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주신 분들께 안내드립니다.

2019/09/29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 한상진

콘 비프 샌드위치를 먹는 밤 - 6점
한상진 지음, 황은영 그림/CABOOKS(CA북스)

얼마 전, 텀블벅에서 펀딩을 한다고 알려드렸던 저의 졸저가 정식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오래전 <<경성탐정록>> 출간 시에도 이래저래 발을 담그기는 했었지만, 온전히 제 이름으로 책이 나오는건 이번이 처음이라 무척 감개무량하네요.

소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런저런 추리 소설 속에 중요하게 등장했던 여러가지 요리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종의 에세이 모음집입니다. 요리나 음식들이 단순하게 스쳐 지나가는게 아니라 작품 속에서 나름 중요한 소재, 단서로 쓰인 작품들 위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소시스 미뉴이, 양다리 통구이 등 이 바닥에서 유명한 요리도 있지만 많은 분들이 접하지 못했을 작품에서 뽑은 요리들도 있다는게 나름의 자랑거리지요.

물론 당연하게도 판매는 부진하고, 반응도 악평보다 나쁘다는 무반응인게 현실입니다. 모쪼록 후속권이 이어질 수 있을 정도의 유의미한 결과를 낳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이제 와서 날개라 해도 - 요네자와 호노부 / 김선영 : 별점 2점

이제 와서 날개라 해도 - 4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엘릭시르

출간된지는 꽤 되었지만 뒤늦게 찾아 읽어본 요네자와 호노부의 일상계인 고전부 시리즈 근간.

전체적으로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이유는 추리적으로 시리즈 타 작품에 비해 많이 처지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게 이바라가 주인공인 <<우리 전설의 책>> 입니다. 학교 동아리 만연에서 일어난 분란에 휘말린 이바라의 이야기가 전부에요. 3학년 고치 선배의 충고로 이바라가 프로를 목표로 매진할걸 다짐하며 만연을 그만둔다는 내용은 <<바쿠만>>을 떠오르게 만듭니다. 별다른 추리도 없으며 오레키 역시 거의 출연하지 않고요. 그나마 이야기 서두에 소개되는 <<달려라 메로스>>에 대한 오레키의 색다른 시각이 엿보이는 독후감이 괜찮을 뿐입니다.
하지만 전개면에서는 무리였어요. 독후감은 독후감으로 두는게 좋았을텐데 이바라의 상황을 독후감에 빗대는 전개는 억지스러웠거든요. 메로스를 죽이는건 왕에게는 오히려 손해이므로 메로스를 죽이려는건 왕의 적일 것이라는 상황으로 이바라의 만화 노트를 훔친건 만연의 '만화 읽는 파'가 아닌 다른 사람일 거라는 거죠. 그런대로 볼 만한 추론이기는 하나 설득력은 낮습니다. 고치 선배가 그냥 이바라에게 연락하면 안되는 이유는 없으니까요.
어차피 추리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한, 그냥 인간 관계와 갈등을 그린 드라마에 지나지 않기도 하고요.

추리물인 첫 에피소드 <<상자 속의 결락>>도 일상계 추리물이기는 한데 굉장히 시시한 편이라 아쉽습니다. 학교 투표함 갯수를 속여 회장 선거를 망치려고 했다는 음모부터가 별 볼일 없으니까요. 차라리 정말 일상에 맞닿은 이야기라면 괜찮았을텐데, 학생회장 선거와 학교 선거관리 위원회 등이 등장하는 탓에 일상 속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에요.
중학교 시절 선생님에 대해 회상하는 <<첩첩 산봉우리는 맑은가>>도 지극히 간단한 조사로 진상이 드러나는 소품이라 추리적으로 점수를 줄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아울러 이 단편집에서 꽤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거울에는 비치지 않아>>는 이미 오래전 <<미스테리아>>를 통해 접했던 작품이라 신선함을 느낄 수 없었다는 것도 감점 요소에요.

그래도 오랜 팬으로서 눈여겨 볼 만한 부분도 많습니다. 특히 오레키 호타로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작품이 많다는게 눈에 뜨이네요. <<첩첩 산봉우리는 맑은가>>에서부터 의외의 행동력이 드러나거든요. 사토시가 '너 오레키 호타로지? 외계인한테 조종당하고 있는 거 아니지?'라고 물어볼 정도로 당황스러운 변화지요. 아마 불필요한 행동에 에너지 낭비를 하지 않는, '안 해도 될 일은 하지 않는' 원칙주의자는 오레키도 지탄다 등을 만나며 조금은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걸 겁니다. 아마 본인은 모르는 지탄다에 대한 마음이 기폭제가 되었겠지만요.
오레키 호타로가 왜 이런 삶의 모토를 세웠는지 알려주는 <<긴 휴일>> 속 에피소드도 꽤 그럴듯합니다. 초등학생이던 오레키가 자신이 불평을 하지 않아 주위로부터 이용당했다는걸 깨닫고, 아무에게도 이용당하지 않는 '긴 휴일'을 맞이한다는 내용인데 차분히 쌓아올린 단서들이 치밀해서 설득력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후 사라진 지탄다를 찾아 여름방학에 직접 집을 나서기까지 하니 대단한 발전입니다. 과연 이바라가 사라졌다고 해도 찾아 나섰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참고로 이 <<이제와서 날개라 해도>> 이야기에서 지탄다도 굴레를 벗어 던지기에 둘 사이도 진전이 있으리라 짐작되네요.
또 조금 의외였던건 오레키 호타로의 요리 솜씨입니다. 집에 있는 재료로 이런저런 요리를 뚝딱 만들어내는, 왠만한 가정주부 못지 않은 솜씨를 선보입니다. 평범한 고등학생이 중화면이 있다고 집에서 중국식 냉면을 만든다는게 말이 될까요? 그 외에도 야키소바라던가 베이컨 채소 볶음, 계란말이 등 이런저런 요리들이 소개됩니다. 이 정도 솜씨라면 <<쿠드랴프카의 차례>> 속 축제의 요리 승부에 대표로 참석했어도 좋았을 뻔 했어요.

하지만 팬심 외에 추리적 요소는 여러모로 부족한건 사실입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팬을 위한 선물에 그치미 말고, 추리적인 부분도 다음 권에서 좀 만회해 주면 좋겠습니다.

