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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27

중국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 - 김택민 : 별점 3점

중국역사의 어두운 그림자 - 6점 김택민 지음/신서원

하아.. 너무 바빠서인지 오랫만에 글을 올리는 것 같네요. 이번에 읽은 책은 제목 그대로 중국 역사의 어두운 부분만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특이한 책입니다. 특히 중국 역사에 있어서 찬란했던 문명과 문화 뒤에 길었던 난세의 시기를 9단계로 나누어 집중적으로 해부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각종 재난, 자연 재해 등을 디테일하게 조사하여 수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읽어보니 인구가 1/3로 줄어버리는 식으로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막대한 피해를 입은 동란과 재난의 시기가 너무나 길더군요. 저자의 주장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사람 살기 힘든 나라였구나.. 하는 생각도 강하게 듭니다. 뭐 당시 세계 어딜 가든 평민은 살기 힘든 시대였겠지만요.
여튼 공감이 가는 것은 저자가 말하고 있기도 하지만, 우리나라가 반도 국가라 다양한 외세의 외침을 받았다 한들 중국에 비하면 너무나 평화로운 장소였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동란과 재난의 피해와 그 시기에 대한 조명을 다양한 사료의 인용은 물론, 동란의 주요 원인이 되었던 "왕후장상이 되는 꿈"에 대한 자세한 설명 및 동란 등의 어려운 시기에 횡횡했던 "식인" 문화에 대한 상세한 조사가 곁들여져 저자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해 주고 있는데 이러한 곁다리 적인 이야기도 무척 재미있더군요.

이렇게 대충 설명만 들어도 재미있을 것 같지 않으신가요? 최소한 저에게는 무척이나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사실 즐기면서, 좋아하면서 읽을 성격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남의 나라 이야기이기도 하고 중국이라는 국가를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아 더욱 재미있었던 것 같군요. 책의 몇몇 단락은 우리나라에 만연해 있는 일종의 식민사관에도 일침을 가할 수 있는 좋은 텍스트라 생각되는만큼, 이런 책이 보다 널리 알려지고 읽혀지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저자가 카피 페이스트로 가져다 붙인 문장과 페이지가 많아서 전체 페이지는 450페이지가 넘어가는 두꺼운 책이지만 알맹이는 훨씬 얇다는 문제는 조금 불만스럽습니다. 더 축약하고 정리했더라면 15,000원이라는 가격을 좀 더 줄일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죠. 때문에 조금 감점하여, 별점은 3점입니다.

2006/02/22

갈라파고스 - 커트 보네커트 / 박웅희 : 별점 4점

갈라파고스 - 8점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아이필드

"제 5 도살장"의 커트 보네커트의 또다른 장편입니다. 여담이겠지만 저는 "제 5 도살장"을 무척 좋아합니다. 작년에 읽은 최고의 책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요. 두번 읽기는 조금 까칠하나 읽으면서 느껴지는 재미와 흥분은 분명히 기억되는, 그런 책이었죠. 때문에 이 작품도 꽤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장편보다는 중편에 가까운 분량으로 읽기도 쉬운 편이지만 통 시간이 나지 않아서 1주일 정도의 시간을 투자해서 이제야 겨우 다 읽었네요.

읽고나서 생각해보니 "제 5 도살장"의 판박이 같은 작품으로도 보입니다. 이 작품 역시 작품 안에서 재기발랄한 모자이크같은 전개 방식과 끝도 없는 수다, 그리고 실제 작중의 주인공과 100만년뒤의 시공에서 그들을 회상하는 레온 트라우트의 시점이 오가는 독특한 구조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마지막 아담과 이브, 생존자들을 살기도 힘든 갈라파고스 섬이라는 곳에 데려다 놓는 등의 잔인하고 썰렁한 유머에서도 그런 인상을 강하게 받았고요. 무엇보다도 "제 5 도살장"에도 등장했던 SF작가 킬고어 트라우트가 등장하는 탓도 큽니다.

하지만 전쟁의 찬혹함을 나름대로 묘사했던 "제 5 도살장"과는 다르게 SF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인간과 문명의 무기력함과 불필요함을 역설하는 것은 이채로왔습니다. "뇌가 큰 것이 가장 악한"일이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작품 전체에서 일관되게 제시되고 있고, 작중에서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통역기 (혹은 컴퓨터) 만다락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서도 작가의 의도를 진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본능에 의거한 퇴화를 설득력있게 제시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겠죠.

이렇듯 유머와 재미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가면서도 그 속에 숨겨진, 혹은 노골적인 메시지까지 잘 드러나기 때문에 여운이 남는 좋은 작품으로 탄생한 것 같습니다. 유머의 감각이 워낙 독특하고 성(性)적인 곳에서 노골적이고도 불편한 요소도 있어서 독자의 취향에 따라 여러 평이 엇갈릴 수 있는 작가이긴 하지만 이 작품속의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읽는 것 만으로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책 후기에 소개되었었던 작가의 단편집도 기대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덧 1 :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케빈 코스트너의 저주받은 실패작 "워터월드"에 분명 영향을 주었으리라 판단됩니다. 지구 멸망(?) 후 갈라파고스 섬에서의 바다를 벗삼아 살아가는 생존자들의 일상에서 계속 "워터월드"가 오버랩 되더군요. 저만 그런 건가요?

덧 2 : 이 작가의 전개방식으로 무협지를 써도 무척 재미나겠더군요. 누가 죽는지 앞에서 알려주는데도 뒷 부분이 이렇게 궁금해지는 전개야 말로 무협지에 딱 맞는 거 아니겠습니까!

2006/02/16

Japan 미스터리 걸작선 3 - 한국, 일본 추리작가협회 추천 / 정태원 편역 : 별점 2.5점

J 미스터리 걸작선 3 - 6점
정태원 옮김/태동출판사
예전에 읽었던 1편에 이어 지인인 석원님의 도움으로 구입하게 된 책. 2편은 결국 구하지 못했는데 언젠간 구할 수 있는 날이 오겠죠^^

전반부 수록작들은 재미있었습니다. 새로운 작가들을 접하는 기쁨도 컸고요. 베스트를 꼽자면 약간은 변격물적인 도착증을 소재로 진행되지만, 이야기 자체가 정통 추리이고 디테일한 묘사도 뛰어나며 반전도 깔끔했던 야마자키 요코의 "삼층의 살의"와 굉장히 독특한 발상의 추리물로 주인공의 시점을 오가는 전개가 인상적이었던 이시자와 에이타로의 "지나치게 소문을 모은 사나이"입니다.

