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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30

John Doe

어느날 알몸의 한 사나이가 어딘가를 탈출하여 바다위에 표류하고 있는 채로 발견된다. 그는 그가 누구인지, 과거에 무엇을 했는지, 가족과 친구는 누구인지에 대한 모든 자신의 기억을 잃어버린 상태. 하지만 그는 그 자신이 천재이며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자신에 대한 것만 제외하고...

그는 자신을 "John Doe"라 칭하고 자신을 찾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게 되며, 그 와중에 경찰 헤이즈와의 우정을 맺고 여러 사건에 뛰어들게 되는데...


2002년부터 Fox TV에서 방영했다는 시리즈물입니다. "미스테리 맨"인가 하는 제목으로 e-Channel에서 방영한 모양인데 그때 보지는 못했고 이후에 추리쪽 성향이 강하다고 해서 어렵사리 구해 보았는데 예상외로 재미있더군요.

이 작품의 핵심은 주인공 John Doe의 경이에 가까운 지적 능력, 한마디로 이야기한다면 "세상의 모든 정보를 머리에 담고 있는" 사람 이라는 것인데 예를 들자면 MS DOS의 모든 이진법 코드를 외우는 것에서 시작해서 처음 피아노 앞에 앉아 재즈곡을 연주하며 현장에서 루미놀 시약을 만들고 헬기를 타자마자 조종하며 검시와 컴퓨터, 외국어, 모든 기계에 통달해 있는 등 어떻게 보면 "사기"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극중에서는 상당히 현실감 있게 지적 능력을 펼치고 있게 포장해서 그다지 위화감은 없었습니다. 다이잉 메시지나 주소, 단서를 현장에서 한번 쓱 보고 결과를 추론하는 과정은 굉장히 색다른 재미를 가져다 주기도 하고요. 하지만 해킹을 하거나 인터넷에서 정보를 검색 하는 쪽은 확실히 오버의 티가 팍팍 나긴 하더군요. 뭐 이런 오버를 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는 있었습니다.

이러한 지적 능력에 별도로 수수께끼에 감춰진 존재라는 옵션, 이름 부터 "아무개"라고 설정되어 있으니 독특한 시리즈 탐정역으로서의 캐릭터로는 괜찮은 편으로 보입니다. "CSI" 요원들을 하나로 뭉쳐놓은 듯한 캐릭터인데 달리 생각해 보면 만화 "QED"의 토마와 흡사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요. 그러고 보니 "QED"에도 "John Doe"라는 캐릭터가 나오는 괜찮은 에피소드가 있었던 기억도 나네요.

이렇듯 천재의 두뇌에서 발휘되는 지적 추론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인지 추리쪽으로는 비교적 정통물에 가깝습니다. 현장에 남긴 범인의 단서를 가지고 전체를 추리하는 방식이 대부분으로 상상력에는 거의 의지하지 않는 편이라 마음에 들더군요. 거기에 가끔 맥가이버 같은 장면도 등장하니 금상첨화입니다.

약간 느끼하게 생긴 주인공은 그냥저냥이었지만 유머러스하고 행동적인 친구 헤이즈의 캐릭터도 마음에 들고 시시콜콜 따지기 좋아하는 여검사 제이미는 스테레오 타입이기는 하나 그다지 거슬리지 않게 잘 어울리고 있습니다. 뭐 이 정도면 일단 등장인물들은 모두 합격점을 줄 만 하죠. 개인적으로는 "조수"역의 카렌이라는 캐릭터가 굉장히 별로라 생각되었는데 중반 이후부터는 다행히도 비중이 팍! 줄더군요.

에피소드는 크게 주인공이 자신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과 그에 관련된, 또는 관련된 것 같은, 또는 전혀 다른 사건들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사건도 유괴, 복수극, 연쇄살인, 보석 도난 등 다양하게 펼쳐져서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의 베일에 싸인 정체와 몸에 새겨진 문신의 의미, 그를 추적하는 수수께끼의 조직 같은 이야기는 제가 생각하기에는 프로듀서가 조금 실수한것 같아요. 그냥 천재라고 설정했으면 보다 이야기가 쉬웠을 것을 뭔가 감춰진 것 같은 스토리 전개로 진행되다 보니 John Doe의 과거에 대한 미스테리는 X-File 짝퉁같은 느낌까지 주는 식의 연출로 흘러가서 그에 관련된 이야기는 별로 재미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뭐 이 가공할 만한 지적 능력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로 설정된 것이긴 하지만 오히려 비현실성과 만화같은 분위기만 느껴져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그래도 정통 추리물로 볼 수 있는 다른 에피소드들은 상당히 흡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다 유머러스하고 확고한 캐릭터들을 가지고 이야기를 전개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긴 하지만 한번 정도 보면서 즐길만 한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저도 12화까지 밖에 아직 보진 못했지만 차분히 끝까지 즐겨 봐야죠.

2005/05/25

야망의 덫 - 다카기 아키미쓰 / 백야성 : 별점 4점

증권회사에서 촉망받는 젊은이로 야망에 불타는 세가와 시게오는 연이은 실패로 알거지가 된 채 퇴사를 하게되지만, 일찌기 알고 지내던 친구 야마구치 가즈미의 소개 및 상당한 수준의 월급에 끌려 사까이 미끼오라는 사나이가 이끄는 정체불명의 회사에 입사한다. 하지만 사까이 미끼오의 정체는 스파이 회사의 사장으로, 그는 세가와에게 옛 친구 오기노가 상무로 있는 "시찌요오 화학"이 최신 개발하고 있는 일종의 첨가제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 줄 것을 요청한다. 
큰 돈, 그리고 과거 자신의 연인이었던 오기노의 아내 에이꼬에 대한 감정이 얽힌 세가와는 산업 스파이로서 활동을 시작하나 오기노에게 밀고가 들어와 오기노에게 모욕당하고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 그러나 그 직후 오기노가 교살된 시체로 발견되고, 세가와를 보호해 주기 위해 가즈미는 둘이서 거짓 알리바이를 만들어 서로 입을 맞추나 가즈미마저 살해된 뒤, 현장에서 도망치는 세가와를 목격한 목격자까지 등장하자 경찰은 세가와를 범인으로 지목하게 되는데....

풍림출판사에서 나온 다카키 아키미쓰의 작품. 이 작가 책은 상당수 번역되어 있는 듯 하지만 구하기가 쉽지 않았었는데 이 책은 헌책방에서 운좋게 구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원제는 "밀고자"입니다. "문신 살인사건"의 가미즈 교스케가 아닌 "기리시마 사부로" 검사가 탐정으로 등장하는 시리즈의 2번째 작품으로, 조사해보니 발표년도는 1965년이군요. 기리시마 사부로 검사 시리즈는 이전에 "제로의 밀월"이라는 작품을 읽어서인지 그다지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천재형이라기 보다는 이지적이면서도 냉정하고 객관적인 판단력의 소유자로 평범한 사람에 가까운 인물로 묘사되어서 훨씬 현실적으로 와 닿는 점이 있기에 마음에 드는 캐릭터죠.

꽤 오래된, 50여년 전의 일본 작품 답지 않게 변격물적인 느낌이 거의 없는, 상당히 현실적인 이야기가 전개되어 이후의 사회파 작품들과 유사한 느낌을 전해준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전에 읽었었던 작가의 다른 작품인 "문신 살인사건"같은 일본 작품 특유의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한데, 검사라는 주인공 탐정의 특징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거기에 잔혹하지 않은, 어떻게 보면 평범한 2건의 살인이 등장할 뿐이지만 산업스파이와 불륜관계가 상당히 복잡하게 얽히고, 세가와가 진범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독자에게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전개시키는 솜씨는 정말로 탁월하더군요. 그야말로 거장이라는 명성에 값한달까요?
또 사회파적인 느낌이 든다고 하였지만, 트릭이 정통본격물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뛰어나다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인물도 몇명 등장하지 않고 정확한 동기마저 가려져 세가와에게 의심이 집중되는 와중에 극적인 반전이 벌어진다는 점, 그리고 독자에게 모든 정보를 공평하게 제공하는 정통물의 미덕까지 갖추었다는 점도 아주 마음에 들었고요.

단서가 일종의 "우연"에 의지하고 있다는 점, 결국 범인의 사소한 실수와 방심으로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는 구조 등 약간의 단점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변격물을 넘어서서 사회파의 여명기의 다리 역할을 충실히 하는, 그러면서도 "추리"라는 쟝르의 기본 정신을 잃지 않는 좋은 작품입니다. 다카키 아키미쓰의 거장으로서의 풍모와 시대를 앞서가는 감각을 충분히 전해주기도 하고요. 별점은 4점입니다.

그나저나... 번역이 더욱 좋았더라면 완벽했을텐데 약간 아쉽네요.

2005/05/21

굿바이 밀러...



저는 슈터를 좋아합니다. 허재의 중대 전성기에도 김현준을 응원했었을 정도니까요. 90년대 중후반 NBA가 모든 친구들의 시선을 모을때에 저는 영원한 3점슈터 레지 밀러의 팬이었습니다. 노마크 찬스에서 한발짝 물러서 3점슛을 던지던 그 모습에 반해서 팬이 된 이후 한번도 팀을 바꾸지 않고 응원했죠.

