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형사 맷(매튜 스커더)에게 마약상 케니가 찾아와, 자신의 아내를 납치하고 잔혹하게 살해한 범인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맷은 조사를 통해서 유사한 사건들이 1년 사이에 연쇄적으로 일어났다는 것, 그리고 묘지 관리인 루건이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걸 알아내는데...
로렌스 블록의 매튜 스커더 시리즈 중 한 권인 "무덤으로 향하다"를 영화로 만든 작품입니다. 감기몸살로 몸져누워 있는 와중에 IPTV로 감상했습니다.
"테이큰"으로 꽃중년 액션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신기원을 연 리암 니슨이 주연을 맡았는데, 이 영화의 장점도 리암 니슨이 구체화한 매튜 스커더 캐릭터에 대부분 의지하고 있습니다. 원작 팬이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매튜 스커더 그 자체거든요. 비주얼, 연기 모두 최고였습니다. "테이큰"에서처럼 슈퍼 액션 영웅은 아니고, 우리 주위에 흔히 있음직한 평범한, 아니 평범하지는 않지만 전직 경찰로서 어느 정도 예상되는 활약을 해 주는, 평범에 가까운 중년 아저씨라는 굉장히 현실적인 인물을 잘 그려내고 있거든요. 총질은 여러 번 해야 한 발 맞는 수준이고, 미행도 절뚝거리며 쫓아다니는 수준, 악당이나 용의자들의 습격에는 거의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식인데 저는 굉장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원작에서의 잔인한 폭력 묘사를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묘사한 것 역시 괜찮더군요. 대놓고 보여주는 것보다 더 끔찍했습니다. 악당 콤비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도 현실적이면서 끔찍한 캐릭터를 구체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고요. 세기말인 1999년이 무대라는 것도 묘하게 잘 어울렸습니다.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원작 팬이 아니라면 즐길 거리가 마땅치 않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영화만 본다면, 매튜가 왜 이렇게 금주 모임에 열성적인지 알기 힘들테니까요. 더욱이 앞서 말한 이유로 "테이큰"과는 전혀 다른 영화이기 때문에 "테이큰"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밖에 없을테고요.
때문에 원작을 읽지 못한 관객을 위해서 최소한 범죄 스릴러로서의 얼개는 충실히 갖추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도 단점입니다. 잔인함과 폭력이 두드러지지만 나름 범인들의 정체를 알아내는 과정까지의 수사는 그럴듯했었던 원작에 비해, 영화는 정교한 수사는 하나도 없이 우연과 운에 의지하기만 하니까요. 묘지 관리인 루건이 사건에 연루된 것을 알아내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범인들을 만나게 된 것도 수사와는 관계없는 범인들의 추가 범죄 탓이고요. 매튜의 매너 있으면서도 충실한, 덕분에 설득력 넘치는 탐문 수사 과정만 볼거리였습니다.
결말도 문제입니다. 케니마저 죽고 매튜와 악당이 한판 대결을 벌이는 클라이막스는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습니다. 매튜 스커더 캐릭터가 앞서 말했듯 평범에 가까운 아저씨라 이런 역할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 무리한 액션 클라이맥스 연출 욕심에 좋았던 설정을 날려버리기만 했어요. 이보다는"왓치맨"에서 소녀 유괴범을 찾아낸 로어샤크 같은 응징이 깔끔했을 겁니다. 범인들은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들이니까요.
마지막에 액션을 넣고 싶었다면 잘 뽑기라도 하던가, 액션을 너무 못 찍은 것도 아쉽습니다. 정작 중요한 마지막 묘지에서의 총격전에서 금주 모임의 계명과 교차 편집하는 효과는 욕심만 과했지 이도 저도 아닌 결과물입니다. 악당도 왜 총질이나 칼질이 아니라 번거로운 목조르기를 시도하는지 알 수 없고요.
마지막으로 T.J는 소설에서는 핵심 인물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사족에 불과하다는 것도 안타깝더군요. 후속편을 의식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단지 매튜 스커더의 인간미, 부성애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에 불과했기에 이렇게 사용될 거면 안 나오는 게 나았을 것 같습니다. 무슨 병이 있다는 등의 배경 설명까지 해 줄 정도의 역할은 절대 아니었어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주인공 탐정과 범인이 모두 설득력 있게 묘사된 웰 메이드 하드보일드 범죄 영화입니다. 그러나 원작을 읽지 않았다면 설명이 부족할 수 있고 정교한 전개의 맛은 부족하며, 액션 연출과 스토리라인은 지루하다는 문제는 큽니다. 원작 팬이시라면 살아 숨 쉬는 매튜 스커더를 만나는 기쁨이 있겠지만, 그렇지 않으시다면 딱히 찾아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리암 니슨 주연으로 다른 매튜 스커더 시리즈들도 영화화되었으면 하는데, 월드와이드 5천만 불을 겨우 넘겨 손익분기점에 간당간당 못 미친 흥행 결과를 보면 좀 힘들 것 같네요.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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