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미 - 티에리 종케 지음, 조동섭 옮김/마음산책 |
<하기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리샤르 박사와 이브 - 리샤르 박사는 성공한 성형외과 전문의이고 이브는 공식적으로는 그의 아내, 또는 정부, 또는 애인과 같은 여인. 그러나 리샤르 박사는 이브를 돌봐주지만 또한 매춘을 시키는 등 가혹하게 학대한다.
뱅상 모로 -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인 "미갈 (독거미)" 에게 납치되어 그에게 길들여 진다.
알렉스 - 은행을 털다가 경비원을 죽인 이후 도망다니는 신세. 거액의 돈은 있지만 움직일 방법이 마땅치 않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신작 영화 <내가 사는 피부>의 원작이라고 하여 읽게된 작품. 최신작인줄 알았는데 1995년에 발표된 작품이네요. 170여페이지 정도되는 중편으로 리샤르 박사와 이브, 은행강도 알렉스, 그리고 미갈 (독거미)이라는 인물에게 납치되어 길들여지는 뱅상, 이렇게 세명의 이야기가 평행하게 그려지며 하나의 결말로 귀결되는 구조입니다.
이러한 등장인물별 개별적 이야기가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로 합쳐지는 구조는 이미 영화 펄프픽션 등 여러 컨텐츠에서 많이 선보인 것이죠. 때문에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인물들과 사건이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 뭔가 새로움이 없다면 실망스러울 수 있는 위험성도 존재합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작품은 성공했습니다.
딸을 윤간하여 치유할 수 없는 정신병에 걸리게 한 범인을 납치한 뒤 조교와 성전환수술 코스를 거쳐 농락한다는 일본 야겜을 능가하는 막장 복수극이 이런 진지한 스릴러로 묘사된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큰 놀라움이었어요.
또 진상을 화자의 시점 변경으로 감추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서술트릭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완성도도 높고 반전이 탁월하다는 점도 높이 평가할만 합니다. 일본식의 "한번 속여보겠다!"라는 의지가 훤히 보이는 서술트릭 반전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전개된다는 점에서 작가의 내공과 함께 유럽 추리물의 저력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어요.
덧붙이자면 군더더기없는 중편 분량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고 <안 타고는 못배겨!>에 등장했던 차 시트로엥 CX가 등장하는 것도 반가왔습니다.
단, 중반까지 조금 지루하다는 것과 알렉스가 엮인 뒤 결말로 치닫는 전개가 작위적이었다는 것은 조금 아쉽기는 합니다. 기본적으로 지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성형수술을 위해서 "마취"가 필요하다는 것을 간과한 알렉스의 사고방식도 이해되지 않았고 말이죠.
무엇보다도 이브와 리샤르 박사가 연결되는 결말은 좀 아니었어요. 독거미가 포획한 나방이 독거미와 한팀이 된다는 결말이라니 스톡홀름 신드롬인가? 어쨌건 너무 쉽게 간 느낌이랄까요. 그닥 감동도, 감흥도 없는 결말이었습니다. 차라리 이브가 다 쏴버렸더라면 싶었는데 말이죠...
그래도 기묘한 복수극이자 독특한 스릴러이자 심리묘사가 돋보이는 유럽 분위기가 물씬 난다는 점에서, 그리고 더욱이 짧다라는 미덕을 지닌 좋은 소설이기 때문에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추리애호가분들에게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읽고나니 영화도 보고싶어지는군요. 과연 세명의 시점을 어떻게 오가며 전개할지 무척이나 궁금하거든요. 그러고보니 이십여년전 학부생 시절 헐리우드 키드를 꿈꿀때 인상적인 신예로 등장했었던 페드로 알모도바르도 이젠 세계의 거장이 되었네요. 제가 한건 없지만 왠지 감개무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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