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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9

0시간으로 - 애거서 크리스티 / 안동림 : 별점 3점

0시간으로 - 6점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안동림 옮김/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아래 리뷰에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표제작 외에 <포켓에 호밀을>까지 총 두 편의 중편이 수록된 동서추리문고 판본입니다. "13인의 만찬"을 읽은 뒤, 갑자기 생겨난 크리스티 여사에 대한 존경심의 발로로 읽게 되었습니다.

"0시간으로"는 시골 노부인의 별장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다룬 여사님 특유의 후더닛물입니다. 서로의 악의와 증오가 교차하는 전반부, 그리고 사건 후 해결 과정을 그리는 후반부로 나뉩니다.

일단 배틀 총경이 활약한다는 점이 굉장히 특이했습니다. 배틀 총경은 "4개의 시계" 등에서는 우직하고 끈기 있는 형사로 탐정의 조력자 역할이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경험에 기반한 끈기 있는 수사 능력에 더해 감수성과 자애로움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벨기에인 탐정 포와로를 들먹이며 단서를 찾아내는 모습에서는 ‘과연 사람은 배우면서 성장하는 동물이구나’ 싶은 생각도 들더군요.

그러나 깔끔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후반부의 해결 과정은 약간 아쉬웠습니다. 전혀 다른 장소에 있던 제3자가 우연히 등장해 사건의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는 급작스러운 전개도 별로였고, 단지 정신병으로 치부된 살인의 동기도 그다지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돈도 많고 유명한 스포츠 스타가 전처에게 집착한다는 설정은 이해하기 어려웠으니까요. 이혼 후 더 예쁜 아내를 얻어 잘 살고 있으면 그게 복수지, 뭐 이리 어렵게 일을 꾸몄나 싶었습니다. 교수대에 올라가는 모습을 원했다면 차라리 직접 죽였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고요.

또 후더닛물의 공통적인 단점이기도 한데, 모든 등장인물을 치우침 없이 공평하게 다루다 보니 초반부 전개가 약간 늘어지는 감이 있었습니다. 배틀 총경이 ‘눈빛이 어쩌고’ 하면서 수사를 진행하는 것도 딱히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따뜻한 배려심의 소유자 배틀 총경의 모습과 함께, 급작스럽기는 하지만 나름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는 점에서 별점 2점, 추리적으로 완전범죄에 가까웠던 범인의 계획과 독자에게 공정하게 단서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0.5점을 더해 별점은 2.5점입니다.

두 번째 작품 "호밀 속의 죽음"은 독특한 점이 많았던 "0시간 속으로"와는 달리 전형적인 여사님 작품입니다. 콩가루 대저택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마더 구스 동요를 바탕으로 한 살인사건이라는 설정이 딱 그러합니다. 작품도 중박 이상은 되는 편이라, 용의자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교묘하면서도 공정하게 독자와의 두뇌싸움을 펼치는 고전 정통 추리물의 미덕이 아주 잘 살아 있습니다. 또 미스 마플 팬이라면 시리즈에서 가끔 언급되곤 했던 글래디스 마틴이라는 하녀가 등장하는 것도 볼거리였습니다.

그러나 욕심이 좀 과하긴 했습니다. 저택의 왕고모님이 뭔가 아는 척하면서 던지는 이야기들이 모두 진상을 흐리는 별 볼 일 없는 내용이라는 것은 그렇다 쳐도, 마더 구스 동요를 끌고 들어온 것은 확실히 무리였어요. 최초의 티티새 장난은 범인의 계획과는 전혀 상관없는 우연이었다는 점, 그리고 범인이 과거 티티새 광산주의 딸이 어떤 식으로든 복수에 관여했을 것이라 생각한 이유가 전혀 설명되지 않기에, 그냥 흥미거리 소재에 머물고 맙니다.

범인이 자신의 범죄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희생양으로 삼을 만한 다른 용의자가 딱히 없었다는 것도 완전범죄라는 측면에서는 감점 요소였어요.

그래도 트릭과 함께 사건의 진상은 상당히 놀랍고 동기도 나름 합리적이기에 만족합니다. 마지막 글래디스의 편지도 심금을 울리는 적절한 에필로그였고요. 별점은 3.5점입니다.

그래서 평균 별점은 3점입니다. 두 작품 모두 아주 뛰어난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어렵지만, 중박 이상은 되고 즐길 만한 요소가 많기에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한 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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