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여성 영화 감독 도리스 되리의 요리 관련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접한 음식과 사람들, 그 안에서 느낀 단상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단순한 요리 소개나 맛 묘사에 그치지 않고 음식과 문화, 기억, 철학이 뒤섞인 글들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 많아서 일기같다는 느낌도 많이 들고요.
놀랐던건 저자의 방대한 식견입니다. 김치에 대한 언급이 대표적이에요. 한국의 김장을 단순한 발효 기술이 아니라 ‘인간적인 정을 만드는 레시피’라고 표현하는데, 외국인이 쓴 글에서 김치가 아니라 김장을 이 정도로 이해하고 언급했다는게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우유에 대한 글에서 부처가 고행으로 쇠약해졌을 때 젊은 여인이 건넨 우유로 생명을 구했다는 불교 일화를 인용하고, 두부를 이야기할 때 일본 선종의 도겐 젠지의 말을 함께 소개하는 부분을 보면 독일 사람이 이런 정보를 대체 어디서 얻었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글 사이사이에 동물이 급격한 변태를 겪는 이유가 ‘더 많은 먹이를 먹기 위해서’라는 과학계 이론같은 여러 정보들이 등장하는 것도 볼거리입니다. 예를 들자면 바움쿠헨이 일본에 전해진 과정은 의외로 전쟁사와 연결되어 있다고 하네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에서 제빵사로 일하던 독일인 유흐하임이 전쟁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이송된 뒤 굽기 시작한 것이 그 시초라고 합니다. 뉴욕의 대표 음식으로 언급된 ‘루스 앤 도터스’의 비알리와 베이글 이야기도 재미있었어요. 이 가게는 1907년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조엘 루스가 세 딸과 함께 1935년 창업한 곳이라는 군요.
간단한 레시피도 몇 가지 소개됩니다. 독일에서 품종 보호 정책으로 사라졌다는 ‘린다’ 감자를 활용한 감자샐러드는 감자를 껍질째 삶아 얇게 썰고, 여기에 양파, 식초, 설탕, 식용유를 넣어 만듭니다. 한 번 도전해보고 싶네요.
연두부 반쪽과 아보카도 반쪽을 함께 갈아 얼굴에 바르라는 피부 관리용 레시피도 새로왔고요. 아보카도가 저렇게 쓰기에는 좀 고가라 도전은 꺼려집니다만..
이외에도, 커피 유행에 대한 단상처럼 공감할 만한 일상적 시선도 있어서 좋았고, 책의 만듦새도 깔끔합니다. 선명한 일러스트, 판형, 종이질과 인쇄 및 장정 모두 빼어나거든요. 어른들을 위한 선물용 책으로도 괜찮겠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글루텐 프리나 환경오염, 미세 플라스틱 같은 주제를 다룬 글들은 다소 단조롭고 설명 위주로 흘러가는 탓에 흥미가 떨어집니다. 전체적으로 정보는 많지만 글마다 담고있는 내용, 수준의 편차도 있는 편이고요. 그리고 '요리'나 '식문화', '음식', '미식' 등의 내용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런 내용은 기대에 미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일상적인 요리 이야기보다는, 음식에 얽힌 문화나 개인적 사유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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