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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30

플라네테스 1~4 - 유키무라 마코토 : 별점 2점

[고화질 세트] 플라네테스 (총4권/완결) - 4점
Makoto Yukimura/학산문화사(만화)

한 20여년전 발표 당시에는 애니메이션도 만들어졌던 인기작. 오프닝 곡이었던 "Dive in the Sky"는 좋아해서 당시에 자주 듣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제 기억 속에서는 사라져버린지 오래되었었는데, 오랫만에 본가에 방문하니 형이 발굴해두었다고 하여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전 4권의 짤막한 분량이라 읽기에 부담이 없어서 좋더군요.

작품은 데브리(우주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을 하는 하치로타가 꿈 - 자신의 우주선을 가지고 우주를 돌아다니는 것 - 을 이루기 위한, 그리고 '왜 우주를 향하는지?'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한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핵심은 명성과 거액이 보장되는, 목성으로 향하는 우주선 '폰 브라운' 호의 승무원이 되는 것이고요. 하치로타는 승무원 선발 과정에서 있었던 여러가지 고군분투, 그리고 승무원이 된 후의 경험들로 결국 '모든 것은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다'는걸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꽤 긴 호흡의 이야기를 여러가지 단편 에피소드들과 잘 섞어서 깔끔하게 마무리한게 좋았습니다. 여러가지 우주에 관련된 탄탄한 설정도 읽는 재미를 더해주고요. 특히 데브리가 생성되는 과정이라던가, 선외 활동, 승무원 선발 과정 등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작가가 공부를 많이 했다는걸 새삼 깨닫게 해 줍니다. 이를 표현하는 작화력도 대단했고요. 

하지만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던가 "사랑이 중요하다"는걸 핵심인 결말은 실망스러웠습니다. 고작 이 정도 이야기였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하치로타의 입을 빌어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탓에, 오글거리는 80년대 팝송 가사같다는 느낌도 강하게 들고요.
또 이 내용은 하치로타와 아이가 서로 사랑하게 되는 3권에서 이미 마무리 되었습니다. 휘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4권과 목성 우주선 이야기는 불필요했어요. 우주 방위 전선의 테러는 비중에 비하면 결말이 황당할 정도로 시시했고요. 이런걸 보면 작가가 갈팡질팡한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 과연 결말이 작가가 원했던게 맞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이럴 바에야 초반부 '토이박스 호' 승무원들과 함께 벌이는 데브리 수거를 중심으로 하는, 일상성 강한 SF 일상 드라마로 끌고가는게 훨씬 좋았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래 4컷 만화처럼 말이지요.


별점은 2점입니다. 찾아보니 e-book으로 다시 출간되었던데, 구태여 찾아 읽어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3/08/28

2023.08.22 ~ 08.27 두산 베어스 감상

주중 키움 - 주말 SSG / 원정 - 홈 6연전
성적 : 4승 2패

좋았던 점
  • 양의지 선수의 복귀와 더불어 살아난 타선

나빴던 점
  • 4, 5 선발진 붕괴
  • 계투진의 심각한 부진, 특히 정철원 선수.

총평과 이번주 예상 (혹은 기대)
직전에 호흡기를 떼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주중 키움 3연전을 스윕한 덕분에 5위권 싸움의 여지를 남길 수 있었네요. 양의지 선수 복귀와 함께 타선이 살아난 덕분입니다. 선발진은 나름 견고한 만큼, 어느정도 점수만 뽑아주면 어느 팀과도 충분히 맞설 수 있다는걸 보여주었어요.
하지만 연승을 이어갈 수 있었음에도 계투진의 심각한 부진으로 SSG전 두 경기를 놓친건 뼈아픕니다. 4선발 최승용 선수가 부상으로 내려가고, 5선발 김동주 선수마저 심각한 부진을 보였기 때문에 중간 계투진의 피로가 쌓일 수 밖에는 없었지만, 그래도 새로운 마무리로 낙점되었던 정철원 선수의 부진은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마무리 투수는 정말 아무나 하는게 아닌가봐요. 
결론적으로 한화 상대로 스윕승을 거둔 기아에게 뒤져 6위로 한 계단 내려앉고 말았습니다. 토요일 경기는 무조건 잡았어야 했는데 안타깝네요. 잡아야 할 경기를 놓치면 순위 싸움에서 밀릴 수 밖에 없지요.
 
이번 주는 LG, 롯데와의 원정 6연전이 펼쳐집니다, LG는 지난 주말 3연전에서 NC에게 오랫만에 스윕패를 당한 터라 연패를 끊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겁니다. 그렇잖아도 올 시즌은 SSG와 LG에게 유난히 약한 터라 상황이 별로 기대가 되지 않네요. 
그나마 다행인건 다음 주 중에 비 예보가 있다는 점입니다. 부디 1~2 경기는 우천 취소되어 계투진을 추스리고 공백인 4, 5 선발 등판일은 잘 넘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만약 진행된다면 브랜든 선수 등판 경기는 반드시! 무슨 일이 있어도! 잡아야 하고요.
 
지난 주에도 5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썼었습니다. 5위 한다고 우승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하지만 LG만큼은 꼭 잡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6경기 모두 치뤄진다면 반타작도 힘들겠지만, 1승이라도 LG로부터 거두기만을 바랍니다. 
LG만 이기면 돼, 퐈이팅 허슬~두!

2023/08/27

마당이 있는 집 - 김진영 : 별점 1.5점

마당이 있는 집 - 4점
김진영 지음/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진범,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약 회사 영업 사원이던 김윤범이 저수지 속 차 안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 윤범은 아내 상은 몰래 회사를 그만둔 뒤 거래하던 의사들을 협박하고 다녔으며, 모르는 아이들에게 폭행을 당했었다. 상은이 발견한 윤범이 죽기전 숨겼던 휴대폰에는 수민이라는 아이가 성매매했다는 증거가 저장되어 있었다. 상은은 수민에 대한 정보로 윤범이 의사 박재호를 협박했다고 생각했다.
박재호의 아내 김주란은 판교의 개인 주택에서 이상한 냄새를 맡은 뒤, 정원에서 시체를 발견했다. 하지만 박재호는 이를 모두 주란의 망상이라 치부했다. 주란의 증상은 그녀가 상은과 만난 뒤, 남편의 범죄를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해져가는데....


김태희 주연의 드라마로 제작되었던 한국의 여성향 서스펜스 스릴러. 이용하는 구독형 이북 서비스인 '밀리의 서재'에 올라와 있길래 읽어보게 되었네요.

주인공 두 명 - 김주란, 이상은 - 시점을 오가며 진행된다는게 특징입니다. 이상은은 잔혹한 살인범이자 협박범, 김주란은 일방적인 피해자 포지션에 가까운데, 나중에 둘이 일종의 파트너 (?) 관계로 한 팀을 이루게 되는 결말로 향하는 전개가 재미있었어요. 이상은이 임산부라는 설정도 독특했고요. 임산부라서 사람들이 경계심을 잘 푼다는 상황을 잘 써먹은 장면이 두어장면 있기도 합니다.
정통 추리물은 아니지만 괜찮은 트릭이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수면제를 먹여 재운 윤범을 운전석에 앉힌 뒤, 상은이 운전석 의자를 뒤로 바싹 밀고 그 위에 앉아 운전했다는 트릭입니다. 이 트릭 덕분에 윤범의 죽음은 자살로 결론내려집니다. 작고 연약한 임산부인 상은이 거구의 윤범을 조수석에서 다시 운전석으로 옮기는건 불가능하게 보였기 때문이지요.
수민이를 죽인건 박재호가 아니라 아들 승재였다는 반전도 신선했습니다. 이를 수민이 찍었던 휴대폰 속 사진으로 드러내는 묘사도 나쁘지 않았고요.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지루했습니다. 이상은과 김주란 모두 심리 묘사 중심의 여성향 스릴러에서 흔히 보아왔던 스테레오 타입이라서 식상했던 탓이 가장 큽니다. 주변 사람들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 냉소, 혐오와 일종의 과대망상과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여성으로 묘사되거든요. 그동안 제가 읽어왔었던 <<우먼 인 윈도>>, <<걸 온 더 트레인>>, <<인 어 다크, 다크 우드>> 등의 여성향 스릴러와 비교해 볼 때 다른 점을 찾아보기 힘들어요.

게다가 묘사만 보면 김주란은 정신병자에 불과합니다. 작품 속에서 보이는 행동에는 설득력을 느낄 수 없으며, 그동안 자신의 망상으로 많은 사고를 쳐 온걸로 - 강남 아파트에 살 때 윗 층 부부를 살인범으로 오해했던 등 -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전업주부이면서 아들이 방에 여자아이를 숨겨놓았다는걸 며칠동안 눈치채지도 못했다는건 변명의 여지도 없고요. 이웃과 상은, 기타 주변 사람들에 대한 시선도 일방적이고 편견 및 망상으로 가득해서 불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광적인 심리 묘사와 행적이 이어지니 남편의 표정, 낚시 가방을 빨아 말렸다는 정도로 남편과 시부모님을 살인범 일당으로 모는 과정이 도무지 와 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녀의 주장이 모두 거짓말이라는게 밝혀져서 남편에게 이혼당하는 결말을 기대하게 만들더군요.
물론 주란의 남편 박재호가 수민의 시체를 정원에 몰래 묻었고, 시체를 처리하러 간 날 집을 비웠던걸 숨긴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작 중 묘사와 행적을 보면, 박재호가 이를 숨긴건 살인을 저지른 아들과 망상증에 걸린 아내를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상은에게 죄를 뒤집어 씌워 죽이려고 했던 이유도 마찬가지고요. 때문에 오히려 주란이 재호를 죽인다는 결말은 황당했어요. 주란이 왜 급발진해서 남편을 죽였을까요? 남편이 아내를 지배하고, 조종한다는 수십년전부터 차고 넘치던 설정을 가져오려면 남편은 모두 사악하다는 작품 저변에 깔려있는 일방적인 이분법적인 논리 말고 더 그럴듯한 설명이 필요했습니다. 예전에 읽었던 <<비하인드 도어>>처럼 못 봐줄 수준이라도 말이죠.
이런 이분법적 논리로 상은의 살인을 정당화 할 수 없는 것도 당연합니다. 상은의 범행에는 남편의 폭력 - 심지어 임신도 남편의 성폭행 탓 - 때문이라는 동기가 있기는 하지만, 이 역시 상은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고,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 살인을 저지르는건 차원이 다른 중범죄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 다른 유사한 여성향 스릴러와 차별화되기는 커녕, 더 나은 점도 찾기 힘든 억지스러운 이야기였습니다. 리뷰를 남기는게 힘들 정도였어요. 이런 류의 소설은 이제 그만 읽어야 겠습니다.

2023/08/26

명탐정의 제물 - 시라이 도모유키 / 구수영 : 별점 2.5점

명탐정의 제물 - 6점
시라이 도모유키 지음, 구수영 옮김/내친구의서재

<<아래 리뷰에는 트릭, 진상 그리고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명탐정 오토야 다카시의 조수 리리코는 민박집에서 일어났던 밀실 사건을 멋지게 해결한 뒤, 학회에 참석해야 한다며 사무실을 떠났다. 귀국 예정일이 지나도 리리코가 돌아오지 않자, 그녀를 구하기 위해 오토야는 가이아나의 조든 타운으로 향했다. 알고보니 리리코는 짐 조든이 이끄는 종교의 광신도들이 모여 만들어진 마을 조든 타운을 조사하기 위해 찰스 클라크가 조직한 조사단의 일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도착 직후 오토야와 동행했던 저널리스트 노기가 타운의 보안군에게 총살당했고, 뒤이어 클라크 조사단원들이 한 명씩 차례대로 불가능 상황에서 살해된채 발견되었다. 리리코는 오토야와 함께 조사를 펼친 끝에 미국 하원의원 라일랜드가 조든 타운을 방문한 날, 모든 사람들 앞에서 사건들은 모두 사고였고 불가능 상황이 된 건 신도들의 의지였다는 추리를 밝혔다.
그러나 라일랜드 일행을 타운 보안군이 사살하고 리리코마저 살해당한 날, 오토야는 대규모 자살쇼를 앞둔 조든과 신도들 앞에서 숨겨져 있었던 진상을 폭로하기 시작하는데....

최근 추리 애호가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어 있는 일본 본격 추리물. 2023년 '본격 미스터리 대상' 수상을 비롯하여 '고노미스',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등 유명 미스터리 어워드 상위권을 휩쓴 작품이지요.

유치해보이는 표지와 부제 탓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괜찮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화려한 수상 이력이 증명하듯 '본격 추리물'로의 가치가 높다는게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조든 타운에서 벌어진 무려 4건의 불가능 범죄를 비롯하여, 도입부의 요코야부 요스케 밀실 살인 사건 등 사건도 풍성하고, 사건에 관련되어 있는 단서가 독자들에게 공정하게 제공되며, 오토야와 리리코를 통해 각 사건마다 여러가지 추리가 펼쳐지는 덕분입니다. 리리코가 왜 오토야에게 가짜 서명이 되어 있는 <<탐정 교과서>>를 가져왔었는지 등 사소하지만 디테일한 추리들도 잘 짜여져 있고요.
특히 핵심이 되는 조든 타운에서 벌어진 불가능 범죄에 대한 트릭과 추리가 기발해서 만족도가 높습니다. 사건만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은데요.
  1. 전 FBI 조사관으로 인민교회 간부로 위장한 알프레드 덴트가 밀실인 자기 방에서 칼에 찔려 죽음.
  2. 조든 타운 요리반 멤버들과 티 타임을 갖던 사이비 과학 탐정 조디 랜디가 청산가리 중독으로 죽었는데, 차는 함께 했던 요리반 멤버들 모두가 같이 마셨음.
  3. 한국인 이하준이 상, 하반신이 토막난 사체로 발견되었는데, 이하준은 가방에 갇혀서 오토야와 리리코의 눈을 피해 빠져나갈 수 없었음.
  4. 묘지에서 리리코를 살해한건 아이였는데, 묘지 관리인 크리스티나는 아이는 누구도 묘지에 절대 들어오지 않았다고 단언함.
여기서 진상은 '조든 타운의 광신도들은 스스로 아무도 질병이나 몸의 이상이 없으며, 사람들을 이상이 없는 완전한 모습으로 바라보지만 외부인들은 그들의 모습을 현재 그대로 바라본다'는, 오토야의 표현을 빌자면 '외부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추리를 통해 밝혀지게 됩니다.
첫 번째 사건에서, 덴트는 이미 칼에 수차례 찔린 채로 방에 들어간 뒤 문을 닫고 밀실을 만든 뒤 죽었습니다. 그러나 방에 가던 덴트를 목격했던 Q는 덴트의 치명상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조든 타운의 신도가 몸에 상처가 있을리 없기에, 기억에 왜곡을 일으켰던 겁니다.
두 번째 사건에서 조디 랜디는 오른 손으로 차를 마시는 사람의 입이 닿는 부분에 묻혀진 독을 먹고 죽었습니다. 함께 했던 요리반 멤버 중 크리스티나는 오른 손이 없었고, 블랑카는 왼손잡이였으며 레이첼은 오른 손가락이 골절되어 오른 손을 쓰지 못했기 때문에 혼자서 오른 손으로 차를 마셨기 때문이지요. 이를 위해 범인은 사전에 레이첼의 오른 손가락을 부러뜨렸지만, 레이첼은 아픔을 느끼지 못했고 주위 사람들도 레이첼이 다쳤다는걸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세 번째 사건에서 범인은 감방에서 이하준을 살해한 뒤, 상하체를 토막내어 각각을 간수 프랭클린을 이용해 밖으로 옮겼습니다. 프랭클린은 자신의 다리가 있다고 믿었기에, 휠체어 하반신 쪽에 설치(?)된 사체 토막의 존재를 몰랐습니다. 시체를 옮길 때 마다 범인에 의해 기절했던 것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고요. 
네 번째의 리리코 사건은 범인 레이 모튼이 어른이지만 하이랜더 증후군을 앓던 탓에 아이같은 외모를 가졌던게 이유였습니다. 오토야는 실제 그대로 어린아이를 목격했지만, 묘지 관리인 크리스티나의 눈에 레이 모튼은 정상적인 성인이었기에 상반된 증언에 의한 불가능 상황이 발생했던 것이지요.

