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인의 항아리 - 오카지마 후타리 지음, 김선영 옮김/비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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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컴비작가 오카지마 후타리의 마지막 발표작품. 이런저런 리스트에 포함되는, 대표작 중 한편이기도 하죠. 국내에는 어째서인지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컴퓨터의 덫> 과 컴비 해산 이후 컴비 중 한명인 이노우에 유메히토가 발표한 작품인 <메두사> 이렇게 딱 두편만 소개된 낯선 작가입니다. 그러나 추리애호가로서 명성만큼은 익히 잘 알고 있었기에 이 작품의 출간은 무척 반가왔어요.
일단 1989년이라는 발표 시기를 감안한다면 "가상현실"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설정과 아이디어가 돋보인다는 점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구미에서의 사이버펑크 유행 이후라 아주 참신하다고 하기는 어렵고 지금 읽기에는 낡아빠진 소재이나 당시로서는 시대를 앞서간 듯한 Klein-2 (K-2)에 대한 디테일한 설정은 꽤 그럴싸하거든요. 1테라 메모리로 완벽한 가상현실을 구현한다는 시스템이라서 설득력이 많이 약한, 꿈같은 이야기라는 생각은 들지만 그 외의 설정과 묘사는 괜찮았습니다. 하긴 스티븐 킹이 말했듯 무엇이 로켓에게 움직일 힘을 주느냐 하는 것은 과학잡지가 따질 문제일테니깐...
그리고 이 기계에 얽혀있는 음모를 밝혀낸다는 모험담 그 자체로는 아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좋은 엔터테인먼트 작품이라는 점도 확실합니다. 정통추리물은 아니지만 리사의 실종, 나나미의 등장에서부터 전개되는 과정이 긴박해서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만들기 때문이죠. 마지막의 현실과 비현실을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는 모호한 결말은 웬지 <메두사>를 연상케 만드는데 독자에게 여운을 남기는 측면에서 아주 효과적이었고요.
그러나 단점 역시 확실해요. 설정부터 이야기하자면 K-2에 대한 설정 이외에는 부실한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CIA가 언급될 정도의 거대 시스템 관리가 소홀하다는 것이 대표적인 예겠죠. 게다가 게임소설 한권 써본 청년 백수가 달랑 며칠 조사해서 진상을 꿰뚫는다는 것 역시 현실적으로 보이지는 않았고요.
"가상현실" 을 이용한 중간부분의 트릭, 즉 현실을 속이고 건너뛰게 만든다는 것이 너무 쉽게 드러나는 점은 비슷한 류의 가상현실 SF를 많이 본 탓이라 그렇다 치더라도 꽤나 중요한 떡밥으로 사용된 (하도 많이 등장해서 "클리셰" 라고도 할 수 있는) 모모세 노부오의 경고가 단지 경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당황스러운 점이었습니다. 메가존23의 이브처럼 직접적인 행동은 하지 않더라도 뭔가 도움은 줄 줄 알았는데 말이죠.
그 외에도 이 기계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이 결국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나 이노우에의 엔딩이 실질적인 클리어가 아니라는 것 (여기서 이노우에가 더 큰 의문을 가지고 행동을 벌이게 되니깐) 등 세세한 디테일도 아쉬움이 좀 남습니다.
그래도 흥미와 재미를 불러일으키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추리적으로는 별게 없고 가상현실을 이용한 이야기가 워낙 많이 있기에 신선함은 떨어지나 흥미진진한 모험담으로서는 충분하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왠지 영화나 만화 쪽에 더 잘 어울렸을 것 같긴 하네요.
마지막으로 컴비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99%의 유괴>가 번역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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