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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5

Q.E.D 정주행. 1권부터 30권까지 내맘대로 Best

 뭔가 꽉 막힌 듯 답답한게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요즈음입니다. 좋아하는 독서를 마음 편히 즐긴 것도 오래전 일인 것 같네요. 그래서 기분전환삼아 쌓아둔 Q.E.D를 1권부터 다시 정주행했습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책장 어디를 펼쳐도 마음에 드는" 그런 작품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느낌은 드니까요.


이왕지사 다시 정주행하는 것이니 만큼 개인적인 최고의 에피소드를 쭈~욱 뽑아보았습니다. 생각보다 일상계 작품이 적어서 좀 의외였어요. 다른 분들의 선택이 어떨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베스트 5>
4권 - 야곱의 사다리

오늘날 Q.E.D 장기연재의 발판이 된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캐릭터는 독특했지만 다소 뻔했던 이전 에피소드들과 차별화되는, 이른바 수학 - 과학적 지식이 실제 사건과 잘 결합되면서 만화적 전개를 통해 그 시너지를 극대화시킨다는 Q.E.D 만의 장점이 잘 드러난 에피소드거든요.
동기가 좀 어이없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스케일도 적당한 편이고 무엇보다도 인공생명을 의인화하여 성경 속 이야기와 결합시킨 전개가 아주 절묘했어요.

10권 - 마녀의 손안에
역시나 Q.E.D 스러운 명 에피소드. 토마가 10살때인 MIT 재학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인 샐럼 마녀재판과 현대의 살인사건을 접목한 전개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범인이 1년여에 걸쳐 계획한 범죄와 트릭이 최고 수준입니다. 법정드라마스러운 전개도 좋았고요. 전체 시리즈 통틀어서도 최고가 아닐까 싶은 에피소드입니다.

16권 - 죽은자의 눈물
핵심 트릭으로 시체 감추기 + 알리바이 위장 공작이 등장합니다. 본격물다운 전개이기는 하나 흔해빠진 설정이죠. 그러나 트릭의 설득력이 높고 의외로 범인의 작전 역시 꼼꼼하게 짜여져 있기 때문에 웰메이드 추리물로 거듭났다 생각됩니다. 토마가 범인을 눈치 챈 이유도 아주 깔끔해서 좋았고요. 특히나 만화로는 보기 드물게 심리 서스펜스를 표현한 것이 베스트로 꼽은 가장 큰 이유입니다. 마지막 토마의 '사기극(?)'역시 눈여겨 볼만한 부분이었죠.

20권 - 다망한 에나리씨
탐정동호회 회장 에나리의 할머니에게 닥친 수수께끼 같은 사건을 그린 전형적인 일상계 소품. 정말로 별거아닌 사건을 진지하게 본격추리물로 구성한 일상계의 왕도! 그 와중에 웃음과 재치를 빼놓지 않은 점도 높이 평가할 만 하죠. 베스트로 선정되는 것이 당연한 에피소드입니다.

27권 - 입증책임
학교 내 모의재판으로 배심원제도를 체험하는 행사에 참관하게된 토마가 과거 실제 있었던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다는 작품. 재판원 제도를 이해하는데 아주 효과적이었던, 역시나 Q.E.D의 장점인 학습만화스러운 전개가 빛나며 사건의 맹점을 파헤치는 추리적인 부분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법정물스러운 분위기도 합격점이고요. 마지막의 진상을 꿰뚫고 있으면서도 검찰의 입증책임때문에 무죄쪽에 힘을 실어준 토마의 행동이 역시나 토마답다는 것도 좋았어요. 캐릭터가 이렇게 일관되게 유지되기도 힘든 일이잖아요?


그리고 아래는 아쉬운 가작들. 좋은 작품들이나 아주아주아주 약간 아쉬움이 느껴져서 베스트 5에 아깝게 선정되지 못한 에피소드들입니다.

<아깝다 가작!>
9권 - 얼어붙은 철퇴
이미 잊혀진 과거의 사건을 현재에 밝혀낸다는 줄거리인데 흡사 <용의자 X의 헌신>을 보는 듯한 두 천재 수학자의 대결이 볼만한 에피소드입니다. (선-악의 캐릭터가 뒤바뀐 감은 좀 들지만...) 특히나 결말 부분에서 카치도키 다리가 다시 열리는 순간의 재회라는 극적 장치 덕분에 굉장히 드라마틱한 작품으로 완성된 것 같아요.
아쉽게도 핵심 트릭인 카치도키 다리 관 속에 시체를 넣는다는 트릭이 별로라서 가작이지만 전개 하나만큼은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11권 - 겨울동물원
무명 추리작가가 자신이 고안한 트릭으로 사건을 저지른다는 일상계스러운 본격물. 추리작가의 유령이 사건을 끌어가는 유머러스한 진행도 좋지만 유치한 트릭을 한번 더 포장하는 결말이 마음에 들어서 가작으로 선정합니다. 그런데 궁금한거 한가지. 토마는 유령의 존재마저 눈치챘던 걸까요?