그러나 중반 이후부터 후반부까지는 조금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어요. 특히 "정통 추리"로 보기에는 어려운 작품이 많았는데 후반부 작가들이 좀 고전(?) 급에 속하는 작가들이라 그런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예를 들자면 SF같은 유머소설 "좋은 이름"이나 완전한 유머소설 "퀸 감옥" 같은 작품은 너무 어처구니 없을 정도라 이 앤솔로지에 포함된 이유가 되려 궁금해지더군요.

물론 재미나 수준은 그냥저냥하더라도 추리 역사에 관한 글에서만 접할 수 있었던 1900년대 초반 출생의 작가들의 글들을 접한 것 만큼은 기쁜 일이었으니 아주 실망했다고 보기에는 어렵겠네요. 이 당시 작가들의 작품은 국내에서 보기 힘든 만큼, 귀중한 경험임에는 분명하니까요. 개인적으로는 끝없는 추적"의 이쿠시마 지로나 "역설의 일본사"를 지은 이자와 모토히코의 작품들도 반가왔습니다. 두 작품 모두 제 기준에 미달하는 수준이긴 했습니다만...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전체적인 수준이 균일하지 못하고 선정 기준이 애매하며 작품 목차도 연대순이 아닌 것 등의 문제로 감점하나 일본 추리물과 단편 소설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소금과도 같은 기획이긴 했습니다. 2편을 빨리 구해보고 싶네요.

2006/02/15

골프코스의 인어들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 민승남 : 별점 2점

골프 코스의 인어들 - 4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민승남 옮김/민음사
연달아 읽어버린 하이스미스 여사의 단편집 두번째. 원래는 이 작품이 세번째 단편집이고 먼저 읽었던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가 두번째 단편집이라고합니다. 첫번째 단편집을 착오로 구입 못해 순서가 좀 바뀌어 버렸네요. 뭐 단편집이니까 그건 별로 중요하진 않겠지만요. 여튼, 전에 읽었던 단편집이 워낙 마음에 들었기에 나름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솔직히 실망스러웠어요. 이전 단편집에서 언급한 로얄드 달의 "당신을 닮은 사람" 같달까요? 한마디로 심심합니다. 의표를 찌르는 맛이나 독자의 감정을 살살 건드리는 맛은 거의 없고, 세밀한 심리묘사에 더욱 치중한 경향이 강하거든요.
작품들 개개의 결말도 그다지 와 닿지 않더군요. 저는 단편소설에서는 여운을 남기던, 반전이 있던 어쨌거나 결말의 끝맺음이 작품에서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단편집에서는 대체로 애매모호하고 시시하게 처리하는 작품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결말에서 이상할 정도로 해피엔딩이 많았던 것이 특히나 불만스러워요. 저는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편인데도 하이스미스 여사 작품에서의 해피엔딩이라니 이건 정말 아니올시다죠. 배신감을 느꼈달까요?
그나마 역시나! 싶은 이 단편집의 베스트는 "난데없이 날아온 총알"과 "애완동물 공동묘지"입니다.

물론 특유의 불편한 인간 관계 설정과 심리묘사, 시대를 앞서가는 상상력과 기발한 발상을 토대로 한 전개는 여전합니다. 역자가 해설에서 카뮤의 "이방인"을 언급하기도 하지만 충분히 그정도의 임팩트는 있는 작품들로 채워져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문장과 설정에서의 몽환적인 느낌은 확실히 거장의 풍모를 전해줍니다.

그래도 확실히... 전작보다는 좀 읽는 맛은 확실히 덜 했습니다. 전에도 이야기했던 독특한, 기묘한 맛은 거의 없고 그냥저냥한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읽는 기분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제가 기대가 너무 큰 탓도 있긴 하겠만요.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다른 시리즈의 구입을 망설이게 되네요. 지금까지 5할의 확률이니 기대를 한번 더 걸어봐야 하겠지만...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1. 골프 코스의 인어들
대통령의 생명을 구한 교수의 환상과 애증 이야기랄까요? 골프 코스의 인어들이라는 제목과 발상 자체는 기발하기 그지 없지만 그다지 끌리는 요소는 없었습니다.

2. 단추
다운 증후군에 걸린 아들과 아들 때문에 변해가는 아내 탓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던 회계사 롤랜드는 어느날 밤 갑작스럽게 충동적인 살인을 저지르는데...
일상 생활속에서의 평범한 사람의 심리가 급작스럽게 변해가는 과정과 그 결말을 디테일하게 그린 수작입니다. 역자가 "이방인"을 언급한 작품으로 그만큼 순문학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작품으로 보이네요. 하지만 나름 해피엔딩이라는 것이 결정적인 감점 요소로 보입니다. 막판에 힘이 팍 풀려버리는 바람에 뫼르소 만큼의 고뇌를 롤랜드가 끝까지 보여주지는 못하게 되거든요.

3. 우연한 특종
별볼일 없는 지방신문 사진 기자 크레이그는 어느날 우연히 찍은 성폭행 피해자의 사진 한장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날리게 된다. 
평범한 일반인이 우연으로 성공하게 되지만 그 뒤에 도사린 죄책감과 결국 성공이라는 열매때문에 모든 것을 무시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린 작품입니다. 매스미디어의 속성을 비판한 작품으로 보이는데 독특한 전개와 발상에 비해서 왠지 묘사의 섬세함이 좀 떨어지는 작품이더군요. 결말도 시시하고요.

