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17/02/27

피너츠 완전판 5 - 찰스 M. 슐츠 / 신소희 : 별점 4점

피너츠 완전판 5 : 1959~1960 - 8점
찰스 M. 슐츠 지음, 신소희 옮김/북스토리
피너츠 완전판 4 : 1957~1958 - 찰스 M. 슐츠 / 신소희 : 별점 3점

피너츠 완전판 5권.

5권에서 벌어진 가장 큰 사건은 찰리 브라운에게 동생 샐리 브라운이 생긴 것입니다. 덕분에 샐리에 대해 상당히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샐리 때문에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찰리 브라운에게 슈뢰더가 일침을 놓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넌 그냥 출세주의자일 뿐이야. 넌 단지 동네의 다른 아이들에게 근사해 보이는 위치를 바라는 것 뿐이라고. 사인볼 하나만 있어도 그 정도 위치는 얻을 수 있었을 거야!"
그 외에도 라이너스가 항상 주장하는 할로윈 호박 대왕 이야기, 루시가 5센트로 정신 상담을 진행하는 이야기, 샐리가 라이너스에게 애정 공세를 펴는 이야기 모두 처음 선보입니다. 연날리기, 야구 시합에서 패배를 거듭한다는 친숙한 찰리 브라운 이야기도 이어지고요.

무엇보다도 반가운 것은 가장 유명한 말인 "행복이란 따뜻한 강아지 (Happiness is a warm puppy)" 에피소드였습니다. 당연히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가 등장하는 에피소드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스누피를 쓰다듬고 안아준 루시가 하는 말이었네요. 뒤이어 라이너스 (행복이란 받아쓰기에서 만점을 받는 것), 찰리 브라운 (행복이란 영화를 볼 35센트, 팝콘을 사 먹을 10센트, 그리고 초코바 값 5센트라고!) 등의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 것도 이채로왔습니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 중 저는 도서관 책을 잃어버린 찰리 브라운의 고뇌를 그린 에피소드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개인이 제도에 맞서 싸울 때면 언제나 제도가 이기게 마련이지!"라는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죠.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4점! 풍성한 볼륨과 수록된 작품들 모두 여태까지 출간되었던 완전판 중 최고입니다. 팬이시라면 다른 건 다 몰라도 이 책만큼은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뭐 팬이시라면 이미 다 구입하셨겠지만요.

2017/02/26

술이 있으면 어디든 좋아 - 기타무라 가오루 / 오유리 : 별점 3점

술이 있으면 어디든 좋아 - 6점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오유리 옮김/작가정신
일상계 추리소설로 유명한 기타무라 가오루가 출판사에서 일하는 코사카이 미야코라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여 술 때문에 벌어진 온갖 에피소드들을 일종의 만담처럼 써내려간 작품. 짤막한 이야기들이 이어지면서 전개된다는 점에서는 연작 단편 소설 느낌도 듭니다. 등장인물들이 한명씩 결혼하고, 마지막은 미야코가 화가 오코조와 결혼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거든요.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술 때문에 벌어지는 사건들은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술 먹고 상사에게 실수를 한다던가, 중간에 잠들어서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던가 등의 이야기들이거든요. 그러나 다행히 그냥 술 먹고 사고치는 이야기만 수록된 것은 아닙니다. 사건들의 디테일이 좋고 기승전결, 게다가 반전까지 맞아 떨어지는 재미난 이야기들이 가득해요.
예를 들면 엔도 편집장 이야기들 들 수 있습니다. 미야코가 술을 먹고 엔도에게 와인을 쏟게 되는 사건을 저지르는 이야기입니다. 여기까지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지만 이는 이야기로 따지면 '기승'에 불과합니다. '전', 즉 극적 긴장을 불러 일으키는 부분은 아내에게 잡혀사는 엔도에게 술취한 다음날 아내가 화를 내면서 물어보는 장면부터입니다. 와인을 누가 쏟았냐고. 엔도는 이실직고합니다. 회사 여직원이 취해서 쏟았다. 그런데 아내가 보여준 것은 런닝이었습니다! 그때 엔도는 기겁을 합니다. 셔츠는 전날 술집에서 빨아주어서 얼룩이 없어진걸 떠올렸기 때문이죠. 여자가 술취해서 술을 쏟았는데 셔츠가 아니라 런닝에만 묻었다.... 여기가 '전' 부분입니다. 다행히 셔츠에 묻은 와인도 지워진게 아니라 어두운 조명 탓에 지워진걸로 보였다는 결로 이어지죠. 재미있지 않나요?

추리 소설가다운 에피소드들도 제법 있습니다. 첫번째는 세토구치 마리에, 통칭 문언니가 오랜 동료 이케이의 결혼 축하 회식에서 이케이의 결혼 반지를 잃어버리는 에피소드입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고, 결국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도 반지를 찾지 못해 우는 문언니를 이케이가 위로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지만 미야코의 추리가 긴 여운을 남깁니다. '어쨌거나 문언니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을 벌이고 싶었던게 아닐까? 그러면 그 핑계로라도 울 수 있을 테니까...' 일상계다운 멋진 이야기였어요.
다음 에피소드는 미야코가 친구 사나에와 함께 가루이자와로 출장갔을 때의 에피소드입니다. 함께 술을 먹고 미야코가 깜빡 잠든 사이 사나에가 사라집니다. 미야코는 한참 찾다가 호텔 방 밖에서 자고 있는 사나에를 발견하죠. 그런데 그녀를 데리고 들어 오려다 호텔 방 문이 닫혀 못 들어 오게 됩니다! 만화 등에서 흔히 보아 온 이야기의 재탕이긴 한데 진상에 대한 추리가 그럴 듯 합니다. 사나에가 사는 집 구조가 호텔과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술 때문에 집에 온 것으로 착각한 사나에가 욕실에서 나온 다음 좌측으로 돌아 문을 열고난 뒤 바로 뻗었는데 방의 배치는 정 반대여서 호텔 밖에 쓰러지게 된 것이죠.

이러한 이야기를 탄탄한 묘사로 뒷받침하는데 이 역시 볼만합니다. 누군가가 이야기 해 주는 듯한 문체도 독특하고요. 특히 코사카이 미야코의 심리묘사와 대사들이 정말로 찰집니다. 정말로 어딘가에 있는, 현실 속 누군가를 그대로 그려낸 듯 생생한 덕입니다. "뭐가 구시렁이고 뭐가 불평인가. 그 기준점은 명확히 정의할 수 없다. 하지만 전자에 약간의 유머와 여유가 있다면, 후자는 오로지 암흑의 구렁텅이 같은 이미지다." 같은 식으로 말이죠. 이외에 온갖 맛있는 술과 안주에 대한 소개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애주가, 그 중에서도 만화 <<음주가무연구소>>를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완전히 취향 저격이실 겁니다.

