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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5

역대급 창귀사의 회귀 - 조선생님 / 스튜디오 이너스 : 별점 1.5점

창의 달인으로 제국과 황제 카이사르에게 충성을 다하다가 버려져 죽은 조슈아는 창 루기아의 힘으로 9살 시절로 회귀했다. 카이사르를 비롯해 자신을 죽이는 데 가담했던 자들에게 복수하려는 일념으로 능력을 갈고닦은 그는, 다시 한 번 제국 제일의 인재로 떠오르고 파란의 중심에 놓이는데...

꽤 인기가 있는 판타지 회귀물입니다. 저는 본편만 웹툰으로 감상하였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별로였습니다. 조슈아가 지나치게 강해서 위기를 느끼기 어렵고, 복수물로 보기에도 그 과정이 시시한 편이기 때문입니다. 처절한 몰락 끝에 복수를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압도적인 강함으로 제압하고 끝내 버리니 별다른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힘들어요.
복수극으로 그냥 끌고 갔더라면 모를까, 마신, 천계에서 추락한 천사 등 쓸데없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길게 늘린 것도 영 마음에 들지 않고요. 마신이 나왔다 쳐도, 어차피 킹왕짱 조슈아가 끝장내 버릴텐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작품만의 독특한 세계관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전체적으로 어디선가 본 듯한 소재들을 짜깁기해 나열한 인상이 강합니다. "창술"을 강조한 설정은 조금 눈에 띄지만, 작품 안에서 그것이 효과적으로 활용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창이 아니라 검이었어도 이야기는 충분히 성립했을 테니까요.

아발론, 휴발트, 스왈로우 제국이 각자의 힘을 앞세워 각축을 벌이는 군웅극 같은 부분은 나름 흥미로웠지만, 이 역시 근본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압도적인 강자들이 수만, 수십만의 군대와 싸워 이길 수 있다는 설정 때문입니다. 결국 각 나라의 수장의 강함이 곧 국력으로 이어지는 셈인데, 애초에 조슈아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긴장감이 생기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이제는 이런 류의 양산형 웹툰은 그만 봐야겠습니다. 주말을 그냥 날린 느낌이네요.

2026/02/28

상점가의 전진 - panpanya / 유유리 : 별점 3점

국내에 출간된 전권을 구입해 읽을 정도로 사랑하는 작가 panpanya의 신작입니다. 출간 사실을 뒤늦게 알아 구입이 조금 늦었습니다.

이번에는 단편 열여섯 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대부분 언제나처럼 일상 속에서 기발한 발상을 끌어내 독특한 재미를 전해 줍니다.

이번 권의 특징이라면 ‘건물’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는 점입니다. 간략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집의 집"은 집 가족이 자라고 성장해 하나의 큰 집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개연"은 멀리 보이던 집들이 사실은 건설업체의 간판이었다는 설정입니다.
"슈퍼 하우스"는 집이 일종의 로봇이 되어 외부의 공격을 격퇴합니다.
"즐거운 부동산"에서는 복권으로 택지에 당첨된 뒤 집 프라모델을 구입해 집을 건설합니다.
"윤번지"는 상속받았지만 사라진 땅을 탐정인 주인공과 레오나르도가 찾아 나서는 이야기입니다. 알고 보니 그 땅은 과거 투영법 제작 과정에서 오류가 생긴 평면 지도로 인해 발생한 사기였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은 입체를 평면으로 만들 때 발생하는 어긋남을 다시 분석해, 이 ‘윤번지’가 지하에 위치했다는걸 밝혀냅니다.
"빌딩"은 빌딩이 원래 싹이며, 그것을 잘 키워 만들어낸다는 내용입니다.
"상점가의 전진"에서는 확장하고 이동하는 상점가를 따라 주인공이 집을 상점가에 포함시켜 가게를 열고 이사까지 하지만, 다른 현으로의 이동까지는 동참하지 못해 결국 상점가를 떠납니다.

이 가운데에서는 특유의 상상력과 과학적 설명이 잘 결합된 "윤번지"가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구체를 평면으로 만들 때 발생하는 오류를 이런 방식으로 풀어내는 작가가 또 있을까요? 신선하고 재미있었어요.

주인공과 파트너인 충견 레오나르도가 어딘가에 도착한 뒤, 현재 위치가 어디인지 밝혀내는 "여기는 어디일까요?" 시리즈도 여러 편 수록되어 있습니다. 확보할 수 있는 단서를 최대한 모은 뒤, 과학적이면서도 논리적인 추론으로 정답에 접근해 나간다는 점에서 일종의 추리물 같은 재미를 줍니다. 단순한 귀납적 추리가 아니라 과학적 논리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점이 특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직사각형 모서리 방의 양쪽 끝에서 도쿄 스카이트리와 후지산이 각각 보이면 ‘원주각 정리’가 성립하고, 거리를 감안하면 현재 위치는 미우라 아니면 이타미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시리즈 8편이 대표적입니다.


"올바른 주먹밥 개봉 방법"은 주먹밥 스티커를 훼손하지 않고 뜯어내는 방법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뒤의 해설을 보니 작가가 실제로 주먹밥 스티커를 수집하며 연구한 듯한데, 그런 경험이 없다면 알기 어려운 디테일이야말로 panpanya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구야바노 홀리데이", "카스텔라풍 찜케이크 이야기" 처럼 말이지요.

다만 "집의 집"이나 "빌딩"처럼 설정이 다소 단순한 작품과, "슈퍼 하우스"에서 보이는 panpanya답지 않은 액션물 분위기의 전개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공격을 내선번호로 시도한다는 디테일은 재미있었지만요.


"여기는 어디일까요?" 시리즈 역시 몇 편은 다소 식상하게 느껴졌고, 이야기로서 충분히 설득력 있게 성립하는지 의문이 드는 작품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anpanya 특유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입니다. 다음 작품도 빨리 나와주면 좋겠네요.

2026/01/18

파이어 펀치 1~8 - 후지모토 타츠키 : 별점 2점

"체인소맨"으로 인기 절정을 달리는 작가 후지모토 타츠키의 첫 장편 연재작입니다. 연재 당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작품이지요.
복수를 위해 살아가는 아그니, 그를 이용해 자신만의 영화를 만드려는. 아그니를 신으로 숭배하는 산, 아그니와 대척점에 서 있다가 그를 포용하게 되는 유다 등의 이야기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작품으로 일종의 초인물입니다. 

그러나 인터넷의 평가와 마찬가지로, 현 시점에서 좋은 작품이라고 보기는 여러모로 어렵습니다.

물론 재생 능력으로 사람들을 먹여 살리지만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길에 휩싸이는 벌을 받은 아그니가 복수를 다짐하는 초반부만큼은 대단합니다. 구세주가 고통을 잊고 현재의 안식을 찾지만 그것을 방해하는 추종자들 때문에 다시금 고통으로 뛰어든다는 일종의 윤회, 종교적 세계관을 독특하게 풀어낸 것도 작가가 될성부를 떡잎이라는걸 느끼게 해 주고요.

그러나 이런 매력적인 설정을 잘 살리지는 못했습니다. 토키타와 함께 연극, 연기 이야기가 나오면서 이야기가 점점 이상해지는 탓이 큽니다. 아그니를 이용하여 자신의 영화를 제작하려는게 목적인 토키타 자체는 독특해서 나쁘지는 않아요. 그러나 이야기에서 겉돕니다. 완벽한 영화를 위해서 모든걸 통제하려는 흑막도 아니고, 단지 자신의 재미와 흥미만을 위해 순간순간을 살아가려는 즉흥적인 모습만 보이니까요. 모든게 연기이고 연기가 중요하다는 그녀의 말과는 정 반대로, 본능에 충실한 삶을 이어갈 뿐입니다.
또 이 연기라는 설정도 문제입니다. 그냥 원래의 신, 구세주가 싸구려 B급 영화 이야기였다는 정도, 그리고 얼음의 마녀 따위는 없고 지구는 멸망해가는 중이다는 진상 정도로도 충분했습니다. 아니면 차라리 복수를 위해 유다와 맞서 싸우는 평범한 이능력 배틀물로 끌고가는게 더 나았을 겁니다.

