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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30

혹성 탈출 - 피에르 불 / 이원복 : 별점 3점

 

혹성 탈출 - 6점
피에르 불 지음, 이원복 옮김/소담출판사

베텔게우스 계로 우주여행을 떠난 기자 윌리스 메루 일행은 지구와 거의 흡사한 환경의 "소로르"라는 행성에 착륙하여 그곳의 인류와 조우한다. 그러나 소로르의 인류는 지성은 없는 원시상태. 직후 윌리스 일행은 고릴라가 인류를 사냥하는 충격적인 상황에 직면하고 윌리스도 고릴라들에게 포로로 잡혀가게 되는데...

70년대를 풍미했고 2000년대를 거쳐 얼마전 프리퀄 (또는 리부트) 신작이 나와 히트한 바로 그 영화의 원작소설. 저야말로 이 영화의 직접적인 영향권(?) 안에 있는 세대입니다. 영화는 어렸을 때 TV에서 전편을 소개해줄 때 감상하였고 팀 버튼의 괴작도 극장에서 감상했었죠. 이렇게 워낙에나 많이 접하다보니 원작 소설도 영화 올드버젼 1편의 내용과 거의 동일할 것이라 생각해서 썩 관심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읽어보니 의외의 요소가 많더군요. 일단 제일 놀라웠던 것은 정통 SF라는 점이었습니다. 영화에서와 같은 모험물적인 속성은 거의 없는 작품으로 SF적인 디테일도 괜찮더군요. 항성간 우주여행 등의 설정 등이 잘 묘사되어 있더라고요. 문명의 진보에 대한 이론은 솔깃하기까지 했고요.
게다가 SF 세계관 속에 인류의 무기력한 미래에 대한 풍자를 녹여낸 솜씨는 지금 읽어도 대단함이 느껴졌습니다. 블랙코미디가 아닌가 생각되는 부분 (넌 너무 못생겼어!) 도 기가막혔고 말이죠. 전혀 낡아보이지도, 유치해보이지도 않는, 시대를 초월한 부분이 분명히 있는 작품이었어요.

그러나 전개면에서 조금 아쉬웠던 것이 몇가지 있기는 합니다.
제일 눈에 거슬렸던 것은 인류가 급격하게 몰락한 이유를 구태여 드러내려 한 부분이에요.  "뇌수술"을 통한 일종의 "빙의현상"이라는 수단부터가 작가가 너무 쉽게 간 느낌이라 별론데 이유 자체도 단순한 무기력이라는 것이라서 와닿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독자의 상상에 맡기고 설명하지 않는게 훨씬 좋았을텐데 말이죠.
두번째는 앙텔 교수의 정신붕괴에 대해 납득할만한 설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혼자 떨어져 몇달 지냈다고 이 소설에서처럼 급격한 정신적인 퇴행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말이 안돼죠. 이 부분만큼은 영화에서처럼 뇌수술 쪽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게 훨씬 좋았을 것 같았어요.
마지막으로는 마지막 반전 두개 (윌리스가 지구에 도착한 이후와 마지막 장면) 모두 상상의 범위 안에 있다는 것을 들고 싶은데 이 점은 문제라고 하기는 좀 어려울 수도 있겠네요. 이 작품이 선구적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성격의 작품을 많이 보게 된 것은 단지 국내 정식 소개가 늦은 탓이니까요.
그 외에 윌리스 메루의 이름부터 패러디의 의미가 있다는 등의 (이름은 율리시즈이지만 성은 물고기?) 원어 한정 풍자를 제대로 느낄 수 없는 것도 조금은 안타까왔고요.

그렇지만 5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통할만한 아이디어와 재미를 갖춘 작품임은 분명하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이 바닥의 클래식으로 장르문학을 좋아하시는 분들께 추천드려요. 너무 늦게 출간된 것은 안타깝지만 지금이라도 읽을 수 있게 된 것에는 감사해야겠죠.

2012/04/27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 - 문국진 지음, 강창래 인터뷰어 : 별점 3점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 - 6점
문국진 지음, 강창래 인터뷰어/알마

한국 최초의 법의학자이신 문국진 교수 인터뷰집.
사실 인터뷰로만 이루어진 책은 처음접해보네요. 그래서인지 큰 기대를 가지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왠걸! 서두에 인터뷰어 강창래씨가 자신과 문국진 교수와의 인연을 말하며 언급하는 81년의 윤노파 살인사건부터 예상외의 재미를 가져다줘서 각잡고 한번에 읽게 되었습니다. 문국진 교수라는 사람의 위치, 그리고 경력을 보여주는 에피소드의 하나로 언급된 것인데 사건 자체도 굉장히 흥미로왔어요. 이 부분에 등장하는 박원순 변호사의 <야만시대의 기록>, 조갑제의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덧붙이자면 조갑제가 '변신' 하기 이전에 쓴 책들이라고 하네요._

그리고 본격적인 인터뷰를 통해 문국진 박사가 어떻게, 왜 법의학에 발을 들이게 되었는지에서 시작해서 박사가 관련되었던 다양한 사건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들과 함께 하나둘씩 펼쳐지는 본편도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습니다.

그 중 인상적이었던 것만 몇가지 뽑아보자면,

첫번째는 <새튼이 무당> 사건. 새튼이라는 귀신과 대화한다는 주장하는 무당이 수사대상이 되는데 '쏵~ 쏵~'하는 이상한 소리가 정말로 났다고 합니다. 아무리 조사해도 그런 소리가 날만한 장치가 없었는데 우연히 보게된 무당의 치아구조가 특이했다고 하네요. 결국 알고 보니 특이한 앞니 틈새를 이용해서 소리를 낸 것이라는 것이라는데 희한하죠?

