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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8

2024년 교토대학교 추리소설 연구회 신입회원 추천 도서

출처는 하우미스터리.

'교토대학교 추리소설 연구회'는 아야츠지 유키토, 노리즈키 린타로, 시마다 소지 등 일본 추리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다수 배출한 명가지요.
신입생들에게 첫 모임 때까지 읽고 오라고 골라준 책 같은데, 고전 황금기의 본격 미스터리부터 일본 고전, 스릴러, 신본격 및 라이트 노벨에 가까운 최신작까지 폭넓게 선정한게 돋보입니다. 이 중 각자 자신에게 잘 맞는 취향을 골라보라는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이런 동호회에 가입할 정도라면 이미 다 읽어 보았을 작품들로 보이기는 합니다만....

국내 미출간 작품 외에는 저도 다 읽었는데 저는 "용의자 X의 헌신"과 "모든 것이 F가 된다"가 좋았습니다. 다른 작품들도 평균 이상은 되는 만큼,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2024/04/27

7인 1역 - 렌조 미키히코 / 양윤옥 : 별점 2점

7인 1역 - 4점
렌조 미키히코 지음, 양윤옥 옮김/모모

<<아래 리뷰에는 트릭과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명 모델 미오리 레이코가 자택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사인은 청산가리 중독이었다. 경찰은 그녀에게 농락당해 모든걸 잃은 의사 사사하라가 범인이라 생각했다. 사건 현장, 그리고 청산가리 봉투에 그의 지문이 있었고 그가 사망 추정일에 레이코를 방문한게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월드 섬유회사의 사장 사와모리 에이지로가 레이코를 죽였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해서 사사하라는 풀려났다.
그런데 사와모리 말고도 레이코가 평상시 원수라면서 이를 갈고 협박해오던 7명 모두가 똑같은 방법으로 레이코를 살해했다는게 밝혀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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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 "회귀천 정사"로 유명한 렌조 미키히코의 장편. 1984년 첫 출간된 작품이라고 합니다.
렌조 미키히코는 정통 본격물보다는 "회귀천 정사"같은 서정적인 문체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렌조 미키히코하면 떠오르는 작품과는 사뭇 다른 스타일과 전개를 보여줍니다. 미오리 레이코 시점에서 상대방이 자신을 살해하도록 유도하는 범죄물이자 도서 추리물로 시작해서, 7명 모두가 똑같은 방법으로 레이코를 살해했다는게 드러나는 시점부터는 하우더닛 본격 추리물이 되는 작품이거든요.
 
가장 인상적인건 트릭입니다. 트릭을 잘 사용하는 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꽤 현실적인 트릭을 멋드러지게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 트릭을 조금 설명해 드리자면, 레이코의 과거 직장 동료 이시가미 요시코는 레이코가 성형 수술을 했다는걸 폭로하겠다고 협박하며 돈을 뜯어내고 있었습니다. 레이코는 요시코를 꼬드겨 자기처럼 성형 수술을 시켜준 뒤, 그녀를 독살했습니다. 그리고 시체를 자택 침대 위에 놓아 두고, 7명의 원수들을 한 명씩 불러 거실에서 한바탕 연기 - 나에게 농락당한 의사 사사하라가 나를 죽이려고 독약을 가져왔지만 실패했다. 독약은 저 술잔에 들어있다라며 술잔을 바꿔치도록 유도 - 를 펼친 뒤, 술을 마신척 하고 침실로 뛰어들어가 곧바로 몸을 숨겼습니다. 뒤쫓아 침실로 온 손님들은 레이코와 똑같은 시체를 발견하고는, 자기가 술잔을 바꿔치기해서 레이코가 죽었다고 여기고 도망쳤고요. 이렇게 해서 7명이 한 명을 똑같은 방법으로 살해하는 범죄가 완성된 것입니다.
이 트릭을 성공시키려면 마지막에 레이코가 진짜로 독을 먹고 죽은 뒤, 그 시체를 숨길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게 사사하라였다는 진상도 괜찮았습니다. 청산가리를 준비할 수도 있었고, 세간에는 레이코 때문에 신세를 제대로 망친걸로 알려져있으니 독을 레이코 집에 가져온 동기도 누구나 납득할 수 있어서 사람들을 속이기에는 더할나위 없었던 덕분이지요.