4. 크리스의 마지막 파티
자신을 배우의 길로 이끈 크리스 웰스의 죽음을 앞두고 배우 사이먼은 취리히로 달려간다. 그리고 그는 과거의 일과 현재를 돌아보게 되는데...
솔직히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더군요. 사이먼에게 있어서 크리스의 존재가 무엇이었는지, 그의 죽음으로 무엇이 변했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추억과의 결별이 닥쳤을때의 심리묘사랄까요? 깊이 생각하자면 메시지를 많이 전해주기도 하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알맹이 없는 공허한 작품이었습니다.

5. 크리스마스에 사라진 시계
자수성가한 샤를과 부호의 딸인 미셸은 서로 사랑하는 부부지만 미셸이 도와준 거리의 소년이 샤를의 물건을 훔쳐가면서 둘 사이에 서서히 금이 가게 되는데...
부유한 부부와 거리의 소년에 대한 자세한 설정과 심리묘사는 모파상을 연상케 했던 작품입니다. 하지만 출신성분이 다른 두사람의 갭은 디테일하게 잘 표현되어 있어 디킨즈 작품같은 느낌도 가져다 줍니다. 하지만... 기둥 스토리 자체와 결말이 시시한 편이라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6. 난데없이 날아온 총알
미국 청년 앤드류는 멕시코의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한 소년이 총에 맞아 죽는 것을 보고 신고하게 된다. 그러나 오히려 그가 범인으로 몰려 악몽과 같은 하루를 보내게 된다.
한 평범한 청년에게 닥친 악몽과도 같은 하루를 다루고 있는 드라마틱한 작품입니다. 작품 자체에 생기가 가득 넘치는 것이 이 단편집에서 단연 돋보이더군요. 뭐 이야기 자체는 뻔하긴 했습니다만....

7. 애완동물 공동묘지
변호사 크리스토퍼는 키워왔던 애완동물을 박제로 만드는 아내 페니의 취미를 싫어했지만 그 취미가 기사화되자 과거에 억눌러 왔던 감정들이 북받쳐 복수심으로 발전한다.
제목 그대로 애완동물의 공동묘지와 같은 기묘한 취미와 더욱 기묘한 방법으로 복수(?)하는 남편의 이야기를 기묘하게 다룬 여사다운 단편입니다. 제목만 보고는 스티븐 킹 작품을 연상하긴 했지만 역시나 전혀 분위기가 다르더군요. 덜 자극적이고 원색적이지만 왠지 더 우울하고 기묘한, 아주 독특한 작품이었습니다.

8. 어쩌면 다음 생에
고독하고 외롭게 살아가는 엘리너는 어느 날 부터 유령과 같은 "그"를 보게 된다. 그와 엘리너는 서로 생활을 공유하며 가까와지지만 "그"는 결코 착하지 않은 존재였다.
여사님이 이런 작품까지 쓰셨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전형적인 유령 공포 환상 괴담이자 심리학적으로도 눈여겨 볼 만한 곳이 많은 디테일한 작품이네요. 주인공 여성 엘리너의 애절한(?) 삶과 사고방식이 전혀 공감되지 않아 높은 점수를 줄 순 없었지만 여러모로 수준 높은 작품이었다 생각됩니다. 

9. 나는 남들만큼 유능하지 못해
세일즈맨 랠프는 주말 별장 이웃인 에드와 그레이스 부부의 척척박사와 같은 작업들에 컴플렉스를 느끼며 불안해 하던 중 별장에 초대한 프랜시스라는 아가씨와의 하루를 보내게 되는데...
일종의 현대인의 스트레스와 불안을 한 남자에게 빗대어서 조금은 유머스럽게 표현한 작품입니다. 결국 주인공이 폭주하게 되지만 그나마 해피엔딩이라는 데 현대인으로서 안도감을 느낍니다.

10. 가장 잔인한 달
영어교사 오딜의 취미는 소설가들에게 개인적인 팬레터를 보내는 일. 그녀는 친구와 영국 여행을 떠나며 작가 데니스 홀리우드를 만나기 위한 계획을 실천에 옮긴다..
여사 특유의 몽환적이고도 섬세한 심리묘사가 발군인 작품으로 환상이 현실 앞에서 잔혹한 얼굴을 드러낼때의 심리를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 역시 이상하게 마무리가 좀 대충대충이라서...

11. 몽상가
비서로 일하는 이저벨은 항상 낭만적인 데이트를 꿈꾸지만 첫 데이트에서 바람을 맞고 만다. 그 후 다시 한 남자에게서 데이트 신청을 받는데...
바로 위의 "가장 잔인한 달"과 굉장히 유사한 작품입니다. 역시 환상과 현실의 갭을 다루고 있으며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심리묘사를 기반으로 스토리가 전개되고 있거든요. 하지만 결정적으로 결말 부분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잔인한 달"의 주인공은 나름 현실을 수긍하며 환상을 전개하는 데 반해 이 작품의 이저벨은 아예 환상속에서 살기로 결심해 버리니까 말이죠. 여사의 글 솜씨를 느끼게 해 주는 작품으로 두 작품 모두 남성인 저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긴 하지만 비교해서 읽으면 읽는 재미가 더욱 살아나는 것 같더군요.

2006/02/12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 민승남 : 별점 3점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 6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민승남 옮김/민음사

"낯선 승객"과 "리플리" 시리즈로 유명한 추리계의 거장 중 한명인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여사의 단편집. (패트리샤라고 하지 않은 것도 좀 재미나네요)
순문학계열 출판물로 유명한 민음사에서 출간되어 의외라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확실히 추리쪽 성향은 덜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더군요. 추리나 서늘한 맛을 기대했지만 의외로 순문학적인 작품들로 구성되어있던 로얄드 달의 "당신을 닮은 사람"과 꽤 유사한 성격이에요.


하지만 로얄드 달의 단편집은 애초 생각과는 다르게, 정말로 순문학에 가까운 글들이 많았던 반면에 이 작품집은 기대한 만큼의 서늘함을 제공해 주는 작품이 많다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대체로 "인간의 본성"을 극한으로 끌어내는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는데 몇몇 작품은 읽으면서 감정이입하다보면 저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게 될 정도로 서늘하고 잔인한(?) 이야기들이거든요.
그밖의 일견 평범해 보이는 이야기들도 단순하지만은 않고 여사만의 독특한 기묘함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또 이야기들의 배경이나 설정이 모두 다르며 다양한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 여사의 다채로운 생활 환경을 반영한 것 같기도 한데 이러한 세부 디테일을 읽어나가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재미를 가져다 줍니다.