두번째는 중년 부부의 성행위 도중 아내가 갑자기 호흡곤란으로 사망한 사건. 박사의 베스트셀러 논픽션 <새튼이>에 실려있는 이야기로 영화 <용서는 없다>에도 언급되었다고 하네요. 이유는 남편이 페니실린 주사를 맞았는데 아내가 페니실린 과민성 체질이라 페니실린 쇼크로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야기도 놀랍지만 이 사건을 클림트의 그림과 함께 엮어 설명하는 것도 아주 좋았어요.

세번째는 일본 동북지방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Y양이 성폭행당한 시체로 발견되는데 진상은 그녀와 연적이었던 M양이 교살하고 다른 남자의 정액을 바르고 도망친 것이라고 하네요. 대단한 사건은 아니나 '완전범죄는 없다'라는 명제에 충실한 이야기라 인상적이었습니다.

네번째는 여대생이 자기 하숙방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사건으로 그녀의 연인인 의대생 출신 편집자 P군이 유력한 용의자. 그러나 사인이 될만한 약물의 흔적도 없었고 단지 상, 하지에 가벼운 압박흔이 있는 정도. 결국 문초끝에 밝혀진 진상은 수면제로 재운 뒤 상지, 하지를 고무밴드로 묶었다가 풀은 것이라고 합니다. 혈액순환 장애가 오래 지속되면 히스타민양 물질이 생겨 쇼크가 발생하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라죠.
'문초'라고 점잖게 묘사된 부분은 고문임을 짐작케해서 수사 과정 자체는 별로지만 의대생 출신의 의학을 이용한 난생 처음보는 기발한 트릭에는 감탄을 금치 못하겠더군요.

이러한 사건들 이야기 뒤로 이어지는, 문국진 교수가 은퇴 후 전념한 북 오톱시 관련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유명인의 사인을 이후 남겨진 여러가지 증거를 통해 분석한 뒤 정확하게 규명한다는 것인데 베토벤과 모짜르트의 사인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집니다. 비슷한 유형인 동서고금의 명화를 통하여 그림 주인공의 병을 설명하는 이야기들도 흥미롭기는 마찬가지라 예수님의 내장위역증에 대한 이야기나 밀레의 <괭이를 든 사람>은 전형적인 디스크 환자의 모양새라는 것 등의 새롭고 신기한 내용이 가득합니다.

이렇듯 재미있는 내용이 가득하여 정신없이 다 읽었는데 읽고나서 생각해보니 정신적으로도 충실한 기분이 느껴지네요. 법의학 사건집이 아닌 인터뷰이기 때문에 각 사건들이 단지 한 예로만 이야기될 뿐 전체적인 과정과 결말이 없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한 분야의 시조이자 거목인 분의 생각을 온전히 접할 수 있는 기회가 확실히 흔한 것은 아니겠죠. 별점은 3점입니다.
이제는 박사의 다양한 저작을 빨리 찾아서 읽어봐야겠습니다. 일단 <새튼이>와 <지상아>부터 찾아봐야겠어요.

2012/04/23

정신자살 - 도진기 : 별점 1.5점

 

정신자살 - 4점
도진기 지음/들녘(코기토)

길영인은 아내 한다미의 가출 이후 자살 충동에 시달리다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정신자살연구소' 홈페이지를 발견한다. 연구소를 방문한 뒤 정신을 파괴하여 자살없는 인생을 살게 해 준다는 연구소 소장 이탁오 박사의 말에 혹한 길영인은 3천만원이라는 거액의 시술비를 지불하고 정신자살 시술을 받게 된다.
그러나 시술 이후 외려 한다미의 과거에 더욱 집착하게 되어 그녀의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하는데...


어둠의 변호사 고진 시리즈의 세번째 작품. 어쩌다 보니 두번째 작품 <라 트라비아타의 초상>을 건너뛰게 되었네요. 전에 읽은 <어둠의 변호사>가 요코미조 세이시 느낌이라면 이 작품은 에도가와 란포 느낌이 강하게 드는 작품입니다.

먼저 좋았던 부분부터 이야기해보죠.
제일 먼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어둠의 변호사>와 비교할 때 소설적인 완성도가 더 높다는 것입니다. 세번째 장편인 덕분이겠죠? 문체나 전개가 모두 세련되어졌습니다. 길영인이 "정신자살"이라는 독특한 말에 이끌려 이탁오 박사의 연구소에 찾아가는 과정과 정신자살 시술 후 외려 한다미의 과거를 파헤치며 진상을 더듬어 가는 전개도 흥미진진하고요.
전작과 달리 고진과 이유현 형사 컴비의 캐릭터도 잘 묘사되어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더군요. 고진의 가벼운 모습이 많이 보이는 것도 이채로왔고요.

