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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6

누명 - 애거서 크리스티 / 이가형 : 별점 2.5점

누명 - 6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해문출판사


부유한 자선사업가인 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쟈코 아가일은 감옥에서 죽었다. 그리고 2년 뒤, 지질학자 아서 캘거리는 아가일 가문을 방문하여 살해 당시 쟈코의 알리바이를 증명했다. 하지만 당시 어머니를 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아가일 저택에 거주하던 가족들 뿐이었다. 내놓은 자식이었던 쟈코가 유죄판결을 받은 것을 당연시 여기던 가족들은 누가 진범이냐를 놓고 큰 충격과 의심, 공포에 빠지게 되는데...

지난 주부터 저만의 애거서 크리스티 섭렵이 이어지고 있네요. 이번에 읽은 작품은 "누명"입니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직접 선정한 자신의 작품 베스트 10에 들어가는 작품입니다. 사실 완독한 것은 며칠 전으로 리뷰 글을 다 써 놓았었는데, 편집 버튼 누른 뒤 알 수 없는 버그가 발생해서 다 날아갔네요. 망할 에버노트.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씁니다.,, 리뷰 내의 오류나 텐션이 떨어지는 것은 다 에버노트 탓입니다...

이 작품은 1958년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여사님 작가 인생의 비교적 후반기라 할 수 있죠. 그래서 작중에 폭스바겐 비틀과 스푸트니크가 언급되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단순한 배경 뿐만이 아니라, 여사님의 유명 시리즈 탐정이 등장하지 않는 등 전체적으로 이색적인 부분이 많이 보입니다. 여러모로 원숙기를 넘어선 작가의 여유같은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여사님의 전공인 전통 본격 추리물보다는, 패트리시아 하이스미스 스타일의 심리 서스펜스 스릴러 성향이 엿보이는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미 해결된 것으로 보였던 과거의 사건을 다시 끄집어 낸 뒤, 가족 중 누가 살인범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의 증폭되는 오해와 증오 등 복잡한 심리 묘사가 주로 펼쳐지는 덕분입니다. 이러한 묘사를 뒷받침하는, 촘촘히 짜여진 가족 구성원들의 설정도 충분히 설득력있고요. 그래서 아주 재미있게,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단순한 심리 드라마는 아니며 여사님 명성에 걸맞게 추리적으로도 특출난 부분이 있습니다. 앞선 여러가지 복선들, 예를 들어 자코의 중년 여성 대상 사기 행각이나 비밀 결혼 같은 별것 아닌듯한 정보가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범인의 정체와 진상도 놀라운 점이 있고요. 본격 추리물을 좋아하는 팬들도 즐길거리가 많은 편이에요.

하지만 쟈코가 유죄 판결을 받고나서 사망할 때까지, 6개월 동안의 수감생활 중 왜 모든 것을 사실대로 밝히지 않았는지가 설명되지 않은건 옥의 티입니다. 심리 묘사가 중요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중반 이후에는 헤스터의 심리 묘사에만 너무 치우치는 것도 문제고요. 심리 묘사의 디테일도 부족할 뿐더러, 가족 구성원 개개의 심리 묘사는 진범의 심리를 건드릴 수 없기에 깊숙이 진행할 수 없다는 한계가 명확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건을 게임처럼 생각해서 장난스럽게 접근하던 필립 듀란트의 비중이 큰 것은 작품을 지루하게 만듭니다. 게다가 필립 듀란트가 밝혀낸 진상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관절 이 친구는 뭘 위해서 등장해서 기웃거리다 죽어버렸는지 알 수가 없네요. 뭔가 하긴 한 것 같은데 죽어서도 뭘 했는지 밝혀지지 않으니 정말로 안습한 캐릭터랄까요. 그 외에 탐정역의 아서 캘거리의 활약이 좀 뜬금없었고, 빅토리아 시대의 향취가 느껴지는 해피엔딩은 시대에 걸맞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긴장감넘치는 심리묘사가 계속 이어졌더라면 대단한 걸작이 되었을텐데 앞서 언급한 한계가 발목을 잡은 느낌이에요. 그래도 고전 황금기 이후 현대화된 정통 본격 추리물과 심리 스릴러의 가교 역할을 하는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추천드립니다.

덧붙이자면, 사실 이 작품은 오래전 TV에서 영상화된 작품을 먼저 접했었습니다. 아주 재미있게 감상했던 기억이 나네요.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1인칭 심리 묘사를 다루면서도 그 중에 범인이 있는 작품이라면, 아무래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영상물이 더 어울리는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영화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 작품인 것 같은데 도널드 서덜랜드의 캘거리 박사, 페이 더너웨이의 레이첼 아가일, 크리스토퍼 플러머의 레오 아가일이라는 화려한 캐스팅이 인상적이라 다시 구해보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페이 더너웨이의 레이첼 아가일이라.... 이 아줌마 의외로 크리스티 영화에 많이 나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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