일상 생활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소한 사건에서부터 어느정도 큰 사건 (살인 등)을 다루면서도 시종일관 긴장감을 잃지 않고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이렇게 짧은 길이의 작품 안에 담는 솜씨는 정말 "지적인 암살자(?)" 리플리의 창조주 다운 풍모라 생각됩니다. 도대체 다른 어떤 작가가 바구니짜기나 노인 입양같은 이야기로 이런 극한으로 치닫는 심리 묘사를 그려낼 수 있을까요?

범죄나 추리에 가까운 이야기는 많지 않아 추리쪽 장르로 구분하긴 어렵지만 여사의 작품세계를 좋아하는 팬이라면 추리계열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요소가 많다는 것도 마음에 드네요. 최소한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단편집 3권도 빨리 구입해서 읽어보고 싶군요. 별점은 3점입니다.

덧붙이자면, 개인적인 추천작은 "검은 천사가 지켜보다"와 "노인 입양"입니다.

작품별 간략한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1. 고양이가 물어온 것
한적한 시골에서의 한때를 보내던 허버트 부부와 손님들 앞에 키우던 고양이가 물어온 것은 사람의 손가락이었다...
우연찮게 발생한 사건에 휩쓸리며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잘 그려낸 작품.
드라마적인 요소가 강한 소품이지만 순간적인 분노와 폭발하는 심리묘사는 여사님답다는 생각이 드네요.


2.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
뉴요커들 한 무리가 자신들의 친구지만 왠지 거리가 멀어지고 서먹해진 친구인 에드먼드에게 짖궂은 장난을 치는 음모를 꾸미는데,그 친구는 직장과 아내에 이어 목숨마저 잃게 된다...
한 집단의 이지메와 같은 행동을 통해 무심코 저지른 행동이 한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그린 작품.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죽는다"라는 속담이 생각나는데 일종의 집단 광기를 일상생활속에 녹여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맨 뒤의 누군가가 죽은 다음에 찾아오는 일상에 대한 짤막한 묘사도 서늘합니다.

3. 바구니 짜기의 공포
광고 대행사에서 매채 담당자로 일하는 다이앤은 별장에서 한때를 보내던 중 우연히 자신에게 바구니 짜기의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서서히 광기로 빠져들게 되는데..
정말로 기묘한 작품입니다. 한 여성이 우연한 기회에 자신에게 바구니짜기의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그것 때문에 서서히 자신의 통제권을 잃는다는 내용인데 전개 자체는 흔히 접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소재가 너무 독특해서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결말은 의외로 현실적이라 조금 시시하기도 하네요.

4. 검은 천사가 지켜보다
시카고의 골동품업자 리 맨드빌은 자신의 어머니가 있는 양로원 비용때문에 고향집을 팔기 위해 몇년만에 고향에 찾아간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어머니가 이미 몇년전에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종의 사기극이지만 피해자의 입장에서 독특한 시각으로 그리고 있고,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흡사 피해자처럼 보이게 하는 전개가 아주 기묘하면서도 색달랐습니다. 여사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작품 중 하나가 아닐까 싶네요.

5. 네 삶을 경멸해
20살이 된 랠프는 록 밴드 생활을 하며 생활고를 겪어서 아버지에게 원조를 요청하지만 의절당하게 된다.
우리나라에도 있을법한 방탕한 자식과 아버지간의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짤막한 드라마인데 아들 랠프의 심리묘사가 재미난 작품이었습니다. 결말도 인상적이었고요.

6. 에마 C 호의 꿈
남자들만 있는 요트 에마 C 호에 한 미녀가 표류하다 구조되며 에마 C 호의 인간들 사이의 관계가 헝클어지기 시작한다...
한 작지만 공고한 집단 안에 찾아온 불청객으로 관계의 붕괴가 일어나는 작품으로 기묘하면서도 이상할 정도로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습니다.

7. 노인 입양
매킨타이어 부부는 자식도 없던 차에 우연하게 순수한 선의로 포스터 부부라는 노인 부부를 입양하여 돌보게 되는데...
순수한 선의로 진행한 일이 점차 자신들도 통제하지 못하는, 극단으로 치닫는 서늘한 전개에 박수를 보냅니다! 무엇보다도 결말이 대단한 반전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무척이나 참신하고 독특해서 인상적이네요.

8. 로마에서 생긴 일
고위 공무원의 아내인 이사벨라는 남편에 대한 반감과 무료함으로 자신을 쫓아다니는 스토커 우고에게 남편 유괴를 의뢰하는데...
이탈리아를 무대로 미모의 여성과 자작 유괴극이라는 설정이 왠지 "크리시"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인간 관계의 얄팍함을 다루고 있는데 묘사와 디테일은 좋았지만 결말이 시시한 편이라 좀 아쉽더군요.

9. 양손의 떡
잘나가는 뉴요커 해리는 결혼을 앞두고 두 미녀와의 양다리 관계를 즐기며 두명중 한명을 선택하기 위해 저울질 하던 중 즉흥적으로 두 여인을 모두 초대하게 되는데...
한 남성의 독특한 심리를 보여주는 작품. 전혀 이상하지가 않고 자연스러워 보이게끔 하는 묘사가 좋았습니다. 누구나 한번쯤 해봄직한 고민과 실수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그러한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10. 연
폐렴으로 죽은 동생 엘지를 그리워하며 월터는 한번도 본적이 없는 거대한 연을 만들어 날리게 된다.동생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너무 지나쳤고 그 때문에 비극이 발생했다는 내용.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한 소년의 환타지가 어른들에 개입에 의해 비극으로 끝나는 짤막한 동화라 생각됩니다. 어쨌건 소년 시절의 환타지는 거의 다 비극이기 마련이니까....