작가가 이야기 전개를 위해 둔 무리수는 그 외에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얼음의 마녀 스랴죠. 굳이 그녀가 튀어나올 이유는 없었습니다  실제로 비중도 변변찮고요.  막판에 작화가 볼썽사나울 정도로 무너지는 것도 눈에 거슬립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압도적인 초반부는 볼 가치가 있지만, 끝까지 볼 필요는 없습니다.

2025/12/19

오무라이스 잼잼 15 - 조경규 : 별점 2점

이전 권 리뷰에서 더 구입하지 않겠다고 했었는데, 형에게서 생일 선물로 받아 읽게 되었습니다. 책 가격이 2만원을 돌파했네요.

특유의 정감 있는 그림체와 따뜻한 분위기는 여전하고, 다양한 음식에 얽힌 이야기와 정보들은 여전히 흥미롭습니다. 따로 국밥은 6.25 때 밥이 미리 말아져 있는 국밥을 양반들이 체면 때문에 거부해서 생겨났다,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투움바 파스타는 미국 아웃백에서 만들어진 메뉴다라는 등 음식 유래들에 대한 설명이 특히 좋습니다. 그 외에도 이탈리아 정통 알프레도 파스타에는 크림이 들어가지 않고 파르미자노 레자노 치즈와 버터만 들어간다는 등 처음 알게 된 정보들도 많고요. 

그리고 레시피도 꽤 볼 만 합니다. 무엇보다 초코파이 라테 레시피가 가장 눈길을 끌었습니다. 초코파이를 전자레인지에 6초간 데운 뒤, 에스프레소와 우유를 뿌리고 부숴서 먹는 디저트라는데, 이건 꼭 한 번 만들어 보고 싶네요. "연유처럼 끈적이고 달콤한 삶" 편에서 연유의 유래와 함께 소개되는 홍콩의 '버터 돼지'(딱딱한 롤빵에 연유와 버터를 넣은 간식)를 한국 가정에서 만들려면 빵을 플레인 베이글로 대체하면 된다는 등의 꿀팁들도 눈길을 끕니다. 

하지만 이전 권에서도 언급했듯 가족 이야기의 비중이 높아졌다는건 단점입니다. 더 이상 음식과 요리 만화가 아니라 가족 일상툰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에요. 가족끼리 어디 놀러가서 뭘 먹었다는 류의 에피소드 반복은 식상하다는 말도 사치라 느껴질 정도로 뻔하고요.

이미 웹툰으로 읽은 독자가 책을 구입할만한 요소도 여전히 부족합니다. 독자가 뽑은 오무라이스 잼잼 명대사라던가 팬아트 모음은 솔직히 페이지 낭비입니다. 맛집 탐방 및 소개 역시 인터넷 컨텐츠 대비한 장점을 찾기 어려웠어요. 이래서야 가격 인상에 걸맞는 내용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원래 이 시리즈의 장점이었던 음식 중심의 이야기와 정보성이 점점 희석되어 가는데, 다음 권을 구입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대로라면 구입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네요.

2025/12/05

귀멸의 칼날 1~23권 - 고토게 코요하루 : 별점 2.5점

최근 극장가를 강타한 인기 애니메이션 원작 만화입니다. 유명세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선뜻 손이 가지 않았었는데, 딸 아이가 친구 영향으로 빠져들었길래 어떤 만환가 싶어 보게 되었습니다.

읽어보니 확실히 인기가 있을만 하더군요. 가장 눈에 띄는 미덕은 장편 서사를 끝까지 밀고 나가면서도 불필요하게 늘리지 않고 완전히 정리했다는 점입니다. 인기 때문에 전개를 비틀거나 후반부에 새로운 등장인물들을 억지로 끼워 넣지 않고, 주요 인물 모두에게 적당한 마무리를 주면서 이야기가 긴 기-승-전-결로 깔끔하게 마무리됩니다. 길이도 적당한 편이고요.
덕분에 지나친 파워 인플레도 없고, 세계관 최강인 빌런 보스 무잔을 없애기 위한 귀살대의 처절한 노력도 설득력있게 묘사됩니다. 귀살대 전원이 공격해도 정면승부로 이기는건 불가능했고, 온갖 독약을 때려 넣어야 겨우 이길 수 있었다는 전개는 아주 좋았어요. 

전투 작화도 괜찮습니다. 귀살대 대원들의 특기 호흡마다 성격이 뚜렷하고, 오니의 능력도 각기 달라 보는 맛이 충분합니다. 오니 디자인도 과하지 않은 편이고요.

주인공 탄지로는 평면적이지만 네즈코, 이누시치, 젠이츠가 결함을 지니고 있다는 설정과, 악역들 역시 단순한 악인으로 처리하지 않고 각기 다른 사연을 부여했다는 점도 마음에 듭니다. 이들을 중심로 한 짧은 개그나 SD 컷도 적절하게 삽입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엄청난 인기를 얻을만한 작품인가?라는 생각은 잘 들지 않았습니다. 신선함이 없다시피한 탓입니다. 동족(부하)을 늘릴 수 있는 빌런 보스의 유일한 약점은 햇빛이라는 기본 소재부터 흡혈귀물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요. 오니가 되었지만 다른 방법(잠)으로 인육에 대한 욕구를 잠재우고 낮에도 활동할 수 있는 네즈코 역시 "블레이드"의 데이 워커 설정과 똑같고요.
다른 부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니가 된 악역들의 개인적인 상처나 사연도 뻔하지만 이를 중심으로 한 연출은 "오니키리마루"를 떠오르게 하고, 주인공 파티의 구성과 성장 단계가 단계별로 등장하는 강적과 함께 표현되는 방식은 "타이의 대모험"이나 "바람의 검심" 같은 왕도 점프식 전개의 익숙한 틀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점들을 볼 때, 새로운 무언가를 제시하는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엄청난 인기는 원작보다는 잘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의 덕이 컸다고 생각되네요.

그래도 완결까지의 흐름이 깔끔하고, 기본기가 탄탄하며, 왕도 만화의 재미를 잃지 않는다는 장점은 확실하기는 합니다. 원작도 나름의 가치는 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다만 시대를 넘어서서 회자가 될 정도는 아닙니다.

2025/10/31

배트맨 이어원 - 프랭크 밀러 / 데이비드 마주켈리 : 별점 3.5점

프랭크 밀러 각본, 데이비드 마주켈리 작화의 한 권짜리 단일 이슈 배트맨 만화입니다. 그래픽 노블이라고 분류되어 있기는 한데, 제 기준으로는 만화입니다. 

배트맨의 탄생을 다루는 이야기를 고든의 시선으로 풀어낸 게 특징입니다. 브루스 웨인이 아닌 제임스 고든의 부임기와 고군분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거든요. 그래서 슈퍼 히어로물이라기보다는 부패한 경찰 조직과 맞서는 고든 중심의 느와르 장르 느낌을 강하게 전해줍니다. 배트맨도 전지전능한 영웅이 아니라, 늘 어딘가 다치고 실수하는 불완전한 인간으로 그려져 있기도 하고요.

프랭크 밀러 각본답게 이야기 완성도도 높습니다. 고든은 부패한 경찰 조직 안에서 고립된 채 홀로 싸우고, 브루스 웨인은 자경단 활동을 통해 정체성을 찾아갑니다. 이런 각자 정의를 추구하는 두 사람의 노선이 여러 위기를 겪다가 최종 결전에서 하나로 합쳐지며, 부패한 경찰들이 무너지고 고든과 배트맨이 각자의 위치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되는 전개가 깔끔한 덕분입니다.

거칠고 묵직한 작화도 매력적입니다. 마초적이고 러프한 선이 느와르 장르 및 무거운 고담 분위기와 잘 어울립니다. 본편 외에도 콘티, 인터뷰, 캐릭터 설정 등 다양한 부록이 수록돼 있어 소장가치도 높고요.