무엇보다도 작가의 작품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요소인 트릭도 (중반까지는) 괜찮은 편입니다. 4년전 이탁오 박사가 저지른 첫 사건인 박재성 - 우호선 사건에서의 트릭은 장편에서 캐릭터 소개에 사용되기에는 아깝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습니다.
이후 신재인이라는 이름을 둘러싼 트릭도 복선이 잘 설계되어 있고 신재인 집에서의 소실 트릭도 괜찮았고요.
또 전작에서의 아쉬웠던 점 - 판사가 쓴 작품이지만 실제 법률을 이용한 부분이 별로 없다- 을 초반 염상우의 친족상도례 작전에서 잘 써먹는 점도 나쁘지 않았어요. 여기까지는 별점 3점, 아니 4점가까이 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진상과 반전이 모든 것을 망쳐버립니다. 일단 다중인격이라는 길영인 사건의 진상은 현실적이지 않고 작위적이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너무 떨어져요. 1인칭 시점에서의 수기와 전개를 통해 서술트릭같은 효과를 노린 것 같기도 한데 뜬금없이 밝혀지는 것들이 많거든요. 그나마 두가지 - 1년전 프리버드의 전화와 펜션 사건에서의 길영인 전화 - 단서는 그럴 듯 했지만 그것만으로 다른 것들을 설명하기는 역부족이죠. 스쳐지나간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데 아무리 띄엄띄엄 보았다고 정체를 눈치채지 못한다는게 말이 되나 싶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한초록이 끝까지 입을 다문 이유도 전혀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뭐 다중인격 부분은 그럴 수 있다고도 칩시다. 그러나 그 다음, 펜션에서의 살인사건에서의 과일을 이용한 트릭은 어떨까요? 이건 정말 그림 몇장 본다고 재현하기는 힘들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럴만한 능력이 있다면 수박을 깎아서 사람 모양을 만들거나, 아니면 화장실 휴지를 적셔서 종이찰흙을 만드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요? 어, 이거 괜찮네.
게다가 마지막 장면, 인간거미 합체 장면은 정말이지 나오지 않는 것만 못했습니다. 작품에 불필요할 뿐 아니라 어설픈 에도가와 란포 흉내내기로 보일 뿐이었어요. 게다가 그 이유가 체포를 막기 위함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의 극치. 다시 병원으로 보내 둘을 나눠 놓으면 될텐데 무슨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이탁오 박사도 불법 시술로 구속될 뿐인데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습니다...
덧붙이자면 이탁오 박사 캐릭터는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의 매드 사이언티스트라 작품에 현실감을 심는데는 외려 장애요소라 생각되네요.

결론내리자면 초, 중반부의 전개는 좋았고 독자를 빨아들이는 흡입력도 있으며 세번째 장편다운 완성도도 좋았으나 뒷부분이 많이 아쉽네요. 특히나 다중인격, 트릭은 참아줄 수 있어도 마지막 장면 두페이지는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웠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한국 추리소설의 현재이자 미래를 나타내는 작품이고 시리즈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으나 일본 추리소설 스타일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영역을 보여주는 것이 시급해 보이네요.

2012/04/21

완벽한 죽음의 나쁜 예 - 에두아르 로네 / 권지현 : 별점 2.5점

 

완벽한 죽음의 나쁜 예 - 6점
에두아르 로네 지음, 권지현 옮김/궁리

각지에서 있었던 여러 희한한 죽음들을 다양한 법과학 전문지에 실린 사료를 통해 발굴하여 소개하는 책.

이 책의 문제는 등장하는 사고와 사건들을 너무 간략하고 유머러스하게 소개하고 넘어간다는 점입니다. 책 소개자료를 보면 '블랙 코미디'라고 칭하고 있을 정도로요. 게다가 한 사건당 이야기는 서너페이지에 불과해요. 그러다보니 읽다보면 술집에서 친구가 "그거 알아?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어! 황당하지!" 라고 이야기하는 수준의 이야기들이더군요. 그만큼 재미에 치중하고 깊이는 하나도 없는, 어떻게 보면 잡다한 가쉽거리를 모아놓은 것에 지나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래도 워낙 많은 이야기가 실려있기에 눈여겨볼만한 황당 사건이 제법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에요. 예를 들면 비행기 추락사고가 조종사의 자살과 관련되어 있는 경우가 분명히 있다는 것이라던가, 볼펜으로 눈을 깊게 찌른 자살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볼펜이 발견되지 않았을 때에는 권총탄에 의한 사건인줄 알았다죠) 정말로 존재하는 "몽유병에 걸려서 돌아다니던 중에 사람을 죽였다"라는 이야기의 실체라던가 하는 것들이죠.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높은 곳에 올라갈 때는 입에 아무것도 물지 말라는 주의사항.... 2.5미터 아래로 떨어진 미국인 노동자의 입 천장에 드라이버가 박혀 있었답니다.... 어쨌건 세상에 정말 별의별 사고와 죽음이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허나 이러한 특이한 몇몇 사건들을 좀 더 깊이있게 파헤쳐 주는 것이 저에게는 훨씬 좋았을 것 같네요. 저 같으면 자료조사에 들인 노력이 아까와서라도 이렇게 쓰지 못했을텐데 말이죠. 괜찮은 인문서적을 주로 출간하는 출판사 궁리에서 출판한 책이기에 기대를 좀 했는데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12/04/19

수상한 미술관 - 이은 : 별점 2점

수상한 미술관 - 4점
이은 지음/노블마인
<하기 리뷰에는 스포일러 존재합니다>

미술평론가 김이오가 아내의 생명을 걸고 정체불명의 괴한과 미술 퀴즈 게임을 벌인다는 내용의 작품. 물만두님 리뷰집을 통해 정보를 접하고 읽게 되었네요.