13권 - 재난의 사나이
로키와 에바 다음으로 출연비중이 높은 토마의 대학동기인 알렌 브레이드와의 두뇌게임을 그린 에피소드. 렘브란트의 작품으로 장물이기도 한 그림을 놓고 벌이는 게임이 상당히 흥미진진합니다. 배의 이름과 깃발같은 초반부의 단서도 공정하게 독자에게 선보여 주고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은 부분이고요. 후쿠모토 노부유키나 카이타니 시노부와 같은 게임 만화의 거장들 작품같이 좀 더 긴박감 넘치는 전개가 있엇더라면 어땠을까 싶기는 해서 약간 감점했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에피소드입니다.

17권 - 까마중
영화촬영장을 무대로 한 밀실트릭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로 트릭 자체는 경찰수사로 밝혀질 수준이라 높은 수준은 아닙니다. 하지만 전개가 아주 일품이에요. 설정과 트릭이 작품 속 영화 <까마중>과 병렬로 진행되는 이야기에 딱 들어 맞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작중 영화와 맞물리는 동기가 아주아주 인상적이거든요. 트릭만 좀 더 정교했다면 만점을 받아도 될만한 인상적인 소품이었습니다.

18권 - 명탐정들 등장
고정캐릭터라고도 할 수 있는 에나리 "퀸"과 홈즈 - 멀더 트리오, 즉 탐정동호회 친구들이 등장하는 일상계. Q.E.D의 한 축이기도 한 일상계 에피소드 중에서도 손꼽을 만한 작품이죠. 치즈케이크 도난사건에서 시작되어 몇가지 우연이 겹친 뒤 유령 소동으로까지 발전하는 밑도 끝도 없는 전개가 인상적. 단 멀더 모리타가 왜 공진을 일으켰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건 아쉬운 부분이라 감점합니다.

24권 - 크리스마스 이브이브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 엄청나게 바쁜 노래방에서 벌어진 희한한 사건을 그린 일상계. 소소하지만 짜임새 있는 전개와 함께 일종의 암호트릭이 등장하는 등 풍성함이 좋았습니다. 만담가가 진행하는 듯한 전개와 완벽한 해피엔딩 역시 유쾌했던 부분.

25권 - 여름의 타임캡슐
가나가 초등학교때 묻은 타임캡슐 속 보물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가는 이야기. 너무나 완벽하게 기억을 잃어버린 가나와 친구들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조금은 비현실적이지만 사건의 동기가 설득력있고 추리의 과정도 합리적일 뿐 아니라 추억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여운이 인상적인 작품. 가작으로는 충분한 수준입니다.

2011/06/22

일루셔니스트 (2010) - 실뱅 쇼메 : 별점 4점

 


간만이네요. 통 개인 취미활동을 할 짬 자체가 없는 요즈음입니다. 그래도 간만에 짬을 내서 본 애니메이션이 있어서 짤막하게 소개할까 합니다.

이 작품은 프랑스 애니메이션으로 한 늙은 마술사가 여행 중 만난 소녀 때문에 겪는 한때의 행복과 좌절, 그리고 마술사와 소녀가 각각 서로가 갈 길을 간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물질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와 젊음 앞에 쓸쓸히 물러나는 결말 역시 짙은 여운을 남기는 등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이야기의 서정성도 좋았지만 이 작품 최고의 가치는 아트웍! 최근 보아왔던 애니메이션 중 아트웍 부분에서는 한마디로 최고였습니다. 애니메이션 전통의 강호 프랑스의 저력을 다시한번 보여줬달까요.

딱히 큰 드라마가 없는 스토리 전개는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다른건 몰라도 미술적인 완성도 하나만으로도 별 4좀은 충분한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서정적이고 독특한 애니메이션을 원하신다면 강추드립니다.

그나저나... 감상 후 드는 생각은 "나이들어 돈 없으면 서럽다"는 것. 제게도 언제든지 닥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슬프네요.

2011/06/16

누명 - 애거서 크리스티 : 별점 2.5점

누명 - 6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해문출판사

부유한 자선사업가인 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쟈코 아가일이 감옥에서 죽은 2년 뒤, 지질학자 아서 캘거리는 아가일 가문을 방문하여 살해 당시 쟈코의 알리바이를 직접 증명한다. 하지만 당시 어머니를 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아가일 저택에 거주하던 가족들 뿐이었고 속된 말로 내놓은 자식 쟈코가 유죄판결을 받은 것을 당연시 여기던 가족들은 누가 진범이냐를 놓고 큰 충격과 의심, 공포에 빠지게 되는데...


지난 주부터 이어진 저만의 애거서 크리스티 섭렵. 이번에 읽은 작품은 <누명>입니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직접 선정한 자신의 작품 베스트 10에 들어가는 작품이기도 하죠. 사실 완독한 것은 며칠 전으로 리뷰 글을 다 써 놨었는데 편집 버튼 누른 뒤 알 수 없는 버그가 발생해서 다 날아갔네요. 망할 에버노트.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씁니다. 쩝. 리뷰 내의 오류나 텐션이 떨어지는 것은 다 에버노트 탓으로 알아주세요.
어쨌건 이 작품은 1958년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여사님 작가 인생의 비교적 후반기라 할 수 있죠. 그래서 작중에 폭스바겐 비틀과 스푸트니크가 언급되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단순한 배경만이 아니라 시리즈 탐정이 등장하지 않는 등 전체적으로 이색적인 부분이 많이 보이는 것 역시 원숙기를 넘어선 작가의 여유같은게 느껴졌고 말이죠.

