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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2

10만 분의 1의 우연 - 마쓰모토 세이초 / 이규원 : 별점 2점

10만 분의 1의 우연 - 4점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규원 옮김/북스피어

A신문의 <독자 뉴스사진 연간상> 최고상을 수상한 것은 도메이 고속도로 연쇄 추돌 사고를 촬영한 사진이었다. 약혼녀를 사고로 잃은 누마이 쇼헤이는 사진이 촬영된 그야말로 10만분의 1 상황에 의구심을 가지고 개인적인 조사에 착수한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81년 출간작. 작가의 후기작들이 대체로 별로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특별히 정교한 트릭이 등장하거나 복잡한 서사를 지닌 것은 아니고 그냥 한번 손에 들면 쭉쭉 읽히는, 약간 펄프 픽션스러운 재미가 있는 그런 작품이죠.
특히나 제목 그대로 10만분의 1의 상황을 담은 사진이라는 아이디어가 특히 돋보였습니다. 이러한 사진은 결코 우연히 찍힐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한 피해자의 약혼자가 진상을 파헤치는 전개를 보여주는데 정반대의 설정, 즉 이러한 우연한 상황을 포착한 주인공이 악의 무리에게 쫓긴다는 픽션은 흔했지만 (<이창>) 이런 접근법은 상당히 참신하다 느껴졌거든요. 아울러 작중 잠깐 언급되기도 하고 미야베 미유키의 권말 해설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사고 현장에서 쓰러져 있을 희생자들을 내버려두고 사진을 찍는 것이 과연 옳은 행동인가? 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드는 것도 좋았어요. 1994년 수단의 굶어 죽어가는 소녀를 독수리가 노려보는 사진으로 뉴욕 타임즈의 사진상을 수상하였지만 비난 등으로 인해 자살한 사진작가 케빈 카터가 연상되기도 했고요.
또 사진이 핵심 소재인 작품답게 사진과 카메라 관련한 디테일한 정보가 가득한 것도 읽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여러가지 렌즈에 대한 설명이나 셔터스피드 이야기, 카메라 기종에 대한 것들은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되고 있거든요.

그러나 사진 관련 아이디어와 정보는 괜찮고 수준 이상의 읽히는 재미를 갖추기는 했으나 역시나 항상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후기작답게 완성도 면에서는 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기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누마이 쇼헤이가 개인적인 수사에 나서 사진을 찍은 야마가 교스케를 압박해나간다는 부분까지는 나쁘지는 않고 극초반의 뉴스 스타일 전개에서 쇼헤이 - 교스케로 화자 및 주인공이 바뀌어가며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솜씨도 거장답기는 하나 중반 이후의 내용은 솔직히 너무 쉽게 간 느낌이에요.
먼저 쇼헤이가 사진작가인 교스케에게 접근하여 환심을 산 뒤에 피해자의 언니인 야마우치 미요코의 이름을 던져 수상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부터가 말이 안되죠. 복수를 하기 위해 진상을 캐는 인물이 기껏 가공의 인물로 나타난 뒤에 곧바로 자신을 의심하게 만든다는게 말이나 되나요? 여기까지는 그렇다쳐도 어디까지나 심리적으로 쫓기는 입장인 교스케가 폭주족 촬영을 핑계로 크레인 기계실로 쇼헤이를 유도한다는 것은 더 어이가 없는 설정이죠.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별다른 준비도 없이 복수를 원하는 피해자 가족을 아무도 없는 곳으로 부른다라는 것과 거의 같은 이야기인데 전혀 와 닿지도 않았을 뿐더러 이러한 장소로 유도하지 않았더라면 대관절 쇼헤이의 복수가 어떻게 이루어졌을지 전혀 감이 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편의적인 전개라 생각되었습니다.
게다가 후루야 구라노스케까지 죽인다? 본의가 아닌 것으로 보인 말실수 가지고 죽이다니 너무 심한게 아닌가 싶더군요. 사건 자체도 후루야가 대마초 좀 피웠다고 알맞게 높은 곳에 알아서 올라가준 다음에 알아서 떨어져 죽는 것이라 교스케 사건 못지않은 작위적이고 편의적인 발상이라 마음에 들지 않고요. 만약 후루야가 죽지 않았더라면 다음날 촬영회 등은 어떻게 얼버무릴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물론 이 후루야 사건은 쇼헤이의 복수에 정당성을 실어주기 위해 작가가 쇼헤이의 입을 빌어 불법, 호마 등에 대해 설명하기 위한 장치일 수는 있는데... 지루하다는 말이 딱 어울릴만큼 장황해서 작중에서처럼 후루야가 얌전히 듣고 있는게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후루야가 너무 쇼헤이가 하는데로 움직이는 것도 이해불가인 것은 마찬가지로 저같으면 목욕 후 술까지 먹은 상태라면 뭐가 어찌 되었건간에 한밤중에 산으로 사진 촬영한다고 올라가지는 않을거에요.

추리적으로 볼 때에도 교스케의 사진 촬영에 대한 발언 자체가 현장을 딱 한번 와본 사람이 알아챌 정도로 어설펐다는 것, 트릭도 그럴듯하게 설명하고는 있지만 스트로보로 발광 시키고 사진 촬영한 위치까지 이동하는 시간을 감안한다면 그닥 설득력있게 잘 만들어졌다고 하기는 어렵기에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습니다. 사건 현장에 한두번 와봤을 뿐인 쇼헤이가 우연히 발견한 테이프가 단서가 되었다는 점에서 경찰의 현장 조사로 발견될 수 있었으리라 싶은 것도 감점 요소고요. 사진 및 카메라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시간의 습속>과 비교되지만 <시간의 습속> 만큼 잘 고안되지 못한, 장편으로 끌고가에는 여러모로 역부족이었던 트릭이었다 생각되네요. 마지막에 비행기에서 스트로보 불빛을 보았다고 신고하는 장면은 최악의 사족이었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재미 하나만큼은 거장의 명성에 값하는 작품이기는 하나 세세한 완성도면에서는 도저히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군요. 마쓰모토 세이초도 에드 멕베인처럼 초중기작을 골라서 읽어야하는 작가라는 기존 생각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알려주었다는 점 정도만 가치가 있었습니다. 작가의 팬이 아니시라면 구태여 찾아서 읽어보실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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