전화로만 이루어지는 시간제한이 있는 퀴즈. 어디서 많이 들어봤죠? 바로<다이하드 3>의 판박이죠. 그래도 미술에 대한 퀴즈라는 점으로 차별화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차별화 요소는 그닥 성공한 것으로 느껴지지는 않더군요. <다이하드 3>의 비교적 관객을 끌어들이는 퀴즈와 비교한다면 순수한 미술 평론, 그것도 패러디라는 항목에 집중된 이 작품의 퀴즈들은 퀴즈 자체에서 재미를 느끼기 어렵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마지막의 반전, 그리고 진상은 어이가 없을 정도였어요.
일단 범행과 전개에 대한 설득력이 전무합니다. 기껏 공들인 복수극으로 전개되다가 갑자기 명화도난으로 이어지고 진상은 외규장각 도서 반환을 위한 의적질이라니 참 뭐라 말해야될지도 난감하네요. 이 작전이 국가를 상대하기에는 많이 부실해 보인다는 것도 큰 약점이고요. 김이오의 모든 것을 캔다면 충분히 흑막을 밝혀낼 수 있다 생각되거든요.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공정함"입니다. 추리 - 스릴러물이라면 최소한 독자와의 두뇌게임을 벌일 수 있는 전개에서의 공정한 단서 제공이 최소한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 작품은 전혀 그러한 부분이 없습니다. 어차피 다 짜놓은 것이라면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전지적 작가 시점의 초반부 김이오에 대한 심리묘사와 전개는 모조리 연극, 또는 가공의 것이었다는 것인가요?
게다가 공정함을 가장하여 억지스럽게 수상한 범인역을 등장시킨 선택은 최악이었어요. 우연히 마주친 한미라가 가명, 가짜신분, 불륜남의 핸드폰이라는 요소들로 포장되어 있는 것이야말로 작위적인 독자기만의 극치라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아무런 설명이 없다가 뜬금없이 진상은 사실 이러했다는 식인데 저는 납득할 수 없었어요. 이래서야 "이런저런 사건이 발생하고 이런저런 위기가 닥쳤는데 눈을 떠보니 부왘 꿈이었지롱~" 하는 이야기하고 다를게 없는것 같거든요.

마지막으로 전개내내 패러디에 대한 궤변으로 독자를 설득시키는 이유가 결국 이 작품이 <다이하드 3>의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패러디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였다는 점도 황당한 점이었습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만 대놓고 주장하는 패기에 놀랐달까요?

국내에서 보기드문 지적 아트 스릴러를 표방한 점, 그에 걸맞게 충실한 설명과 도판이 곁들여진 점은 높이 평가할만 하지만 차라리 추리나 스릴러물보다 미술사 측면에서 패러디의 역사와 현재, 개념을 설명해주는 학습서로 만드는게 더 나았을 것 같네요. 패러디에 대해서는 저도 많이 배운 것 같으니까요. 교양서 측면에서 가산점을 부여하여 제 별점은 2점입니다.
정통 추리 - 스릴러물을 기대하시면 안되고 그냥 독특한 미술 교양 서적으로 접근하는게 더 나은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2012/04/15

뜻밖의 음식사 - 김경훈 : 별점 3점

 

뜻밖의 음식사 - 6점
김경훈 지음/오늘의책

우리나라에서 옛부터 먹어온 먹거리들을 음식 색깔에 따라 블루, 레드, 옐로우, 블랙 & 화이트로 구분하여 설명하는 책.
우리의 오랜 먹거리 목차를 구태여 영어로 한 이유는 이해할 수 없지만 어쨌건 역사와 요리, 음식이라는 저의 미시사적 관심사를 충족시키는 주제의 책이기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일단 마음에 들었던 것은 음식이나 요리가 아니라 먹거리가 되는 재료 자체에 주목했기 때문에 다른 유사 서적에서 많이 보아왔던 주제들 - 김치나 갈비같은 - 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단순히 재료의 역사들에만 치중하지 않고 주요 요리들은 레시피를 당연하게 소개해 주는 것도 좋았어요. 그림이 곁들여 진 것은 아니나 꽤 구체적이라 한번 해 먹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들더군요.
이러한 점들 덕분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를 몇개 소개해드리자면,
첫번째는 매실. 매실을 예전에는 국의 조미료로도 썼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고 제호탕 만드는 법도 눈여겨 봐 둘만 했습니다.

두번째는 박하. 박하주와 박하차 만드는 법은 꼭 한번 따라 해 봐야겠습니다. 그런데 박하잎은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요?
박하주 - 소주 1리터에 잘게 썬 박하잎 50그램을 넣어 2개월 밀봉 후 마심.
박하차 - 깨끗이 씻은 박하잎을 물에 넣고 오래 끓인 다음 체로 찌꺼기는 걸러내고 꿀이나 설탕을 섞어 마심.

세번째는 오미자. 중국 사천성의 태수 여경대의 전설적인 정력제 독계산! 나이 70에 자식을 여럿 낳고 결국에 버린 약을 수탉이 먹고는 암탉 등에 올라 내리지 않아 암탉의 벼슬이 다 벗겨져 독계가 되었다는 고사에서 유래되었다 하는데 육종용 3푼, 오미자 3푼, 토사자 3푼, 원지 3푼, 사상자 4푼을 빻아서 체에 받혀 분말로 만든것을 하루에 한 스푼씩 먹는 것이라고 합니다. 저 재료들, 갖고 싶다...

네번째는 산수유. 남자 몸에 참 좋은게 맞더군요. 그 중 정력증강에 탁월하다는 산수유주! 산수유 열매를 잘 말린 뒤 5~6배 정도의 소주를 붓고 3개월간 그늘에서 보관하면 된답니다. 와우!