2019/09/22

진실의 10미터 앞 - 요네자와 호노부 / 김선영 : 별점 3점

진실의 10미터 앞 - 6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엘릭시르

프리랜서 기자인 다치아라이 마치가 등장하는 단편들을 수록한 요네자와 호노부의 단편집. 다치아라이 마치는 '고전부'나 '소시민' 등 다른 시리즈 캐릭터에 비하면 지명도가 낮은 편입니다. 등장 작품이 <<안녕 요정>><<왕과 서커스>> 두 편 뿐이며 그나마도 <<안녕 요정>>에서는 주인공이라고 하기 힘든 탓입니다.

특징이라면 30이 넘은 성인으로 웃음기를 쫙 빼고 서술되고 있으며 살인이나 자살과 같은 강력 사건들이 벌어진다는 점입니다. 표제작을 포함한 수록된 여섯 편의 단편 모두 비슷해요. 대부분 비극이거나 씁쓸한 뒷 맛을 남긴다는 점도 마찬가지고요. 모든 이야기에 '기자' 라는 직업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조금씩 다른 해석으로 실려있는 것도 눈에 뜨입니다. 이야기 속 다치아라이의 취재는 대다수 독자를 위해 진실을 규정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극소수의 독자를 위해 눈에 보이는 진실이 아닌 그 이면을 들춰내어 밝혀내고,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입게된다는 내용이거든요.
이를 화자인 '나'가 다치아라이 마치인 <<진실의 10미터 앞>>에서 시작해서 '나'가 범인인 <<정의로운 사나이>>, 다른 기자가 화자인 <<고이가사네 정사>>, 3인칭 전지적 관찰자 시점인 <<이름을 새기는 죽음>>, 그리고 취재에 동행한 제 3자가 화자인 <<나이프를 잃은 추억 속에>>와 사건의 주요 관계자가 화자인 <<줄타기 성공 사례>>와 같이 다양한 시점 변화를 통해 강조하는 솜씨도 인상적이고요.
묵직한 내용과 현란한 기교는 작가 요네자와 호노부 스스로 고교생 일상계에서 벗어나 진지한 주제를 다루고 싶었던 욕심에서 비롯된게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의 이름값에 걸맞게 추리적으로도 꽤 괜찮습니다. 사소한 단서에서 진실을 끌어내는 이야기들이 많은데 상당히 설득력이 높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있음직한, 생활감 넘치는 단서와 전개는 작가의 특기인 일상계 추리물을 연상케 만들지요. 전화 통화 내용만 가지고 자신이 찾는 인물의 소재를 밝혀내는 과정을 그린 <<진실의 10미터 앞>>, 자살을 각오한 고교생 연인의 노트에 쓰여진 '살려줘'라는 글귀, 그리고 함께 죽지 않은 기묘한 현장에서 다른 사건과의 관련성을 눈치챈다는 <<고이가사네 정사>>, 한 노인의 고독사 이면에 있는 진상을 그린 <<이름을 새기는 죽음>>이 특히 괜찮았습니다.

조금 억지스러운 이야기도 없지는 않고, 기자 의식을 무리하게 집어넣은게 아닌가 싶은 이야기도 있기는 합니다. 일본 전국을 누비지만 기묘할 정도로 여정 미스터리 느낌이 나지 않는것도 단점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약간 아쉽기는 하고요. 그래도 이 정도면 전체적으로 완성도 높은 수작 단편집이라 생각되네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팬이시라면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언제나처럼 작품별로 상세하게 소개하며 리뷰를 마칩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진실의 10미터 앞>>
나 다치아라이 마치는 사진기자 후지사와 요시나리와 함께 야나마시로 향한다. 도산한 벤처 기업 퓨처스테어 홍보 담당인 하야사카 마리가 실종되었는데 그녀의 행방을 찾을만한 단서가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단서는 그녀가 여동생과 통화한 통화 기록. 다치아라이는 통화 기록을 토대로 야마나시의 명물 호토를 파는 가게 중 한 곳을 특정하여 그녀를 발견하는데 성공한다.

통화 기록 속에 숨겨진 몇 가지 단서를 통해 하야사카 마리의 행적을 밝혀내는 추리가 화려하게 펼쳐지는 작품. '타이어 문제로 움직일 수 없다'에서 눈이 내린 지역을, '우동 같은 음식'으로 야마나시 명물 '호토'를, 술에 취했다는 말을 통해 호토와 술을 함께 밤 늦게까지 파는 가게를 찾고 '말도 잘하는 멋진 남자'에서 마지막 목격자인 외국인 가게 종업원을 찾아내는 이야기로 모두 이치에 합당하고 설득력이 높습니다. 추리만으로도 별점 3점은 충분한 좋은 작품이지요.

하지만 숨은 그림 찾기같은 추리 외의 이야기 자체로는 별다른 내용은 없습니다. 하야사카 마리는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고, 관련된 기사도 쓰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죠. 다른 작품들과 같은 주제 의식을 드러내기에는 좀 부족해서 아쉽습니다.

<<정의로운 사나이>>
막 투신 자살 사고가 일어난 지하철 플랫폼에서 '나'는 다른 사람에게 불편을 초래하는 짜증나는 여기자를 발견하는데...
20여페이지 남짓한 소품. 플랫폼 끝이 아니라 중간 지점에서 투신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사고가 아니라 살인이 아닐까 생각한 다치아라이의 재치는 높이 평가할 만 합니다. '민폐를 끼치는 인물에 대한 불쾌감'이라는 동기도 현대 사회에서는 충분히 있음직 하고요.

그러나 그 외의 내용은 지나치게 작위적이었어요. 범인이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다치아라이를 관찰한다던가, 다치아라이의 행동을 민폐로 여기고 불쾌해한다던가 하는 설정과 전개 모두요. 기자 의식을 다룬 부분도 짤막하게 등장하기는 합니다만 그렇게 중요한 내용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사건을 만나 기쁘다는게 진심인지 아닌지는 결국 밝혀지지도 않고요. 한마디로 가벼운 소품으로 별점은 2점입니다.

