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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5/28

트로이 - 볼프강 페터슨 : 별점 2점


고대 그리스, 가장 잔인하고 불운한 사랑에 빠지고 만 비련의 두 주인공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올란도 블룸)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다이앤 크루거).
사랑에 눈 먼 두 남녀는 트로이로 도주하고, 파리스에게 아내를 빼앗긴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 (브렌든 글리슨)는 치욕감에 미케네의 왕이자 자신의 형인 '아가멤논'(브라이언 콕스)에게 복수를 부탁한다. 이에 아가멤논은 모든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규합해 트로이로부터 헬레네를 되찾기 위한 전쟁을 일으킨다. 그러나 전쟁의 명분은 동생의 복수였지만, 전쟁을 일으킨 진짜 이유는 모든 도시 국가들을 통합하여 거대한 그리스 제국을 건설하려는 야심이었다.
그러나 '프리아모스' 왕(피터 오툴)이 통치하고 용맹스러운 '헥토르' 왕자(에릭 바나)가 지키고 있는 트로이는 그 어떤 군대도 정복한 적이 없는 철통 요새. 트로이 정복의 결정적인 키를 쥐고 있는 것은 불세출의 전쟁 영웅 위대한 전사 '아킬레스' (브래드 피트) 뿐. 그러나 아킬레스는 전리품으로 얻은 트로이의 여사제 브리세이스(로즈 번)를 아가멤논 왕이 빼앗아가자 몹시 분노해 더 이상 전쟁에 참가하지 않을 것을 선언하고 칩거해버린다. 아킬레스가 전의를 상실하자 연합군은 힘을 잃고 계속 패하게 되고 트로이의 굳게 닫힌 성문은 열릴 줄을 모른다. 병사들이 점차 지쳐갈 때쯤, 이타카의 왕인 지장 오디세우스(숀 빈)가 절묘한 계략을 내놓는다. 그것은 바로 거대한 목마를 이용해 트로이 성을 함락시키자는 것...

보기가 망설여졌던 영화입니다. 평이 워낙에 안 좋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의외로 재미있더군요! 일단은 “전쟁” 보다는 인간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 전개 방식이 마음에 들었거든요. 여러 주요 등장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방식은 큰 전투 위주의 기존의 대하 역사극과는 사뭇 다른 전개를 보여주는데 나름대로 괜찮더라고요. 아킬레스와 헥토르를 중심으로 각 등장 인물들을 어느 정도 비중 있게 묘사하지만 이야기의 밀도가 별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마음에 들고요. 이런게 감독의 역량이겠죠.
배우들의 캐스팅도 좋은 편입니다. 무엇보다 “에릭 바나!” 헥토르 역의 에릭 바나는 이 영화 최고의 수확이에요. 헐크에서는 몰랐지만, 서사 시대극에 어울리는 외모와 진지한 카리스마 곁들여진 연기를 통해 헥토르라는 캐릭터를 정말 근사하게 보여줍니다. 광신자이지만 자비롭고 현명한 왕 프리아모스 역의 피터 오툴이라던가, 나오자마자 아킬레스의 일격에 죽어버리기는 하지만 WWE 스타 출신의 레슬러 네이선 존스도 반가왔어요.

하지만 2억불이나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기대보다 대작스러운 느낌이 들지 않은 것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인간관계에 초점을 맞춘 탓이죠. 딱히 전투씬이 압도적으로 그려지거나 하지 않아서 스펙터클은 기대 이하입니다.
그리고 기존 신화를 각색한 방향성에도 문제가 많아요. 신화적인 요소를 철저히 배격하고 인간 중심의 새로운 역사극으로 각색한 것, 또 아가멤논이라는 캐릭터를 최대의 악역으로 설정한 것은 나쁘지 않은데 몇몇 인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감으로 역사에 등장하는 다른 여러 매력적인 영웅들이나 신들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무래도 아쉽습니다. 트로이의 목마가 너무도 시시하게 그려져서 극의 긴장감이 많이 떨어지는 것도 단점이고요.
무엇보다 주인공 아킬레스 역의 브래드 피트가 제일 문제에요. 사실 비쥬얼만 놓고 본다면 아킬레스보다는 파리스역에 훨씬 잘 어울리는 배우라 생각되거든요. 아무리봐도 지상 최강의 전사는 아니고 달달한 “가을의 전설” 필의 로맨틱가이로 밖에는 보이지 않아서 영 와닿지 않더라고요. 별로 매력적이지 않았던 파리스역의 올랜도 블룸도 실망스러웠으며 그리스 최고의 미녀 헬레네를 비롯한 여배우들도 다 그냥 그랬습니다. 특히나 여주인공인 브리세이스...전 처음엔 신지인줄 알았습니다. 흐....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에릭 바나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만 2억불짜리 대작답지 않다는 허전함은 어떻게 해도 채우기 어렵군요. 세세한 인간 관계와 현실적인 신화 이야기는 좋았지만 2억불짜리는 그만한 스펙터클이 있어야하는 법이겠죠.

