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26/06/21

참교육 (2026) - 홍종표 : 별점 2.5점

교권 침해와 학교 현장의 여러 문제를 교권보호국이 해결한다는 내용의, 요새 한창 인기인 10부작 TV 드라마입니다. 넷플릭스로 감상했습니다. 

가장 큰 장점은 제목 그대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교권 침해에 대한 참교육입니다. 교권 침해 사례들 대부분이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들이라는 점도 몰입을 돕습니다. 실제로 저렇게 처벌받는다면 좋겠다는 공감을 이끌어내기 때문입니다. 한 화에 하나의 사건으로 이루어진 구성도 좋아요. 부담 없이 볼 수 있고, 전개도 빠릅니다. 

참교육의 대부분은 나화진의 무력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시험지를 빼돌리던 교사를 응징하는 에피소드나 진상 학부모를 상대하는 에피소드 등 나름대로 머리를 쓰는 작전들도 펼쳐지는데 이 역시 꽤 볼 만 합니다.

캐스팅도 좋습니다. 특히 나화진 역의 김무열이 돋보입니다. 강한데다가 항상 준비되어 있어서 언제나 여유가 넘치는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는 덕분입니다. 봉근대 사무관도 인상적입니다. 언더커버 작전과 정보 수집에서 활약하는데, 교권보호국이 단순히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조직만은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주거든요. 

다만 뒤로 갈수록 사건 해결 방식이 비슷해지는 점은 아쉽습니다. 결국 핵심은 나화진의 무력으로 정리되는 경우가 많은 탓입니다. 참교육도 개인 정보를 확보한 뒤, 그걸 활용하여 피해를 주는 식으로 선을 넘는 부분은 좀 불편했어요. 아무리 대상이 학폭을 저지른 범죄자라고 하더라도, 이건 또 다른 가해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메인 빌런인 조규철도 애매합니다. 머리가 좋은 사이코패스라는 설정은 있지만, 그래봤자 고등학생일 뿐입니다. 국가 기관을 상대로 위협이 될 수는 없어요. 조직이나 무력도 별 볼일 없고요. 여러모로 빌런으로서의 존재감은 약합니다.

그리고 주연 배우들 캐스팅은 대체로 좋지만, 학생 역할의 조연 배우들은 고등학생이나 중학생으로 보기 어려운 배우들이 너무 많더군요. 특히 6화의 촉법소년 중학생들은 거의 30대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좀 더 어린 배우들을 캐스팅할 수는 없었을까요?

그래도 빠른 호흡으로 쉽게 볼 수 있는 속 시원한 킬링 타임 액션물로는 괜찮았습니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6/06/20

케이트 (2021) - 세드릭 니콜라스-트로얀 : 별점 1.5점

어린 시절부터 킬러로 키워진 케이트는 일본 야쿠자 두목 키지마 암살에 실패한 뒤, 치명적인 독을 먹었다. 딱 하루의 생명이 남은 상황에서, 케이트는 자신에게 독을 먹인 사람을 찾아 복수하기 위해 나섰다. 알고보니 이는 키지마의 자리를 노리는 렌지의 음모였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액션 영화입니다. 요새 운동할 때 액션 영화만 찾아 본 탓인지, 알고리즘에 의해 추천작으로 표시되었길래 보게 되었네요.

케이트가 키지마의 행방을 쫓는 초, 중반부에서 펼쳐지는 액션들은 볼 만합니다. 도쿄가 무대이기 때문인지 총기 액션보다는 몸과 몸이 부딪히고, 칼부림이 난무하는 날것 액션이 중심인데 여성 주연 액션물치고는 속도감과 타격감이 괜찮은 편입니다. 타격, 단검, 총기, 자동차 추격전 등 액션의 종류도 다양하고요. 이를 처절하게 펼쳐내는 케이트 역의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 캐스팅도 괜찮습니다. 비교적 큰 체구가 묵직함을 살려주거든요. 덕분에 중반부까지는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아 소녀를 데려다가 킬러로 키운 스승과 소녀 킬러라는 설정, 스승이 결국 제자를 배신했다는 전개, 냉혹한 킬러가 어린 소녀와 우정을 나누며 변한다는 흐름 등 의외성이라고 찾아보기 힘든 지극히 뻔한 설정 투성이인데다가 케이트와 애니의 교감은 진부하고 설득력도 부족합니다. 애니 입장에서 케이트는 처음부터 자신을 위협한 인물입니다. 그런 상대와 한두 시간 함께 있었다고 해서 깊은 감정의 교류가 생긴다?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애니가 케이트에게 동경심 정도를 품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영화가 보여주려는 감정적 유대감을 느끼는 단계까지 나아가기에는 과정이 너무 빈약합니다.

음모의 구조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베릭이 렌지와 손을 잡고 키지마를 제거하려 했다고 해도, 키지마 암살이 실패했다는 이유만으로 렌지가 케이트를 독살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베릭 역시 렌지와 손을 잡고 무엇을 얻으려 했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어린 시절부터 키운 귀한 킬러만 잃은 셈이에요. 만약 베릭이 렌지의 독살 계획을 알았다면 렌지를 제거하는 편이 훨씬 자연스럽고, 몰랐다면 케이트의 복수 대상이 베릭으로 향하는 것도 애매해집니다. 적어도 베릭이 직접 독살을 지시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이는 복수극에서 가장 중요한 복수의 대상을 불명확하게 만듭니다. 케이트가 렌지를 증오하는건 이해할 수 있지만, 베릭이 최종적으로 단죄해야 할 대상이라는건 설명이 빈약하니까요. 

