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제'는 지구를 파괴시켰다. 우주를 지배하기 위해 5개의 보주를 모아야 했는데, 보주 1개가 지구 내부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선택받은 소년 히마코토 이쿠루가 성모의 도움으로 지구의 보주를 입수했고, 보주를 가진 5명의 성전사를 모아 지구 부활 및 뇌제 처단을 위한 모험에 나서는데...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이케가미 료이치의 '소년 SF 판타지 액션 만화'입니다. 소년 선데이 연재작이지요. 국내에도 1권만 해적판이 소개된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그러나 수십년이 지난 지금은 거의 잊고 살았는데, 우연히 만보님의 리뷰를 읽고(잘 계시지요?) 찾아보게 되었네요.
무려 40여 년 전 작품이지만 이케가미 료이치의 작화는 압도적입니다. SF 판타지에 걸맞는 세세한 디자인들도 중반부까지는 나쁘지 않고요. 이즈부치 유타카를 비롯한 여러 전문가들이 디자인을 맡은 덕분이겠지요.
이야기도 두 번째 보주를 찾기 위해 향한 혹성 제피로스 에피소드까지는 재미있습니다. 특히 생명통화 '다나피아' 설정이 기억에 남네요. 뇌제는 다나피아를 전투대회 우승자에게 준다는 조건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입니다. 생명통화라는 말 그대로, 많이 얻으면 그만큼 수명이 늘어나기 때문에 이에 혹한 수많은 사람들이 전투 대회에 참여했다가 무참히 죽어갑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다나피아는 전투 대회 희생자들을 통해 만들고 있었습니다! "소일런트 그린"이나 데즈카 오사무의 "2100년 보더플래닛"의 한 에피소드가 떠오르는, 80년대에 유행했던 SF적인 반전으로 괜찮은 아이디어였다 생각됩니다. 제피로스의 전투 대회도 단순히 격투 액션이 아니라 경주차 레이스까지 펼치는 풍성함이 좋았고요.
하지만 솔직히 좋은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아마도 '출하 엔딩' 탓이겠지만 제피로스 에피소드 이후 심각할 정도로 줄어든 분량입니다. 앞 부분, 그러니까 기본 설정(5개의 보주와 성전사 등)과 마코토가 첫 번째 성전사 로고스를 만나는 제피로스 에피소드까지는 4권의 분량이 소모되었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세 명의 성전사와 보주를 입수하고, 뇌제를 물리치는 결말까지는 2권 분량 뿐입니다. 앞서의 분량을 감안하면, 나머지 세 명의 성전사와 함께 하기까지는 최소 6권 분량은 필요했는데 말이지요. 이래서야 제대로 된 이야기를 진행할 수 있을 턱이 없습니다.
분량이 부족한 탓에 보주도 제피로스에서처럼 어렵게 구하지도 않습니다. 동료가 되면 보주도 그냥 굴러들어오는 식이고, 심지어 메이야는 원래부터 보주를 갖고 있었다고 하니 말 다했지요.
마지막 연재분 한 편 분량으로 이루어진 결말은 특히 최악입니다. 뇌제가 우주를 창조했고, 5개의 보주를 모아 제대로 된 우주를 다시 창조할 수 있다 운운하는 결말은 대사만 오갈 뿐, 뇌제의 강력함이나 보주의 능력 따위는 전혀 와 닿게 묘사되지 못하거든요. 그야말로 "소드 마스터 야마토"와 다를게 없는 셈입니다.
당대 고전 SF 판타지를 지나치게 의식한 설정들도 눈에 거슬립니다. 제피로스 전투대회의 경주차 레이스는 "매드맥스 2"를 떠오르게 만듭니다. 바루루와 합류하는 에피소드의 수인들은 누가 봐도 "스타워즈"의 이워크이며, 바슈크가 성전사가 된다는 일종의 반전 역시 다스베이더 느낌이고요. 이는 신선하다고 볼 여지가 없지는 않은데, 분량 부족으로 전개가 엉망이라 급작스럽게 등장하여 소모된다는 점도 아쉽습니다.
등장하는 여러 악당들, 기계 장치 및 여러 설정 디자인도 뒤로 가면 갈 수록 엉망입니다. 출하 엔딩이 결정된 후, 디자인을 맡은 전문가들도 기용되지 않았던걸까요? 전혀 SF스럽지도 않고, 유치해서 보기가 괴로울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초반부는 분명 괜찮았는데, 여러모로 아쉬움이 더 큽니다. 만보님 리뷰에 쓰여진 만큼의 가치가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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