특히나 여사님의 전공인 전통 본격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패트리시아 하이스미스 스타일의 심리 서스펜스 스릴러 성향이 엿보이는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현재의 사건이 아니라 이미 해결된 것으로 보였던 과거의 사건을 다시 끄집어 낸 뒤 가족 중 누가 살인범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의 증폭되는 오해, 증오 등 복잡한 심리묘사가 주로 펼쳐지기 때문인데 이러한 묘사를 뒷받침하는 촘촘히 짜여진 가족 구성원들의 설정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서 아주 재미있게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네요.

그러나 단순한 심리 드라마는 아니며 여사님 명성에 걸맞게 추리적으로도 뛰어난 작품이기도 합니다. 앞선 여러가지 복선들, 예를 들어 자코의 중년 여성 대상 사기행각이나 비밀결혼 같은 별것 아닌듯한 정보가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범인의 정체와 진상도 놀라운 점이 있기 때문에 본격 추리물을 좋아하는 팬들도 즐길거리가 많은 편이죠.

하지만 쟈코가 유죄판결을 받고나서 사망할 때 까지의 6개월 동안의 수감생활 중 왜 모든 것을 사실대로 밝히지 않았는지가 설명되지 않는 것은 옥의 티이며 심리묘사가 중요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중반 이후에는 헤스터의 심리묘사에만 너무 치우친 감이 있다는 것은 아쉽더군요. 심리 묘사의 디테일도 부족하지만 가족 구성원 개개의 심리묘사로 깊이 들어갈 수록 진범의 심리를 건드릴 수는 없다는 한계가 너무 명확했어요.
그리고 사건을 게임처럼 생각해서 장난스럽게 접근하던 필립 듀란트의 비중이 큰 것은 작품을 지루하게 만든 감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필립 듀란트가 밝혀낸 진상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관절 이 친구는 뭘 위해서 등장해서 기웃거리다 죽어버렸는지 알 수가 없더군요. 뭔가 하긴 한 것 같은데 죽어서도 뭘 했는지 밝혀지지 않으니 정말로 안습한 캐릭터랄까요.
그 외에 탐정역의 아서 캘거리의 활약이 좀 뜬금없고 빅토리아 시대의 향취가 느껴지는 해피엔딩은 시대에 걸맞아 보이지 않았고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긴장감넘치는 심리묘사가 계속 이어졌더라면 대단한 걸작이 되었을텐데 앞서 언급한 한계가 발목을 잡은 느낌이에요. 그래도 고전 황금기 이후 현대화된 추리정통 본격 추리물과 심리 스릴러의 가교 역할을 하는 작품으로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군요.

덧붙이자면 사실 이 작품은 오래전 TV에서 영상화된 작품을 먼저 접했었는데 이 작품처럼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1인칭 심리묘사를 다루면서 그 중에 범인이 있는 작품이라면 아무래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영상물 쪽이 더 적합했던게 아닌가 싶네요. 어린 마음에도 무척 재미있게 감상한 기억이 나거든요. 영화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 작품인 것 같은데 도널드 서덜랜드의 캘거리 박사 / 페이 더너웨이의 레이첼 아가일 / 크리스토퍼 플러머의 레오 아가일이라는 화려한 캐스팅이 인상적이라 다시 구해보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페이 더너웨이의 레이첼 아가일이라.... 이 아줌마 의외로 크리스티 영화에 많이 나왔네요?

2011/06/14

백주의 악마 - 애거서 크리스티 / 하영진 : 별점 4점

백주의 악마 - 8점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김윤정 옮김/황금가지

영국 래더콤만에 위치한 졸리 로저 호텔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기 위해 모인 사람들. 
그들 중 케네스 마셜 대위의 아내 알레나는 엄청난 미인으로 주변 남성들을 본의아니게 유혹하는 사악한 존재였다. 갓 결혼한 패트릭 레드펀이 아내를 뒤로 하고 그녀에게 열중한 탓에 여행객들 사이의 갈등은 깊어져 갔다. 그러던 어느날, 알레나가 해변 근처 섬에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는데...

