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ang.egloos.com 의 이사한 곳입니다. 2021년 1월, 추리소설 리뷰 1000편 돌파했습니다. 이제 2000편에 도전해 봅니다. 언제쯤 가능할지....
2005/05/08
혈의 누 - 김대승 (스포일러 있습니다!) : 별점 3점
1808년 조선시대 말엽, 제지업을 기반으로 성장한 외딴 섬 마을 동화도. 어느 날 조정에 바쳐야 할 제지가 수송선과 함께 불타는 사고가 벌어지고.... 사건을 해결하고자 수사관 원규 (차승원) 일행이 동화도로 파견된다.
섬에 도착한 첫 날, 화재사건의 해결을 서두르던 원규 일행 앞에서 가시 나무에 꽂혀 죽은 참혹한 시체가 발견되며, 사건을 조사하던 원규는 모든 사고의 발단이 7년전의 마을의 존경받는 인물이었으나 5명의 고발에 의해 천주교도로 몰려 온 가족이 참혹하게 죽음을 당한 강객주 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고발한 인물들이 강객주 가족들의 참혹한 죽음과 똑같은 죽음을 당하는 연쇄살인 사건이 계속되고, 원규는 7년전 사건 당시 토포사로 강객주의 처형을 집행한 인물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 고민에 빠진다. 한편 마을은 점점 강객주의 원혼을 두려워 하는 주민들에 의해 흉흉한 분위기가 감도는데...
국내에서 거의 처음 보는 듯한 "역사 미스테리" 영화입니다. 미스테리를 표방한 영화라 제가 안볼 수 없었죠. 사실 큰 기대를 하고 본 것은 아니었는데 영화가 제 생각보다도 완성도가 높아서 놀랐습니다. 7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다음에 공포와 광기의 연쇄살인이 시작된 이유가 "범인이 싸이코라서"라는 흔해빠진 공식을 따르지 않고 제법 설득력있게 전개되고 있는 점, 그리고 역사 미스테리를 표방한 영화답게 앞서 말한대로 중후반까지는 확실하게 추리적인 요소를 놓치지 않으면서 짜임새 있는 각본으로 범인과 원규의 대결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억울하게 죽은 강객주라는 인물에 대한 감정이입도 효과적으로 이루어져 있고요.
무엇보다도 "인간이 얼마나 간사하고 잔악한 존재인가"를 잘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압권입니다. 결국 강객주 사건 당시 몇푼의 돈과 두려움으로 그를 구명하지 않은 마을 사람들이 집단 광기에 휩싸여 다른 사람의 피로 자신들의 생명을 구하려는 집단 행동을 보이는 부분의 광기 폭발에 대한 표현은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거든요. 강객주의 저주대로 피의 비까지 내리며 그야말로 제대로 "지옥"을 보여주니까요. (하지만 이 부분에서는 감독이 너무 2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한 것 같아 약간 아쉽긴 합니다. "인간의 잔악성"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너무 지나쳐서 그 전까지 추리물로 잘 전개되는 이야기가 약간 삼천포로 빠지는 느낌이 들긴 했습니다.)
하지만 제목이나 선전대로 "추리"물로서의 비중은 생각만큼 높지 않습니다. 이런 류의 영화는 대체로 범인과 탐정역의 주인공의 두뇌싸움이 펼쳐지는 편인데 이 작품에서는 거의 종반까지 강객주의 은혜를 입은 "두호"(지성)가 범인이 아닐까 하는 단서만 던져줄뿐 그에 대한 묘사나 설명은 극단적으로 배제되며, 영화 자체는 무고하게 강객주를 고발한 5명의 인물이 누구인가? 다음에 죽음을 당할 차례는 누구인가? 라는 명제에 집착하고 오히려 범인이 누구인지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참혹하게 재현된 살인 사건들의 리얼한 묘사에 따른 공포와 사건이 전개되며 가파르게 상승하는 재미 요소는 확실하지만 범인과 탐정과의 치열한 "게임"의 요소는 거의 전무한 편이에요.
물론 중반까지는 원규의 추리와 사건 해결을 위한 노력이 상당한 수준으로 전개되는 편이라 이쪽 관객을 어느정도 만족시켜 주기는합니다. 특히 초반 가시나무에 꽂힌 시체의 검시를 통한 진상 규명은 상당히 색다르게 다가온 부분으로 리얼한 재미를 가져다 주었고, 아무도 없었던 배의 방화사건의 트릭 알아내기도 상당히 괜찮은 아이디어였어요. 강객주의 살아남은 딸이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남장을 하고 3년여 동안 섬으로 방문한 이유 - 그녀를 살려준 중요 인물 (즉 범인) 이 섬 밖으로 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를 논리적으로 추리하는 부분도 마음에 들었고요.
가장 큰 문제는 범인으로 밝혀지는 김인권(박용우)에 대한 설득력이 너무나도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이쪽 장르에서 본다면 치명적인 약점이죠. 악덕 지역유지의 전형으로 보이나 사실은 강객주의 딸과 사랑하는 사이였다라는 설정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종반까지 거의 언급되지 않은 그의 "바다 공포증"은 가장 결정적 단서인데 영화 이야기 내내 등장하지 않아 마지막에 설명될때는 조금 당황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앞부분에서 인권과 원규가 처음 대면할때 이 공포증에 대한 단서를 약간만이라도 던져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네요.
또 극 초반에 무당에게 빙의한 강객주의 원혼같은 장면은 별로 필요없는 장면이 아니었나 싶고, 무당 캐릭터 자체가 왜 등장하는지는 잘 모르겠더군요. 미녀 캐릭터가 필요했던 걸까요? 그리고 한가지, 원규가 왜 마지막의 강객주의 딸과 인권과의 암호편지를 바다에 버리는 지는 정말 알 수 없었으니 아시는 분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제 생각에는 "그냥 묻어버리려고" 한 것 같은데 말이죠)
그래도 한마디로 말한다면, 꽤 잘 만든 역사 스릴러입니다. 배우들 연기도 나무랄데 없고 나름대로 밀고 땡기는 맛이 잘 살아 있습니다. 저는 정말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이쪽 장르물은 국내에도 거의 없는 편이긴 해도 비교 대상 자체가 거의 없을 정도로 괜찮은 작품입니다. 사실 "영원한 제국"이라는 작품은 추리물은 절대 아니었다 생각되거든요. 별점은 3점입니다.
그나저나 지성은 왜 이 영화에 나온걸까요? 대사도 별로 없을뿐더러 "말도 안돼는 이유로 주인을 배신하고 끝내는 난도질 당해서 죽는" 최악의 역인데 말이죠....
PS : 여친이 "범인은 차승원이다!"라는 스포일러를 메신저로 보내줘서 조금 열받았었는데 범인이 아니라서 더 황당하고 재미있었던 점도 있습니다.^^
Labels:
Movie Review - 추리 / 호러
피드 구독하기:
댓글 (At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