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막의 비극 - ![]()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강남주 옮김/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은퇴한 유명 배우 찰스경이 주최한 파티에서 교구목사 배빙턴이 의문사했다. 찰스경은 살인 사건이라고 주장했지만 아무런 동기가 없었다. 그리고 몇 개월 뒤 비슷한 상황에서 찰스경의 친구인 의사 바솔로뮤경이 독살당했고, 찰스경은 친구 새터드웨이트, 그를 흠모하는 아가씨 에그와 함께 사건 진상 추적에 나섰다. 그런 그들 앞에 조력자로 에르큘 포와로가 나타나는데...
에르큘 포와로 시리즈로 1935년에 발표된 23번째 작품입니다. 크리스티 여사의 필력이 가장 왕성한 시기에 쓰인 작품이죠.
연이어 벌어지는 세 건의 독살 사건을 그리고 있지만, 정교한 트릭이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첫 번째와 두 번째 사건에서 "독살된 피해자가 마시던 잔에는 독이 없었다!"라는 상황을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트릭을 사용하여 구현했다는건 만족스러웠습니다. 무엇보다도, 사건의 본질을 흐리게 하기 위해 살인극을 이용했다는 아이디어가 인상적이었어요.
그러나 작품의 핵심인 '집사 엘리슨의 정체'의 해답이 변장이었다는건 실망스러웠습니다. 직전에 읽은 "13인의 만찬"보다는 현실성이 더 있긴 했지만,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가 신분을 감추고 몇 주 동안 다른 사람인 척한다는건 설득력이 부족했어요. 특히 변장까지 해 가며 실행한 살인극의 무대가 그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지들 앞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개연성이 떨어지고요. '손님들은 집사나 하인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심리적 트릭이 결합되었을 수는 있지만, 몇 주 동안 함께 생활한 동료 하인들까지 속일 수 있었다는건 아무리 명배우라도 무리한 설정이 아니었나 싶어요. 한 명에게는 정체를 들키기까지 했으니, 더욱 설득력이 떨어지지요.
치밀한 계획과 잔인한 수법에 비해 범인의 동기가 약하다는 점도 아쉬웠습니다. 정신병원에 감금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범행의 주된 동기였지만, 주변 인물들 — 특히 사람을 관찰하는 것이 취미라는 새터드웨이트조차 - 이러한 성향을 눈치채지 못했다는건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범인의 계획과 살인의 동기가 지나치게 단순하게 마무리된 점도 문제고요.
그 외에도, 찰스 경의 본명에 대한 정보 역시 설득력이 부족했고, 탐정을 흉내 내며 사건을 키운 이유도 명확하지 않았습니다.(만약 첫 번째 사건 없이 두 번째 사건만 저질렀다면, 극작가 윌슨 양에게 정체가 드러나긴 했겠지만 포와로의 개입은 막을 수 있었겠죠.) 또한, 범죄를 뒤집어쓸 희생양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범인이 포와로를 가장 먼저 처리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큰 헛점입니다.
헤이스팅스에 비하면 너무 신사인 척하는 새터드웨이트도 비중에 비해 하는 일이 없어서 왜 등장했는지 모를 지경입니다. 새터드웨이트는 포와로 시리즈의 조력자 역할보다는 "할리 퀸" 시리즈 쪽이 더 어울리는 캐릭터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론적으로, 평작 수준의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같은 해 발표된, 비슷한 아이디어가 사용된 "ABC 살인사건"보다 완성도가 낮고, 이야기와 전개도 다소 평이합니다. 형제작이라 불러도 될 만큼 유사한 작품이지만, "ABC 살인사건"이 훨씬 더 정교하고 매력적인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이 작품보다는 "ABC 살인사건"을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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