단서도 적절히 제공됩니다. 사사하라가 경찰에 체포된 후, 레이코의 집을 방문할 날짜를 대충 얼버무리는게 대표적입니다. 무려 7명을 대상으로 벌인 계획이라 이틀에 걸쳐 진행했던 탓에, 날짜를 특정할 수 없었지요. 그래서 날짜를 대충 둘러댈 수 밖에 없었습니다. 15일의 알리바이만큼은 억지로라도 만들어서 확실하게 제공하고 있는걸 통해, 7명 모두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는걸 드러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레이코의 입으로 완벽한 알리바이 계획이 설명되었기에, 이를 이용하여 15일 이후 범행이 일어났다고 착각하게 만들고 본인들은 15일의 알리바이를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금붕어 1마리가 죽은 수조를 보고 수사를 펼쳐서 원래는 7마리를 샀다는걸 알아내는 등의 경찰 수사 과정도 합리적으로 그려집니다. 결국 경찰은 이러한 꼼꼼한 수사를 통해 스스로의 힘으로 사건 진상에 도달하고요. 이렇게 경찰이 나름 활약을 펼친다는건 여러모로 눈여겨볼만 했습니다. 특히 레이코, 하마노, 사사하라의 시점으로 작품이 전개되고 있는데 경찰까지 신경써서 분량을 안배해 준 정성(?)이 신기하더라고요. 사실 경찰은 헛다리를 짚는 수준으로 그쳐도 내용 전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거든요. 오히려 사와모리의 완벽한 자백 유서를 확인한 뒤에 개인적으로 수사를 진행한다는게 더 설득력이 없지요. 이건 작가가 '일본 경찰은 우수하다!'라는걸 어떻게든 드러내고 싶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캐릭터와 상황, 심리를 묘사하는 방법과 문체가 굉장히 옛스러워서 확실히 40여년 전 작품이라는 티가 물씬 납니다. 게다가 핵심 인물인 미오리 레이코에 대한 캐릭터 설정이 영 별로입니다. 그녀가 7명에게 원한을 품은 이유도 도무지 알 수가 없고요. 7명 모두 그녀에게 아픔을 주었을 수는 있지만, 거의 대부분 정당한 거래 관계였습니다. 오히려 그녀가 얻은게 훨씬 더 많아 보여요. 모두가 선망하는 대 스타가 되어 큰 돈을 만지게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멋대로 그들이 자기 인생을 망쳤다며 건수를 잡아 협박한다? 솔직히 죽어도 싼 여자라 생각됩니다. 
이런 말도 안되는, 혼자만의 피해의식에 가까운 복수에 동참해서 스스로 그들을 모두 죽일 결심을 하는 사사하라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녀에게 아무리 푹 빠져다 한들, 이건 상식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보다 현대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같은 작가가 썼더라면 아마 걸작으로 널리 알려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결과물은 조금 부족합니다. 최소한 '동기'만큼이라도 설득력있게 만들어 주었어야 했습니다.

2024/04/26

예술에 대한 여덟 가지 답변의 역사 - 김진엽 : 별점 3.5점

예술에 대한 여덟 가지 답변의 역사 - 8점
김진엽 지음/우리학교

작품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설명해주거나, 특정 사조에 대한 설명을 해 주는 책은 많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론을 설명해 줍니다. 딸아이 논술 학원 교제인데, 생각보다 깊이있는 내용이라 깜짝 놀랐네요.
통사적으로는 사물을 그대로 묘사하는 모방론, 모방이 아니라 감정까지 표현한 표현론, 무관심성에서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드는 색의 조합과 평면성을 강조하는 형식론, 뒤샹의 '샘'으로 논의가 시작되어 결국 예술이란게 무엇인지는 정할 수 없다는 예술 정의 불가론, 마지막으로 예술은 사회적 제도와의 연관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제도론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여러 개 있다는 다윈론, 예술은 인간 생존과 관련이 있어서 탄생했다는 진화 심리학과 예술 관계론이 설명됩니다. '예술은 경험이다'는 주장으로 끝맺고 있고요.

사실주의, 낭만파, 인상파,입체파, 야수파 등 각 미술 사조에 대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지만 그 사조와 예술, 아름다움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어느정도 감을 잡게 된 것 같아요. 예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술 정의 불가론'에 의거하여 사람들마다 답이 다를 수 밖에 없으니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고민해 보았는데, 예술은 그걸 감상하는 사람들이 아름다움같은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표현론과 형식론을 아우르는 것으로, 뒤샹의 '샘'이 어떤 감정을 일으켰다면 - 개인적으로는 참신함과 더불어 '재미'를 느꼈습니다 - 이 역시 예술이라 생각합니다. 이 책의 주장대로 일상 속에서 이런 경험을 하도록 해 준다면 더할나위 없을겁니다. 물론 실제 예술 작품을 실생활에 사용하는건 불가능할테니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라도 특별한 감정을 느끼는 경험을 계속 해야 겠지요. 같은 이치로, 집안에서 쓰는 물건들도 되도록 '예술'에 가까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걸 골라야하겠어요. 평상시에도 예술과 함께하는 경험으로 일상과 삶을 살찌우고 풍부하게 만드는게 좋을테니까요. 저는 그동안 인테리어 등에 들이는 돈을 무시하고 가성비를 중시했었는데 많이 반성이 됩니다.
이런 감상 경험에 더해, 작가 스스로 그 작품을 만들며 특별한 경험을 했다면 그 결과물이 예술이라는 관점에도 동의합니다. 그래서 수도 없이 다양한 예술 작품의 장르가 존재하고 계속 발표되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깊이 새겨둘만한 좋은 설명이 많은데, 대상 독자 연령대가 낮은 듯한 편집 디자인은 아쉬웠습니다. 같은 내용을 성인 대상으로 보다 상세하게, 어울리는 디자인으로 출간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겁니다. 
그래도 좋은 책이라는건 부인할 수 없습니다.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예술이 무엇인지 궁금하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