제목은 왠지 예스럽고 촌스럽지만 원제도 Evil Under The Sun! 책 뒤 해설을 보니 '마더구스 동요'에서 따온 제목이라 하네요. 찌는 듯한 태양 아래 휴양지에서의 악마의 소행같은 범죄를 다룬 이 작품에 정말로 잘 어울리는 제목이라 생각됩니다. 사실 소설도 명작이지만 피터 유스티노프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가 더욱 잘 알려진 작품이기도 하죠. 저 역시도 영화로 먼저 접해보았기에 그간 독서를 미루다가 이제서야 읽게 되었네요.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트릭이 굉장히 뛰어난 작품이라는 것이죠. 일종의 순간이동 알리바이 트릭인데 지금 읽어도 무릎을 칠 만큼 기발한 데가 있거든요. 영화를 볼 때도 감탄스러웠지만 원작도 감동이 남달랐어요.
또한 전개에서 하나씩 던져지는 사소한 단서들을 하나로 모아 놀랍지만 사실일 수 밖에 없는 결론을 내리는 포와로의 추리는 작중에 언급된대로 그야말로 "퍼즐을 맞추는 듯한" 고전 정통 본격물의 미덕을 제대로 전해주기에 추리소설 애호가로서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아울러 독자들과의 두뇌싸움도 제대로라서 공정성 측면에서는 백점 만점을 줘도 충분할 정도이며 포와로의 이유있는 기이한 언행도 잘 묘사되어 있는 등 캐릭터 묘사도 제대로라 진짜 명탐정이 어떤 사람인지를 확실히 각인시켜 주는 것도 매력적인 요소고요.

물론 전개에서 아주 약간의 허술함이 느껴지기는 합니다. 예를 들자면 범인들이 옭아매려 한 유력한 용의자의 알리바이가 우연찮게 증명된 이후에도 사건의 전개가 너무 범인들에게 유리하게 흘러가는 점이 그러합니다. 우연이 너무 심하게 겹쳐요.
막판 추리쇼의 기반이 되는 린다의 자살 소동도 좀 지나친 감이 들어 거북했고요. 그리고 증거가 없다고 운운하며 추리쇼를 펼치는데 사진을 가지고 범인들의 정체를 밝히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딱히 설득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그래도 반세기가 훨씬 지난 지금 읽어도 변치않는 정통 고전 추리소설의 묵직하면서도 충실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30년대 고전 황금기 시대를 대표하는, "왕도" 작품 중 하나가 아닐까 싶네요. 뒤에 실린 정말로 짤막한, 꽁트 수준의 단편 <말벌집>도 정통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심리 드라마지만 완벽한 범죄계획과 상황에 잘 맞는 해결이 존재하기에 걸작의 여운을 즐기는 식후 디저트로서 충분했습니다. 별점은 4점. 아직 읽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영화도 다시 찾아보고 싶어지네요.

2011/06/13

김경문 감독님 사퇴

 


안타깝습니다.

두산이 최근 몇년간 보기 드물었던 최악의 부진을 겪고 있긴 하나 이 모든게 감독의 탓이라고 할 수는 없는데 결국 올것이 오고야 말았네요. 최소한 임기는 확실히 채우고 명예롭게 떠나는 모습을 보았으면 하는게 최소한의 바램이었는데...

그래도 지난 8년동안 두산 팬에게 많은 기쁨을 안겨주었던 감독님임에는 분명합니다. 한국 프로야구에도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감독이라는 타이틀 이외에도 SK 김성근 감독과 오랫동안 자웅을 겨루면서 많은 명승부를 만들어 내었고 이른바 "화수분 야구"와 "뚝심의 야구"로 대표되는 팀컬러를 구축한 명장으로 오래 기억되실 것이고요.

국내파 선발투수를 제대로 키워내지 못했다는 점과 라이벌 감독들에 비하면 약간은 처지는 작전 수행과 투수 교체로 비난을 받기도 하셨지만 그 이상의 많은 일을 해 내셨다 생각합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시던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사퇴서 전문>
저는 오늘 두산베어스 감독직에서 사퇴하고자 합니다.

올시즌 어느 때보다 구단의 지원도 좋았고 나름대로 준비도 많이 했다고는 하지만 처음 구상한 대로 풀리지 않아 정말 힘이 들었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제가 사퇴하는 것이 선수들이 서로 뭉치는 계기를 만들고 새로운 분위기에 빨리 적응하여, 올시즌 포기하지 않고 변하지 않는 노력으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제가 그만두는 오늘은 구단의 발전과 저를 위한 큰 전환점이 되는 계기가 되고, 또한 서로에게 최고의 날이 될 것입니다.

지난 7시즌 동안 두산에 있으면서 하루하루 유니폼을 입고 덕아웃에 앉아 있는 것, 그리고 선수들과 같이 그라운드에서 생활하는 것이 저에게는 커다란 행운이며 축복이었습니다.

또한 두산베어스 팬들의 사랑은 저에게는 과분할 정도로 대단했고 그것으로 무척이나 행복했습니다. 어떻게 팬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어디에서 다시 야구를 하던 처음 두산에서 프로에 몸을 담았던 만큼 두산은 언제나 저에게 진정한 고향일 것이고, 두산베어스와 팬여러분에 대한 저의 관심과 사랑은 영원할 것입니다.

이 자리를 빌어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님, 박정원 구단주님과 김진사장님 그리고 그동안 저와 같이 활동한 코칭스탭, 선수단 여러분, 또한 구단프런트 여러분, 무엇보다도 언제나 한결같이 성원해 주신 팬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2011년 6월 13일 김 경 문

2011/06/12

▶◀ 謹弔 정태원 선생님 (1954 ~ 2011)

 정태원 선생님이 암투병 끝에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오늘 들었습니다.


