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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5

금단의 팬더 - 타쿠미 츠카사 / 신유희 : 별점 2점

금단의 팬더 - 4점
타쿠미 츠카사 지음, 신유희 옮김/끌림
아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리사 코타는 아내 아야카의 친구 미사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미사의 결혼 상대가 '퀴진 드 듀'의 주인이기도 한 나카지마의 손자 기노시타 다카시였던 덕분에, 코타는 피로연에서 지고의 요리를 맛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뒤, 기노시타 가문 회사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마츠노 쇼지가 살해당했고, 사장(다카시의 아버지) 요시아키도 실종되고 말았다. 경찰은 나카지마의 유산에 관련된 사건으로 생각했지만, 현경의 아오야마는 밀수와 관계가 있을 거라는 혼자만의 결론을 내리고 독자적인 수사에 착수하는데...

2008년 고노미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공모 대상 수상작입니다. 

그런데 고노미스 대상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추리적으로 별볼일 없어서 실망스럽네요. 같은 대상 수상작이었던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은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지요. 

전개도 엉망입니다. 아오야마가 자신의 생각을 증명하기 위해 하는건 성당에 침입하여 조사하는게 전부입니다. 수사 과정도 짜증나는 심문과 사정 청취가 전부일 뿐 특별한 게 없고요. 딱 하나, 아야카의 옥션 등록 이야기를 복선처럼 활용한 것 하나만큼은 괜찮긴 했는데, 이 역시 너무 자주 등장해서 속이 다 들여다보였어요.

진상 역시 너무 뻔합니다. "워싱턴 조약에 위배되는 불법적인 재료를 조리한 미미극식회라는 모임이 있다", "그 어떤 재료를 가지고도 훌륭한 요리를 만들어 내는 천재 요리사 이시구니", "나카지마 가문의 주변 인물들이 한 명씩 실종된다. 그것도 성별 나이 순으로..." 이 세 가지가 합쳐졌을 때, 다른 진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진상이 너무 뻔해서 독자는 모두 다 알지만 주인공들만 모르는, 기묘한 상황이 되는건 좀 웃기기까지 했습니다. 여태까지 제가 알고 있던 추리소설의 정의를 근본부터 흔들었으니까요. 독자를 어떻게 속여 넘길까를 궁리하는 게 아니라 독자에게는 전부 알려주면서 등장인물만 모르게 하다니! 완벽하게 주객전도된 느낌입니다.

아울러 음식, 맛에 대한 묘사를 빼면 다른 묘사는 진부하고 별볼일 없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특히나 탐정역인 현경의 아오야마 캐릭터는 정붙이기 힘든, 자기 멋대로에다가 예의는 찾아볼 수도 없는 재수 없는 인간으로 묘사되어 영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보다 압도적으로 표현되었어야 할 뱅상 신부와 갓 나카지마 역시 그냥 말 많은 악당으로만 보이고요. 미식에 대한 집착이 대단한 나카지마에 비해 그냥 "젊어지기 위해" 인육을 먹으려 한다는 뱅상 신부의 동기도 전혀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직업 의식에 충실한 이시구니만 제법 그럴 듯했는데, 여러모로 포스는 부족했어요.

그래도 '미식 미스터리'라는 별칭에 걸맞게 음식과 맛에 대한 묘사는 그야말로 발군이기는 합니다. 코타가 결혼식에서 처음으로 퀴진 드 듀의 셰프 이시구니의 코스 요리를 맛볼 때의 묘사, 그리고 코타의 가게 "비스트로 코타"에 갓 나카지마와 이시구니가 방문했을 때 묘사 이렇게 두 번이 개중에서도 백미입니다. 정말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탁월합니다.
심지어 바로 앞서 말씀드렸던, 인육으로 만드는 실제 요리에 대한 자세한 묘사마저도 유감없이 발휘됩니다. 한 마디로 "특별 요리"를 코스테인 시점이 아니라 스비로스 시점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이러한 시도는 비교적 참신했습니다. 묘사 역시 여태까지 제가 보아왔던 다른 동일 설정의 작품을 능가한다고 할 수 있고요.

또 요리를 시험해 본 이시구니의 결론 - 인육은 냄새가 강하다. 숙성시키면 그 냄새가 더 심해진다. 가능한 한 신선하고 어린 고기를 사용하는 게 제일이다. 특히 남자 고기는 냄새가 나고 딱딱하다. 여자 고기 쪽이 질이 좋고 냄새도 적고 부드럽다. - 덕분에 기노시타 요시아키 - 나카지마 유리 - 기노시타 미사 - 시바야마 아야카로 이루어지는 유괴의 연계가 설득력을 갖추게 된다는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아, 물론 인육이 아니라 모든 고기에 다 해당되는 이야기이긴 하죠? '애저찜'이라는 요리도 있으니)
요리사 코타가 요리사로서의 호기심과 인육이라는 재료의 매력에 굴복하여 페이스트 (혹은 퐁)에 스푼을 꽂는다는 마지막 묘사도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어떻게 보면 요리사이기에 쓸 수 있었던 결말이었다 생각되네요.

마지막으로 주 무대가 고베인데 주요 등장인물 몇 명이 제대로 된 사투리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도 아주 마음에 듭니다. "오사카 소년 탐정단" 리뷰에서 사투리를 사용한 번역이 없어서 아쉽다고 적었었는데 역시나, 사투리로 번역하는 게 훨씬 좋군요. 누가 토박이이고, 누가 좀 재수 없는지 등 캐릭터마저도 살아나니까요. 고베에 대한 상세한 풍경 묘사는 약간 여정 미스터리 느낌도 들게 해주었고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뻔한 설정을 실제 요리사인 작가가 자신의 전문 분야를 살려 차별화한 점 하나만큼은 점수를 주지만, 추리적으로는 너무나 기대 이하라 감점합니다.

덧붙이자면, 제목은 영 이해가 안 되는군요. '팬더'가 대나무를 먹게 된 것은 타의에 의해서가 강하고 원래 육식을 좋아하는 동물이었다라는 이야기를 가지고 금기되는 음식을 먹는 행위를 설명하려 하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팬더가 팬더를 먹었기 때문에 벌을 받았다는 이야기로 이어지는 것은 순전한 작가의 창작일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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