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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08

문신 살인사건 - 다카기 아키미쓰 / 김남 : 별점 3점

문신 살인사건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남 옮김/동서문화동판주식회사

전쟁 직후 패전의 상처가 아직 가시지 않은 일본, 남방 필리핀에서 생환한 도쿄대 의학부 출신의 마쓰시타 겐조는 우연찮게 문신을 한 사람들로 조직된 "에도 조용회"라는 단체의 총회에서 등에 오로치마루의 문신을 새긴 기누에라는 여인을 알게된다. 그녀는 당대의 유명 문신사 호리야스의 딸로 그 문신은 도쿄대의 문신 수집가 하야카와 박사도 눈독을 들이고 있는 중.
첫 만남부터 겐조를 유혹하는 그녀는 생명이 위험하다는 수수께끼같은 말과 함께 각각 "지라이야"와 "쓰나데히메"의 문신을 새긴 오빠와 쌍동이 동생의 사진을 전해준다. 전갈을 받고 아침 일찍 그녀의 집을 방문한 겐조는 우연히 만난 하야카와 박사와 함께 집 안 밀실인 목욕탕 안에서 그녀의 몸통이 사라진 시체를 발견한다.

겐조의 친형이자 경시청 수사과장인 에이이치로는 기누에 주변 인물에 대한 조사를 펼쳐 정부인 모가미 다케조를 지명 수배하나 다케조마저 빈집에서 시체로 발견되고, 겐조가 사건을 알려준 후 독자적으로 조사하여 진범을 파악한 기누에의 친오빠 노무라 쓰네타로까지 살해당한다.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노무라의 죽음에 책임을 느끼던 겐조는 "천재"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선배 가미즈키 요오스케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다카기 아키미쓰의 대표작. 도대체 언제쯤 번역되나 기다리고 있던 작품이죠.

간략한 줄거리만 본다면 일본 특유의 변격물 취향이 짙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변격물로서만이 아니라 정통 추리물과의 절묘한 결합에 성공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변격물 특유의 엽기적인 살해방식이나 기괴한 묘사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다른 변격물처럼 범죄의 엽기성에 주목하지 않고, 정통 추리물 특유의 트릭과 사건 전개 및 해결 방식을 잘 결합하여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된 것 같습니다. 범인이 지극히 이성적이고 냉철한, 머리가 좋은 인물이라는 설정이라던가, 3건의 사건 중 제일 첫번째 사건 처럼 "밀실안에서 몸통이 사라진 시체"라는 엽기적인 사건 내면에 왜 몸통이 없어져야만 했는지?에 대해 나름의 합당한 이유를 잘 조합한 점이 특히 그러합니다. 이러한 특징을 놓고 본다면, 변격+전통 추리가 교묘하게 얽힌 현대 일본 추리 문학의 원조격 적인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트릭 자체의 완성도, 그리고 설득력은 약간 떨어지기는 합니다. 3건의 살인 사건 중에 그나마 트릭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첫번째 사건 뿐이고 나머지 사건은 경찰의 조사가 보다 세밀했다면 밝혀낼 수 있는 것들이거든요. 사건이 미궁에 빠지게 된 결정적 이유도 겐조의 결정적 실수 뿐 아니라 경찰의 수사미숙이 한몫 단단히 하고 있기도 하고요. 동기가 워낙에 명확해서 범인을 특정하기가 쉽다는 것도 큰 약점입니다.
또 탐정인 가미즈카 요오스케가 독특한 천재성을 가진 안락의자형 탐정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묘사도 부족하고 극적인 맛이 떨어져 정통 추리소설의 가장 큰 재미 중 하나를 놓치는 기분이 듭니다. 가미즈카 요오스케의 등장이 소설 후반부에서나 이루어지는 탓도 크기는 하지만 여러모로 탐정보다는 화자에 가까운 겐조의 묘사가 상대적으로 더 세밀하고 재미있을 정도에요! 범인을 알아내기 위한 용의자들과의 도박, 바둑, 장기를 통한 심리분석도 반 다인 필이 강하게 올 뿐 독특한 맛도 부족했다 여겨지네요. 최소한 작가의 다른 시리즈 캐릭터 사부로 검사 정도의 매력이라도 표현해 주었으면 추리팬으로서는 더욱 즐길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아쉬움을 더한다면 이른바 지라이야-오로치마루-쓰나데히메의 3자견제에 대한 내용 같이 지극히 일본적인 설정은 개인적으로는 만화 "나루토"에서 한번 접해 보아서 이해가 좀 빠르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문신에서의 3자견제는 금기다!"라는 설정이 소설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쓰이기도 하는 만큼 그림같은 것으로 설명을 도와주는 배려가 약간 아쉽더군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그동안 쭉 읽고 싶었던 작품을 완독한 후련함도 크고, 출간 당시에는 당시 일본 추리계의 어떤 매너리즘같은 것을 깨고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걸작이었을 수 있겠지만, 지금 읽기에는 약간 낡았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드네요. 재미있지만 시대를 뛰어넘는 걸작으로 보기에는 부족합니다.

그나저나 이제 "흑사관 살인사건"도 읽어 봐야 할텐데 당쵀 엄두가 나질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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