<<고이가사네 정사>>
미에 현에서 고교생 2 명, 구와오카 다카노부와 가미조 마리의 동반 자살 사건이 일어난다. <<주간 심층>>의 기자 쓰루는 현지 취재를 나서며 코디네이터로 나선 다치아라이와 함께 움직이게 된다. 유언장에 남겨져 있던 '살려줘'라는 글귀와 고교 선생님들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다치아라이는 이 사건이 의원 폭탄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아내고 이 정보를 쓰루와 공유한다.

가족을 통해 성폭행을 당해 임신한 여고생과 그녀를 돕지못해 좌절한 남고생이 함께 자살한다는 정사 사건 속 또다른 진상을 밝혀낸다는 이야기. 
함께 죽기를 원했던 둘이었는데 왜 마리만 칼에 찔려 죽고 다카노부는 물에 빠져 교각에 걸린 사체로 발견되었는지?와 유언장에 남겨진 글귀, 그리고 현장에 남겨져 있던 와인 속 맹독인 '황린'을 통해 진상에 이르는 과정이 합리적이면서도 깔끔합니다. 그나마 믿을만하다 생각했던 '선생'이 사실은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자 쓰레기로 둘의 죽음을 자신의 범행 은닉에 이용했다는 진상과 결말은 굉장히 씁쓸하면서도 잔혹하고요.

다치아라이가 주변인처럼 그려지며 그녀가 취재하는 의원 폭탄 사건에 대해 전혀 알 수 없다는 단점이 있기는 합니다. 대표적으로 왜 시모타키 선생이 의원들에게 발화 폭탄을 보냈는지는 알 수 없지요. 그래도 추리와 이야기 전개 모두 빼어난 수작임에는 분명합니다. 별점은 3.5점입니다.

<<이름을 새기는 죽음>>
중학생 히노하라 교스케는 이웃집 노인 다가미 료조가 고독사한걸 최초로 발견한다. 얼마 뒤 프리랜서 기자 다치아라이 마치가 그를 찾아와 인터뷰를 요청하고, 교스케는 그녀의 취재에 동행하게 된다.

다가미 료조가 지역 신문에 투고한 글과 다른 사람의 투고글, 그리고 다가미 료조의 집에 남겨져 있던 엽서 필적을 통해 피해자의 아들 다가미 우노스케가 아버지의 죽음을 방조했다는 진상이 드러나는 작품. 그런데 다가미 료조가 '직함'에 연연하여 '이름을 새기겠다'는 사명감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설정이 돋보입니다. 기묘하지만 아주 그럴싸하거든요. 실제로 직함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 많은게 사실이기도 하니까요. 이를 노인 고독사와 연결하여 전개한 솜씨도 아주 일품이고요.
다가미 우노스케가 쓰레기지만 그의 입을 빌어 다가미 료조 역시 나쁜 사람이라고 다치아라이가 결론내리는 마지막 장면은 그녀의 기자로서의 한 단면을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멋졌어요. 진실도 좋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은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와 닿기도 했으니까요. 덕분에 교스케는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고 한 발자욱 더 나아갈 수 있었을테지요.

실제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상 속 사건과 독특한 아이디어가 잘 결합한 좋은 작품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 최고 작품으로 꼽겠습니다. 별점은 4점입니다.

<<나이프를 잃은 추억 속에>>
'나'는 오래전 여동생의 친구였던 다치아라이 마치를 만나기 위해 시골 소도시 하마쿠라를 찾는다. 그리고 다치아라이가 취재하는 유아 살인사건 취재에 동행하며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가게 되는데...

<<안녕 요정>>의 핵심 인물이었던 유고슬라비아 유학생 마야의 오빠가 등장합니다. 그는 다치아라이가 취재하는 마쓰야마 가린 살인 사건 취재에 동행하지요. 그 과정에서 다치아라이와 같은 기자에 대한 실망감과 환멸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여주는 '눈' 역할이 아니라 사실을 가공하여 미력하나마 피해자를 구해주려고 노력하는 다치아라이의 진면목을 취재 동행을 통해 알게 된다는 이야기지요. 사건보다는 다치아라이가 어떤 기자인지를 알려주는게 목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추리적으로는 범인으로 지목된 마쓰야마 가린의 삼촌 마쓰야마 요시카즈의 수기가 일종의 암호라는 암호 트릭물인데 대단한 추리가 등장하지는 않아요. 극 중 다치아라이의 말대로 추후 요시카즈가 사실을 고백하고 경찰이 수사에 집중한다면 밝혀낼 수 있는 수준의 사건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다치아라이라는 인물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이야기이기는 한데 추리물로는 부족해서 감점합니다.

<<줄타기 성공 사례>>
나가노 현 남부를 덮친 수해 현장에서 일흔이 넘은 도나미 부부가 극적으로 구출된다. 부부는 사흘 동안 콘플레이크를 먹으며 버틸 수 있었다. 현장 근처에서 가업을 이어 가게를 운영하는 오바에게 다치아라이가 찾아와 도나미 부부에 대해 물어본다.

한 여름에 콘플레이크를 무엇에 타서 먹었는지? 가 수수께끼로 등장하는 작품. 이게 왜 수수께끼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콘플레이크는 꼭 우유에 타 먹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식품이잖아요? 게다가 그게 문제가 된다는 상황도 이해가 되지 않아요. 노부부가 전기, 가스가 모두 끊긴 집에 고립된 상황에서 매몰된 이웃집에서 가동되는 냉장고를 사용한게 죄가 될까요? 그 집 음식을 전부 가져다 먹어도 괜찮았을텐데 말이죠. 이런 점을 굉장한 민폐로 여기고 미안해하는 수준을 넘어서 오열하는 노부부의 모습도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고요. 오바는 '행방불명된 사람의 집에 들어가 목숨을 연명한 부부는 비난받을거다' 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 이야기 자체가 성립되지 않아서 좋은 점수를 줄 수는 없네요. 추리적으로도 별다른 내용이 없고요. 이 단편집의 워스트 단편으로 꼽겠습니다.