제일 큰 문제는 절정부입니다. 키지마와 손을 잡고 렌지의 본거지로 쳐들어가는 후반부는 앞서 보여준 장점마저 제대로 이어받지 못합니다. 초중반의 화려하고 거친 액션은 찾아보기 어렵고, 긴장감도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키지마와 렌지의 검술 대결은 뜬금없고, 케이트와 베릭의 일기토 역시 기대에 비해 허무합니다. 특히 케이트에게 총 한 발 맞고 죽어버리는 베릭의 최후는 최악에 가깝습니다. 우디 해럴슨이라는 배우를 기용해 놓고 이렇게 소모한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입니다. 액션 장면만 놓고 보면 어느 정도 볼거리는 있지만 한 편의 영화로 성립하는 이야기를 갖추지 못한 망작입니다. 굳이 본다면 액션 장면만 모아보는 쪽을 추천드립니다.

2026/06/19

스와이프 엄금 - 치넨 미키토 / 김은모 : 별점 1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밝은 미래를 위해 선배 야에가시가 부탁한 '도메키의 동네'라는 괴담 조사를 나섰다.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도메키의 피해자였던 아메치의 정보를 입수하여 도메키의 동네가 어디인지 알아냈지만, 현장 조사 후 나에게 '도메키'가 들러붙은걸 알게 되었다... 

한쪽에는 본문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휴대폰 앱 화면이나 관련 그림이 실려 있는 그림책에 가까운 단편입니다. "유리탑의 살인" 등으로 유명한 치넨 미키토의 신작으로 밀리의 서재를 통해 읽었습니다.

형식만큼은 휴대폰 중심의 이야기와 잘 어울립니다. 메시지, 위치 정보, 앱 인터페이스처럼 보이는 화면이 동일한 내용의 본문과 함께 펼쳐져서 독자가 화자와 똑같은 화면을 보는 느낌을 주는 덕분입니다. 

하지만 이외의 장점은 없습니다. 우선 괴담치고 무섭지 않은 탓이 가장 큽니다. "도메키의 동네"는 눈이 그려진 이미지 외에는 긴장감이 거의 없고, 도메키의 습격도 뻔합니다. 피해자들을 추적하는 매개체가 휴대폰이었다는 진상 역시 책의 형태와 도메키의 행태를 보면 쉽게 짐작되고요.

내용도 별게 없어요. 화자가 하는거라고는 앱에 표시된 내용을 확인하거나 검색하는게 전부입니다. 피해자인 아메치의 집을 찾아가 계정 정보를 얻는 정도를 빼면요.

처음에는 야에가시의 후배 가즈마가 화자였던걸로 보였지만, 사실 화자는 가즈마의 연인 루리카였다는 반전도 애매합니다. 교묘하게 서술 트릭을 쓴건 맞지만, 이 반전은 이야기와 별 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화자가 누구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어차피 가즈마와 루리카는 모두 죽거든요. 이래서야 그냥 서술 트릭을 활용한 깜짝쇼에 불과합니다.

그림도 아쉽습니다. 휴대폰 앱 화면처럼 꾸민 페이지는 형식과 잘 어울리는데 그 외의 일러스트는 영 별로에요. 분위기를 살리기는커녕 유치하게 보여 그렇잖아도 무섭지 않는 괴담으로의 가치를 더 떨어뜨립니다.

그래서 별점은 1점입니다. 독특한 편집 형식 하나를 제외하면 추천할 만한 부분을 찾기 어려운, 알맹이 없는 이야기를 일러스트로 포장했을 뿐인 망작입니다. 추천하지 않습니다.

2026/06/14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Season 2 : (7) 달콤한 커피의 뒷 맛

추리소설 속 커피는 대개 쓰고 진한 음료가 연상됩니다. 밤늦게 사건을 조사하는 탐정의 책상 위에 놓여 있거나, 피로를 쫓기 위해 마시는 각성의 음료처럼 등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커피의 쓴맛은 긴장감이나 고독한 분위기와도 잘 어울리고요.

하지만 커피가 언제나 블랙으로만 통했던 것은 아닙니다. 커피에 설탕을 넣는 습관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고, 우유나 크림을 더해 쓴맛을 줄이는 방식도 커피 문화 안에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으니까요. 커피에 데운 우유를 섞어 마시는 프랑스의 카페오레, 커피에 크림과 설탕을 더해 마시는 비엔나식 카푸치노처럼요. 오늘날 익숙한 카푸치노와 카페라테, 카페모카 역시 에스프레소에 우유와 거품, 초콜릿 등을 더해 커피의 쓴맛을 부드럽게 조절한 커피입니다. 여기에 바닐라 라테나 캐러멜 마키아토처럼 향과 단맛을 더한 음료까지 생각하면, 달콤한 커피도 엄연히 커피를 즐기는 오래된 방식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흐름을 생각하면, 추리소설 속에서 커피에 설탕이나 우유를 넣는 장면도 그리 이상할 것은 없습니다. 심지어 시간과 장소에 따라서, 설탕과 우유를 섞는게 커피를 마시는 익숙한 방식이었을 수 있습니다. "빙과"로 잘 알려진 고전부 시리즈의 "이제 와서 날개라 해도"에 나오는 이바라가 방문한 커피 맛집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가게에서는 주문할 때 우유와 설탕이 필요한지를 먼저 묻고, 필요하다면 각설탕 두 개를 내주고 우유는 커피에 미리 넣어 주거든요. 이는 요즘 기준으로 보면 조금 낯선 방식이지요. 보통은 손님이 직접 취향에 맞게 우유나 설탕을 넣으니까요. 하지만 이 작품을 통해, 이렇게 커피에 설탕과 우유를 더해 마시도록 준비된 곳도 있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아카가와 지로의 단편 "커피, 그리고 교수와 여대생"도 비슷합니다. 주인공 다케미야 교수는 집에서 직접 원두를 볶을 정도로 커피에 관심이 많은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 역시 커피를 마실 때 자연스럽게 설탕을 넣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설탕은 커피 맛을 망치는 첨가물이 아니라, 커피에 진심인 사람의 취향에 따라 커피를 완성하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보면 달콤한 커피는 생각보다 평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추리 소설에서도 달콤한 커피를 여러모로 활용하고 있고요.

