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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15

골프코스의 인어들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 민승남 : 별점 2점

골프 코스의 인어들 - 4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민승남 옮김/민음사
연달아 읽어버린 하이스미스 여사의 단편집 두번째. 원래는 이 작품이 세번째 단편집이고 먼저 읽었던 "당신은 우리와 어울리지 않아"가 두번째 단편집이라고합니다. 첫번째 단편집을 착오로 구입 못해 순서가 좀 바뀌어 버렸네요. 뭐 단편집이니까 그건 별로 중요하진 않겠지만요. 여튼, 전에 읽었던 단편집이 워낙 마음에 들었기에 나름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솔직히 실망스러웠어요. 이전 단편집에서 언급한 로얄드 달의 "당신을 닮은 사람" 같달까요? 한마디로 심심합니다. 의표를 찌르는 맛이나 독자의 감정을 살살 건드리는 맛은 거의 없고, 세밀한 심리묘사에 더욱 치중한 경향이 강하거든요.
작품들 개개의 결말도 그다지 와 닿지 않더군요. 저는 단편소설에서는 여운을 남기던, 반전이 있던 어쨌거나 결말의 끝맺음이 작품에서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단편집에서는 대체로 애매모호하고 시시하게 처리하는 작품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결말에서 이상할 정도로 해피엔딩이 많았던 것이 특히나 불만스러워요. 저는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편인데도 하이스미스 여사 작품에서의 해피엔딩이라니 이건 정말 아니올시다죠. 배신감을 느꼈달까요?
그나마 역시나! 싶은 이 단편집의 베스트는 "난데없이 날아온 총알"과 "애완동물 공동묘지"입니다.

물론 특유의 불편한 인간 관계 설정과 심리묘사, 시대를 앞서가는 상상력과 기발한 발상을 토대로 한 전개는 여전합니다. 역자가 해설에서 카뮤의 "이방인"을 언급하기도 하지만 충분히 그정도의 임팩트는 있는 작품들로 채워져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문장과 설정에서의 몽환적인 느낌은 확실히 거장의 풍모를 전해줍니다.

그래도 확실히... 전작보다는 좀 읽는 맛은 확실히 덜 했습니다. 전에도 이야기했던 독특한, 기묘한 맛은 거의 없고 그냥저냥한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읽는 기분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제가 기대가 너무 큰 탓도 있긴 하겠만요. 때문에 별점은 2점입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다른 시리즈의 구입을 망설이게 되네요. 지금까지 5할의 확률이니 기대를 한번 더 걸어봐야 하겠지만...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1. 골프 코스의 인어들
대통령의 생명을 구한 교수의 환상과 애증 이야기랄까요? 골프 코스의 인어들이라는 제목과 발상 자체는 기발하기 그지 없지만 그다지 끌리는 요소는 없었습니다.

2. 단추
다운 증후군에 걸린 아들과 아들 때문에 변해가는 아내 탓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던 회계사 롤랜드는 어느날 밤 갑작스럽게 충동적인 살인을 저지르는데...
일상 생활속에서의 평범한 사람의 심리가 급작스럽게 변해가는 과정과 그 결말을 디테일하게 그린 수작입니다. 역자가 "이방인"을 언급한 작품으로 그만큼 순문학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작품으로 보이네요. 하지만 나름 해피엔딩이라는 것이 결정적인 감점 요소로 보입니다. 막판에 힘이 팍 풀려버리는 바람에 뫼르소 만큼의 고뇌를 롤랜드가 끝까지 보여주지는 못하게 되거든요.

3. 우연한 특종
별볼일 없는 지방신문 사진 기자 크레이그는 어느날 우연히 찍은 성폭행 피해자의 사진 한장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날리게 된다. 
평범한 일반인이 우연으로 성공하게 되지만 그 뒤에 도사린 죄책감과 결국 성공이라는 열매때문에 모든 것을 무시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린 작품입니다. 매스미디어의 속성을 비판한 작품으로 보이는데 독특한 전개와 발상에 비해서 왠지 묘사의 섬세함이 좀 떨어지는 작품이더군요. 결말도 시시하고요.

4. 크리스의 마지막 파티
자신을 배우의 길로 이끈 크리스 웰스의 죽음을 앞두고 배우 사이먼은 취리히로 달려간다. 그리고 그는 과거의 일과 현재를 돌아보게 되는데...
솔직히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더군요. 사이먼에게 있어서 크리스의 존재가 무엇이었는지, 그의 죽음으로 무엇이 변했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추억과의 결별이 닥쳤을때의 심리묘사랄까요? 깊이 생각하자면 메시지를 많이 전해주기도 하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알맹이 없는 공허한 작품이었습니다.