4쿼터의 "밀러타임"이라는 말까지 만들어낸 희대의 슈터. 1987년 인디애나에 입단해서 지금껏, 한번도 팀을 바꾸지 않고 18시즌동안 뛰며 챔피언의 열망을 불태우던 그는 "우주급 공격에 지구급 수비"라는 비야냥도 수없이 받아왔지만 저에게는 항상 코트의 진정한 영웅이었습니다.

그가 결국 올해 은퇴하는군요. 제가 좋아하던 많은 스타들 - 바클리에서 시작해서 드렉슬러, 올라주원, 조던, 유잉, 스탁턴 등등등- 이 은퇴했고 이제 정말 한 시대가 저물어 간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 중 챔피언 반지를 끼지 못한 스타는 많지만 레지 밀러가 그 목록에 추가되었다는 사실은 슬프네요.

굿바이 밀러,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즐거운 추억을 머나먼 이국땅의 저에게도 남겨줘서 감사해요. Thank You.

2005/05/19

크리시 시리즈 (1,2,4,5) - A.J 퀸넬 / 이종인 : 평균 별점 2.5점

크리시 1 - 6점
A. J. 퀸넬 지음, 이종인 옮김/시공사
크리시 2 - 6점
A. J. 퀸넬 지음, 이종인 옮김/시공사
크리시 4 - 6점
A. J. 퀸넬 지음, 이종인 옮김/시공사
크리시 5 - 6점
A. J. 퀸넬 지음, 이종인 옮김/시공사

얼마전 개봉되었던 덴젤 워싱턴 주연작 "Man On Fire"의 원작소설 시리즈입니다. 
크리시는 주인공 이름으로, 17세에 해병대를 입대하였지만 상관 폭행죄로 2년 뒤 불명예제대한 후 베트남전에서 시작해서 중동, 아시아, 아프리카를 망라하는 전대륙의 전장을 용병으로 누빈 전쟁의 프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총 시리즈 5권 중 3권은 없어서 1,2,4,5권만 차례로 읽었는데, 1권은 영화화된 "불타는 사나이", 2권은 "죽음을 부르는 사나이", 4권은 "저주받은 욕망", 5권은 "지옥에서 온 사나이" 라는 제목입니다. 1권은 보디가드로 일하던 크리시가 보호하던 소녀가 유괴당해 죽자 그녀를 유괴한 마피아를 단신으로 일망타진한다는 이야기, 2권은 1권에서 만나 결혼한 아내와 딸이 비행기 테러로 죽자 테러리스트의 두목을 자신이 키운 양아들 수제자와 함께 처단하는 이야기, 4권은 아프리카 코뿔소 밀렵조직과 홍콩 트라이어드 최대 방파를 일거에 박살내는 이야기, 5권은 크메르루주의 한 단체와 그 두목을 작살내는 이야기입니다.

작품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소규모의 전쟁에 퍼니셔를 연상케하는 슈퍼 히어로(?)가 활약한다는 내용이에요. 미국판 무협지라고나 할까요?
약간 바꿔 설정한다면 "주인공 구리시(求理屍)는 과거 소림사의 제자로 입문했지만 쫓겨난 뒤 여러 작은 방파를 돌며 무공을 익혀 스스로 일가를 이룬 고수로 속한 방파의 명에 따라 중원에 피바람을 불러온 고수. 하지만 무림에서 떠난 뒤 권태감과 상실감에 시달리며 음주로 나날을 보내던 중 한 표국의 딸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은 후, 그 꾸냥과 서로 애틋한 감정을 나누며 서서히 재기하게되나 꾸냥이 녹림의 무리에게 납치당해 능욕 후 죽음을 당하고 그도 사경을 헤메는 중상을 입게 된다. 
그러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뒤 그는 복수를 결심하고 한 사찰에서 은거하며 상처를 치료하고 만반의 준비를 갖춰 무림 최대의 세력을 자랑하던 녹림방에 단신으로 도전하여 그들을 전멸시키는데..... "(이상 1편 줄거리) 

시리즈 모두가 이런 식이에요. 전쟁의 프로 크리시의 적은 무조건 죽음, 적이 속한 단체는 박살!이고 크리시의 친구들은 의리와 우정으로 움직이는 프로들로 구성된 용병집단. 여자들은 크리시의 매력에 빠지거나 적이거나 아니면 돌봐줘야 하는 인물들로만 묘사되는, 그야말로 강한 남자들만이 살아 숨쉬는 마쵸이즘으로 가득한 시리즈죠. 이러한 점에서는 영화화 된 것도 당연하다 생각될 정도에요. 그야말로 상투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내용이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비현실적인 부분을 덮어 줄 수 있을만큼 용병이라는 설정에 기반한 여러 무기나 전투에 대한 묘사가 디테일하면서도 현실적이라는 것은 큰 장점입니다. 작가가 실제 군경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로 말이죠. 또한 작전을 위한 여러 방면에서의 무기 조달, 공격 방법, 군자금(?)입수 및 처리 등에 대한 묘사 역시 굉장합니다. 
무엇보다도 소설의 핵심이 되는 복수를 위한 "작전"들에 대한 부분은 정말 손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재미있더군요. 말없는 전투기계 원맨아미 크리시를 비롯해 그의 여러 동료들에 대한 자세한 설정도 마음에 들어서 다른 가족들은 다 죽어도 이 친구들만은 살아남기를 독자 입장에서 바랠 정도였습니다.
모든 책 마지막 부분에 군사평론가 양욱씨의 "무기도감"이 부록으로 실려 있는데 이것도 몇페이지 안되지만 꽤 볼만했고요.

허나 마쵸이즘의 부산물이라 할 수 있는 지나친 폭력성과 성적인 묘사는 부담스러웠어요. 1편은 보호하던 소녀가 강간당해 죽고 2편에서는 아내와 딸, 새로 얻은 아내가 죽고 4편에서는 수제자로 키운 양아들이 죽고 애인이 강간당하는 등 복수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잔인한 죽음과 성적 폭력이 난무하거든요. 특히 1편의 소녀와 4편의 중국 여성은 정말 불쌍하다 생각될 정도로 리얼한 묘사를 보여줘서 더욱 그러합니다. (영화판에서는 소녀의 죽음을 원작과는 다르게 했더군요. 전형적 헐리우드 스타일로 바꿔 놓았더라고요.)
시리즈가 진행될수록 늘어나는 성적 묘사는 지하철에서 펼쳐놓고 읽기에는 창피할 정도로 장황하게 등장하고 말이죠. (제일 황당한 묘사는 "비단으로 만든 굴(?)"이라는 부분입니다....)

그래도 최소한 "재미" 측면에서는 합격점을 줄 수 있는 시리즈입니다. 구태여 평하자면 1편과 4편은 추리적으로 약간의 연결고리를 가진 요소들과 복선이 존재해서 보다 복잡한 구성의 재미를 가져다 주고 2편과 5편은 "전투"와 "작전"측면이 더 재미있는 작품이었어요. 킬링타임용으로는 꽤 괜찮은 선택이라 생각되기에 별점은 평균해서 2.5점입니다. 하지만... 여성분들에게는 절대로 비추천이니 참고하세요. 

2005/05/16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 - 엘러리 퀸 / 설명환 : 별점 2점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 엘러리 퀸 지음, 설영환 옮김/해문출판사

웨스트 버지니아의 애로요라는 시골마을에서 그 마을 학교의 교장선생 앤드류 밴이 교차로의 "T"자 형 표지판에 목이 잘린채 매달린 시체로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소식을 들은 엘러리는 사건 조사차 애로요 마을에 방문하지만 사건 발생 전 마을에 수상한 "절름발이"가 나타났었다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수확을 얻지 못한다.
6개월 뒤 롱아일랜드의 부유한 카펫 수입상 토머스 브래드가 저택의 토템 기둥에 마찬가지로 목이 잘려 매달린 채 발견되고 엘러리는 은사였던 야들리 교수의 소개로 사건에 뛰어들어 수사를 해 나가기 시작한다. 목이 잘린 시체와 "T" 라고 남겨진 이니셜에 주목하여 두 사건의 연관성을 캐 나가던 엘러리는 브래드의 동업자 메가라의 협조를 얻어 앤드류 밴과 토머스 브래드, 메가라가 형제라는 것과 앤드류가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 동기는 오래된 가문간의 전쟁으로 인한 복수심이라는 것, 그리고 유력한 용의자로 "크로삭"이라는 절름발이의 존재를 알게 되지만 메가라 마저 요트 마스트에 목이 잘려 매달린 시체로 발견되는데...

이 작품은 엘러리 퀸의 국명 시리즈 중 가장 지명도 높고 잘 알려진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주 예전 해문의 어린이 문고로 읽은 적은 있지만, 마침 해문의 세계 추리 걸작선집을 싸게 구입할 기회가 생겨 다시 정독해 보고자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이 작품은 4건의 연쇄살인, 그것도 목을 잘라 "T"자 형으로 매다는 엽기적인 방식이 등장해서 독자를 강렬하게 사로잡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죠. 등장인물들의 "이름"에 얽힌 간단한 트릭이나 브래드의 살해 장소를 잠깐 위장해서 중대한 단서를 깨닫게 해주는 트릭 등이 논리적으로, 그리고 작품 중간중간에 계속 등장해 줌으로써 읽는 재미만큼은 어느정도 보장해 주기도 하고요.