2004/05/26

나는 결백하다! (To Catch A Thief) - 알프레드 히치콕 : 별점 1.5점

존 로비(캐리 그랜트)는 '고양이'라는 별명의 보석 절도범으로 악명을 떨쳤지만 지금은 과거를 청산하고 살아간다.
그러던 중 고급 호텔 리비에라에서 보석 절도사건이 잇달아 발생하고, 경찰은 범행 수법에서 존의 수법과 유사한 점을 발견하고 그를 용의자로 지목한다. 존은 자신의 결백을 믿어주지 않는 경찰을 피해다니면서 직접 범인을 찾아나서는데, 그 과정에서 프랜시스(그레이스 켈리)라는 아름다운 여성을 만난다. 프랜시스는 어머니의 보석이 도난당하자 존이 의심스럽다고 경찰에 말하고, 존은 다시 도주한다. 프랜시스는 존이 진범이라는 결정적인 증거를 찾기 위해 접근하다가 차츰 그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모든 상황이 존을 범인으로 몰아가는 가운데, 존은 마침내 부자들의 호화 파티에서 보석 도둑의 정체를 포착하고 지붕 위에서 결투를 벌인 끝에 진범을 붙잡는다.

이 영화는 사실  어떤 영화건 기대치 이상의 재미를 안겨다 준 히치콕 감독이기에, 그리고 무언가 울림이 있고 긴박감 마저 전해지는 멋진 한글 제목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보게 된 영화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많이 실망스럽네요. 프랑스 리비에라 해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한껏 살린 촬영과 미술 세트들은 볼 만 하고, 그레이스 켈리의 단아한 미모는 돋보이지만 이 영화에서 건질것이라곤 단지 그러한 비쥬얼 몇개뿐입니다. 제목에서 울리는 긴박감이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템포가 느려 지루하기 짝이 없거든요.
또 범인으로 의심받는 존의 행동이 어설프면서도 낙천적이라 카리스마는 커녕 바보같아 보이기만 합니다. 이런 주인공에게 단지 "보석도둑"이라는 매력적인 직업때문에 반하는 멍청한 미국 여자 그레이스 켈리의 설정 역시 얄팍하기 그지 없죠.
무엇보다도 아무런 복선이나 단서 없이 이야기가 흘러가다가 난데없이 범인을 밝혀내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더군요. 범인의 정체가 너무 뻔하다는 것 역시 실망감을 가중시키는 요소였고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느슨하며 긴장감도 없는, 로맨틱 코미디에 가까운 시시한 작품이었습니다. 영화 평점이나 평이 후한 것은 거장의 이름값 덕일 뿐, 제가 본 히치콕 감독 영화 중에서는 가장 실망스러웠어요.

2004/05/25

쿼런틴 - 그렉 이건 / 김상훈 : 별점 2점

쿼런틴 - 4점
그렉 이건 지음, 김상훈 옮김/행복한책읽기
2066년, 지구를 비롯한 태양계가 버블이라 불리우는 명왕성 궤도의 두배크기의 정체불명의 광대한 검은 구체로 둘러싸여 별들이 사라진 시대, 즉 태양계가 외계 종족의 과학기술 능력에 의해 격리(quarantine) 당한 시대,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의 사립탐정 닉 스타브리아노스는 익명의 의뢰인으로부터 24시간동안 엄중한 감시를 받고 있던 정신지체 여성의 행방을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닉은 각종 공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나노머신에 의한 여러가지 모드를 갖춘 전직 경찰출신으로 로라라는 실종된 여성을 찾는 동안 그 여성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양자역학에 의한 다양한 확률적 관측을 절대적인 경로로 스스로 축소할 수 있는 특수한 능력의 소유자로 그 능력의 모드화를 위해 “앙상블”이라는 정체불명의 조직에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되나, 그 자신도 앙상블을 위한 충성모드가 삽입되어 충실한 심복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닉은 뤼 키우충이라는 충성모드를 자신만을 위해 개조한(?) 과학자에 의해 스스로 확산능력을 삽입하게 되고 신에 가까운 능력을 획득하면서 스스로 “앙상블”의 실체와 버블의 존재에 대한 비밀에 다가가게 된다….

간만에 읽어본 하드 SF. 여러가지 상을 많이 타기도 했고 걸작이라는 칭송 역시 높은 소설이라 취향은 아니지만 한번 도전해 보게 되었습니다.
일단 소설 전체에 깔려있는 나노머신등을 이용한 모드라던가 각종 장치들에 대한 디테일과 격변한 지구촌에 대한 상세한 묘사도 멋지지만, 하드보일드 스타일의 탐정이 등장하는 추리적인 설정과 전개는 아주 좋았어요. 덕분에 초반부의 흡입력은 정말이지 최고였습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중반 이후부터는 물리학에 바탕을 두고 그 중에서도 “양자역학”이라는 학문에 굉장히 깊게 파고들어 이른바 “평행우주”라는 세계관과 지구인의 잠재 능력에 의한 우주의 위기까지를 엄청난 스케일과 방대한 과학적 지식으로 펼쳐놓는데... 솔직히 이러한 이론들에 대해서는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너무 어려워서 읽다가 머리에 쥐나는 줄 알았네요. 제가 이공계 출신이 아니라서 더 심하기도 했겠지만 그래도 대중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실패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울러 이러한 어려움은 너무나도 딱딱한, 원서를 그대로 직역한 듯한 재미없는 번역도 한 몫 단단히 합니다. 좀더 읽기 쉽게 번역할 수도 있었을텐데 출판사측 배려가 아쉽네요. 행복한 책읽기 SF 총서 기획은 환영할만 하고, 선정된 작품 또한 이견을 표하기 힘들만큼 수준높고 좋은 작품들이지만 앞으로 번역에는 보다 신경을 써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입니다. 명성 높은 걸작이지만 어쩌겠습니까. 제가 이해도 못한 내용에 점수를 주는건 힘들잖아요. 물론 이렇게 어려운 이야기를 작가 나름의 상상력으로 펼쳐놓는 재주는 정말로 놀랍기에 앞으로 보다 쉽고 간결한 문체로, 보다 하드보일드 느낌으로 번역되어 재출간된다면 다시 한번 읽어봐야지 싶긴 해요. 그러나 현재 시점의 이 책은 저에게는 전혀! 가망이 없는, 그야말로 quarantine 대상일 뿐입니다...