이렇게 광신자 집단의 잘못된 믿음같은 일종의 대규모 집단 최면은 다른 작품에서도 등장하기는 했었습니다. 제가 읽었던 작품 중에서는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신의 로직, 인간의 매직>>이 대표적이지요. 특정 집단 전체에 걸려있는 일종의 최면으로 정보 자체가 왜곡된다는건 동일합니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밀실 대도감>>에서 소개된 <<다카마가하라의 범죄>>는 '현인신은 신이라서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무녀가 조서를 들고 2층에서 내려왔기 때문에 신과 같은 존재가 되어 보초 눈에 보이지 않았다'라는, 종교 단체의 신앙으로 비롯된 현실 왜곡이 사용되었다는 점에서는 아예 똑같은 발상일테고요. 
하지만 이 작품은 이런 비현실적인 상황과 트릭을 꽤 현실적으로, 설득력있게 만드는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이는 실제로 있었던, 정신병자 교주가 주도하여 신도들이 집단 자살했던 가이아나 존스 타운 사건 (인민 사원 사건)을 사건의 바탕으로 삼고있는 덕분입니다. 실제 사건을 본격물로 풀어내어 다채로운 트릭을 선보인 것도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다소 팩션같은 느낌을 전해주는게 좋더라고요.

하지만 이 '외부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추리 외의 추리들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문제는 큽니다. 리리코의 추리부터 살펴보자면, 그녀는 사건들은 모두 사고였다고 - 덴트는 밀실에서 실수로 칼에 찔려 죽었고, 조디 랜디는 지병인 협심증으로 사망했으며, 이하준은 간수 프랭클린으로 변장하여 휠체어를 타고 급경사에서 고속으로 도주하다가 와이어에 걸려 토막이 났다 - 생각했습니다. 이를 발견한 조든 타운의 신도들이 '질병도 없고, 사고도 없는 조든 타운'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현장을 조작했다고 추리했고요. 
그런데 협심증이야 그렇다쳐도, 밀실에서 칼이 튀어 등에 찔려 죽었다? 고속 휠체어 이동으로 몸이 토막났다? 솔직히 어이없는 발상입니다. 이런 추리에 수긍하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이상해 보였습니다.

물론 이는 사건을 대충 수습해서 무마하기 위해 억지로 풀어낸 추리였다는 전제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뒤 오토야의 '신앙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추리는 더 한심했습니다.
오토야는 덴트의 방을 밀실로 착각하게 만든 열쇠와 조디 랜디에게 다과회 시점에 녹아내리도록 독이 든 캡슐을 낮은 온도에서 녹는 저융점 합금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저융점 합금은 별다른 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조든 타운에서도 어떻게든 가공할 수 있는 소재였을 수는 있어요. 문제는 이 합금이 그렇게 흔하지도 않았을테고, 원하는 모양으로 딱 맞춰 만들기도 쉽지 않았을 뿐더러, 때 맞춰 녹아내리도록 한다는건 더 말도 안된다는 겁니다. 이건 그야말로 만화에서나 사용될 수준의 트릭이었어요. 그나마 3일 전 사망했던 오토야의 지인 노기의 사체를 토막내어 이하준 사체로 위장한 뒤 발견되도록 만든 다음에 이하준을 살해했다는 추리 정도만 괜찮았습니다. 이후 이하준 사체를 토막내서 공동묘지 관리 오두막의 노기 사체와 바꿔치기 했다는 것이죠.
'신앙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추리의 끝이 짐 조든이 범인이라는건 설득력이 더욱 약했습니다. 저융점 합금을 사용할 수 있고, 이하준의 사체를 빼돌리기 위해 1감옥에 갇혀 있던 오토야와 리리코를 석방시킬 수 있었던건 짐 조든 밖에 없었다는게 근거인데, 애초에 저융점 합금을 사용했다는게 말도 안될 뿐더러, 짐 조든은 앞서 맹인에 가까울 정도로 시력이 낮다는게 이미 언급되기에 일고의 가치도 없습니다. 조든이 카리스마와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신의 천벌같은 불가능 범죄를 저질렀을거라는 동기도 미흡하기 짝이 없고요. 설령 조든이 그런 생각을 했다 한들, 직접 범행을 저지를 이유는 더더욱 없습니다. 수족같은 간부나 광신자를 이용하겠지요. 맨슨 패밀리의 찰스 맨슨이나, 오움 진리교의 이시하라 쇼코가 직접 살인을 저지르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애초에 '명탐정' 들이 다수 등장하는 설정부터가 별로에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괴사건 해결 전문 명탐정을 실체 있었던 사건과 결합하여 풀어나가니 괴리감만 크게 느껴집니다. 오토야와 리리코를 사이비 종교 전문가로 설정해서 조든 타운으로 향하게 만드는게 훨씬 좋았을거에요.
정보도 공정하게 제공되기는 하나, 너무 과해서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느낌도 들게 만듭니다. 대표적인게 덴트 방 옷장의 혈흔입니다. 등에 칼을 찔렸다고 혈흔이 저렇게나 튄다는건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문이 어떻게 열리든 그게 별로 중요해 보이지도 않았고요.

도입부의 밀실 살인 사건도 그닥입니다. 밀실 안에서 죽은 사람은 유명탐정 요코야부 유스케였고 사체에 남겨진 탄환 감식 결과, 그를 쏜 건 10여년 전 권총을 훔친 뒤 11명을 사살했던 108호 사건의 범인이었다는 사건이지요. 오토야는 추운 날씨인데도 요코야부가 얆은 옷에 난방도 켜지 않았다는 것에 주목합니다. 이는 범인이 요코야부의 겉옷을 벗겨갔으며, 그 이유는 겉옷에 총을 쏜 흔적을 숨기기 위해서였고, 따라서 요코야부는 자살했다, 이유는 요코야부가 108호였기 때문으로, 실수로 권총이 오발된 뒤 정체를 숨기기 위해 창 밖 바다에 총과 겉옷을 버렸고, 그 때 그걸 목격한 거리의 떠돌이 소년을 쏴 죽였으며, 문만 열어두면 침입한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고 여겨졌겠지만 힘이 다해 문을 열기 전에 죽고 말았다는 추리로 이어집니다.
그러나 리리코는 요코야부의 겉옷을 벗겨간 건 자기보다 큰 재킷을 입고 있었던 거리의 떠돌이 소년이며, 그가 바로 108호였다는 추리를 내 놓습니다. 요코야부에게 원한을 품은 108호는 요코야부에게 총을 쏜 뒤 오토야의 추리처럼 그를 108호로 몰기 위해 총을 객실에 두고 나왔는데, 기력이 남아있던 요코야부가 창 밖의 108호를 쏴 죽인 뒤 108호로 오인받지 않으려고 권총을 던져버렸다면서요. 108호는 10년 전에도 10대 중반의 소년이었는데 지금도 어린 소년으로 보이는 이유는, 성인이 되지 못하는 선천성 질환인 하이랜더 증후군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리하는데, 이는 경찰 조사 결과 사실로 밝혀지게 됩니다.
오토야와 리리코의 추리는 괜찮습니다. 추운 날씨인데도 켜지 않는 나방과 입지 않은 외투, 안에서 보기에 열릴 것 처럼 보이지 않는 바다로 향한 창, 다른 객실 투숙객이 들은 물 튀기는 소리 등 단서도 잘 제공되고 있거든요. 
하지만 총을 훔쳐 11명이나 죽였던 범인이 알고보니 성장하지 못하는 병을 앓고 있었다는게 너무 억지스러워서 좋은 점수를 주기는 힘들며, 무엇보다도 이 사건이 오토야가 조든 타운 신도들을 모두 독살한 진범이었다는 마지막 진상으로 이어진다는건 해도 너무했습니다. 명탐정 리리코가 고작 세 명을 살해한 잡범에게 살해당했다는걸 인정할 수 없어서 - 요코야부는 11명을 죽인 108호에게 죽었는데! - 수백명을 참살하도록 만들었다는데, 정말 가관이었어요. 일본식 명탐정 허세의 극을 달리는, 정신줄 놓게 만드는 황당한 동기였습니다. "탐정은 때로는 가해자가 될 수 있다"며 탐정의 역할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도 옥의 티이고요. <<유리탑의 살인>>도 그렇고, 왜 이렇게 명탐정이라는 존재에 목숨을 거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동기야 어쨌건 오토야가 독을 탔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루이스의 유서는 이 사실을 증명하기에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어요. 신도 중 생존자였던 Q가 루이스가 이상했지만, 당시 조든 타운 신도였기에 이를 몰랐다는 주장을 펴는 것 역시 입증할 증거는 전무하고요. 오토야가 범행을 순순히 인정하고 체포되어 수감될 이유가 도저히 보이지 않네요.

그래서 제 별점은 2.5점. 실제 있었던 끔찍한 사건을 추리와 결합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낸 솜씨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만화같은 불필요한 설정, 그리고 추리에 사족이 많았기에 감점합니다. 그래도 본격 추리물로는 충분한 재미를 선사하는건 분명하니, 추리 애호가분들이시라면 한 번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2023/08/25

폭탄 - 오승호 / 이연승 : 별점 2.5점

폭탄 - 6점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블루홀식스(블루홀6)

<<아래 리뷰에는 진상,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0시 정각. 아키하바라 쪽에서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날 겁니다." 술에 취해 자판기를 훼손해 인근 경찰서로 붙잡혀온 남자가 왠지 촉이 온다며 내뱉은 이 말에 귀 기울인 경찰은 한 명도 없었다. "술이 덜 깼나?" 하는 비아냥은 10시 정각에 폭발 사고 신고가 들어오며 서늘한 공포로 변한다. 남자가 히죽거리며 말을 잇는다. "제 촉대로라면 지금부터 총 3회, 이다음에는 한 시간 후에 폭발이 일어날 겁니다."

가벼운 상해 사건이었던 이 건은 금세 최우선 순위로 격상되고, 본청 형사들이 취조실로 들이닥친다. 베테랑 형사들을 앞에 두고 남자는 선문답을 연상케하는 말을 늘어놓으며 '아홉 개의 꼬리'라는 퀴즈 게임을 제안한다. 어쩔 수 없이 제한 시간을 두고 그와 마주 앉아 절박한 게임에 참여하게 된 경찰. 허술한 주취자로 생각했던 남자가 "하지만 폭발한다고 해서 딱히 문제 될 것 없지 않나요?" 하며 싱글벙글거리고, 사건의 전모가 예상을 가히 뛰어넘는다는 것이 밝혀지며 취조실에는 오싹함이 감돈다. 이들은 폭발을 막을 수 있을까. (출판사 제공 줄거리 인용)

<<도덕의 시간>>, <<스완>>의 작가 오승호의 따끈따끈한 신작. 작년 거의 모든 일본내 추리, 미스터리 랭킹을 휩쓸었던 화제작이었지요. 천재 범인과 경찰의 대결을 독특하게 변주한 점에 더해 추리적으로도 (제가 읽었던 작가의 다른 작품들보다는) 빼어난 덕분일 겁니다. 
별볼일 없는 사고뭉치 노숙자로 보였던 스즈키가 폭탄 테러의 핵심 인물로 드러나는 도입부부터 굉장히 흥미로우며, 스즈키가 경찰에게 심문을 받으며 내 놓는 퀴즈(?)는 대부분 말장난이기는 하지만 나름대로 재미있고, 설명도 그럴듯합니다. 전설의 동물 구단 이야기로 지역은 '구단시타', '신의 말씀과 회문, 그리고 탁점'이라는 힌트로 '신문지'를 떠올리게 해서 구단시타의 조간신문을 배달하는 곳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는 정답을 이끌어내는 식으로요.
스즈키와 진범 다쓰미 일당과의 연결 고리를 더듬어가는 과정도 마찬가지에요. 스즈키가 일부러 남긴 핸드폰이라는 단서와 도도로키 형사의 심문 중 나온 하세베 유코의 이름을 통해 가족들을 찾게되는 수사 모두 다쓰미의 마지막 거주지로 연결되기 때문에 설득력이 높습니다. 다쓰미 시체에 설치된 폭탄이 폭발한 것도 단순히 경찰을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쓰미의 사인을 숨기기 위해서라는 목적이었다는 것도 합리적으로 설명되고요.
스즈키의 퀴즈로 역을 알아낼 수 없었던건, 그도 어떤 역에 폭탄이 설치되었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추리도 좋았습니다. 이를 통해 드러나는, 스즈키는 다쓰미 일당이 아니었고 진범임을 자처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냈다는 반전도요. 다쓰미의 모친 아스카가 아들의 테러를 알고 살해한 뒤 스즈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도 셰어 하우스에 다쓰미가 데려왔던 네 번째 인물, 그리고 스즈키가 노숙자 시절 알고 지냈던 신참 노숙자, 스즈키의 드래곤즈 모자 등으로 차분히 단서와 복선을 설계하여 잘 풀어내고 있습니다.
  
진범 다쓰미 일당이 계획했던 폭탄 테러 방법도 기발했습니다. 일당 중 한 명인 야마와키의 주류 배달업이라는 직업을 활용하여 음료수 형태로 가공한 폭탄을 자판기 안에 넣었다는데, 이래서야 경찰의 수색으로 찾아내지 못한건 당연하겠지요. 결국 정해진 시간이 되어 순환선 야마노테선의 주요 역들이 차례대로 폭발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이었고요. 이건 영상화되면 꼭 한 번 보고 싶을 정도에요.