하지만 추리적으로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일단 가장 중요할 수 있는 범인의 동기부터 설득력이 없어요! 4명이나 살해하고 목을 잘라 매다는데 얻는게 단지 5천달러 뿐이라니... 또 고작 이 정도의 돈이 목적이었다면 범인인 앤드류는 브래드를 죽인 직후 메가라로부터 돈을 받으므로 이후에는 살인을 그만 두는 것이 당연한데도 불구하고 계속된 연쇄살인을 범하는 것에 대해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게다가 마지막에 엘러리 퀸의 "독자에게의 도전장"은 이론적으로 타당하며 상당히 설득력 있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범인을 잡는 것은 추리가 아닌 범인의 행적을 우연하게 발견한 야들리 교수의 도움을 얻은 "추적"일 뿐입니다. 또한 트릭 자체도 이제는 "김전일"에서도 인용하는 "목없는 시체 바꿔치기" 이므로 지금 읽기에는 좀 식상한 트릭이었고 말이죠.
그 밖에도 "대단한 힘"이 필요했을 살해 방법에 대한 설명이 전무한 점, 불필요한 "이집트"라는 상징을 무리하게 끼워넣으려는 시도 역시 아쉬운 부분입니다. 왜 이렇게 국명에 집착했을까요? 이집트 십자가라는 소재를 설명하기 위한 부분은 솔직히 불필요했어요.

이렇듯 헛점도 많고 문제도 많은 부분들 때문에 그렇잖아도 아쉬움이 남는 판에, 너무나 잘난척하는 엘러리의 모습에 대한 묘사는 저에게 심히 짜증까지 유발시켰습니다. 별다른 활약도 하지 못하면서 입만 살아가지고.... 이 작품에서 엘러리 퀸의 역할은 잘난척과 부가 설명을 위한 "해설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탐정으로서의 역할은 너무나 미미하네요.

어렸을 때에는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었지만 읽고 난 감상은 예전과 사뭇 다르군요. 그 당시의 무섭고 두근두근했던 감정은 거의 없고 불만족스러운 부분만 눈에 띄니 말입니다. 저도 나이가 들었나 봅니다. 이 작품을 읽고나니 역시 국명 시리즈는 라이츠빌 시리즈 보다는 한단계 아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MS IGLOO - The Hidden One-Year War : 별점 2.5점


이 작품은 1년전쟁에서 지온군의 시작병기평가부대 603 기술시험대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작품입니다. 관련정보는 공식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길....
풀 3G로 이루어진 흡사 게임과도 같은 영상은 이제 많이 익숙해 져서인지 보기에 그다지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전투장면 자체의 연출이 꽤 깔끔하고 괜찮은 편이라 상당히 몰입해서 재미있게 볼 수 있었습니다. 한정된 예산안에서 공들여 만들었다는 느낌이네요.

시작병기들을 각 편마다 주요 소재로 삼아 전개되고 있는데, 시작병기의 테스트 파일럿들과 평가관 등의 인물들이 짜임새 있게 이야기를 진행시켜서 전쟁드라마로서 즐길 수 있었다는 점은 꽤 재미있었습니다. 또한 연방군이 자쿠를 탈취하여 지상에서의 지온군 기지를 습격하는데 이용한다던가 하는 전술이라던가 철갑탄, 곡사포탄등으로 탄을 바꿔가며 포격하는 모빌탱크의 전투 장면 같은 것은 박진감과 함께 리얼하다는 느낌을 전해 주고요. 이러한 부분에서는 흡사 "신병기"가 등장하는 2차대전물을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2편은 사막 배경이라 더욱 그러했을지도...)
신병기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전개되지만 중간중간에 친숙한 요소들이 많이 등장해서 과거의 팬들에게도 만족감을 전해 주는데, 개인적으로는 1편에서 "모빌슈츠"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루움 공역에서의 전투, 그리고 "붉은 혜성" 의 등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쟈쿠의 전투를 꽤나 화려하게 그리고 있어서 팬이라면 한번 꼭 볼만한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신무기"의 특성상 별로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냉정한 부분이 가장 돋보입니다. 1편에 등장한 욜문칸트는 그 크기와 위력에 비한다면 정보조사 능력의 부재로 인해 연방군 전함 1척을 격파하는데 그치며 "모빌슈츠"를 돋보이게 하는 조역, 미끼로 전락할 뿐입니다. 2편의 모빌탱크 힐도르프는 지상에서 꽤 막강한 화력을 과시하긴 했는데 왜 양산이 안 되었는지는 좀 궁금하네요. 후일담이 있으려나?
아울러 군인이라기 보다는 "기술자" 마인드로 무장한 주인공 마이 중령의 캐릭터는 기존 건담 시리즈와 확실한 차별성을 가지는 캐릭터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전선에 돌입하는 열혈 청년 같은 모습도 등장하지만 확실히 전사 타입은 아니라서 독특했거든요.

"반X이"에서 새로운 프라모델을 팔아먹기 위한 기획물로 생각되고, 전형적인, "포병의 자존심"이나 "한마리 들개"라는 표현이 속출하는 전쟁드라마의 온갖 클리셰들을 모아놓은 듯한 캐릭터들은 조금 부담스럽긴 했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 밀리터리물과 건담월드의 재미를 잘 조합하여 다음편도 기대를 갖게끔 하네요. 제가 싫어하는 연방이 아닌 지온이 주인공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고요. 이런 느낌으로만 계속 진행된다면 좋겠습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2005/05/14

르윈터의 망명 - 로버트 리텔 / 강호걸 : 별점 4점

르윈터의 망명 - 8점 로버트 리텔 지음, 강호걸 옮김/해문출판사

미국 MIT 대학의 부교수이자 MIRV (다탄두 각개목표 재돌입 미사일) 계획의 관계자인 르윈터는 일본에서 소련 대사관으로 망명을 신청한다. 그의 전문분야는 미사일의 탄두부분인 노즈콘이라는 그다지 가치없는 일이지만 그는 극비문서의 비밀 열람을 통해 자신의 천재적인 기억력으로 암기한 MIRV의 미사일 탄도 공식을 가지고 소련과 협상하여 망명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된 CIA출신의 부차관보 대리 리오 다이아몬드는 자료 조사 및 심리 분석을 통해 르윈터가 실제로 가치있는 진짜 탄도 공식을 가지고 갔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전 동료이자 CIA 담당자 듀크스는 르윈터의 탄도 공식은 가짜일 것이라는 견해를 내어 서로 대립하게 된다.

다이아몬드와 듀크스, 그리고 소련의 르윈터 담당자이자 유능한 정보국원 포고딘은 체스를 두듯 서로의 계획과 의도를 숨긴채 작전과 계획을 차차 실행해 나가게 되는데....

저는 스파이소설이라는 쟝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슈퍼맨같은 주인공, 미녀-액션이 짬뽕된 007시리즈에 대한 편견 탓에 그동안 선택에 있어서도 항상 뒷전으로 미루어 놓았었죠. 하지만 이 작품은 그간의 저의 선입견을 깨주는 좋은 작품입니다.

제목대로 미국 MIT 교수 르윈터의 망명 사건을 주요 소재로 다루는데 르윈터가 주인공이 아닙니다! KGB와 CIA가 중심이 된 양 진형의 "체스게임"이 더욱 중요하거든요. 서로 속고 속이는 관계속에서 르윈터는 단순한 소모품, 이용물로 전락될 뿐입니다. 이러한 게임이 각 진영에서 캐릭터들과 주변인물의 디테일한 묘사를 통해 (특히 정보전의 근본이 되는 여러 조직들과 회의들에 대한 묘사는 대단합니다) 세밀하고 현실적으로 벌어지며, 그야말로 "정보전"의 실체를 보는 것 같은 긴장감과 재미가 엄청나서 히어로의 큰 액션이나 반전 없이도 커다란 만족감을 전해줍니다. 그야말로 "리얼한 재미"를 전해주는 소설이랄까요?
예를 들자면 소설에서 양 진영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르윈터는 과연 탄도함수를 알고 있었는가?"에 대해 많은 추측이 오가지만 답은 결국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 양 진영에서 이 정보를 가지고 서로가 게임하듯 진행되는 과정만이 소설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을 뿐이죠. 그 외에도 많은 정보들에 대한 답은 소설속에서 답해주지 않고 오직 서로의 작전의 "과정"과 "결과"만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불친절하다 생각될 수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이러한 부분에서 리얼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예외적으로 후반부의 리오 다이아몬드의 작전에 의한 첩보 작전 자체는 꽤 긴박감이 넘치는 부분으로 스파이 소설의 전형적인 분위기를 풍기기는 하지만 작전 자체가 워낙 소규모일 뿐더러 사람과 사람을 서로 도구로 여기고 이용하며 필요여부에 따라 가차없이 배신하기 때문에 역시나 다른 소설들과 차별화되고 있고요.
아울러 여타 소설들에 비해 적수인 소련 정보국원들에 대해서도 인간적인 묘사로 표현하는 것 역시 눈길을 끄는 대목이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소련의 체스 마스터 자이체프라는 캐릭터가 굉장히 마음에 들더군요.