2004/05/24

십자군에 맞선 이슬람의 위대한 술탄 살라딘 - 스텐리 레인 풀 / 이순호 : 별점 4점

살라딘 스탠리 레인 풀 지음, 이순호 옮김, 정규영 감수/갈라파고스

얼마전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과 신의 전사들"을 읽고 생겨난 십자군과 살라딘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해 챙겨보게 된 살라딘의 전기.
위대한 군주 살라흐 앗 딘, 즉 살라딘의 일생을 출생에서부터 사망까지 그리고 있습니다. 간단한 일대기 순서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살라딘의 출생
  2. 이집트 정복을 발판으로 이루어낸 제국의 건설
  3.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일대를 평정함으로 군주의 자리에 오른다.
  4. 성전(지하드)을 통해 예루살렘을 탈환하고 예루살렘 왕국을 거의 평정
  5. 관대한 포로 정책으로 정복하지 않고 남겨둔 티루스를 기반으로 한 3차 십자군과의 공방전과 휴전
  6. 사망

이러한 내용을 충실한 사료, 치밀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상세하고 냉정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서양인 시각에서는 십자군과 기사도라는 잣대에 가중치가 부여될 수 밖에 없는 만큼, 그동안 이교도 군주 살라딘에 대한 세간의 일반적 평가는 사자왕 리처드보다 낮을 수 밖에 없었던 면이 있습니다. 때문에 인지도 측면에서 상당히 낮게 평가되고 있었고요.
그러나 이 책은 그런 모든 상식을 뒤집으며, 또한 살라딘이 왜 아직까지 중동 지방에서 추앙받고 영웅시 되는지 잘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는 전투에서는 거의 항상 승리하고 패자에게는 관대했으며 통치하는 백성들을 아끼고 독실한 이슬람 교도로서 기도와 참회에 충실하고, 스스로는 단 한푼의 부정축재나 사치를 하지 않은 진정한 군주였던 것으로 설명되거든요.
특히나 수없이 많은 배신을 때려버리는 유럽인 이교도들에게 관대한 정책으로 일관하여, 결국 3차 십자군의 난입을 허용하는 그의 실수는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뭐 결국 3차 십자군도 성지 탈환에 실패하고 휴전에 합의함으로써 절반의 성공을 이끌어내긴 했지만요. 물론 그도 개인적 원한이 쌓여있던 케라크의 레지널드에게만은 단호한 모습을 보이긴 합니다만.
그의 맞수로 표현되는 사자왕 리처드와의 비교를 통해 본다면 뛰어남이 한층 더 돋보입니다. 사자왕 리처드는 전쟁에는 탁월했지만 다른 어떤 점에서는 살라딘과 비교할 수 있을 정도의 장점이 단 하나도 없더라고요. 오히려 동네 깡패에 가깝다고나 할까…. 뭐 영국 입장에서야 영웅으로 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이라크인들이 부시라는 존재에 대해 느끼듯 중동인에게는 거대한 재앙일 뿐이었겠죠.

이렇게 서양인이 썼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서양인 시각에서만 바라보지 않은 공정함이 돋보인 살라딘 전기라는 점에서 추천하는 바입니다. 치밀한 도판과 서술로 그려진 전쟁장면과 여러 일화들도 뭐 하나 빼놓을 수 없을 만큼 뛰어나 아주 만족스러웠어요.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너무 살라딘의 찬양 일색이라 왠지 어색하다는 것 정도? 때문에 별점은 4점입니다. 십자군에 대해 공정한 시각을 가지고 위해서, 또 살라딘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꼭 읽어야 할 필독서가 아닌가 싶네요.

2004/05/23

앤더슨의 테이프 - 로렌스 샌더스 : 별점 2.5점

앤더슨의 테이프 - 6점 로렌스 샌더스 지음/고려원(고려원미디어)

우연찮게 만나게 된 유부녀 애그니스 애벌리와의 관계를 통해 방문하게 된 호화 아파트 한 동을 통째로 털겠다는 대담한 계획을 세운 존 "듀크" 앤더슨. 그는 어둠의 세계 속 여러 동료들의 힘을 빌어 계획을 차근차근 진행해 나간다. 그러나 모든 범행은 각종 사법기관 및 관계 당국의 도청 장치들에 의해 모니터 되고 있던 상황. 그래도 계획은 성공하나 의외의 결말을 맞게 되는데...