2017/02/25

뮤지엄 1~3 - 토모에 료스케 : 별점 2점

뮤지엄 3 - 4점
토모에 료스케 지음/대원씨아이(만화)
자신의 범행을 예술이라 생각하는 쾌락 살인마 기리시마 사나에와 형사 사와무라의 대결을 그린 전 3권짜리 범죄 스릴러. 범행이 엽기적이고 잔혹하게 묘사된 점에서는 "고어 스릴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잔인하고 조금은 독특한 범행으로 흥미를 끄는 점 외에는 뻔한 설정이 반복되어 지루합니다. 무언가 잘못한 사람에게 독특한 형벌을 내린다는 설정은 <<세븐>>이래 흔하게 이어져 온 것입니다. 범인이 독특한 미학을 지닌 정신병자로, 범행이 이것에 기초한다는 설정도 흔하고요.
배심원 연쇄 살인 사건의 범행 동기인 "어떤 멍청이가 내가 저지른 범인으로 판결되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는 설정도 확실치는 않지만 분명 어딘가에서 본 기억이 납니다.

추리적으로도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범인 기리시마가 범행을 저지르는 방법에 대한 디테일이 부족한 것은 물론 "어떻게 이런 정보를 알았을까?" 같은 작 중 의문조차 제대로 풀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피해자들에 대해 상세히 알고있는 이유, 몰래 카메라를 설치한 방법 등 설명되지 않는 내용 너무 많아요.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렇지, 단독으로 행하기에는 여러모로 무리인 범행들이기도 하고요.
사와무라가 마지막에 동료에게 알리지 않고 단독으로 기리시마 자택으로 잠입하는 행동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괜찮았던 부분은 사와무라가 기리시마가 범인임을 알게되는 장면 정도입니다. 범행 현장에 비가 오던 것, 그리고 첫 범인 목격 당시 (니시노 살해 당시) 현장에 비가 내리다 그친 것에 범인이 긁적이는 행동과 내뱉은 말을 더해 광선과민증이 아닐까?라는 추리를 하는 장면이죠. 이후 전문 병원들 순례하다가 햇빝에 대한 극도의 병적 조건반사를 지닌 범인을 알아낸다는 것인데 꽤 그럴듯했습니다.
기리시마에게 감금된 사와무라가 필사적으로 탈출을 위한 암호를 푸는 장면, 이어지는 기리시마의 잔혹한 음모도 괜찮았습니다. 전 3권으로 깔끔하게 마무리 된다는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죠.

그러나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은 작품입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덧붙이자면, 3권 말미에 수록된 작가의 단편 <<우리는 친구 아니겠냐>>가 훨씬 나았습니다.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괴담인데 뺑소니, 시체 유기로 붕괴하는 거짓 우정의 연쇄가 잘 그려져 있으니까요. 본편도 차라리 더 짧았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천계살의 - 나카마치 신 / 현정수 : 별점 2.5점

천계살의 - 6점
나카마치 신 지음, 현정수 옮김/비채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물간 추리소설가 야규 데루히코는 <추리세계> 편집부에 전화를 걸어 담당 편집자 하나즈미 아스코에게 새로운 기획을 이야기한다. 그가 내 놓은 것은 추리소설의 '문제편'. 야규는 자신과 다른 해결편을 탤런트 겸 소설가 오노미치 유키코가 썼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남기고 온천으로 해결편을 쓰기위해 떠난 후 자살한다.
아스코는 야규가 쓴 <<호수에 죽은 자들의 노래가..>>가 실제로 후쿠시마에서 벌어졌던 여성 살인사건을 그대로 쓴 것임을 알아낸다. 이후 그녀는 피해자 가미나가리 아사에의 남편 라이조,   아사에의 먼 친척으로 라이조와 아사에 공장에서 비서 겸 사무원으로 일하는 가타기리 요코, 공장장 우라니시 사부로 등을 차례로 만나며 사건 진상에 서서히 접근해 가는데...

<<모방살의>>에 이은 살의 시리즈 2작. <<모방살의>>는 유명세와 기대에 비하면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본격물 팬으로서는 만족한 부분도 있었기에 이 작품도 읽게 되었습니다.

오래전 발표했던 단편을 80년대에 가필, 수정하여 장편으로 만든 방식은 <<모방살의>>와 동일합니다. 그래서인지 설정과 전개가모두 옛스럽습니다. 젊은 여성 편집자가 혼자 온천 여관, 호텔, 레스토랑 등을 탐문하여 증거를 수집하는 과정은 마츠모토 세이초<<푸른 묘점>이 바로 떠오를 정도였어요.

핵심 트릭으로 일종의 서술 트릭이 사용되었는데 그 트릭의 수준이 높다는 점도 모방살의와 같습니다. 야규가 아스코에게 준 소설을 활용한 트릭으로 독자가 알고 있는 '문제편'이 전부가 아니라 뒤에 이어지는 아스코의 수사 활동, 그리고 오노미치 유키코가 자살하는 장면까지가 진짜 문제편이라는 트릭이죠. 현실과 소설이 어우러진 구조인데 지금 읽으면 그다지 새롭지는 않습니다. 얼마전에 읽은 피에르 르메트르의 <<능숙한 솜씨>>도 동일한 트릭이 사용되었었습니다. 하지만 발표연도를 감안한다면 시대를 앞서간 트릭임에는 분명합니다.
이 부분을 독자에게 알려주는 단서와 복선이 살짝살짝 등장하는 것도 본격물스러워서 좋았습니다. 400자 원고지 58매를 읽고 검토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던가, 복사에 오랜 시간이 걸렸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야규가 서점주인 이리우치지마 유키토모에게 건넨 1만엔도 복사비로는 너무 과하죠.

그 외에 배치된 소소한 트릭들의 수준도 높습니다. 라이조에게 배달된 현금이 든 편지와 방화 사건을 속달을 보통 우편으로 속이기 위함이며, 이를 현금이 1,000엔 짜리와 5,000엔 짜리가 섞여 있다는 것으로 추리해 내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무게를 조정하기 위해서라는 현실적인 이유가 뒷받침된 좋은 트릭이었어요.
여관에 투숙한 손님이 초밥을 손으로 집어 먹는 것으로 그녀가 아사에가 아닌 다른 여성이었다는 것을 드러내는 전개도 그러합니다. 이 여성이 누구인지에 대한 추리도 그럴듯합니다. 드러나는 증거들로 가타기리 요코에서 오노미치 유키코로 혐의가 이동하는 과정이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아닌 제 3의 인물이었다는 반전도 나쁘지 않고요.