아울러 오승호 작품답게 사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구성도 좋았습니다. 단순한 사회파 범죄물처럼 특정 이슈에 대한 범죄를 등장시키는건 아니고, 주로 스즈키의 입을 통해 누군가 폭발로 죽을 때 내가 슬퍼해야 하는가? 인간의 생명은 과연 평등한가? 동료가 아닌 적의 목숨은 없애도 괜찮지 않나? 이 세상은 정말 살 가치가 있는가? 이런 세상은 모두 망해버려야 하지 않는가? 등 작가가 생각하는 사회적인 여러가지 문제를 직접적으로 전달합니다. 덕분에 스즈키의 캐릭터성도 독특하게 다가옵니다. 천재 범죄자이자, 사회에 대한 증오심을 품고있을 '조커'가 배 나오고 머리에 땜통까지 있는, 자기비하에 능숙한 노숙자 출신 아저씨라니! 다시 보기 힘든 빌런이라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작가의 의지(?)가 투영되어 있는 듯한 메시지가 과잉인 탓입니다. 다쓰미가 가족이 무너진 것에 대한 복수의 의미로 테러를 저지른다는 동기는 명확하고 설정도 참신했지만, 그 뒤 스즈키가 테러를 떠안는 동기도 잘 설명되지 못해서, 메시지 전달도 공허합니다. 다쓰미가 직접 별거 아닌 일로 가족을 붕괴시킨 일본 사회에 복수하겠다는 메시지를 외쳤다면 설득력이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애초에 남편과 아버지가 변태였다는게 사회적으로 가족이 모두 매장당할 일인지 잘 모르겠거든요. 범행 현장에서 자위 행위를 한 건 피해자들 입장에서 분통이 터질 행위인건 맞지만, 법률적으로는 죄라고 보기는 어렵잖아요? 우리나라에서는 거주지만 옮겨도 가족들의 생활이 무너질 일은 없었을 겁니다. 이렇게 억울했을 다쓰미에 비하면, 스즈키의 메시지는 사회 부적응자의 개인 주장에 불과했을 뿐입니다. 
또 노숙자에 불과한 스즈키가 어떻게 고도의 심리 - 정보전을 엘리트 경찰들과 대등하게 벌이는지에 대한 설명도 부족합니다. '유너바머' 정도의 배경은 있어야 할 인물 같은데, 노숙자라는 '현재'만 보여주다보니 그런 부분에서 설득력이 많이 부족해져 버렸네요.

그래도 스즈키는 독특한 매력을 뿜뿜해서 이야기를 끌고가는 주역으로서의 자리매김은 확실히 하고 있는 반면, 상대역인 경찰쪽 인물들의 매력은 부족하다 못해 없다시피 합니다. 도도로키 형사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상대방에게 공감하는 스타일이라서, 루이케는 정의와 사명감보다는 스즈키와의 게임에 심취해서, 기요미야는 심약하고 정서가 불안해서 스즈키에게 농락만 당하는 탓에 모두 맞상대로서의 격을 느끼기 어려웠던 탓입니다. 때문에 스즈키와 1:1로 대결을 펼치는 재미를 전혀 주지 못합니다. 이런 류의 작품에서 중요한 팽팽한 대결의 긴장감도 없다시피하고요. 마지막에 야마노테 선 폭탄 테러를 막지 못하는게 당연하다 싶을 정도였어요. 
그 외에도 친구의 부상으로 폭주하는 순경 사라, 자리를 지키는데에만 급급한 쓰루쿠 등도 그야말로 뻔하디 뻔한 스테레오 타입이라 지루했습니다.

가족 구성원 누군가의 범죄로 다쓰미 가족 모두가 무너져 버린다는 것 같이 다른 작품에서 보아왔던 설정도 많습니다. 천재 범죄자와 경찰과의 두뇌 게임은 물론이고, 스스로의 가치관에 맞는 행동을 고집하여 조직 내에서 고립된다던가 (도도로키 형사) 하는 이야기는 질릴 정도로 많이 봤습니다. 잇달아 일어나는 범죄 탓에 일반 시민들이 경찰서로 몰려드는 묘사도 <<연쇄 살인마 개구리 남자>> 등에서 이미 써먹었던 것이고요.
 
변태 남편 탓에 이미 지옥을 맛 보았던 아스카가 또 고통을 겪고야 마는 결말, 에필로그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다쓰미가 폭탄 탓에 산산조각이 나기 전 살해당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마지막에 스즈키를 죽일 의도로 경찰서로 찾아오기는 했지만 폭탄도 없었고, 살의를 증명할 방법도 사라의 증언 말고는 딱히 없어 보이고요. 그녀를 어떻게 재판에 회부할 수 있을까요? 그런 부분에 대한 설명도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좋은 평가를 받은 이유는 알겠지만 제게는 좀 애매했습니다.

2023/08/23

드림 (2023) - 이병헌 : 별점 2점


리뷰가 좀 늦었네요. 작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한국 영화 흥행 실패작 중 한편. 인기스타 박서준과 아이유에 <<극한직업>>으로 천만 관객을 찍었던 이병헌 감독이 손을 잡았음에도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지요.  딸과 함께 지난 여름 휴가 때 넷플릭스를 통해 감상한 영화입니다. 너무 더워서 도저히 밖에 나갈 수가 없더라고요. 

한 끝발 모자란 스타 축구 선수 윤홍대가 사고를 치고 자원봉사격으로 홈리스 축구단 감독을 맡는 초반부는 아주 좋았습니다. 윤홍대 머리 위에서 노는 가짜 다큐멘터리를 찍는 PD 이소민 캐릭터도 신선했고요. 감독의 전작처럼 재치있는 대사와 장면도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윤홍대가 홈리스 축구단 5명을 상대로 가볍게 이긴 후 승리의 세리머니를 연달아 펼치는 장면이 최고였어요. 철없는 아이같지만 축구에는 진심인, 그리고 홈리스 멤버들을 우습게 여기는 홍대 캐릭터를 선명하게 부각시키면서 큰 웃음을 주는 명장면이었거든요. 박서준의 능청스러운 연기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보다보니 흥행에 실패한 이유도 잘 알 수 있었습니다. 홈리스 축구단 멤버들 한명 한명의 이야기를 길게 풀어내면서 영화가 산으로 가고 말기 때문입니다. 사연도 하나같이 진부하기 짝이 없고요. 그나마 질투와 욕망(?)의 화신 손범수 정도만 입체적이면서도 웃겼을 뿐이에요.
이 과정에서 이소민이 이야기 주변으로 밀려나는 문제도 큽니다. 그녀가 사실상 모든 판을 짠 흑막임에도 불구하고, 중반 이후는 하는게 없다시피해서 당황스러웠습니다. 기껏해야 방송용 다큐를 만드는 PD가 홈리스 월드컵이라는 소재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는 이유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요. 그녀와 홈리스 월드컵 사무국장 캐릭터는 서로 겹치는 부분도 많아서, 여러모로 캐릭터 설정에 실패한 것으로 보입니다. 차라리 멤버와 주변 인물들 비중을 대폭 줄이고 - 특히나 의미없는 홍대의 사고뭉치 엄마 - 홍대와 소민의 티격태격 러브라인을 집어넣는게 더 재미있었을거에요. 어차피 뻔한 이야기인건 마찬가지잖아요?

뭐 그래도 사람들 이야기야 드라마로서 볼 정도는 되는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시대착오적인 국뽕 신파 서사를 과도하게 부여한 홈리스 월드컵 독일전입니다. 십 수년전 <<국가대표>>를 끝으로 수명을 마감해야 했을 시대착오적인 발상이었어요. 헝가리에서 열리는 경기 중계진과 관객들이 한국을 응원하며 "대~한민국"을 외친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경기를 정말로 '몸이 부서져라' 뛴다는 연출도 어처구니없었어요. 축구가 그렇게 위험한 스포츠도 아닌데 말이지요. 마지막에 에이스 인선이 한 골을 넣은 뒤, 우승한 것 처럼 기뻐하고 환호하며 세리머니를 하는 장면은 이 모든 유치함의 화룡정점입니다.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어요. 이런 억지 연출보다는 <<리바운드>>처럼 현실적으로 담백하게 그리면서도 감독의 장기인 유머 코드를 삽입하여 풀어내는게 맞았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홍대가 하는게 없다는 문제도 큽니다. 훈련 중 인선에게 센터링 올려주는 정도만 의미가 있어 보였거든요. 특별히 전술 훈련을 하지도 않고, 특별한 작전이 있지도 않습니다. 이래서야 축구 선수 감독이 왜 필요한지도 모르겠어요. 이 정도라면 소민이 감독을 해도 별로 다르지 않았을텐데 말이지요. 대단한 축구 영화를 기대한건 아니었지만, 동네 조기 축구회만도 못한 경기 장면을 보는건 솔직히 괴로왔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흥행에 실패하는건 다 이유가 있는 법입니다. 

2023/08/21

2023.08.15 ~ 08.20 두산 베어스 감상

주중 KT - 주말 NC / 홈 6연전 (우취 1)
성적 : 1승 4패

좋았던 점
  • 성적만 봐도 딱히 좋았던 점이 있었을리가.. 그나마 꼽자면 돌아온 알칸타라 선수의 7이닝 무실점 쾌투

나빴던 점
  • 약팀다운 투타 엇박자
  • 이승엽 감독의 무의미한 소모성 출첵 야구

총평과 이번주 예상 (혹은 기대)
지난 주에 호흡기 떼는 한 주가 되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왜 슬픈 예감은 빗나가지 않을까요. KT에는 3연패 스윕을 당해버려 6위로 떨어지기까지 했네요. NC전도 1승을 거두기는 했지만, 기대에 어울리는 성적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승률 2할에 그친 이유는 그나마 두산의 믿을 구석이었던 선발진 대부분과 필승조의 부진 탓입니다. 더위 탓인지 모르겠지만 알칸타라 선수를 제외한 모든 선발진이 무너졌고, NC 전 딱 한 경기를 제외하고는 필승조도 대부분 실점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투수진을 탓할건 못됩니다. 더 큰 문제는 올 시즌 내내 발목을 잡고 있는 타선이에요. KT 전에서 알칸타라 선수가 7이닝 무실점 투구를 보여준 첫 경기를 놓친게 대표적입니다. 올 시즌 상위팀 상위 선발에 약한 모습이기는 한데, 그래도 쿠에바스 선수에게 한 점도 못 낸건 너무했습니다. 두 번째 경기에서도 김동주 선수는 괜찮았습니다. 6이닝 4실점이면 5선발로는 합격이죠. 역시 패배는 2점밖에 못 낸 타선 때문이지요.
세 번째 경기는 타선이 8점이나 냈음에도 브랜든 선수가 올 시즌 가장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어서 패했으며, 우취 후 주말 첫 번째 NC전은 최승용 선수가 일찍 강판당했음에도 계투진의 호투로 4:1 승리를 거두었지만, 두 번째 경기는 곽빈 선수를 포함한 모든 계투진의 부진으로 완패를 당했는데, 이 경기는 이승엽 감독의 투수 기용이 패인입니다. 모처럼 아껴쓰나 했더니 아니다다를까 김명신, 박치국 선수에게 출첵 야구를 시켰는데,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어요. 두산은 지금 투수진에 여유가 전혀 없습니다. 지고 있는 경기에는 필승조를 연투시키면 안됩니다. 그 중에서도 김명신 선수는 이제 힘이 많이 떨어져보여서 충분한 휴식이 필요해 보이는데 기용해서 추가 실점을 허용하니, 관전하면서도 맥이 빠지더라고요.

타선이 못 터져서 지고, 타선이 터져도 투수진의 대량 실점으로 지고, 투타가 엇박자가 나는 전형적인 약팀 패턴으로 흘러가고 있는데 지금이야말로 감독의 관리와 운영의 묘가 필요한 때로 보입니다. 지는 경기는 확실히 버리더라도, 이길만한 경기에 집중하여 있는 자원을 올인하는 운영을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타선도 로하스, 김재환 선수가 조금 살아나는 듯 한데 이번에는 양석환 선수가 부진한데, 이를 잘 포착하여 조절하는게 감독의 능력일테고요. 왕년의 국민 타자답게 타선 좀 살려주면 좋겠는데, 영 돌파구가 보이지를 않는군요. 2군에서 거의 4할을 치는 양찬열 선수라던가, 2군 홈런왕 홍성호 선수 등 기대해 볼만한 선수들이 모조리 1군에서 맥을 못 추는 이유도 도무지 알 수가 없고요.

그나마 5위 경쟁팀 기아와 롯데 모두가 - 두산 보다야 낫지만 - 부진한 한 주를 보내서 근근히 5위를 유지하고는 있기는 합니다. 다음 주는 키움과 원정, SSG와 홈 3연전이 이어지는데, 솔직히 이제는 별 기대가 되지 않습니다. 5위 해서 뭐하겠어요? 우승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팬심으로는 더 이상 무리하지 말고 신인들을 대거 기용해서 옥석을 가리며, 몇 경기 남지 않은 LG 전에나 올인해서 잡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의미한 5위보다는, 꼴찌를 해도 LG를 이기는게 더 마음에 위안이 될 것 같거든요. 하지만 그럴리는 없고.... 이번 주는 3승 3패 정도로 부상없이 5할 승률만 유지하기를 바라며, 퐈이팅 허슬~두!