로렌스 샌더스는 상당히 유명한 작가이지만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계명"시리즈나 "대죄"시리즈 등은 아직 접해 보지 못했습니다. 읽어본 것은 <피터 S의 유혹>이라는 남창 지골로물 뿐. 그런데 그 작품이 아주 시시껄렁했기에 왠지 "시드니 셀던"같은 작가로 느껴져 그동안 별 관심은 없었더랬죠.
그러던 중 이 책이 마침 poirot님의 블로그에서 소개된 것을 보고 기억에 남아 있기도 하던 차, 자주가던 헌책방에 떡하니 놓여있길래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문고본 헌책이라 굉장히 저렴하기도 했고, 작가의 데뷰작이니만큼 매너리즘에 빠진 펄프 픽션은 아니겠지... 하는 기대도 없잖아 있었습니다.

읽어보니 한번에 읽게되는 흡입력이나 구성력은 로렌스 샌더스라는 작가의 명성이 허언이 아니구나 싶더군요. 앤더슨이라는 캐릭터나 그가 계획을 진행해 나가는 단계까지는 정말로 흥미진진해요. 스토리텔러로서의 재능은 확실하달까요?
또 소설의 전개를 전부 "도청 테이프"에서 인용한 내용으로 이어나간다는 큰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아주 인상적이고 재미있었어요. 뒷부분의 작품 해설에서는 마이클 클라이튼의 <안드로메다 스트레인>과 유사한 방식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소설적인 장치나 트릭 면에서는 <안드로메다 스트레인> 보다 훨씬 뛰어나다 생각되네요.

그러나 내용이 뻔하고 결말 역시 예상대로라는 점은 좀 아쉽습니다. 모처럼의 특징을 잘 살리지 못한 느낌이에요. 무엇보다도 실제 범행에서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 인해 한 순간에 계획이 틀어진다는 마지막 부분은 너무 실망스러워요.
게다가 제가 싫어하는 불필요한 성적인 묘사가 난무해서 작품 전체의 질을 떨어트린다는 것도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이런 묘사는 시드니 셀던류의 펄프 픽션과 별 다를게 없을 정도에요. 

때문에 별점은 2.5점입니다. 펄프 픽션과 아이디어 반짝이는 괜찮은 범죄물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그런 작품이에요. 그냥저냥 무난한 데뷰작이라고나 할까요? 그래도 생각보다는 확실히 괜찮았어요. "대죄"나 "계명" 시리즈도 읽어봐야겠습니다. 덧붙이자면, 이 계획의 가장 큰 교훈이라면... "피해자를 절대 봐주지 마라" !

2004/05/19

본인방 살인사건 - 우치다 야스오 : 별점 2.5점

본인방 살인사건 - 6점
내전강부/범조사(이루파)

고고한 인품으로 소문난 일본 바둑계의 노장 다카무라 본인방이 친구 세가와 9단의 제자 우라카미 8단과의 천기위 방어전을 끝낸 직후 변사체로 발견된다. 천기위전의 주최 신문사인 대동신문사의 고노에 기자는 다카무라 본인방의 마지막 대국이었던 천기위전의 기보를 정리하다가 기보에 숨겨진 비밀을 알아낸 뒤 죽음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하며, 고집세고 우직한 성격의 우라카미 8단도 그 과정에 동참하여 본인방 죽음의 배후에 얽힌 연쇄 살인 사건의 진상을 알아내게 된다…

과거 <빙설의 살인>으로 접했던 우치다 야스오의 데뷰작입니다. 그간 제목은 자주 봤지만 별로 관심이 없던 차에 헌책방 순례(?)중 우연히 실물을 보고 싼 가격에 별 생각없이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왠걸! <빙설의 살인>은 작가의 시리즈 캐릭터 탐정 아사미 시리즈인데도 불구하고 완전 기대 이하였었는데 이 작품은 기대 이상으로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다른 작품에서 보기 드문, 사상 초유의 암호 트릭은 정말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독특할 뿐더러 "바둑"과 실제 프로 바둑시합에 있는 제한시간이라는 소재를 사용했다는 점이 정말 신선하거든요.

하지만 암호 트릭이 오히려 문제이기도 합니다.  이 트릭 하나에 소설 전체가 좌우되는 느낌이 강하거든요. 작가 스스로 걸작 트릭이라고 생각했는지 소설 전체에 걸쳐 사용한 탓으로 막판에는 조금 힘이 떨어지는 감이 있습니다. 중반보다는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한번 더 터트려 주는게 좋았을 것 같은데 말이죠. 그리고 데뷰작인 탓에 전개 등 많은 부분이 어설픈 덕에 암호 트릭이 돋보인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범행 동기도 그닥 와 닿지 않고, 동기 및 배후를 풀어나가는 전개도 매끄럽지 못한 등 초짜티를 풀풀 내고 있으니가요.
아울러 사회파 분위기를 어설프게 따라가면서 무언가 해결을 봄직하다가 결국 용두사미로 끝나버리는 결말 부분도 아쉬운 점입니다. 그나마 해피엔딩이라는 점 하나는 괜찮았습니다만....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깔끔한 분량에 쉽게 쉽게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고스트 바둑왕> 등으로 어느정도 알려진 일본 프로 바둑의 세계를 예전에 굉장히 독창적인 트릭과 함께 보여준 부분은 높이 사고 싶네요. 그러나 아쉬움도 적지 않기에 감점합니다.