11. 검은집
팀은 마을 술집에서 자주듣는 마을의 흉가 "검은집"의 정체를 밝히려는 시도를 벌이지만...
환상과 현실의 괴리감에 대한 이야기. 책 뒤에 해설에서 여러 정신분석 이론을 가지고 추가로 설명해 주는데 해설 쪽이 더욱 재미나네요.<

2006/02/11

생각의 지도 - 리처드 니스벳 / 최인철 : 별점 3점

생각의 지도 - 6점
리처드 니스벳 지음, 최인철 옮김/김영사

심리학자 리처드 니스벳의 저서. 종사하고 있는 UI 업무에 도움이 될까 하고 구입한 책입니다.

내용은 리처드 니스벳이 여러 사람들과 함께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동양인과 서양인을 비교 분석한 것입니다. 동양인의 "관계"와 서양인의 "개인" 적인 사고방식을 상세한 설명과 연구를 통해 실증하고 있는데, 흔히 접하는 딱딱하고 어려운 학술서와는 다르게 굉장히 쉽고 재미나게 표현하고 있어서 마음에 드네요.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너무 과장일까요? 그 정도로 책 안에서 설명하는 여러 예들과 실험들이 재미있고 쉽게 쓰여져 있어서 누구나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됩니다.
단지 재미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다양한 조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설득력이 넘치고 논리가 정확하다는 것도 큰 장점이죠. 학술서로 손색없는 정보와 이론을 제공해 주고 있거든요. 읽어 나가면서 여기 등장하는 여러 실험들을 통해 제 자신이 전형적인 동양인이구나.. 하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될 정도로 설문과 분석이 구체적이고 정확합니다. 아울러 이러한 연구의 토대가 되는 설문조사의 방법론 역시 부분적이나마 이해를 할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미국인이기에 동양의 배경에 대한 설명이 가끔 잘못되는 곳도 있고 종교와 역사에 있어 너무 일반론적인 견해를 피력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우려도 약간 들지만 이 책은 역사서가 아니니 자세히 짚고 넘어가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이러한 부분은 번역할때 우리 실정에 맞게끔 조금 보완했으면 더욱 좋았을 것 같은데 약간 아쉽네요.

그래도 책의 제목처럼 동양인과 서양인의 심리상태를 "지도" 처럼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으며, 특히 저같은 오리지널 한국인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서양인의 마인드를 이해 가능한 측면으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에는 높은 점수를 줄 수 밖에 없을 것 같네요. 다른 다양한 심리학 책을 많이 접해봤지만 다른 책들과 비교해 보아서도 굉장히 유익한 경험이라 생각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앞으로 이 책에 나오는 여러 명제들을 제것으로 소화하고 관련 학자들과의 연계를 통해 학술적으로 입증된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시각언어를 개발하고 싶어 집니다.

PS : 그렇다면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시각언어는 과연 무엇일까요? 어떻게 조사를 하고 평가를 해야 할까요? 또다른 의문이 꼬리를 무네요. 

2006/02/09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 시마다 아쓰시 / 김난주 : 별점 4점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 8점
시마다 아쓰시 지음, 김난주 옮김, 이우일 그림/디자인하우스
디자인 하우스에서 출간하는 Essays of Design이라는 시리즈의 세번째 책입니다. 올해부터 전공 관련한 다양한 독서를 해 보고자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참여한 디자이너는 안도 타다오, 이쿠이 에이코, 오오타케 마코토, 가시와기 히로시, 시마다 아쓰시, 구로키 야스오, 시마다 아쓰시, 스나가 다케시, 쓰가네사와 도시히로, 니시카와 기요시, 후지타 하루히코, 미야자키 기요시, 무카이 슈타로, 야무구치 가쓰히로, 요시미 슈운야이며 이들이 직접 써내려간 간략한 에세이와 인터뷰 등으로 이루어진 총 15단락으로 구성된 책입니다. (시마다 아쓰시가 2편의 에세이와 인터뷰어를 맡고 있습니다)

간략한 인터뷰와 디자인에 대한 짧은 담론에서부터 조금은 어려운 디자인의 흐름 및 디자인사, 그리고 디자인의 근보에 깔린 철학적인 문제 등을 고찰하는 내용까지 폭넓은 내용을 담고 있는데 한편한편이 다 짤막하고 나름의 재미도 충분하더군요. 덕분에 쉽게 읽을 수 있었어요.
디자인을 전공하기는 했지만 디자인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그다지 궁금증을 가지고 살아오지 않았었는데, 여러 선배(?) 디자이너들의 다양한 주장을 통해 조금이나마 식견을 넓힐 수 있었던 것 같아 만족스럽기도 하고요.
무엇보다도 항상 궁금증을 가지고 새로운 것을 연구하면서도 근간에는 인간이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는, 그리고 환경과 세계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여러 의견들을 설득력있게 전개하는 논리와 근거, 그 바탕에 깔린 학문적 깊이와 경험에는 감탄할 수 밖에 없네요.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그것을 뒷받침 하는 논리와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겠죠.
또한 견문을 넓히기 위한 다양한 여행과 박물관, 전시회의 관람을 조언하며 글 속에서 인용한 여러 참고문헌과 추천하는 도서들의 목록 역시 제 자신의 게으름을 무척이나 자극합니다.