첫 번째로는 강한 쓴맛과 단맛을 이용하는 경우입니다. 크리스티아나 브랜드의 단편 "잔 속에 든 독"에서 스텔라는 남편의 불륜녀를 모르핀으로 독살할 때 뜨겁고 진한 커피를 선택합니다. 설탕을 듬뿍 넣어서요. 이는 친절이나 취향이 아닙니다. 커피의 쓴맛과 설탕의 단맛이 모르핀의 이상한 맛을 덮어 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설탕 때문에 스텔라는 콕크릴 경감에게 덜미를 잡히고 맙니다. 단맛은 독을 감추는 것과 동시에 범행을 드러내는 단서가 된 셈입니다.

두 번째 사례는 단 맛이 아니라, 달콤하게 만든 형태가 트릭으로 사용된 경우입니다.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단편 "키리가미네 료와 보이지 않는 독"에 등장하는 모카치노처럼요. 모카치노는 초콜릿 시럽을 섞고, 휘핑크림을 얹고, 초콜릿 가루를 뿌린 뒤 시나몬 스틱까지 꽂아 내는 음료로 커피라기보다는 디저트에 가깝습니다. 작품 속에서도 그 모습은 컵에 담긴 케이크처럼 묘사될 정도지요.

그런데 카도쿠라 할아버지가 모카치노를 마시다가 독살당할 뻔합니다. 당연히 의심은 모카치노로 향하지요. 초콜릿 시럽, 휘핑크림, 초콜릿 가루, 시나몬 스틱 등 여러가지 재료가 들어간 음료라면 달콤한 맛과 향이 이상한 냄새나 쓴맛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게 만들 것 같으니까요. 하지만 정작 커피와 시나몬 스틱 어디에서도 독은 검출되지 않습니다. 

다행히 결국 할아버지가 한쪽 손을 다쳤다는게 열쇠가 되어 진상이 밝혀집니다. 범인은 모카치노의 레시피를 활용하여 커피에 독을 넣지 않고 독을 먹였던 겁니다. 단순한 블랙 커피였다면 성립하기 어려웠을 트릭이라서, 특별한 커피 레시피가 수수께끼, 트릭의 형태가 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사례는 미나토 가나에의 "리버스"에 등장하는 달콤한 벌꿀을 넣은 커피입니다. 이 커피는 죽은 친구 히로사와를 떠올리게 하는 중요한 매개이자 반전의 핵심 역할을 합니다. 히로사와는 단것을 좋아하던 친구였고, 특히 벌꿀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주인공 후카세가 카페에서 벌꿀을 커피에 넣어 마시는 장면은 처음에는 좋았던 추억으로만 보입니다. 커피에 꿀을 넣고 천천히 저어서 커피와 벌꿀이 자연스럽게 섞이게 만든, 들꽃 향이 입안에 퍼지는 듯한 맛은 히로사와와 함께 보냈던 시간을 떠올리게 하니까요.

하지만 후카세와 주변 사람들이 히로사와를 떠올리는 과정에서, 벌꿀은 점점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히로사와가 좋아했던 것, 후카세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 그리고 과거의 어떤 순간이 커피 한 잔을 통해 다시 연결됩니다. 그리고 이는 핵심 반전으로 이어지고요.

이 점에서 "리버스"의 벌꿀 커피는 다른 작품 속 달콤한 커피와 조금 다릅니다. 앞서의 달콤한 커피들이 주로 범죄를 숨기기 위해 사용되었다면, "리버스" 속 달콤한 한 잔의 벌꿀 커피 안에는 우정과 기억, 그리고 아직 말해지지 않은 진실이 함께 담겨 있기 때문이지요.

커피의 쓴맛은 추리소설과 잘 어울립니다. 그러나 이렇게 보면 달콤한 커피도 못지않게 추리소설적입니다. 쓴 커피가 탐정의 정신을 깨운다면, 달콤한 커피는 사건의 표면을 부드럽게 덮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뜻밖의 수수께끼가 천천히 드러나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후카세가 히로사와를 위해 만들었던 벌꿀 커피 레시피를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작품 속에서는 후카세는 융 필터로 정성스럽게 내린 커피에 벌꿀을 넣어 텀블러에 담아 히로사와에게 건네 주었지만, 집에서는 조금 간단하게 만들어도 좋습니다.

