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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5

독거미 - 티에리 종케 / 조동섭 : 별점 3.5점

독거미 - 8점
티에리 종케 지음, 조동섭 옮김/마음산책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리샤르 박사와 이브 - 리샤르 박사는 성공한 성형외과 전문의이고 이브는 공식적으로는 그의 아내, 또는 정부, 또는 애인과 같은 여인. 그러나 리샤르 박사는 이브를 돌봐주지만 또한 매춘을 시키는 등 가혹하게 학대한다.

뱅상 모로 -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인 "미갈 (독거미)" 에게 납치되어 그에게 길들여 진다.

알렉스 - 은행을 털다가 경비원을 죽인 이후 도망다니는 신세. 거액의 돈은 있지만 움직일 방법이 마땅치 않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신작 영화 "내가 사는 피부"의 원작이라고 하여 읽게 된 작품. 최신작인줄 알았는데 1995년에 발표된 작품이네요. 170여 페이지 정도 되는 중편입니다. 이야기는 리샤르 박사와 이브, 은행강도 알렉스, 그리고 미갈(독거미)이라는 인물에게 납치되어 길들여지는 뱅상, 이렇게 세 명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진행되다가 하나의 결말로 귀결되는 구조입니다.

이러한 등장인물별로 각각 이야기를 진행시키다가, 결국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로 합치는 구조는 이미 영화 "펄프픽션" 등 여러 콘텐츠에서 많이 선보였습니다. 때문에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인물들과 사건이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 뭔가 새로움이 없다면, 실망스러울 수 있는 위험성도 존재합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 작품은 성공했습니다. 

딸을 윤간하여 치유할 수 없는 정신병에 걸리게 한 범인을 납치한 뒤, 조교와 성전환 수술을 시켜 농락한다는, 일본 야겜을 능가하는 막장 복수극이 이런 진지한 스릴러로 묘사된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큰 놀라움이었어요.
또 진상을 화자의 시점 변경으로 감추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종의 서술 트릭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완성도도 높고 반전이 탁월하다는 점도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일본식의 "한번 속여보겠다!"라는 의지가 훤히 보이는 서술 트릭 반전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전개된다는 점에서 작가의 내공과 함께 유럽 추리물의 저력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어요.
군더더기 없는 중편 분량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 "안 타고는 못 배겨!"에 등장했던 차 시트로엥 CX가 등장하는 것도 반가웠어요.

단, 중반까지 조금 지루하다는 것과 알렉스가 엮인 뒤 결말로 치닫는 전개가 작위적이었다는 건 조금 아쉽습니다. 기본적으로 지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성형 수술을 위해서 "마취"가 필요하다는 것을 간과한 알렉스의 사고방식도 납득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브와 리샤르 박사가 연결되는 결말은 영 아니더군요. 독거미가 포획한 나방이 독거미와 한팀이 된다는 결말이라니... 스톡홀름 신드롬인가? 어쨌건 너무 쉽게 간 느낌으로 그다지 감동도, 감흥도 없는 결말이었습니다. 차라리 이브가 다 쏴버렸더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그래도 기묘한 복수극이자 독특한 스릴러이자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유럽 분위기가 물씬 난다는 점에서, 그리고 더욱이 짧다라는 미덕을 지닌 좋은 소설이기 때문에 제 별점은 3.5점입니다. 추리 애호가분들에게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읽고 나니 영화도 보고 싶어지는군요. 과연 세 명의 시점을 어떻게 오가며 전개할지 무척이나 궁금하거든요. 그러고 보니 이십여 년 전 학부생 시절 헐리우드 키드를 꿈꿀 때 인상적인 신예로 등장했었던 페드로 알모도바르도 이젠 세계의 거장이 되었네요. 제가 한 건 없지만 왠지 감개무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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