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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6

데드트릭 1,2 - 카린펜 (華倫変) : 별점 3점


나나모토서에 근무하는 순사장 이치모리 잇페이, 과학수사 연구소 수사관 도쿠가와 도쿠코, 그리고 변태 명탐정인 경시청 수사1과 경부 하다케야마 미치아키가 나나모토서 관할구역에서 발생한 기상천외한 범죄사건을 수사하여 해결하는 정통파 수사 추리만화입니다. 국내 소개된 작품은 아니고 원서로 구해봤죠.

슥 한번 훝어봤을때는 작화나 전개가 왠지 어설픈 부분이 많이 보여서 크게 기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권을 읽었을 때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평범한 추리만화 이상의 완성도를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게 추리강국 일본의 힘이겠죠?
범인이 앞부분에서 살짝 드러나는 도서 추리물 형태임에도 진상트릭은 끝까지 숨겨놓고 수사가 중심이 되는 본격 추리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도 제법이지만 독자가 추리의 과정에 동참할 수 있는 만큼의 정보와 단서를 수사과정과 맞물려 제공하는 전개방식 역시 정통 본격 추리물에 걸맞는 수준이라 만족스러웠어요. 곳곳에서 느껴지는 추리라는 장르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더불어 과학수사에 대한 세밀한 자료조사 역시 돋보이는 부분이었고요.

작화, 컷 구성 등 만화적인 완성도가 떨어지며 캐릭터들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한 점 (주역인 도쿠코조차 전개에 사실 큰 필요가 없습니다), 1권에 비해 2권은 완성도가 현저히 낮은 수준이라는 것은 아쉬우나 기대 이상의 신선한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던 작품이었습니다. 전체 평균 별점은 3점입니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작가라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보았더니 카린펜 (華倫変 かりんぺん)은 에로망가 출신 작가로 5권의 작품만 남기고 2003년 급성심부전증으로 사망했다고 하네요. 젊은 나이에 사망한 고인의 명복을 빌며,.국내 출간은 어려워보이기도 하는데 1권 정도라도 소개되면 좋겠습니다.

1권 : <연속자궁 강탈 살인사건>
나나모토 고교에서 여고생이, 그리고 자택에서 나나모토 고교 양호교사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두 사체 모두 자궁이 적출된 상태였고 경찰은 나나모토 고교에서 발견된 육망성 표식 등을 근거로 '악마숭배'의식이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 추정한다. 그래서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것은 왕따로 저주와 주술 등에 취미를 가지고 있던 2학년생 츠지모토 가즈야였다.

제목 그대로 '자궁 적출'이라는 잭 더 리퍼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연쇄살인극이 펼쳐집니다. 그러나 연쇄살인극이 단지 악마 숭배나 잔혹함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진상을 내포하고 있으며, 용의자에게 사건을 뒤집어 씌우기 위한 주도면밀한 계획이 잘 갖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그야말로 '공정하게 독자를 속이는' 크리스티적인 분위기가 잘 녹아있거든요.
또한 진상 자체도 잭 더 리퍼 사건의 가설 중 하나를 채용하고 있고, 탐정역인 하다케야마가 진범을 찾아가 이런저런 이야기로 진상을 풀어내는 결말은 형사 콜롬보를 연상케하는 등 추리 애호가를 사로잡을만한 요소가 많습니다.
증거를 제시하라는 범인 앞에서 당시 범인의 통화녹음을 듣고 주변 소음으로 위치를 추적한 뒤 '공중전화'라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 공중전화에서 범인의 지문이 묻은 동전을 찾아낸다던가 하는 과학에 기반한 철저한 수사도 볼거리였고요.

과연 자궁 적출이라는 행위를 단시간에 처리할 수 있었을지에 대한 의문 등 설명이 부족한 부분도 있고, 작품과 어울리지 않는 유머 등으로 지나치게 길다는 점, 작화면에서 세련되지 못한 점이 아쉽지만 기대 이상의 재미를 선사하기에 별점은 3.5점입니다.