"추운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는 소설 자체가 리얼하기는 하지만 많이 싱겁다라는 느낌이 강했는데 이 책은 한단계 높은 수준의 재미와 흥분을 선사해 줍니다. 너무 딱딱하고 약간 덜 다듬어진 듯한 번역 때문에 읽기에는 조금 불편했지만 정말 좋은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2005/05/11

Arsene Lupin 아르센 뤼뺑 - Jean-Paul Salome : 별점 3점


노르망디의 숙모 저택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와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던 뤼뺑은 아버지가 사실은 도둑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숙모 가문의 보물인 "여왕의 목걸이"를 훔쳐서 아버지에게 전해주는 첫 도둑질을 시작한다. 그러나 아버지가 얼굴이 짓이겨진 시체로 발견되는 것을 마지막으로 뤼뺑은 어린 시절에 작별을 고한다.
세월이 흐른 뒤, 뤼뺑은 장성하여 스스로 라울 당드리지라고 자칭하며 도둑질을 일삼다가 먼 친척이자 소꼽친구인 클라리스와 다시 만나 사랑의 감정이 싹튼다. 그러던 중 숙부의 은밀한 밤의 집회를 훔쳐보다가 왕당파인 숙부와 그 일당이 처형하려 하는 "칼리오스트로 백작부인" 조세핀을 구해준 것을 계기로 그녀의 마력에 빠지게 되고 그녀를 위해 막대한 보물이 숨겨져 있는 십자가를 훔친다.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의 진상과 더불어 자신을 지배하고 조정해서 야심을 채우려는 조세핀의 마력을 깨닫고 십자가를 빼돌린 후, 십자가를 노리는 왕당파와 조세핀에 맞서 보물을 되찾고 진정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 싸우게 되는데....

프랑스에서 2004년에 새롭게 제작한 뤼뺑 영화. 어둠의 경로를 통해 구해 보게 되었네요.

스토리를 간략하게 훝어보면 뤼뺑의 여러 작품을 짬뽕해서 각본을 꾸려나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꽤 그럴듯하고 앞뒤가 잘 맞으면서도 핵심 줄거리를 놓치지 않아 상당히 재미있고 완성도 있는 모험 영화로 완성되었네요. 아르센 뤼뺑의 "모험" 도 아르센 뤼뺑과 "기암성"도 아르센 뤼뺑과 "칼리오스트로 백작부인" 도 아닌 그야말로 당당하게 "아르센 뤼뺑"이라고만 타이틀을 달고나온 값은 하는 영화랄까요?
"기암성"에서 기본 설정과 무대를 빌려오고 있는 숨겨진 보물을 찾는 기둥 줄거리에 오리지널에 가까운 뤼뺑의 가족사와 아버지 죽음에 대한 진상 이야기, 마녀 백작부인 이야기라는 크게 3개의 이야기가 섞여 있는데 기둥 줄거리에 발맞춰 흐름을 끊지 않으면서도 정리를 잘 해서 풀어나가는 각본이 상당히 뛰어나요. 모든 이야기를 정교하게 엮으면서도 나름의 반전까지 준다는 점에서 정말로 칭찬할 만 하더군요. 원작에 비해 각색은 많은 편이나 뤼뺑의 아버지에 대해 전해주는 부분도 꽤 그럴듯해서 팬으로서도 그다지 불만 없었고요. 뤼뺑의 아내와 아들에 대한 설정은 약간 의외였긴 했지만 아내와 아들을 눈으로 확인하는 재미 역시 팬으로서 상당히 즐거웠습니다.

물론 추리물이 원작인 추리적 요소도 빼놓을 수 없겠죠?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상은 추리적인 요소는 덜 했지만 상당히 기발하게 처리했다고 보여지며, 무엇보다도 십자가 3개를 이용한 지도 해독 부분이 마음에 듭니다. 영화인 탓에 어렵고 복잡한 암호는 등장하지 않지만 순간적 우연+논리에 의한 해독 장면은 정말 그럴듯 했거든요. 우연에 의지하며 관객에게 제공되는 정보가 거의 없는 만큼 치밀하거나 정교한 맛은 별로 없지만 이러한 장면에서 느낄 수 있는 모험물로서의 미덕은 충분히 잘 끌어내고 있다고 보입니다.

뭐니뭐니 해도 이 영화의 매력은 젊은 시절의 패기 넘치고 변장의 귀재이면서도 순간적인 기지와 도둑질에 능한 바람둥이 뤼뺑이라는 캐릭터를 너무나 잘 살려냈다는 점이겠죠. 이러한 뤼뺑의 모습은 팬으로서 영화내내 즐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배우가 좀 느끼하게 생겼고 뤼뺑 특유의 유머러스한 부분이 모자란 것이 약간 아쉽긴 하지만 나머지 부분은 그간 보아온 뤼뺑 관련 영상물 중에서 최고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고풍스러운 20세기 초엽의 파리의 모습과 의상들을 보는 것도 즐거움의 하나였고요.

하지만 칼리오스트로 백작부인 조세핀을 정말로 마녀로 설정한 점은 이유가 좀 궁금합니다. 그 때문에 영화가 약간 삼천포로 빠지는 부분이 있거든요. 원작의 라이벌격인 가니마르나 소년탐정 이지돌 군, 헬록 숄메보다야 드라마 구성상 더 어울렸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만 조세핀이 너무 전능한(?) 악당이라는 점에서는 거부감이 오기도 했고 말이죠. 그냥 현실적인 캐릭터로 묘사해도 충분히 괜찮은 팜므파탈로 창조해 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어요. 조세핀 역의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의 연기도 좋았지만 뤼뺑이나 주변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 듯 "마성의 미모" 의 배우로는 절대 보이지 않어서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도 단점이라 생각되고요. 아울러 호흡이 굉장히 빠르고 생략도 많아 내용적으로 약간 부실한 부분도 적잖이 있긴 합니다.

그래도 각종 뤼뺑관련 영상물 중에서, 그것도 각색을 한 작품 중에서 이만한 재미와 완성도를 갖춘 작품은 그동안 없었다고 생각되며, 무엇보다도 "괴도신사"로서 살아 숨쉬는 뤼뺑과 실제 "기암성"을 눈으로 확인하는 재미는 정말로 만만치 않습니다! 결말부에서 은근슬쩍 예고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도 속편이 계속 나와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2005/05/10

벌거벗은 얼굴 - 시드니 셀던 / 최운권 : 별점 1.5점

벌거벗은 얼굴 시드니 셀던 지음, 최운권 옮김/해문출판사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날 뉴욕에서 한 동성연애자가 살해된다. 피살자의 이름은 존 핸슨. 경찰은 피살자가 다니던 정신병원 의사 주드 스티븐스 박사를 찾아오나 별다른 수확을 거두지 못한다. 이후 주드 박사의 여비서 캐롤마저 잔인하게 살해되자 경찰 맥그리비는 이전의 사건에서의 원한(?)도 겸해서 주드 박사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주드 박사도 숱한 생명의 위협을 겪고 자신의 결백과 진범을 밝히기 위해 사립탐정을 고용하게 된다.
그러나 고용한 사립탐정 무디마저 결정적 단서를 손에 쥔 채 살해당하자 주드 박사는 경찰과 미지의 범인 양쪽의 위협에서 생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맞서며 마침내 최후의 순간에 무디가 마지막 남긴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데...

"대작가" 시드니 셀던의 장편 추리소설 데뷰작. 시드니 셀던의 B급 드라마 소설은 익히 많이 읽었었지만 추리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책은 처음 읽어보네요. 그래도 명성이 있으니 로렌스 샌더스 수준은 되겠구나 싶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읽어보니 역시나입니다. 문장부터 싸구려 티가 좔좔 흐르는 것이 펄프픽션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 같네요. 일단 기본 스토리가 허무맹랑하고 알맹이가 없어요.
게다가 추리물로서의 기본 요소 역시 빵점입니다. 등장하는 가장 중요한 단서가 일종의 말장난 수준이고, 진범의 정체를 알게 되는 것도 결국 범인에게 끌려 가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 작품의 어디를 보고 추리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의심스럽네요. 그나마 극적 재미라 할 수 있는 범인과 협력하는 공범자의 정체마저도 중간부분을 넘어가면 너무 티가 나서 도저히 모르고 넘어갈 수 없어요. 한마디로 스릴러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없다고 느껴집니다.

그나마 딱 한가지, 비서가 잔인하게 살해된 진짜 이유를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부분 정도는 눈여겨 볼 만 합니다. 영화판에서 일하던 전력 탓인지 스피디한 전개나 중간중간 시선을 잡아끄는 서스펜스가 요소요소 적절히 들어가서 지루함을 덜어 주는 점, 그리고 별로 생각할 필요가 없으므로 쉽게쉽게 빨리빨리 읽을 수 있었다는 점도 장점이긴 하고요.