그동안 추리 소설 좋아하시는 독자분이시라면 선생님이 번역하신 책 한권 읽지 않으신 분은 없을 정도로 많은 작품들을 소개해 주셨었죠. 제 블로그에만도 선생님이 번역하신 작품이 20권도 넘게 올라와 있을 정도로요.
선생님이야 말로 한국 추리 문학 시장을 위해 가장 많은 노력을 하신, "진짜 추리 매니아" 라는 칭호가 가장 잘 어울리시는 분이라 생각합니다.

아직 한국 추리 문학 시장을 위해 하실 일이 많을 텐데 너무 빨리 세상을 뜨신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가신 곳에서는 아픔이나 근심걱정 없이 추리소설 마음껏 즐기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011/06/11

3막의 비극 - 애거스 크리스티 / 강남주 : 별점 2점

3막의 비극 - 4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강남주 옮김/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은퇴한 유명 배우 찰스경이 주최한 파티에서 교구목사 배빙턴이 의문사한다. 찰스경은 살인을 주장하지만 아무런 동기가 없는 상태. 그러나 몇개월 뒤 비슷한 상황에서 찰스경의 친구인 의사 바솔로뮤경이 독살당하고 찰스경은 친구 새터드웨이트, 그를 흠모하는 아가씨 에그와 함께 사건 진상 추적에 나선다. 그런 그들 앞에 조력자로 에르큘 포와로가 나타나는데...

에르큘 포와로 시리즈로 1935년에 발표된 23번째 작품입니다. 여사님의 필력이 가장 왕성한 시기에 쓰여진 작품이죠.
연이어 벌어지는 모두 3건의 독살 사건을 그리고 있는데 그다지 정교한 "트릭"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첫번째, 두번째 사건에 사용된 "독살된 피해자가 먹고있던 잔에 독이 없었다!" 라는 트릭은 아주아주 간단하지만 효과적으로 사용되었기에 만족스럽고 무엇보다도 사건의 본질을 흐리게 하기 위한 살인극이라는 아이디어가 아주 좋았어요.

그러나 작품의 가장 중요한 "집사 엘리슨의 정체"라는 부분의 해답이 변장이라는 것은 최악이었습니다. 직전에 읽은 <13인의 만찬>보다 정도는 덜하지만 현실적이지 못한건 마찬가지거든요.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가 신분을 속이고 몇주동안 다른 사람인 척 한다? 더군다나 변장까지 해 가며 실행하는 살인극의 무대는 그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지들 앞인데? 이래서야 리허설까지 치뤄가며 벌이는 치밀한 계획 범죄라 하기 민망하죠.
물론 다른 추리소설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손님들은 집사나 하인에게는 신경쓰지 않는다" 라는 심리적 트릭이 결합되었을 수는 있습니다. 허나 같이 몇주 동안 생활한 동료 하인들에게까지 그러한 심리적 트릭을 기대하는 건 영 무리라 생각되네요. 게다가 한명에게는 정체를 들키기 까지 하니 뭐 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치밀한 계획과 잔인한 수법에 비한다면 동기도 많이 약한 편이에요. 정신병원에 감금당할지도 모른다는 정신병자의 심리만 놓고 본다면 아주 설득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범인이 정신병자라는 동기와 결말 자체가 너무 쉽게간 느낌이라 별로였거든요. 게다가 이 동기는 주변인물들, 특히 사람 관찰이 특기이자 취미라는 새터드웨이트씨라는 존재를 허수이비로 만들 뿐입니다. 어떻게 오랜 기간 동안 이렇게까지 흉포한 친구의 정신상태를 모를 수가 있는건지 설명되지 않아요. 때문에 전개의 공정성에도 의심을 가지게 만드네요.

그 외에도 찰스경의 본명에 대한 정보 역시도 그닥 설득력이 없었고 탐정흉내를 내면서까지 사건을 키운 이유도 설명되지 않으며 (만약 첫번째 사건 없이 두번째 사건만 저질렀다면 극작가 윌슨양에게 정체가 드러나긴 했지만 포와로의 개입은 막을 수 있었겠죠) 죄를 뒤집어 쓸만한 희생양도 변변치 않은 등 여러모로 헛점이 많았습니다. 하긴 가장 큰 헛점은 뭐니뭐니해도 범인이 포와로를 왜 제일 먼저 처리하지 않느냐는 것이겠지만.
헤이스팅스에 비하면 너무 신사인척 하는 새터드웨이트씨도 비중에 비하면 하는게 너무 없어서 마음에 들지 않네요. 새터드웨이트씨는 아무래도 포와로 시리즈의 화자 또는 조력자 역할보다는 <할리 퀸> 시리즈 쪽이 더 어울리는 것 같아요.

결론 내리자면 평작 수준이랄까요? 같은 해에 발표된, 거의 비슷한 아이디어가 사용된 작품인 <abc 살인사건>보다는 처지는 작품이었습니다. 형제라 불러도 될 것 같은 작품들인데 <abc 살인사건>쪽이 더 완성도가 높고 이야기와 전개가 보다 화려하다 생각되거든요. 별점은 2점. 아직 읽지 않으신 분이 계시다면 이 작품보다는 <abc 살인사건>을 읽으시기를 권해드립니다.