  1. 커피를 진하게 내린다.
    가능하다면 핸드드립이나 융드립처럼 향이 잘 살아나는 방식이 좋고, 산미가 강한 커피보다 부드럽고 묵직한 원두가 어울린다. 집에 드립 도구가 없다면 평소보다 조금 진하게 내린 아메리카노를 사용해도 괜찮다.
  2. 컵이나 텀블러를 미리 데운다.
    뜨거운 물을 잠시 담았다가 버리면 커피가 빨리 식지 않는다. 작품 속 후카세처럼 누군가에게 건넬 커피라면 텀블러에 담는 쪽이 더 어울린다.
  3. 벌꿀을 넣는다.
    가볍게 단맛만 더하고 싶다면 1티스푼이면 충분하다. 설탕 한 스푼 정도의 단맛을 원한다면 벌꿀은 2~3티스푼 정도 넣는 편이 좋다.
  4. 바닥까지 천천히 젓는다.
    벌꿀은 설탕보다 무겁고 끈적해서 컵 아래에 가라앉기 쉽다. 스푼으로 바닥을 긁듯이 천천히 저어 커피와 잘 섞는다.
  5. 토스트와 함께 먹는다.
    "리버스"를 떠올린다면 허니 토스트를 곁들이는 것도 좋다. 바삭하게 구운 토스트에 버터를 바르고, 남은 벌꿀을 조금 뿌린다.

# 시리즈 전체 보기

2026/06/13

아비무쌍 - 노경찬 / 이현석 : 별점 2점

무협 웹툰인데 초반에는 설정이 신선해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제목 그대로 주인공 노가장이 무림의 영웅이나 천하제일인이 아니라, 세 아이를 먹여 살려야 하는 홀아비 가장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사별한 아내가 남긴 세 쌍둥이를 키우기 위해 그는 원래 하던 해결사 일을 접고, 안정적인 직장인 천룡회 무사로 취직합니다. 그리고 이후 10년 넘게 문지기로 일하며 아이들을 키운다는 설정이지요. 이 과정에서 추가 보수를 위해 위험한 임무를 맡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노가장은 문파의 원한, 가문의 복수, 천하제일을 향한 야망 같은 동기는 없습니다. 오로지 아이들을 굶기지 않고 무사히 키우는데 주력하지요. 무림의 명성보다 월급과 안정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요. 이런 생활감 넘치는 설정은 그간 제가 읽었던 무협이라는 장르물에서는 정말이지 처음 봤습니다.

그리고 노가장이 상당한 실력자이면서도 스스로를 하수라고 생각한다는 점도 재미 요소입니다. 그는 자신의 무공을 무림인들에게 비하면 별것 아니라고 여기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처음 만났던 무림인이 무림 5존의 한 명인 관존이었기 때문에 묵사발이 났던 것 뿐이지요. 하지만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노가장은 어떤 임무를 맡던 살아남는걸 최 우선 과제로 삼아 해결사 일을 하며 쌓은 경험과 실전 감각으로 여러 위기를 돌파합니다. 

노가장의 세 쌍둥이 아들과 딸에 대한 이야기가 교차해서 진행되는 부분도 괜찮습니다. 무공을 배우고, 각자의 성향에 맞게 성장하며, 점점 자기 길을 찾아가는 과정은 전형적인 무협지 서사라서 재미가 없을 수 없으니까요. 아들들과 딸의 개성도 뚜렷하고요.

작화도 좋습니다. 그림체도 독특하지만 액션 장면에서 속도감과 무게감이 빼어납니다. 검과 주먹이 부딪치는 장면, 인물의 움직임, 타격의 순간 표현이 시원하며 절묘합니다.

그러나 이런 장점들은 비교적 초, 중반부이며 후반으로 가면 흐려져 버리고 맙니다. 노가장이 무협지 속 절정고수의 반열에 오르며 가장 매력적이며 특별했던 '홀아비 가장의 외벌이 육아 생존기'라는 신선했던 컨셉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다른 뻔한 무협지와 다를게 없어집니다. 

물론 십 여년이 지나, 노가장이 무시받는 수모와 천룡회 내부 암투에 휘말려 부하를 잃은 복수를 위해 스스로의 자리를 만들려는 움직임만큼은 흥미롭습니다. 이 과정에서 무림인을 정리하려는 관존의 음모와도 얽히는데, 이 역시 기존 무협지에서는 보기 힘든 설정이고요.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하려면 다른 쓸데없는 설정은 쳐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신교의 우두머리 천소소가 왜 등장하는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행복이를 비롯한 여러 조연도 마찬가지고요. 게다가 비교적 비중이 높았던 천룡회 내부 암투가 순식간에 정리되는 전개도 솔직히 어이가 없었습니다.

핵심인 오문 설정이 지나치게 만화적이라는 문제도 큽니다. 오행의 성질을 따른다는 설정은 그렇다 쳐도, 사람이 불이나 흙처럼 변해 마인이 된다는 표현은 유치했습니다. 노가장이 신존이 되는 과정도 충분히 설득력 있게 그려졌다고 보기는 어렵고요. 사부가 어떻게 기운을 가져갔는지, 노가장의 변화가 어떤 원리로 이루어졌는지 등이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 탓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초반 설정만큼은 분명히 신선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작품 고유의 색깔이 약해지고, 평범한 강자 중심 무협물에 가까워지는 점은 아쉽습니다.

2026/06/12

코끼리를 목욕시키는 여자 - 화바이룽/ 김소희 : 별점 2.5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 생각에 사랑은 추억이나 순간, 아니면 소유할 수 없는 상황에서만 존재하는 것 같아."

어느 날 남편 밍런이 갑작스럽게 이혼을 통보했다. 밍런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다고 의심한 나는 친한 팡 언니에게 부탁해 밍런을 조사하기 시작했지만 성과는 없었고, 결국 이혼은 성립되었다. 

그 뒤 밍런이 사람을 죽여 체포된 뒤 구속되었고, 밍런의 동기를 알지 못해 답답해하던 나에게 독방에서 자살한 밍런의 이메일이 전달되며 모든 진상이 밝혀졌다...