그 외의 다른 먹거리들도 재미있게 소개되고 있으니 이런 류의 미시사 서적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추천드립니다.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12/04/11

마리오네트의 덫 - 아카가와 지로 / 이용택 : 별점 1점

마리오네트의 덫 - 2점
아카가와 지로 지음, 이용택 옮김/리버스맵

프랑스어 전공 대학원생 우에다 슈이치는 지도교수의 소개로 프랑스어 가정교사로 일하게 된다. 그가 일하게 된 곳은 외딴 곳 저택인 미네기시 집안의 대 저택. 일하던 중 슈이치는 우연히 미네기시 집안의 막내딸 마사코가 감금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그녀를 풀어주게 되지만 그녀는 사실 연쇄살인범이었다.
마사코의 연쇄살인극이 펼쳐지는 동안 슈이치의 약혼녀 미나코는 슈이치를 구해내기 위해 미네기시 집안 마약 밀매의 본거지인 요양소로 잠입하는데...

아카가와 지로의 초기 대표작 중 한편인 범죄 스릴러. 요새 아카가와 지로 출판 러쉬에 힘입어 정발되었네요.
사실 명성에 비하면 그리 높은 퀄리티의 작품을 쓰는 작가는 아닌, 일본의 "시드니 셀던" 정도의 작가로 알고 있어서 별로 챙겨 읽지는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읽고 난 결과는! 역시나였습니다.
대충의 줄거리만 보아도 아시겠지만 마약왕의 외딴 대저택과 저택에 있는 미모의 세자매 (흑묘관인가?), 그 중 큰딸은 색녀에 막내는 광기어린 연쇄살인마라는 현실성은 아예 찾아볼 수도 없는 설정을 바탕으로 치밀하지도 않은 즉흥적인 연쇄살인을 모래성처럼 쌓고 그 중간중간에 정사신같은 자극적인 묘사를 끼워넣은 싸구려 3류 소설입니다. 십여 페이지에 한번씩은 자극적인 장면이 등장하니 3류 소설의 교과서라 해도 되겠어요.
물론 자극적인 장면을 등장시킨다는 조건을 충족시키면서도 나름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했던 <로망 포르노>라는 장르가 있기는 합니다만... 이 작품은 그냥 자극과 흥행이 될만한 요소만 집중적으로 파고든 펄프 픽션에 불과합니다.

추리적으로 본다면 애초부터 추리소설이라고 하기는 힘들고 그나마 미치광이 연쇄 살인범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서스펜스 스릴러로 부를수 있으나 이야기 자체가 헛점 투성이라 점수를 줄 수 있는 부분이 전무합니다. 슈이치가 마사코를 조종해 범죄를 저지른다는 이유와 방법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는 것이 가장 큰 예이겠죠. 그 외의 설정과 여러 사건들은 솔직히 성인만화라고 해도 유치할 수준이고요. 마지막에 반전이 있기는 하나 반전 역시도 설득력이 전무한, 만화같은 이야기라는 문제점은 동일합니다.

어떻게 보면 제 기대 수준을 거의 맞추긴 했습니다. 그만큼 애초에 기대치가 낮기는 했지만요. 그러나 제 기대치보다도 형편없었다는건 좀 문제네요. 별점은 1점입니다. 혹 궁금하신 분들께는 시간이 아무리 많이 남으셔도 세상에는 훨씬 유익한 것이 많으니 이 책만큼은 관심두지 않으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그나저나 왜 이 작가가 일본에서(나마) 인기가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한층 더 깊어지네요. 

2012/04/08

개는 어디에 - 요네자와 호노부 / 권영주 : 별점 2점

개는 어디에 - 4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문학동네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래 은행원이었지만 피부병으로 직장을 그만둔 뒤 고향으로 돌아와 조사 사무소 "고야 S&R"을 차린 고야 조이치로. 잃어버린 개를 찾는 수준의 일을 맡을 생각이었지만 첫 의뢰로 도쿄에서 실종된 여자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게 된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장편소설. 작가의 첫 추리 장편이라고 합니다. 탐정이 등장하고 평범한 직장인의 실종사건이 주요 사건이라는 점에서 사회파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하고 묘사와 설정, 캐릭터 등에서는 작가 특유의 일상계 분위기도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첫 장편이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전체적으로 뭔가 쓰고 싶은건 많은데 제대로 마무리하지는 못한 느낌으로 의도와 욕심에 비해 전체적인 완성도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이유는 여러가지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의뢰된 사건의 설득력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가장 중요한 사쿠라 도코 사건은 동기부터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자기 개인 사이트에 악성 댓글 좀 달았다고 살의까지 품게된다? 물론 사쿠라 도코에 대한 폭행을 암시하는 묘사가 보이기는 하나 순전히 고야의 추정일 뿐이죠. 최소한 실종까지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겠지만 나머지는 설득력을 가지기 어려웠습니다. 비약이 너무 심했어요.
또 두번째 사건인 고문서의 진위 및 정체를 파악은 구태여 탐정에게 맡기지 않아도 마을 도서관을 통해서 충분히 밝혀낼 수 있는 사건이기에 의뢰가 과연 필요했을지도 의심스러웠어요. 고문서의 가치를 생각해볼때 아무도 그 정체를 모른다는 것도 별로 현실적이지 않은 점이죠.
아울러 이 두 사건이 하나로 엮인다는 것은 그 자체가 굉장히 작위적이었습니다. 책 뒤의 소갯글처럼 "기묘한 접점"을 보인다기 보다는 그냥 대놓고 "이 두 사건은 관련되어 있다"라는 식으로 뭐랄까, 별다른 고민없이 너무 쉽게 쓴 것이 아닌가 생각되더군요.

