채워져 있지는 않거든요. 아내에 대한 보너스 만화가 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는 허용범위죠. 여전히 재미가 없긴 합니다만....
또 부록, 보너스 이야기들 - 아보카도 키우기라던가 풍선껌 불기, 결혼식 주례  에피소드, 클래지콰이와의 인연 등 - 과 몇개 안되지만 레시피와 음식 소개 - 절편 떡볶이, 집에서 만드는 파라타, 부위별 수육 도감, 스모어 만들기 등 - 이 단순 사진이 아니라 만화인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진과 글 중심의 탐방기와 인터뷰도 여전하지만 상대적으로는 적은 편이에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기묘한 재미는 떨어졌지만 이전 권에 비하면 공짜로 볼 수 있는 웹툰 대비 소장가치는 소폭 상승하기는 했습니다. 가격이 오른 것은 납득할만 하고요. 그래도 공짜로 볼 수 있는 웹툰이 내용의 대부분임은 분명하니 만큼 구입해야 할 지, 말 지의 여부는 결국 독자가 결정해야 할 몫이 아닐까 싶습니다.

덧붙이자면, 초판 부록인 빵 그림은 대관절 왜 들어있는지도 잘 모르겠더군요. 제건 조금 구겨져서 오기도 했고 말이죠. 혹시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