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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1

병원 고개의 목매달아 죽은 이의 집 1,2 - 요코미조 세이시 / 정명원 : 별점 2점

병원 고개의 목매달아 죽은 이의 집 1 - 4점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시공사

병원 고개의 목매달아 죽은 이의 집 2 - 4점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시공사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호겐 가문의 현 당주인 할머니 야요이가 손녀 유카리가 실종된 사건을 긴다이치 코스케에게 의뢰한다. 마침 호겐 가문의 본가가 있던 '병원 고개의 목매달은 집' 에서 기묘한 결혼 사진을 찍은 혼죠 사진관의 나오키치가 결혼한 부부의 조사를 요청하고, 긴다이치 코스케는 두 사건이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걸 알아차린다. 조사 결과 유카리를 유괴한게 결혼한 신랑인 야마우치 도시오였다. 놀라운건 그가 여동생이라고 데리고 다니다가 결혼한 고유키가 유카리와 쌍둥이처럼 닮았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몇일 뒤, 야마우치 도시오의 목이 '병원 고개의 목매달은 집'에 매달린채 발견된다...

꺄! 완전 취향 저격의 독서였습니다. 저와 같은 고전 추리 소설 애호가를 자극하는 고전적인 설정, 전개와 묘사가 아주 감탄스러운 수준이거든요. 각 챕터마다 곁들여진 짤막한 부제같은 단문도 옛스럽지만 참극! 공포! 저주! 악연! 증오와 원한의 불꽃! 배우는 모두 모였다! 같은 진부한 묘사도 눈길을 사로잡아요. 전화기조차 격렬하게 울릴 정도이니 말 다했지요. 비련의 여주인공이 가혹한 운명 때문에 결국 총탄에 맞아 죽고, 그녀의 입으로 사건의 진상이 드러나는 결말까지 정말로 완벽합니다! 박수가 절로 나오네요.

그야말로 요코미조 세이시다운 설정과 묘사들도 애호가의 팬심을 자극합니다. 전형적인 "대부호 콩가루 집안의 복잡한 가정사가 낳은 비극" 이라는 동기부터 그러합니다. 진부하다고 말하기도 힘들 정도로 낡아빠지긴 했지만 이런게 바로 요코미조 작품의 매력인 것이지요. 
본격적인 사건이 시작될 때 까지 1권 분량의 2/3를 사용할 정도로 진행이 느린 것도 고전적이에요. 그러나 이를 원숙한 솜씨로 등장인물과 기묘한 사건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소개하고 있어서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기 힘듭니다. 과연, 짬밥(?)은 날로 먹은게 아닌 셈이에요! 물론 호겐 가문과 이가사리 가문의 현재를 설명하기 위해 4대째를 거슬러 올라가 설명하는 첫 단락은 과하긴 했습니다만...
특유의 날 것 그대로의 느낌을 전해주는 묘사도 고전적인건 마찬가지입니다. 특이한건 작가 인생의 말년에 발표한, 쇼와 시대의 작품이라 그런지 젊은 세대를 끌어들이고자 하는 묘사들이 눈에 뜨인다는 점입니다. 피해자인 야마우치 도시오가 재즈 악단 '앵그리 파이러츠'의 리더였다는 등 재즈 콤보 멤버가 사건의 주요 인물이라는 점부터 그러하지요. 또 앵그리 파이러츠의 멤버 중 한 명인 사가와 데쓰야는 애꾸눈인데 그의 안대는 시크하며, 그가 붉은 원색 코트를 입고 지휘를 하면 여자들이 모두 사로잡혔다는 묘사는 처절함마저 느껴질 정도에요. 재즈와 텔레비젼, 연예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 것도 젊은 세대를 의식한 탓이겠지요. 그런데 젊은 세대의 방종에 대한 기성세대의 못마땅한 시선이 느껴진다는 점에서는 어쩔 수 없는 한계도 보이긴 합니다.
당대 풍광을 잘 느끼게 해 주는 묘사도 좋습니다. 전후 막 복구가 시작되던 분위기가 잘 느껴지거든요. 도쿄가 새롭게 개발되면서 도로가 확장되고 부흥하는 부분의 설명이 특히 볼 만 합니다.

현실성 여부를 떠나 팬으로 즐길 거리도 많아요. 몇 년, 아니 몇 십년이 지났지만 더벅머리에 머리를 긁적이고, 볼품없는 하카마에 낡은 회색 외투와 삿갓 모양 모자를 쓴 긴다이치의 행색이 대표적입니다. 비올 때 쓰는 박쥐 우산마저도 친숙합니다. 도도로키 경부나 와 같은 친숙한 등장인물도 반갑기는 마찬가지지요. 시리즈 마지막 작품인지라 일종의 후일담처럼 그들의 이야기를 그려주고 있는 것도 좋았습니다. 도도로키 경부는 은퇴 후 잘 나가는 탐정 사무소 소장이 되었고 그의 아들은 경부보로 경찰에서 일하고 있으며, 거리의 양아치였던 다몬 슈는 잘나가는 나이트클럽의 매니저가 되어 있다는 식으로 말이지요.
여기서 도도로키 경부가 생각 이상의 낭만파 꼰대라는 묘사도 재미있었어요. 지금 하는 불륜 조사같은 일 보다 긴다이치가 가져온 가슴이 뛰는 모험은 흥미로와 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건방진 의뢰인과 예전에는 잔챙이 범죄자였던 다몬 슈와 함께 하는건 싫어하는데 이거야말로 꼰대죠. 전형적인 '왕년에 내가' 류의 이야기잖아요. 

