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회사에서 촉망받는 젊은이로 야망에 불타는 세가와 시게오는 연이은 실패로 알거지가 된 채 퇴사를 하게되지만, 일찌기 알고 지내던 친구 야마구치 가즈미의 소개 및 상당한 수준의 월급에 끌려 사까이 미끼오라는 사나이가 이끄는 정체불명의 회사에 입사한다. 하지만 사까이 미끼오의 정체는 스파이 회사의 사장으로, 그는 세가와에게 옛 친구 오기노가 상무로 있는 "시찌요오 화학"이 최신 개발하고 있는 일종의 첨가제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 줄 것을 요청한다.
큰 돈, 그리고 과거 자신의 연인이었던 오기노의 아내 에이꼬에 대한 감정이 얽힌 세가와는 산업 스파이로서 활동을 시작하나 오기노에게 밀고가 들어와 오기노에게 모욕당하고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 그러나 그 직후 오기노가 교살된 시체로 발견되고, 세가와를 보호해 주기 위해 가즈미는 둘이서 거짓 알리바이를 만들어 서로 입을 맞추나 가즈미마저 살해된 뒤, 현장에서 도망치는 세가와를 목격한 목격자까지 등장하자 경찰은 세가와를 범인으로 지목하게 되는데....
풍림출판사에서 나온 다카키 아키미쓰의 작품. 이 작가 책은 상당수 번역되어 있는 듯 하지만 구하기가 쉽지 않았었는데 이 책은 헌책방에서 운좋게 구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원제는 "밀고자"입니다. "문신 살인사건"의 가미즈 교스케가 아닌 "기리시마 사부로" 검사가 탐정으로 등장하는 시리즈의 2번째 작품으로, 조사해보니 발표년도는 1965년이군요. 기리시마 사부로 검사 시리즈는 이전에 "제로의 밀월"이라는 작품을 읽어서인지 그다지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천재형이라기 보다는 이지적이면서도 냉정하고 객관적인 판단력의 소유자로 평범한 사람에 가까운 인물로 묘사되어서 훨씬 현실적으로 와 닿는 점이 있기에 마음에 드는 캐릭터죠.
꽤 오래된, 50여년 전의 일본 작품 답지 않게 변격물적인 느낌이 거의 없는, 상당히 현실적인 이야기가 전개되어 이후의 사회파 작품들과 유사한 느낌을 전해준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전에 읽었었던 작가의 다른 작품인 "문신 살인사건"같은 일본 작품 특유의 분위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신기한데, 검사라는 주인공 탐정의 특징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거기에 잔혹하지 않은, 어떻게 보면 평범한 2건의 살인이 등장할 뿐이지만 산업스파이와 불륜관계가 상당히 복잡하게 얽히고, 세가와가 진범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독자에게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전개시키는 솜씨는 정말로 탁월하더군요. 그야말로 거장이라는 명성에 값한달까요?
또 사회파적인 느낌이 든다고 하였지만, 트릭이 정통본격물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뛰어나다는 것도 큰 장점입니다. 인물도 몇명 등장하지 않고 정확한 동기마저 가려져 세가와에게 의심이 집중되는 와중에 극적인 반전이 벌어진다는 점, 그리고 독자에게 모든 정보를 공평하게 제공하는 정통물의 미덕까지 갖추었다는 점도 아주 마음에 들었고요.
단서가 일종의 "우연"에 의지하고 있다는 점, 결국 범인의 사소한 실수와 방심으로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는 구조 등 약간의 단점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변격물을 넘어서서 사회파의 여명기의 다리 역할을 충실히 하는, 그러면서도 "추리"라는 쟝르의 기본 정신을 잃지 않는 좋은 작품입니다. 다카키 아키미쓰의 거장으로서의 풍모와 시대를 앞서가는 감각을 충분히 전해주기도 하고요. 별점은 4점입니다.
그나저나... 번역이 더욱 좋았더라면 완벽했을텐데 약간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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