그러나 단점이 압도적이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이 책이 세계 추리 걸작선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까닭 자체을 잘 모르겠습니다. 수준 이하도 정도가 있어야죠... 이제 시드니 셀던 책은 두번 다시 거들떠도 보지 않으렵니다.

2005/05/09

두 사람이다 - 강경옥 : 별점 1.5점

조선시대 우의정 한씨가문에서 액땜을 위해 치성을 드리던 중 한 스님의 말을 듣고 이무기를 잡아 우환을 방지하려 하나 이무기는 승천을 하루 남기고 죽은 한으로인해 한씨가문에 저주를 건다. 그 저주는 한씨가문 자자손손 그 대(代)의 한명의 자손은 주위의 친지 중 2명에게 목숨을 잃게 된다는 저주.

세월은 흘러 1999년, 한씨가문의 자손 지나가 그 세대에서 희생자로 지목된다. 지나는 같은 세대 사촌인 명현과 명현의 친구인 영능력자 유진, 친구 세희 등의 도움으로 저주와 맞서 싸우려 하나 어머니와 명현, 2명이 목숨을 노린 직후 세희까지 자신의 목숨을 노리자 좌절하게 되고, 그 와중에 자신이 새로 사귄 남자친구인 재석이 아버지와 원수인 가문의 아들이라는 사실까지 알게 되는데...


강경옥이라는 작가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단편 옴니버스에 가까운 "라비헴 폴리스" 정도만 괜찮다 생각하고 있었고 이외의 작품들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은 탓인데, 이 작품은 영화화 이야기를 듣기도 해서 헌책방 골목에서 구해보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미스터리 심리극"이라는 저 제목의 카피가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었죠.

이야기의 설정 자체는 상당히 좋습니다. 저주로 인해 주위 사람중 누군가 2명이 자신의 생명을 노리며 그것이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진진하니까요. 더군다나 생명을 노리는 사람이 2명이 아니라 하나 둘 더 늘어나며 실질적인 저주의 근원과 그 배경을 파헤쳐 나간다는 전개는 공식에 충실하면서도 나름의 반전과 재미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이 정도라면 영화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닐 정도로 괜찮은 편인거죠.

하지만 충분히 괜찮을 수 있었던 이야기 구조임에도 그것을 표현하고 전개해 나가는 부분, 즉 만화 자체는 지극히 실망스럽습니다. 강경옥씨의 단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작품이에요.
일단, 데뷰때부터 거의 늘지 않은 그림체, 이 정도 중견 작가가 컷마다, 각도마다 캐릭터 얼굴 선이 틀려 보이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캐릭터 자체도 구분이 어려운 판에.... 심지어 표지와 속표지와 작품 내용의 주인공 캐릭터 얼굴도 달라보입니다! 거기에다가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해 너무나도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 인물들이 오히려 이야기 전개에 혼선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기본 등장인물들만으로도 충분히 이야기 전개가 가능했으리라 생각되는데 말이죠... 목숨을 노릴 만한 원한을 억지로라도 집어넣어서 범인(?)의 다양화를 꾀한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너무나 본편 스토리와는 상관없는, 개념없는 이야기가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져서 보는데 짜증이 나더군요. 게다가 작품에 어울리지도 않는 해피엔딩이라니.....

무엇보다다 큰 문제는 희생자로 밝혀지려면 누군가가 생명을 노린 다음에야 그것을 알 수 있다는 설정상의 대 전제죠.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으면 절대로 그것을 알아낼 수 없거든요. 작품에서는 순간적인 어머니의 착란으로 지나가 습격당하는 묘사로 이 부분을 설명하는데 이후 이야기는 급격하게 힘을 잃습니다. "나일지도 모른다"라는 불특정 다수를 지배하는 공포심이 계속 깔려 있어야하는데 그러한 공포심이 사라져버리기 때문이죠. 이럴거라면 차라리 가문을 지배하는 공포심으로 인해 집단 광기로 발전하는 전개... 예를 들자면 옆의 친척이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피해 망상으로 피가 피를 부르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 더욱 괜찮았으리라 보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야기가 후반부에 급속하게 힘을 잃고 억지스러운 해피엔딩으로 전개될 필요도 없었을거에요. 이무기의 저주가 그렇게 쉽게 풀리리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기도 하고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탁월한 설정, 아이디어를 전혀 살리지못해서 점수를 주기 어렵네요. 보다 "공포" 스럽게 만들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굉장히 많이 남습니다. 후일 영상화 작업이 만약 진행된다면 시나리오의 보강을 통해 보다 가슴 서늘한 공포를 안겨줄 수 있는 소재거리로는 충분하다고 생각되기는 하지만 각색은 많이 되어야 할 것 같군요.

PS : 관심있으시다면 네이버에서 유료 만화 서비스로 볼 수 있으니 참고하시길.... 총 4권이니 1,200원에 다 볼 수 있습니다.

2005/05/08

문신 살인사건 - 다카기 아키미쓰 / 김남 : 별점 3점

문신 살인사건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남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전쟁 직후 패전의 상처가 아직 가시지 않은 일본, 남방 필리핀에서 생환한 도쿄대 의학부 출신의 마쓰시타 겐조는 우연찮게 문신을 한 사람들로 조직된 "에도 조용회"라는 단체의 총회에서 등에 오로치마루의 문신을 새긴 기누에라는 여인을 알게된다. 그녀는 당대의 유명 문신사 호리야스의 딸로 그 문신은 도쿄대의 문신 수집가 하야카와 박사도 눈독을 들이고 있는 중.
첫 만남부터 겐조를 유혹하는 그녀는 생명이 위험하다는 수수께끼같은 말과 함께 각각 "지라이야"와 "쓰나데히메"의 문신을 새긴 오빠와 쌍동이 동생의 사진을 전해준다. 전갈을 받고 아침 일찍 그녀의 집을 방문한 겐조는 우연히 만난 하야카와 박사와 함께 집 안 밀실인 목욕탕 안에서 그녀의 몸통이 사라진 시체를 발견한다.

겐조의 친형이자 경시청 수사과장인 에이이치로는 기누에 주변 인물에 대한 조사를 펼쳐 정부인 모가미 다케조를 지명 수배하나 다케조마저 빈집에서 시체로 발견되고, 겐조가 사건을 알려준 후 독자적으로 조사하여 진범을 파악한 기누에의 친오빠 노무라 쓰네타로까지 살해당한다.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노무라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던 겐조는 "천재"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선배 가미즈키 요오스케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다카기 아키미쓰의 대표작. 도대체 언제쯤 번역되나 기다리고 있던 작품이죠.

간략한 줄거리만 본다면 일본 특유의 변격물 취향이 짙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변격물로서만이 아니라 정통 추리물과의 절묘한 결합에 성공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변격물 특유의 엽기적인 살해방식이나 기괴한 묘사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다른 변격물처럼 범죄의 엽기성에 주목하지 않고, 정통 추리물 특유의 트릭과 사건 전개 및 해결 방식을 잘 결합하여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된 것 같습니다. 범인이 지극히 이성적이고 냉철한, 머리가 좋은 인물이라는 설정이라던가, 3건의 사건 중 제일 첫번째 사건 처럼 "밀실안에서 몸통이 사라진 시체"라는 엽기적인 사건 내면에 왜 몸통이 없어져야만 했는지?에 대해 나름의 합당한 이유를 잘 조합한 점이 특히 그러합니다. 이러한 특징을 놓고 본다면, 변격+전통 추리가 교묘하게 얽힌 현대 일본 추리 문학의 원조격 적인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트릭 자체의 완성도, 그리고 설득력은 약간 떨어지기는 합니다. 3건의 살인 사건 중에 그나마 트릭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첫번째 사건 뿐이고 나머지 사건은 경찰의 조사가 보다 세밀했다면 밝혀낼 수 있는 것들이거든요. 사건이 미궁에 빠지게 된 결정적 이유도 겐조의 결정적 실수 뿐 아니라 경찰의 수사미숙이 한몫 단단히 하고 있기도 하고요. 동기가 워낙에 명확해서 범인을 특정하기가 쉽다는 것도 큰 약점입니다.
또 탐정인 가미즈카 요오스케가 독특한 천재성을 가진 안락의자형 탐정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묘사도 부족하고 극적인 맛이 떨어져 정통 추리소설의 가장 큰 재미 중 하나를 놓치는 기분이 듭니다. 가미즈카 요오스케의 등장이 소설 후반부에서나 이루어지는 탓도 크기는 하지만 여러모로 탐정보다는 화자에 가까운 겐조의 묘사가 상대적으로 더 세밀하고 재미있을 정도에요! 범인을 알아내기 위한 용의자들과의 도박, 바둑, 장기를 통한 심리분석도 반 다인 필이 강하게 올 뿐 독특한 맛도 부족했다 여겨지네요. 최소한 작가의 다른 시리즈 캐릭터 사부로 검사 정도의 매력이라도 표현해 주었으면 추리팬으로서는 더욱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아쉬움을 더한다면 이른바 지라이야-오로치마루-쓰나데히메의 3자견제에 대한 내용 같이 지극히 일본적인 설정은 개인적으로는 만화 "나루토"에서 한번 접해 보아서 이해가 좀 빠르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문신에서의 3자견제는 금기다!"라는 설정이 소설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쓰이기도 하는 만큼 그림같은 것으로 설명을 도와주는 배려가 약간 아쉽더군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그동안 쭉 읽고 싶었던 작품을 완독한 후련함도 크고, 출간 당시에는 당시 일본 추리계의 어떤 매너리즘같은 것을 깨고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걸작이었을 수 있겠지만, 지금 읽기에는 약간 낡았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드네요. 재미있지만 시대를 뛰어넘는 걸작으로 보기에는 부족합니다.