다만 독특한 점은 있다 하더라도, 배트맨 탄생 이야기는 너무나 뻔한 이야기라는 문제는 큽니다. 이를 뒤집을 만큼 전개에서도 극적인 드라마가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여성 캐릭터들이 대부분 주변 인물로 소비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고든의 아내나 불륜 대상인 동료 여성은 그렇다 쳐도, 캣 우먼 셀리나 카일은 왜 나오는지도 모르겠더군요. 하비 덴트도 비중에 비해 존재감이 별로 없어서 아쉬웠고요.

그래도 배트맨 단편 그래픽노블 중에서는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프랭크 밀러가 왜 이 바닥에서 명불허전인지 잘 알려주는 작품입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배트맨 팬이라면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2025/10/25

역대급 영지 설계사 - 문백경 원작/ 이현민 각색 / 김현수 작화 : 별점 3.5점

문백경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웹툰입니다. 각색은 "질풍기획"의 이현민, 작화는 김현수가 맡았습니다. 

소설 전생물과 영지물의 전형을 따르지만, 몇몇 차별화된 설정이 재미요소입니다. 우선 전생을 한 게 원작 소설 속 주인공인 하비엘이 아니라, 초반에 죽는 악역인 망나니 귀족 로이드 프론테라라는 점입니다. 지금은 비교적 흔해진 설정이지만, 이 설정을 잘 살려서 이야기 몰입감을 높입니다. 이를 위해서 등장하는게 바로 주인공이 토목공학도라는 설정이고요. 로이드는 토목 지식을 바탕으로 닥친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위기를 극복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토목 공학에 최적화된 소환수와 능력들도 잘 어울립니다. 

주인공의 성장 방식도 차별화 요소입니다. 몬스터를 잡는 대신, 다양한 미션을 해결하며 레벨업이 진행되는데 과제들이 신선하고 재미있으며, 전략적인 요소도 함께 녹아 있거든요. 단순한 전투보다는 꽤 치밀한 계획과 인프라 구축 중심의 접근이 많다는게 특징이지요. 켄타우로스 폭주족과의 대결 결과로 경기장을 지어주고, 인어들에게 찜질방을 만들어 주는게 대표적인 예입니다.

각색을 맡은 이현민의 빠른 전개와 과감한 개그도 잘 어울렸고, 김현수 작가의 작화 역시 인물 디자인과 액션, 컷 구성 모두 빼어납니다. 이 둘이 합쳐서 시너지를 불러 일으킨 명장면이 바로 아래의 '고기 사주는 짱친'이라 할 수 있지요. 이런 개그가 넘쳐납니다.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전체적인 전개 구조는 익숙하며, 결말 역시 깔끔하긴 하지만 특별한 여운은 남기지 않습니다. 지옥왕 헬카로스의 최후도 심심한 편이고요. 

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림 없이 마무리된 작품으로, 완성도는 높습니다. 제가 본 전생물 중에서는 손가락에 꼽을 만 합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전생물이나 영지물을 좋아하신다면 추천드립니다.

2025/10/19

기억 전달자 - 로이스 로리 원작 / P. 크레이그 러셀 그림 및 각색 : 별점 2점

로이스 로리의 유명 소설을 각색한 그래픽 노블입니다.

철저히 통제되어 가족, 직업, 감정, 심지어 생명까지 모두 관리되며 사랑과 고통, 색채와 음악 같은 감각은 사라진 된 디스토피아 세계를 시각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는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교육이나 가정 환경, 아이들의 방과 후 활동 등에서 보여주는 세세한 설정과 묘사들이 인상적이에요.  

‘기억전달자’라는 설정도 눈에 띕니다. 잊혀진 역사와 감정, 추억 등 모든걸 기억하는 단 한 사람이 있다는 설정입니다. 보통 이런 인물은 디스토피아 세계관에서는 배제되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오히려 존중받는다는게 독특했습니다. 선택된 후계자에게 기억을 넘겨주는 과정, 이전 후계자가 현 기억 전달자의 딸이었는데 자살을 택했다는 반전도 흥미롭고요.

작화도 좋습니다. 흑백에서 시작해, 기억 전달자가 된 조너스가 세상의 진실을 깨달으며 컬러로 전환되는 부분은 감정과 감각의 회복을 시각적으로 잘 드러냅니다. 만화로 각색해서 발표할만 했던 명장면이었어요.

하지만 이런 류의 디스토피아 SF 세계관은 이미 너무 많이 접한 나머지 그리 새롭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상세한 나름대로의 설정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 바닥의 고전인 "1984"를 비롯하여 영화 "브라질", "이퀄리브리엄"과 결국은 별다르지 않은 탓입니다. 조너스가 탈출을 결심하게 되는 계기인 ‘임무해제’가 일종의 사형 제도라는 것도 초반부터 예상 가능해서 반전의 맛도 부족하고요.

결말도 불분명합니다. 조너스가 살아남았는지, 죽었는지, 고생 끝에 무엇을 얻었는지를 알 수 없어서 열린 결말이라기보다는 흐릿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작화도 좋고 기억전달자 설정은 인상적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익숙한 이야기로 결말도 별로라 감점합니다. 추천드리기는 어렵습니다.

2025/09/07

성운아 (星雲児 聖・少年戦士伝) 1~6 - 이케가미 료이치 : 별점 1.5점

'뇌제'는 지구를 파괴시켰다. 우주를 지배하기 위해 5개의 보주를 모아야 했는데, 보주 1개가 지구 내부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선택받은 소년 히마코토 이쿠루가 성모의 도움으로 지구의 보주를 입수했고, 보주를 가진 5명의 성전사를 모아 지구 부활 및 뇌제 처단을 위한 모험에 나서는데...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이케가미 료이치의 '소년 SF 판타지 액션 만화'입니다. 소년 선데이 연재작이지요. 국내에도 1권만 해적판이 소개된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그러나 수십년이 지난 지금은 거의 잊고 살았는데, 우연히 만보님의 리뷰를 읽고(잘 계시지요?) 찾아보게 되었네요.

무려 40여 년 전 작품이지만 이케가미 료이치의 작화는 압도적입니다. SF 판타지에 걸맞는 세세한 디자인들도 중반부까지는 나쁘지 않고요. 이즈부치 유타카를 비롯한 여러 전문가들이 디자인을 맡은 덕분이겠지요. 

이야기도 두 번째 보주를 찾기 위해 향한 혹성 제피로스 에피소드까지는 재미있습니다. 특히 생명통화 '다나피아' 설정이 기억에 남네요. 뇌제는 다나피아를 전투대회 우승자에게 준다는 조건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입니다. 생명통화라는 말 그대로, 많이 얻으면 그만큼 수명이 늘어나기 때문에 이에 혹한 수많은 사람들이 전투 대회에 참여했다가 무참히 죽어갑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다나피아는 전투 대회 희생자들을 통해 만들고 있었습니다! "소일런트 그린"이나 데즈카 오사무의 "2100년 보더플래닛"의 한 에피소드가 떠오르는, 80년대에 유행했던 SF적인 반전으로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생각됩니다. 제피로스의 전투 대회도 단순히 격투 액션이 아니라 경주차 레이스까지 펼치는 풍성함이 좋았고요.