일단 저도 단순하게 흘러가는 일상이 아닌 매사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고민이 필요한 나이인 만큼 여러가지 시도해 봐야겠습니다. 일단 오오타케 마코토씨가 이야기하는 대로 거리에 대한 새로운 발견부터 시작해 볼까요? 오늘 자기전에 디카를 충전해 놓아야 겠습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기억할 만한 몇가지 문장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디자인 = 생활
디자인은 타자와의 대화가 가능해야 한다
눈으로 포착할 수 없는 것을 아이디어로 포착한다
디자이너도 마케터가 되자
디자인은 실천이다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것은 설득력이다
디자인 = 사건을 형태의 틀 속에 집어 넣는 것 >> 사물과 인간이 협조하고 서로 작용하는 상황 = "사건"
"무엇을" 과 "왜"를 생각한다
디자인은 사람 마음의 꽃이다
인간은 디자인을 하면서 살고 있다 

2006/02/08

살인자들의 섬 (Shutter Island) - 데니스 루헤인 / 김승욱 : 별점 4점

살인자들의 섬 - 8점
데니스 루헤인 지음, 김승욱 옮김/황금가지

연방보안관 테디(에드워드)는 화려한 군 경력을 지닌 역전의 용사지만 아내가 방화에 의해 죽은 트라우마로 괴로워하는 인물. 그는 파트너 처키와 함께 비밀임무를 띄고 수수께끼의 정신병원이 있는 외딴섬으로 향한다. 표면적으로는 병동에서 불가사의하게 사라진 레이첼 솔란도라는 여성 환자의 수사. 그러나 그는 헐리 상원의원의 특명으로 정신병원 내부에 만연하는 불법 시술을 밝히는 임무와 함께 아내를 죽게한 방화범 레이디스에 대한 개인적인 복수심을 품고 수사에 임하게 된다.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불어닥친 허리케인으로 고립된 테디와 처키는 레이첼 솔란도가 남긴 암호를 해독하며 진상에 접근해 나아가며, 허리케인으로 병원 내부의 감시가 허술해진 틈을 타 직접 행동에 나서게 되는데....

"미스틱 리버"의 작가 데니스 루헤인의 장편. 이 작가의 책을 읽어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사실 스릴러물이라 불리우는 이런 쟝르도 굉장히 좋아하긴 하지만 그동안 읽어 보았던 현대 미국 작가의 책은 헐리우드 영화에서 많이 본 듯한 뻔한 내용이 많아서 최근에는 별로 읽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동안의 저의 선입견을 완전히 깨버리네요. 한마디로 물건입니다. 현실과 망상을 오가는 전개와 묘사의 탁월성도 놀랍지만 독자를 빨아들이는 재미와 몰입도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입니다. 하루만에 다 읽어버릴 정도의 대단한 흡입력, 그리고. 서두와 결말, 그리고 놀라운 반전까지 한치의 오차 없는 치밀한 구성과 함께 중간중간의 디테일한 묘사까지도 책의 내용과 완벽하게 부합된다는 것에서 작가의 어마어마한 내공과 역량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스릴러물이라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는데 나름의 "암호트릭"이 등장하는 것도 추리 매니아로서 상당히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어요. 정통파 추리물로 보기에는 조금 부족할 수도 있지만 내용에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작품의 재미를 충분히 살려주는 조미료 같은 역할을 잘 해 내었다고 생각되네요.

그러나 딱 한가지, 반전 이후에 나오는 에필로그와 같은 마지막 날 오전의 풍경은 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잡역부 중 한사람이 나르던 물건은 과연 뭐였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기고요. 또 주인공 테디의 캐릭터는 작품 설정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으리라 생각은 되지만 이런 류의 작품에 항상 나오는 스테레오 타입 (터프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지닌 트라우마로 괴로워 하며 자살 충동마저 느낀다는) 이라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그간 읽은 미국식 스릴러의 천편일률적인 전개에 질렸던 참인데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은 책이었습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고 읽었기 때문에 더욱 즐거웠던 것 같네요. 미스틱 리버도 읽어봐야겠다는 것과 앞으로 현대 미국 작가 책도 눈여겨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작품으로 별점은 4점입니다.

영화화 이야기도 있는데 책의 내용만 잘 살린다면 "야곱의 사다리" 못지않은 이바닥의 수작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물론 잘 살린다는 것이 어려운 이야기겠지만요.... 

2006/02/06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 하네 - 우타노 쇼고 / 김성기 : 별점 4점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 8점
우타노 쇼고 지음/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나루세는 경비원과 컴퓨터 강사 등의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던 중, 친한 고등학교 후배 기요시로부터 뺑소니 사건의 진상 조사를 요청 받는다. 피해자 구다카 류이치로는 대기업 임원 출신으로 호라이 클럽이라는 악덕 단체에게 수천만엔을 사기당한 상태였기에 나루세는 과거 탐정사무소에서 일했던 기억을 되살려 호라이 클럽의 정체를 밝히는데 힘을 기울인다. 이러한 와중에도 그가 우연히 자살하는 현장에서 구해준 사쿠라에 대한 감정은 점차 깊어만 가는데...

신본격 1세대 작가중 한명이라는 우타노 쇼고의 작품으로 최근 일본 신본격물을 다양하게 출간해 주는 한스미디어에서 간행된 책입니다. 작가와 작품은 사실 잘 알지 못했지만 워낙 팬들의 평이 좋아서 구입하게 되었네요.

작중의 악당이라 할 수 있는 악덕 판매 조직인 호라이 클럽과 그들의 마수에 걸려든 피해자들에 대한 묘사와 전개가 현실적이면서도 리얼리티가 넘친다는 점에서는 기존 사회파 추리 소설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약간 암울하고 비장한 맛이 있는 사회파 추리소설과는 다르게 캐릭터가 굉장히 돋보인다는 점이 독특하고 좋았습니다. 또한 작품 전체에 흐르는 약간은 비뚤어졌지만 독특한 유머 감각도 돋보이는 부분이었고요. 덕분에 지루함없이 굉장히 재미있게,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에 읽어 내려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팬들이 꼭 지적했던 반전! 꼼꼼하게 짜여진 복선과 여러 에피소드들이 하나로 연결되는, 모든 것을 한번에 정리하는 반전은 정말 대단합니다. 한마디로 무릎을(!) 치게 만들어요. 사실 추리적으로 대단한 점이 있다기 보다는 반전에 작품의 대부분을 걸고 있는 작품이라서 신본격 작가다운 느낌은 덜하지만 워낙에 뛰어난 탓에 그다지 흠으로 느껴지지 않네요.
신본격 작가에게서 기대해봄직한 추리적 요소는 기둥 줄거리가 아니라 작품속에 등장하는 나루세의 과거 탐정 사무소 직원일때의 야쿠자 살해 사건에 대한 이야기에서 심심치 않게 풀어주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든 점이에요. 줄거리와 큰 관련이 있는 에피소드로 보기는 힘들었지만 어느정도 작가의 네임벨류에 어울리는 제법 괜찮은 트릭을 보여주거든요.