그나저나, 탐정 아사미 시리즈는 정말 괜찮은 작품인가요? <빙설의 살인>은 정말 실망스러웠는데 다른 작품들은 괜찮은 것인지 궁금합니다.

마지막으로 읽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트릭의 내용을 남깁니다. 흰색 글씨이니 드래그해 보시길.

다카무라 본인방은 우라카미 8단과의 최후의 대국에서 고심하다가 평범한 수를 두고 결정적 순간에 생각 없이 바로 대응하는 등의 이해할 수 없는 바둑을 둔다. 고노에 기자는 이 기보를 분석하다가 우라카미 8단이 바둑의 "시간제한"룰, 즉 한 수를 두는데 걸리는 시간을 이용하여 모르스 부호 암호를 남겼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2004/05/18

신촌 숨어있는 책에서...

새로 구입한 책

우치다 야스오 - "본인방 살인사건" 1,500원
로렌스 샌더스 - "앤더슨의 테이프" 2,000원

본인방 살인사건은 고구마같은 인터넷 헌책방에서 많이 봤지만 별 관심 없었는데 직접 가서 골라보니 사게 되더군요. 앤더슨의 테이프는 poirot님의 블로그에서 높이 평가하시길래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주는 덕분에 재미있게 지낼 수 있겠네요. 아.. 이사 갈 때 까지는 책좀 사지 말아야 할텐데....

2004/05/15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과 신의 전사들 - 제임스 레스턴 / 이현주 : 별점 3점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과 신의 전사들 제임스 레스턴 지음, 이현주 옮김/민음사

이 책은 십자군 운동(전쟁), 그 중에서도 3차 십자군 중심의 역사 서적. 특히 3차 십자군에서도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영국의 사자심 (Lion Heart) 왕 리처드와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을 축으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물론 둘 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존엄왕 필리프, 신성 로마제국의 붉은 수염 프리드리히 1세, 오스트리아의 레오폴트 5세, 예루살렘의 왕 기, 그의 자리를 노리는 배교자 몬페레도의 콘래드, 기사도의 표상 아벤의 제임스 등 많은 매력적인 인물이 등장하여 흥미진진한, 한편의 대하 군웅 - 서사극을 방불케 하는 재미를 전해 줍니다.

읽으면서 새롭게 안 사실도 많은데 리처드와 살라딘은 결국 승패를 가르지 못하고 협상 후에 헤어졌으며 그 둘에 관련된 여러 낭만적인 전설은 다 거짓말이었다.. 는 것이 가장 큽니다. 십자군 내부에서의 벌어졌던 분열과 다툼 역시 상세한 설명 덕분에 많이 이해할 수 있었고요. 그 외에도 십자군 당시의 예루살렘 왕국이라던가 전투들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리처드가 진정 용감한 전사였다는 것, 비록 탐욕과 허풍, 교만함으로 가득 차 있긴 하지만 전쟁에 있어서만큼은 탁월했다는 것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내분으로 실패했지만 살라딘의 부대를 크게 격파한 것은 사실이고, 때문에 제대로 자웅을 겨루지는 못했지만 살라딘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인물이라는 묘사로 가득해요. 반대로 살라딘은 여러 휘하 아미르 (태수) 들에게서 존경은 받았지만 군사적으로는 대단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고 묘사되네요. 뭐 서양인 시각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당연하겠지만요.

그나저나, 읽으면서 요사이 이라크의 현실과도 어느정도 겹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역사는 돌고 돈달까요? 십자군 당시에는 “성지”를 탈환한다는 미명하에 남의 나라 땅을 노략질 하고 약탈했다면, 현재는 “석유” 때문이라는 것만 차이점일 뿐 결과적으로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으니까요. 중동 지방 전체가 조각조각 쪼개져 버려 힘을 못 쓰는 덕에 미국의 부시가 새로운 리처드 1세로 등극할 수 있었겠죠. 중동지방에 살라딘 같은 지도자가 있다면 세계 3차 대전이 벌어졌을텐데 우리 같은 변방 국가들에게는 그나마 나은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아랍인들에게는 대재앙이지만….)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3점. 상당히 재미있는 책임에는 분명합니다. 이런 저런 생각도 들게 만드는 것도 좋았고요. 앞으로 보다 냉정한 평가를 위해서 아랍인의 시각에서 쓴 십자군 책도 한번 읽어 봐야겠습니다.

덧붙이자면, 사실 1차 십자군 때부터 활약한 케라크의 영주 샤티용의 레지널드의 이야기가 더 관심이 있었는데 1차~2차 십자군 때의 이야기는 간략히 묘사해서 아쉽더군요. 희대의 악인이자 도적인 Dark Prince, 케라트의 어둠의 왕자 레지널드는 그의 행적만 묘사해도 대단한 책이 될 것 같은데…

2004/05/12

poirot님 블로그에서 퍼온 25문 25답

25문 25답

01. 당신은 책을 좋아합니까? (좋든 싫든) 그럼 그 이유는 뭐죠?