CMB 박물관 사건목록 10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점

 

CMB 박물관 사건목록 10 - 4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Q.E.D>의 스핀오프 시리즈. 최신권까지 전부 다 읽은 줄 알았는데 찾아보니 10권을 아직 안 읽었더군요. 무려 1년도 더 전에 직장인님이 글을 남겨주시기도 했는데 왜 깜빡했을까... 늦게나마 구해서 읽었기에 포스팅 합니다.

10권에는 모두 네편의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첫번째 이야기 <그차이 6천만년>
고생물학자 헤라와 조이스 남매의 초청으로 고비사막으로 간 신라와 타츠키가 공룡과 인간의 화석이 6천만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같은 지층에서 발견된 이유를 밝히는 에피소드. 설정은 흥미진진하고 베링거의 화석이라는 화석관련 토막 상식을 적절히 삽입하여 전개하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C.M.B 특유의 박물학적인 느낌이 잘 살아있거든요.
하지만 사건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빙하에 의한 지층의 결합" 이라는 진상을 고생물학자라는 인간들이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이 전혀 납득되지 않네요. 청소년용 지질 학습만화 수준의 이야기였다 생각됩니다. 별점은 2점.

두번째 이야기 <못>
신라와 타츠키의 시끄러운 학급친구 요코아리에게 온 저주의 메일. 친구들과 저주의 메일에 첨부된 사진 속 장소로 간 타츠키와 신라는 그 메일이 근처에서 발생한 뺑소니 교통사고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됩니다. 저주의 메일은 뺑소니 교통사고로 사망한 피해자가 사실은 누군가가 차 앞으로 떠민것이라는 운전자의 증언을 뒷받침하는 증거일 수 있거든요. 당시 피해자를 저주하던 누군가가 있었다라는 추측이 가능하니까요. 하지만 신라가 여지없이 사건의 진상을 밝혀낸다는 이야기로 박물학적인 에피소드와 함께 C.M.B의 또 다른 한 축인 일상계 이야기입니다. 있음직한 이야기, 현실적인 소재와 계획 등 일상계라는 쟝르에 정확히 부합하는 전개는 좋았어요.
 
그러나 그닥 대단한 사건도 없고 솔직히 범인이 이러한 짓을 꾸미는 이유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재판에서 딱히 유리하게 쓰일 것 같지도 않거든요) 썩 잘된 작품으로 보이지는 않네요. 또 처음부터 친구들에게 이야기 해 주면 아무 일도 없었을텐데 뭐든지 거래하려 하는 신라의 영악한 모습만 부각되는 것도 역시나 별로였고요.

나무의 성장이라는 아주아주 간단한 사실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것은 꽤 괜찮았습니만 감점요소가 많기에 별점은 2점입니다.

세번째 이야기 <지구 최후의 여름방학>
여름방학의 막바지에 타츠키와 신라는 요코아리 등의 친구들과 함께 바닷가 여행을 떠납니다. 일행은 바닷가 집의 여주인에게서 기묘한 동굴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일상계 소품. 하지만 사건이 아닌 장난에 불과한 에피소드라 추리적으로 평가할 가치는 거의 없습니다. 진상도 예상 가능했고요.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지 말고 일단 선택해라.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라" 라는 청춘만화같은 대사는 나쁘지 않았으나 타츠키 - 신라 조합에게는 어울리지 않았다 생각됩니다. 이러한 대사 뒤에 이어지는 감정의 울림 같은 것을 느끼기는 힘들었거든요. 토마 - 가나 조합이라면 조금 더 나았을텐데... 별점은 1.5점.

마지막 이야기는 <히드라울리스>
북 이탈리아의 한 마을 음악당 안에 있는 사람을 저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오르간. 암거래상 마우 스가루는 신라에게 저주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의뢰하고 신라는 착실하게 그것을 밝혀낸다는 박물학적인 이야기입니다.

직장인님이 언급하신 수력 오르간 이야기. C.M.B의 특징인 스케일 큰, 역사와 박물학적인 지식을 결합한 전개는 괜찮았고 수력 오르간에 대한 설명도 충실하다는 점에서는 마음에 들지만 추리적 완성도는 아쉽게도 그닥이었습니다. 일단 진상이 너무 뻔하거든요. 이러한 비밀을 몇세기 동안이나 풀지 못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었어요. 장치적인 트릭이니 만큼 2중 파이프를 쓴다던가 하는 식으로 조금만 더 교묘하게 전개했더라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총점해서 2점. 그닥 인상적이지도않고 완성도도 낮은 지나가는 시리즈 한 편이 아니었나 싶네요. 후속권들에서 만회하고는 있지만 앞으로도 전체적인 평균이 적절한 수준에서 맞춰졌으면 합니다.