2019/09/20

일러바치는 심장 - 에드거 앨런 포 / 박미영 : 별점 3점

일러바치는 심장 - 6점
에드거 앨런 포 지음, 박미영 옮김/스피리투스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집. 그동안 굉장히 많이 소개되어 왔지요. 저 역시 <<우울과 몽상>> 이라는 완전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황한 문체, 그리고 비슷한 작품들이 많고 모든 작품이 전부 빼어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얇고 가벼운 책은 에드거 앨런 포 입문용으로 상당히 괜찮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수록 작품은 모두 아래의 11편인데 에드거 앨런 포의 진가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들로 엄선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워낙 유명한 작가인 탓에 기존에 접했던 작품이 많다는 단점은 있습니다. 누가 편집을 하더라도 <<어셔가의 몰락>>, <<붉은 죽음의 가면>>, <<검은 고양이>>를 빼기는 힘들었을테니까요. 추리 소설 애호가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도둑맞은 편지>> 역시 지나칠 정도로 잘 알려진 작품이고요. 그 외의 작품들도 포하면 바로 떠오를, 음산한 분위기의 친숙한 (고딕) 호러물이 대부분이기는 합니다. 솔직히 표제작 <<일러바치는 심장>>은 <<검은 고양이>>와 너무 비슷하면서도 의외성이나 반전의 묘미는 부족한 범작이라 생각되고요.

그러나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보석같은 작품들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비교적 밝고 경쾌한 소품인 <<일주일에 일요일 세 번>>이 좋은 예입니다. 날짜 변경선을 따라 세계일주를 했을 때 요일이 바뀌는 설정을 잘 써먹은게 인상적입니다. 특히 <<80>>보다 30여년 앞서 발표되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만 합니다. 정신병자들의 세계를 그린 블랙 코미디 <<타르 박사와 페더 교수의 치료법>>도 눈에 뜨이는 작품이에요. 독특한 치료법을 시행하고 있다는 정신병원을 견학하려는 평범한 방문객이 광인들의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며 겪는 대소동이 끔찍하면서도 웃기기 때문입니다. 스티븐 킹이라면 고어 파티가 펼쳐졌을텐데, 그래도 나름의 해피 엔딩이니 다행이긴 합니다. 호러물이기는 하지만 가슴아픈 비련의 사랑을 그린 드라마이기도 한 <<긴 상자>>도 아주 유명하다고 보기 어려운 괜찮은 작품이고요.
번역도 이전 번역본들과 비교해보지는 않았지만 깔끔합니다. 작가 특유의 장황한 문체를 잘 살리기도 했고요. 장황하다 못해 지나치게 길어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포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이니 어쩔 수 없었을겁니다.

추리 소설의 시조새격인 작품이라면 <<모르그가의 살인>>이 더 나았을테고, 다양한 작품을 싣자는 취지라면 모험물 성격을 띈 <<황금충>>도 수록해 주는게 더 나았겠지요. 그래도 이 정도면 '에드거 앨런 포'의 매력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휴대하면서 읽기에 부담없는 크기와 두께, 만원 초반이라는 비교적 상식적인 가격도 마음에 들고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2019/09/14

차 상식사전 - 리사 리처드슨 / 공민희 : 별점 3점

차 상식사전 - 6점
리사 리처드슨 지음, 공민희 옮김, 이유진 감수/길벗

차에 대해서 이런 저런 지식을 알려주는, 제목 그대로 차에 대한 상식 사전입니다. '차'라는 이름의 어원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지금의 '차'는 씀바귀 '도'에서 비롯되었으며, 일부 해안 지역에서 도의 방언 '테이'를 사용한게 티 (tea)의 유래라네요. 이전에는 '차'의 방언이라고 생각했는데 '도'의 방언이었다니 처음 알았습니다.

그 뒤에는 차의 6가지 분류는 백차, 녹차, 황차, 홍차, 청차, 흑차이며 각 차 별로 상세하게 소개해 줍니다. 이 책만 읽어도 각 차 별로 원산지, 제다 방법, 주요 종류, 향과 맛에 대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합니다. 차를 끓이는 방법 역시 물의 종류 및 온도별 차 우리는 시간, 국가별로 다른 차 제조법 및 다도 방식까지 세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고요.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힘든 차를 이용한 다양한 레시피까지 수록되어 있는데, 이 책만 읽어도 웬만한 차는 쉽게 끓일 수 있고, 다도에서 결례가 되지 않게 마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중국식 다도, 일본식 다도야 친숙하지만 대만과 영국, 심지어 모로코와 러시아식 다도까지 소개해주니 말 다했죠.

가장 인상적이었던 레시피 몇 개 소개해드리자면, 첫 번째는 전자레인지를 이용해 간단하게 만드는 밀크티 제조법입니다. 찻 주전자에 끓는 물과 찻잎을 넣고 5분 정도 우린 뒤, 찻 주전자에 우유를 넣고 이를 전자레인지에 넣어 우유가 끓어 넘치기 직전까지 돌리면 됩니다. 찻잔에 찻잎을 걸러서 따른 뒤 취향에 따라 설탕을 넣으면 된다는데 홍차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시도해 보고 싶네요. 아이스 밀크티 만드는 레시피도 볼 만 합니다. 얼음 얼리는 통에 우유를 얼려 놓은 뒤 홍차를 진하게 우려냅니다. 찻잔에 우유 얼음을 꽉 채운 뒤 우려낸 홍차를 살살 부으면 된다네요. 정말 그럴듯해요! 그 외에 차를 이용한 레시피, 음식과 잘 어울리는 차에 대한 소개도 볼 만 합니다.

마지막은 차와 건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차가 왜 건강에 좋은지에 대한 설명과 커피와 차 중에 무엇을 마셔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죠. 저는 카페인 효과 때문에 진한 커피를 마시는 편인데, 저 같은 사람은 카페인 함량이 높은 진하고 강한 맛의 홍차나 백호은침을 마시라고 알려줍니다. 이래저래 홍차는 좀 구입해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하여튼 별점은 3점. 이 책 한 권만 읽어도 왠만한 차에 대한 정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도판이 조금 부실하지만 그 외에는 나무랄데 없는 책이에요. 전문가보다는 저와 같은 차 입문자에게 추천드립니다.