지나치게 반전을 의식한 전개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며 번역본의 한계 탓에 몇몇 허술해 보이는 부분이 약간 눈에 거슬리지만 묘사와 설정 등 모든 부분에서 꽉 짜여진, 이러한 서술트릭 반전물 중에서도 높은 설득력을 지니는 작품입니다. 물론 "재미" 측면에서도 합격점이고요. 추리 소설 애호가라면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라 생각되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PS : 그나저나 표지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네요.... 제목도 약간 멜랑꼴리(?)한데 저 소녀틱한 일러스트때문에 말랑말랑한 느낌이 더욱 강해진 듯 해서 불만스럽군요.

2006/02/05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 페터 회 / 박현주 : 별점 2.5점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 6점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마음산책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코펜하겐의 한 아파트 옥상에서 어린 소년이 추락사한다. 경찰은 단순한 실족사로 처리하지만 같은 건물에 사는 스밀라는 특유의 관찰력을 통해 소년이 눈 위에 남긴 발자국을 분석하고 소년의 고소공포증을 기억해 내어 소년이 살해당한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죽은 소년의 집에서 발견해낸 편지, 소년이 비밀장소에 남긴 녹음 테이프 등을 단서 삼아 수수께끼를 풀어나가기 시작한 스밀라는 "빙정석 주식회사"라는 회사의 탐사선 소속이던 소년의 아버지의 죽음과 이 사건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결국 스밀라는 수수께끼 가득한 탐사의 목적과 진상을 밝히기 위해 스스로 위험속에 뛰어드는데....

이누이트 사냥꾼과 덴마크 의사 사이의 혼혈아 스밀라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 일단 추리소설의 맥락을 따르고는 있습니다. 같은 건물에 사는 소년 이사야의 알 수 없는 죽음에서 스밀라가 이 사건을 조사해 나가면서 사건이 점차 확대되어 나가는, 그리고 그 뒤에 있는 거대한 음모와 조직, 진상을 파악해간다는 내용의 얼개 자체는 하드보일드와 상당히 유사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작품 전체를 놓고 본다면 추리소설이라는 말이 어울리지는 않습니다. 추리적으로는 그다지 돋보이는 점도 없고, 드라마와 심리 묘사가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며 진상을 밝히려는 이유에 대해 설득력도 부족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건의 진상 자체가 저에게는 전혀! 와 닿지 않았어요. 범행의 바탕이 되는 조직이 스케일에 비해 허술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작가가 복잡한 인간 드라마, 그것도 그린란드에 관련된 이야기를 쓰고 싶은데 그냥 쓰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지루한 내용이라서 추리소설의 형식을 차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게다가 읽는 것도 너무 힘들었어요. 완전한 스밀라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데 심리 상태가 너무나 디테일하고 문체 또한 과도할 정도로 현란해서 스토리의 큰 줄기를 따라가는 데에 지장을 줄 정도거든요.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인간관계가 다른 작품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읽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렵기도 하고요. 페이지수와 등장인물 수도 만만치 않기에 더 복잡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캐릭터 일람을 정리해서 같이 들고다니면서 읽을 정도였어요.

이누이트들의 생활이나 항해의 디테일 등 작가의 치밀한 연구가 돋보이는 장면은 좋았지만 작품에 그다지 녹아들어가지 않는 현학적 정보의 나열이라는 인상이 강하다는 점, "눈에 대한 감각"이라는 특수 능력이 부여된 이누이트 혼혈 노처녀 탐정이라는 캐릭터는 분명 특이하나 성격이 복잡하고 즉흥적인 부분이 있어서 그닥 친숙하게 와 닿지 않는다는 점도 감점 요인이고요.

북구의 땅에서 우연히 발생한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나중에는 북구의 얼어붙은 극점 가까이까지 나아가는 행동... 이러한 설정은 마틴 크루즈 스미스의 "고리키 파크"와 "북극성"과 굉장히 유사하기도 해서 비교가 되는데 저는 마틴 크루즈 스미스의 아르카디 렌코 시리즈쪽이 더 마음에 드네요. 여러가지 복잡한 감정으로 가득찬 이누이트 혼혈아 스밀라보다는 우직하게 한길만 파는 우울한 소련인 아르카디 렌코가 제 취향일 뿐더러 뭐랄까, 더 깔끔하고 정리된 듯한 인상을 심어주니까요.

여튼, 평도 좋고 좋아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저한테는 단순하면서도 간단 명료한 작품이 더 맞는게 아닐까 싶더군요. 저는 400페이지 넘어가는 작품은 중간에 집중력을 상실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며칠에 걸쳐 600페이지를 넘는 작품을 완독했다는 것에 위안을 삼아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06/02/04

four things....

four things.... 四가지...

이런 문답은 별로 하지 않지만 내용이 꽤 재미있네요. 석원님 블로그에서 트랙백 합니다.


Four Jobs I’ve had in my life

1. 미술학원 강사 : 대학 1,2학년때 평면구성 강사생활을 2년 정도 했죠. 군대 갔다 온 후 입시 제도가 바뀌어서 실직...
2. 그래픽 / 캐릭터 디자이너 : 뭐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힘들었지만.
3. 웹디자이너 : 뭐 역시나 좋은 경험이었죠.
4. UI / GUI 기획자 : 현직입니다.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Four movies I can watch over and over

1. 영웅본색 1편 : 10번은 넘게 본 듯. 볼때마다 감동
2. 천공의 성 라퓨타 : 저를 디자인과로 이끈 작품이죠.
3.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 역시 10번도 넘게 본.... 유머와 액션, 멜로물로서의 가치까지 넘치는 멋진 작품.
4. 열혈남아 (몽콕하문) : 개인적으로 평가하기에는 왕가위의 최고작입니다. DVD도 샀지만 제 기억속의 버젼이 아니라 좌절중....

-사실 한번 본 영화를 또 보는 경우는 드물지만... 개중 많이 본 영화만 생각나는데로 써 봤습니다. 안 보신 분들은 지금 보셔도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듯.


