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붉은 악몽 -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포레 |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요리코를 위해>에서 니시무라 유지의 죽음을 방조한 후, 탐정이라는 업무에 대한 깊은 고민에 휩싸이게 된 노리즈키 린타로가 아이돌 스타 하타나카 유리나 나를 도와주면서 스스로도 다시 일어선다는 내용의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 장편.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제가 읽은 노리즈키 시리즈 중 최악이었습니다.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을 수 있는 추리물로서의 완성도가 별볼일 없어서 점수를 주기가 마땅치 않은 판국에, 엘러리 퀸의 작품으로 철학을 하는 가당찮은 전개까지 보여주니 점수를 줄래야 줄 수가 없네요. 추리 소설로의 본질을 잊고 퀸에 미친 작가가 어설프게 신성화 작업을 한 결과물에 불과해요. 후기에서 작가 스스로가 1992년 작품 집필 당시에는 퀸에 미쳐있었다, 일종의 인격 장애였다라고 까지 이야기 할 정도니 오죽하겠습니까.
신성화 작업에 몰두했기 때문일까요? 이야기 자체도 부실합니다. 노리즈키가 요리코 사건으로 슬럼프에 빠졌다는 설정부터 공감하기 힘들어요. <요리코를 위해>에서의 니시무라 유지는 죽어도 싼 놈이거든요. 노리즈키가 니시무라의 자살을 도왔고 (방조했고), 설령 그것이 니시무라 우미에의 안배였다 하더라도 그 사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죠. 외려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해 준 건 자비에 가까운 행동으로 보입니다. 어차피 우미에가 흑막이라는 이야기는 철저히 사족이었고요.
또 나카야마가 제수씨와 불륜을 저질러 아이까지 낳게 만든 것 역시 엄청난 잘못으로 죽어도 싼 범죄라 생각되는데, 왜 나카야마와 미치오가 피해자인 것 처럼 그려지는지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유리나가 살인자의 딸이라는 원죄의식을 벗어버린다 하더라도 엄마의 불륜으로 인한 부적절한 태생이며 그 불륜으로 두명이나 죽었다라는 또다른 원죄는 벗어날 길이 없잖아요?
이러한 문제점 투성이인 본편 이야기보다는 차라리 모리야마 감독이 유리나를 주연으로 만드려는 영화의 원작인 요시모토 하기나의 <투 오브 어스>에 대한 소개가 더 매력적이었습니다.
앞서 말했듯 추리적으로도 정말 별로에요. 애초에 가짜 칼로 찌르기로 했는데 그것을 착각했다는건 말도 안돼죠. 감촉으로 충분히 알 수 있을테고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쓰러진 다음에 피해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후 모리야마 감독의 부인이자 유리나의 친어머니 나카야마 미치오가 사건에 급작스럽게 개입하는 것 역시 지나치게 작위적일 뿐 아니라,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 미야마에가 계획에 실패한 오스기를 만남 -> 모리야마 부인이 가짜 칼을 빼앗아 오스기를 찌르고 사라짐 -> 멀쩡히 일어난 오스기를 미야마에가 다시 칼로 찔러 살해 - 모두 운, 우연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것이라 정교하게 짜여졌다고 보기 힘듭니다.
그나마 괜찮은 것은 오스기 슌이치가 입었던 흰색 터틀넥의 등 쪽에 피가 묻은 이유에 대한 것과 오스기 슌이치의 계획을 간파한 뒤 방송국 의무실 담당자가 연루되어 있으리라 추리하는 것 정도입니다. 여기서 미야마에로 끈이 이어지게 되기도 하고요. 흰색 터틀넥 트릭이야 상의 앞을 잠그는건 별로 수상할 것 같지 않다는 문제가 있긴 합니다만, 이 정도면 이 망작에서 그나마 건질만한 부분이에요.
그래서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1점을 줘도 될 정도지만, 중간에 나오는 80년대에서 90년대 초에 이르는 일본 연예계와 아이돌에 대해 설명해주는 부분, 그리고 아주 약간 건질만한 추리적 장치 때문에 0.5점 더 얹습니다.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 팬이시라도 피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덧붙이자면 후기에서 '미스터리는 작가의 말 그대로 보다 건전하고 순수하고 명랑하며 철저히 오락이어야 한다'라고 반성의 글을 남겼던데,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렸으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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