2011/06/09

0시간으로 - 애거서 크리스티 / 안동림 : 별점 3점

 

0시간으로 - 6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안동림 옮김/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표제작 외 <포켓에 호밀을>까지 모두 두편의 중편이 수록되어 있는 동서추리문고 판본입니다. <13인의 만찬>을 읽은 뒤 갑자기 생겨난 크리스티 여사에 대한 존경심의 발로로 읽게 되었습니다.

<0시간으로>는 시골 노부인 별장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룬 여사님 특유의 후더닛물로 서로의 악의와 증오가 교차하는 전반부, 그리고 사건 후 해결과정을 그리는 후반부로 나뉩니다.

일단 배틀 총경이 활약한다는 점이 굉장히 특이했어요. 배틀 총경은 <4개의 시계> 등에서는 우직하고 끈기있는 형사로 탐정의 조력자 역할이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으로 경험에 기반한 끈기있는 수사 능력에 더해 감수성과 자애로움이 넘치는 당당한 주인공이거든요. 벨기에인 탐정 포와로를 들먹이며 단서를 찾아내는 모습에서는 과연 사람은 배우면서 성장하는 동물이구나... 싶은 생각도 들더군요.

그러나 깔끔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후반의 해결편은 약간 아쉬움이 남습니다. 전혀 다른 장소에 있던 제 3자가 우연하게 등장해서 사건에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다는 급작스러운 전개도 별로였지만 단지 정신병으로 치부한 살인의 동기가 그닥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돈도 많고 유명한 스포츠 스타가 전처에게 집착하는건 말이 안되죠. 이혼 뒤 더 예쁜 아내를 얻어 잘 살고 있으면 그게 복수지 뭐 이리 어렵게 일을 만드나 싶어요. 교수대에 올라가는 모습을 원했다면 차라리 직접 죽이던가....
또 후더닛물의 공통적인 단점이기도 한데 모든 등장인물을 치우침없이 공평하게 다룬 탓에 초반부 전개가 약간 늘어지는 감이 있었던 것도 아쉬운 점입니다. 배틀 총경이 눈빛 어쩌구 하면서 수사를 진행한 것도 딱히 와닿지는 않았고요.

그래도 따뜻한 배려심의 소유자 배틀 총경의 모습과 함께 급작스럽기는 하지만 나름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된다는 점에서 별점 2점을, 추리적으로 완전범죄에 가까왔던 범인의 계획과 독자에게 공정하게 단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0.5점 더해 별점은 2.5점입니다.

두번째 작품 <호밀 속의 죽음>은 독특한 점이 많았던 <0시간 속으로>와는 달리 전형적인 여사님 작품입니다. 콩가루 대저택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마더 구스 동요를 바탕으로 한 살인사건이라는 설정이 딱 그러해요. 작품도 중박이상은 되는 편이라 용의자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교묘하게, 하지만 공정하게 독자와의 두뇌싸움을 펼치는 고전 정통 추리물의 미덕이 아주아주 잘 살아있고 말이죠. 또 미스 마플 팬이라면 시리즈에 가끔 언급되곤 했던 글래디스 마틴이라는 하녀가 등장하는 것도 볼거리였습니다.

그러나 욕심이 좀 과하긴 했습니다. 저택의 왕이모님이 뭔가 아는 척하면서 던지는 이야기가 모두 진상을 흐리는 별볼일 없는 것이라는건 그렇다쳐도, 마더 구스의 동요를 끌고 들어온 것은 확실히 무리였어요. 최초의 티티새 장난은 범인의 계획과는 전혀 상관없는 우연이었다는 점, 그리고 범인이 과거 티티새 광산주의 딸이 어떤 식으로든 복수에 관여했을 것이라 생각한 이유가 전혀 설명되지 않기에 그냥 흥미거리 소재에 머물고 말거든요.
범인이 자신의 범죄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희생양으로 삼을만한 다른 용의자가 딱히 없다는 것도 완전범죄라는 측면에서는 감점요소였어요.

그래도 트릭과 함께 사건의 진상은 상당히 놀랍고 동기도 나름 합리적이기에 만족합니다. 마지막 글래디스의 편지도 심금을 울리는 적절한 에필로그였고요. 별점은 3.5점입니다.

그래서 평균 별점은 3점. 두 작품 모두 아주아주 뛰어난 작품이라 하기에는 어렵지만 중박 이상은 되고 즐길만한 요소가 많기에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1/06/05

13인의 만찬 (Thirteen at Dinner / 1985) - 루 안토니오 : 별점 2.5점

 