2019/09/08

이야기의 힘 - 이창용 외 : 별점 2.5점

이야기의 힘 - 6점
이창용 외 지음/황금물고기

EBS 다큐프라임으로 방영했던 동명의 다큐를 책으로 엮어 출간한 결과물. 방송을 보지는 못했지만 책의 내용이 굉장히 충실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조건을 설명해주는 부분이 가장 좋았습니다. 물론 이 설명은 굉장히 상식적인 수준이기는 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탄탄한 플롯 (명확한 원인과 결과), 명확한 캐릭터와 분명한 욕망, 방해하는 강력한 적대자가 필요하다는 내용이거든요. 예를 들고 있는 <<해리 포터>>나 <<스타워즈>>, <<타이타닉>>도 너무 전형적이고요. 그러나 단순한 만큼 이해하기 쉬운건 분명한 장점입니다.
이를 여러가지 인터뷰, 자료 조사 등을 통해 상세하게 보강한 부분도 눈에 뜨입니다. 대표적인건 전설적인 시나리오 닥터 로머트 맥기와의 인터뷰입니다. 중요한건 '관객을 지루하게 하지 말라'이며 이를 위해 '역전' 즉 '막' 이라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조언이 특히 와 닿았어요. 이 '막'이 전환되는 순간 호기심을 자극하고 감정에 호소해야 한다는거죠.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한 "결말은 반드시 필연적이어야 하며, 또한 예상 밖이어야 한다"는 말을 빌어 '반전'의 묘미를 설명해 주는 부분, 관객의 몰입에는 연민과 공포심을 느끼게 하는게 필요하며 그래서 비극이 관객을 몰입시키기에 효과적이라는 조언, 마지막으로 '나만 알고 주인공은 모르는 사실'을 활용하여 관객을 몰입시키게 만드는 '아이러니'에 대한 설명 들도 마찬가지고요.
이를 설명하는것에 그치지 않고 뒤이어 경찰이 주인공인 하나의 이야기를 실제로 만들어 소개해 주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어요. 형사 강대찬이 평생의 라이벌 (?)인 범죄자 조백호를 체포하는 수사극인데 앞 부분에서 설명해 주었던 모든 요소들이 이야기에 포함되어 있을 뿐 아니라 제법 재미있어서 놀랍더군요. 다큐로 직접 보았더라면 훨씬 좋았을 부분인데 약간 아쉽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창작하는 방법 외에 왜 이야기가 필요한지?를 설명해주는 마지막 부분도 인상적입니다. 정보와 기술로 가득찬 현대 사회에서 왜 이야기가 중요해 졌는지에 대한 내용인데 상품과 정보가 너무 많아서 소비자들의 감성에 호소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이를 뒷받침하는 실험과 사례의 소개도 적절해서 와 닿습니다.

청소년도 이해할 수 있을만큼 쉬운 내용이라는 점, 좋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방법론을 잘 소개하고 있다는 점 등 장점은 명확합니다.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고 영상물로 보는게 아무래도 좋았으리라는 생각은 들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읽을만 했어요.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이전에 썼던 몇 편의 습작을 이 책에서 설명한 방법으로 보강하거나 다시 써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2019/09/07

세 가닥의 머리카락 - 구로이와 루이코 외 / 김계자 : 별점 1.5점

세 가닥의 머리카락 - 4점
구로이와 루이코 외 지음, 김계자 옮김/이상미디어

과거 이런 책이나 이런 책을 읽을 정도로 추리 소설의 역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오래전 작품으로 일제 강점기 시절 작품 모음집이라던가, 아니면 일본 작품으로 작가 사후 50년이 지나 저작권이 소멸된 작품 - 주로 페가나 북스로 대표되는 - 들도 여럿 읽어보았고요. 이 책도 추리 소설의 역사를 상징하는 작품들의 모음집입니다.

하지만 역사적인 가치 외의 다른 가치는 거의 없습니다. 표제작인 구로이와 루이코의 <<세 가닥의 머리카락>> 정도만 어느 정도의 재미와 완성도에 아슬아슬하게 닿을 뿐입니다. 다른 작품들은 한 편의 완성된 추리 소설이라고 보기 어려운 수준이에요. 시리즈가 계속 출간되고 있던데 이래서야 후속권들은 도무지 읽을 생각이 들지 않네요. 제 별점은 1.5점입니다. 추리 소설의 역사까지 관심이 있으시다면 모를까, 평범한 추리 소설 애호가시라면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가 일부 있는 점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세 가닥의 머리카락>>
표제작. 구로이와 루이코의 작품. 일본 최초의 창작 추리소설이라고 합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처참한 시체가 쥐고 있던 머리카락을 단서로 사복 형사 오토모와 다니마다가 범인을 알아낸다는 이야기지요.

두 형사 중 구세대를 대표하는 다니마다는 머리카락이 곱슬머리라는 것, 그리고 피해자의 처참한 상태를 보고 여럿이 그를 죽였으며 옆에 곱슬머리 여자가 있었다고 추리합니다. 이는 여럿이 한 사람을 죽이고 신원도 알 수 없을 정도로 소지품을 빼앗은 곳은 도박장이다! 라는 추리로 이어지죠. 다니마다는 도박장에 있던 곱슬머리 여자는 과거 다른 수사 때 알게 되었던 오콘이라고 단정하고 오콘을 찾아 나섭니다. 누가 봐도 추리의 비약이 심하고 결론이 심히 엉터리라는 점에서 당시 수사가 어땠을지 쉬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 수사를 신봉하는 신세대 오토모는 세 가닥의 머리카락으로 이런 저런 실험을 하여서 그 머리카락은 천연 곱슬이 아니라는 것, 세 가닥 중 한 가닥은 역방향이라는 것, 머리카락은 염색했다는 것 등을 알아냅니다. 그리고 건장한 남자를 죽였다는 점에서 범인은 남자일 것이며, 긴 머리를 곱슬머리 형태가 되게 틀어 묶은 남자라면 '지나인'이 분명하다고 추리하죠. 피해자 머리의 기묘한 상처는 팽이에 찍힌 것으로 이를 통해 어린 아이를 둔 중년의 염색한 지나인을 조사하여 범인을 알아내게 됩니다. 주어진 몇 안되는 단서 - 머리카락, 피해자의 상태 - 만 가지고 추리하여 결론을 이끌어 낸다는 점에서는 전형적은 귀납법적 고전 트릭물이 떠오릅니다. 머리카락을 가지고 실험하는건 과학 수사의 원조 손다이크 박사를 연상케하고요.
여기서 재미있었던건 결국 다니마다도 오콘을 통해 오토모와 똑같이 범인을 찾아낸다는거죠. 오콘이 사건의 동기가 된 범인의 아내이자 피해자의 정부였기 때문입니다.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법! 구세대 다니마다의 건투에 박수를 보냅니다.