그러나 트릭을 제외한 부분의 완성도가 낮다는 점 역시 전작과 동일합니다. 아니, 솔직히 설득력면에서는 전작보다 못합니다.
특히 전개가 엉망이에요. 우선 아스코가 곧이곧대로 오노미치 유키코에게 해결편을 의뢰한 것 부터가 말이 안됩니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그대로 써서 활자화할 수 없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면 그 이유를 대고 기획을 중지하면 그만이죠. 사건을 키울 필요는 전혀 없어요. 설령 해결편을 의뢰했더라도 야규가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이후에는 그냥 손을 놓아버리는게 맞습니다. 야규의 문제편만 보면 드러난 범인이 명확하고, 야규는 죽었고, 만사형통이잖아요. 어떤 멍청한 범인이 자신이 저지른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단 말입니까? 서점 주인 이리우치지마가 가진 복사본이 남아있지만 증거가 안된다는 것은 이미 아스코와 이리우치지마 사이의 대화를 통해 증명되니 무의미하고요.

아사에를 죽인 이후 여관에 투숙한 것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아사에가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면, 그녀를 가장하여 투숙한 사람이 범인일 수 밖에 없게 됩니다. 과연 이 상황에서 범인이 정체가 탄로날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드러낼 수 있을까요? 작 중 등장하는, 우편을 이용한 일종의 알리바이 트릭은 가타기리 요코와 우라니시 사부로가 벌인 사전 공작으로 아스코는 모르는 상황입니다. 덕분에 가타기리 요코, 오노미치 유키코가 누명 (?)을 쓰게 되는 전개는 순전히 운이 좋았을 뿐, 의도한 상황은 아닙니다. 사건 직후 손이 떨려서 운전을 할 수 없어서 쉴 수 밖에 없었다는 설정은 설득력이 약합니다. 차에서 쉬면 되니까요.
이외에도 우연이 개입된 전개가 너무 많습니다. 유키코와 아사에가 만나게 된 해피닝, 아스코가 유키코의 퇴원을 도와주던 아사에의 차에 함께 탄 것, 알리바이 공작을 위해 여관에 투숙한 아스코를 가타기리 요코가 찾아온 것 등등등... 이래서야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아울러 사건이 복잡해진 것에 경찰의 무능함이 한 몫하는 것도 단점입니다. 피해자 아사에가 당당하게 자기 이름을 대고 병원에 찾아왔는데 경찰이 동승자를 파악하지 못했다? 일개 추리 소설가와 잡지 편집자가 추적하여 진상을 밝혀낼 수 있는 수준의 수사조차 경찰이 하지 않았다는 것은 여러모로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단점도 많지만 눈여겨볼만한 트릭과 아이디어가 있기는 합니다. 본격물 애호가시라면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2017/02/22

2016년 하우미스터리 선정, 올해의 추리소설!

2015년 하우미스터리 선정, 올해의 추리소설!

매년 이맘때쯤 발표되는 2016년 하우미스터리 선정 올해의 추리 소설결과입니다. 후보작은 작년보다 49권 늘어난 290권. 그러나 투표 인원은 50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좀 아쉽습니다. 그래도 투표하신 분들이 대부분 추리 애호가라는 점에서 꽤 믿을만한 투표라 생각합니다. 2016년의 1~3위는 아래와 같습니다.

1위 15표 :
<파인더스 키퍼스> 스티븐 킹, 황금가지

2위 13표 :
<여왕국의 성> 아리스가와 아리스, 검은숲

공동 3위 9표
<라이프 오어 데스> 마이클 로보텀, 북로드
<맹인탐정 맥스 캐러도스> 어니스트 브래머, 손안의 책
<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푸른숲

제가 읽은 작품은 공동 3위 포함 총 5권 중 딱 1권 뿐입니다. 이래서야 추리 애호가라고 하기도 어렵겠어요. 제가 뽑은 1~3위는 아예 순위에도 없고요. 독서 취향이 오래전 고전 취향인 탓도 크겠지만 그래도 올해는 더 분발해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제 선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천사들의 탐정 - 시간이 흘러도 건재한 사와자키의 매력
2. 봄철 한정 딸기 타르트 사건 - 고전부 전에 소시민이 있었다! 일상계의 매력
3. 맹인탐정 맥스 캐러도스 - 완성도를 떠나 고전의 소개는 반갑다.

2017/02/19

풍미 갤러리 - 문국진, 이주헌 : 별점 2점

풍미 갤러리 - 4점
문국진.이주헌 지음/이야기가있는집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 처럼 그림에 그려진 음식에 대해서 설명하고, 그림과 그려진 시대, 화가 등도 같이 소개하는 책이라 생각하고 집어든 책. 베르메르의 <<우유를 따르는 여인>>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당시 유럽에서 일반적인 젖소는 어떤 품종이었고, 그 젖소에서 따른 우유의 맛과 특징은 어떠했으며, 우유를 왜 따랐으며 어떻게 해서 먹었는지 등을 정리한 후 대표적인 요리와 먹은 사람, 관련된 문화나 역사, 혹은 풍습 이야기로 마무리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러나 기대와는 전혀 다른 책이었습니다. 음식과 식문화는 중요하게 소개되지 않거든요. 음식은 음식물을 그린 정물화, 푸줏간이나 고기가 그려진 그림, 수확에 대한 그림, 부엌이 등장하는 그림 커피에 대한 그림, 빵이 그려진 그림 등으로 나누기 위한 카테고리 분류 기준에 불과합니다.