5. 크리스마스에 사라진 시계
자수성가한 샤를과 부호의 딸인 미셸은 서로 사랑하는 부부지만 미셸이 도와준 거리의 소년이 샤를의 물건을 훔쳐가면서 둘 사이에 서서히 금이 가게 되는데...
부유한 부부와 거리의 소년에 대한 자세한 설정과 심리묘사는 모파상을 연상케 했던 작품입니다. 하지만 출신성분이 다른 두사람의 갭은 디테일하게 잘 표현되어 있어 디킨즈 작품같은 느낌도 가져다 줍니다. 하지만... 기둥 스토리 자체와 결말이 시시한 편이라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6. 난데없이 날아온 총알
미국 청년 앤드류는 멕시코의 호텔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한 소년이 총에 맞아 죽는 것을 보고 신고하게 된다. 그러나 오히려 그가 범인으로 몰려 악몽과 같은 하루를 보내게 된다.
한 평범한 청년에게 닥친 악몽과도 같은 하루를 다루고 있는 드라마틱한 작품입니다. 작품 자체에 생기가 가득 넘치는 것이 이 단편집에서 단연 돋보이더군요. 뭐 이야기 자체는 뻔하긴 했습니다만....

7. 애완동물 공동묘지
변호사 크리스토퍼는 키워왔던 애완동물을 박제로 만드는 아내 페니의 취미를 싫어했지만 그 취미가 기사화되자 과거에 억눌러 왔던 감정들이 북받쳐 복수심으로 발전한다.
제목 그대로 애완동물의 공동묘지와 같은 기묘한 취미와 더욱 기묘한 방법으로 복수(?)하는 남편의 이야기를 기묘하게 다룬 여사다운 단편입니다. 제목만 보고는 스티븐 킹 작품을 연상하긴 했지만 역시나 전혀 분위기가 다르더군요. 덜 자극적이고 원색적이지만 왠지 더 우울하고 기묘한, 아주 독특한 작품이었습니다.

8. 어쩌면 다음 생에
고독하고 외롭게 살아가는 엘리너는 어느 날 부터 유령과 같은 "그"를 보게 된다. 그와 엘리너는 서로 생활을 공유하며 가까와지지만 "그"는 결코 착하지 않은 존재였다.
여사님이 이런 작품까지 쓰셨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전형적인 유령 공포 환상 괴담이자 심리학적으로도 눈여겨 볼 만한 곳이 많은 디테일한 작품이네요. 주인공 여성 엘리너의 애절한(?) 삶과 사고방식이 전혀 공감되지 않아 높은 점수를 줄 순 없었지만 여러모로 수준 높은 작품이었다 생각됩니다. 

9. 나는 남들만큼 유능하지 못해
세일즈맨 랠프는 주말 별장 이웃인 에드와 그레이스 부부의 척척박사와 같은 작업들에 컴플렉스를 느끼며 불안해 하던 중 별장에 초대한 프랜시스라는 아가씨와의 하루를 보내게 되는데...
일종의 현대인의 스트레스와 불안을 한 남자에게 빗대어서 조금은 유머스럽게 표현한 작품입니다. 결국 주인공이 폭주하게 되지만 그나마 해피엔딩이라는 데 현대인으로서 안도감을 느낍니다.

10. 가장 잔인한 달
영어교사 오딜의 취미는 소설가들에게 개인적인 팬레터를 보내는 일. 그녀는 친구와 영국 여행을 떠나며 작가 데니스 홀리우드를 만나기 위한 계획을 실천에 옮긴다..
여사 특유의 몽환적이고도 섬세한 심리묘사가 발군인 작품으로 환상이 현실 앞에서 잔혹한 얼굴을 드러낼때의 심리를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 역시 이상하게 마무리가 좀 대충대충이라서...

11. 몽상가
비서로 일하는 이저벨은 항상 낭만적인 데이트를 꿈꾸지만 첫 데이트에서 바람을 맞고 만다. 그 후 다시 한 남자에게서 데이트 신청을 받는데...
바로 위의 "가장 잔인한 달"과 굉장히 유사한 작품입니다. 역시 환상과 현실의 갭을 다루고 있으며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심리묘사를 기반으로 스토리가 전개되고 있거든요. 하지만 결정적으로 결말 부분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잔인한 달"의 주인공은 나름 현실을 수긍하며 환상을 전개하는 데 반해 이 작품의 이저벨은 아예 환상속에서 살기로 결심해 버리니까 말이죠. 여사의 글 솜씨를 느끼게 해 주는 작품으로 두 작품 모두 남성인 저에게는 크게 와 닿지 않긴 하지만 비교해서 읽으면 읽는 재미가 더욱 살아나는 것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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