그리고 너무나 많은 우연이 많이 개입되어 있는 것도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든 부분입니다. 동네 야생견 퇴치 모임에서 우연히 사쿠라 도코의 절친을 만난다던가, 처음으로 사쿠라 도코가 다녔던 회사에 전화를 걸었을 때 그녀의 약혼자(?)가 전화를 받는다던가 하는 것들 모두요. 이렇게 운이 좋다면 탐정일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죠.

그 외에도 주인공 캐릭터인 고야 조이치로는 왠지모르게 병약하고 의욕없어 보이는 모습이 심심했고 부하 한페의 캐릭터는 하드보일드 탐정을 동경하는 전형적인 캐릭터라 식상했습니다. 오기와라 히로시의 <하드보일드 에그> 와 거의 동일하달까요. 발표시기를 보면 아무래도 <하드보일드 에그> 쪽이 먼저였을 것 같고요.

결론내리자면 정통 추리물로 보기에는 헛점이 많고 그냥저냥한 일상계로 보기에도 애매한, 킬링타임용으로 적합한 평균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2012/04/05

독거미 - 티에리 종케 / 조동섭 : 별점 3.5점

 

독거미 - 8점
티에리 종케 지음, 조동섭 옮김/마음산책

<하기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리샤르 박사와 이브 - 리샤르 박사는 성공한 성형외과 전문의이고 이브는 공식적으로는 그의 아내, 또는 정부, 또는 애인과 같은 여인. 그러나 리샤르 박사는 이브를 돌봐주지만 또한 매춘을 시키는 등 가혹하게 학대한다.
뱅상 모로 -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인 "미갈 (독거미)" 에게 납치되어 그에게 길들여 진다.
알렉스 - 은행을 털다가 경비원을 죽인 이후 도망다니는 신세. 거액의 돈은 있지만 움직일 방법이 마땅치 않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신작 영화 <내가 사는 피부>의 원작이라고 하여 읽게된 작품. 최신작인줄 알았는데 1995년에 발표된 작품이네요. 170여페이지 정도되는 중편으로 리샤르 박사와 이브, 은행강도 알렉스, 그리고 미갈 (독거미)이라는 인물에게 납치되어 길들여지는 뱅상, 이렇게 세명의 이야기가 평행하게 그려지며 하나의 결말로 귀결되는 구조입니다.

이러한 등장인물별 개별적 이야기가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로 합쳐지는 구조는 이미 영화 펄프픽션 등 여러 컨텐츠에서 많이 선보인 것이죠. 때문에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인물들과 사건이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 뭔가 새로움이 없다면 실망스러울 수 있는 위험성도 존재합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작품은 성공했습니다.
딸을 윤간하여 치유할 수 없는 정신병에 걸리게 한 범인을 납치한 뒤 조교와 성전환수술 코스를 거쳐 농락한다는 일본 야겜을 능가하는 막장 복수극이 이런 진지한 스릴러로 묘사된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큰 놀라움이었어요.
또 진상을 화자의 시점 변경으로 감추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서술트릭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완성도도 높고 반전이 탁월하다는 점도 높이 평가할만 합니다. 일본식의 "한번 속여보겠다!"라는 의지가 훤히 보이는 서술트릭 반전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전개된다는 점에서 작가의 내공과 함께 유럽 추리물의 저력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어요.
덧붙이자면 군더더기없는 중편 분량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고 <안 타고는 못배겨!>에 등장했던 차 시트로엥 CX가 등장하는 것도 반가왔습니다.

단, 중반까지 조금 지루하다는 것과 알렉스가 엮인 뒤 결말로 치닫는 전개가 작위적이었다는 것은 조금 아쉽기는 합니다. 기본적으로 지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성형수술을 위해서 "마취"가 필요하다는 것을 간과한 알렉스의 사고방식도 이해되지 않았고 말이죠.
무엇보다도 이브와 리샤르 박사가 연결되는 결말은 좀 아니었어요. 독거미가 포획한 나방이 독거미와 한팀이 된다는 결말이라니 스톡홀름 신드롬인가? 어쨌건 너무 쉽게 간 느낌이랄까요. 그닥 감동도, 감흥도 없는 결말이었습니다. 차라리 이브가 다 쏴버렸더라면 싶었는데 말이죠...

그래도 기묘한 복수극이자 독특한 스릴러이자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유럽 분위기가 물씬 난다는 점에서, 그리고 더욱이 짧다라는 미덕을 지닌 좋은 소설이기 때문에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추리애호가분들에게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읽고나니 영화도 보고싶어지는군요. 과연 세명의 시점을 어떻게 오가며 전개할지 무척이나 궁금하거든요. 그러고보니 이십여년전 학부생 시절 헐리우드 키드를 꿈꿀때 인상적인 신예로 등장했었던 페드로 알모도바르도 이젠 세계의 거장이 되었네요. 제가 한건 없지만 왠지 감개무량합니다.

2012/04/02

다이몬즈 1~13 - 요네하라 히데유키 : 별점 2점

 

다이몬즈 13 - 4점
테츠카 오사무 지음, 요네하라 히데유키 그림/서울문화사(만화)

데즈카 오사무의 <철의 선율>을 리메이크한 작품. 친구에게 배신당해 양 손을 잃은 뒤 복수를 위해 정신력으로 조종하는 철의 의수를 얻는다는 기본 설정 이외의 모든 이야기를 새롭게 창작하여 13권에 이르는 장편으로 탄생시켰습니다.
가장 손을 많이 댄 부분은 배경과 등장인물들로 배경설정은 <북두의 권>의 힘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근미래 이미지를 거의 그대로 가져왔고 캐릭터, 특히 최종 보스인 프로그레스는 <베르제르크>에서의 아름다운 절대악 그리피스의 이미지를 끌어온 듯 싶습니다. 친구에게 배신당한 좌절감과 복수심 역시 <베르제르크> 느낌이고요.