대만 작가 화바이룽의 장편소설입니다. 범죄물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실제로는 심리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남편 밍런을 교도소에서 면회하는 장면으로 시작한 뒤, 이야기는 사건의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리고 밍런의 갑작스러운 이혼 통보, 아내의 불륜 의심, 사설 조사, 살인, 구속, 자살, 마지막 진상까지 빠르게 이어지는데 이러한 전개가 만들어 내는 흡입력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밍런이 왜 이혼을 요구했는지, 왜 개명했는지,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왜 끝내 자살했는지 계속 궁금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오롯이 주인공의 1인칭 시점으로 이어지는 묘사도 좋습니다. 갑자기 남편에게 버림받은 아내의 혼란과 분노가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덕분이에요. 사건은 비현실적인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주인공의 감정은 설득력이 넘칩니다. 그만큼 생생하고 생활감 있는 묘사가 빼어납니다. 웃기기도 하고요.

범행의 세부 묘사도 나쁘지 않습니다. 밍런의 작업실은 보안이 엄격한 곳입니다. 그래서 피해자 뤄지가 그곳에 쉽게 들어갔다는 설명은 의심스럽고, 밍런이 자백한 그대로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품게 만듭니다. 작업실에 있던 두 개의 옷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밍런은 옷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작업실에는 옷장이 두 개나 있었고, 그중 하나는 잠겨 있었는데 역시 뭔가 수상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이는 밍런이 작업실에서 재스민이라고 부르는 러브돌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진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옷장은 밍런이 재스민과 관련 물품을 숨긴 공간이었고요. 이를 알아챈 뤄지는 밍런을 협박하다가 고압 전기에 감전되어 살해당합니다. 이 죽음 역시 앞에서 밍런이 형과 함께 감전 장치를 만들었다는 복선을 통해 연결됩니다. 이런 점에서는 꽤 잘 짜여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그리고 뤄지가 밍런의 비밀을 알게 된 이유도 재미있는데, 아내가 의뢰한 불륜 조사 때문이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지 확인하려 했을 뿐인데, 그 조사 때문에 밍런의 은밀한 비밀이 드러나게 된 것이지요. 비밀은 협박으로 이어지고, 결국 살인까지 부르고요. 처음의 의심에서 비롯된 행동이 마지막 비극과 진상에 맞물린다는 점에서 일종의 윤회식 구조라 할 수 있는데, 작품과 아주 잘 어울렸습니다.

하지만 밀리의 서재에서 홍보하는 대로 '추리소설'로 보면 아쉽습니다. 복선은 있지만 독자가 단서를 모아 진상을 맞히는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건은 시간 순서대로 흘러갈 뿐이며, 중요한 진실은 밍런의 자백(이메일)로 밝혀지니까요. 

밍런의 동기도 설득력이 약합니다. 그는 결혼했고 아이도 둘이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러브돌에 깊이 빠졌을까요? 주인공 '나'의 1인칭으로만 전개되기 때문에 밍런 시점의 고민은 잘 설명되지 않습니다. 그가 어둠 속에 머물고 싶었다는 식인데, 이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더구나 이미 이혼도 했고, 러브돌과의 관계가 불법도 아닌데 왜 살인까지 해야 했는지는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허술한 부분도 보입니다. 작업실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점은 좋은 복선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뤄지가 경비원 친구의 도움을 받아 작업실에 들어갔다고 밝혀집니다. 이렇게 되면 보안이 엄격하다는 설정의 힘이 약해집니다. 치밀한 장치로 보기도 어렵고요. 또 이 경비원 친구의 존재도 문제입니다. 밍런은 자신의 비밀을 감추기 위해 뤄지를 죽이고 자살합니다. 하지만 뤄지가 작업실에 들어가는 것을 도운 경비원 친구가 입을 열면 밍런의 비밀은 다시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밍런의 자살 이유도 애매해집니다. 비밀을 완전히 묻는 게 불가능하니까요.

그래도 흥미진진한 작품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남편의 이혼 통보에서 시작해 불륜 조사, 살인, 자살, 진상 공개까지 이어지는 흐름이 빠릅니다. 주인공의 심리 묘사도 좋고, 생활감 있는 문장도 인상적입니다. 추리물로는 아쉽지만 범죄 드라마로는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6/06/07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Season 2 : (6) 맥주가 맛있는 순간

맥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음료 중 하나입니다.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닿습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는 보리의 기원지로 알려져 있고, 이 지역에 살던 수메르인들은 보리와 밀로 만든 빵을 주식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물에 젖은 빵이 발효된 것을 먹어 본 것이 맥주의 시작이었다고 하지요. 인류의 가장 오래된 기록 문학으로 꼽히는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 서사시"에도 맥주를 마셨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맥주는 중요한 음료였습니다. 음식을 대표하는 상형문자가 ‘맥주’와 ‘빵’이었을 정도입니다. 심지어 피라미드를 맥주와 마늘 덕분에 만들 수 있었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뜨거운 사막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시원한 맥주와 강장제 역할을 하는 마늘이 필요했다는 것이지요. 물론 고대 이집트에 냉장고가 있었을 리는 없지만, 더위 속에서 마시는 맥주가 각별하다는 사실만큼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듯합니다. 한여름, 땀을 뻘뻘 흘린 뒤 마시는 맥주 한 잔은 누구도 쉽게 거부하기 힘드니까요.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닷쿠 & 다카치 시리즈 중 한 편인 "맥주 별장의 모험"에서 주인공 닷쿠 일행은 바로 그런 유혹에 빠집니다. 그들은 불의의 사고로 무더위 속을 헤매다가 우연히 발견한 별장에 몰래 들어갑니다. 그리고 냉장고 안에서 대량의 맥주를 발견하지요. 당연히 일행은 유혹을 참지 못합니다. 긴급 피난이라는 그럴듯한 자기 합리화를 내세우며 맥주를 들이켜기 시작합니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은 몸에 해로울 수 있습니다. 더위로 땀을 많이 흘려 체내 수분이 부족한 상태에서 알코올의 이뇨 작용까지 더해지면 탈수 증상이 심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행히 젊은 닷쿠 일행에게는 별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유를 되찾은 그들은 맥주를 마시며, 텅 빈 별장 1층에 싱글 침대 하나만 놓여 있는 기묘한 상황에 대해 저마다 추리를 꺼내 놓기까지 합니다.