2023/08/20

꿀딴지곰의 레트로 게임 대백과 - 꿀딴지곰 : 별점 2.5점

꿀딴지곰의 레트로 게임 대백과 - 6점
꿀딴지곰 지음/보누스

저는 레트로 게임을 좋아합니다. 아래와 같은 패미컴 관련 책을 여러 권 구입해 읽을 정도로요. 제 추억을 공유하는 시기의 게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제목부터 대놓고 레트로 게임 소개를 천명하고 있어서 궁금한 마음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한국 레트로 게임 전문가의 저서라는게 신기하기도 했고요. 꿀딴지곰의 글은 어딘가에 연재하는 게임 컬럼을 통해 잡했었고, 그 식견에는 감탄하고 있었기에 쉽게 손을 댈 수 있었습니다.
읽다보니 저와 비슷한 세대라 반갑더군요. 89년 경에 재수했다니까요. 심지어 학창 시절 사는 동네마저도 - 꿀단지곰은 방배동, 저는 반포동 - 비슷해서 더욱 그러했습니다. 같은 세대, 같은 지역에서 같은 관심사를 공유했으니 취미와 관심사가 비슷한건 어떻게보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일본의 관련 서적과는 다른 구성을 보여줍니다. 챕터별로 초반에 개인 회고담이 수록되어 있고, 그 뒤에 꿀딴지곰이 즐겼던 해당 챕터에 관련된 게임을 소개하는 식이거든요. 게임에 대한 연대별, 콘솔이나 게임 종류별 정확한 소개보다는 이렇게 개인 추억 위주인 덕에 갖는 장점도 있습니다. 실제 당시 시대를 잘 알 수 있음은 물론이고, 게임에 대한 개인적이기는 하지만 조금은 더 치밀한 소개와 게임별 장, 단점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거든요. 게임들의 우리나라 명칭 - 샐러드를 똥파리라고 불렀다던가 - 이 소개되는 식으로요.
글을 통해서 제가 즐겼던 게임들과 여러 공간들이 언급되는 것도 재미있었는데요, 첫 시작인 80년대 게임 소개부터 저 역시 어릴 때 즐겨했던 방구차, 미스터 도, 너구리, 푸얀, 엘리베이터 액션, 서커스, 올림픽, 너클조 등이 소개되기 때문입니다. 올림픽 할 때 자 등으로 버튼을 연타했던 추억은 어디가나 똑같은 것 같군요. 이 중 저의 베스트는 누가 뭐래도 1942였습니다. 꿀딴지곰은 싫어했다고 하지만요.
두 번째는 콘솔 게임 재믹스에 대한 소개에서는 주로 MSX 게임들이 언급되는데 남극 대모험, 왕가의 계곡, 루이스 정도가 기억이 납니다.
세 번째는 진짜 MSX, MSX2 이야기입니다. 제 주위에도 유저들이 많았었지요. 또 당시 강남권 게임 키드들의 메카였던 파파 상사에 대한 소개가 반가왔어요. 고속터미널 상가에 있었는데, 이 쪽에 이런 가게들이 참 많았었던 기억이 납니다. MSX는 안 해본 게임인 우샤스와 스내처 내용이 궁금하네요. 우샤스는 반전이 인상적이라고 해서 찾아보았는데, 주인공들의 모험은 오히려 고대 문명이 개발했던 폭탄을 폭발시켰을 뿐이라는건 확실히 특이했습니다. 시대를 꽤 앞서간 설정이 아닌가 싶어요.




 MSX2 최고의 2인용 퍼즐 액션 게임이라는 퀸플도 모르는 게임이라 호기심이 생기고요.
네 번째 챕터는 패미컴입니다. 패미컴이야 뭐 저도 유저였고, 관련 책도 여러 권 읽어보아서 특별한 내용은 없겠지 싶었는데, MSX에 꽂아쓰는 컨버터는 처음 봤습니다. 꿀딴지곰은 RF 단자만 지원하는 정품이 아니라 AV단자도 지원했던 대만제를 샀다는 것도 신기했어요. AV 단자가 일반적이지 않았던 시대 같은데 말이지요. 게임 소개는 특별한 건 없지만 그래픽이 좋은 패미컴 게임의 대표예로 소개한 크라이시스 포스는 아래의 게임 같은데, 지금 보면 그닥이지만 당시에는 획기적이었나 보네요.


그리고 1990년의 게임 환경에 대한 이야기, 오락실 전성기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1991년 스트리트파이터 2는 정말 대단했었죠. 당시 대입을 앞두고 있던 저와 친구들의 공부 시간을 빨아들였던 원흉이기도 했고요. 글과 게임 소개들을 읽다 보면 그 외에도 여러가지 추억이 떠오릅니다. 수왕기, 콘트라 - 우리 동네에서는 곤두라였는데 -, 다크실, 뉴질랜드 스토리. 에어리어 88, 파이널파이트, 더블 드래곤, 골든 액스, 천지를 먹다 (삼국지), 다이너마이트 형사, 캡틴 코맨도, 심슨, 어밴져스, TMNT (닌자 거북이) 등등등에 얽혔던 추억들이지요. 캡틴 코만도는 본가에 만화도 있을 정도로 좋아했었고요. 만화나 한 번 다시 찾아봐야겠습니다. 
격투 게임의 전성기를 다루며 소개되는 스트리트파이터, 용호의 권, 사무라이 스피리츠, 아랑전설, 킹오파도 모두 기억에 생생하고요. 모르는 게임도 당연히 몇 개 있는데, D&D 세계관의 오락실용 아케이드 게임이라는 던전 앤 드래곤스 섀도 오버 미스터리는 궁금하네요. 황당해서 실소를 터트리게 만든다는 골든 액스의 오락실 엔딩은 찾아보았는데, 꽤 기발하더군요. 오락실용 아케이드 게임에 스토리를 부여했다는 것도, 게임을 할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입니다. 

체감형 게임 중에서는 스페이스 해리어만 해 봤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정말 놀랄만한 그래픽이었었죠. 다라이어스는 모르겠지만요.

6장은 가정용 게임기의 부흥을 다룹니다. 16비트 게임기가 등장했기 때문으로 메가 드라이브, 슈퍼패미컴이 그것입니다. 꿀딴지곰의 말로는 메가 드라이브 최고의 액션 게임은 슈퍼 시노비 2이고, 최고의 오프닝은 무자 알레스터, 그 다음이 엘리멘탈 마스터라고 하네요. 슈퍼패미콤 게임 소개도 많은데 슈퍼패미콤은 제가 해본 적이 없어서 딱히 와 닿는게 없었습니다. 게임보이는 테트리스에 푹 빠졌던 기억만큼은 생생합니다. 나름 엄청 열심히해서 겨우겨우 로켓트(?)를 쏘아 올리기까지 했었지요. 그게 제 한계였습니다.
7장은 오락실의 쇠퇴를 다룹니다. 아무래도 2000년대부터 PC방과 스타크래프트의 전설이 시작되었기 때문인데, 꿀딴지곰은 그 사실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다만 음악 게임과 댄스 게임이 반짝 흥행했다는 정도만 알려줍니다.
8장은 플레이스테이션과 세가 새턴으로 대표되는 차세대 게임기 전쟁을 다루고 있습니다. 플레이스테이션은 대학 생활 막바지에 정말 많이 했었습니다. 파이널판타지, 바이오하자드, 메탈기어 솔리드 등등등.... 이 중 제 베스트는 누가 뭐래도 철권입니다. 그러나 세가 새턴은 버츄어 파이터 말고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 게임들이었습니다. 새턴은 주위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어서 해보지도 못했고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레트로 게임 유행에 따른 레트로 게임 즐기는 법, 팁을 소개하며 마무리 됩니다.

이렇게 이 책을 통해서 8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대략의 한국 게임 유행사를 통사적으로 짚을 수 있습니다. 당시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추억담으로도 볼만합니다. 큼직한 도판과 함께 하는 게임 소개도 좋았고요.

그러나 게임 소개가 개인 취향인 탓에 소개되는 기준이 없다는 단점이 크게 느껴집니다. 심지어 발표 연대별로 소개되지도 않을 정도에요. 정상적으로 게임이 유통되지 않았던 국내 현실상 큰 의미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게임 자체가 발표된 시기는 명백한 만큼, 최소한 연대별로 소개되었어야 했다고 봅니다. 장르도 되도록 묶어서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자료적 가치가 없지는 않지만, 개인 에세이와 추억담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습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이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2023/08/19

일본 현지 빵 대백과 - 타쓰미출판 편집부 / 수키 : 별점 3점

일본 현지 빵 대백과 - 6점
타쓰미출판 편집부 지음, 수키 옮김/클

제목 그대로 일본 전국 각지에 있는 여러 빵집들의 대표 빵과 특징적인 빵들을 모아 놓은 빵 사진 도감. 모두 264종의 빵이 소개됩니다. 맛있는 빵들이 가득하니 보는 것만으로도 무척 즐거웠습니다.

목차는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됩니다. 특정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소울빵', 똑같은 빵이지만 지역별로 변주가 이루어진 빵들, 현지인들에게 사랑받는 동네 빵집과 대표 빵, 전국 어디에나 있는 일본의 대표빵으로요.

인상적이었던 건 일본의 크림 빵들은 크림이 정말 가득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식빵을 쓰는 크림빵들도 테두리까지 크림이 발라져 있던데, 이런건 많이 부러웠습니다.
여러가지 빵들의 탄생 비화 (?) 등 빵들의 역사가 소개되는 부분도 재미있었어요. 모리오카 시의 후쿠다 빵집에서는 50여가지의 크림을 가지고 주문을 받으면 바로 콧페빵에 발라 팔았는데, 어느날 따로 주문이 들어왔던 앙금과 버터를 실수로 함께 바른데서 탄생하게 유명한 '앙버터 빵' 이었다는게 대표적입니다. 야키소바 빵의 유래도 비슷한데, 1950년대에 야키소바와 콧페빵을 동시에 팔던 도쿄의 한 빵집에서 손님이 '번거로우니까 안에 넣어달라'고 한 데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카레빵은 도쿄 메이카도(현 카토레이)의 2대 점주가 1927년 실용신안등록한 양식빵이 원조로 추정된다는데, 이는 일본 카레빵 협회(별 협회가 다있네요)의 공식의견이라는군요. 그리고 내용물이 잘 보이도록 비닐에 넣은 삼각 샌드위치의 원조는 1967년의 산케이입니다. 대각선 45도로 컷팅했던 이유는 단면이 가장 길게 보이고, 양쪽 끝은 예각으로 먹기 편하며, 가운데 내용물을 듬뿍 넣을 수 있기 때문이라네요. 이게 이유가 붙을 정도로 획기적인 아이디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컬럼버스의 달걀같은걸 수도 있겠지요.

일본의 3대 간식빵도 상세하게 소개됩니다. 단팥빵, 잼빵, 크림빵인데 이 중 단팥빵과 원조인 긴자 기무라야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도 많이 접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초창기 긴자렌가 거리에 있던 점포 사진 등 도판이 충실해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잼빵도 기무라야에서 처음 만들었는데, 초창기에는 딸기가 귀해서 살구잼을 넣었고, 원형의 단팥빵과 구별하기 위해 타원형으로 만든게 지금 모든 잼빵의 원형이 되었다는군요. 크림빵은 신주쿠 나카무라야에서 처음 만들었는데, 창업자 부부가 슈크림을 먹고 그 맛에 감동하여 커스타드 크림을 빵에 넣은게 대성공을 거둔 것에서 시작되었고요.
그 외에 메론빵의 원조는 쇼와시대 초기 고베 빵집 긴세이도의 빵이었다는 등 다양한 정보가 가득합니다.

당연히 먹어보고 싶어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먹기 힘들 뿐더러 일본 여행을 간다해도 일본 전역에 걸친 빵집이 소개된 탓에 찾아보기 쉽지 않지요.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부분을 할애하여 '도쿄'에 위치한 빵집만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는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도쿄는 진입 장벽이 비교적 낮은 편이니까요. 소개된 빵집 중 아다치구 기타센쥬에 있는 '마루기쿠 베이커리'가 가장 땡겼습니다. 쇼와시대 레트로 빵 백화점 느낌이라는 말에 꽂혔거든요. <<맛의 달인>>에서 처음 접했던 시베리아(카스텔라 사이에 앙금을 샌드한 과자빵), 전국적으로 유명하다는 단팥빵이 끌리네요. 앞서 말씀드렸던 카레빵의 원조 카토레아의 카레빵도 놓칠 수 없고요. 여기까지 왔다면, 당연히 긴자 기무라야와 신주쿠 나카무라야에도 가 봐야겠지요.

그런데 읽다보니 이전에 읽었던 <<오이시이 빵>>에 나온 빵들이 많은 것 같아서 찾아보니 실제로 그러했습니다. 비교해보니 재미가 더 쏠쏠했어요. 출판사도 다르고, 책 성격도 좀 다르지만 두 책을 합쳐서 정보를 좀 더 보강하고, 목차를 빵 종류 중심으로 깔끔하게 정리했더라면 훨씬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용어도 통일하고요. (같은 빵을 쿠페 빵 / 콧페빵으로 각각 소개함)

제 별점은 3점입니다. 도감답게 딱히 남는건 없지만, 보기만 해도 즐거운 책입니다. 빵을 좋아하는 모든 분들께 권해드립니다.

2023/08/18

샘 호손 박사의 세 번째 불가능 사건집 - 에드워드 D. 호크 / 김예진 : 별점 1.5점

샘 호손 박사의 세 번째 불가능 사건집 - 4점
에드워드 D. 호크 지음, 김예진 옮김/리드비

단편의 제왕 에드워드 D. 호크의 20세기 초반을 배경으로 한 정통 본격 미스터리 단편 시리즈. 1, 2편 반응이 괜찮았었는지 3편까지 출간되었네요.
추리 소설 애호가로서 출간 자체야 반길 일이지만 솔직히 수준은 영 아니었습니다. 상당한 수준의, 아니 걸작들도 포함되어 있었던 첫 번째 사건집에 비해 두 번째 사건집은 다소 처졌었는데, 3권은 아쉽게도 2권보다도 못했어요. 기대했던 불가능 범죄를 해결하는 본격 추리물로서의 가치가 낮은 탓이 가장 큽니다. 트릭부터가 대체로 별볼일 없습니다. 변장, 자작극 트릭이 너무 많더라고요.수십편의 이야기를 쓰다보니 아이디어가 고갈된게 아닌가 싶어요.
이야기 전개도 부실해서 대부분의 작품에서 동기가 헐겁습니다. 불륜과 질투가 너무 많아요. 고작 이 정도로 이렇게까지 범죄를 저지르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동기가 설득력이 떨어지니 불가능 범죄'를 일으킬 타당성도 결여되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대부분 수록작들이 평균 이하 수준으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이 시리즈도 이젠 더 읽을 일이 없겠습니다.

수록작별 간단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묘지 소풍의 수수께끼>>
혼자 걸어가던 여자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다리에서 떨어진 뒤 사망한 사건이 등장하는데, 결론은 변장 트릭이었습니다. 피해자로 변장한 여자가 피해자인 척 물에 뛰어들은게 전부에요.
트릭도 변변찮지만, 이후 전개 과정도 문제입니다. 우선 증거가 너무 빈약합니다. 옷을 갈아입는 여자를 보았다는 (변장 때문에) 술주정뱅이 묘지 관리인의 증언으로 유죄를 만들기는 쉽지 않았을거에요. 샘 호손이 직접 피해자 - 로 변장한 일당 - 가 샌드위치를 먹는걸 보았지만 피해자는 위장이 비어 있었다는 것도 증거로는 약합니다. 물에 빠진 뒤 토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이 단편집의 단점을 모조리 갖추고 있는 졸작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유아 보호실의 수수께끼>>
밀실이었던 극장 내 유아 보호실에서 시장이 총에 맞은 사건인데, 트릭은 흔해빠진 자작극이라 특별한게 없을 뿐더러 동기가 전혀 설득력이 없습니다. 시장이 밀주 유통을 한다는걸 들켜서 협박범을 살해했다는건 말이 됩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이 총에 맞는 불가능 범죄로 자작극을 벌이는 이유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런 자작극을 벌인다고 협박범을 죽인 사건이 미해결이 될 리가 없습니다. 애초에 죽은 사람이 시장을 쐈을리 없으니까요. 보안관의 수사만 시작될 뿐이지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치명적인 불꽃놀이의 수수께끼>>
독립기념일, 폭죽놀이를 즐기려던 정비소 형제가 불을 붙인건 다이너마이트였다. 형은 즉사하고 동생은 화상을 입었다. 밀봉된 포장에서 꺼낸 폭죽을 어떻게 다이너마이트로 바꿔칠 수 있었을까?