물론 그림에 대한 미학적, 예술적인 분석 측면에서는 괜찮긴 합니다. 신선하게 느껴진 부분도 없지 않고요. 그러나 미술평론가 이주헌씨 분량에 한합니다.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법의학자 문국진씨 부분은 여러모로 애매해요. 쉽게 동의하기 어려운 본인 주장이 많기 때문입니다. 과일을 먹는 소년들을 그린 에스테반 무리요의 <<과일 먹는 소년들 >>을 '식물의 카니발리즘으로 탄생되는 카니발 현장'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 소박한 그림이 카니발리즘과 상관있다는 주장도 어이가 없었지만 이어서 <<아들을 먹어 치우는 사투르누스>>를 소개하며 식인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전개로 이어지니 실로 당황스러웠어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몇몇 볼만한 부분은 있지만 제목과 제 기대에 어울리는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저와 같은 오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덧붙이자면 이럴 바에야 문국진씨의 전문 분야를 살려 죽음에 대한 그림을 분석하는게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이 책에서도 고흐의 자화상을 보고 '눈 주변의 부종, 눈의 충혈, 술의 부작용으로 변형된 얼굴, 굳어진 표정'을 근거로 압생트를 과음한 것 같다고 설명하는 부분이 있는데 훨씬 좋았거든요.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 역시 소크라테스가 먹은 식사와 독에 관련해 상세하게 정리해서 전달해 주는 것이 괜찮았고요. 당시에는 독당근을 사용하여 사형을 집행했다, 독당근의 독성분은 코니인이다, 여름날 가뭄이 져 뜨거울 때에는 구름이 낀 날 보다 독성이 2배로 높아진다던가 하는 흥미로운 정보들이 가득하고요.

2017/02/18

갓 오브 이집트 (2016) - 알렉스 프로야스 : 별점 1.5점



'옥수수' 무료 영화로 감상한 작품. 

한마디로 최악의 영화. 본 사람들이 돈을 받아야 할 것 같아요. 제일 큰 문제는 시나리오입니다. 기둥이 되는 복수극 - 아버지 오시리스를 죽이고 자신의 두 눈을 뺐어간 삼촌 세트에게 호루스가 복수한다 - 은 뻔하지만 원전인 이집트 신화 그대로인만큼 문제는 아닙니다. 호루스가 겪는 고통은 시련이며, 배려와 백성(?)에 대한 사랑을 깨달아야 시련을 극복하고 진정한 왕이 될 수 있다는 극적 흐름도 나쁘지는 않고요. 그러나 진행되는 과정이 엉망입니다. 이런 시나리오에 1억불이 넘는 돈을 투자한 제작진이 이해가 안됩니다. 라이언스 게이트가 망해가는 이유겠죠.

우선 인간 벡, 그는 죽은 연인 자야를 되살리기 위해 호루스의 복수를 돕는 인물입니다. 허나 극초반 호루스의 눈을 훔쳐낸 다음부터는 영화는 과묵한 액션 마초 (호루스)와 떠벌이 재담꾼 (벡)이 함께하는 전형적인 미국풍 버디 코미디 액션 영화가 되어버립니다. 연인은 죽고 세계는 멸망하기 직전인데 말이죠. 세트가 가진 힘의 원천이라는 불길이 있는 피라미드의 길을 안다는 유일한 장점도 불을 끄는데 실패함으로써 무위로 돌아갑니다. 그나마 마지막 호루스의 선택으로 시련을 극복하는 장면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긴 합니다만... 그 전까지 보여준 존재감은 최악입니다.

최종 보스 세트도 엉망인건 마찬가지. 그 중에서도 파워 밸런스 문제는 최악 중 최악으로 토트의 지혜, 호루스의 눈 , 오시리스의 심장, 네프티스의 날개에 라의 창까지 한 몸에 지닌 완전체인데 이 모든 것을 갖추기 전에 떡으로 만들었던 호루스에게 결딴나는 마지막 격투는 이게 뭔가 싶더군요. 시련을 극복한 호루스가 파워업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만... 정말 그랬다면 일본 애니메이션처럼 한번 더 변신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대사만으로도 - '새로운 힘이 느껴져!' 뭐 이런거요 - 강해졌다는 설명을 해 줬어야 합니다.

CG도 끔찍합니다. 번쩍번쩍할 뿐 일본 특촬물 과 다를게 없어요 . <<세인트 세이야>> 실사판이 나오면 이렇지 않을까요? 디자인이라도 괜찮았어야 했는데 뻔한 이집트 메타포를 활용, 복제한 수준에 머뭅니다. 호루스 변신 형태는 깡통 로보트를 보는 느낌이었어요. 라의 거인 변신도 어이가 없었고요.
이 쯤 되면 이집트를 무대로, 이집트 신들과 인간이 등장하지만 주인공들은 모두 백인이라는 문제는 문제로 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나마 신은 인간보다 크다던가, 각 신들의 특수 능력을 떼어내면 일종의 오브제 (토트의 뇌와 호루스의 눈은 보석, 날개는 날개모양 판때기...)가 되는 등 몇몇 설정 외에는 건질게 하나 없는 졸작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혹시나 공짜로 볼 수 있어도 피해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시간은 가치있는 무언가를 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니까요. 그게 뭐든 이 영화 감상보다는 가치가 있는 행동일 겁니다.

덧붙이자면, <<300>>처럼 어두운 다크 판타지로 만들면 좀 더 나았을 것 같습니다. 벡이라는 인간말고 그야말로 신들의 전쟁으로요. 눈을 훔치는 것은 호루스를 위하여 세트에게 몸을 바친 하토르에게 맡기고, 하토르는 그 때문에 세트에게 죽음을 당하지만 그녀를 죽게 놔두고 백성을 택한 호루스의 각성으로 이집트가 평화를 되찾는다... 정도의 이야기였으면 깔끔했을겁니다. 마지막은 2편을 위해 하토르를 구하러 죽음의 나라로 떠나는 호루스를 그리는 것으로 화룡정점! 이렇게만 나왔으면 별점 2.5점은 줬을 듯?

2017/02/17

네버 고 백 - 리 차일드 / 정경호 : 별점 2.5점

네버 고 백 - 6점
리 차일드 지음, 정경호 옮김/오픈하우스

잭 리처는 전화 통화로 호감을 느낀 수잔 터너를 만나기 위해 110 특수부대를 찾아간다. 110 특수부대는 과거 잭 리처가 부대장이었으며 수잔 터너가 현재 부대장을 맡고 있는 부대. 그러나 도착한 잭 리처는 자신이 16년 전 폭행 치사 사건과 친부 확인 소송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통보받고, 수잔 캐런도 반역죄 혐의로 수감되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이 모든 것이 음모임을 깨달은 잭 리처는 수잔 터너와 함께 탈옥한 후 진상을 밝히기 위한 여정에 뛰어든다.

잭 리처 시리즈는 최근 가장 인기 시리즈 중 하나입니다. 톰 크루즈 주연으로 영화가 제작될 정도죠. 그러나 딱히 끌리지 않아서 아직 소설은 읽어보지 못하던 차, 마침 읽을 책이 없기에 집어든 것이 이 작품입니다. 얼마전 개봉한 신작 영화의 원작으로 영화화될 정도라면 시리즈 중에서도 재미와 인기가 최고 수준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잭 리처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알고 있기에 전작을 읽어가면서 배경 설명을 익힐 필요도 없었으니까요.