그러나 이런 완전 고전적인 즐거움 외에는 딱히 건질게 없다는건 단점입니다. 그 중에서도 추리적으로는 완전 꽝이에요. 모두 3건의 살인 사건이 벌어져서 양적으로는 풍성합니다. 그런데 가장 비중이 높고 중요한건 모든 사건의 발단인 첫 번째, 야마구치 도시오 살인 사건부터가 엽기적인 사건 현장의 묘사 외에는 억지스럽고 엉망이에요. 우선 후더닛 물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야마구치 도시오의 부인 고유키가 실종되었으니까요. 나중에 고유키가 아니라 혼죠 가문의 딸 유카리가 실종되었다는게 밝혀지지만 이 역시 사건에는 중요한 요소가 아닙니다. 이미 둘이 닮았다는걸 앞 부분에서부터 자세히 밝히고 있어서 수수께끼도 뭐도 아니고요.
그렇다면 동기와 같은 와이더닛 측면으로는 괜찮은가? 역시나 별 볼일 없어요. 야마구치 도시오에게 농락당하고 분노한 유카리가 반대로 그를 농락하려다 둘 다 죽게 되었다게 진상이거든요. 트릭도 뭐도 아무것도 없는, 젊은이들의 문란한 행각으로 벌어진 사고일 뿐입니다.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목을 풍경처럼 매달은 이유'가 정말 야마구치 도시오의 유언 때문이었다는 이유도 허무하기는 마찬가지고요. 그 외의 괜히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기 위한 작위적인 장치들은 거슬리기만 합니다. 고유키가 야요이를 설득해 시체를 없앤게 대표적입니다. 그 집은 폐가에 가까와서 사건이 바로 발각될 이유는 없었던 만큼 무의미한 행동이었습니다. 둘이 사랑의 도피를 한 것처럼 위장하고 시간을 번 뒤 집을 아예 재건축 하는 형태로 갔어도 무방했을거에요. 야요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도 있었고요. 여러모로 사건을 억지로 만들기 위한 무리수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세 번째, 요시자와 살인 사건은 추리적으로나 이야기적으로나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범인의 분노로 인한 무차별 살인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두 번째 사건만 후더닛, 와이더닛 측면으로 합격점을 줄 만 합니다. 사건 현장에 있었던 파티 참석자들 모두가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졌는데 이는 일종의 시한 장치 트릭이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이거든요. 범행이 일종의 착각으로 벌어졌다는 의외성도 좋았고요. 문제는 사용한 트릭이 저자의 이전 작품인 <<나비 부인 살인 사건>>에 등장했었던 트릭이라는 점이죠. 범인이 추리 소설을 통해 트릭을 익혀서 사용했다는 식으로 트릭의 자가 복제를 설득력있게 넘어가다니, 날로 먹은 듯 하지만 이 역시 거장의 솜씨겠죠? 와이더닛 측면으로는 협박자를 없애기 위해서라는 동기는 명확하고요.
하지만 이 과정에서의 등장 인물들의 행동은 솔직히 이해 범위 밖이라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어요. 우선 범인 시게루부터 보자면, 아들 데쓰야가 자기 아들이 아니라는 걸 알고 분노한다는건 말이 되기는 합니다. 그런데 살인까지 저지를만한 인물이라는 묘사가 그 전에는 전혀 없었기 때문에 너무 갑작스러워요. 분노의 대상에 아내가 포함되지 않은 것도 이해하기 힘들고요. 이는 데쓰야가 도시오의 아들이라는 비밀을 알게 된 후 방황한다는 설정도 마찬가지에요. 어머니가 유카리, 아니 고유키라도 그가 호겐 이가라시 가문의 후손이라는게 달라지지는 않으니까요. 유카리는 엄연히 야요이의 손녀이고, 고유키는 데쓰야의 딸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까지 방황할 이유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혼조 도쿠베에가 과거 유카리의 사체를 숨긴 뒤 이를 통해 호겐 가문을 협박해 왔다던가, 이를 효도 후사타로가 눈치채고 협박을 이어간다는 설정도 여러모로 억지스럽고요.
하긴, 뭐니뭐니해도 제일 큰 문제는 뭐니뭐니해도 무려 백만엔이나 되는 선금과 함께 사건을 의뢰받은 주제에 의뢰인이 죽도록 방관한 긴다이치의 무능함이겠죠.

이렇게 추리적으로는 너무 별 볼일 없기에 감점해서 별점은 2점입니다. 캐릭터 설정도 기대 이하인 등 - 예를 들어 사가와 데쓰야는 최초 야마구치 도시오 사건의 범인으로 의심될 정도로 격한 분노를 품었었는데 나중에는 그런대로 괜찮은 뮤지션으로 설명되는 식으로 - 솔직히 더 낮은 점수를 주어도 무방하긴 한데, 고전 애호가들은 여러모로 즐길 거리가 많기는 합니다. 최소한 저는 깔깔거리며 즐겁게 읽었답니다. 저 같은 고전 애호가 분들께는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이 작품을 즐길 정도의 고전 애호가가 얼마나 될 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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