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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14

르윈터의 망명 - 로버트 리텔 / 강호걸 : 별점 4점

르윈터의 망명 - 8점 로버트 리텔 지음, 강호걸 옮김/해문출판사

미국 MIT 대학의 부교수이자 MIRV (다탄두 각개목표 재돌입 미사일) 계획의 관계자인 르윈터는 일본에서 소련 대사관으로 망명을 신청한다. 그의 전문분야는 미사일의 탄두부분인 노즈콘이라는 그다지 가치없는 일이지만 그는 극비문서의 비밀 열람을 통해 자신의 천재적인 기억력으로 암기한 MIRV의 미사일 탄도 공식을 가지고 소련과 협상하여 망명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된 CIA출신의 부차관보 대리 리오 다이아몬드는 자료 조사 및 심리 분석을 통해 르윈터가 실제로 가치있는 진짜 탄도 공식을 가지고 갔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전 동료이자 CIA 담당자 듀크스는 르윈터의 탄도 공식은 가짜일 것이라는 견해를 내어 서로 대립하게 된다.

다이아몬드와 듀크스, 그리고 소련의 르윈터 담당자이자 유능한 정보국원 포고딘은 체스를 두듯 서로의 계획과 의도를 숨긴채 작전과 계획을 차차 실행해 나가게 되는데....

저는 스파이소설이라는 쟝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슈퍼맨같은 주인공, 미녀-액션이 짬뽕된 007시리즈에 대한 편견 탓에 그동안 선택에 있어서도 항상 뒷전으로 미루어 놓았었죠. 하지만 이 작품은 그간의 저의 선입견을 깨주는 좋은 작품입니다.

제목대로 미국 MIT 교수 르윈터의 망명 사건을 주요 소재로 다루는데 르윈터가 주인공이 아닙니다! KGB와 CIA가 중심이 된 양 진형의 "체스게임"이 더욱 중요하거든요. 서로 속고 속이는 관계속에서 르윈터는 단순한 소모품, 이용물로 전락될 뿐입니다. 이러한 게임이 각 진영에서 캐릭터들과 주변인물의 디테일한 묘사를 통해 (특히 정보전의 근본이 되는 여러 조직들과 회의들에 대한 묘사는 대단합니다) 세밀하고 현실적으로 벌어지며, 그야말로 "정보전"의 실체를 보는 것 같은 긴장감과 재미가 엄청나서 히어로의 큰 액션이나 반전 없이도 커다란 만족감을 전해줍니다. 그야말로 "리얼한 재미"를 전해주는 소설이랄까요?
예를 들자면 소설에서 양 진영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르윈터는 과연 탄도함수를 알고 있었는가?"에 대해 많은 추측이 오가지만 답은 결국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 양 진영에서 이 정보를 가지고 서로가 게임하듯 진행되는 과정만이 소설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을 뿐이죠. 그 외에도 많은 정보들에 대한 답은 소설속에서 답해주지 않고 오직 서로의 작전의 "과정"과 "결과"만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불친절하다 생각될 수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이러한 부분에서 리얼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예외적으로 후반부의 리오 다이아몬드의 작전에 의한 첩보 작전 자체는 꽤 긴박감이 넘치는 부분으로 스파이 소설의 전형적인 분위기를 풍기기는 하지만 작전 자체가 워낙 소규모일 뿐더러 사람과 사람을 서로 도구로 여기고 이용하며 필요여부에 따라 가차없이 배신하기 때문에 역시나 다른 소설들과 차별화되고 있고요.
아울러 여타 소설들에 비해 적수인 소련 정보국원들에 대해서도 인간적인 묘사로 표현하는 것 역시 눈길을 끄는 대목이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소련의 체스 마스터 자이체프라는 캐릭터가 굉장히 마음에 들더군요.

"추운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는 소설 자체가 리얼하기는 하지만 많이 싱겁다라는 느낌이 강했는데 이 책은 한단계 높은 수준의 재미와 흥분을 선사해 줍니다. 너무 딱딱하고 약간 덜 다듬어진 듯한 번역 때문에 읽기에는 조금 불편했지만 정말 좋은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별점은 4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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