그러나 시대를 앞서갔던 원안과 대 히트작의 설정만 베껴온다고 걸작이 되는 것은 아니죠. 공은 좀 들인 것 같으나 결국 이능력 배틀물 이상의 무언가는 전혀 보여주지 못합니다. 가장 큰 원인은 복수의 이유만큼은 확실한 주인공 헤이토 이외의 인물들이 별로 매력적이지 못했다는 점에 기인하겠죠. 나노머신을 자신의 몸에 부여했다는 적들은 건맨, 최면술사, 검사, 근육맨이라는 스테레오 타입의 식상한 존재들이었으며 "자연을 생각한다"는 최종보스 프로그레스 역시나 한권 정도의 분량을 할애해가며 배경 설정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뭔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역부족인 평면적인 캐릭터였거든요. 개중 또다른 제스모스 능력자 스왈로우가 원천적인 복수심을 가지고 상상 이상의 자해(?)를 통해 헤이토와 대적하는 모습 정도는 신선했지만 이 친구도 마지막이 너무 별로여서 당쵀 왜 등장했는지조차 모르게 만들더군요.
무엇보다 황당한 것은 원작에서 끝까지 복수심을 잃지않는 헤이토를 이 작품에서는 마지막에 "차갑지만 내 여자와 친구에게는 따뜻한 남자" 로 포장, 각색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원작의 힘이 어디에 있는지를 망각한 어처구니없는 각색의 결과물로밖에는 보이지 않네요.

그나마 주인공 친구들도 대부분 죽고 인류가 멸망으로 치닫는다는 다크엔딩과 함께 제스모스를 이용한 복수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액션, 특히 제스모스만의 독특한 능력 (연결부위에는 어떠한 것도 연결하여 팔로 사용할 수 있다)을 이용한 몇번의 반전과 마지막 프로그레스와의 승부에서 보여지는 결말은 괜찮은 편이긴 합니다만.... 원작을 재미있게 본 입장에서는 점수를 주기 힘든게 사실입니다. 거창하게 이야기를 벌이지 말고 원작을 보다 충실히 리메이크하는게 훨씬 나았을거에요. 별점은 2점입니다.

2012/04/01

아 아이이치로의 사고 - 아와사카 쓰마오 / 권영주 : 별점 2점

 

아 아이이치로의 사고 - 4점
아와사카 쓰마오 지음, 권영주 옮김/시공사

전편에 이은 '아 아이이치로' 두번째 단편집. 총 8편의 단편이 실려있습니다.
탐정역의 카메라맨 아 아이이치로 주변에서 발생하는 기상천외한 사건들과 슬랩스틱같은 행동들, 공정한 정보제공이라는 특징은 여전합니다. 모든 단편이 아 아이이치로가 아니라 다른 주인공이 등장하여 아를 바라보는, 약간은 관조적인 전개를 갖춤으로서 공정한 정보제공이 가능하다는 특징도 마찬가지고요. 
그 외에도 얼굴이 세모꼴이고 양장을 한 노부인이 매 단편마다 계속 등장하여 연작이나 시리즈같은 느낌을 전해주는 아이디어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전편에서 좋은 트릭과 전개를 모두 사용해 버린 탓일까요? 작품은 전부 다 솔직히 실망스러웠습니다. 기상천외한 상황 그 자체는 기발하지만 상황에 너무 매달린 듯 트릭의 현실성도 없고 동기도 억지스러운 작위적인 이야기가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슬랩스틱 코미디와 아의 황당한 대사들도 식상했고요.

물론 전부 형편없는 것은 아닙니다. 첫 작품 <지푸라기 고양이>의 상황설정에 대한 아이디어는 굉장히 참신했고 <사부로정 노상>은 사건과 특정 장소를 이용한 트릭이 돋보인 작품이었어요. 문제는 이 두 작품마저도 다른 문제들 때문에 전체적인 별점을 높이 쳐 줄 수 없다는 것이겠죠.

한마디로 평가하자면 함량미달의 단편집이었습니다. 고전 정통본격 추리물의 열광적 애호가라 자부하는 저로서도 좋은 평가를 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이죠. 차라리 첫 단편집으로 끝내는게 좋았을텐데... 이래서야 시리즈 다음 단편집은 기대가 전혀 안되네요. 별점은 종합 평균 2점입니다. 그나마도 반올림을 약간 해서 2점이요.... 특별히 이 시리즈에 애정을 느끼시는 분이 아니라면 구태여 찾아보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브라운 신부 시리즈가 괜히 걸작 대접을 받는게 아니라는 생각이 다시금 드는군요.