읽어보니 확실히 인기 있을만 하더군요. 재미만 놓고 보면 어디 내 놓아도 꿀리지 않거든요. 거대한 음모가 있고, 음모를 밝혀내기 위한 과정, 그 와중에 닥치는 여러 위기들이 흥미진진하게 묘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하나씩 하나씩 단서가 밝혀지며 음모가 드러나는 전개가 괜찮습니다. 16년전 살인 사건과 문란한 생활이라는 누명으로 수감된 후 수잔 터너와 함께 탈옥하여 이것이 아프가니스탄 작전에 관련된 음모라는 것을 알아내고, 단서를 변호인 설리번과 에드먼즈에게 정당하게 요청하여 하나씩 단서를 수집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결국 음모의 실체에 도달하는 과정이 꽤나 설득력있게 묘사된 덕입니다. 음모의 핵심인 아편 밀수를 '무기'를 밀거래한 것이 아니라면 미국의 병참부대원들을 데리고 무엇으로 어떻게 장사를 한 것일까?라는 수수께끼와 함께 주어진 복선 (예를 들어 에밀 자드란의 형들이 양귀비를 재배한다는)을 통해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요.
이 과정에서 시발점이 되는 탈옥에 대한 묘사도 훌륭합니다. 우연을 적절히 활용하여 당직 대위와 변호사 설리번을 감옥에 가둔 후, 변호사들의 신분증을 이용하여 탈옥하는 과정의 설득력이 높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보면 작위적인 우연이 겹친 상황을 잭 리처 시점에서 동전 던지기를 인용하며 최대한 가능성있게 설명하는 것도 좋았어요.
음모와는 상관없이 단돈 30달러로 탈주를 이어갈 수 없기에 산속 오지 마약상 빌리 밥 재산 강탈 (ATM?) 설정을 집어 넣었는데 이 과정 역시 볼만합니다. 사만다가 자신의 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는 나름의 반전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아이 엄마를 알아보지 못함!-도 그럴듯하고요.

잭 리처 캐릭터도 나쁘지 않습니다. 쿨하고 냉소적인 한마리 고독한 늑대 해결사라는 것은 전형적이긴 합니다. 보통 이상의 입담도 특별하지는 않고요. 그러나 엄청난 거구에 적수를 찾을 수 없는 최강자라는 독특함을 그럴듯하게 , 생생하게 그려낸 것이 인기의 비결인 듯 합니다. 옷은 세탁을 하지 않고 버린다던가, 운전을 잘 못한다는 디테일도 묘하게 캐릭터에 실체감을 더해주는 요소였습니다. 워즈워스의 시를 알고 클럽 '도브 코티지''의 어원을 꿰뚫을 정도로 문학에 조예가 있다는 것은 좀 오버스러웠습니다만...

물론 단점도 있습니다. 가장 큰 단점은 왜 처음에 잭 리처를 죽이지 않았는지 설명되지 않는 것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처음부터 해결사를 보낼 때 경고가 아니라 제거를 목표로 움직였어야 해요. 그들 말대로 사라져도 아무도 찾지 않을 인물을 뭐하러 경고까지 해 가면서 도망가게끔 유도하나요? 있지도 않은 가짜 사건을 억지로 만드느니 없애는게 깔끔한데 말이죠. 아프가니스탄의 미군을 죽이는건 주저하지 않았기에 손을 더럽히기 싫었다라는 이유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또 리처와 수잔의 행적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권력을 소유한 악당이 전투력 부족한 단 4명의 인력만으로 잭 리처를 추격한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어요. 리처 표현을 빌면 아마추어급인데 말이죠 .
구태여 LA로 가서 딸로 알려진 아이를 만나려는 설정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본 음모와 하등의 상관도 없고요.
잭 리처의 먼치킨 설정도 조금 불만입니다.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이지만 위기를 별로 어렵지 않게 뛰어넘어서 가면 갈 수록 긴장이 풀리고 말거든요. 그 중에서도 마지막, '결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쉬라고와의 일기토가 주먹 2방으로 끝나는 묘사는 허무할 정도입니다. 쉬라고가 왜 총을 꺼내지 않았는지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요.
그리고 단점은 아니지만 같이 도망가는 남녀가 하루만에 눈이 맞아서 위기의 순간에 정사를 벌인다는 미국식 설정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단점에도 불구하고 킬링 타임용으로는 충분합니다. 다른 시리즈도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2017/02/11

모아나 (2016) - 론 클레먼츠, 존 머스커 : 별점 3점


모투누이 섬 족장의 딸 모아나는 죽어가는 섬을 살리기 위해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테 피티의 심장을 돌려놓는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테 피티의 심장을 훔쳤던 영웅 마우이를 찾아 나서는데...

디즈니 애니메이션 최신작. 딸아이와 함께 감상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전연령 대상 애니메이션이라 하더라도 내용은 개연성이 많이 떨어지더군요. 시작부터 그러합니다. 마우이가 테 피티의 심장을 훔친 직후, 테카와 싸우는 묘사가 연이어지는데 이것은 테피티가 테카가 되었다는 반전을 왜곡시키는 묘사입니다.
게다가 항해 민족이었던 모아나의 부족이 항해를 그만 둔 이유도 대충대충일 뿐더러, 항해를 그만 둔 것이 부정적으로 그려지는 것은 당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정착할 땅을 찾았으니 항해할 필요가 없어진 것에 불과한데 말이죠.
또 모아나를 떠난 마우이가 테카와의 최후의 결전 중 모아나에게 돌아온 이유도 설명이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고요.
무엇보다도 바다가 선택해서 바다가 돌보아주는 모아나가 테카를 넘어서자 못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바다가 방패막이만 해 주었어도 모아나는 아주 쉽게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을겁니다.