하지만 솔직히 좋은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아마도 '출하 엔딩' 탓이겠지만 제피로스 에피소드 이후 심각할 정도로 줄어든 분량입니다. 앞 부분, 그러니까 기본 설정(5개의 보주와 성전사 등)과 마코토가 첫 번째 성전사 로고스를 만나는 제피로스 에피소드까지는 4권의 분량이 소모되었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세 명의 성전사와 보주를 입수하고, 뇌제를 물리치는 결말까지는 2권 분량 뿐입니다. 앞서의 분량을 감안하면, 나머지 세 명의 성전사와 함께 하기까지는 최소 6권 분량은 필요했는데 말이지요. 이래서야 제대로 된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을 턱이 없습니다.
분량이 부족한 탓에 보주도 제피로스에서처럼 어렵게 구하지도 않습니다. 동료가 되면 보주도 그냥 굴러들어오는 식이고, 심지어 메이야는 원래부터 보주를 갖고 있었다고 하니 말 다했지요.
마지막 연재분 한 편 분량으로 이루어진 결말은 특히 최악입니다. 뇌제가 우주를 창조했고, 5개의 보주를 모아 제대로 된 우주를 다시 창조할 수 있다 운운하는 결말은 대사만 오갈 뿐, 뇌제의 강력함이나 보주의 능력 따위는 전혀 와 닿게 묘사되지 못하거든요. 그야말로 "소드 마스터 야마토"와 다를게 없는 셈입니다.

당대 고전 SF 판타지를 지나치게 의식한 설정들도 눈에 거슬립니다. 제피로스 전투대회의 경주차 레이스는 "매드맥스 2"를 떠오르게 만듭니다. 바루루와 합류하는 에피소드의 수인들은 누가 봐도 "스타워즈"의 이워크이며, 바슈크가 성전사가 된다는 일종의 반전 역시 다스베이더 느낌이고요. 이는 신선하다고 볼 여지가 없지는 않은데, 분량 부족으로 전개가 엉망이라 급작스럽게 등장하여 소모된다는 점도 아쉽습니다.

등장하는 여러 악당들, 기계 장치 및 여러 설정 디자인도 뒤로 가면 갈 수록 엉망입니다. 출하 엔딩이 결정된 후, 디자인을 맡은 전문가들도 기용되지 않았던걸까요? 전혀 SF스럽지도 않고, 유치해서 보기가 괴로울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초반부는 분명 괜찮았는데, 여러모로 아쉬움이 더 큽니다. 만보님 리뷰에 쓰여진 만큼의 가치가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2025/06/13

아인 1~17 - 사쿠라이 가몬 : 별점 2.5점

'죽지 않는 인간'이라는 단순한 콘셉트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내용은 꽤 독특한 밀리터리 액션물입니다. 주인공 나가이 케이와 아인 테러리스트 사토 간의 대립이 핵심인데, 사토가 군사 전략과 물리적 전투 능력 모두에 특화된 사이코패스라서 경찰 특공대, 자위대 군대와 교전을 벌이는 연출이 굉장히 현실적이면서도 고증에 충실하게 잘 그려져 있는 덕분입니다. 

작품 속 '아인' 설정도 독특합니다. 아인은 단순한 불사의 존재가 아니고, 죽기 전까지는 보통 인간과 똑같기 때문에 마취제나 산소 결핍, 냉동 등으로 제압 가능합니다. 하지만 죽고 나면 놀랍도록 신속하게 부활하며, 이 부활은 원래의 신체 상태를 완벽히 복원함과 동시에 어떠한 물리적 장벽도 무시한다는 설정이 추가되어 있고요. 이 설정은 이야기 전개에 잘 활용되어 극적 긴장감을 더합니다.

등장인물들도 복잡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중에서도 빌런 사토의 존재감은 압도적입니다. 냉혹하고 잔인한 사이코패스지만, 단순히 광기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뛰어난 전략가이자 전투가이며, 리더십마저 갖춘 인물로, 작전의 구상과 실행 면에서 탁월한 모습을 계속 보여주거든요. 절단된 손을 튀겨 프라이드 치킨으로 위장하여 보안 업체로 보낸 뒤, 자신의 몸을 분쇄기에 갈아서 회사 내부에서 부활하는 침투 장면은 아인의 기묘한 설정 중 하나 - 몸이 조각나면 가장 큰 조각 기준으로 부활한다 - 를 활용하여 극대화한 명장면으로 기억될 만합니다. 공군 기지를 장악한 뒤 군용기를 직접 조종하여 정부 기관을 테러하는 장면도 사토라는 캐릭터가 가진 전략에 있어서 독보적인 창의성, 그리고 아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공포를 동시에 느끼게 만들고요.
주인공 나가이 케이 역시 기존 소년 만화 주인공들과는 완전히 다른 결의 인물입니다. 이타심이나 정의감과는 거리가 먼 그는, 철저히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캐릭터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성격이 사토와의 대립 구조를 더욱 흥미롭게 만듭니다. 둘의 대결은 단순히 강함의 여부가 아니라 심리전과 전략의 싸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케이와 사토의 대결 구도로 집중된 전개와 결말도 깔끔합니다. 인기에 영합해 불필요한 외전을 덧붙이거나 결말을 늘이지 않고, 처음 구상된 틀 안에서 완결을 짓는 모습은 만화계에서 보기 드문 미덕이라 마음에 드네요.

"기생수"처럼 사회 풍자적 메시지가 곳곳에 녹아 있는 점도 좋았습니다. 타인의 인격을 무시하고 생체 실험에 활용하여 거액을 번 제약 회사가 테러 경고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을 계속 근무하게 만드는 모습, 아인 차별법안을 만든 국회의원이 실제로는 아인이었다는 반전 등은 작품이 단순한 SF나 액션에 머물지 않고 현실 사회의 모순을 꼬집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아인이 아니지만 테러에 가담한 평범한 인간들의 모습, 소셜 미디어 등을 활용한 무차별적인 메시지 전달도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해 주고요.

그러나 단점도 없지 않습니다. 그 중에서도 아인이 조종할 수 있는 그림자형 존재 'IBM'은 표지에서도 적극 노출하는 등의 비중에 비하면 활용도가 너무 떨어집니다. 사토의 테러 장면 몇 군데 외에는 그다지 활용되지 못하는 탓입니다. 일종의 초능력에 가까운 소년만화적인 발상이라는 점에서 현실적인 밀리터리 액션물인 작품 분위기와도 사뭇 차이를 보이고요. 

케이와 사토의 마지막 대결도 기대에 비해 밋밋합니다. 단순히 몸통 박치기(?)로 함께 물에 빠진 뒤 기절한 사토를 체포하는 식의 마무리는, 치열한 두뇌전이 벌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이 결말보다는 사토의 잘라진 손을 놓고 벌이는 테러리스트와 케이 측의 대결이 훨씬 볼만했습니다.

이외에도 '플러드 발생', '일반인의 부활' 등 작품 내 여러 떡밥은 끝내 회수되지 않았고, 케이의 친구 카이토가 지나치게 무리하게 행동하는 이유 역시 충분히 설득력 있게 제시되지 않는 점도 단점이고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독특한 세계관과 불사의 존재라는 콘셉트를 잘 활용했고, 무엇보다 강력한 빌런 사토의 존재와 그를 중심으로 한 치밀한 전개는 탁월합니다. 다만 일부 설정과 떡밥 설명이 부족하고 마지막 대결의 맥빠진 마무리는 아쉬움을 남깁니다. 그래도 당대의 인기작이었던 이유는 충분히 잘 보여준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영화도 한 번 찾아보고 싶어집니다.

2025/06/01

텍사스홀덤 1,2 - 원사운드 : 별점 2점


예전에 어딘가에서 연재되던걸 감상했었는데, 완결되었는지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구입했습니다. 예전 연재작은 흑백이었는데, 웹툰 시대에 맞게 풀 컬러로 리뉴얼되었네요.

만화의 가장 큰 장점은 포커 게임 '텍사스홀덤'을 진지하게 스포츠처럼 다루고 있다는 점입니다. 덕분에 단순한 도박 만화가 아니라, 마치 스포츠 만화를 읽는 듯한 몰입감을 선사합니다. 등장인물인 비비안이 “도박이 아니라 스포츠”라고 주장하는 대사가 단지 허세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짜임새가 아주 탄탄했어요. 초반부 기수와 찰리의 대결, 그리고 마지막 포커 대회에서 펼쳐지는 나노노코와 기수의 결승전은 긴장감 넘치고 손에 땀을 쥐게 할 만큼 흥미롭게 표현되어 있고요.