하지만 오래 전 작품이라는 티가 물씬 나는건 단점이긴 합니다. 고색창연한 대사가 난무하고 추리 역시 그다지 과학적이지 않고 설득력도 높다고 보기 어렵고요. 아무리 고전이라도 번역을 이렇게 낡아보이게 할 필요가 있었을지는 좀 의문입니다.

그래도 앞서 말씀드렸듯 재미있는 부분이 없지는 않아요. 낡고 고즈넉하지만 왠지 유쾌한 분위기도 괜찮고요. 무엇보다도 한 장르의 시작, 태동을 볼 수 있다는 역사적인 가치가 큽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두 명의 여인>>
구로이와 루이코가 윌키 콜린스의 <<두 인연>>, 그리고 휴 콘웨이 (본명 프레드릭 존 풀거스)의 <<떳떳하지 못한 날들>>을 읽은 뒤 <<떳떳하지 못한 날들>>을 원작과 동일한 내용으로 재 창작한 작품. 본인 스스로 번역물이 아니라고 언급할 정도이니 굉장히 각색이 많이 되었을 걸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내용은 굉장히 심플합니다. 뭔가 멋진 트릭이 사용되었다던가 했더라면 이해가 될 텐데, 이 정도 내용에 감명을 받아 재창작했다는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알맹이가 없어요. 구로이와 루이코가 재창작한건 고색창연한 메이지 시대 문체로 가득찬 낡아빠진 묘사에 불과해 보일 정도에요.

영국에 사는 의사 '다쿠조'(!)가 환자의 딸인 '리파'와 사랑에 빠지지만 리파가 '히라야마'(!) 자작과 결혼한 뒤 시름에 잠겨 은둔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리파'가 악랄한 히라야마에게 농락당한걸 전해듣고 그녀의 도주를 돕다가 히라야마가 살해된걸 보고 해외로 도주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다가 히라야마 살해범으로 누군가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걸 알고 자수하기 위해 귀국하죠.
여기서 모든 사건의 진상은 범인의 자백 뿐입니다. 그 외에 이야기에 추리적으로 가치가 있는 부분은 전무해요. 범죄물이라고 보기도 어렵고요. 범인이 누군지 알고 있는 협력자의 심리를 처절하게 다루어 독자에게 공포를 불러 일으키려는 목적이라면 메이지 당시에는 먹혈을지 모르니 지금은 개그 요소같은 묘사 덕분에 전혀 효과가 없습니다.

21세기도 한참 지난 지금 시점에 읽을 이유는 없는 낡아뻐진 고대 유물입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유령>>
구로이와 루이코의 작품. <<두 명의 여인>>처럼 기묘한 현지화가 눈에 뜨입니다.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가로메다'라는 마을에 사는 오래된 시골 무인 지쿠부 요시나리의 여동생 오시오가 가로메다의 차남 나쓰오와 결혼을 한 뒤 벌어지는 이야기거든요. 부부는 심지어 결혼 후 '미국'으로 갔다가, 죽은 오시오를 두고 돌아온 나쓰오가 오토시와 재혼하지만 병사한 뒤 유령이 되어 나타난다는 내용이죠.

진상은 나쓰오가 죽은 척 했던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두 명의 여인>> 보다는 조금 낫긴 해요. 최소한 의외성은 있고, 죽은 척 했던 이유도 오시오의 오빠 요시나리에게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는 진상도 나름 설득력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 정도로 좋은 작품이라고 부르기는 힘들지요. 다른 여러가지 장치들, 특히나 오토시가 사고사하고 다시 오시오와 결혼한다는 억지스러운 결말은 지금 읽기에는 한 없이 유치하기 때문입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검은 고양이>>, <<모르그 가의 살인>>
일본풍 문체가 눈에 뜨이기는 하지만 원작에 충실한 번역이라 별도로 언급할 부분은 없습니다.

<<탐정 유벨>>
빅토르 위고가 영국에 망명했을 때, 나폴레옹에 대항하는 공화파 인사들 사이에 나타난 유벨 (Herbert)이 사실은 나폴레옹의 탐정 (첩자) 였다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글. 빅토르 위고가 직접 쓴 르포르타쥬의 번역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추리적으로 특기할 내용은 전무합니다. 유벨이 나폴레옹의 첩자임이 밝혀지는건 드러난 여러가지 증거 때문이고, 결국 '공복' 때문이었다는 동기마저 유벨이 직접 밝혀서 의외성도 없거든요. 빅토르 위고 시점에서 당대 망명객들의 삶을 그린 묘사는 좋지만 딱히 관심있는 분야는 아니라서 이 역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그나마 인상적인건 첩자를 '탐정'이라고 부른다는 점 밖에는 없었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2019/09/01

여태까지 나만의 요코미조 세이시 순위 (ver2.0)

드디어! 출간된 작품을 모두 읽은 것 같아 정리의 의미에서 포스팅합니다. 모두 13편이네요.
<악마의 공놀이 노래>를 제외하면 초기작 점수가 높은 편으로, 이 중 세편을 꼽으라면 여전히 <옥문도>, <악마의 공놀이 노래>, <혼진 살인사건>입니다. <<가면 무도회>>도 추천할 만 합니다. 

1위 : 별점 4점
<<옥문도>>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특징적인 설정과 매력에 더하여 본격 추리적인 완성도도 빼어난 작품.

공동 2위 : 별점 3점
<<팔묘촌>>
모험소설로 유사한 작품들의 아버지격.
오리지널로의 가치는 높으나 긴다이치의 비중도 적고 추리물로는 조금 부족한 것이 아쉽다.

