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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9

파리인간 - 한스 올라브 랄룸 / 손화수 : 별점 2.5점

파리인간 - 6점
한스 올라브 랄룸 지음, 손화수 옮김/책에이름

<하기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에 대한 저항군으로 활약했고 전후에는 고위 관직도 역임했던 하랄 올레센이 자택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수사 총 책임자로 임명된 콜비외른 크리스티안센 경감에게 어린 시절 알고 지내던 랑나르 보르크만 교수가 자신의 딸 파트리시아를 소개하여 수사에 대해 조언을 받을 것을 권하고, 그녀의 뛰어난 추리력을 알아챈 크리스티안센은 그녀와 함께 사건 해결을 위해 나아가는데....

노르웨이 작가의 추리소설. 원래 북유럽 쪽 추리소설은 취향이 아닌데 평이 굉장히 좋았기에 읽게 되었습니다.

이래저래 제 예상과는 많이 다른 특이한 작품인데 특이사항 첫번째는 정통 본격물 느낌의 작품이라는 점입니다. 북유럽 추리소설이라 <웃는 경관>이나 발란더 시리즈와 같은 묵직한 수사물이나 요 네스뵈로 대표되는 스릴러라고 예상했는데 의외였어요. 첫 사건인 하랄 올레센 살인사건에 사용된 밀실 트릭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현대에 쓰여진 작품이지만 시대배경이 1968년이라 비교적 고전적인 추리가 사건 수사에 동원될 여지가 많았던 것 같네요.
두번째 특이사항은 탐정역의 천재 소녀 파트리시아 캐릭터입니다. 발로 뛰는 형사와 장애가 있어 칩거하는 천재 소녀의 조합도 전통적인 안락의자 탐정물 형식을 그대로 따른 것인데 불구의 천재는 링컨 라임이 독보적이기야 하겠지만 추리소설을 백여권 읽은 추리소설 매니아라는 설정이 독특해요. 같은 매니아로서 마음에 들기도 했고요. 처음 만났을 때 책상에 놓인 책 중 한권은 스텐리 엘린의 작품이라는 디테일까지! (1968년은 <발렌타인의 유산>이 발표된 해이기도 하죠) 매니아답게 여러가지 추리소설을 응용하며 대화를 하는 것도 재미있는데 아이 울음소리를 불평한 주민이 있었는지를 물어보는 식으로 셜록 홈즈를 흉내내는 것 같은거 말이죠. 중반부에 공소시효가 끝난 뒤 벌어진 동일한 범죄를 다룬 조르주 심농의 작품을 언급한 것도 기억에 남는데 무슨 작품일까 궁금해집니다. 물론 추리소설 백여권 읽은 걸로는 매니아계에 명함도 내밀지 못할 수준이라 생각되기는 합니다만...
아울러 최근 작품에서는 보기 드물게 범인이 가짜 범인을 조작하는 과정이 등장한 것도 특이한 점입니다. 이런 점도 고전 정통 본격물 스타일이라 할 수 있겠죠. 그 외에도 여러 증언들을 정교하게 배치하여 진상까지 끌고가는 솜씨도 상당히 인상적이였어요.

이러한 고전적 추리 스타일에 더하여 전쟁영웅인줄로만 알았던 하랄 올레센의 과거가 아파트 거주민들을 통해 하나씩 밝혀지는 과정이 흥미진진해서 무척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2차대전 중 국경지대 안내인이 자기 방어를 위해 두명의 유대인 부부를 사살한 후 무죄판결을 받았던 펠드만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다는데 역사학자라는 작가의 특징이 잘 발휘된 느낌이에요. 안데르손에게 듣는 하랄과 디어풋의 목숨을 건 탈출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이야기가 될 정도로 박진감이 넘치는 등 디테일도 상당히 볼거리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작가의 데뷰작이기 때문일까요? 아쉬운 부분도 많이 보입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정통 추리물의 스타일을 따르고는 있지만 실제 추리적인 내용이 그렇게 잘 짜여져 있는 인상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물들이 하랄과 엮여있다는 작위적인 인간관계도 지나쳤으며 주요 인물들의 증언이 거의 모두 거짓이라 처음부터 공정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맛도 부족했고요. 처음에 등장하는 밀실 트릭은 레코드판이 아니라 테이프를 사용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유치한 수준에 그칠 뿐더러 반 다인의 작품 등에서 이미 선보였던 고전적인 트릭이라 참신성이 부족했습니다. 휠체어에 앉아있던 장애인의 정체가 드러나는 마지막 장면도 슈퍼맨 크리스토퍼 리브가 출연했던 수작 스릴러 <서스피션> 등 여러 작품에서 숱하게 등장했던 것이죠.마지막에 모든 주요인물을 모아놓은 추리쇼와 같은 작위적 설정까지 고전적 스타일을 답습했어야 했는지는 솔직히 의문입니다.
또 비록 이십여년이 지났지만 사진까지 있는데 디어풋의 정체를 알아채지 못한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고 범인이 왜 원래 계획대로 자살을 위장한 완전범죄를 벌이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총도 새로 구해왔으니 모든 준비가 끝난거 아닌가요?
덧붙이자면 사라의 미모와 크리스티안과의 불륜은 지나치게 과하게 묘사된 듯 싶었어요. 할리퀸 로맨스 성인버젼을 읽는 기분이었으니 말 다했죠.

그래도 이 정도면 꽤 괜찮은 데뷰작인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추리적인 완성도가 미흡하여 별점은 2.5점입니다만 읽히는 재미만큼은 충분하므로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께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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