텍사스 홀덤을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프로게이머 출신 갑영이 연봉제로 포커 플레이어들과 계약하여 대회에 출전시키고, 이 중 프로게이머 출신 기수는 프로 시절 보여준 경기를 근거로 스카웃한다는 설정, 온라인 포커 게임을 위한 봇을 만드는 설정이 그러한데 현실적이면서도 설득력이 높습니다. 왜 프로게이머가 포커를 잘 하는지 살짝 알 수 있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작품이 단 2권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는 장점도 큽니다. 짧은 분량이지만 주인공 기수의 성장은 뚜렷하게 그려져 성장기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기수와 비비안의 관계를 적절한 여운을 남기며 마무리한 점도 좋았고요.

하지만 단점도 분명합니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작화입니다. 원사운드 특유의, 하지만 극화에 맞게 6등신 이상으로 그려진 인물들 대부분은 헤어스타일을 제외하면 거의 구별이 되지 않아서 몰입을 방해합니다. 인물들의 감정선이나 개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내지도 못하고요.

또한, 작품 내에 등장하는 텍사스 홀덤 관련 정보가 과도하게 많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이야기의 흐름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정보들이 길게 이어지는 경우가 자주 있거든요. 그렇다고 이 정보들이 독자가 포커에 대해 실제로 잘 알게 만드는 학습 효과가 많은 것도 아니고요. 지루한 설명이 많지만 학습 효과는 떨어지는, 어정쩡한 구성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분명 추천할만한 요소는 있습니다만, 단점도 확실해서 감점합니다. 스토리 만화보다는 차라리 텍사스 홀덤을 제대로 알려주는 학습 만화로 방향을 잡았으면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

2025/05/24

말단 병사에서 군주까지 - 스토리: doip, 소울풍 / 작화: 2631 : 별점 1.5점

30대 후반 외팔이 용병 크리스는 아티팩트를 노리던 강도단 습격으로 죽기 직전, 아티팩트를 삼킨 덕에 15살, 크리스가 팔을 잃었던 세르카도와 팔문의 전장으로 회귀했다. 회귀 덕분에 팔을 잃지 않은 크리스는, 전생에서 익힌 다양한 기술과 과거의 기억으로 소년병들 신분임에도 대활약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한 단계씩 출세해 나가기 시작하는데...

애니메이션(실제로는 애니메이티드 카툰이라고 해야 겠지만)까지 나왔다는 인기 회귀물입니다. 지난 연휴 때 감상했습니다. 리뷰가 늦었네요.

뻔한 회귀물이지만, 그래도 초반 팔문과의 전쟁은 비교적 인상적입니다. 회귀 이전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던 주인공 크리스가 그 기억을 회귀 후 말단 병사 위치에서 승리의 동력으로 삼는 설정이 설득력 있게 그려진 덕분입니다. 또 팔문의 보급대를 노리는 작전 등 다양한 전략전술을 몰락 기사 케너럭이나 신분을 숨기고 종군 중인 휠켄 등 여러 등장인물들과 함께 선보임으로써, 단순 판타지가 아닌 군웅물의 분위기를 선사해 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이 전쟁 이후 전개되는 왕당파와 귀족파의 갈등 또한 흥미롭습니다. 초반 최강의 빌런으로 등장하는 벤트하임의 생생한 매력 덕분이지요. 

작화도 초반부는 마음에 듭니다. 선이 동글동글하면서도 전투 장면, 특히 머리와 팔, 다리가 잘려나가는 잔혹한 묘사가 강렬하게 표현되어 굉장히 독특한 느낌을 전해 주거든요. 액션 연출도 괜찮은 편이었고요. 

하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작품의 매력이 빠르게 사라집니다. 크리스와 동료들이 바이스 능력을 각성하면서 계속된 전쟁과 결투를 통해 레벨을 올린다는, 뻔한 전개와 설정으로 일관하며 전형적인 회귀물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탓입니다.
초반에 눈 앞의 전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분투하던 캐릭터들 역시 점차 강한 마물과 싸워나가는 전형적인 판타지 주인공과 조력자들로 변해버리고 맙니다. 레벨업을 통해 작중 최강자에 등극하는 크리스는 물론이고, 크리스의 동료들 역시 타고난 힘을 지닌 파워형, 백발백중의 궁수, 달인의 딸로 신속한 여성 검사, 불치병을 앓던 방어 전문 검객 등 설정도 익숙하기 짝이 없고요. 그나마 휠켄 정도만 그런대로 수긍할만한 개별 서사가 선보일 뿐입니다.
작화 또한 뒤로 갈수록 초반의 개성 있는 스타일을 잃고, 일반적인 판타지 웹툰과 유사한 형태로 흘러가 아쉽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초반부는 군웅물과 회귀물 특유의 재미를 잘 결합하고 있어서 3점 이상도 충분한 재미를 선사하지만, 그 뒤로는 뻔하고 지루해집니다. 솔직히 오크 웨이브 이후부터는 어차피 강해지는 크리스가 이길거, 굳이 볼 필요가 있었나 싶습니다.

2025/05/11

화산전생 - 정준, 토마씨 : 별점 1.5점

화산의 장로였던 주서천은 죽은 뒤, 과거로 회귀했다. 주서천의 시대에서 암천회와 무림의 전쟁이 벌어져 수많은 영웅들이 죽었던 탓에, 주서천은 영웅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암천회의 음모 좌절에 새로운 생을 걸었다.

인기 웹소설의 웹툰화 작품입니다. 인기가 많다기에 이번 연휴에 몰아서 완결까지 보았습니다. 

뻔한 회귀물이지만 인기작답게 나름대로 독특한 점은 있네요. 단순한 무공 대결보다는 전략과 정보전이 강조된다는 점이 대표적입니다. 암천회는 소문과 거짓 정보를 활용해 무림 인물들을 현혹시키고, 9파 1방에 속하지 않은 이들의 질투심과 자격지심을 교묘히 자극해 세력으로 끌어들이는데 꽤 설득력 있습니다. 마지막 무림맹과 암천회의 결전은 수천의 병력이 각자 군사의 지휘 하에 지형과 다양한 작전을 활용해 전투를 벌이기 때문에 무협지보다는 말 그대로 '전쟁'을 그려내고 있고요.

전통적인 무협의 틀을 벗어나, 기관 전문가와 상인이라는 인물을 주력 조력자로 배치한 점도 특이합니다. 기룡 제갈승계는 초반에는 단순한 기관 돌파 전문가 정도의 역할이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다양한 병기와 기관으로 암천회의 전력을 크게 약화시킵니다. 참호전 당시 첫 등장했던 기관총을 연상케 하는 그의 활약은 열세인 무림맹의 승리에 상당한 설득력을 부여합니다.
작 중 대립 상대인 '암천회'의 설정도 괜찮습니다. 비록 숙청당할까봐 두려워 숨어지냈지만, 황실과 관련이 있다는 설정은 암천의 다양한 재보, 자금과 군대까지 엮을 수 있던 이유를 잘 설명해 주기 때문입니다. 보통 무협물은 황실과 거리를 두는게 보통인데, 이를 적극적으로 설정에 녹여낸 작품은 개인적으로는 처음 보았습니다. 

또한 이야기 전개가 빠르고 명쾌해서 고구마스럽거나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는 점도 장점 중 하나입니다. 주서천이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고 인간 관계를 - 심지어 여자 관계까지! - 칼같이 정리하는 덕입니다. 주변 인물들도 불필요한 감정선 없이 빠르게 판단하고 행동하는건 마찬가지에요. 선악의 구도도 명확하고, 악인은 반드시 최후를 맞이하는 단순하지만 시원한 구성도 이야기를 더욱 속도감 있게 만듭니다.

하지만 솔직히 그렇게 대단한 작품으로 보이지는 않네요. 회귀물을 기반으로 한 전형적인 전개는 이미 많은 작품에서 반복되어온 구조이며, 과거의 기억으로 모든 정보를 꿰뚫고 최강자가 되는 설정은 지극히 뻔했던 탓이 큽니다. '기연이 있는 장소를 미리 알고 찾아서 확보한다'가 거의 전부거든요. 별 탈 없이 레벨(?)을 올린 주인공이 상대방을 모두 해치우며 결말까지 이어지는 전개는 새로움을 느끼기 어려웠어요.

