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트레크 저택 살인 사건 - 쓰쓰이 야스타카 지음, 김은모 옮김/검은숲 |
8살 때 친구 때문에 허리를 다쳐 하반신 불구가 되고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한 시게키는 어렸을 적 살던 로트레크 저택에 친구와 함께 방문했다. 그들이 아름다운 아가씨들, 멋진 그림과 함께 보낸 즐거운 시간은 곧이어 벌어지는 연쇄살인 사건으로 악몽으로 돌변하는데...
"시간을 달리는 소녀"로 잘 알려진 천재 중의 천재라는(그러나 개인적으로 솔직히 이해하기는 어려운) 쓰쓰이 야스타카의 몇 안 되는 본격 추리물입니다. 명성은 익히 들어왔습니다. 이런저런 리스트에 선정된 작품이기도 하고, 예전에 이런 글을 남겼을 정도로요.
쭉쭉 읽히는 재미는 확실해서 한 번에 읽을 수 있다는 점은 확실히 명성에 값합니다. 무려 3건의 살인 사건이 벌어져서 지루할 틈도 없고, 호흡과 길이도 적당한 덕분입니다.
무엇보다도 출판사 비밀 홈페이지에서 밝혔듯, 나름 공정하면서도 디테일한 여러 장치들이 공들여 짜여져 있어서 본격물로서의 가치가 아주! 높다는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약도를 비롯한 디테일들을 되짚어 보면 정말 감탄이 저절로 나올 정도예요. 예쁘게 만든 책의 만듦새도 좋습니다. 곳곳에 삽입된 로트렉 작품 컬러 화보 등의 디테일도 마음에 들고요.
하지만... 아쉽습니다. 국내 출간이 너무 늦었어요. 인칭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전형적인 서술 트릭 작품인데, 정확하게 트릭을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초반의 도입부부터 "아, 이렇게 독자를 속이려고 하는구나"라는 게 티가 팍 났거든요. 이 모든 게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살육에 이르는 병", "통곡", 오리하라 이치의 "도착 시리즈" 등 후대의 서술 트릭물을 너무 많이 접한 탓이지요.
또 다른 서술 트릭의 걸작들과 비교하면, 진범을 숨기려는 노력이 너무 작위적이라 거슬리기까지 했습니다. 분명히 한 명이 더 있는데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묘사의 설득력이 많이 떨어지고,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어서 공정한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거든요.
국내에서는 친숙하지 않은 일본 이름을 이용한 전개도 불만스러운 부분이었습니다. 이름을 이용할 것이었다면 차라리 "십각관의 살인"처럼 결정적 트릭으로 써먹었더라면 모르겠지만 하마구치 - 시게키 - 구도라는 등장인물의 호칭이 성인지 이름인지를 불명확하게 흐린 점은 서술 트릭을 위한 꼼수로 밖에는 느껴지지 않더군요.
아울러 추리적으로 본다면 서술 트릭 외에는 점수를 줄 부분이 거의 없습니다. 최소한 다른 트릭이나 장치가 한 개 정도 더 있어야 했습니다. 사건 자체의 수수께끼나 트릭은 없고 결국 경찰이 사건을 해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 별점은 2점입니다. 트릭만 놓고 보면 시대를 앞서간 좋은 작품이고, 나름 정교한 부분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20년, 아니 10년만 먼저 출간되었더라도 꽤 충격을 가져다줄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울 뿐이네요.
여러 서술 트릭 작품을 많이 읽지 않으신 독자분들께는 추천하지만 그렇지 않은 추리 애호가분들에게는 좀 심심한 작품일 수 있다는 점 염두에 두시길 바랍니다. 그러고 보면 아이디어에 의존하는 작품의 아이디어가 퇴색하는 순간 작품 자체가 빛을 잃는다는 예술사 고유 명제를 증명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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