<<악마의 공놀이 노래>>
추리적으로 아주 완벽하지는 않지만 정교한 드라마가 잘 갖춰진 작품.
동기와 전개면에서 만화 김전일 시리즈와 가장 흡사한 느낌을 주는 친숙한 느낌이 좋다.

<<여왕벌>>
추리적으로는 시시하지만 악의없이 주변을 살육으로 몰고가는 순진한 미녀에 대한 묘사 하나 때문에라도 볼 가치는 충분.

거장이 말년에 제대로 힘을 보여준 수작.

공동 6위 : 별점 2.5점
<<이누가미 일족>>
전형적이면서 충격적이고 엽기적인 묘사가 과했던 작품. 거기에 더해 추리적으로도 별볼일 없다.
한마디로 명성에 비하면 실망스러웠다.

<<밤산책>>
추리물이라기 보다는 괴담물로 본다면 차라리 더 낫지 않았을까.

공동 8위 : 별점 2점
표제작 중편은 별점 3점이지만 다른 수록작들이 실망스럽다.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
동기와 트릭 모두 부실하며 추리적으로도 별볼일없는 평균이하의 태작.

<<병원 고개의 목매달아 죽은 이의 집>>
솔직히 즐겁기는 했다. 추리적으로 영 꽝이긴 하지만.

<<백일홍 나무 아래>>
국내 출간작 중 유일한 단편집. 한편으로는 여러모로 깊이와 설명이 부족하지만 장편이었다면 더 좋았을 작품들이 눈에 뜨인다.

12위 : 별점 1.5점
<<삼수탑>>
여왕벌의 자가복제에 지나지않는 통속 치정 모험극. 시류와 유행에 영합하려한 전형적인 펄프픽션.

등외
<<나비부인 살인사건>>
이전에 읽어서 등수에는 포함되지 않았음.
하지만 추리적인 측면과 역사적인 가치를 고려한다면 상위권은 충분할 듯 싶다.

병원 고개의 목매달아 죽은 이의 집 1,2 - 요코미조 세이시 / 정명원 : 별점 2점

병원 고개의 목매달아 죽은 이의 집 1 - 4점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시공사

병원 고개의 목매달아 죽은 이의 집 2 - 4점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시공사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호겐 가문의 현 당주인 할머니 야요이가 손녀 유카리가 실종된 사건을 긴다이치 코스케에게 의뢰한다. 마침 호겐 가문의 본가가 있던 '병원 고개의 목매달은 집' 에서 기묘한 결혼 사진을 찍은 혼죠 사진관의 나오키치가 결혼한 부부의 조사를 요청하고, 긴다이치 코스케는 두 사건이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아차린다. 조사 결과 유카리를 유괴한게 결혼한 신랑인 야마우치 도시오였다. 놀라운건 그가 여동생이라고 데리고 다니다가 결혼한 고유키가 유카리와 쌍둥이처럼 닮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몇일 뒤, 야마우치 도시오의 목이 '병원 고개의 목매달은 집'에 매달린채 발견된다...

꺄! 완전 취향 저격의 독서였습니다. 저와 같은 고전 추리 소설 애호가를 자극하는 고전적인 설정, 전개와 묘사가 아주 감탄스러운 수준이거든요. 각 챕터마다 곁들여진 짤막한 부제같은 단문도 옛스럽지만 참극! 공포! 저주! 악연! 증오와 원한의 불꽃! 배우는 모두 모였다! 같은 진부한 묘사도 눈길을 사로잡아요. 전화기조차 격렬하게 울릴 정도이니 말 다했지요. 비련의 여주인공이 가혹한 운명 때문에 결국 총탄에 맞아 죽고, 그녀의 입으로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는 결말까지 정말로 완벽합니다! 박수가 절로 나오네요.

그야말로 요코미조 세이시다운 설정과 묘사들도 애호가의 팬심을 자극합니다. 전형적인 "대부호 콩가루 집안의 복잡한 가정사가 낳은 비극" 이라는 동기부터 그러합니다. 진부하다고 말하기도 힘들 정도로 낡아빠지긴 했지만 이런게 바로 요코미조 작품의 매력인 것이지요. 
본격적인 사건이 시작될 때 까지 1권 분량의 2/3를 사용할 정도로 진행이 느린 것도 고전적이에요. 그러나 이를 원숙한 솜씨로 등장인물과 기묘한 사건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소개하고 있어서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기 힘듭니다. 과연, 짬밥(?)은 날로 먹은게 아닌 셈이에요! 물론 호겐 가문과 이가사리 가문의 현재를 설명하기 위해 4대째를 거슬러 올라가 설명하는 첫 단락은 과하긴 했습니다만...
특유의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을 전해주는 묘사도 고전적인건 마찬가지입니다. 특이한건 작가 인생의 말년에 발표한, 쇼와 시대의 작품이라 그런지 젊은 세대를 끌어들이고자 하는 묘사들이 눈에 뜨인다는 점입니다. 피해자인 야마우치 도시오가 재즈 악단 '앵그리 파이러츠'의 리더였다는 등 재즈 콤보 멤버가 사건의 주요 인물이라는 점부터 그러하지요. 또 앵그리 파이러츠의 멤버 중 한 명인 사가와 데쓰야는 애꾸눈인데 그의 안대는 시크하며, 그가 붉은 원색 코트를 입고 지휘를 하면 여자들이 모두 사로잡혔다는 묘사는 처절함마저 느껴질 정도에요. 재즈와 텔레비젼, 연예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 것도 젊은 세대를 의식한 탓이겠지요. 그런데 젊은 세대의 방종에 대한 기성세대의 못마땅한 시선이 느껴진다는 점에서는 어쩔 수 없는 한계도 보이긴 합니다.
당대 풍광을 잘 느끼게 해 주는 묘사도 좋습니다. 전후 막 복구가 시작되던 분위기가 잘 느껴지거든요. 도쿄가 새롭게 개발되면서 도로가 확장되고 부흥하는 부분의 설명이 특히 볼 만 합니다.

