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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1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 레이먼드 챈들러 / 안현주 : 별점 3점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 - 6점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안현주 옮김/북스피어


레이먼드 챈들러의 다양한 편지들을 주제별로 모아놓은 서간문집. 그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해 주는 글들이 가득합니다. 그의 창작관과 인생관은 물론 헐리우드에서의 생활이나 고양이, 아내와의 사별과 그녀에 대한 사랑과 같은 일상사와 농담들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 걸친 다양한 편지들이 수록되어 있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창작론, 창작관에 대해 쓴 편지들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저도 작가 지망생이기 때문인데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것들입니다.

  • 챈들러 스타일로 글을 쓰는 방법. 쓸 수 있을 때는 쓰고, 쓸 수 없을 때는 쓰지 않는다. 전업 작가라면 적어도 하루에 네 시간 이상 일정한 시간을 두고, 그 시간에는 글쓰기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꼭 글을 써야 할 필요는 없고 내키지 않으면 굳이 애쓰지도 말아야 한다. 다만 다른 어떤 일도 하면 안된다. 글을 쓰거나 아니면 아무 일도 하지 말 것. 아주 간단한 두가지 규칙. 첫째, 글을 안 써도 된다. 둘째, 대신 다른 일을 하면 안 된다.
  • 작가란 몹시 고된 직업이다, 성공한 사람은 극소수다. 글로 먹고살 가능성은 아주 낮다
  • 창작 교육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이미 출간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연구하고 분석해서 알아낼 수 없는 건 하나도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도움이 된다는 건 인정하고 때로는 필수적이기도 하나 그걸 위해 돈을 내야 한다면 대체로 수상쩍은 것이다.
  • 나도 그저 그런 추리소설이 너무 많다는데는 동의하지만 엄밀하게 보면 모든 종류의 책들이 다 그저 그렇습니다.
  • 내가 만난 어떤 추리소설가도 자신이 하는 일이 가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좀 더 잘 쓸 수 있기만을 바랄 뿐.

다른 작가와 작품을 평한 것도 인상적이에요. 굉장히 신랄한데 특히나 제임스 케인에 대해서는 문학계의 쓰레기, 매춘부의 집 같다라고까지 엄청나게 비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정적이고 날것의 문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렇게까지 비판할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중배상>의 각본을 쓴게 몹쓸 경험이었으려나요? 또 편집자에게 쓴 이러한 돌직구 평가 편지 뒤에 직접 제임스 케인에게 쓴 편지가 이어지는 책의 구성도 재미있었어요. 뒷담화하다가 본인과 대면한 술자리 느낌이니까요. 직접 쓴 편지 자체는 평범했습니다만.
로스 맥도널드의 뭔가 있어보이는 문체 (예를 든 것은 "녹이 여드름처럼 돋아있다") 에 거부감을 느끼며 허세로 보는 시각도 특이했습니다. 이러한 서정적 문체가 맥도널드의 작품을 다른 하드보일드 작품들과 구분하는 매력포인트라 생각하기는 하지만 정직한 직구 승부의 챈들러라면 당연한 반응이긴 하겠죠. 제임스 해들리 체이스도 어마무시한 싸구려 소설이라고 매도하고 있는데 내용을 읽어보니 이건 자신과 해밋의 문장을 표절한 탓이 크니 정당한 비판일 수도 있을테고요.

반대로 높이 평가하고 있는 작가들도 있습니다. 서머싯 몸과 오스틴 프리먼에 대해서는 호평이고 피츠제럴드 역시 극찬하는 쪽입니다. 피츠제럴드는 그럴줄 알았습니다만. 펄프 픽션의 제왕이라 할 만한 얼 스탠리 가드너와 페리 메이슨 시리즈를 엄청나게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은 이해가 잘 되지 않더군요. 딱히 문학적으로나 내용적으로 높이 평가할만한 수작들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말이죠.

그 외에 새롭게 알게 된 내용도 몇가지 있습니다. 엄청나게 재미있게 감상했었던 히치콕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 시나리오 초고를 챈들러가 썼다는 것이 대표적인데 챈들러의 막말로 히치콕이 그를 해고한뒤 초고 역시 쓰레기통에 넣었다니 안타깝네요. 초고대로 영화가 만들어졌더라면 범죄소설과 범죄영화 거장의 진정한 콜라보를 볼 수 있었을텐데 말조심좀 할 것이지... 아울러 면전에서 대놓고 욕을 했다면서 편지로 구구절절하게 자신의 글을 변명하는 챈들러의 태도도 보기 좋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빅슬립> 시나리오 작업 중 언급한 최고의 멋진 장면에 대한 소개도 기억에 남네요. 보가트와 카멘이 가이거의 집에 갇힌 뒤의 이야기인데 이로서 <빅슬립> 영화를 다시 봐야 할 이유가 하나 생겼네요.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데 이 편지에 언급된대로의 장면이라면 정말 멋질 것 같습니다!

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레이몬드 챈들러라는 인물에 대해 상세하게 알 수 있고 당대 헐리우드 및 추리문학계에 대한 여러가지 지식과 재미도 얻을 수 있는 독특한 서간문집입니다. 가격에 비하면 분량이 짧다는 점 때문에 감점하지만 하드보일드 팬이라면 한번 읽을만한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덧 : 국내에서는 하드보일드의 거장이라서가 아니라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팔린다니 왠지 서글퍼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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