중후반부로 넘어가면서 무협이라는 장르의 틀을 벗어나 전형적인 판타지물처럼 변모하는 점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혈마가 강시를 만들고 시신을 활용해 몸을 바꿔치기하며, 인어와 이무기, 현무, 말하는 독거미 등 이종족(북해빙궁은 엘프더군요)과 몬스터에 이상한 주술까지 등장하는데 무협물이 아니라 혼합 장르물 혹은 마법 판타지로 느껴집니다. 등장인물들의 강함을 일종의 레벨처럼 표현하고, 최강자들의 필살기(심상구현이라 부르는)는 각자 독특한 무공이 한 개씩 있다는 것 역시 전형적인 만화 판타지 세계관으로 보이고요. 뒤로 가면 이게 무협물일 필요가 있나 싶은 생각마저 듭니다.
그나마도 무공이라면 모를까 주서천이 마지막 암천회주와의 결전에서 시간을 되돌리는건 어이가 없었습니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도 아니고... 주서천의 심상구현인 모든 상처를 치료해주는 '회귀'로 주서천이 치명상을 입은 줄 알고 방심하고 있던 암천회주에게 한 방을 먹이는 정도가 적당했습니다. 

그 외 전개에서 이상하게 늘어지며 억지스러운 부분도 적지 않아요. 대표적인게 무림맹주 남궁위무의 퇴장입니다. 암천회와의 결전 직전에 무림맹 내부의 다툼으로 처형된다는 전개보다는, 백의종군하여 마지막 대결에 참여하게 했더라면 훨씬 개연성이 있었을 것입니다. 작품 전반에 걸쳐 비급과 보물이 과도하게 등장하는 점도 몰입을 방해했고요.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흥미로운 점이 없지는 않으나, 전형적인 판타지 회귀물과 별다를게 없고 작화가 심하게 좋지 않아서 추천드리기는 어렵네요.

덧붙이자면, '별호'가 이렇게 별로인 무협지는 정말이지 처음 봅니다. 검 좀 쓰면 검성, 검신, 검선, 검마로 돌려막는 식이거든요. 제가 만든 챗봇으로 화산파 장문인 검선 우일문의 별호를 만들어보니 '매영검옹(梅影劍翁)'을 추천하는데, 검선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나 싶습니다.

2025/04/27

악녀는 두 번 산다 - 한민트 / 피치베리 : 별점 2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기 웹소설의 웹툰 버젼입니다. 자주 찾는 커뮤니티인 클리앙에서 어떤 분이 강력 추천하시기에 읽어보게 되었네요.

이 작품은 회귀한 아르티제아가 과거의 기억을 바탕으로 제국의 정치판을 뒤흔들며 정적들을 제거해 나가는 과정이 큰 줄기를 이룹니다. 오빠 로렌스를 비롯해 황위 계승을 둘러싼 여러 귀족들과의 지략전, 황실 내부의 갈등 구조, 회귀한 아르티제아의 철저한 계산이 맞물려 극적인 전개를 만들어냅니다. 특히 세드릭을 황제로 만들기 위해 그녀가 감행하는 정적 제거의 과정은 독자들에게 높은 몰입감을 안겨줍니다.

이처럼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등장인물들의 입체적인 성격 덕분이기도 합니다. 황제 그레고르는 단순한 악역을 넘어서 지략과 권력을 모두 갖춘 복합적인 인물로 그려지며,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친인척까지 숙청하는 냉혹함 속에서도 가식 없는 일면을 보여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그 외에도, 깊은 원한을 품은 황태후, 아르티제아의 친모이자 황제의 정부인 밀라이라, 우유부단하지만 트라우마를 지닌 황제의 동생 로이가르, 로이가르에게 순종적인 인형같은 존재에서 강인한 여성으로 거듭나는 가넷, 출신 신분 때문에 능력은 있지만 트라우마와 자격지심에 시달리는 카멜리아 후작 부인 등 주변 인물들 모두 과거사와 현재의 권력 구도가 촘촘하게 얽혀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합니다.

심리 묘사 또한 섬세하게 그려져 있어 아르티제아와 세드릭의 감정선, 둘 사이에 오가는 미묘한 변화들도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단순한 권력 암투 이상의 인간적인 교류와 관계 형성도 이 작품이 가진 장점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단점도 분명 존재합니다. 작품 속 권모술수와 지략 대결이 마치 큰 판을 짜는 듯한 느낌을 주지만, 실제 전개를 살펴보면 주인공 아르티제아의 행보는 단순하고 운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로이가르 대공의 몰락은 아르티제아의 계략보다는 카멜리아 후작 부인의 딸 스카일라와 원래 카멜리아 후작 후계자 이안을 끌어들인 결과일 뿐이지요. 이안이 목숨을 건진건 순전히 운일 뿐이었고, 아르티제아가 닥쳤던 위기를 성녀로 인정받으며 극복하는 장면 또한 우연에 가깝습니다. 독자가 기대한 ‘천재적 전략가’의 모습보다는, 적재적소에 사람을 잘 쓰고 운이 따른 결과로 상황이 풀리는 흐름이 많아 다소 김이 빠지네요. 이런게 능력이라면 할 말은 없지만, 아르티제아만 주변에 인물이 많은 이유는 잘 설명되지 않습니다.

또한, 아르티제아가 전생의 부채의식에 지나치게 사로잡혀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드는 측면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클라이맥스에서 무너지는 제방을 복구하기 위해 마법을 쓰는 장면은, 전개상 꼭 필요한 상황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로렌스를 제거하고 세드릭이 황제가 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세드릭과 리시아를 연결시키려는 노력도 무리하게 끼워 맞춘 느낌이 강해요. 초반부 하이라이트인 에브론 대공가에서 발생하는 오브리 역모 사건은 짜증만 일으키는 이야기였고요.

아울러, 주인공인 아르티제아와 세드릭, 로렌스는 설정에 비해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전형적인 캐릭터에 머물러 있어 인물 구성이 아쉽습니다. 이들이 중심축을 담당하는 이야기인 만큼, 이들의 내면이 좀 더 입체적으로 다뤄졌다면 작품의 완성도는 훨씬 높아졌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복잡하고 매력적인 조연 캐릭터들과 지략을 펼쳐가는 긴장감 있는 전개, 세심한 심리 묘사는 분명 장점이지만, 전개상의 허점과 중심 인물의 평면성은 몰입에 방해가 됩니다. 남성향으로, 보다 강한 인물들이 진짜 지략 대결을 펼치는 이야기였더라면 더 마음에 들었을텐데, 제 취향이라고 하기는 어렵네요.

2025/04/06

집이 없어 (전 270화) - 와난 : 별점 3점

웹툰은 잘 몰랐는데, 애니메이션까지 만들어진 인기작이더군요. 별로 볼 생각은 없었지만, 아래 유튜브에서 만화 매니아이신 부부께서 추천해서 읽어보게 되었네요.

고해준이 어머니의 죽음 뒤, 갈 곳이 없어져(집이 없어)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도는 학교 별관에서 우연찮게 만나 앙숙이 된 백은영과 함께 지내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둘의 관계는 날이 서 있지만, 여러가지 사건, 사고를 함께 겪으며 점차 신뢰를 쌓아가지요. 단순히 두 주인공의 성장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김마리, 박주완, 강하라 등 주변 인물들의 사연까지 함께 엮어서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들고요.

장점이라면 뛰어난 몰입감입니다. 등장인물들에게 벌어지는 일들은 '불행 포르노' 느낌도 들 정도로 절망적이고 힘든 상황들이 대부분입니다. 주로 거기서 어떻게든 빠져나오는 전개로 이루어져 있고요. 그런데 이에 대한 묘사가 정말 일품입니다. 고해준과 백은영은 물론, 주변 인물들의 서사 모두 그런 맛을 잘 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흡입력이 대단했어요.

