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푸른 묘점 -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욱 옮김/북스피어 |
모두가 싫어하는 정보상 다쿠라 요시조가 휴양지 절벽에서 추락해 죽었다. 그의 죽음이 여류작가 무라타니 아사코의 표절 의혹과 관련이 있음을 추리한 잡지사 편집부원 노리코와 다쓰오는 힘을 합쳐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조사를 통해 둘은 아사코의 소설이 그녀의 아버지 시시도 간지의 제자 중 한 명인 하타나카 젠이치의 작품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나 아사코의 남편 실종 후 아사코도 정신병원 입원 후 종적을 감추었고, 다쿠라 요시조의 처남 사카모토 고조도 동료를 살해하고 도주하는 등의 사건이 잇달아 일어났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1958년 작품으로 비교적 초기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0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입니다.
일단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차이점이 눈에 띕니다. 제가 읽은 작가의 장편 중에서는 이례적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요. 첫 번째는 사회파 미스터리 거장의 작품임에도 사회적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점, 두 번째는 탐정역의 주인공들도 평범한 잡지사 편집부원들이라는 점, 세 번째는 두 남녀의 풋풋함 - 여성인 노리코 시점이지만 - 이 가득한 점, 마지막은 일본 각지를 누비는 여정 미스터리의 풍취가 강해서 후배작가 우치다 아스오의 작품 느낌이 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점이 작품의 질을 떨어트리지는 않으며, 엄청난 두께임에도 술술 넘어가는 재미는 기본적으로 보장한다는게 과연 거장의 작품답습니다. 무엇보다도 추리적으로 굉장히 풍성한 덕이 큽니다. 특히 등장 인물들의 관계를 활용한 반전, 진상이 탁월합니다. 반세기 전의 아이디어인데 지금 보아도 신선했어요. 제가 가장 놀랐던 것은 다쿠라 요시조의 아내가 함께 살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지는 부분입니다. 아내라고 생각했던 여자가 사실은 아내가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사건의 복잡성과 의외성이 증가하게 되는 멋진 설정이었어요. 비슷한 발상이긴 하지만 무라타니 아사코를 다쿠라 요시조가 협박한 것이 아니라 그는 일종의 '원본 소스 판매자'였다는 진상 역시도 놀라왔고요. 정말 예상하지 못했으니까요.
아울러 시종일관 무라타니 아사코의 남편 료조라던가 시라이 편집장을 범인, 혹은 조력자로 몰아가서 긴장감을 높이는 분위기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러나 완성도 높은 걸작이라고 하기는 애매합니다. 우연으로 엮이는 작위적인 부분이 많은 탓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다쿠라가 여관을 빠져나간 직후 길에서 수면제 때문에 휘청휘청할 때, 마침 그곳을 지나던 트럭 운전수 사가모토 코조와 마주친다는 것을 들 수 있겠지요. 이건 우연이라고 쳐도 너무 심합니다. 작가의 작품을 빌어 이야기하자면 "10만 분의 1의 우연" 정도의 확률이 아닐까요? 그 외의 인간 관계들이라던가 단서, 복선이 등장하는 과정들도 작위적입니다.
석연치 않은 부분도 많습니다. 갑자기 뛰쳐나간 다쿠라가 대체 술을 먹다가 그 시간에 어디를 나간 것인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하고, 하타나카 구니코가 사카모토 고조와 연결되는 과정도 설득력이 없으며, 무라타니 아사코의 자살 이유 역시 와 닿지 않았습니다. 작중 설명된대로 정신병원 입원 후 사라지는 결말이면 충분했을 텐데 말이지요.
무엇보다도 편집부원 두 명이 하타나카 젠이치의 동인시절 글을 읽고 한 번에 알아챈 무라타니 아사코의 표절을 동인 동료였으며 잡지계에서도 잔뼈가 굵은 시라이 편집장이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초반부터 사건에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진 시라이 편집장이 노리코와 다쓰오에게 조사를 시킨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것도 당혹스러웠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구니코를 보호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아울러 추리적으로 풍성하다고는 했지만 정작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다쿠라 요시조의 추락사 관련 트릭이 별볼일 없고 설득력이 낮다는건 단점입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절벽이라는 장소를 더한 살해 방법인데 번거롭기 짝이 없더군요. 원래 추리대로 그냥 절벽에서 밀어버리면 되지 뭘 시간까지 들어가면서 이렇게까지 했는지에 대한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마지막으로 이건 단점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다쿠라 요시조가 친구의 연인을 빼앗고, 친구의 동생을 겁탈하고, 아내를 학대하고, 친구의 원고를 팔아먹는 등 죽어도 싼 희대의 악인인데 반해 그러한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못한 부분도 아쉬웠어요.
쓰다 보니 단점을 잔뜩 나열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앞서 말씀드렸듯 읽는 재미만큼은 충분했습니다. 여정 미스터리, 청춘 미스터리의 원형격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았고 추리적으로 풍성하기도 했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비교적 별볼일 없는 후기작, 아류작들에 비하면 충분히 읽을 만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이자면, 무라타니 아사코의 표절 관련 설정은 Nervous Breakdown의 "산쥬(삼중) 노출"편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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