현실성 여부를 떠나 팬으로 즐길 거리도 많아요. 몇 년, 아니 몇 십년이 지났지만 더벅머리에 머리를 긁적이고, 볼품없는 하카마에 낡은 회색 외투와 삿갓 모양 모자를 쓴 긴다이치의 행색이 대표적입니다. 비올 때 쓰는 박쥐 우산마저도 친숙합니다. 도도로키 경부나 와 같은 친숙한 등장인물도 반갑기는 마찬가지지요. 시리즈 마지막 작품인지라 일종의 후일담처럼 그들의 이야기를 그려주고 있는 것도 좋았습니다. 도도로키 경부는 은퇴 후 잘 나가는 탐정 사무소 소장이 되었고 그의 아들은 경부보로 경찰에서 일하고 있으며, 거리의 양아치였던 다몬 슈는 잘나가는 나이트클럽의 매니저가 되어 있다는 식으로 말이지요.
여기서 도도로키 경부가 생각 이상의 낭만파 꼰대라는 묘사도 재미있었어요. 지금 하는 불륜 조사같은 일 보다 긴다이치가 가져온 가슴이 뛰는 모험은 흥미로와 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건방진 의뢰인과 예전에는 잔챙이 범죄자였던 다몬 슈와 함께 하는건 싫어하는데 이거야말로 꼰대죠. 전형적인 '왕년에 내가' 류의 이야기잖아요. 

그러나 이런 완전 고전적인 즐거움 외에는 딱히 건질게 없다는건 단점입니다. 그 중에서도 추리적으로는 완전 꽝이에요. 모두 3건의 살인 사건이 벌어져서 양적으로는 풍성합니다. 그런데 가장 비중이 높고 중요한건 모든 사건의 발단인 첫 번째, 야마구치 도시오 살인 사건부터가 엽기적인 사건 현장의 묘사 외에는 억지스럽고 엉망이에요. 우선 후더닛 물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야마구치 도시오의 부인 고유키가 실종되었으니까요. 나중에 고유키가 아니라 혼죠 가문의 딸 유카리가 실종되었다는게 밝혀지지만 이 역시 사건에는 중요한 요소가 아닙니다. 이미 둘이 닮았다는걸 앞 부분에서부터 자세히 밝히고 있어서 수수께끼도 뭐도 아니고요.
그렇다면 동기와 같은 와이더닛 측면으로는 괜찮은가? 역시나 별 볼일 없어요. 야마구치 도시오에게 농락당하고 분노한 유카리가 반대로 그를 농락하려다 둘 다 죽게 되었다게 진상이거든요. 트릭도 뭐도 아무것도 없는, 젊은이들의 문란한 행각으로 벌어진 사고일 뿐입니다.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목을 풍경처럼 매달은 이유'가 정말 야마구치 도시오의 유언 때문이었다는 이유도 허무하기는 마찬가지고요. 그 외의 괜히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기 위한 작위적인 장치들은 거슬리기만 합니다. 고유키가 야요이를 설득해 시체를 없앤게 대표적입니다. 그 집은 폐가에 가까와서 사건이 바로 발각될 이유는 없었던 만큼 무의미한 행동이었습니다. 둘이 사랑의 도피를 한 것처럼 위장하고 시간을 번 뒤 집을 아예 재건축 하는 형태로 갔어도 무방했을거에요. 야요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도 있었고요. 여러모로 사건을 억지로 만들기 위한 무리수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세 번째, 요시자와 살인 사건은 추리적으로나 이야기적으로나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범인의 분노로 인한 무차별 살인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두 번째 사건만 후더닛, 와이더닛 측면으로 합격점을 줄 만 합니다. 사건 현장에 있었던 파티 참석자들 모두가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졌는데 이는 일종의 시한 장치 트릭이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이거든요. 범행이 일종의 착각으로 벌어졌다는 의외성도 좋았고요. 문제는 사용한 트릭이 저자의 이전 작품인 <<나비 부인 살인 사건>>에 등장했었던 트릭이라는 점이죠. 범인이 추리 소설을 통해 트릭을 익혀서 사용했다는 식으로 트릭의 자가 복제를 설득력있게 넘어가다니, 날로 먹은 듯 하지만 이 역시 거장의 솜씨겠죠? 와이더닛 측면으로는 협박자를 없애기 위해서라는 동기는 명확하고요.
하지만 이 과정에서의 등장 인물들의 행동은 솔직히 이해 범위 밖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어요. 우선 범인 시게루부터 보자면, 아들 데쓰야가 자기 아들이 아니라는 걸 알고 분노한다는건 말이 되기는 합니다. 그런데 살인까지 저지를만한 인물이라는 묘사가 그 전에는 전혀 없었기 때문에 너무 갑작스러워요. 분노의 대상에 아내가 포함되지 않은 것도 이해하기 힘들고요. 이는 데쓰야가 도시오의 아들이라는 비밀을 알게 된 후 방황한다는 설정도 마찬가지에요. 어머니가 유카리, 아니 고유키라도 그가 호겐 이가라시 가문의 후손이라는게 달라지지는 않으니까요. 유카리는 엄연히 야요이의 손녀이고, 고유키는 데쓰야의 딸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까지 방황할 이유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혼조 도쿠베에가 과거 유카리의 사체를 숨긴 뒤 이를 통해 호겐 가문을 협박해 왔다던가, 이를 효도 후사타로가 눈치채고 협박을 이어간다는 설정도 여러모로 억지스럽고요.
하긴, 뭐니뭐니해도 제일 큰 문제는 뭐니뭐니해도 무려 백만엔이나 되는 선금과 함께 사건을 의뢰받은 주제에 의뢰인이 죽도록 방관한 긴다이치의 무능함이겠죠.

이렇게 추리적으로는 너무 별 볼일 없기에 감점해서 별점은 2점입니다. 캐릭터 설정도 기대 이하인 등 - 예를 들어 사가와 데쓰야는 최초 야마구치 도시오 사건의 범인으로 의심될 정도로 격한 분노를 품었었는데 나중에는 그런대로 괜찮은 뮤지션으로 설명되는 식으로 - 솔직히 더 낮은 점수를 주어도 무방하긴 한데, 고전 애호가들은 여러모로 즐길 거리가 많기는 합니다. 최소한 저는 깔깔거리며 즐겁게 읽었답니다. 저 같은 고전 애호가 분들께는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이 작품을 즐길 정도의 고전 애호가가 얼마나 될 지는 잘 모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