그나저나 이제 "흑사관 살인사건"도 읽어 봐야 할텐데 당쵀 엄두가 나질 않네요.



혈의 누 - 김대승 (스포일러 있습니다!) : 별점 3점


1808년 조선시대 말엽, 제지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외딴 섬 마을 동화도. 어느 날 조정에 바쳐야 할 제지가 수송선과 함께 불타는 사고가 벌어지고.... 사건을 해결하고자 수사관 원규 (차승원) 일행이 동화도로 파견된다.
섬에 도착한 첫 날, 화재사건의 해결을 서두르던 원규 일행 앞에서 가시 나무에 꽂혀 죽은 참혹한 시체가 발견되며, 사건을 조사하던 원규는 모든 사고의 발단이 7년전의 마을의 존경받는 인물이었으나 5명의 고발에 의해 천주교도로 몰려 온 가족이 참혹하게 죽음을 당한 강객주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고발한 인물들이 강객주 가족들의 참혹한 죽음과 똑같은 죽음을 당하는 연쇄살인 사건이 계속되고, 원규는 7년전 사건 당시 토포사로 강객주의 처형을 집행한 인물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 고민에 빠진다. 한편 마을은 점점 강객주의 원혼을 두려워 하는 주민들에 의해 흉흉한 분위기가 감도는데...

국내에서 거의 처음 보는 듯한 "역사 미스테리" 영화입니다. 미스테리를 표방한 영화라 제가 안볼 수 없었죠. 사실 큰 기대를 하고 본 것은 아니었는데 영화가 제 생각보다도 완성도가 높아서 놀랐습니다. 7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다음에 공포와 광기의 연쇄살인이 시작된 이유가 "범인이 싸이코라서"라는 흔해빠진 공식을 따르지 않고 제법 설득력있게 전개되고 있는 점, 그리고 역사 미스테리를 표방한 영화답게 앞서 말한대로 중후반까지는 확실하게 추리적인 요소를 놓치지 않으면서 짜임새 있는 각본으로 범인과 원규의 대결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억울하게 죽은 강객주라는 인물에 대한 감정이입도 효과적으로 이루어져 있고요.

무엇보다도 "인간이 얼마나 간사하고 잔악한 존재인가"를 잘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압권입니다. 결국 강객주 사건 당시 몇푼의 돈과 두려움으로 그를 구명하지 않은 마을 사람들이 집단 광기에 휩싸여 다른 사람의 피로 자신들의 생명을 구하려는 집단 행동을 보이는 부분의 광기 폭발에 대한 표현은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거든요. 강객주의 저주대로 피의 비까지 내리며 그야말로 제대로 "지옥"을 보여주니까요. (하지만 이 부분에서는 감독이 너무 2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한 것 같아 약간 아쉽긴 합니다. "인간의 잔악성"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너무 지나쳐서 그 전까지 추리물로 잘 전개되는 이야기가 약간 삼천포로 빠지는 느낌이 들긴 했습니다.)

하지만 제목이나 선전대로 "추리"물로서의 비중은 생각만큼 높지 않습니다. 이런 류의 영화는 대체로 범인과 탐정역의 주인공의 두뇌싸움이 펼쳐지는 편인데 이 작품에서는 거의 종반까지 강객주의 은혜를 입은 "두호"(지성)가 범인이 아닐까 하는 단서만 던져줄뿐 그에 대한 묘사나 설명은 극단적으로 배제되며, 영화 자체는 무고하게 강객주를 고발한 5명의 인물이 누구인가? 다음에 죽음을 당할 차례는 누구인가? 라는 명제에 집착하고 오히려 범인이 누구인지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참혹하게 재현된 살인 사건들의 리얼한 묘사에 따른 공포와 사건이 전개되며 가파르게 상승하는 재미 요소는 확실하지만 범인과 탐정과의 치열한 "게임"의 요소는 거의 전무한 편이에요.
물론 중반까지는 원규의 추리와 사건 해결을 위한 노력이 상당한 수준으로 전개되는 편이라 이쪽 관객을 어느정도 만족시켜 주기는합니다. 특히 초반 가시나무에 꽂힌 시체의 검시를 통한 진상 규명은 상당히 색다르게 다가온 부분으로 리얼한 재미를 가져다 주었고, 아무도 없었던 배의 방화사건의 트릭 알아내기도 상당히 괜찮은 아이디어였어요. 강객주의 살아남은 딸이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남장을 하고 3년여 동안 섬으로 방문한 이유 - 그녀를 살려준 중요 인물 (즉 범인) 이 섬 밖으로 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를 논리적으로 추리하는 부분도 마음에 들었고요.
가장 큰 문제는 범인으로 밝혀지는 김인권(박용우)에 대한 설득력이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이쪽 장르에서 본다면 치명적인 약점이죠. 악덕 지역유지의 전형으로 보이나 사실은 강객주의 딸과 사랑하는 사이였다라는 설정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종반까지 거의 언급되지 않은 그의 "바다 공포증"은 가장 결정적 단서인데 영화 이야기 내내 등장하지 않아 마지막에 설명될때는 조금 당황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앞부분에서 인권과 원규가 처음 대면할때 이 공포증에 대한 단서를 약간만이라도 던져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또 극 초반에 무당에게 빙의한 강객주의 원혼같은 장면은 별로 필요없는 장면이 아니었나 싶고, 무당 캐릭터 자체가 왜 등장하는지는 잘 모르겠더군요. 미녀 캐릭터가 필요했던 걸까요? 그리고 한가지, 원규가 왜 마지막의 강객주의 딸과 인권과의 암호편지를 바다에 버리는 지는 정말 알 수 없었으니 아시는 분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제 생각에는 "그냥 묻어버리려고" 한 것 같은데 말이죠)

그래도 한마디로 말한다면, 꽤 잘 만든 역사 스릴러입니다. 배우들 연기도 나무랄데 없고 나름대로 밀고 땡기는 맛이 잘 살아 있습니다. 저는 정말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이쪽 장르물은 국내에도 거의 없는 편이긴 해도 비교 대상 자체가 거의 없을 정도로 괜찮은 작품입니다. 사실 "영원한 제국"이라는 작품은 추리물은 절대 아니었다 생각되거든요.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나저나 지성은 왜 이 영화에 나온걸까요? 대사도 별로 없을뿐더러 "말도 안돼는 이유로 주인을 배신하고 끝내는 난도질 당해서 죽는" 최악의 역인데 말이죠....

PS : 여친이 "범인은 차승원이다!"라는 스포일러를 메신저로 보내줘서 조금 열받았었는데 범인이 아니라서 더 황당하고 재미있었던 점도 있습니다.^^

2005/05/07

하얀 장미 - 알리스테어 맥클린 / 이제중 : 별점 3점

하얀장미 - 6점
알리스테어 맥클린/동쪽나라(=한민사)

탈보트는 산간마을 마블 스프링스에서 경찰관 폭행 혐의로 재판을 받게된다. 그 뒤 법정에서 국제적인 범죄자라는 정체가 드러나자 경찰을 사살하고 억대 부호 블레이어 루스벤 장군의 외동딸 메리를 인질로 삼아 도주극을 펼친다. 하지만 곧바로 전직 형사였던 현상금 사냥꾼 자브론스키에게 포획되며, 자브론스키는 장군의 저택으로 그를 데려간다.
장군은 경찰을 부르는 대신 탈보트의 해저 인양전문 전문 기술을 이용한 모종의 계획을 명령하며, 명령에 따라 유전 굴착 시설인 X-13으로 이동한 탈보트는 장군의 배후에 있는 바이랜드의 존재를 알게되고 그의 협박과 강압으로 목숨을 내건 도박에 뛰어든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연극이고 주인공에게 닥쳤던 몇년전의 사고와 깊은 연관이 있는 계획의 일부임이 밝혀지는데...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는 작가는 아니지만 모험 소설의 거장인 알리스테어 맥클린의 장편 스릴러입니다. 원제는 "Fear Is The Key"인데 왜 "하얀 장미"라는 제목이 붙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건 이 작가의 작품 및 원작 영화는 그동안 접했던 것은 전부 재미있게 보았었기 때문에 나름의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외로운 주인공의 고군분투, 주인공의 전문지식 - 해저 굴착 및 인양전문가 - 이 내용에 큰 영향을 미치는 형식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유사하더군요. 그러나 다른 작품들 보다 유머스럽고 경쾌하게 즐길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고 굉장히 심각한 복수극으로 전개되어 약간 의외였습니다. "다이하드"시리즈를 보다가 "올드보이"를 보는 기분이랄까요?