☞좋아합니다. 부자의 법칙 중에 "책을 많이 읽어라! 그 사람의 경험과 지식을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이다! 어쩌구.." 하는 글귀도 있잖아요. 물론 전 부자가 아니지만....

02. 한 달에 책을 몇 권 정도 읽나요?

☞음.. 많이 읽으면 15권 이상, 적게 읽으면 4권 정도....

03. 특별한 독서 취향이 있다면?

☞추리 단편집의 광적인 팬입니다.

04. 가장 최근에 읽은 책과 현재 읽고있는 책은?

☞읽은 책: 피터 크레머 "U-333"
☞읽고 있는 책: 제임스 레스턴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과 신의 전사들"

05. 책을 고르는 기준이 있다면, 어떤 거죠?

☞작가와 서지정보 정도랄까요...

06. 책은 사는 편인가요, 아니면 빌리는 편인가요? 빌린다면 어디에서 빌리죠?

☞사는 편이고 형이 사는 책을 공유하는 편입니다.

07. 특히 좋아하는 작가와 싫어하는 작가는 누가 있을까요? 그 이유는 뭐고요? (장르 불문하고)

☞좋아하는 작가 : 좋아한다기 보다는 일본 작가들 책을 많이 읽습니다.
☞싫어하는 작가 : 아카가와 지로(!), 제임스 페터슨, 조갑제(!),

08. 특히 좋아하는 장르와 싫어하는 장르가 있다면 어떤 거죠? 그 이유는 뭐고요?

☞좋아하는 장르: 미스터리, SF, 역사물, 전기물, 잡다구레한 상식서적 들, "세계의 불가사의"류같은 장르들....
☞싫어하는 장르: 싫다기 보다는 순문학 장편은 지루하더군요. 그리고 성적인 묘사로 점철된 의미없는 장편 들....

09. 소설 속 인물 중에 특히 좋아하는 인물과 싫어하는 인물은 누구죠?

☞좋아하는 인물: 뤼뺑(!), 홈즈, 다아시경, 류젠이(불야성), 모스주임
☞싫어하는 인물: 가타야마 형사(^^) 딱히 기억이.....

10. 일반적인 책말고 만화책도 좋아하시나요?

☞광적입니다.

11. 만화책 중에서 인상깊었던 작품이나 작가를 꼽아본다면요?

☞추리만화는 거의 대부분 좋아합니다. 스포츠 만화도 굉장히 좋아하고요. 두 장르이외에 인상적인것은 초중반의 "베르세르크"(미우라 켄타로), "바나나 피쉬"(요시다 아키미), 아사리 요시토오 작품은 다 좋아하고요. TONO씨도 거의 전작품이 좋고..."현시연"이야 당근 좋아하고.. "갤러리 페이크"는 요새 관심있게 보고 있고..."도박묵시록 카이지" 중반부까지, "건담 Origin" (야스히코 요시카즈)도 관심대상이고... 너무 많군요. SKip!

12. 만화 속 인물 중에 특히 좋아하는 인물과 싫어하는 인물은 누구죠?

☞좋아하는 인물 : 너무 많아서...
☞싫어하는 인물 : 기억이....

13. 기억에 남는 대사나 문구가 있다면 말씀해보시겠어요?

☞"단순한 성욕보다 훨씬 고도의 지적활동이야!" (By 마다라메)

14. 특별히 게임, 영화 등 다른 매체로 제작됐으면 하는 작품이 있다면 어떤 거죠?

☞"시민 쾌걸" 제작 진행중이라는데 왜 소식이 없는지...

15. 다른 매체로 제작된 것 중, 좋았던 작품과 나빴던 작품을 꼽으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좋았던 것: 39계단 (히치콕영화), 올드보이, 스캔들 (최근 1년간만 쳐서요)
☞나빴던 것: 히스토리 채널에서 방영했던 아르센 뤼팽, "체포하겠어" 드라마 판, 소년탐정 김전일 영상버젼 (전부!). "퇴마록"(쓰레기), "모방범""39계단" (이 일본원작의 두 작품은 너무 영화가 재미없어서...) 등등등 엄청나죠....

16. 미스터리 소설 장르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를 말씀해주실래요?

☞어렸을 적 팔았던 홈즈 단편 1편씩이 실려있는 단행본 문고 시리즈 (어디 출판사인지는 기억이 안나네요)를 하나씩 모으면서....

17. 그 당시 미스터리 소설 장르에 대한 느낌은 어땠어요?

☞홈즈 나이스!

18. 읽어본 것 중 가장 인상깊었던 미스터리 소설을 꼽아주실래요?

☞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10개의 인디언 인형"

19. 읽어본 것 중 가장 최악이었던 미스터리 소설은 어떤 것이죠?

☞"미스코리아 살인사건" 글쓰기의 기본도 안 되어있는 작가가 장편을 내 놓다니...

20. 요즘의 미스터리 소설 시장에 대해 어찌 생각하세요?

☞팬들의 사랑이 필요한 가장 중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21. 최근 읽은 작품 중 괜찮다 하는 미스터리 세 편을 꼽아보시겠어요?

☞ "얼굴에 흩날리는 비"-기리노 나츠오, "바리바"-모리스 르블랑, "엘러리 퀸의 모험"-엘러리 퀸

22. 미래의 미스터리 소설 장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 밝지 않나요?