2권 : <도쿠코의 범죄>
연휴에 도쿠코에게 친구 미에가 찾아온다. 그녀와 술을 마시다 잠들어버린 도쿠코는 자신의 옷이 피에 젖어 있다는 것, 그리고 피로 물든 칼이 놓여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4일 후 다카이라는 청년이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었고, 도쿠코가 용의자로 지목되었다. 도쿠코 옷과 칼의 피가 피해자의 것이었고 그녀의 모발이 피해자 방에서 발견된 것!
도쿠코를 구하기 위해 이치모리는 하다케야마의 도움을 요청하는데...

도쿠코가 범인일리가 없기 때문에, 독자는 미에가 범인임을 확실히 알고 이야기를 읽기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미에는 피해자 사망 추정시각에 교통사고로 체포되었는데, 체포장소에서 범행장소까지는 차로 2시간이 걸려서 그녀는 범인일리 없다'알리바이 트릭을 어떻게 깰 것인지에 대해 자연스럽게 촛점을 맞추게 되고요.

그러나 이 트릭은 특별한 조작이 있던건 아니었고, 경찰 수사의 헛점으로 철벽의 알리바이가 생겼다라는 설정이라 좀 별로였습니다.
오히려 도쿠코가 범인이 아님을 증명하는 방식이 단순한 추리가 아니라, 철저하게 과학적이라는게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발의 상태와 헤어 스프레이의 성분조사를 통한 오류 증명 - 현장에서 발견된 모발은 두종류의 스프레이가 뿌려져 있기에 같은날 떨어진 것으로 볼 수 없다 - , '곤약'은 위에서의 소화시간이 길기 때문에 사망시간 추정할 때 감안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문(耳紋)의 채집을 통해 범인 미에가 현장에 있었다고 증명하는 것 모두가 철저한 과학수사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이런 류의 다른 컨텐츠들에 못지 않은 수준으로 말이죠.

1권과 마찬가지로 설정과 내용에 비하면 지나치게 긴 분량은 재미를 반감시키며, 추리적으로는 앞서 말했듯 경찰조사의 헛점으로 우연히 발생하는 알리바이가 핵심이고, 범인의 동기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점은 감점 요소이지만 기본적으로 평작은 된다고 생각되네요. 제대로 된 편집자가 붙어서 보강했더라면 아주아주 좋은 작품이 되었을텐데 조금 아쉽기도 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이치모리군의 도전장>
이치모리가 자신이 신참때 해결한 사건을 도쿠코에게 풀어보라고 소개하는 이야기. 밀실에서 소녀가 교살된 시체로 발견되는데 열쇠를 가진 사람은 경비원 뿐이었고 처음에 아이 어머니와 조사할 때 방은 비어있었다는 것. 다시 조사할 때 시체를 발견하였으나 경비원은 항상 아이 어머니와 함께였다. 범인은 경비원인데 어떻게 살해했나? 라는 문제. 단서는 처음 시체 발견 시에는 모포가 뒹굴고 있었으나 구급차를 부르고 돌아왔을 때에는 모포가 사라졌다는 것.

미스터리 매니아 이치모리의 추리소설담이 펼쳐지는 소품으로 쩌리 이치모리가 낸 문제답게 추리적으로는 별볼일 없습니다. 작중 토쿠코가 이야기하듯 흔해빠진 거울트릭에 불과하니까요.

그러나 미스터리 매니아 이치모리의 장황한 이야기가 재미를 주는 작품으로 특히나 본격물은 프로레슬링, 사회파는 아마레슬링이라고 비유하는게 기억에 남네요. 아마레슬링이 각본없는 진정한 승부지만 작위적인 프로레슬링이 훨씬 재미있다는 논리죠. '바보같지만 재미있어!'랄까요.

또 사건의 동기와 이후 이야기를 작위적으로 짜맞추는 이치모리의 모습에서 최근 추리만화를 풍자하는 느낌이 풍기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별점은 2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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