추리적으로는 그다지 특기할 만한 것이 없는 스릴러지만 주인공의 모든 행위와 생각에 다 이유가 있고 주인공이 생각한 바를 설명하는 부분이 굉장히 합리적이고 치밀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주인공이 초반 납치극에서 타당하면서도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는 행동이라던가, 중반 이후 유전 굴착 시설 X-13에서 고군분투하며 모험을 펼치면서도 단순히 액션 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방심했고 미진했던 부분들에 대해 되새기며 긴장하는 장면들 등은 스토리 전개에 합리적인 이유와 근거를 제시해서 독자에게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거든요. 치밀하게 배치한 여러 복선들과 설정, 단서들이 맨 나중에 명쾌하게 밝혀지고 해결되는 부분의 지적인 쾌감 역시 단순한 모험소설에 가까왔던 전작들과는 다른, 확실히 차별화되는 재미를 안겨다 주고요.

하지만 클라이막스에서 주인공이 악당들 앞에서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그들의 범죄 행위를 고백하게 하는 장면은 조금 억지스럽습니다. 그러한 장소를 고집해야만 했던 당위성이 떨어지거든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의 극적인 효과를 위해 너무 많은 것을 놓친게 아닌가 싶어요.
아울러 작중의 배경이 1950년 후반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시대적 배경 때문에 굉장한 거금으로 평가되는 1000만달러 상당의 보물은 지금 보기에는 수많은 악당들이 목숨을 걸만한 금액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들더군요.
또 주인공이 자기 파멸형 시니컬 하드보일드 캐릭터인 탓에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힘든 점도 약점으로 보입니다. 여주인공도 비중이 약할 뿐더러 달리 애인이 있다는 설정이라서 현실적이기는 하나 역시나 감정이입은 힘들었고요.

그래도 단순히 모험 소설의 거장으로만 알았는데 나름대로 씨줄과 날줄처럼 치밀하게 엮은 스릴러 풍의 작품도 일정 수준 써 낼 수 있는 작가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것 만으로도 유익한 독서였다 생각됩니다. 뭔가 2% 부족한 아쉬움은 지울 수 없지만 그래도 항상 평균작 이상의 재미는 선사해 주는 작가라는 사실을 다시 알 수 있었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PS : 그나저나 번역이 좀 이상합니다. 열심히 읽기에는 조금 부족하고 딱딱한데 독자에 대한 조금의 배려가 아쉽네요. 이것 역시 2% 부족한 부분에 포함되는 이야기지만요.

PS2 : 이 작가, 정말 꽤 괜찮은 재미를 주는 작품들을 써 내는데 우리나라에서의 지명도는 이렇게 낮은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혹 알리스테어 맥클린이라는 작가를 좋아하신다면 덧글이나 좀 남겨주세요. 팬클럽이나 한번 조직해 보던가 해야 겠습니다...

2005/05/05

어느 샐러리맨의 유혹 - 헨리 슬레서 / 최운권 : 별점 3점

어느 샐러리맨의 유혹 헨리 슬레서 지음, 최운권 옮김/해문출판사

하가트 앤드 테이트 광고사의 사장 대리 데이브는 부사장 겸 공동 경영자인 고든 테이트가 심장발작을 일으킨 뒤 가장 큰 광고주인 버크 식품의 광고를 전담하여 처리하게 된다. 하지만 데이브에게 몇번의 위험이 닥치고, 전속 카메라맨이 사고사를 당한 뒤 그는 의문의 비용 지출 등의 문제를 포착하여 버크 식품 광고의 후면에 얽힌 진실을 알게되고 사건의 범인을 쫓기 시작하는데....

"회색 플란넬 수의"라는 제목으로도 출간된 작품입니다. 단편의 명수, TV시리즈 극본의 대가 헨리 슬레서의 장편소설이기도 하죠. 이런저런 앤솔로지에서 몇편 읽어보았던 작가이긴 한데 그닥 땡기는 작가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자주 찾는 블로거 석원님이 포스트에서 꽤 좋게 평가하셨길래 구입해 읽게 되었네요.

특징이라면 우선 광고회사에서 근무했던 경험이 있는 작가답게 광고회사를 주요 무대로 해서 진행하고 있는 것을 들고 싶습니다. 분위기는 전혀 다르지만 광고인을 주인공으로 한 "너기바"라는 단편이 연상되기도 하는데, 여튼 덕분에 캐릭터에 대한 묘사와 실제로 소설에서 진행되고있는 광고회사의 업무 묘사에 대한 디테일이 장난이 아닌 수준이에요. 실제 광고 카피를 차용한 소제목들같은 아이디어도 참신했고요.
무엇보다도 사건의 배후와 동기에 대한 설정이 기발하면서도 완벽합니다. 특히 사건의 주원인인 광고에 대한 설정이 정말 좋아요. 광고 자체의 아이디어도 뛰어나지만 자연스럽게 사건을 유발시키게 되는 설정이라 현실적이면서도 설득력이 굉장히 뛰어나거든요.

그러나 정통 추리소설로 보기에는 조금 어려운 "헐리우드 스릴러" 에 가까운 작품이기는 합니다. 평범한 인물이 자기도 모르게 사건에 휘말린 뒤 엄청난 모험을 한다는 이쪽 바닥의 전형적인 전개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약간 차이가 있다면 실제로 주인공이 위험에 처하거나 궁지에 몰린다기보다는 "탐정"역할을 수행하며 주도적으로 전개를 이끌어 나간다는 것 정도인데, 그 이외에는 좀 많이 뻔한 설정이죠. 실질적으로 "트릭"이라고 부를만한 요소가 없다는 점, 범인이 너무나도 의외의 인물이라는 점, 범인의 행동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한 점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어요.

그래도 결론내리자면 추천작입니다. 사건이 복합적이고 점차 주인공 주변인물들이 전부 관련되게끔 발전하며, 그 과정이 굉장히 재미있어서 정말로 읽기 시작해서 한번도 쉬지 않고 완독하게 된, 그야말로 재미하나만큼은 끝내주는 작품이었어요. 별점은 3점입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원제인 "회색 플란넬 수의"는 내용 결말 부분에서 언급되는 꽤 괜찮은 울림을 주는 멋진 제목인데 제가 구입한 번역본 (해문판)은 제목이 왜 "어느 샐러리맨의 유혹"인지 모르겠습니다. 구입을 망설인 이유 중 하나가 이 이상하게 싼티나는 제목이라는 점을 비추어 본다면 훗날에라도 제목만 원상복구해서 다시 출간하였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PS : 그나저나 "백작부인"과 그 딸은 도대체 왜 등장했는지...

2005/05/04

초고층 호텔 살인사건 - 모리무라 세이이치 : 별점 3점

초고층 호텔 살인사건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김정우 옮김/해문출판사

크리스마스 이브, 동양 최대의 호텔인 이하라 호텔의 개장을 기념하는 파티가 열리던 중, 이하라 호텔의 거대한 빛의 십자가 모양의 조명 앞으로 사람이 떨어져 죽는 것을 수많은 사람들이 목격하게 된다.
피해자는 미국 넬슨사에서 파견된 이하라 호텔의 지배인 토마스 소렌센. 그의 죽음은 살인사건으로 보이지만 그가 투숙해 있던 16층의 방은 사실상 밀실 상태여서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그 뒤, 이하라 그룹 사장 비서 오자와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고 오자와의 부하 직원의 증언으로 경찰은 소렌센 사건에서의 트릭 및 소렌센-오자와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짐작하게 된다.
하지만 철벽의 알리바이를 깨지 못해 고민하던 중, 이하라 그룹의 라이벌인 부용은행의 차남 고레나리 도시히코마저 밀실에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며, 경찰은 이 세 사건의 연관성을 연구하여 철벽의 알리바이와 밀실트릭을 깨트리고 진범을 검거하게 된다.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작품. 꽤 유명한 작품이지만 예전 번역본은 구하기가 어려워 손을 놓고 있던 차에 해문의 미스테리 베스트로 출간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작가의 1971년 작품으로 비교적 초기작에 속하고, 이 작가의 초기작은 꽤 괜찮은 작품이 많아 읽기 전 부터 상당히 기대를 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 작가의 후기작은 작품이라 부르기 미안한 수준의 작품마저 양산한 작가라서.....

여튼, 이전에 읽었던 "고층의 사각"과 유사하다는 것이 눈에 먼저 뜨이네요. 호텔에서 실제로 근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설정이 꽤나 요긴하게 쓰이는 점, 그리고 고층의 호텔 밀실이라는 점은 판박이로 보여져요.
그러나 데뷰작 이후 어느정도 내공이 쌓인 덕인지, 인물과 드라마는 훨씬 복잡하게 전개됩니다. 무엇보다도 호텔에서 발생한 밀실 살인 트릭과 시간차를 이용한 장소이동 알리바이 트릭, 그리고 체인으로 밀실을 만드는 3종의 트릭이 등장해서 추리적인 재미를 마음껏 느끼게 해 주는 것은 최대의 장점이겠죠.

허나 "고층의 사각"에 비해 너무 흥행을 의식한 티가 나는 것은 감점 요소입니다. 난잡한 상류계층의 생활과 범죄를 그리는 것이야 모리무라 세이이치 작품의 특징이라 치더라도 이 작품은 그 정도가 너무 지나쳐서 만화같은 느낌마저 들거든요. 인물 및 배경 설정에서 현실감이 너무 떨어지기도 하고요. 모리무라 작품에서 항상 느껴왔던 것이지만 이러한 설정들이 좋은 트릭과 전개를 너무 흐리고 있어서 아쉽습니다.