23. 게임, 영화 등등 소설 외 미스터리 장르 중 좋았다 생각하는 것을 꼽는다면?

☞ "QED" 최고!

24. 특별히 추천하는 게임을 들어보실래요?

☞ WWE SMACK!DOWN, 하지만 주로 하는 것은 워크래프트3 입니다.

25. 기획 중이거나 집필 중인 소설이 있나요? 있다면 소개를 해주실래요?

☞ 한국형 안락의자 탐정이 나오는 소설이 어떨까 하는 생각은 항상 하고 있습니다. "지식검색 탐정" 하하하!

2004/05/09

2차 대전 잠수함 이야기들 - 10년 20일 / U-333 : 각 별점 3점

10년 20일 - 6점
칼 되니츠 지음/삼신각
U-333 - 6점
피터 크레머 지음, 최일 옮김/문학관

2차대전 당시의 잠수함 U보트에 관련된 책 2권을 연달아 읽었습니다. 한 권은 U보트, 독일 잠수함 전대의 사령관이자 훗날 해군 총 사령관, 그리고 히틀러의 뒤를 이은 3제국 최후의 총통으로 연합군에 항복한 칼 되니츠 제독의 회고록 “10년 20일”이고 다른 한 권은 U보트의 함장 피터 크레머의 “U-333”입니다.
같은 시기, 같은 분야의 전투에서 역량을 발휘한 두 명의 회고록으로 각각 나름의 재미도 충분하나 비교해서 읽는게 훨씬 재미있더군요.

일단 "10년 20일"은 되니츠 제독이 사령관이었던 것 만큼 스케일이 훨신 크더군요. 잠수함을 한척 단위의 전투가 아닌 여러 척으로 그룹을 묶어 수송선단을 공격하는 이른바 “늑대떼 전술”을 비롯, 각 바다를 쪼개서 지역별로 함정을 배치하며 활동기간을 늘리기 위한 “젖소” 잠수함의 도입 등 전략적인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에요. 이에 반해 피터 크레머 함장의 “U-333”은 스케일 보다는 실제 전투에서의 활동들, 수송선단의 추격  및 공격에서의 회피, 폭뢰공격으로 침몰해 가는 함정의 운영 등 실질적 전투 활동의 디테일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습니다.
당연히 자료적 가치도 높아서 두 책 모두, 전투 이외에도 잠수함의 성능이나 독일의 여러 공격 무기 (어뢰 및 대공포 등)와 연합군의 대잠무기, 잠수함 건조 방법 및 훈련 방법 등 잠수함 부대에 관한 거의 모든 내용을 담고 있는 점은 동일하고요.

그런데 두 책 중 개인적으로는 되니츠 제독의 일대기가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지도자가 누구이건 맡은 바 명령에 충실하게, 설령 그 상황이 타개하기 어려울 지라도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하여 난국을 타개해 나가며 아울러 소신을 굽히지 않는 진정한 독일 군인의 표상이랄까요? 처칠이 언급했듯이 되니츠에게 개전 초기 운영 가능한 U-보트가 100척만 더 있었더라면, 아니면 종전 직전에 실전 배치 되기 시작했던 최신예 잠수함 XX1, XX2, 발터 잠수함 등이 그에게 1년이라도 먼저 보급되었더라면.. 하는 가정이 성립될 만큼 - 물론 피터 크레머 함장의 회고처럼 이미 1944년 겨울부터는 잠수함 전대에 미래란 없었다는 것이 정확했겠지만 - 매력적인 인물로 읽으면서 그에게 매료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정말 세계 전사에 기록될 만큼 유능한 희대의 명 제독인 듯 싶어요.
허나 세세한 재미를 따지자면 실제 전투상황이 강조되는 한편의 영화 같은 “U-333”쪽이 더 낫기도 합니다. 동기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종전까지 포로가 되지 않고 살아남은 “운좋은” 함장 피터 크레머의 활약을 그리고 있는데 아무래도 전과는 좀 떨어지는, 생명력이 좀 강한 함장이어서 그런지 (에이스들은 거의 죽거나 포로가 되어 버렸죠) 전투가 뭔가 격침을 시킨다던가 하는 호쾌한 맛은 떨어지지만 영화 “U보트”에서 볼 수 있었던 실제 연합군 대잠무기에 대한 공포, 잠항과 부상을 반복하며 벌어지는 긴장감, 잠수함 고장에 따른 위기 등이 잘 그려져 있거든요. 이런 부분은 영화가 이 책에서 많은 부분 모티브를 얻지 않았나 싶더군요. 아울러 뒷부분에는 되니츠 제독의 일대기가 요약되어 부록으로 실려 있어서 비교해서 읽는 재미가 더 컸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두 책 모두 3점. 약 820척의 U보트 중 718척이 침몰되었고 39,000명의 우수하고 잘 훈련된 승조원 들 중 32,000명이 목숨을 잃은 전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손실을 기록한 독일 잠수함 부대, 그리고 그 부대원들이 끝까지 희생을 다하며 충성한 해전사 희대의 명 제독 칼 되니츠와 실제 승조원으로 2차대전 개전부터 종전까지 활약한 U보트 함장 피터 크레머의 회고록이니 만큼 2차대전에 관심있으시다면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저도 영화 “U보트”나 다시 한번 구해 봐야 겠네요.