같은 작가의 단편 "맥주집의 문제"도 비슷합니다. 닷쿠 일행이 빈집에 산더미처럼 쌓인 맥주를 발견하고, 그것을 마시며 그 이유를 추리하는 이야기거든요. 만화 단행본 표지에서도 닷쿠 일행은 맥주를 들고 있는데, 이쯤 되면 참 맥주를 좋아하는 일행이라고 할 수밖에 없네요.

작품 속 닷쿠 일행이 마신 것은 냉장고 속 캔맥주였지만, 개인적으로는 캔맥주보다 병맥주 쪽이 조금 더 시원한 인상을 줍니다. 병 표면에 맺힌 물방울, 병뚜껑이 열릴 때 나는 소리, 잔에 따를 때 올라오는 거품이 캔맥주보다 조금 더 선명한 장면을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미식가 탐정 네로 울프가 즐겼던 맥주도 Remmers 병맥주였습니다. "독사"에서 그 상표명이 직접 언급되지요.

병맥주 하면 역시 냉장고에서 차갑게 식힌 병을 꺼내, “퐁” 소리와 함께 뚜껑을 열고, 살짝 얼음이 낀 잔에 거품이 올라오도록 따르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데 아마노 세츠코의 "얼음꽃"에는 바로 이 습관을 이용한 살인 트릭이 등장합니다. 세노 쿄코는 냉장고 속 맥주를 냉동실에 얼려 둔 잔에 따라 마시는 남편의 습관을 이용해 남편을 원격으로 독살하고, 자살로 위장하는 데 성공합니다. 미리 잔에 청산가리를 발라 두었던 겁니다.

다만 이 방법은 보기에는 시원해 보여도, 과학적으로는 맥주의 맛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합니다. 맥주에는 맛있게 마실 수 있는 적정 온도가 있는데, 얼린 잔은 그 온도를 지나치게 낮춰 버리는 탓입니다. 또 잔 표면에 맺히는 물방울 때문에 맥주를 따를 때 거품이 제대로 생기지 않을 수도 있고요. 가장 시원해 보이는 방식이 반드시 가장 맛있는 방식은 아닌 셈입니다.

그렇다고 더위 속에서 마시는 차가운 맥주만 맛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테미스의 검"에 등장하는 사코미즈처럼, 25년 동안 수감 생활을 한 뒤 맥주를 마신다면 어떨까요. 그 맥주가 맛없을 리 없습니다. 그는 탄산이 주는 청량감을 두고 “마치 목에도 미각이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고 느끼며, 맥주를 “액체 모양을 띤 황금”이라고까지 표현합니다. 그 마음이 너무나도 잘 와닿습니다.

이 장면은 자연스럽게 영화 "쇼생크 탈출"의 지붕 공사 장면을 함께 떠올리게 합니다. 앤디는 간수의 세금 문제를 해결해 주는 대가로 동료들에게 맥주를 요구합니다. 그 덕분에 죄수들은 햇볕이 내리쬐는 지붕 위에 앉아, 차갑게 식힌 Stroh’s Bohemian 맥주를 한 병씩 나누어 마시지요. 특별히 고급 맥주는 아니지만, 그들은 그 순간만큼은 교도소 안에서 잠시 자유를 맛봅니다. 죄수가 아니라 하루 일을 마친 평범한 노동자처럼요.

물론 차갑지 않아도 특별한 분위기가 함께한다면 맥주는 충분히 맛있을 수 있습니다. M. C. 비턴의 해미시 맥베스 순경 시리즈에 등장하는 해미시 순경은 일부러 맥주를 서랍에 넣어 두었다가 꺼내 마시곤 합니다. 미국 영화 속 탐정들이 책상 서랍에서 술병을 꺼내 드는 장면에 매료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맥주를 마시면 자신도 옛 하드보일드 탐정과 닮아진 듯한 짜릿함을 느낀다고 하지요. 이쯤 되면 맛보다 분위기가 더 중요한 셈입니다.

스티븐 킹의 "여름 천둥"은 핵전쟁 이후, 살아남은 모든 것이 오염과 후유증으로 죽어 가는 세상을 배경으로 합니다. 주인공 로빈슨은 버려진 개 간달프와 함께 살아가고, 근처 고급 주택가에 홀로 남은 팀린과 가끔 만납니다. 그러나 결국 방사능 후유증이 심해져 죽음을 앞두게 된 팀린은 자살할 준비를 마친 뒤 로빈슨을 부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미지근한 Budweiser를 나누어 마십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맥주의 제왕”이라면서요. 차갑지도 않고, 세상이 끝나 가는 자리에서 마시는 맥주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이 장면의 Budweiser는 선명하게 기억됩니다. 맛보다는 마지막으로 나누는 시간, 그리고 맥주라는 너무나 평범한 물건이 만들어 내는 쓸쓸한 분위기 때문입니다. 만약 간달프가 "사냥개 탐정"의 류몬 다쿠의 파트너 조처럼 Budweiser를 좋아하는 개였다면, 그 자리가 더 빛났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사실 이 자리는 Budweiser보다 벨기에 맥주 Duvel이 더 어울렸을겁니다. 시원해야 제맛인 라거 계열의 Budweiser와 달리, 에일 계열 맥주는 어느 정도 온도가 올라왔을 때 본연의 맛이 살아나는데 그 중에서도 Duvel이 비교적 높은 온도에서 향과 맛을 즐기기 좋은 맥주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Budweiser도 겨우 구했던 로빈슨과 팀린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겠지만요.