범인은 동생이었습니다. 포장에서 폭죽을 꺼낸건 동생밖에 없으니, 형이 자살할 생각이 아니었다면 범인은 너무 뻔하지요. 마침 동생이 불을 붙이는데 계속 실패했다는 설명까지 있으니까요. 그래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중간에 등장하는 렌즈 보안관의 추리는 더 어이가 없었습니다. 정부 요원으로 가방한 밀주업자가 폭죽을 검사하는 척 하면서 바꿔치기 했다는데, 동일한 포장의 폭죽 상자를 미리 준비한다는건 말이 안되잖아요? 보안관으로는 너무 수준 미달의 인물이 아닌가 싶네요. 
여러모로 평균 이하 수준으로 별점은 1.5점입니다.

<<미완성 그림의 수수께끼>>
밀실인 아틀리에에서 테스 웨인라이트가 살해되었다. 가정부 밥콕 부인은 그녀가 라디오를 켜고, 전화를 받았다는고 말했는데.....

문을 닫고 마지막에 나온건 남편이고, 가정부가 들은건 오로지 '소리' 뿐이니 범인이 누구인지는 자명합니다. 라디오를 밖에서 켜고, 전화벨이 한 번 울리고 끊기게 만든 것도 별로 어려운 트릭으로 보이지 않았고요. 전화는 건 사람이 바로 끊으면 되잖아요? 읽으면서 라디오를 켠 건 발명왕이라는 마을 주민 대령의 발명품 덕이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보다도 간단한 트릭 - 창고에서 퓨즈를 연결 - 을 사용했더군요.

그래도 테스가 전화를 받았다면 라디오를 끄지 않았을리 없다 - 나중에 밥콕 부인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시끄러워서 라디오를 끈것처럼 - 는 디테일 만큼은 좋았고, 샘 호손이 환자들에게 집중해야겠다는 결심을 하는 등 전작들보다 눈여겨 볼 부분은 조금 있기는 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밀봉된 병의 수수께끼>>
금주법이 폐지되는 달 축배를 들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크레슨 시장이 독을 마시고 죽었다. 배달된 한 상자의 셰리주 중 시장이 딴 한 병에만 청산가리가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술을 배달했던 주류업자 얀시도 총에 맞아 살해되는데......

금주법 폐지되는 시점을 배경으로 하여, 마을 사람들이 공식적으로 술을 마시기 위해 모인다는 묘사는 재미있었습니다. 충분히 그럴 만 하지요.
술 상자를 진작에 배달받았지만, 사건 당일 배달된 것 처럼 연극을 벌였다는 트릭도 수긍할만 했습니다. '파티'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라는건 시대 배경을 감안하면 충분히 설득력있었어요. 샘 호손도 죽이려 했던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었고요.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황당한 수준입니다. 시장 등 별장에서 시간을 보낸 멤버들이 마약중독자들이었다는 설정, 마약에 중독돠어 자살한 남편의 복수였다는 동기 모두가 어이를 상실케했거든요.
사람이 하품을 한 정도로 마약에 중독되었다고 추리한 샘 호손의 추리도 어거지였고, 밀봉된 병에 주사기로 독을 넣었다는 트릭도 별로였어요. 시장이 무슨 병을 잡을지 알고 있어서 독을 한 병에만 넣을 수 있었다는 것 역시 억지스러웠습니다.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았기에 별점은 1.5점입니다.

<<사라진 곡예사의 수수께끼>>
서커스단에서 공중 곡예 중이던 곡예사 한 명이 그물로 떨어지는 곡예를 한 뒤, 다시 기어올라갔지만 사라져버렸다. 그 뒤 서커스단 천막이 설치된 목장 주의 집에서 살해된채로 발견되는데....

곡예사가 사라진건 마캐팅으로, 분홍색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서 올라가는 사람을 착각하게 만들었다는 트릭은 그럴싸했지만, 곡예사가 올라가기 전에 광대 무리가 몰려들었던걸 - 그래서 사라진 곡예사가 광대로 변장하고 빠져나갔다는걸 - 설명하지 않아서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질투로 보이는 살해동기도 대충 얼버무리고 있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담뱃잎 건조실의 수수께끼>>
제닝스 담배 회사 사장 재스퍼 제닝스의 아내 세라가 일꾼 로이 핸슨과 불륜관계라는 괴편지가 도착했다. 그리고 재스퍼는 담배 건조실에서 날카로운 칼에 목이 베어 살해당했다. 주변에 있었던 두 명 - 프레스콧과 핸슨 - 은 모두 범행을 부인했고, 둘에게서 흉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누가, 어떻게 제스퍼를 살해했을까?

읽으면서 <<마스터 키튼>>에 나왔던, 주변 사물을 흉기로 쓰는 킬러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담뱃잎을 흉기로 쓴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그런데 읽어보니, 흉기인 면도칼을 풍선에 실어서 건조실의 천장에 숨겼다는 장치 트릭이 사용되었던데, <<마스터 키튼>>이 더 괜찮지 않았나 싶습니다. 트릭이 애들 장난같았기 때문입니다. 경찰이 조사에 나서면 금방 드러날 트릭이기도 하고요.
어차피 범인은 함께 있었던 두 명 중 한 명인데, 가장 유력한 용의자 핸슨이 왜 이 때 범행을 저질렀는지도 잘 설명하지 못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눈에 갇힌 오두막의 수수께끼>>
새 차를 타고 에이프릴과 메인주로 드라이브 여행을 떠난 샘 호손은 하이킹 도중 오두막에 혼자 살고 있던 쇼터의 시체를 발견했다. 쇼터는 어떤 발자국도 없는 눈밭으로 둘러싸인 집 안에서 칼에 찔려 죽은 상태였다.

밀실 살인 사건인데 전화 설치 기사로 변장한 범인이 철제 케이블을 설치한 뒤, 케이블을 타고 집 안으로 이동했다는 트릭이 사용되었습니다. 솔직히 어이가 없었어요. 행글라이더를 타고 날아들어왔다 수준입니다. 흉기를 두고가는걸 잊어서 자살로 위장하는데 실패했다는 상황도 황당했고요. 무슨 장난같은 느낌이에요. <<존 딕슨 카를 읽은 사나이>>도 아니고.... 중간에 앙드레가 범인일거라며 샘 호손이 펼치는 추리도 말이 안되는건 마찬가지고요.

에이프릴이 휴양소 주인 앙드레와 결혼한다는 결말은 뜻밖이었고, 채광창에 햇빛이 들어온걸 단서로 - 눈이 쌓여있지 않았을 리 없다 - 그곳으로 범인이 들어왔을 것이라 여겨 추리를 시작하는건 좋았지만 그 외에는 점수를 줄 부분이 없네요. 별점은 1.5점입니다.

<<천둥 방의 수수께끼>>
결혼한 에이프릴의 후임으로 고용된 간호사 메이는 이상할 정도로 천둥을 무서워했다. 어린 시절 천둥방(뉴잉글랜드의 오래된 가옥에 있는, 폭풍이 칠 때 가족이 대피하는 방)에 숨었던 기억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폭풍이 찾아온 날, 행크 포스터가 살해당했는데, 그 아내는 범인이 메이라고 주장했다. 마침 메이는 폭풍이 칠 때진료실 안에서 혼자 쉬고 있었다. 샘 호손의 눈에 보이지 않았던건 단지 15분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행크스라는 아내 브루나의 주장은 너무나 확고했고, 알고보니 메이의 부모님도 천둥방에서 행크처럼 망치에 맞아 죽었다고 했다...


범인은 메이의 쌍둥이 남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풀어가는 전개가 말장난에 가깝습니다. 샘 호손은 메이에게 여동생이 있는지 물어보는데, 다들 없다고 하거든요. '남동생'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동생이 정신이상이라 살인을 저질렀다는 동기도 영 별로였고요. 별점은 1점입니다.

<<검은 로드스터의 수수께끼>>
노스몬트 은행에 강도들이 나타났다. 재빠른 대처로 강도들은 노스몬트를 빠져나가지 못했다. 그들은 어디로 사라진걸까?

샘 호손은 처음에 중고차 판매원 행크가 범인이라고 추리했습니다. 하지만 은행원들이 작당했던 자작극이었다는게 진상이에요. 은행원들이 감금되었던 방이 뒷 골목과 통해있었던게 핵심이고요.

다른 수록작들보다는 비교적 추리적으로 괜찮고, 동기도 합리이었습니다 (상대적입니다). 샘 호손이 한 번 실패한다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은행강도 사건을 꾸며낸다는게 비현실적이라는 단점은 있지만 이 정도면 그럭저럭 평작은 됩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메리가 사건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노스몬트에 남아 샘 호손의 간호사가 된다는건, 그녀가 앞으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걸로 보이는데 두고 봐야겠네요.

<<두 출생 모반의 수수께끼>>
병원에 식붕독을 일으킨 스트리터가 입원했다. 샘은 메리와 함께 식중독의 원인을 찾고자 매그놀리아 식당을 방문했다가 누군가 망치로 복화술사 인형을 망가트린 현장을 보았다. 마침 그날, 병원에서는 누군가 스트리터를 살해하려 했고, 다음날에는 상근 간호사 중 한 명인 애나가 잠긴 수술실에서 살해당한채로 발견되었다. 수술실 열쇠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는 의사 엔들와이즈만 갖고 있었다.

스트리터가 벌인 자작극이라는건데, 자작극 트릭은 수록작에서 너무 많이 나와서 식상했어요. 시체 은닉은 보안관도 어려운 일이라 말할 정도로 비현실적 - 이동거리가 너무 멀다 - 인데다가 양 쪽으로 열리는 미닫이 문 잠금 장치에 대란 트릭은 글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공정하게 정보가 제공되지 못합니다. 알고보니 애나와 스트리터는 이부형제였고 큰 땅을 상속받을 예정이었다는 동기도 억지로 가져다 붙인 느낌이고요. 무엇보다도 불가능한 상황을 억지로 만든 이유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빈사의 환자 수수께끼>>
샘 호손이 처방한 디기탈리스를 먹은 노부인이 사망했다. 샘이 실수를 했거나, 노부인을 안락사시켰을거라 생각한 의료협회는 의료 면허 박탈까지 1주일의 기한을 주었다.
샘 호손이 보는 앞에서 노부인은 어떻게 시안화합물을 먹였을까? 그리고 곧 죽을 사람이었는데 누가, 왜?


사탕이라는 증거가 비교적 초반에 제시된다는 점에서는 공정했지만, 그 외에는 딱히 언급할 부분이 없네요. 노부인이 유언장을 바꾸려고 해서 두려워했던 조카딸의 범행이라는 것도 진부했고요. 마을에서는 추리하는 의사로 유명한 샘 호손을 불러서 독살 과정을 지켜보게 만든 이유도 모르겠습니다. 별점은 1.5점입니다.

<<농가 요새의 수수께끼>>
농장을 요새처럼 꾸민 루디 프랑크푸르트가 살해된채 발견되었다. 잠긴 정문, 2미터 높이의 전류 울타리, 파수견, 게다가 집은 모든 문과 창문이 다 잠겨 있었다.

베를린 올림픽에 높이뛰기 선수로 출전을 준비하는 빌 크롤리가 범인이 아닐까? 는 추리로 전개되다가, 배달부 폴이 진범이라는게 밝혀지는 구성입니다. 추리적으로 잘 짜여져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일종의 순간이동 트릭이 꽤 합리적으로 사용된 덕분입니다. 폴은 루디를 죽이고 트럭에 실어 놓았었습니다. 그리고 샘 호손과 방문했을 때 집 안애 시체를 유기했던 것이지요. 루디가 배달을 지시한 물건들이 이미 집 안에 있었고, 개들이 폴의 트럭에서 짖어대었다는 등 단서 제공도 공정한 편입니다.

그러나 동기는 영 와닿지 못합니다. 질투 때문에 빌을 함정에 빠트리려고 무고한 사람을 살해한다? 지나치게 억지스럽습니다. 가문의 원수 정도는 되어야 저지를만한 범행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목적에 맞는 범행으로 보이지도 않아요. 그냥 묘한 불가능 범죄로 보일 뿐이니까요. 빌이 함정에 빠질 이유도 없습니다. 이 정도 트릭을 고안해 낼 정도로 머리가 비상했다면, 더 직접적으로 빌에게 죄를 물을만한 상황 - 최소한 빌의 운동화같은 증거라도 현장에 두는 등 - 을 꾸며냈어야 했습니다. 별점은 2점입니다.

<<저주받은 티피의 수수께끼>>
1880년대부터 1890년대까지 카우보이 일을 했다는 벤 스노가 샘 호손을 찾아와 오래전 수 종족과 만났을 때 있었던 불가능 범죄를 이야기해 주었다.
일족의 추장이 머무는 티피에 저주가 걸려서 추장의 아내, 아들, 손자, 그리고 벤 스노가 보는 앞에서 또 다른 아들 흐르는 구름마저 죽고 말았다는 사건이었다.


진상은 티피에 사용되었던 협죽도 기둥 탓에 사람들이 죽었다는 겁니다. 흐르는 구름은 아내의 복수로 독살당했고요.
스쳐 지나가는 말로 '협죽도'라는 단어를 꺼낸다던가, 흐르는 구름의 아들에 대한 설명 등 주로 '말'로 단서가 제공되는데, 그렇게 정교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늙은 추장 달리는 말이 죽지 않은건 단지 튼튼했다는 설명도 별로였고요. 별점은 1.5점입니다.

<<파란 자전거의 수수께끼>>
차도 트럭도 아무것도 안 지나간 길에서, 앞질러 가서 모퉁이를 돌은 앤젤라가 사라져버렸다. 현장에는 그녀가 타던 자전거만 남아있었다.