Four places I have lived

1. 서초구 반포동
2. 도봉구 창동
3. 인천
4. 방배동

-이사가 잦아서 4곳으로는 부족하군요. 이후 여의도를 거쳐 현재는 영등포 거주. 곧 또 이사가지만요.


Four TV shows I love to watch

1. 프렌즈: 언급할 필요도 없겠죠. 너무나 좋아하는 시리즈입니다.
2. Monk : 1,2 시즌만 열심히 봤지만 그래도 좋아합니다.
3. 후루하타 닌자부로 : 역시 1,2 시즌만... 그래도 멋짐!
4. 춤추는 대 수사선 : 이 시리즈 역시 열광했었죠. 한때 팬 페이지를 만들 생각까지....


Four places I have been on vacation

1. 동경 : 아무리 가도 질리지가 않네요.
2. 제주도 : 몇번 안 가봤지만 다시 가 보고 싶어지는 곳입니다.
3. 서점 : 독서가 취미인지라 틈 날때 마다 장소 불문하고 자주 가게 되는 곳이죠. 헌책방 투어도 자주 합니다.
4. 한양문고 : 홍대앞 만화 전문 서점. 역시 틈날때 마다....


Four websites I visit daily

1. 이글루스 블로그
2. 파울볼 : 워낙 야구를 좋아하기에 자주 가는 야구 관련 커뮤니티 입니다.
3, 네이버 : 검색, 뉴스 기타 등등 많이 이용하게 되더군요.
4. 알라딘 : 매일은 아니지만... 자주 이용합니다.


Four of my favorite foods

1. 닭종류 : 튀김이나 찜 등 닭은 다 좋아합니다.
2. 우동 : 면 종류는 다 좋아하지만 겨울이니 따끈한 걸로^^
3. 새우 : 튀김도 좋고 소금구이도 좋고... 철마다 한번은 먹어줘야죠.
4. 치즈 : 앉은 자리에서 한통 다 먹기도 합니다.

- 4개 가지고는 부족하지만 생각나는 것만 써 봤습니다.


Four places I would rather be right now

1. 여자친구님이 부르는 곳, 어디던.... : 당연히 1순위입니다.^^
2. 코리안 시리즈 7차전 경기장. 두산 경기 : 코리안 시리즈의 승자가 결정되는 최후의 한판승부의 장! 그것도 두산 경기! 몇번 없었던 일이고 그때에도 가보지 않았지만 다음에 이런 일이 생기면 꼭 갈겁니다. 하지만 쉬는 날이어야 할텐데...
3. 대폭 세일하는 의류 할인 매장 : 좋아하는 브랜드에 한해서 입니다.
4. 친구들과의 술자리 : 누가 쏜다면 두말할 것 없고요.

- 어떻게 보면 굉장히 소박하지만 현실적인 것만 적어 보았습니다.


Four bloggers I’m tagging
 
1.
2.
3.
4.

- ^^;;

2006/02/03

후쿠오카 명과 히요코

사촌 여동생이 일본 여행을 갔다 오며 집에 들려 선물로 준 과자입니다. 후쿠오카의 명과라고 하는데 정말로 유명한지는 잘 모르겠네요. 어쨌건 일본 과자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건 무척 맛있습니다! 부드러운 빵같은 재질의 표면 안에 노란색의 달콤한 내용물이 들어있는 과자로 너무 달지도 않고 부드러워 차와 함께 먹으면 정말 딱 좋더군요.

거기에 모양도 병아리 모양으로 무척이나 귀엽게 생겨 더욱 마음에 듭니다. 새모양 과자라 러프의 야마토와 니노미야 가문이 만들법한 과자로 보여 더 정감이 가네요.

포스팅 할 거리가 마땅치 않아 시간대를 본다면 테러성이긴 하지만 한번 올려봅니다.
밤이라 한번에 여러개 먹기는 좀 부담되니 이제 한개만 더 먹고 자야죠. 여러분들도 야식은 과식하지 마세요.^^

2006/02/01

と/to - 小泉 誠 : 별점 3점

이제는 꽤 된 것 같은 저번 일본 여행의 수확물도 이제 끝물에 다다른 것 같군요. 일본의 리빙 디자이너 小泉 誠 의 개인 작품집입니다.

전부 90페이지밖에 안되는 얇은 분량에 비하면 가격은 제법 비싸지만 (1000엔) 사진과 일러스트가 멋지고 예뻐서 주저없이 구입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여행에서 구입한 거의 유일한 새책이기도 하네요. 커버와 장정, 종이도 고급스럽고 정방형의 디자인으로 각 챕터마다 손으로 돌려보게끔 90도 각도로 편집하여 짧지만 귀엽고 읽는 재미를 느끼게하는 책이었습니다. 출판-인쇄 강국으로서의 일본의 위상을 잘 느끼게 해 주더군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꼭 팬시상품 같은 느낌도 들지만 각 챕터마다 곁들여진 간단한 에세이를 통해 디자이너로서의 철학과 심정을 잘 느낄 수 있어서 디자인과 출신으로서도 꽤 공부가 되고 배울점도 많았던 그런 책입니다. 리빙 디자이너라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이 목재 가구와 소품인데 아이디어도 기발하지만 소재와 제작 방법에 있어서도 연구하고 신경쓴 여러 모습은 정말 본받을 만 한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W-clock 이라는, 그냥 보면 구멍뚫린 알루미늄 파이프 같은 제품이 있는데 서랍속에 처박혀 있는 손목시계를 감아서 시계판을 구멍을 통해 보도록 하는 새로운 시계의 개념을 창출한 제품은 저도 하나 구입하고 싶어질 정도로 매력적이었어요.

책의 성격상 제 또래보다는 15년 정도 아래의 학생들이 보면 딱 좋을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여러모로 구입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또 제가 일본에 갔었을 때 디자인 부분 베스트셀러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었기도 했고요^^)

국내에서도 이제 디자인의 중요성이 높아져 가는 만큼 이런 책이 다양하게 기획되어 시리즈로 출간되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