그렇지만 이 모든 단점을 덮어버릴 정도의 강력한 장점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바로 시각적인 쾌감입니다! 완성도, 비쥬얼, 아트웤이 정말 어마어마해요. 그 중에서도 바다에 대한 묘사는 정말로 출중해서 이 정도면 실사로 짝을 필요가 없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어비스>>에서 물 CG를 보고 경악했던게 엊그제같은데 이제 실사보다 더 실사같은 CG의 시대라니 격세지감입니다. 바다 외의 이국적인 열대 섬을 무대로 한 풍광과 디테일들도 좋아요. 겨울 왕국 다음에는 열대 낙원인 것이겠죠? 문신을 활용한 전개 등 해당 지역의 문화와 풍습을 이야기에 잘 녹여낸 묘사들도 볼거리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할머니가 돌아가시며 가오리가 되어 모아나를 이끄는 장면은 정말이지 울컥하게 만드는 명장면이었다 생각합니다.
또 간만에 '강한 남자'가 등장하는 것도 괜찮았어요. 디즈니 세계관의 왕자님 캐릭터들과는 다른, 거칠고 무례한 마초적 매력이 넘치면서도 실제로 강한 능력자라는 점에서 독특함을 전해줍니다. 보여주는 액션도 화끈하고요.
아울러 디즈니 뮤지컬답게 음악도 역시나 최고에요. 토속적인 리듬이 살아있는 듯한 곡들이 가득합니다. '렛잇고'처럼 대단한 반응을 이끌어 내지는 못했지만 저는 더 흥겹고 좋더군요. 요새 'how far i'll go'는 하루에 한번 이상 듣는 것 같네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물을 중심으로 한 자연 풍광을 디테일하게 담아낸 점에서 <<굿 다이노>>와 비교할 수 있는데 저는 이 작품이 훨씬 좋았습니다. 이 정도면 디즈니가 픽사를 넘어선게 아닌가 싶군요.

2017/02/10

바텐더 - 윌리엄 래시너 / 김연우 : 별점 2.5점

바텐더 - 6점
윌리엄 래시너 지음, 김연우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곳저곳을 떠돌아 다니며 바텐더 생활을 하는 저스틴의 앞에 정체불명의 노인 버디 그래클이 나타난다. 그는 수년전 저스틴 어머니 살인 사건의 범인은 아버지가 아니며, 자신이 청부를 받아 진행한 것이라고 말한다. 누가 의뢰했는지 알고 싶으면 1만불을 달라고 요구하는데.

바텐더가 오래전 살인 사건 진상을 찾아나선다는 범죄 스릴러. 예전 어딘가에서 책 소갯글을 보고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던 책. 제목과 간단한 줄거리 소개가 상당히 흥미로왔기 때문입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제법 두꺼운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몰아쳐서 하룻만에 읽어버릴 정도였어요.
이야기의 도입부부터 인상적입니다. 어머니의 살인범이 아버지라는 것을 고발했던 기억 때문에 정신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허우적거리다가 겨우 벗어났는데, 정체불명의 누군가가 나타나 사실은 자기가 어머니를 죽였다고 밝힌다!는 이야기를 짧은 도입부 안에서 긴장감넘치게, 완벽하게 서술하고 있거든요. 정말로 어머니를 죽인 다른 누군가가 존재하는 것인지?  궁금해서 도저히 다음 장을 안 읽을 수 없었습니다. 최근 읽었던 작품들 중 가장 괜찮았던 도입부였다 생각되네요.
이 사건을 개인적으로 파고드는 바텐더 저스틴 나름의 수사 활동도 그럴싸합니다. 과거 로스쿨 출신이라는 배경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우직한 인터뷰, 탐문 중심의 조사만 벌이기 때문에 무척 현실적이거든요. 조사를 시작한 후 의미있는 단서를 손에 쥐게 되는 것도 이모와 형과의 인터뷰부터 였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설득력 높은 전개였고요.

또 이 작품만의 특징인데, 제목에 걸맞게 칵테일 활용이 아주 탁월해서 눈길을 끕니다. 그 중에서도 모든 단락의 소제목을 칵테일과 다양한 술, 음료수 이름으로 구성한 것이 아주 괜찮았어요. 마구잡이로 붙인 것이 아니라 단락의 내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거든요.
내용에도 술이 적절하게 인용됩니다. 알콜 중독자 버디 (던)을 낚기 위해 조니 워커 블루 라벨로 유혹한다던가, 아버지의 옛 불륜 상대 애니를 찾아간 저스틴이 그녀의 냉장고 속 다이어트 진저에일, 썩어가는 딸기, 말라 비틀어진 라임, 싸구려 보드카로 스트로베리 뮬을 만들어 준다는 식으로 말이죠. 해고된 저스틴이 친구 코디에게 총을 구입해달라며 최고급 데킬라 테존 아녜호를 주는 장면도 빼 놓을 수 없겠군요.
제가 칵테일, 술을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라 더 즐길거리가 많았던 것 같은데, 여튼 이러한 요소들은 던이 코디에게 보험 사기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던가 하는 복선 등에서 활용되는 디테일과 함께 작품의 짜임새를 높여줍니다.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추리, 범죄 소설로 볼 때 너무 별 볼일 없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첫번째로, 아버지의 작전은 너무 별볼일 없습니다. 플린이 증언 철회를 하기 위해 그냥 두면 될 것을 왜 죽였을까요? 그를 죽이면서까지 지키고 싶었던 비밀이 있는 진범이 있다는 의혹을 불러 일으키는게 과연 합리적인 시나리오인지 의심스럽습니다. 단순 사고로 처리될 위험도 있을 뿐더러 결국 사람을 더 죽여야 하는 위험부담을 짊어져야 하는데 이러느니 플린 증언 철회를 통한 재심을 일단 시도해보는게 더 낫죠.
게다가 아내의 불륜과 그에 따른 범행 조작 역시 증거가 너무 빈약합니다. 재닛 모스가 몇년이 지난 후 죄책감으로 자살했다? 죽일만큼 미워한 여자가 죽었으면 두다리 쭉 뻗고 자면 잤지 자살했을리가 없죠. 설령 그랬더라도 살인을 청부했다는 증거는 절대로 찾을 수 없었을터라 유죄 판결을 뒤엎을만한 증거는 전무합니다.

두번째로, 버디 그래클 (던)의 모든 행동이 말이 안됩니다. 우선 제이크를 찾아와 자신이 범인이라고 이야기하는 도입부부터 그러합니다. 왜 데릭이라는 유능한 하수인을 두고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악당이 1만불 때문에 위험을 감수할까요? 푼돈 벌이라도 하려는 의도였다고 칩시다. 그래도 저스틴이 경찰에 신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이유는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던이 협박, 회유 중에 데릭을 이용하여 제이크를 위협하는 것도 영문을 알 수 없다는 것은 마찬가지에요. 저스틴이 사건에 뭔가 있다는 생각을 굳히고 더 열심히 조사에 나서게 만드는 결과만 초래한, 성과는 없고 뭘 기대했는지도 알 수 없는 어처구니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이럴 바에야 데릭을 시켜 빈집을 터는게 훨씬 나았을거에요.
그나마 여기까지야 괜찮다쳐도 던이 최후의 순간에 애니의 집에 침입해서 칼부림을 하는 것은 최악 중의 최악입니다. 이유에 대한 설명은 역시나 없을 뿐더러 끔찍할 정도로 작위적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인의 집에 살인범이 침입하지만 백마탄 왕자가 구해준다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클리셰의 반복에 불과해요.