앤젤라가 숨을 수 있었던 옥수수밭의 존재를 초반에 잘 설명하지 않는 점에서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듭니다. 남자친구 필 브륵스와 도피하려고 했다는 동기도 영 아니었고요. 그냥 도망가는 것과, 이런 실종 사건을 떠들썩하게 일으키는건 별 차이가 없습니다. 어차피 경찰이 나서서 찾게 될 테니까요. 공들여 연극을 벌일 이유는 없어요. 차라리 조금이라도 멀리 도망가는게 나았을 겁니다.
필 브룩스의 말 실수가 단서가 되는 전개도 식상했으며, 브룩스가 앤젤라의 친구 주디마저 살해한 이유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친구라면 잘 설득해서 숨어있게 해 달라고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지요. 작 중 렌즈 보안관도 브룩스가 주디를 살해했다는걸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로 설득력없는 범행이었어요.
마지막 이야기라는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의 졸작이었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2023/08/16

리바운드 (2023) - 장항준 : 별점 3점


평이 좋길래 딸과 함께 넷플릭스로 감상한 작품.
약 10여년 전 부산 중앙고가 단 5명의 선수로 전국대회 결승에 올랐던 전설적인 실화를 당시 인물들 실명 그대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부산 중앙고의 신화는 당시 많은 농구팬들의 피를 끓게 만들었었고, "리얼 슬램덩크"라고 불리우며 많은 농구팬들이 영화화를 외쳤던 대사건이었지요. 고등학교 농구팀의 기적같은 승부를 다루었다는 점은 미국의 80년대 농구 영화 <<후지어>>를 떠오르게 합니다.

알고 있을 분들에게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할, 얼마 지나지 않은 실화라 그런지 <<퍼펙트 게임>>처럼 거슬릴 정도의 각색은 없습니다. 첫 공식 경기에서 사건을 일으켜 6개월 출장 정지를 받는건 영화에서의 창작이라 생각되지만, 크게 문제가 될 부분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강양현 감독과 선수들의 단결심을 강화하는 좋은 장치였다 생각됩니다.
농구 시합 장면도 박진감있게 펼쳐지는데, 전체적으로 잘 만들었더군요. 고등학생들 경기답게 현란한 기술보다 정해진 작전, 패스와 슛 위주라는 것도 현실적이었고요.
무엇보다도 이런 류의 작품에 흔히 있는 억지 눈물 짜내는 설정이 없다는 점, 그리고 농구를 가장한 연애물이 아니라는게 제일 좋았습니다. 농구부원이나 감독의 동년배 여성은 아예 등장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농구는 즐겁고, 한 게임 더 하는게 너무 좋다!는 모토를 시종 일관 유지하면서, 유머와 함께 풀어나갈 뿐입니다. 비록 지기는 하지만, 모든걸 후외없이 불태우며 결승전 후반부를 앞두고 We are young OST와 함께 나아가는 중앙고 멤버들의 모습은 아래와 같이 패배가 아니라 꿈, 희망으로 가득합니다. 전형적이지만 그야말로 가슴 벅차게 만드는 청춘 찬가입니다.

그 외에도 중앙고 선수들 외 프로 무대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의 실명이 시합 중간중간에 언급되는 것도 재미를 더해 주었었습니다. 이어지는 후일담 소개도 좋았어요. 중앙고 6명의 선수 중 무려 4명이나 프로 구단에 지명을 받았다는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지금까지 프로 선수로 뛰는 선수들은 없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농구를 즐겼으리라 생각됩니다.

허나 중앙고가 5명의 선수만으로 어떻게 전국대회 결승까지 진출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건 단점입니다. 토너먼트 초, 중반까지는 상대 분석에 따른 작전이 선보이며 승리에 대한 설득력이 어느정도 부여되는데, 뒤로 가면 갈 수록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어쨌든 이겨서 좋다!" 입니다. 당시 기사나 자료를 찾아보면 전국구 장신 가드 천기범의 활약이 결정적이었다고 하는데 그런 묘사는 많지 않습니다.
뻔한 이야기라 그런지 반복되는 클리셰도 많습니다. 배규혁의 발목 부상 설정이 대표적이지요. 마지막에 배규혁이 덩크를 성공시킨 후 천기범과 하이파이브를 하는건 클리셰의 정점이고요. 그냥 봐도 슬램덩크의 강백호 - 서태웅의 하이파이브 장면을 떠오르게 하거든요. 그만큼 극적인 장면도 아닌데 꼭 이렇게 비슷하게 가져가야 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배규혁은 실제로는 3점이 전문인 샤프 슈터여서 캐릭터와 잘 어울리지도 않았고요.

그래도 즐겁고 유쾌했던 가족 스프츠 영화라는건 분명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흥행에서 별로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는데, 넷플릭스를 통해서라도 많이 알려지면 좋겠습니다.

2023/08/14

2023.08.08 ~ 08.13 두산 베어스 감상


주중 삼성 - 주말 한화 / 원정 - 홈 6연전 (우취 1)
성적 : 2승 3패

좋았던 점
  • 나름 견고했던 선발진
  • 딱 한 경기지만 타선 대폭발
  • 김명신 선수를 제외한 필승조 휴식
나빴던 점
  • 믿었던 중간 계투 붕괴
  • 딱 한 경기를 제외하고는 시원치않았던 타선

총평과 이번주 예상 (혹은 기대)
지난 주에 최소 4승 2패를 기대한다고 썼었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최원준 선수를 제외한 선발진 - 최승용, 알칸타라, 브랜든, 곽빈 선수 - 은 나름 제 몫을 충분히 다 했는데, 찬스를 제대로 이어가지 못했던 타선과 믿었던 김명신 선수의 부진 탓입니다. 타선은 확실히 양의지 선수와 김재호 선수의 부상 공백이 커 보입니다. 빈 자리를 지키는 백업 선수들의 기적같은 활약은 찾아보기 힘들었고요. 11연승 기간 중 깜짝 스타로 부상했던 박준영 선수도 여기까지인 것 같아요.
김명신 선수는 매 경기 실점을 허용하며 부진했는데, 지난 주에도 무려 3경기나 등판하는 등 믿을 수 없는 혹사 탓입니다. 온전히 감독의 책임이에요. 

그래도 지난 주에는 다행히 기아와 롯데가 물고 물리며 5위는 어떻게든 지키기는 했습니다. 문제는 이번 주지요. KT, NC와의 홈 6연전이 예정되어 있으니까요. 두 팀다 현재 전력은 명백하게 두산보다 우위인 팀들입니다.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최승용 - 알칸타라 - 김동주 - 브랜든 - 곽빈 - 최원준(?) 선수 순서로 등판할 선발진은 나름 괜찮지만, 타선은 영 기대가 되지 않습니다. 반등의 계기가 될 만한 선수도 보이지 않고요.
중위권 싸움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5할 승률 사수 전략으로 3승 3패를 기대해 봅니다만, 과연 3승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중위권 싸움을 유지하게 될 지, 아니면 호흡기를 떼고 그냥 내년을 기약하게 될 지를 가늠하는 한 주가 될 것 같습니다.

선수들이 더운 날씨에 부상없이 잘 이겨내기를 바라며, 퐈이팅 허슬~두!

2023/08/13

로켓맨 1~10 - 카토우 모토히로 : 별점 2점

로켓맨 10 - 4점
카토우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만화)

중학생 미즈나시 요우는 정보상 R의 일을 돕게 된다. 어린 시절 잊어버린 기억을 찾기 위해서였다. 악당인줄 알았던 R은, 알고보니 스스로 로켓을 만들어서 우주로 가려는 꿈을 이루려 정보를 팔아 돈을 모으고 있었다.
R은 자기 사건을 도와준 댓가로 요우의 과거에 대한 정보를 전해주지만, 요우의 과거는 R이 속한 정보조직 T.E의 핵심 비밀 슈타지 파일과 관련된 중요한 비밀이었다. 파일은 오래전, 요우의 어머니가 가지고 사라진 채였다.T.E의 우두머리 아이에네스의 명령으로 R과 싸워 이긴 요우는 R의 로켓을 대신 맡아 완성하는 조건으로 조직에서 일하게 되었다.

Q.E.D로 유명한 카토 모토히로의 초기 옴니버스 연작 단편 모험물.
Boy meet a Rocket man이라는 부제처럼, 로켓을 만들어 우주로 가려는 남자 R과 만난 왕따 소년 요우의 모험과 성장이 핵심입니다. 초, 중반부까지는 R과 엮여 R이 속한 조직인 T.E의 에이전트가 된 요우가 이런 저런 사건들을 맡아 해결하는 단편 옴니버스물입니다. 여러가지 사건들이 등장하는데 추리적으로 괜찮은 에피소드들이 눈길을 끕니다. 특히 밀실 트릭 두어가지는 꽤 잘 만들어졌습니다. 아래와 같이 문이 잠겨진 '느낌'을 전해주는 장치 트릭은 상당히 그럴듯해 보였습니다.
자살하는 사람이 안경테의 다리를 쏘았을리 없다는 점에 착안해 일종의 밀실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도 좋았고요.
Q.E.D 작가답게 과학과 트릭을 결합한 이야기도 있는데 나쁘지 않았습니다. 유전 아래에 사는 외딴 마을 사람들이 몰살당한 사건의 원인을 파헤치는 이야기로, 유전에서 이산화탄소를 물에 녹여 배출하다가 의도치않게 유출 사고가 났다는걸 설득력있게 잘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Q.E.D 비슷하게 여러가지 정보를 알려주는 학습 만화로서의 가치도 있습니다. 중요한 '정보'를 판매하는게 주 업무인 덕분이지요. 그래서 당대 세계 정세 및 주요 사건에 대한 언급도 많습니다. 인상적이었던건 20여년 전 작품임에도 아직 현재 진행 중인 이슈들이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블러드 다이아몬드, 그리드 컴퓨팅을 활용한 해킹,수정란 밀매 등이 그러합니다. 무기 상인들의 행각이야 지금도 현재진행형이고요.

중, 후반부는 R이 로켓을 만들어 우주로 가려는 이유와 T.E라는 조직에 얽힌 수수께끼를 알려주는 긴 호흡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결국 T.E와 거대 무기 거래 조직 도미니온 재단 사이에서 전면전이 벌어지고요. 그러나 전개와 설정 모두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일단 수수께끼부터 살펴보면, 도미니온 재단은 과거 자동 무인 레이저 공격용 위성을 팔려고 했습니다. 기술이 아직 완성되지 못했는데 말이죠. 소련이 붕괴하고 냉전이 끝나던 시점이라 더 늦어지면 판매가 불가능해 질 수 있었기 때문에 도미니온 재단은 사람을 위성에 남겨두고, 자동화 위성인 것처럼 속이는 쇼를 벌였고 그 사람은 다시 데리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게 R의 부친이었고요. 이 사실이 알려지면 큰 스캔들이 될게 뻔하니 필사적으로 숨기려 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킨 전쟁 무기 상인이 한 명의 우주인을 위성에 남겨둔게 뭐가 그리 큰 스캔들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유해를 찾기 위해 우주로 가려는 R과 T.E를 저지하기 위해 희생시킨 군인들 수가 훨씬 많아요. 그 희생은 왜 괜찮은걸까요?
이외에도 설득력 부족한 설정은 많습니다. 하긴, 애초에 13살 중학생인 미즈나시 요우가 T.E의 에이전트가 된다는 설정부터가 억지스러우니 더 말해 무얼하겠습니까.... Q.E.D의 토마는 MIT를 조기 졸업한 천재이고, 친구 중 한 명은 거대 IT 재벌 총수인 등 인맥도 화려합니다. 본인의 재산도 많다고 설명되고요. 하지만 미즈나시 요우는 학교에서조차 왕따를 당하는 평범 이하의 중학생입니다. 어머니가 T.E의 S급 요원이었고, 요우도 자질이 있다는 식으로 설명하지만 Q.E.D와 비교하면, 지나치게 아동향이라는 티만 물씬 났습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도미니온 재단에서 다른 위성을 구입해서 원래 위성에 추돌시킨다는 계획은 참고 보아온 독자의 의식을 아득하게 날려버립니다. 그게 가능했다면 애초에 T.E와 전투를 벌일 이유도 없습니다. 진작에 추돌시켜서 위성만 날려버렸으면 됐잖아요? 여태까지의 전투와 작전은 모두 헛짓거리였습니다!
아울러 도미니온 재단이 고용한 3인의 킬러 프랙탈, 제로, 인피니티와 아이에네스를 지키는 수호자 지하에 대한 설정은 지극히 유치했습니다. 프랙탈과 지하가 총기가 널린 전쟁터에서 칼과 기묘한 와이어로 사투를 벌이는 장면은 헛웃음이 나올 정도였어요. 이 장면을 포함한 마지막 대결전은 이 작가가 액션 연출과 묘사에는 정말 재능이 없다는걸 깨닫게 해 주더군요.

그래서 별점은 2점. 10권 정도로 연재가 마무리된 이유를 충분히 알 수 있었던 평균 이하의 작품이었습니다. 절판된 탓에 중고 가격이 어마무시한데, 그 가격에 걸맞는 가치는 없습니다. Q.E.D에서 활용하면 더 좋았을 트릭이 아까울 따름입니다.

2023/08/12

철교 살인 사건 - 로날드 녹스 / 김예진 : 별점 2점

철교 살인 사건 - 4점
로날드 녹스 지음, 김예진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진범,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패스턴 오트빌에서 골프로 친해진 4인방은 어느날 라운딩 중 시체를 발견했다. 피해자는 골프 클럽 멤버 중 하나인 브라더후드로, 파산한 뒤 도주하다가 기차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것 같았다.
사체에 여러가지 수상한 점 - 모자가 시체 옆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점, 시계를 두 개나 들고 있었던 점, 소지하고 있던 이상한 메모 등 - 이 있었기 때문에, 4인방 중 전 군사정보부 소속 군인이었던 모던트 리브스는 고든과 함께 사건 수사에 뛰어들었다. 
메모의 기묘한 숫자가 암호라는건 알아냈지만, 열쇠가 될 책의 확보에는 어려움을 겪던 중, 또다른 골프동료 카마이클이 브라더후드와 대브넌트가 동일인물이라는 대담한 추리를 내 놓았고, 뒤이어 리브스의 방에 비밀 통로가 있다는 것까지 꿰뚫어보았다. 비밀 통로에 숨어 있던건 바로 대브넌트였다!

'녹스의 십계'로 유명한 추리 작가 로널드 녹스의 장편. 제목 그대로 철교에서 떨어진 사체에 대해서 등장인물들이 여러가지 추리를 펼치는 고전 본격물입니다. 리브스, 고든, 카미이클과 매리어트 4인방이 각자의 추리를 추리쇼처럼 선보이는데 상당히 논리적이며, 중간중간에 기차 시간표를 이용한 알리바이 트릭 등 볼거리도 많습니다. 몇 대 없는 기차를 가지고도 시간을 잘 이용해서 그럴듯한 트릭(?)을 만들어 낸 솜씨는 확실히 비범했어요. 단서들 역시 공정하게 제공되는 편이고요.