<지푸라기 고양이>
완벽주의자 도쿄의 그림에서 발견된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묘사들 -손가락이 여섯인 소녀, 열리지 않는 문 등 - 을 토대로 숨겨진 죽음의 진상을 밝혀낸다는 이야기.
초정밀묘사 그림 속의 현실과 다른 요소들을 찾아내고 그것을 화가 도쿄의 출신지와 엮어서 일종의 주술적인 의미를 끄집어내는 발상과 전개는 좋았는데 진상이 너무 억지스럽습니다. 완전한 결혼이 세상에 어디있다고... 또 그만큼 유명한 작가 그림의 오류들을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한 것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것도 감점 요소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스나가 가의 증발>
길을 잃고 헤메던 아 일행이 발견한 곳은 그 고장에 전설로 전해지는 스나가 집안 후예의 집이었다. 하룻밤을 보내게 된 일행은 전날 목격한 집 한채가 다음날 아침 사라진 것을 알고 경악하는데...
엘러리 퀸의 걸작 중편 <신의 등불>에서도 사용된 건물 소실 트릭의 재구성. 일본 전통가옥이라는 소재와 시도는 좋았고 여러가지 단서를 독자에게 공정하게 제공하는 노력도 돋보입니다.
문제는 트릭의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것. 아무리 옛날 가옥이라도 단시간에 홀랑 타버린다는 것, 잔해를 하룻만에 정리한다는 것 모두가 비현실적이고 세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꼬박 하루를 더 잔 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거든요. 또 이럴바에야 스나가가 그냥 세명을 죽여버리고 묻어버리는게 더 설득력이 높았을 것 같습니다.
모든 면에서 <신의 등불>과는 도저히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스즈코의 치장>
사고사한 유명 여가수 가모 스즈코의 닮은 꼴을 찾는 대회에 얽힌 이야기.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주특기인 기묘한 비일상 - 닮은 꼴을 찾는 대회에서 의도적으로 닮지 않으려 노력했다 - 을 끄집어내어 접근한 것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나 진상이 브라운 신부 시리즈에 비하면 뻔해서 아쉬웠어요. 중간까지만 읽어도 이유가 뭐건간에 진상은 눈치챌 수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앞선 작품들 보다는 동기, 기묘한 설정까지의 설득력은 있기에 별점은 2.5점입니다.

<뜻밖의 유해>
외딴 온천마을에서 동요 가사대로 삶고 구워진 채 발견된 시체에 대한 이야기.

한마디로 평균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경찰 흉내를 좋아하는 찐따인 주인공 사쿠라이 캐릭터도 짜증스러웠지만 동남아 여행 후 걸린 콜레라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라는 진상이 정말 어이가 없었으니까요. 선거 때문이라는 동기도 납득하기 어려웠고요. 선거 때문이라면 엽기 살인사건도 큰 문제가 되는 것 아닐까요?
무엇보다도 동요처럼 시체를 처리한 이유가 애매하다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에요. 사살해버리면 기껏 시체를 엽기적으로 처리하는 의미가 사라지잖아요. 계속 등장하는 회문에 대한 이야기도 작품과는 별 상관도 없는 현학적인 지식의 나열일 뿐이었고요.
그야말로 트릭을 위해 만든 이야기에 불과하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비뚤어진 모자>
주차장에서 우연히 습득한 모자의 주인을 찾아나선다는 코믹 일상계 단편.
아기자기한 전개는 재미있지만 결말에서의 비약, 즉 아가 모자 주인 아들 사건까지 알게되었다는 전개가 전혀 논리적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 추리의 핵심인 보기 흉한 모자와 인형 수집이 갑작스러운 원형 탈모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는 논리가 어떻게 성립하는지 저는 전혀 모르겠더군요. 그정도로 돈이 많다면 충분히 이쁜 모자나 부분 가발을 남몰래 구입하는게 가능했을텐데 말이죠. 
이 작품 역시 평균 이하의 작품으로 <뜻밖의 유해> 에피소드처럼 트릭을 위해 만든 이야기라 생각되기에 별점은 똑같이 1.5점입니다.

<네 거두의 싸움>
우메즈의 유명인사 4명의 비밀 회합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발견되고 유명인사의 손녀 미치코는 그들이 범죄를 꾸미고 있다 생각한다는 단편.

이 작품은 브라운 신부 시리즈 최고 걸작 중 하나인 <글라스 씨의 실종>과 동일한 설정의 작품입니다. 본인은 전혀 다른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그 사람의 단편적인 말과 행동, 물건들만 보고 지레짐작하여 범죄를 상상해 낸다는 줄거리거든요. 물론 이 설정이 같다고 흠을 잡는건 아니에요. 비슷한 설정의 걸작이 여럿 있듯이 이 작품도 자기 식으로 변주를 잘 했더라면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겠죠.
그러나 사람들이 오해하는 상황도 별반 와닿지 않을 뿐더러 진상이 너무나 시시해서 그다지 눈여겨 볼 부분은 없었습니다. 아의 활약도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사부로 정 노상>
사부로 정에서 택시에서 내린 손님. 그러나 그 손님이 벓 직후 택시에서 목이 잘린 시체로 발견된다는 기이한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추리적으로는 가장 높은 완성도를 보입니다. 택시라는 운송수단의 특징과 사부로 정이라는 장소를 잘 이용한 교묘한 트릭이 돋보이니까요.
그러나 범인의 동기라던가 해결부분을 너무 급하게 처리한 점과 범인이 이렇게 수수께끼같은 연출을 한 이유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조금 아쉽습니다. 가장 주요한 트릭의 하나가 "변장"이라는 것도 치밀함과는 거리가 멀고 말이죠. 이러한 부분에서 설득력만 높여주었더라면 진짜 걸작이 되었을지도 모를텐데 2% 부족하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환자에게 칼>
계단에서 넘어진 환자. 그러나 그에게 다가간 목격자들은 그가 칼에 찔려 사망한 사실을 알게 된다는 작품으로 불가능 트릭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건이 발생한 현장과 진행 과정, 결말 모두가 우연에 의지하고 있다는 단점이 너무 큽니다. 실제로 이러한 사건이 가능할 것 같지 않다는 의심도 생기고요. 블랙잭의 한편이라면 모를까, 추리 단편에는 어울리지 않는 설정이었어요. 별점은 1.5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