마지막으로 중요한 소품으로 사용되는 죽은 어머니의 장신구들도 도대체 어디서 났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어머니 사건이 현재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는 중요한 증거품인데 이게 어디서 났을까요? 이렇게 설명되지 않는 요소들이 많은 작품이 좋은 작품이기는 힘들겠죠.

저스틴 캐릭터 역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하드보일드 황금기를 떠올리게 하는 냉소적인 성격과 입담은 나쁘지 않아요. 허나 술이나 다른 자극적인 것 모두 입에 대지 않고 고기도 먹지 않으며 오로지 명상과 요가로 자신을 다스리는 구도자적인 인물이라는 것에 대한 묘사가 너무 장황합니다. 사실 작품과 별 상관도 없는 내용인데 너무 멋을 부린 느낌이에요. 구도자처럼 사는데 불구하고 여자는 왜 이렇게 밝히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고요.
그냥 아픈 과거가 있는 바텐더 정도가 적당하지 않았을까요? <<바텐더>>의 사사쿠라 류 처럼 손님의 심리와 느낌을 잘 파악하는, 한마디로 '눈치'가 빠르다는 바텐더의 특기를 잘 살려 사건 수사와 연결했더라면 훨씬 더 제목 느낌을 잘 살릴 수 있었을텐데, 책 속 묘사로는 바텐더의 기술과는 무관한 저스틴의 수도승같은 생활이 더 중요하게 묘사되어 아쉽습니다.

마지막으로 던과 다른 청부업자들의 힘 센 도구 역할을 하는 데릭은 도무지 왜 등장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야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도 못하고, 현실적이지도 않아요. 너무 눈에 띌 뿐더러 범행도 지나치게 많이 저지르는데 그냥 공기와 같은 인물이라 아무도 주시하지 않는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사건에서 손쉽게 빠져나가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비현실적인 인물을 이야기에 개입시키는 것 보다는 던과 데릭을 합쳐 실제로 몸을 써서 사람을 죽이는 보다 사악한 악당을 그려내는게 대결 구도에도 훨씬 좋았을 것입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재미 면에서는 나쁘지 않은 작품이지만 여러모로, 특히 추리적으로는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그래도 킬링타임용으로는 적절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눈치빠른 바텐더와 미녀 단골 손님이 힘을 합쳐 사건을 해결하는 단편 이야기가 더 좋지않았을까? 싶습니다. <<구석의 노인>>의 변주처럼 말이죠.

2017/02/09

요리하는 조선 남자 - 이한 : 별점 3점

요리하는 조선 남자 - 6점
이한 지음/청아출판사
주로 조선 시대 서적에서 발췌한 내용들로 구성된 요리 관련 미시사 서적.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요리는 남성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고방식이 꽤나 뿌리깊은데 제목이 그러한 상식을 깨고 있기에 구입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유교가 지배한 조선 시대에서 과연 남자가? 하는 호기심이 강하게 들었거든요.

하지만 주제에 걸맞을 만큼 조선 남자들이 요리를 했다거나, 요리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시나 편지, 일기와 기타 저서에 음식 이야기가 조금 등장한다고 요리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죠. 대충 봐도 "오늘 뭘 먹었다.." 정도에 그치는 이야기들이 많거든요. 게다가 주로 등장하는 일화들도 정약용을 필두로 귀양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귀양가서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죄인들이 아니라면 당대 선비들은 대체로 먹을 것을 논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죠.
물론 스스로 개고기 레시피를 만들 정도로 먹보였다는 초정 박제가, 맛있는 회를 먹고 시를 한수 지은 목은 이색, 성호사설의 저자 이익 등 귀양과는 무관한 몇몇 선비들의 일화도 수록되어 있기는 합니다. 허나 그 비중은 전체적으로 볼 때 무척 작습니다.
때문에 제목이 내용과 잘 어울리는 책이라고 하기는 어렵네요. 실제로 "요리하는 조선 남자"는 거의 등장하지도 않으니까요. 이래서야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상식, 즉 '조선시대에는 남자는 요리를 하지 않았다'라는 상식을 뒤집기는 힘들어요.

이렇게 제목에 대한 기대는 전혀 충족시키지 못했지만 다행히 음식 관련된 미시사 책으로는 꽤 볼만 합니다. 음식별로 유래나 기원, 당시 레시피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는 덕분이죠. 레시피에 대해 몇가지 예를 들자면, 당대 불고기라 할 수 있는 '설하멱적'의 양념은 간장과 참기름으로 고기를 숯불로 굽다가 끓어오르면 찬물에 집어 넣고, 다시 숯불로 굽는 것을 3번 반복했다는 이야기, 앞서 말씀드린 초정 박제가의 개고기 조리법, 조선 시대의 생선회 만드는 법 (물고기 꼬리와 내장, 껍질을 제거하고 얇게 저며서 종이 위에 살짝 말렸다가 실처럼 가늘게 썰고, 무를 얇게 다져 베에 짜서 곱게 만든 뒤 생채를 회와 섞어 접시에 놓고, 여기에 겨자와 고추, 식초를 뿌린다), 냉면의 역사와 다양한 레시피들, 쌍화점 찐빵 '상화'의 레시피 등이 그러합니다. 그나저나 상화는 정말로 손이 많이가는 음식이더군요. 돈 주고 사먹는게 당연했을 정도로요.
음식들의 유래, 기원도 볼만한 내용이 많습니다. 수나라 사람들이 고려 사신에게 아주 비싸게 돈을 주고 사들인 채소라 '천금채'라 불리었다는 채소가 바로 상추라는 것, 조선 시대 초기에는 설날에 떡국을 먹지 않고 도소주와 엿을 먹었다는 것 등등 다양한 일화 등이 자세하게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이 책만의 독특한 시각과 해석이 돋보이는 부분도 있습니다. 떡국 떡을 동전처럼 동그랗게 썰다가 지금처럼 어슷썰기로 한 이유는 더 적은 횟수만 썰어도 되었기 때문이었다던가, 임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만든 맛있는 떡이라는 뜻의 "임씨의 절미"라는 말이 "인절미"가 되었다는 전설과 같이 "변씨 만두"도 조선 시대 궁중요리 중 하나였던 병시, 즉 물만두가 민가에 전해지며 병시라는 이름이 변씨로 바뀌어 "변씨 만두"가 되었다는 것 등이 그러합니다. 인절미 어원에 대한 전설은 저도 익히 알고 있었는데 (만화 <<오무라이스 잼잼>>에서도 인용되었었죠) 허구라니 좀 의외였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입니다. 음식 관련 미시사 서적으로의 가치는 충분합니다. 단 위에 언급한대로 제목에서 불러 일으킨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에 더해 책의 디자인이 조금 아쉽기에 감점합니다.
한국 음식 역사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한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2017/02/01