탐정인양 사건에 뛰어들어 이상한 단서들에 대한 조사 결과를 공유하고, 남겨진 메모가 암호라는걸 알아내는건 모던트 리브스인데, 브라더후드와 대브넌트가 동일인물이라던가, 리브스 방에 누군가 침입해서 암호문을 훔쳐간건 비밀 통로를 통해서였다는 등주요 추리를 내 놓는건 카마이클이라는 캐릭터 설정도 재미있었습니다거든요. 이 중에서도 리브스 방에 어떻게 침입했는지를 껌으로 알아내는 장면은 백미였습니다.
리브스도 데브넌트가 체포된 후, 렌들스미스 양의 꼬임(?)에 넘어가 그가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추리를 펼친다던가, 4인방 중 한명인 목사 매리어트가 범인일거라는 대담한 추리를 선보이기는 합니다만, 두 가지 추리 모두 무리수가 많다는 점에서 카마이클의 상대는 아니었습니다.

추리와 함께 선보이는 영국식 유머도 재미납니다. <<사키>>같은 유머 소설을 읽는 느낌이었어요. "두 번째 문단에서 특정 지역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 작가는 결코 신뢰해서는 안 된다.", "자넨 아일랜드 인이 평범한 의문문에 '예'나 '아니오'로 대답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르나?", "캐디들이 어떤 부류의 인간인지 잘 알잖나. 그런 일을 하다 보면 도덕의식이 결핍되는 법이지." 등 영국 부르주아들의 고집과 편견(그리고 싸가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골프에 미친 사람들에 대한 묘사도 신랄합니다. 클럽 멤버였던 브라더후드 장례식 순간에도 "오후 라운드를 돌아야 하니까 시간을 맞춰달라"고 요구한다던가, "땅을 공 치기 좋은 곳과 나쁜 곳으로밖에 평가하지 않는다"는 등으로요. 심지어 리브스는 매리어트가 범인이라고 주장하다가 큰 실수를 할 뻔 한 뒤, "미래의 나를 골프에 바치려고, 골프만 할 거야. 오로지 골프." 라고 말하기까지 하는데, 이 정도 되면 유머인지도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지금 읽기에는 확실히! 낡은 소설임은 분명합니다. 핵심 줄거리가 모호해서 소설적인 완성도도 낮고요. 전개 과정에서 작위적인 요소도 많습니다. 갓 조사를 시작한 아마츄어 리브스와 고든이 온갖 중요한 단서들을 발견한다는게 대표적입니다. 렌들스미스 양이 피해자 브라더후드의 숨겨진 부인이며, 데브넌트가 그녀를 흠모하고 있었다는 인물 설정도 지금 읽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낡아 빠졌어요.
 쓸데없는 이야기도 너무 많습니다. 앞서의 영국식 유머도 재미있다고 했지만, 너무 과했습니다.
추리적으로도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단서를 그러모아 공들인 추리를 펼친다기보다는 그냥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서 하나씩 툭 툭 던지는 느낌이에요. 별다른 근거없이 각자 그럴듯한 가정을 이야기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기차 시간표를 이용한 추리들도 재미있다기 보다는, 그냥 기차 시간표가 있어서 내 놓는 아이디어에 불과해 보여요. 복잡하기만 할 뿐 작품에 잘 녹아들어 뭔가 재미를 가져다 주지는 못합니다.
데브넌트가 범인이라는 진상도 좀 어이가 없었어요. 일단 범행의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데브넌트는 암호로 된 협박문을 보낼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브라더후드가 파산한건 명백한 사실이라 그가 자살했을 수도 있다는 가정은 여전히 유효하고요. 그래도 데브넌트는 동기도 확실했고 행적도 수상했던건 맞습니다. 그래서 그가 체포된 시점에서 이야기는 끝난거나 다름없어요. 매리어트 범인설과 같은 황당한 추리는 무의미한 사족이었습니다.
추리쇼 중심이라 드라마도 별 재미가 없습니다. 중간에 리브스와 고든이 함께하는 비밀통로 탐색, 이후 도주하는 데브넌트 추격, 마지막에 매리어트가 범인인지 알아내기 위해 리브스 방으로 유인한 뒤 이를 몰래 지켜보는 장면 정도에서만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별점은 2점. 알려지지 않았던 옛 고전을 알게 되었다는 기쁨은 크지만, 시대를 뛰어넘을만한 걸작은 아니었습니다. 잊혀진 작품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요. 딱히 권해드리지는 않습니다.

2023/08/11

오늘도 냠냠냠 1 - 조경규 : 별점 2.5점

오늘도 냠냠냠 1 - 6점
조경규 지음, 방현선 사진/송송책방

<<오무라이스 잼잼>>으로 유명한 조경규의 음식점 소개 만화. 한겨례에서 연재되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본인과 아내 등 가족인 점, 소소한 일상 이야기라는건 <<오무라이스 잼잼>>과 거의 흡사합니다. 그러나 가족과 일상 이야기, 그리고 요리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인 <<오무라이스 잼잼>>과는 다르게, 가게와 주요 요리 소개에 충실하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1권에서는 전부 17곳의 음식점이 소개됩니다. 내용은 연재물과 동일하지만, 만화에서 소개되었던 가게와 대표 요리 사진이 부록처럼 수록되어 있고요. 이런 점도 <<오무라이스 잼잼>>스럽네요.
맛집 소개 기준은 4화에 따르면
  • 자주 가는 식당
  • 가만히 있다가 문득 생각나 가곤 하는 집
이라고 합니다. 맛집을 알게 된 경로는
  • 아버지 어머니와 어려서부터 함께 가던 집
  • 친구,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집
  • 책, 잡지, 신문 등 종이에 인쇄된 정보를 통해 특히 20년 이상 오래 된 맛집 가이드북을 좋아함. 지금 없어진 집도 많지만, 지금까지 남아 있으면서 변함없는 음식을 내놓고 있다면 분명한 맛집이기 때문.
  • TV 보다가 못 참고 달려간 집
이고요.

이 기준에 걸맞게 오래된 가게가 대부분입니다. '태극당'과 '명동 교자'는 저도 친숙한 곳이에요. '김진환 제과점'은 학교다닐 때 막 유명해지기 시작한 곳이었는데 소개된걸 보니 반갑더군요 (식빵만 팔 때 가봤음). 여기 갔다가 근처에 있던 헌책방 '숨어 있는 책'에 들리는 코스가 딱이었지요.

안 가본, 모르는 가게도 많은데 그 중에서도 7화의 '무교동 북어국집'은 한 번 가보고 싶어집니다. 사골 육수에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는 북어국이라니, 너무 맛있을것 같아요. 아래와 같이 밥 반공기에 계란후라이 반숙과 새우젓 조금 넣은 비빔밥도 신기했고요. 무슨 맛일까나.....


8화의 관훈동 솥밥집 '조금'은 얼마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가서 전시를 관람했을 때 가 볼걸 그랬네요. 다음에 가족들과 꼭 찾아가봐야겠습니다.

그런데 아쉬웠던건 저자가 자주가는 노포 위주라 주로 서울 강북 - 마포, 종로, 중구, 서대문구 등 - 에 위치한 가게가 많다는 점입니다. 다른 장소에 있는 가게는 압구정과 화곡동 두 곳 뿐이더라고요. 또 냉면집, 만두집과 탕국집이 많은 것(대략 10곳)도 다양성 측면에서는 아쉬웠고요.
오무라이스 잼잼처럼, 인터넷 연재물로 접한 독자가 책을 따로 구입해서 읽을만한 가치도 찾기 힘듭니다. 고작 한, 두 페이지 추가된 사진만으로는 부족했어요. 16,000원에 180페이지에 불과한 가성비를 생각하면 더더욱 말이지요.

그래서 별점은 2.5점입니다. 좋은 정보들을 특유의 푸근한 만화로 알려주는건 좋았지만, 인터넷으로 보아도 충분합니다. 구태여 구입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2023/08/09

존 윅 파라벨룸 (2019) - 채드 스타헬스키 : 별점 2점

2편에서 성역에서 살인을 저지른 탓에 쫓기게 된 존 윅이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싸움을 그린 작품. 넷플릭스에서 감상했습니다. 1편부터 3~4년 터울로 보고 있는데, 정작 이야기는 약 일주일 사이에 벌어졌다는게 재미있더군요.

스타일리쉬한 액션과 함께 킬러들에 대한 이런저런 설정 덕분에 큰 인기를 끌어 시리즈로 만들어지기는 했는데, 3편쯤 되니 확실히 재미가 떨어집니다.
일단 액션이 실망스러웠습니다. 타격기 위주의 맨몸 액션이 너무 많았던 탓입니다. 키아누 리브스는 <<매트릭스>>로 알 수 있듯이 원래도 이쪽 액션은 그닥이었지만, 지금 나이로 이런 액션은 완전 무리였어요. 확연히 느리고 굼떠 보였습니다.
그나마 날붙이 액션들은 그래도 좀 낫긴 했습니다. 그런데 필요 이상으로 잔인했다는건 이 시리즈의 정체성이니까 그렇다쳐도, 아래의 언터처블의 명대사처럼 애초에 총이 있는 싸움판에 칼을 들고 오는게 말이 안되잖아요? 이탈리아 놈도 아니고요. 하긴 개연성을 논할 이유가 없는 영화이기는 합니다만....
Isn't that just like a wop*! Brings a knife to a gunfight!
이런 멍청한 이탈리아 놈 같으니! 총싸움에 칼을 가져오다니! 
최종 보스격인 마크 다카스코스가 맡은 킬러 '제로'도 액션 외에는 영 별로였습니다. 시종일관 지나치게 가볍고 경박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인기의 가장 큰 요인인 설정도 3편쯤 되니 헛점이 눈에 많이 뜨이네요. 최고회의 명령보다 앞서는 약속과 맹세가 난무하는데, 이래서야 설정이 잘 짜여졌다고 할 수 없지요. 윈스턴이 일종의 반란(?)을 일으켰다가 거래를 통해 자기 자리를 다시 찾는 결말도 뜬금없습니다. 위원회는 윈스턴과 거래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윈스턴에게 남은 부하라곤 카론과 존 윅 밖에 없으니까요. 그리고 이런 선례를 만드는건 조직에 좋은 영향을 끼칠리 만무합니다. 배신자는 죽음으로 다스리는게 당연해요.
존 윅의 행동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윈스턴을 죽이고, 조직의 개로 살인을 저지르면서 살아갈 것인가?와 친구 윈스턴과 함께 조직 사람들을 죽이며 살아갈 것인가? 에 대한 양자택일인데, 윈스턴을 죽이는거 말고는 별 차이가 없어 보이거든요. 윈스턴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기는 하지만, 덕분에 마지막에 거하게 배신당하기도 하고요. 마지막 윈스턴의 배신도 여러모로 납득하기는 힘들었어요.

개들과 함께 했던 총격전 정도만 기억에 남네요. 별점은 2점입니다. 4편에서 완결이라니 다행입니다.

2023/08/08

2023.08.01 ~ 08.06 두산 베어스 감상



주중 한화 - 주말 KT / 원정 - 홈 6연전
성적 : 3승 3패
 
좋았던 점
견고했던 선발진 (곽빈 14이닝 4실점, 최원준 5이닝 무실점, 알칸타라 6이닝 2실점, 브랜든 7이닝 무실점)
허경민, 김재호, 정수빈 선수의 되살아나는 타격 감각

나빴던 점
부활이 요원해 보이는 김재환 선수의 깊은 부진.

총평과 이번주 예상 (혹은 기대)
오랫만이네요. 11연승 뒤 5연패의 부침을 겪고 우취도 많아서 몇 주 쉬었습니다. 특히 LG한테 스윕패를 당하고나니 글을 쓰기가 싫어지더라고요. 저는 꼴찌를 해도 LG를 이기는게 더 좋습니다...
 
하여튼, 지난 주는 기대는 4승 2패였지만, 3승 3패도 나쁘지 않은 결과라 생각합니다. 패배한 경기도 크게 무너지지 않았으며, KT의 저승사자 고영표 선수 선발 경기에서의 패배는 어차피 예견된 일이기도 하고요. 다행히 연패 당시 흔들렸던 선발진도 다시 안정을 찾은 느낌입니다. 이승엽 감독이 크게 이기거나 지는 경기를 활용하여, 필승조에게 최대한 휴식을 주면서 운영하는 모습도 마음에 들고요. 버티기만 해 주면 되는 역할도 잘 못하는 몇몇 선수들 - 이형범, 박정수 선수 등 - 이 문제이기는 한데, 이병헌 선수 등을 활용하여 관리하면 괜찮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타선은 문제네요. 출루는 꾸준히 하는데 후속타가 불발인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찬스에 약한건 상, 하위 타선을 가리지도 않더군요. 양의지 선수가 포수 마스크를 쓰지 않을 때는 포수 포지션에서 공격력이 더 크게 떨어지기도 하고요.
가장 큰 문제는 출루도 기대가 안되는 김재환 선수입니다. 삼진이 많아도 한 방은 터트려줘야 타선에 숨통이 트일 텐데, 도무지 배트에 맞지도 않네요. 김재환 선수 FA 계약은 실수라는 글을 올렸던 적이 있는데, 예상대로 흘러가는 것 같군요. 왜 슬픈 예감은 틀리지가 않는지....

그래도 3승 3패는 괜찮습니다. 5위라는 순위도 나쁘지 않고요. 몇 주 전에도 썼지만 야구는 투수 놀음이고, 선발이 가장 중요한 만큼, 앞으로도 5할 승률만 유지해도 가을 야구는 충분하리라 생각됩니다.
이번 주는 삼성과의 홈, 한화의 원정 경기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선발은 최승용 - 알칸타라 - 김동주 - 브랜든 - 곽빈 - 최원준(?) 선수 순서로 등판할 것으로 보입니다. 
삼성은 LG에게도 위닝 시리즈를 거둘만큼 여름부터 상승세이며, 최채흥, 원태훈, 뷰캐넌과 한승혁, 문동주, 산체스로 이어지는 상대 선발진도 부담스럽습니다만 다행히 계투진은 아직까지는 두산이 우위라 생각되며, 지난주 소모도 비교적 적었습니다. 양의지 선수와 최원준 선수가 별탈없이 돌아오면 해볼만합니다. 최소 4승 2패를 기대해봅니다. 양의지 선수 부상이 어떤지 모르겠는데 무리하지 말고, 지더라도 체력을 아끼며 다음 경기를 대비하면 좋겠네요.
 
키 플레이어는 첫 경기에 나설 최승용 선수를 꼽습니다. 중간 계투로는 견고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선발 복귀전에서도 씩씩하게 던져주기를 바랍니다. 김재환 선수? 솔직히 기대가 안되네요. 김인태 선수를 선발로 기용하는게 나아보입니다.

2023/08/06

'동산 박주환 컬렉션 특별전' 관람

지난 달의 '젊은 모색 2023' 전시회에 이어, 이번 달에도 국립 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는 전시회를 관람하였습니다. '동산 박주환 컬렉션 특별전'입니다.
동산방화랑의 설립자 동산 박주환이 수집하고 그의 아들 박우홍이 기증한 작품 209점 중 90여점을 선별하여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재조명하고 있는 전시입니다.

