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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22

갈라파고스 - 커트 보네커트 / 박웅희 : 별점 4점

갈라파고스 - 8점
커트 보네거트 지음, 박웅희 옮김/아이필드

"제 5 도살장"의 커트 보네커트의 또다른 장편입니다. 여담이겠지만 저는 "제 5 도살장"을 무척 좋아합니다. 작년에 읽은 최고의 책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요. 두번 읽기는 조금 까칠하나 읽으면서 느껴지는 재미와 흥분은 분명히 기억되는, 그런 책이었죠. 때문에 이 작품도 꽤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장편보다는 중편에 가까운 분량으로 읽기도 쉬운 편이지만 통 시간이 나지 않아서 1주일 정도의 시간을 투자해서 이제야 겨우 다 읽었네요.

읽고나서 생각해보니 "제 5 도살장"의 판박이 같은 작품으로도 보입니다. 이 작품 역시 작품 안에서 재기발랄한 모자이크같은 전개 방식과 끝도 없는 수다, 그리고 실제 작중의 주인공과 100만년뒤의 시공에서 그들을 회상하는 레온 트라우트의 시점이 오가는 독특한 구조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마지막 아담과 이브, 생존자들을 살기도 힘든 갈라파고스 섬이라는 곳에 데려다 놓는 등의 잔인하고 썰렁한 유머에서도 그런 인상을 강하게 받았고요. 무엇보다도 "제 5 도살장"에도 등장했던 SF작가 킬고어 트라우트가 등장하는 탓도 큽니다.

하지만 전쟁의 찬혹함을 나름대로 묘사했던 "제 5 도살장"과는 다르게 SF적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인간과 문명의 무기력함과 불필요함을 역설하는 것은 이채로왔습니다. "뇌가 큰 것이 가장 악한"일이라는 작가의 메시지가 작품 전체에서 일관되게 제시되고 있고, 작중에서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 통역기 (혹은 컴퓨터) 만다락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에서도 작가의 의도를 진하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본능에 의거한 퇴화를 설득력있게 제시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겠죠.

이렇듯 유머와 재미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가면서도 그 속에 숨겨진, 혹은 노골적인 메시지까지 잘 드러나기 때문에 여운이 남는 좋은 작품으로 탄생한 것 같습니다. 유머의 감각이 워낙 독특하고 성(性)적인 곳에서 노골적이고도 불편한 요소도 있어서 독자의 취향에 따라 여러 평이 엇갈릴 수 있는 작가이긴 하지만 이 작품속의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읽는 것 만으로도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책 후기에 소개되었었던 작가의 단편집도 기대됩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덧 1 :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케빈 코스트너의 저주받은 실패작 "워터월드"에 분명 영향을 주었으리라 판단됩니다. 지구 멸망(?) 후 갈라파고스 섬에서의 바다를 벗삼아 살아가는 생존자들의 일상에서 계속 "워터월드"가 오버랩 되더군요. 저만 그런 건가요?

덧 2 : 이 작가의 전개방식으로 무협지를 써도 무척 재미나겠더군요. 누가 죽는지 앞에서 알려주는데도 뒷 부분이 이렇게 궁금해지는 전개야 말로 무협지에 딱 맞는 거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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