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서 날개라 해도 -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엘릭시르 |
출간된지는 꽤 되었지만 뒤늦게 찾아 읽어본 요네자와 호노부의 일상계인 고전부 시리즈 근간.
전체적으로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이유는 추리적으로 시리즈 타 작품에 비해 많이 처지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게 이바라가 주인공인 <<우리 전설의 책>> 입니다. 학교 동아리 만연에서 일어난 분란에 휘말린 이바라의 이야기가 전부에요. 3학년 고치 선배의 충고로 이바라가 프로를 목표로 매진할걸 다짐하며 만연을 그만둔다는 내용은 <<바쿠만>>을 떠오르게 만듭니다. 별다른 추리도 없으며 오레키 역시 거의 출연하지 않고요. 그나마 이야기 서두에 소개되는 <<달려라 메로스>>에 대한 오레키의 색다른 시각이 엿보이는 독후감이 괜찮을 뿐입니다.
하지만 전개면에서는 무리였어요. 독후감은 독후감으로 두는게 좋았을텐데 이바라의 상황을 독후감에 빗대는 전개는 억지스러웠거든요. 메로스를 죽이는건 왕에게는 오히려 손해이므로 메로스를 죽이려는건 왕의 적일 것이라는 상황으로 이바라의 만화 노트를 훔친건 만연의 '만화 읽는 파'가 아닌 다른 사람일 거라는 거죠. 그런대로 볼 만한 추론이기는 하나 설득력은 낮습니다. 고치 선배가 그냥 이바라에게 연락하면 안되는 이유는 없으니까요.
어차피 추리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한, 그냥 인간 관계와 갈등을 그린 드라마에 지나지 않기도 하고요.
추리물인 첫 에피소드 <<상자 속의 결락>>도 일상계 추리물이기는 한데 굉장히 시시한 편이라 아쉽습니다. 학교 투표함 갯수를 속여 회장 선거를 망치려고 했다는 음모부터가 별 볼일 없으니까요. 차라리 정말 일상에 맞닿은 이야기라면 괜찮았을텐데, 학생회장 선거와 학교 선거관리 위원회 등이 등장하는 탓에 일상 속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에요.
중학교 시절 선생님에 대해 회상하는 <<첩첩 산봉우리는 맑은가>>도 지극히 간단한 조사로 진상이 드러나는 소품이라 추리적으로 점수를 줄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아울러 이 단편집에서 꽤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거울에는 비치지 않아>>는 이미 오래전 <<미스테리아>>를 통해 접했던 작품이라 신선함을 느낄 수 없었다는 것도 감점 요소에요.
그래도 오랜 팬으로서 눈여겨 볼 만한 부분도 많습니다. 특히 오레키 호타로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작품이 많다는게 눈에 뜨이네요. <<첩첩 산봉우리는 맑은가>>에서부터 의외의 행동력이 드러나거든요. 사토시가 '너 오레키 호타로지? 외계인한테 조종당하고 있는 거 아니지?'라고 물어볼 정도로 당황스러운 변화지요. 아마 불필요한 행동에 에너지 낭비를 하지 않는, '안 해도 될 일은 하지 않는' 원칙주의자는 오레키도 지탄다 등을 만나며 조금은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걸 겁니다. 아마 본인은 모르는 지탄다에 대한 마음이 기폭제가 되었겠지만요.
오레키 호타로가 왜 이런 삶의 모토를 세웠는지 알려주는 <<긴 휴일>> 속 에피소드도 꽤 그럴듯합니다. 초등학생이던 오레키가 자신이 불평을 하지 않아 주위로부터 이용당했다는걸 깨닫고, 아무에게도 이용당하지 않는 '긴 휴일'을 맞이한다는 내용인데 차분히 쌓아올린 단서들이 치밀해서 설득력이 높기 때문입니다. 이후 사라진 지탄다를 찾아 여름방학에 직접 집을 나서기까지 하니 대단한 발전입니다. 과연 이바라가 사라졌다고 해도 찾아 나섰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참고로 이 <<이제와서 날개라 해도>> 이야기에서 지탄다도 굴레를 벗어 던지기에 둘 사이도 진전이 있으리라 짐작되네요.
또 조금 의외였던건 오레키 호타로의 요리 솜씨입니다. 집에 있는 재료로 이런저런 요리를 뚝딱 만들어내는, 왠만한 가정주부 못지 않은 솜씨를 선보입니다. 평범한 고등학생이 중화면이 있다고 집에서 중국식 냉면을 만든다는게 말이 될까요? 그 외에도 야키소바라던가 베이컨 채소 볶음, 계란말이 등 이런저런 요리들이 소개됩니다. 이 정도 솜씨라면 <<쿠드랴프카의 차례>> 속 축제의 요리 승부에 대표로 참석했어도 좋았을 뻔 했어요.
하지만 팬심 외에 추리적 요소는 여러모로 부족한건 사실입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팬을 위한 선물에 그치미 말고, 추리적인 부분도 다음 권에서 좀 만회해 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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