이처럼 맥주의 맛은 온도만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더위, 갈증, 자유, 고독, 동경, 마지막 순간의 체념 같은 것들이 맥주의 맛을 바꾸어 놓습니다. 어떤 맥주는 차가워서 맛있고, 어떤 맥주는 오래 기다린 끝에 마셔서 맛있습니다. 또 어떤 맥주는 맛 자체보다 그 순간의 분위기 때문에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마시는 순간입니다. 뜨거운 날의 갈증이든, 하루 끝의 여유든, 이야기 속 인물이 느낀 자유든, 맥주는 그런 장면 속에서 가장 빛나는 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맥주를 맛있게 따르는 방법인 ‘세 번 따르기’를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네로 울프도 좋아하는 Remmers 병맥주를 전용 금도금 병따개로 딴 뒤, 정확하게 거품을 맞춰 따라 마시곤 했다고 하니, 미식가에게 검증된 방법이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맥주에 잘 어울리는 잔까지 함께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세 번 따르기

1.
맥주병을 높이 들고 처음에는 천천히, 이어서 조금 세게 따라 거품을 만든다.

2.
거품이 어느 정도 가라앉아 맥주와 거품의 비율이 1:1 정도가 되면, 병을 잔 가장자리로 가져가 천천히 따른다. 이때 거품이 잔보다 1cm 정도 높게 올라올 때까지 따른다.

3.
거품이 잔보다 1.5~2cm 정도 높아질 때까지 맥주를 조심스럽게 붓는다.

# 시리즈 전체 보기

2026/06/06

리스타트 (Boss Level) (2021) - 조 캐너한 : 별점 2점

전직 특수부대원 로이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정체불명의 암살자들에게 쫓기고, 죽은 뒤 다시 같은 날 아침으로 돌아오는 현상에 직면했다. 전처 젬마가 개발한 장치 때문이라는걸 알아낸 로이는, 젬마를 상관 벤터로부터 구하고 루프와 지구 파멸을 끝내기 위해 노력하는데...

하루가 반복된다는 루프물 영화는 많습니다. 얼마 전에도 "소스 코드"를 보았었지요. 

뻔한 설정이지만 이 영화만의 큰 특징은 있습니다. 반복되는 하루를 끊임없는 액션의 무대로 활용한다는 점입니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도 비슷하지만, 이 영화는 현재 시점을 무대로 복선과 음모는 거의 없이 시종일관 액션으로만 밀어붙인다는게 차이점이에요. 맨손 격투와 총격전은 물론이고, 맨몸 스턴트, 자동차 추격, 검술 액션까지 그야말로 생각할 수 있는 액션은 다  등장합니다. 주인공 로이가 자신을 노리는 암살자들과 악당들을 해치우기 위해 죽어가면서 공략법을 익히고 결국 그들을 극복해 나가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선보이는 프랭크 그릴로의 외모는 그야말로 완벽합니다. 촬영도 화끈하며 적절한 유머와 합도 좋고요.

일종의 게임같은 '공략' 세계관은 전체 전개에서도 일관되게 선보입니다. 루프가 계속되면 세계가 붕괴하기 때문에, 로이는 살아남거나 악당들을 없애는 대신 잠시 다른 선택을 합니다.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던 아들과 마지막 하루를 보내기로요. 그런데 로이는 아들과의 대화를 통해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자신이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던 전처 젬마가 그날 아침까지는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로이는 다시 하루를 공략하는데, 이번에는 단순히 적들을 처리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젬마를 최대한 빠르게 구해내야 한다는 조건이 붙거든요. 이렇게 단계별로 공략이 진행되며 단서와 조건이 추가된다는 점에서 원제 "Boss Level"은 그야말로 딱 들어맞습니다.

또 아예 복선과 음모가 없지도 않습니다. 로이가 암살자들에게 쉽게 추격당한 이유가 대표적입니다. 그는 전날 치위생사를 만났는데, 그때 치료받은 이빨에 추적 장치가 부착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대단히 놀라운 반전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액션 중심 영화에서 제법 흥미로운 요소로는 괜찮은 수준입니다. 

하지만 아주 잘 만든 영화라고 하기는 좀 부족합니다. 우선 앞서 액션으로 밀어붙인다고 했는데, 암살자들 개개인과의 대결이 대부분이라서 규모가 많이 작습니다. 루프물답게 반복되는 장면도 많고요. 

또 중반부에서 아들 조와의 관계를 드러내는 부분은 조금 거슬립니다. 영화 전체가 쉴 새 없이 액션을 몰아치다가 갑자기 멈추는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장면이 후반부 선택과 연결되기는 하지만, 화끈하게 달리던 액션 영화로서의 기세를 잡아먹는건 사실이에요.