그래도 그냥 트릭만 놓고 본다면 모리무라 세이이치 작품에서도 꽤 높은 수준이기는 합니다. 개인적으로 평가한다면 첫번째 사건 -초고층 호텔 살인사건- 은 제목으로까지 쓰인 임팩트 있는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트릭은 수긍하기 어려운, 그냥저냥한 수준이었지만 다른 2개의 트릭은 상당히 재미있고 깔끔하니까요. 특히나 2번째 시간차 알리바이 트릭이 아주 좋은 편인데, 기발하기도 하거니와 범인들이 보다 치밀한 함정을 파기 위한 공작을 벌이다가 오히려 꼬리를 잡히게 되는 전개가 마음에 듭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작가의 최고 대표작이라고 보기는 무리가 있지만 추리작가로서의 모리무라 세이이치를 잘 느낄 수 있고, 길이도 그다지 길지 않아 쉽게 읽을 수 있어서 심심풀이 독서로는 괜찮은 선택이었다 생각됩니다.
아울러 접하기 힘든 작품을 과감하게 선정해서 소개해 주는 점, 거기에 계보도까지 그려놓고 시간차 트릭을 깨기위한 시간대를 표로 구성하여 삽입한 출판사의 센스에도 박수를 보냅니다. 역시 추리전문 출판사는 다르군요.

2005/05/02

내가 죽인 소녀 - 하라료 / 박영 옮김 : 별점 4점

내가 죽인 소녀 - 8점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비채

의뢰 전화를 받은 사립탐정 사와자키는 작가 마카베 오사무의 집에 찾아가나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경찰에게 체포된다. 혐의는 알고보니 마카베 오사무의 딸 사야카의 유괴 혐의. 경찰의 취조 끝에 누명은 벗겨지나 유괴범은 사와자키가 몸값을 전달해 줄 것을 요구하고, 사와자키는 어린 소녀를 살리기 위해 끊임없는 경찰의 감시와 의심의 눈길 속에서 유괴범 요구대로 도쿄 시내를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접선을 시도하나 폭행사건에 휘말려들어 몸값을 잃어 버리게 된다.

이후 마카베 오사무의 처남 가이 마사요시의 재차 의뢰로 혹시 가이의 4명의 자녀가 범행을 저지르지 않았나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며 스스로 유괴범을 찾기 위해 애쓰나 결국 사야카는 시체로 발견되고 만다. 하지만 조사 도중 가이의 딸인 가무라 지아키의 남편인 유키가 우연찮게 몸값이 들어있던 가방을 소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수사는 활기를 띄게 되는데....


하라 료의 유명한 작품으로 소문만 들었던 책입니다. 그동안 구하기 위해 여러번 노력했지만 실패했던 차에, 이번에 석원님 등 인터넷 상의 지인 여러분의 도움으로 출판사 공동구매라는 방법으로 구입하게 되었네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뭐 하나 빼놓을 부분이 없을 정도로 멋졌거든요! 일단 주인공 사와자키부터 아주 매력적입니다. 블루버드라는 애차와 필터없는 담배를 애용하며 거칠고 시니컬한 말투에 경찰과는 사이가 좋지 않다는 등의 여러가지 디테일은 전성기 미국 하드보일드 탐정 계보를 충실하게 이어가는데, 실제 "액션" 자체는 별볼일 없다는 점에서 의외의 현실성까지 느끼게 해 주니까요.
그리고 이야기 전개도 짜임새있고 박진감 넘칩니다. "유괴"라는 범죄는 주로 면식범의 소행일 여지가 많다는 전제하에서 이야기의 얼개가 짜여지고 있는데 상당히 합리적이면서도 구체적이라 마음에 드네요. 모든 단서와 근거가 사와자키의 조사를 통한 것이라는 점, 그리고 사와자키의 조사는 대부분 "미행"과 "탐문"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 등의 현실감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고요.
아울러 수사과정 외에도 사와자키라는 캐릭터 주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다른 사건들 역시 소설에 몰입하게 만드는 효과가 탁월합니다. 단편적인 정보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짤막하고 지엽적인 이야기인데 뭔가 스토리에 맞춰서 캐릭터 설정이 드러나는 작품 구성이 정말 대단해 보였어요.

무엇보다도 마지막의 진상과 그에 따른 반전이 상당히 임팩트있어서 그야말로 화룡정점을 찍어주는 것이 좋더군요. 별다른 증거 없이 사와자키의 추리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말로 마지막에 터트린다는 점에서도 확실한 정통 미국식 하드보일드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진정한 하드보일드 작품이었달까요.

그래서 별점은 4점. 추리적으로나 소설적으로나 치우침 없는 재미를 가져다 주는 괜찮은 작품인데 많이 안 팔렸다는 점에서 추리 매니아로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아무래도 이 책이 팔리지 않은 이유는 제 생각에는 이해불가능할 정도로 허접한 표지...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구입에 도움 주신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PS : 뭔가 울림을 주는 저 제목이 읽기 전에는 참 멋지게 보였는데 읽고 나니 그야말로 제목 그대로의 의미네요^^

* 2015.06.17 신규 출간본 추가 및 내용 일부 수정

2005/05/01

댄서의 순정 - 박영훈 : 별점 2.5점


한때 최고의 선수로 촉망 받던 영새(박건형). 영새는 대회에서 라이벌 현수의 방해공작으로 파트너와 우승을 다 잃어버리고 실의에 빠지나 선배 상두에 의해 조선족 자치구에서 여러번 우승한 댄서 장채린(문근영)과 새롭게 팀을 이루려 한다. 하지만 채린은 사실은 연인이 있던 언니 대신 온 것이 밝혀지고, 채린의 입국에 돈을 썼던 영새의 선배 상두는 채린을 술집에 팔아 넘긴다. 하지만 영새는 사실을 알고 그녀를 데려와 춤을 가르쳐 주기 시작한다.
춤이 점점 발전하는 채린은 영새의 전 파트너 세영이 그랑 알레그로(발레동작의 공중회전과 퀵스텝을 적용시킨 최고의 기술)를 추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기술을 배우길 원하며 두 사람 사이에 신뢰 이상의 감정이 생기게 된다. 하지만 채린을 데려왔던 상두는 채린이 발군의 실력을 보이자 영새의 전 라이벌이자 재력가 현수를 찾아가는데...

댄스 스포츠를 주제로 한 영화는 이전 바즈 루어만의 "댄싱 히어로"를 무척이나 재미있게 봤었죠. 그런데 이 작품은 각본을 대체 누가 썼는지는 모르나 대사나 스토리가 무척이나 부족하고 허접합니다. 영화 오프닝에서 등장하는 라이벌의 유치찬란한 방해공작에서 시작해서, 중간중간의 스토리의 개연성이 너무나도 떨어지거든요. 아무리 재능이 있다 하더라도 3개월 연습해서 국내 대회 우승한다는 설정도 그렇고, 장채린이 주민등록만 따고 중국을 가는건지 아닌건지 도저히 알 수 없는 구성은 이해 불가네요. 거기에 마지막의 반딧불 이야기는 소름이 돋을 정도로 유치했습니다. 발로 만든 CG하며..... 여튼, 각본만 놓고 본다면 "어린 신부" 쪽이 훨~씬 나은 수준이라 생각되네요.
관심가던 "댄스 스포츠" 장면 역시 배우들의 춤 솜씨에 많은 노력이 투입되었으리라는 짐작은 가지만 "댄싱 히어로" 영화에서 만큼의 에너지나 재미는 느껴지지 않더군요. 개인적으로는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그랑 알레그로" 동작을 카메라 트릭으로 촬영한 장면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문근영의 표정 하나만으로도 이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달까요? 문근영 때문에 허접한 영화가 꽤 재미있는 영화로 바뀌는 것은 놀라왔어요. 연기도 좋았지만 짜증나는 장면에서도 문근영의 표정연기 하나로 영화가 재미있어지며, 문근영의 눈물 연기 하나로 유치 찬란한 장면에서도 눈물이 핑 돌게하는 힘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지금까지 보았던 국내에서의 어떤 스타보다도 흥행력은 돋보이지 않나 싶네요. 앞부분에 문근영이 맞는 부분에서는 저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더라니까요? 거기에 문양의 노래 장면이나 댄스 장면 등 서비스도 만점입니다!

때문에 별점은 2.5점. 부족한 부분은 많지만 잔잔하고 재미있는 장면도 있고 "댄서킴" 김기수의 조연 연기 등 생각보다 볼거리도 많은 편이라 그다지 후회는 없는 주말 데이트용 영화였습니다. 문양 팬이라면 절대적으로 보아야만 하는 영화라 생각되네요. 참고로, 전 팬은 아니지만 이제부터 팬이 되렵니다! 허나 문양도 마지막 장면에서 보니 이제 성숙한 티가 물씬 나는게, 더 성장하기 전에 문근영을 만끽하려면 이 영화가 마지막이 아닐까 싶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