밧줄 - 스테판 아우스 뎀 지펜 / 강명순 : 별점 2점

밧줄 - 4점
스테판 아우스 뎀 지펜 지음, 강명순 옮김/바다출판사
스물네 채의 농가와 밀밭, 그리고 목장으로 구성된 숲으로 둘러쌓인 산속 마을. 농부 베른하르트는 숲 속에서 빠져나와 놓여 있는 밧줄을 발견한다. 밧줄의 끝이 어디인지 궁금해한 마을 사람 3명이 숲으로 향하지만 멧돼지의 공격으로 실패하고, 이에 반드시 끝을 보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1명을 제외한 성인 남자 모두가 숲으로 향한다. 하루 뒤에 돌아올 것을 약속하며...

독일산 어른들을 위한 우화. 일단의 사람들이 어떤 목표를 위해 전진하다가 하나씩 죽어나가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약간의 아이디어와 변주 덕분에 꽤 흥미롭더군요. 특히 밧줄이라는 소재가 좋았으며, 마지막 순간에 또 다른 밧줄이 교차되는 것을 발견하는 장면은 최고였습니다. 제가 만약 그 자리에 있었다면 쓰러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었어요.

그러나 무슨 이야기를 독자에게 하려는 것인지는 조금 모호합니다.무의미한 것에 대한 갈망으로 벌이는 허무한 노력에 대한 이야기인지, 헛된 노력을 경주하다가 파멸해가는 인간 군상에 대한 이야기인지, 특정 상황에 닥친 사람들의 극한을 묘사한 군상극인지 잘 모를 정도로 전개가 멋대로인 탓이죠. 그래도  148페이지의 묘사로 보면 "무의미한 것에 대한 갈망으로 벌이는 허무한 노력에 대한 이야기"로 보이기는 합니다.
'불확실한 것에 운명을 걸고 길을 떠난 것은 철없는 짓이었다. 멍청하고 위험한 게임에 목숨을 건 셈이었다. 타당한 근거도 없이 결과가 좋을 거라고 지레짐작하고서 규칙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게임에 뛰어든 것이다. 이제 그들은 이 게임에서 자신들이 졌다는 사실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오만함이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그 책임은 오롯이 그들 자신에게 있었다. 어디선가 구원의 손길이 나타나지 않으면 그들은 그 대가를 제대로 치러야 했다.' 라는 글인데 말 그대로 이미 끝난 게임이고 남은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들이 전진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자존심때문이고요. 그러나 '자존심' 이야 말로 정말로 빈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죠. "패배를 인정하고 후일을 기약하는 것이 사나이다"라는 오래전 만화 <<캄 브레이커>>의 명대사를 떠올리게 해 줍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를 가지고 독자에게 무엇을 전하려 했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입니다. 이미 패배한 것을 알았다면 허무한 노력, 자존심을 버리고 패배를 인정하라는 것일 수도 있는데 패배한 것을 알아도 끝까지 가야하는게 사나이의 길일 수도 있잖아요?
게다가 고작 그 이야기를 하는 것 치고는 곁가지가 지나칠 정도로 많아요. 예를 들자면 베른하르트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특별한 교훈이나 울림을 주지 않습니다. 또 다쳤던 울리가 회복한 후 어떻게 되었는지도 영 알 수 없어서 답답하고요. 마을에 유일하다시피한 멀쩡한 사내로서 베른하르트의 아내 아그네스나 미하엘의 아내 안나 등 모두를 유혹하면서 남자판 여왕벌 사건이라도 일으키는 줄 알았는데 아무런 이야기가 더 발생하지 않거든요. 이래서야 분량 낭비일 뿐이죠. 마을 사람들이 농사를 망친 후 떠나는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로 딱히 필요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밧줄이 무엇인지는 결국 밝혀지지 않는다는 것은 명확한 한계점입니다. 우화라는 명분으로 가능했던 열린 결말이기는 한데 핵심 주제와 깊은 관련이 있기에 어떻게보면 무책임 보이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로 보기도 어렵고요.
또 밧줄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의 노력도 헛되다고 폄하할 수 없습니다. 밧줄 끝에 진짜 대단한 무언가가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죠.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입니다. 소재와 전개는 흥미로운데 여러모로 많이 부족했습니다.
아울러 12,000원이라는 가격도 감점 요소입니다. 문고본 형태로 여백없이 잘 압축해서 만든다면 충분히 150여 페이지로 끊을 수 있을법한 중편 소설 치고는 가격이 너무 비쌉니다. 장정이나 책 디자인이 굉장히 인상적인 것도 아니니까요. 오래전 범우 사루비아 문고 시절의 미덕이 그리워집니다.

덧붙이자면, 힘든 여정이지만 늑대만 다시 만나지 않는다면 남은 사람들의 복귀는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더군요. 정확하게 몇명인지는 모르지만 스물네 채의 농가가 있다고 하니 최소 24명, 전날 다친 울리히를 빼면 23명입니다. 일종의 버팀목으로 남게 된 요한네스야 외지인 라우크와 1:1로 치환되니 23명이라고 해도 되겠죠. 여기서 첫 날 이후 복귀를 시도한 베른하르트와 알프레드를 빼면 21명, 미하엘이 독사에 물려 죽고, 늑대 습격 시 1명이 물려 죽고, 라우문트가 라우크를 살해하고 먼저 도주하니 17명이 남게 됩니다.
사냥에도 능숙한 진짜배기 사나이들인데다가 길을 잃은 것도 아니고 밧줄만 따라가면 되니 복귀에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높지 않을까요? 장비가 부족한 것도 아니고 식량은 분명 숲에서 조달 가능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니까요.
잘못된 리더 (라우크)와 불순분자 (라우문트)가 동시에 제거된 상황에서는 더더욱 성공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모르는 길이 아니라 한번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기도 하고, 특별히 다치거나 아프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뭐 이건 작품 주제하고 무관한 이야기이고 이렇게 되면 우화로서의 성격이 더욱 애매해지긴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