귀신이 나오는 학교 별관에서 살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상계 에피소드들도 흥미로운 편이고, 박주완과 강하라 이야기처럼 반전이 있는 이야기도 좋았습니다.

반면, 단점도 있습니다. 우선, 주요 인물 5인방 대부분 - 특히 백은영 - 이 스스로 사고를 일으켜서 짜증을 유발시킨다는 점입니다. 서로간에 극단으로 치닫는 관계도 보통 이런 발암 행위로 촉발되고요. 도대체 참을성, 배려 따위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래서 읽으면서 마음이 불편해 지더군요.

그리고 고해준, 백은영, 김마리 모두 가정 폭력으로 인한 아픔이 있다는건 억지스러웠습니다. 가정 폭력의 트라우마도 뻔한 설정으로 일관되어 있고요. 고해준과 백은영의 갈등도 반복적으로 진행되다 보니, 후반부에는 다소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백은영이 한 일에 대해 고해준이 오해하고, 이로 인해 다투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패턴이 계속 반복되는 탓입니다. 

고해준이 귀신을 보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설정도 그리 효과적으로 사용되지 못했으며, 결말도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해주었던 다른 에피소드들에 비하면 너무 쉽게 간 느낌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3점입니다. 현실적인 불행과 인물 간의 신뢰 회복 과정을 성장기 형태로 강렬하게 그려낸건 높이 평가하지만, 비슷한 설정과 이야기의 반복과 결말은 조금 아쉽네요. 책으로 출간된다면, 이야기를 조금 쳐내고 정리하면 더욱 완성도가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2025/03/16

나홀로 온천 여행 - 다카기 나오코 / 이소담 : 별점 2점

나홀로 온천 여행 - 4점
다카기 나오코 지음, 이소담 옮김/살림
일본의 에세이 만화 작가 다카기 나오코의 "나홀로 여행" 후속작. 이번에는 혼자 떠나는 온천 여행을 중심으로 일본의 다양한 온천지와 그곳에서의 경험을 특유의 여유로운 그림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큰 사건이나 드라마틱한 전개 없이도 일상의 여행기를 흥미롭게 풀어내는게 언제나처럼 가장 큰 장점입니다. 정말 쉬면서 읽을 수 있는, 그런 책이에요.

작가의 다른 여행기와 다른 점이라면 여행 과정(특히 기차 중심)과 온천욕이 핵심이라는 점입니다. 지역의 맛있는 먹거리 먹부림이나 유명한 장소 관광이 없는건 아니지만, 다른 "나홀로 여행"이나 "식탐 만세" 시리즈와 같은 비중은 아니에요. 문제는 기차 여행은 이미 "에키벤" 시리즈에서 철저하게 파고든 부분이 있어서 새롭거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등장하는 에키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다고 제목처럼 '온천욕' 이야기가 많지도 않습니다. 어느 온천에 갔더니 물이 어떻다 정도로 끝나서 실망스러웠어요. 온천과 먹거리에 대해 "낮의 목욕탕과 술" 정도로는 이야기를 풀어줬어야 햤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온천 여행'에 딱히 매력을 느끼지 않아서 더 재미가 없었던 것 같은데, 딱히 추천드리지는 않습니다. 

2025/03/08

결혼반지 이야기 1~14 - 메이비 : 별점 2점

[고화질] 결혼반지 이야기 14 - 4점
메이비 지음/학산문화사

고교생 사토는 어디론가 사라지는 소꿉친구 히메의 뒤를 쫓았다. 그가 도착한 곳은 이세계였다. 그곳에서 사토는 히메의 결혼식에 난입했다. 히메는 이세계 크리스탈 노바티 노카나티의 공주였고, 그녀와 결혼하면 전설의 용사 반지왕이 되어 심연왕의 위협을 물리쳐야 했다. 히메와 결혼한 사토는 반지왕의 힘을 모두 끌어내기 위해, 다른 네 명의 공주와 결혼해야 했다...

이세계 판타지로 생각하고 보기 시작했는데, 내용은 그게 아니더군요. 일본식 하렘물의 모든 요소를 총망라한 므흣(?)물입니다. 질투심 많은 순정파부터 청순가련한 내성적 얌전파, 강한 힘을 앞세우는 무투파, 연상 츤데레, 말없는 인형까지—일본 하렘물에서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유형의 여성 캐릭터가 등장해서 므흣한 장면을 수시로 선보이는게 내용의 핵심이거든요. 빠진 캐릭터라고 한다면 스쿨드 같은 천재 발명가 정도인데, 이마저도 사피르와 안바르가 캐릭터성을 나누어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캐릭터들을 므흣하게 구현한 작가의 작화력도 상당합니다. 전형적인 러브 코미디 하렘물과는 어울리지 않는 진중하고 묵직한 그림체이지만, 워낙 뎃셍력이 좋은데다가 이세계 판타지라는 설정과 결합되어 강한 시너지를 보여줍니다. 종족도 인간, 엘프, 수인족에 용족, 드워프의 기계 인형(?) 등 다양하고, 설정 상 안경 소녀는 없지만 그 외에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조합 - 거유, 로리, 장발, 단발 등 - 이 그려지는데, 색기가 정말 장난이 아니에요. 단지 야하기만 한건 아니고, 여러 액션 장면도 볼만합니다. 히메를 비롯한 공주들과 맺어질 듯하면서도 번번이 실패하는, 전형적인 하렘물 특유의 코믹한 전개도 재미를 더해 주고요. 

주인공 사토가 흔한 하렘물 주인공과 차별화되는 점도 좋습니다. 무능하고 유유부단한데도 주변 여성들이 이유 없이 따르는 캐릭터가 아니라, ‘선택받은 영웅’이기 때문에 다섯 명의 공주가 반드시 그를 따라야 한다는, 일종의 강제적인 하렘 구축 설정이 꽤 괜찮거든요. 성격도 밝고 긍정적인 성장형으로, 결국 세계관 최강의 힘을 손에 넣어 영웅답게 활약하는 것도 좋습니다. 미녀를 거느리는 당위성이 부여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하렘물로서는 괜찮습니다. 애니메이션까지 제작될만큼의 인기 요소는 충분히 갖추고 있어요. 이세계 판타지물로도 심연의 마물이 전대 반지의 용사였고, 공주들에게 배신당해 죽었다는 설정은 제법 신선한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이세계 전생 영웅 판타지로는 낙제점입니다. 설정 자체가 뻔하디 뻔하며, 심연의 마물과 싸워 나가는 과정에서도 별다른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긴장감도 없고, 내용 전개가 일사천리인 탓입니다. 오히려 곁가지라 할 수 있는 학교 생활이나 일상 생활을 다룬 하렘물 전개가 더 흥미로왔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므흣한 여성 캐릭터, 액션에 특화된 빼어난 작화에 별볼일 없는 판타지가 결합했다는 점에서는 "스트라바간차"와 비슷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스트라바간차" 쪽이 더 좋기는 했지만, 우열을 가리기는 애매하네요. 별점도 같고요.

2024/12/21

이세린 가이드 - 김정연 : 별점 2점

이세린 가이드 - 4점
김정연 지음/코난북스

"혼자를 기르는 법"을 그렸던 김정연 작가의 두 번째 만화로, 음식 모형 제작자 이세린의 이야기입니다. 이세린이 음식 모형을 만들며, 해당 음식과 관련된 기억과 감정을 떠올리며 독백 형식으로 전개되는 15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주로 가족과의 추억이라던가 현재의 고민,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성을 찾는 과정이 펼쳐집니다. 

