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코를 위해 -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이기웅 옮김/포레 |
가족의 보물이라 할 수 있는 딸 요리코가 교살된 시체로 발견된다. 대학 교수인 아버지 니시무라는 범인을 직접 찾아 응징하기 위해 스스로 수사에 나선다. 그가 범인으로 지목한 인물은 요리코의 담임인 히이라기. 그는 히이라기를 살해하고 모든 것을 기록한 수기를 유서 대신 남긴채 자살을 기도한다.
그러나 운좋게 니시무라가 살아난 뒤 노리즈키 린타로에게 사건의 진상을 밝혀달라는 의뢰가 복잡한 의도와 함께 접수되고 노리즈키는 수기를 읽고 탐탁치 않은 점을 밝혀내기 위해 수사에 뛰어든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초기 장편. 작가의 초기 대표작이라고 하는군요. 범죄 계획, 과정이 쓰여진 전체 분량의 1/5 정도 되는 수기에서 시작하여 노리즈키 린타로의 수사와 추리로 진상이 밝혀지는 구성의 작품입니다. 처음에는 초반의 수기 자체가 한편의 추리 소설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잘 짜여져 있을 뿐더러 그 자체가 완벽한 범행 계획이기도 하여 도서 추리물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제가 딸아이 아버지로 내용에 굉장히 깊이 몰입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죠. 니시무라를 응원할 수 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읽다보니 수기는 완전 범죄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며 충격적인 진상은 따로 있다는 결론인데 극적인 맛이 상당합니다. 수기 - 추리로 이어지는 구성의 승리이기도 하죠. 특히 요리코 아이 아버지의 정체와 그에 따른 진상, 반전은 발표된지 20여년이 지난 작품이지만 지금 읽어도 충분히 충격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1990년이라는 발표 시점에 접했다면 깜짝 놀랐을 수도 있겠어요. 아이 아버지의 정체는 중요한 것은 아니고 일종의 도화선, 트리거 역할만 한 것이긴 합니다만.
그러나 신본격 작가의 작품임에도 정통 본격 추리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기는 합니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수사는 전형적인 관계자 탐문 인터뷰에 지나지 않고 이 과정에서 모든 단서가 밝혀지기 때문에 딱히 명탐정이 필요한 내용은 아니거든요. 동기가 우발적인 연쇄 성폭행범의 소행이 아니라면 유리코가 임신한 아이와 관련된 것이 분명하기에 용의자가 좁혀질 수 밖에 없고 어차피 구니코와 같은 최측근은 이미 진상을 눈치채고 있었다는 점에서도 그러한데 개인적으로 이런 내용이었다면 차라리 구니코 (아니면 다카다군)가 탐정역을 수행하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명탐정이 등장하는 것 부터가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등장하는 이유도 사이메이 학원 측에서 이 사건을 덮기 위해서 명탐정이 수사한다는 소문을 퍼트리려 한다!는 것인데 말도 안돼죠.... 아무래도 작가가 시리즈로 끌어가고 싶은 욕심이 너무 과했던게 아닌가 싶네요.
그래도 등장했더라면 뭔가 명탐정스러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에요. 이 작품에서 노리즈키 린타로의 역량은 의심스러울 뿐입니다. 특히 니시무라의 자살을 방조한 것은 용서하기 어려운 행동일 뿐더러 딱히 이런 행동을 취할 이유도 없죠. 경찰 취조가 이어졌다 하더라도 니시무라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면 딱히 바뀔 것도 없고 니시무라는 이후 개인적으로 얼마든지 자살할 수 있었을테니까요. 또 범인이 적은 수기에서 발견된 사소한 오류, 고양이가 이미 죽어있었다는 것 정도는 증거로 보기에는 터무니없이 빈약하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수기의 오류는 얼마든지 창작자가 고칠 수 있는 수준으로 보이고 고양이 이야기는 너무나 불필요해서 외려 수기에 적은게 이해가 되지 않거든요. 이러한 점에 더하여 극적 반전에 많이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심리 스릴러로 보는게 타당한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또 작위적이고 억지스러운 설정이 존재하는 것도 단점입니다. 경찰 수사가 허술한 것이 대표적인 예로 요리코가 다니던 명문 여학교 사이메이, 사이메이 이사장의 오빠인 중의원 의원 측에서 압력을 행사했다는데 정도가 지나쳐요. 최소한 히이라기라는 쓰레기 교사의 정체 정도는 경찰 수사에서 덮여졌더라도 매스컴을 통해 충분히 밝혀졌을 터이기에 어차피 사이메이 학원의 평판은 바닥에 떨어졌을 것이 뻔하고요. 억지로 노리즈키를 엮어 넣기 위한 장치일 뿐이었어요.
사건의 핵심 동기라 할 수 있는 니시무라 증오의 원인, 즉 니시무라가 요리코를 미워했다는 것도 전혀 와닿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런 일 - 어린 딸아이의 돌발행동으로 임신한 아내가 차에 치어 불구가 되고 아이마저 잃었다 - 이 벌어졌더라도 무사히 한명의 아이라도 살아난 것을 감사했을겁니다. 아무리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라 하더라도 이건 너무 억지죠. 작가도 억지라는 것을 알았는지 니시무라와 우미에의 오래된 관계를 길게 설명하며 어떻게든 설득하려 시도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이해할 수 없어요. 작가도 이 당시에는 어땠을지 모르나 결혼하여 애가 생겼다면 아마 생각이 바뀌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러고보니 요리코의 작전도 이해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군요. 히이라기와 관계를 가진 뒤 임신하지 못했다면 어쩔 셈이었을지 잘 모르겠어요. 임신이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은 아닌데 말이죠. 아버지가 술에 취할 때를 또다시 노렸을까요? 참으로 복잡한 인생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미에가 이 모든 것을 조종했을 것이다라는 에필로그는 왜 나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마지막 에필로그없이 그냥 노리즈키가 병실문을 닫고 나가는 것으로 끝나는게 더 깔끔했을 것 같아요.
그래도 불만과 단점을 잔뜩 써 놓기는 했지만, 읽는 재미는 충분하며 여러모로 생각해볼만한 거리도 많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노리즈키 린타로라는 작가의 역량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때문에 별점은 3점입니다. 독자가 아이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평이 갈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비슷한 내용, 설정의 작품을 어디에선가 본 것 같기도 한데 한번 찾아봐야겠습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