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명 -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가형 옮김/해문출판사 |
지난 주부터 이어진 저만의 애거서 크리스티 섭렵. 이번에 읽은 작품은 <누명>입니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직접 선정한 자신의 작품 베스트 10에 들어가는 작품이기도 하죠. 사실 완독한 것은 며칠 전으로 리뷰 글을 다 써 놨었는데 편집 버튼 누른 뒤 알 수 없는 버그가 발생해서 다 날아갔네요. 망할 에버노트.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씁니다. 쩝. 리뷰 내의 오류나 텐션이 떨어지는 것은 다 에버노트 탓으로 알아주세요.
어쨌건 이 작품은 1958년에 발표된 작품입니다. 여사님 작가 인생의 비교적 후반기라 할 수 있죠. 그래서 작중에 폭스바겐 비틀과 스푸트니크가 언급되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단순한 배경만이 아니라 시리즈 탐정이 등장하지 않는 등 전체적으로 이색적인 부분이 많이 보이는 것 역시 원숙기를 넘어선 작가의 여유같은게 느껴졌고 말이죠.
특히나 여사님의 전공인 전통 본격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패트리시아 하이스미스 스타일의 심리 서스펜스 스릴러 성향이 엿보이는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현재의 사건이 아니라 이미 해결된 것으로 보였던 과거의 사건을 다시 끄집어 낸 뒤 가족 중 누가 살인범일지도 모르는 상황에서의 증폭되는 오해, 증오 등 복잡한 심리묘사가 주로 펼쳐지기 때문인데 이러한 묘사를 뒷받침하는 촘촘히 짜여진 가족 구성원들의 설정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서 아주 재미있게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네요.
그러나 단순한 심리 드라마는 아니며 여사님 명성에 걸맞게 추리적으로도 뛰어난 작품이기도 합니다. 앞선 여러가지 복선들, 예를 들어 자코의 중년 여성 대상 사기행각이나 비밀결혼 같은 별것 아닌듯한 정보가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범인의 정체와 진상도 놀라운 점이 있기 때문에 본격 추리물을 좋아하는 팬들도 즐길거리가 많은 편이죠.
하지만 쟈코가 유죄판결을 받고나서 사망할 때 까지의 6개월 동안의 수감생활 중 왜 모든 것을 사실대로 밝히지 않았는지가 설명되지 않는 것은 옥의 티이며 심리묘사가 중요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중반 이후에는 헤스터의 심리묘사에만 너무 치우친 감이 있다는 것은 아쉽더군요. 심리 묘사의 디테일도 부족하지만 가족 구성원 개개의 심리묘사로 깊이 들어갈 수록 진범의 심리를 건드릴 수는 없다는 한계가 너무 명확했어요.
그리고 사건을 게임처럼 생각해서 장난스럽게 접근하던 필립 듀란트의 비중이 큰 것은 작품을 지루하게 만든 감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필립 듀란트가 밝혀낸 진상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대관절 이 친구는 뭘 위해서 등장해서 기웃거리다 죽어버렸는지 알 수가 없더군요. 뭔가 하긴 한 것 같은데 죽어서도 뭘 했는지 밝혀지지 않으니 정말로 안습한 캐릭터랄까요.
그 외에 탐정역의 아서 캘거리의 활약이 좀 뜬금없고 빅토리아 시대의 향취가 느껴지는 해피엔딩은 시대에 걸맞아 보이지 않았고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긴장감넘치는 심리묘사가 계속 이어졌더라면 대단한 걸작이 되었을텐데 앞서 언급한 한계가 발목을 잡은 느낌이에요. 그래도 고전 황금기 이후 현대화된 추리정통 본격 추리물과 심리 스릴러의 가교 역할을 하는 작품으로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군요.
덧붙이자면 사실 이 작품은 오래전 TV에서 영상화된 작품을 먼저 접했었는데 이 작품처럼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1인칭 심리묘사를 다루면서 그 중에 범인이 있는 작품이라면 아무래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영상물 쪽이 더 적합했던게 아닌가 싶네요. 어린 마음에도 무척 재미있게 감상한 기억이 나거든요. 영화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 작품인 것 같은데 도널드 서덜랜드의 캘거리 박사 / 페이 더너웨이의 레이첼 아가일 / 크리스토퍼 플러머의 레오 아가일이라는 화려한 캐스팅이 인상적이라 다시 구해보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페이 더너웨이의 레이첼 아가일이라.... 이 아줌마 의외로 크리스티 영화에 많이 나왔네요?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