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여름언덕 |
'이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추리소설 중 하나인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추리 - 정신 분석 에세이입니다. 포와로가 해석 망상에 사로잡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통해 알려진 것과 다른 범인을 찾아내고, 포와로와 진범, 그리고 셰퍼드 의사와의 관계를 재조명합니다.
우선, 세계적인 명탐정 포와로를 정신분석학적으로 비평한 에세이는 처음이라 굉장히 신선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포와로의 추리는 병적 망상의 형태인 “해석 망상”에 근거한다는 점을 정신분석학적으로 자세하게 설명해 줍니다. ‘단서’를 우선시하고, ‘단서’에서 자신의 직관이 옳음을 확인하는 것이 망상 환자의 사고 방식의 핵심이라고 하는데, 이는 상당히 설득력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정하는 단서를 무시하고, 오히려 사소한 몇 가지 단서를 선별하여 강박적으로 집착하며, 자신의 추리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사고 방식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러고 보면, 탐정이라는 인물들은 이 책에서 이야기하듯 ‘예언자’ 같은 사기꾼이나 망상 환자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헤이스팅스 - 셰퍼드라는 포와로의 보조자이자 화자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주목할 만합니다. 저자는 이들의 관계가 단순한 명콤비가 아니라, 사실은 ‘폭력성’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포와로가 파트너를 무시하고, 스트레스를 푸는 대상으로 삼으며, 이를 사도마조히즘적인 증오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결국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은 포와로가 폭력성을 바탕으로 한 해석을 통해 파트너를 자살로 몰고 가는, ‘해석에 의한 살인 이야기’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저자는 이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포와로의 추리를 완전히 버리고, 자신만의 새로운 논리를 통해 로저 애크로이드를 살해한 진범을 밝혀냅니다. 여러 추리 과정을 거쳐, 모든 단서를 만족시키고 동기까지 합리적으로 부여한 결과, 지목된 인물은 바로 캐롤라인 셰퍼드였습니다. 짧은 리뷰에서 그 모든 과정을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상당히 논리적이고 명쾌한 결론이었습니다. 추리적인 요소만 따져도 높은 점수를 받을 만했습니다.
이처럼 유명한 작품을 다시 읽고, 새로운 해석을 통해 또 다른 결론을 도출하는 책의 구성도 흥미로웠지만, 정신분석학과 결합되면서 더욱 합리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외에도,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작품을 정신분석학적으로 해석하며 그녀만의 추리소설 작법을 분석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 놓치기 아까운 요소가 많았습니다. 다만, 프랑스어 원서를 번역한 탓인지 ‘포와로’가 아닌 ‘푸와로’로 표기되어 있으며, 원작의 제목도 프랑스어로 쓰여 있다는 점이 조금 이질적으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인 번역은 깔끔한 편이었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4점. 고전 추리소설, 특히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애독하는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볼 가치가 있습니다.
크리스티 여사의 추리소설 작법 3가지
- 위장의 원리 - ‘은폐’를 통해 진실을 식별하지 못하게 하는 것.
- 감추어져 있다 하더라도 독자가 그 진실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함.
- 전환 - 거짓이 독자의 주의를 끌도록 포장되는 것. 독자의 올바른 사고를 방해함.
- 전시 - 진실을 낱낱이 기록하면서도 보이지 않게 만들어 버리는 것.
- 살인범이 살인범 뒤에 감춰져 있는 것.
- 범인을 보란 듯이 드러내면 오히려 결백하다고 생각하는 원리.
‘화자의 악의’의 종류
- 화자 뒤에 범인이 숨어있는 것.
- 생략에 의한 거짓말로 환상을 만들어 내는 것.
- 화자가 어쨌건 독자를 속이고자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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