13인의 만찬 - 6점
루 안토니오 감독, 페이 더너웨이 외 출연/워너브라더스

원작 소설을 읽고 탄력받아 잽싸게 본 영화버젼. 오래전 형에게 선물받았던 <아가사 크리스티 콜렉션 박스셋트>에 포함되어 있는 작품이죠. 제 블로그에 <카리브 해의 비밀>과 <위치우드 살인사건>을 올리고 워낙에 실망이 커서 잊어먹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다시 꺼내어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핵심 트릭에 집중하여 전개되는데 트릭이 소설보다 영상물에 더욱 잘 어울린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네요. 트릭의 핵심인 바꿔치기 트릭이 주인공 페이 더너웨이의 1인 2역을 통하여 완벽하게 설명되고 있거든요. 또 핵심 트릭 이외의 자질구레한 것들은 많이 요약, 압축하여 1시간 30분 남짓의 분량으로 마무리한 것도 원작이 장편보다는 단편에 더욱 잘 어울리는게 아니었나 싶은 저의 생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고요.
또 포와로 하면 떠오르는 2명의 배우, 피터 유스티노프와 데이빗 서쳇이 모두 등장하는 것도 팬으로서는 아주아주 반가운 부분이었습니다. 피터 유스티노프야 그렇다 쳐도 데이빗 서쳇의 까칠한 제프경감이라니!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기는 합니다. 가장 아쉬운 점은 "멍청한 금발미녀"로 보이지만 사실은 나름 유쾌한 팜므파탈인 제인 윌킨슨역의 페이 더너웨이였어요. 영화를 보기 전에는 적역이라 생각했지만 영화에서는 <차이나타운>에서의 압도적인 모습과는 다르게 너무 많이 늙은 모습이더군요. 또 애시당초 금발이 아니라는 것도 배역에 잘 어울리지 못하는 부분이었다 생각됩니다. 연기는 좋았지만...

(많이 늙으신 페이 누님. 눈물납니다. ㅠ.ㅠ)

그리고 깔끔한 각본은 좋았지만 마지막의 추리쇼에 이어지는 결말은 너무 허탈했어요. 소설이나 영화나 결국 결정적 증거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너무 쉽게 패배를 인정한다는게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원작보다 괜찮았기에 별점은 2.5점. 이 작품만큼은 원작보다는 이 영화 쪽을 권해드리고 싶네요.

2011/06/04

13인의 만찬 - 애거서 크리스티 / 유명우 : 별점 2점

13인의 만찬 - 4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해문출판사
유명 여배우이자 에지웨어 경의 아내로 이혼에 관련된 스캔들에 휩싸여 있는 제인 월킨슨은 포와로에게 자신의 이혼을 도와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나 의외로 에지웨어 경은 이미 6개월전 이혼을 승낙했다고 전하고 그 뒤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제인이지만 범행 시간에 13명이나 참석한 만찬회에 있었다는 것이 증명되고 사건은 미궁에 빠지는데...

간만에 여사님 책을 한권 잡고 읽게 되었네요. 탐정은 포와로, 조수는 헤이스팅스, 그리고 의뢰인이자 사건의 핵심은 금발 미녀 여배우라는 드림팀스러운 조합의 작품이죠.

일단 좋은 점부터 이야기하자면 "범인은 누구인가?"라는 후더닛물로는 의외의 진상 덕에 괜찮은 점수를 받을만 한 작품이었어요. 끝까지 꼬아놓은 구조와 다양한 용의자들을 적재적소에 삽입하여 독자를 혼란에 빠트리는 것 역시 거장의 풍모를 물씬 느낄 수 있고요. 제인 월킨슨은 유머러스한 팜므파탈이라는 점에서 현대적이면서도 독특해서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사님 작품치고는 실망스러운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이유는 핵심 트릭의 설득력이 너무 많이 떨어졌기 때문이에요. 독자의 의표를 찌르는 발상 자체는 괜찮았지만 만찬회에서 정체가 드러났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거든요. 무엇보다도 지위와 명성이 있는 여성이 도박에 가까운 행동에 운명을 건다는 것은 말도 안돼죠. 알리바이만 확실히 했으면 됐을 것을 자기 자신을 드러내가며 저택에 들어간 이유도 설명되지 않고요.
또 사건 해결에 핵심이 되는 "패리스 - Paris" 라는 단서도 기발하고 재미있기는 하나 이 정도에서 끝냈으면 좋았을 것을 괜히 살인을 한번 더 일으키는 등 좀 질질 끄는 맛이 강한 것도 아쉬웠어요. 소소한 디테일 (예를 들면 코안경이라던가) 역시도 그냥 작품을 길게 늘이는 역할만 할 뿐 그닥 중요한 단서가 된다던가 하지 않는 것도 별로였고요. 이러한 디테일들은 결정적인 증거가 없는 만큼 범인을 옭아매기는 쉽지 않았을 거라는 점에서 - 제프 경감이 고문이라도 하지 않는 바에야 - 여러모로 단편용 아이디어를 무리하게 늘린 느낌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 워낙 많은 작품을 쓰신 여사님이시기에 그 작품들이 다 걸작일 수는 없다는 것을 심정적으로 이해는 하지만 독자로서 기대치가 항상 높은 작가라 다른 작가들 작품에 비하면 평가가 좀 박하게 - 한 0.5점은 더 깎는 것으로 - 채점된 것 같네요. 워낙에 제가 좋아하는 작가이니만큼 저승에서도 박정한 평가를 너그러이 용서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덧 : 조사해 봤는데 피터 유스티노프가 포와로 역을 소화한 영화가 출시되어 있더군요! 페이 더너웨이가 제인 월킨슨 역을 맡은 것 같던데 나름 적역이라 생각됩니다. 소설은 좀 실망스러웠지만 영화는 꼭 구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