이 작품의 가장 눈에 띄는 장점은 다양한 음식 모형을 만드는 방법을 상세하게 알려준다는 점입니다. 라면 모형을 만들기 위해서, 시판되는 플라스틱 면에 열을 가하여 구불구불하게 만드는 등, 작가가 실제로 음식 모형을 만드는 일을 했던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디테일이 뛰어납니다. 
작가 특유의 다소 기발한 상상력도 볼거리입니다. 컬러칩에 자신만의 이름을 붙이는데, 음식 모형 제작가답게 '대만 카스텔라', '진도 구기자', '초당 두부' 등으로 이름을 붙이고 "올해의 색은 광천토굴 새우젓입니다!"라는 발표를 하는 상상을 하는 장면처럼요.
해당 음식이나 음식 모형과 관련된 소소한 에피소드들도 재미를 더합니다. 한국 라면이 매워진 이유가 박정희 대통령의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던가, 국회의사당 건축 당시 해태상 밑에 ‘노블 와인’ 200병을 묻었다는 이야기, 모카포트의 창안자인 비알레티의 유골함이 모카포트라는 사실 등 흥미로운 정보도 많아요. 그동안 음식 관련 책을 많이 읽어왔지만, 이렇게 새롭게 알게 되는 일화들이 계속 있는게 신기합니다.

하지만 단점도 존재합니다. 이 작품은 이세린 혼자만의 독백이 중심이라 드라마틱한 요소가 부족합니다. 그녀의 과거사와 가족사가 그려지기는 하지만, 극적인 재미를 느끼기는 어렵습니다. 여성 서사에 대해 많이 언급되었으나, 이 역시 뻔한 이야기로만 가득 차 있어 특별히 와닿지는 않았고요. 작화도 전작에 비하면 좀 별로였습니다.
무엇보다 음식 모형보다는 음식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기대했던 저에게는 많이 부족했습니다. 다수의 음식이 등장하지만, 마지막의 ‘주말 전골’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음식과 연계된 매력적인 이야기는 없다시피 하거든요. 모형 제작에 더 무게중심이 쏠려있는 탓입니다. 참고로 주말 전골은, 혼자 사는 독신 여성이 재료를 남기지 않고, 설겆이 거리도 최소화하면서 주말 하루를 차려 먹기 위해 고안한 것으로 냄비에 물과 장국을 넣은 뒤, 온갖 재료를 넣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끓여먹는 것입니다. "술 한잔 인생 한입"의 소다츠라면 정색을 할 요리라고 할 수 있지만, 여러모로 와 닿았어요.

결론적으로, “이세린 가이드”는 음식 모형 제작이라는 독창적인 소재와 이를 통해 엮인 감정적 서사를 담아냈으나, 극적인 재미와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실망스러울 작품입니다. 제 별점은 2점입니다. 

2024/10/26

렌지맨 1~6 - 모리 타이시 : 별점 2.5점

렌지맨 6 - 6점
모리 타이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오츠카 렌지는 끊임없이 연애에 실패하는 고등학생으로, 우연히 수수께끼의 노인 Dr. 오기쿠보를 만나 사랑의 힘으로 변신할 수 있는 히어로 ‘렌지맨’이 된다. 하지만 그 대가로 변신 시마다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기억을 잃는 슬픈 운명을 맞는데....

마사토끼가 추천했던 작품. 이전에 읽었었는데 리뷰를 올리지 않았더군요. 다시 정리해서 올려봅니다.

이 작품의 장점은 전대물과 개그 러브 코미디의 조합이라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잘 살려냈다는 점입니다. 사랑을 하면 파워가 생기지만 그 대가로 사랑을 잊는다는 설정도 좋아요. 이를 통해 개별 에피소드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이야기의 몰입감을 높여주거든요. 좋아하는 사람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가는 열혈 캐릭터인 렌지도 '코이즈미 마이 러브~'를 외치던 "이케테루 후타리"의 사지가 떠오르는 올드 타입이지만 작품의 분위기와 잘 어울려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작품이 지나치게 개그 위주로 전개되는건 아쉬웠습니다. 좌충우돌 렌지와 그에게 빠져드는 후카의 이야기를 좀 더 집중해서 풀어주었더라면 좋았을 겁니다. 마지막 편에서 전대 액션을 전혀 넣지 않고 후카 시점에서만 이야기를 풀어나간건 굉장히 인상적이었거든요.
렌지가 사랑에 빠졌다고 착각한 리키와 후카와의 삼각관계 에피소드도 지나치게 길었습니다. 나름 전대물인데 한 권 이상 분량을 밀땅으로 때우는건 말이 안되지요. 리키에게 정말로 푹 빠진 묘사를 강조해서 마지막 실연, 그리고 후카와의 사랑과 기억 상실을 더 극적으로 만드는게 좋았을겁니다.
마찬가지로 오쿠다가 후카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전개도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억지스러웠고, 등장 인물들 비중 분배도 실패한 느낌만 줍니다. 인기 때문에 새로운 인물을 계속 등장시키기는 하는데,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상황도 반복되고요 .후카의 라이벌이라고 자칭하는 레미가 대표적입니다.
레미가 유혹하려고 했을 때 렌지가 넘어가지 않은것도 이상합니다. 원래 그런 캐릭터도 아니고, 이 때는 후카하고는 아무런 관계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편도 인상적이었지만, 결말만큼은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후카를 잊은 렌지를 한 대 때리자마자 기억이 돌아온다는건 지나치게 편의적인 발상이었으니까요. 기껏 쌓아올린 애틋함을 한 방에 무너뜨리는 마무리였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독특한 설정과 참신한 개그 요소는 좋지만, 개그와 스토리의 균형 면에서는 다소 아쉬워 감점합니다.

2024/09/18

댐피어의 맛있는 모험 5 - 토마토수프 / 문기업 : 별점 2점

댐피어의 맛있는 모험 5 - 4점
토마토수프 지음, 문기업 옮김/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전권에서 민다나오 섬을 떠난 시그넛 호는 새로운 동료인 에라스모를 만나 프리타스 섬으로 보물을 찾는 항해를 떠난다. 그러나 폭풍우로 보물 탐사를 포기했고, 해적질과 여행에 질린 댐피어와 일부 동료들은 동인도에 남게 되는데...

이번 권에서는 풀로 콘도르 섬에서 광둥성 남해안을 거쳐, 대만과 루손 사이의 바탄 제도 , 보루네오 섬 남단을 거쳐 오스트레일리아, 다시 수마트라까지의 장대한 항해가 펼쳐집니다. 조금만 더 올라왔다면 '조선'도 볼 수 있었을텐데 약간 아쉽네요.

그런데 요리에 관련된 내용이 거의 없어서 실망했습니다. 이래서야 '맛있는 모험'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중국 차, 황주 등이 등장하기지만 '차'나 '술'을 요리라고 부르기는 힘들지요. 이미 완성된 제품이기도 하고요. 대왕 조개살 요리는 전권에서 등장했었던 해산물 요리들과 다르지 않아 식상했고, 바탄 제도 원주민들이 만든 염소가 씹어 삼킨 위장 안의 풀을 삶은 것과 다진 물고기 살을 섞은건 요리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두 가지 정도만 인상적이었는데, 첫 번째는 매너티 고기입니다. 맛있다는게 신기했거든요. 하지만 그냥 삶은 고기 말고 좀 더 요리같은 요리를 보여주는게 좋았을 듯 합니다.
두 번째는 '메로리'입니다. 판다누스 나무열매를 익힌 뒤, 과육을 깎아내 반죽하여 굳힌 것입니다. 맛은 잘 모르겠지만, '건망고'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 외에도 '다마르'라는 나무 수액을 이용한 역청 만들기같이 재미있는 정보가 없지는 않습니다. 여러 원주민들 - 바탄 제도 원주민의 생활과 식습관, 오스트레일리아 어보리진의 무소유(?) 삶 등 - 도 잘 묘사되고 있고요.
댐피어가 영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배를 버린 뒤, 함께 낙오한(?) 동료들과 일종의 요트로 먼 수마트라로 향하는 결말도 괜찮았습니다. 폭풍이 다가오고 있는건 분명한데, 과연 어떻게 될지? 다음 권을 읽을 수 밖에 없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맛있는 모험' 부분이 부실하니 아주 높은 점수를 주기는 무리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