배우들의 활용도 아쉽습니다. 프랭크 그릴로를 제외한 다른 배우들은 이름값에 비해 크게 인상적이지 않습니다. 특히 멜 깁슨은 악역으로 등장하지만 별다른 카리스마를 보여주지 못합니다. 왕년의 대배우가 이렇게 몰락했나 싶은 안타까운 마음만 들 정도였어요.

그래서 별점은 2점입니다. 설정의 신선함보다는 액션의 물량과 속도로 밀어붙이는 킬링타임용 루프물입니다. 저는 운동할 때 감상했는데 적당했어요.

2026/06/05

딜쿠샤, 경성 살던 서양인의 옛집 - 최지혜 : 별점 2.5점

서울 종로구 행촌동에 있는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에 지어진 서양식 주택 "딜쿠샤"의 역사와 복원 과정을 다룬 인문학, 미시사, 근대미술사 서적입니다.

책은 우선 "딜쿠샤"의 역사부터 짚습니다. 테일러 부부가 이 집을 지은 과정, 화재 이후 다시 보수한 과정, 그 뒤 누가 이 집에 살았고 누가 이곳에서 일했는지를 차례로 알려주거든요. "딜쿠샤"는 이른바 문화 주택 열풍의 출발점처럼 볼 수 있는 집으로, 이 집의 건축 과정 소개를 통해 당시 조선에 방갈로를 비롯한 서양식 주택이 어떻게 들어오고 퍼졌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책의 핵심인 복원 과정에 대한 내용이 이어집니다. 당시 촬영된 사진을 기준으로 실내의 세부 요소를 하나씩 찾아내고, 그것을 다시 재현하는 과정이 자세하게 소개됩니다. 전등이 몇 개였는지 같은 고증은 물론, 복원에 필요한 물품을 어떻게 구입했는지, 구할 수 없는 물건은 어떻게 제작했는지도 설명됩니다. 이를 통해 복원이라는 일이 단순히 낡은 건물을 고치는 수준에 그치는게 아니라는걸 알 수 있습니다. 사진과 온갖 자료들을 조사하여 물건의 쓰임을 확인하고, 없어진 것은 다시 만드는 굉장히 치밀한 작업이더군요. 그 정성은 정말 놀라울 정도였어요.

그리고 복원 과정에서 구하거나 만든 여러 소품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도 좋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아래와 같습니다.

비연호는 코담뱃가루를 담는 작은 병입니다. 청나라 때부터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청에서는 담배는 금지했지만, 코로 흡입하는 코담배는 감기, 두통, 위장병 같은 증상을 완화하는 치료약으로 허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코담뱃가루는 습기에 약했기 때문에, 공기에 덜 닿도록 입구가 작은 병을 만들었고요. 그 병이 비연호입니다.

딜쿠샤 벽난로 옆에 놓인 둥근 그릇은 히바치로 일본 전통 화로입니다. 나무, 도자기, 동으로 만들었는데, 특징이라면 난방용으로만 쓰인건 아니라는 점 입니다. 방 안에서 차나 국을 데우거나, 김을 굽고, 찰떡을 구워 먹고, 깨를 볶는 데에도 썼다고 하네요.

2층 거실 탁자는 상판과 다리까지 조각 장식으로 뒤덮여 있는데, 이건 일본의 닛코보리 탁자입니다. 닛코보리는 일본 닛코 지역의 공예품입니다. 1643년 제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가 닛코의 도쇼구를 크게 고치면서 많은 조각 장인들이 모였고, 공사가 끝난 뒤 이들이 그 지역에 정착해 방문객을 대상으로 쟁반과 가구 같은 기념품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 유래라고 합니다.

서양인의 서양식 주택이지만, 당시 조선의 가구와 소품들도 갖추어져 있었는데 이에 대한 설명도 확실합니다. 조선의 돈궤를 서양인들이 캐시박스라고 불렀고, 우리나라 전통 가구 중 장은 분리되지 않지만 농은 층층이 분리되는걸 의미하며, 당시 서양인들에게 삼층장은 조선 가구의 대표였는데 1920~30년대 조선을 찾은 미국인들은 화려한 것을 좋아해서, 번쩍거리는 장식이 많이 붙은 삼층장을 선호했다는 등의 정보가 가득한 덕분입니다. 

이런 정보들과 함께하는 도판도 좋습니다. "딜쿠샤" 복원에 관련된 소품과 세부 디테일 사진이 많이 실려 있습니다. 소품과 관련된 도판, 당시 분위기를 알려주는 사진도 충실합니다. 이런 책은 글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데, 사진 자료가 많아서 읽기 편했습니다.

다만 단점도 분명합니다. 특히 문장이 아쉽습니다. 이런 저런 명언과 미학 이론을 들먹이며 이야기를 멋스럽게 쓰려는 표현이 많은 탓입니다. 책의 소재 자체가 이미 충분히 재미있는 만큼 오래된 사진을 보고, 사라진 물건을 찾고, 공간을 다시 만드는 과정만 담백하게 쓰는게 좋았을 것입니다. 괜히 문장을 꾸미려는 부분이 오히려 정보 전달을 방해한다고 느껴집니다.

또 다른 단점은 일부 정보의 근거가 약하다는 점입니다. 저자의 전문분야인 건축, 미술, 복원 외의 생활문화 부분은 다소 부실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영국인들이 홍차를 좋아한 이유를 영국 물의 미네랄 함유량이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부분이 그렇습니다. 차 문화는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닙니다. 역사, 무역, 계급, 식민지, 기호품 소비 등 여러 요소가 얽혀 있으니까요. 이 책에서처럼 한, 두 페이지로 간단하게 정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