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할리우드에서 백 편의 영화를 만들고 한푼도 잃지 않았는가 - 로저 코먼 지음, 김경식 옮김/열린책들 |
추리소설을 굉장히 좋아하기는 하지만 다른 책들도 읽어보려고 애쓰는 편입니다. 그러나 그 역시 대부분 제 취향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읽어온 책들도 역사와 전기 문학이 많더군요.
이 책도 이러한 제 취향을 반영한, 전기 문학입니다. 미국 독립 영화 제작자이자 흔히 'B급 영화의 제왕'이라 불리는 로저 코먼의 자서전이죠.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나서 스탠포드 대학을 졸업한 후, 영화업계에 발을 들여 놓기로 결심하고 폭스 스튜디오 문서 배달사원으로 영화계에 입문한 뒤부터의 파란만장한 영화 인생을 담고 있습니다.
독립 영화사의 생존 자체가 어려웠던 1950년대, 10만달러 미만의 예산으로 영화를 제작하다가 직접 감독을 하게 되고, 급기야 스스로 제작사를 차려 배급까지 겸하며 현재까지 그 경력을 이어오고 있는 기인 감독의 일대기이니 만큼 기대가 아주 컸습니다.
읽고나니 역시나 명불허전! 현재까지도 "코먼 사단"이라고 불리우는 영화계 인맥들 (감독-마틴 스콜세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죠 단테, 피터 보그다노비치, 론 하워드, 제임스 카메론, 조너선 드미, 존 세일즈..... 배우 : 잭 니콜슨, 찰스 브론슨, 피터 폰다, 로버트 드니로, 실버스타 스탤론, 탈리아 샤이어... 제작-메나헴 골란, 게일앤허드..... 등등등)과의 에피소드와 영화 촬영때의 에피소드, 그리고 그가 제작한 영화들의 이야기까지 책은 끝까지 읽는 동안 한눈 팔기가 힘들정도로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작품으로 평가한다면 물론 그가 찍은 영화가 걸작이 많은 것도 아니고 이틀만에 찍은 영화도 있는 만큼 ("Little Shop Of Horrors") 완성도가 그닥 높다고 할 수도 없겠지만 적은 제작비와 일정만으로도 화면에 보이는 비쥬얼은 최대한으로 끌어낸다는 그의 신념과 일에 대한 열정, 그리고 독특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들로 무장한 영화들은 그에게 제목대로 100편의 영화를 만드는 동안 손해를 가져다 주지 않았다고 하네요.
또한 비록 싸게 만든, 이른바 "B"급 영화로 돈 (흥행)에 포커스가 맞춰진 영화들을 제작하고 만들었지만, 정치적으로 좌파 성향에 아웃사이더들을 다룬다던가, 호러에 코미디를 결합한다던가하는 독특한 아이디어들로 무장한 그의 영화들은 현재도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된 사실입니다. 책을 읽고나니 "델마와 루이스"나 "멘인블랙" 등의 영화는 사실 전부 코먼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더군요. 정말 시대를 많이 앞서간 것 같아요. 이러한 선구자적인 사상에 더해 헐리우드의 큰 세력이자 줄기가 되어버린 이른바 "코먼 사단"까지 아우른다면, 그의 영화 인생은 비록 음지였지만 거장의 인생으로 표현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현재 (2004년 4월) 시점으로 조사해보니 제작을 342편, 감독을 54편 했으며 각본도 5편, 거기에 배우 경력까지 있는 아직까지 팔팔한 현역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다니 대단하기만 할 따름이에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4점. 코먼의 영화 중 본 작품은 거의 없지만 책만 읽어도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에요 . 이런 재미있는 책을 쓴 사람이 만든 영화가 재미 없을리가 없죠. 영화를 좋아하거나 전공을 원한다면 필독서이며, 그렇지 않은 일반 독자에게도 지적인 흥분과 재미를 동시에 가져다 줄 것입니다.
덧 1 : 읽으면서 한가지 아쉽다고 생각된 것이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대학생때 읽었으면 저의 인생이 바뀌었을지도 몰랐다는 것이죠. 저 역시 그동안의 용기 부족으로 이상과 조금 먼 삶을 살아왔거든요. 뭐 지금 늦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겠지만....역시 인생은 철저한 계획과 때를 놓치지 않는 지혜, 그리고 과감성이라고나 할까요?
덧 2 : 제 1회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에 갔다가 심사위원장이었던 로저 코먼의 싸인을 저희 형이 애써 받아온 적이 있습니다. 그 싸인만 보더라도 그는 한푼도 잃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수첩의 제일 끝 귀퉁이 약 1/6 크기로 작게 서명한 싸인이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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