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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6

푸른 묘점 - 마쓰모토 세이초 / 김욱 : 별점 2.5점

푸른 묘점 - 6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욱 옮김/북스피어

<하기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두가 싫어하는 정보상 다쿠라 요시조가 휴양지 절벽에서 추락사한다. 그의 죽임이 여류작가 무라타니 아사코의 표절 의혹과 관련이 있는 것을 추리한 잡지사 편집부원 노리코와 다쓰오는 힘을 합쳐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조사를 통해 둘은 그녀의 소설이 그녀의 아버지 시시도 간지의 제자 중 한명인 하타나카 젠이치의 작품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나, 무라타니 아사코의 남편이 실종되고 그녀 역시 정신병원 입원 후 종적을 감추며, 다쿠라 요시조의 처남 사카모토 고조가 동료 살해 후 도주하는 등의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는데...

마쓰모토 세이초의 1958년 작품. 비교적 초기작이라고 할 수 있죠. 500페이지가 넘는 대장편입니다.
일단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는 확연히 다른 차이점이 있다는 것에 눈에 띄었습니다. 제가 읽은 작가의 장편 중에서는 이례적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에요.  사회파 미스터리 거장의 작품임에도 사회적 문제를 건드리는게 없다는 점, 탐정역의 주인공들도 평범한 잡지사 편집부원들이라는 점, 거기에 더해 두 남녀의 풋풋함 - 여성인 노리코 시점이지만 - 이 가득한 점, 마지막으로 일본 각지를 누비는 여정 미스터리의 풍취가 강해서 후배작가 우치다 아스오의 작품 느낌이 나는 점 등이 그러합니다. 이러한 차이점이 작품의 질을 떨어트리지는 않으며, 엄청난 두께임에도 술술 넘어가는 재미는 기본적으로 보장하고 있다는 것이 대단하더군요.

또 추리적으로 굉장히 풍성하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어요. 특히 등장 인물들의 관계를 활용한 반전, 진상만큼은 정말이지 여러모로 탁월합니다. 반세기 전의 아이디어인데 지금 보아도 신선한 부분이 많거든요. 특히 제가 가장 놀랐던 것은 다쿠라 요시조의 아내가 함께 살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 밝혀지는 부분이었어요. 여기서 아내라고 생각했던 여자가 사실은 아내가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사건의 복잡성과 의외성이 증가하게 되는 멋진 설정이었습니다. 비슷한 발상이긴한데 무라타니 아사코를 다쿠라 요시조가 협박한 것이 아니라 그는 일종의 '원본 소스 판매자'였다는 진상 역시도 놀라운 부분이었습니다. 정말 예상하지도 못했어요.
아울러 시종일관 무라타니 아사코의 남편 료조라던가 시라이 편집장을 범인, 혹은 조력자로 몰아가서 긴장감을 높이는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러나 전체적인 완성도가 높다고 말하기는 애매해요. 우연으로 엮이는 작위적인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다쿠라가 여관을 빠져나간 직후 길에서 수면제 때문에 휘청휘청할 때, 마침 그곳을 지나던 트럭 운전수 사가모토 코조와 마주친다는 것을 들 수 있겠죠. 이건 우연이라고 쳐도 너무 심해요. 작가의 작품을 빌어 이야기하자면 <10만 분의 1의 우연> 정도의 확률이 아닐까요? 그 외의 인간 관계들이라던가 단서, 복선이 작품에 등장하는 과정들 역시 작위적이기는 마찬가지고요.
석연치 않은 부분도 많습니다. 갑자기 뛰쳐나간 다쿠라가 대체 술을 먹다가 그 시간에 어디를 나간 것인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하고, 하타나카 구니코가 사카모토 고조와 연결되는 과정도 설득력이 없으며, 무라타니 아사코의 자살 이유 역시 와 닿지 않아요. 작중 설명된대로 정신병원 입원 후 사라지는 결말이면 충분했을텐데 말이죠.
무엇보다도 편집부원 2명이 하타나카 젠이치의 동인시절 글을 읽고 한번에 알아챈 무라타니 아사코의 표절을 동인 동료였으며 잡지계에서도 잔뼈가 굵은 시라이 편집장이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네요. 그리고 초반부터 사건에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진 시라이 편집장이 노리코와 다쓰오에게 조사를 시킨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것도 당혹스러웠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구니코를 보호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울러 추리적으로 풍성하다고는 했지만 정작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다쿠라 요시조의 추락사 관련 트릭이 별볼일 없고 설득력 낮다는 것도 단점입니다.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절벽이라는 장소를 더한 살해 방법인데 번거롭기 짝이 없더라고요. 원래 추리대로 그냥 절벽에서 밀어버리면 되지 뭘 시간까지 들어가면서 이렇게까지 했는지에 대한 이유도 불분명하고요.

마지막으로 이건 단점이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다쿠라 요시조가 친구의 연인을 빼앗고, 친구의 동생을 겁탈하고, 아내를 학대하고, 친구의 원고를 팔아먹는 등 죽어도 싼 희대의 악인인데 반해 그러한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못하는 부분도 아쉬웠던 점입니다.

쓰다보니 단점을 잔뜩 나열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앞서 말씀드렸듯 읽는 재미만큼은 충분하긴 합니다. 여정 미스터리, 청춘 미스터리의 원형격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았고 추리적으로 풍성하기도 하니까요. 별점은 2.5점입니다. 비교적 별볼일없는 후기작, 아류작들에 비하면 충분히 읽을만한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덧붙이자면, 무라타니 아사코의 표절 관련 설정은 Nervous Breakdown의 에피소드 <산쥬(삼중) 노출>편이 떠오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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