그나저나, 개인적으로는 종전과 동시에 연합군에게 인수되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자침시킨 독일 잠수함 부대원 들 중 일부가 최신예 함과 기술을 가지고 다른 부대원, 기술자들과 더불어 히틀러의 비밀 자금과 함께 어딘가에서 세력을 키운다는 “라스트 바탈리온” 같은 이야기가 꿈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드는군요^^

덧 : 되니츠도 인정했지만 히틀러라는 인물의 카리스마와 인물 장악력은 정말 남다른 데가 있었던 것 같더군요. 그의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되도록 떨어져 있어야 했다.. 고 까지 인용했을 정도거든요.

2004/05/01

나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백 편의 영화를 만들고 한푼도 잃지 않았는가-로저 코먼 / 김경식 : 별점 4점


추리소설을 굉장히 좋아하기는 하지만 다른 책들도 읽어보려고 애쓰는 편입니다. 그러나 그 역시 대부분 제 취향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읽어온 책들도 역사와 전기 문학이 많더군요.

이 책도 이러한 제 취향을 반영한, 전기 문학입니다. 미국 독립 영화 제작자이자 흔히 'B급 영화의 제왕'이라 불리는 로저 코먼의 자서전이죠.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나서 스탠포드 대학을 졸업한 후, 영화업계에 발을 들여 놓기로 결심하고 폭스 스튜디오 문서 배달사원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뒤부터의 파란만장한 영화 인생을 담고 있습니다.
독립 영화사의 생존 자체가 어려웠던 1950년대, 10만달러 미만의 예산으로 영화를 제작하다가 직접 감독을 하게 되고, 급기야 스스로 제작사를 차려 배급까지 겸하며 현재까지 그 경력을 이어오고 있는 기인 감독의 일대기이니 만큼 기대가 아주 컸습니다.

읽고나니 역시나 명불허전! 현재까지도 "코먼 사단"이라고 불리우는 영화계 인맥들 (감독-마틴 스콜세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죠 단테, 피터 보그다노비치, 론 하워드, 제임스 카메론, 조너선 드미, 존 세일즈..... 배우 : 잭 니콜슨, 찰스 브론슨, 피터 폰다, 로버트 드니로, 실버스타 스탤론, 탈리아 샤이어... 제작-메나헴 골란, 게일앤허드..... 등등등)과의 에피소드와 영화 촬영때의 에피소드, 그리고 그가 제작한 영화들의 이야기까지 책은 끝까지 읽는 동안 한눈 팔기가 힘들정도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작품으로 평가한다면 물론 그가 찍은 영화가 걸작이 많은 것도 아니고 이틀만에 찍은 영화도 있는 만큼 ("Little Shop Of Horrors") 완성도가 그닥 높다고 할 수도 없겠지만 적은 제작비와 일정만으로도 화면에 보이는 비쥬얼은 최대한으로 끌어낸다는 그의 신념과 일에 대한 열정, 그리고 독특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들로 무장한 영화들은 그에게 제목대로 100편의 영화를 만드는 동안 손해를 가져다 주지 않았다고 하네요.
또한 비록 싸게 만든, 이른바 "B"급 영화로 돈 (흥행)에 포커스가 맞춰진 영화들을 제작하고 만들었지만, 정치적으로 좌파 성향에 아웃사이더들을 다룬다던가, 호러에 코미디를 결합한다던가하는 독특한 아이디어들로 무장한 그의 영화들은 현재도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된 사실입니다. 책을 읽고나니 "델마와 루이스"나 "멘인블랙" 등의 영화는 사실 전부 코먼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더군요. 정말 시대를 많이 앞서간 것 같아요. 이러한 선구자적인 사상에 더해 헐리우드의 큰 세력이자 줄기가 되어버린 이른바 "코먼 사단"까지 아우른다면, 그의 영화 인생은 비록 음지였지만 거장의 인생으로 표현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현재 (2004년 4월) 시점으로 조사해보니 제작을 342편, 감독을 54편 했으며 각본도 5편, 거기에 배우 경력까지 있는 아직까지 팔팔한 현역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다니 대단하기만 할 따름이에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4점. 코먼의 영화 중 본 작품은 거의 없지만 책만 읽어도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에요 . 이런 재미있는 책을 쓴 사람이 만든 영화가 재미 없을리가 없죠. 영화를 좋아하거나 전공을 원한다면 필독서이며, 그렇지 않은 일반 독자에게도 지적인 흥분과 재미를 동시에 가져다 줄 것입니다.

덧 1 : 읽으면서 한가지 아쉽다고 생각된 것이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대학생때 읽었으면 저의 인생이 바뀌었을지도 몰랐다는 것이죠. 저 역시 그동안의 용기 부족으로 이상과 조금 먼 삶을 살아왔거든요. 뭐 지금 늦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겠지만....역시 인생은 철저한 계획과 때를 놓치지 않는 지혜, 그리고 과감성이라고나 할까요?

덧 2 : 제 1회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 갔다가 심사위원장이었던 로저 코먼의 싸인을 저희 형이 애써 받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 싸인만 보더라도 그는 한푼도 잃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수첩의 제일 끝 귀퉁이 약 1/6 크기로 작게 서명한 싸인이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