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 대학을 졸업했지만 작은 사무용품 회사에 근무하는 후카세에게는 숨기고 싶은 비밀이 하나 있었다. 10년 전, 대학 친구들 - 아사미, 다니하라, 무라이, 히로사와 - 과 떠났던 여행에서 술을 마신 친구 히로사와가 운전대를 잡게 하여 죽게 만들었던 사건이었다. 취미인 커피와 연인 미호코 덕분에 안정을 찾은 후카세에게 ‘후카세는 살인자다’라는 의문의 편지가 배달되었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똑같은 메시지가 공개적으로 뿌려졌다는 사실을 들었다.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낀 후카세는 휴가를 얻어 범인을 찾는 대신, 죽은 히로사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아보기 시작하는데...
"고백"으로 잘 알려진 미나토 가나에의 중편 소설입니다. 이전, 한 유튜버의 '결말이 충격적인 미스터리 5편'에 선정되었길래 관심을 갖고 있다가, 여름 휴가를 맞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후카세가 히로사와의 옛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히로사와는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탐색해 나가는 과정이 중심입니다. 때문에 정통 추리물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열등감으로 가득찬 후카세가 탐색을 통해 성장한다는 점에서 성장기로 볼 수도 있고요.
이 과정에서 모두가 의지했던 말이 없고 묵묵한 히로사와가 — "뽀로로"의 포비가 떠오르는 — 오히려 후카세나 후루카와처럼 존재감 없는 친구들에게 의지하고 있었다는게 밝혀지는건 신선했습니다. 꽤 묵직한 여운을 남기기도 하고요.
이러한 드라마 외에도 10년 전 사건을 고발하는 편지를 보낸 인물이 누구인지에 대한 수수께끼도 흥미롭고, 히로사와의 과거를 되짚는 여정도 군더더기 없이 빠르게 전개되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살인자라는 메시지를 보낸게 미호코라는 진상은 좀 아쉽습니다. 운과 우연에 의지한 측면이 많기 때문입니다. 후카세가 여자친구 사진을 친구들에게 공개했더라면 금방 들통났을테지요. 졸업 앨범을 통해 아사미의 동료 기다가 히로사와의 동창이라는걸 알아냈더라도 마찬가지고요. 그리고 히로사와의 연인이었던 미호코가 히로사와 사망 이후 후카세와 교제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도 억지스럽습니다.
이외에도, 미호코가 유독 후카세에게만 간접적인 방식으로 고발장을 보낸 이유도 명확히 설명되지 않고, 후카세가 진상 - 그들이 히로사와가 운전대를 잡게끔 만들었다 - 을 술술 털어놓은 것도 역시 잘 납득이 되지 않네요.
무엇보다도 미호코가 메시지를 보낸 동기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게 문제입니다. 메시지를 보낸게 자기라는게 드러나면 형사 처벌 대상이 될겁니다. 심지어 다니하라는 기차에서 밀치기까지 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려 10년 전 죽은, 잠깐 사귀었던 연인을 위해 증명도 하지 못할 범죄를 고발하려 한다? 전혀 와 닿지 않아요.
히로사와가 메밀 알레르기가 있었기 때문에 술이 아니라 후카세 만들어 준 메밀꽃 벌꿀 커피가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었다는 반전도 과합니다. 솔직히 나올 필요가 없었어요. 불운한 사고를 딛고 후카세가 한 뼘 성장해 가는 흐름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마무리가 가능했으니까요.
아울러 벌꿀을 넣은 커피, 지역 특산물 벌꿀 등의 언급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히로사와의 알레르기 설정이 반전 직전에야 언급된다는 점에서 치밀함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급작스럽기만 했어요.
한마디로, '결말이 충격적인'게 아니라 '충격적인 결말'을 위해 억지로 만들어낸, 강박에 가까운 반전일 뿐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인간 드라마에 가까운 작품으로, 미스터리적 재미보다는 인간 관계와 내면 심리에 집중한 구성이 돋보입니다. 흥미롭고 빠르게 읽히는 장점도 크고요. 다소 과했던 반전만 없었더라면 더 좋았을겁니다.
덧붙이자면, 벌꿀을 넣은 커피는 한 번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적으로 등장하는데,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후속 권이 나온다면 소개해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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