주로 한국화 중심으로, 근대에서 현대까지의 한국화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남종 화단의 명맥을 이었다는 허백련의 그림을 비롯하여 김은호, 이상범, 박승무, 이용우, 최우석 등의 산수화나 매화도 등은 익히 알고 있던 조선시대의 그림 바로 그것입니다.
노수현의 <<추경>>은 공들인 인왕산의 바위 암벽 묘사가 굉장히 인상적인 작품이었어요.
근대 회화라 그런지, 의외의 디테일도 재미있었습니다. 아래의 이용우의 작품 속 작은 인물과 같이요. 이런 디테일들이 쌓여 다름 단계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렇게 나무들을 '마계'의 식물들처럼 묘사한 이유가 조금 궁금해지더군요. 이용우의 작품 외에도 아래와 같이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마계의 식인 식물같은 나무들이 눈에 뜨였거든요. 조금 손을 대고 가공하면 현대적인 게임 일러스트로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준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근대 초기를 넘어, 중기 이후 작품들이 이어지는데 가장 마음에 들었던건 운보 김기창의 <<매>> 였습니다. 상당히 큰 그림인데, 먹의 농담만으로 표현된 배경, 큰 붓의 움직임으로 표현한 나무와 깃털, 거기에 엄청나게 디테일한 매의 얼굴 묘사가 잘 어우러지는게 아주 멋졌습니다. 거장이 왜 거장인지를 알려주네요.
운보 김기창이 아니더라도, 아래와 같이 디테일한 부분에서 서양화에 뒤지지 않는 작품들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한국화의 저력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어요.
한국 전쟁 이후, 현대로 접어들면서는 서양화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도 많이 등장합니다. 동양화의 번짐과 같은 효과로 원근법, 일렁이고 출렁이는 물과 바람을 표현한 아래의 작품들은 한국화임에도 굉장히 현대적으로 보입니다.
현대적인 한국화라면 빼 놓을 수 없는게 아래의 <<신몽유도원도>>였습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현대적으로 재 해석한 작품이라는데 마크 로스코의 작품에 뒤지지 않는 원색적이면서도 오묘한 색 표현이 아주아주 빼어나다고 생각되거든요. 영화 <<바비>>에 등장해도 어색하지 않을, 핑크핑크하면서도 현대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상당히 유명한 시리즈라는게 충분히 이해되더라고요. 저도 한 점 걸어두고 싶을 정도였어요.
전형적인 산수화 스타일이지만 거친 마띠에르를 느낄 수 있는 <<북한산>>도 또 다른 현대적 한국화이면서도, 제 마음에 쏙 든 작품입니다. <<신몽유도원도>>가 다소 여성적이라면, 굉장히 남성적인 작품이라서 두 작품을 같이 전시하면 여러모로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외에도 좋은 작품들이 많아서 굉장히 눈이 즐거웠던 전시였습니다. 한국화에 애정이 깊은 컬렉터가 엄선하여 수집한 작품들이라 그런지, 확실히 남다른 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다만 딱 한가지, 한국화임에도 불구하고 액자로 설치된 작품이 많았다는건 좀 아쉬웠습니다. 아무래도 조명이 반사되는 탓에, 온전히 그림을 감상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다음에는 유리없이 감상하고 싶네요.

2023/08/05

하얀 마물의 탑 - 미쓰다 신조 / 민경욱 : 별점 2.5점

하얀 마물의 탑 - 6점
미쓰다 신조 지음, 민경욱 옮김/비채

<<아래 리뷰에는 진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주에서 대학을 졸업한 모토로이 하야타는 2차대전에 해군으로 참전 후 등대지기가 되었다. 해군 시절 등대의 중요함을 느꼈던 탓이었다. 양성학교를 거쳐 첫 부임한 곳은 간토의 다이코자키 등대였다. 그곳에서 자살하려는 소녀를 구해주는 등의 경험을 겪고 2년 후, 도호쿠 지방에 있는 고가사키 등대로 전근이 결정되었다.
어선으로 고가사키 등대에 접근하던 하야타는 등대에서 이상한 햐얀 형체를 목격했다. 어부가 직접 상륙을 거부한 탓에 등대 아래 아지키 마을에서 육로로 이동해야 했다. 고용한 안내인 모스케가 사라져서 홀로 출발한 하야타는 숲길에서 무언가가 자신을 쫓는걸 알아채고 서두르다가 길을 잃고 말았다. 해까지 진 상태에서 발견한 민가는 기묘하게 생겼고 무척 낡았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마을 사람들이 '하얀집'이라고 부르며 피해가라고 했던, 시라가미를 모시는 무녀의 집이었다. 가면을 쓴 무녀와 손녀가 살고 있었는데 하야타는 친절한 손녀 하쿠호의 도움으로 하룻밤을 보낸 뒤, 그녀에게서 받은 부적 덕분에 무사히 등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등대에는 아무도 없었고, 밤이 되어서야 등대장 이사카를 겨우 만날 수 있었다. 하야타를 찾으러 숲에 갔다왔다고 한 이사카는 하야타가 겪었던 일을 듣고,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해주었다. 다이코자키에서 자살하려는 소녀를 구해주었었고, 고가사키 상륙 전에 하얀 형체를 목격했었고, 숲 길로 이동하다가 무녀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냈었다는 등 하야타와 거의 똑같은 이야기였다.
등대장의 회고는 마을 신주의 딸 미치코와 사랑에 빠져 야반도주하듯 홋카이도로 전근을 갔는데, 딸은 신주가 부리는 시라몬코에게 납치되어 사라졌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하야타는 자신의 경험담을 합리적으로 해석한 뒤, 이사카의 아내 미치코는 마을 신사 신주의 딸이 아니라 하얀집의 딸 시라쓰유였다는 것까지 밝혀내는데....


"불가해한 일을 겪을 때는 합리적인 해석이 중요하다."

미쓰다 신조의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 두 번째 작품. 신간 코너에 있길래 시리즈인줄 모르고 별 생각없이 집어들었는데, 읽다보니 시리즈더라고요. 다행히 첫 번째 작품은 읽지 않았어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전혀 지장은 없었습니다.

작품은 작가의 다른 작품인 <<사관장>>과 비교적 흡사합니다. 시골 마을에서 대대로 전승되는 무속 신앙과 그들이 부리는 신(?)에 관련된 기묘한 능력, 그것에 얽히게 된 민간인이라는 핵심 소재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등장인물이 무녀와 연을 맺는 전개와 사람들이 겪는 기현성이 '하얀색'이라는 것도 유사하고요.
하지만 주인공 모토로이 하야타의 존재가 결정적 차이를 만듭니다. 그는 모든 현상을 '합리적'으로 보려고 노력하거든요. 그래서 온갖 기현상에 대한 나름의 추리를 펼칩니다. 이게 꽤 그럴싸해서 재미있었어요.
 
우선 '세기의 미스터리' 중 하나로 유명한 아일린모어섬 등대 사건부터 자신만의 해석을 내 놓습니다. 등대장인 마셜이 미쳤다는 것이지요. 실제로는 폭풍우가 오지 않았지만 일지에 폭풍우가 덮쳤다고 적혀있던건 마셜의 심리 상태를 나타내고, 부하 중 듀커가 '화를 냈다'는건 마셜이 미쳤기 때문에, 그리고 듀커가 '여전히 조용했고' 맥아더가 '기도했다'는건 마셜이 듀커를 죽여서 맥아더가 기도했다고 추리합니다. 실종의 진상은 마셜이 비옷과 장화를 신고 듀커의 시체를 버렸는데, 그걸 안 맥아더가 비옷과 장화를 신고 뛰어나와 말리다가 둘 다 물에 빠져 죽은 것이고요.
홀로 숲 길을 해메던 하야타를 추격했던 하얀 괴물체에 대한 추리도 합리적이었습니다. 길 안내를 부탁했던 모스케라이며, 슬쩍 수풀 사이로 본 거대한 하얀 형체는 모스케가 짐을 나르며 짐 위에 덮어놓았던 흰 천일거라는 추리죠. 하야타가 마을 여관의 딸 기리에와 사이가 좋은걸 봤기 때문에 질투심으로 저지른 일종의 장난(?)이라는 동기까지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밤에 돌을 던지고, 다음날 등대로 향할 때 숲 속에서 하야타를 포위했던건 원숭이들이었을거라는 추리도 괜찮았고요.
자료 조사도 충실해서 등대의 역사 등 온갖 정보들도 가득한데, 그 중에서도 오사카 케이키치 등대 소설을 읽는 묘사는 반가왔습니다. <<등대귀신>>은 <<등대귀>>라는 제목으로 읽었었던 적이 있지요. 다른 작품들도 언급되는데 어떤 작품일지 궁금해집니다.

하지만 전개는 다소 지루한 편입니다. 모토로이 하야타가 고가사키 등대로 향해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게 거의 1/3 지점일 정도거든요. 하야타의 과거라던가, 신념에 대한 묘사, 그리고 등대의 역사 등 관련 자료가 너무 많이 등장하는 탓입니다. 작품과는 별 상관이 없는데 말이지요.
또 합리적으로 모든걸 설명하려고 했으면 그렇게 모든걸 설명해 주었어야 했는데,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너무 많습니다. 이사카 부부는 유령(?)이었다는 결말은 어처구니를 상실케하며, 이사카 부부와 다른 등대지기 하마치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애초에 이사카가 고가사키로의 전근을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인지 등은 아예 설명이 되지 않아요.
그 외에도, 하얀 집과 마을과의 관계처럼 설명되지 않는게 너무 많았어요. 한 때는 그 집에서 출산을 했다고 하는데, 불길하게 여기는 집에서 왜 출산은 했을까요? 출산을 앞 둔 임산부가 가기에는 너무 험한 산길로 보이는데 말이지요. 좋은 일은 마을 신사에, 나쁜 일은 하얀집에 기원한다는 설정도 잘 와 닿지 않았습니다. 좋고 나쁨의 구분 자체가 애매하잖아요. 예를 들어, 먼 곳에 있는 가족에게 선물을 보내기 위해 시라몬코를 이용하면 안되는 걸까요?
등대에서 보이던 하얀 형체가 하얀 집의 딸 하쿠호 (이전에는 시라쓰유)의 하야타 (이전에는 이사카)를 향한 연심이라는 해석도 별로였습니다. 그리고 그 해석이 맞다면 하얀 형체는 이사카와 하야타에게만 보였어야 했습니다. 시라쓰유, 하쿠호의 연심은 그들이 자살하려 할 때 구해주었던 젊은 등대지기에게 향해 있었으니까요. 즉, 마을 어선 선장이 '하얀 사람'을 볼 수 있었다 한 들, 그걸 목격했다고 등대 상륙을 거부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얀 사람'이 귀신을 볼 수 있는 모두에게 보인다면, 그걸 '연심'이라고 하기도 힘들테고요. 무언가에 대한 집착이 구체화된다는 해석이었다면 말은 되었겠지만 그런 설명은 없습니다.
이런 경험에 진절머리가 난 하야타가 등대지기를 그만둔다는 결말도 영 아니었어요. 물론 하야타가 하쿠호의 사랑을 받아줄 리는 없지요.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도 없이 유령이 되어버린 이사카 부부를 봤으니까요. 하지만 작중 묘사를 보면 하얀 집의 무녀는 시라몬코를 부려 일본 각지를 조사하고, 심지어 아이를 납치할 수 있기까지 합니다. 그렇다면 등대지기를 그만 둔 걸로 하쿠호에게서 벗어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하쿠호에게 누군가 다른 남자가 희생양이 되기 전에는 말이지요. 하쿠호에게 희생양으로 모스케라도 던져주는게 바람직했습니다.

이렇게 설명이 부족하고 결말이 대충이라는 점에서는 완성된 소설보다는 괴담에 가까왔던 작품입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시리즈 1편인 <<검은 얼굴의 여우>>는 추리물이라고 하는데, 1편이나 읽어봐야겠습니다.

2023/08/04

미궁 - 나카무라 후미노리 / 양윤옥 : 별점 2.5점

미궁 - 6점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놀
<<아래 리뷰에는 진범과 트릭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가토 변호사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신견은 바에서 만난 여자와 하룻밤을 보낸 뒤, 여자와 같이 살던 남자를 쫓는 탐정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여자가 22년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일가족이 살해당한 히오키 사건 (일명 '종이학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였던 딸 사나에라는걸 알게 되었다. 신견은 히오키 사건을 개인적으로 수사해나가면서, 극복해낸줄 알았던 자신의 어두움에 또다시 함몰되어 가기 시작하는데....

<<쓰리>>로 유명한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작품.
종이학 사건이라는 불가능 범죄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추리 소설로 볼 수도 있습니다. 
사건에서 밝혀지지 않은 점은 아래의 두 가지입니다.
  1. 피해자인 아버지와 아들을 구타하고 피부조각을 남긴 왼손잡이 남자는 완벽한 밀실 상태의 집에 어떻게 침입해서 어떻게 사라졌는지.
  2. 다소 강박적이었던 아버지 다케시는 모든 출입구와 창문에 설치했던 방범 카메라를 설치했는데, 사건 당일 다케시가 집에 돌아온 장면은 찍혀있지 않았고 신발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다케시는 어떻게 집 안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는지.
이 두 가지 수수께끼의 답은 하나입니다. 뒷문 방범 카메라가 실제로 촬영하는게 아니라, 원래 녹화된 파일의 날짜만 변경되도록 조작되었던 것이죠. 의처증이 심해진 남편 다케시가 모든걸 감시하는 탓에 가족들 심리가 서서히 붕괴하자, 이를 참지 못했던 아내 유리의 행동이었습니다.
이와 맞물려 가정 분위기를 견디지 못해던 딸 사나에가 뒷문을 몰래 열어두었습니다. 빈집털이가 기승을 부린다는 뉴스를 보고요. 예상대로 빈집털이는 집에 침입해 부모를 결박했는데, 빈집털이가 돌아간 뒤 부모를 증오하던 아들 다이치가 부모를 살해했고말았습니다. 하지만 빈집털이가 되돌아왔고 - 아마도 유리의 미모에 혹해서 -, 다이치가 덤벼들자 그를 구타하고 도주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이치가 죽기 위해 독극물을 마신 뒤, 사나에가 부모가 묶였던 줄 등의 증거를 태운 뒤 집 밖으로 가져나가 (물론 뒷문으로) 인멸했던겁니다.
사나에의 고백이 전부라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꽤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앞서 관계자가 말했던 공범자 설이라던가, 어른이 관절을 빼고 좁은 창문으로 들어와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추리보다는 훨씬 낫더군요.
이후 신견이 사나에와 동거하며 스스로 추리해내는 또다른 진상 - 아마도 더 사실에 가까울 - 도 괜찮았습니다. 신견은 어린 아이가 오빠가 달라는 독약을 가져다 주고, 증거를 인멸한건 이상하다며 일종의 리허설이 있었을거라 추리합니다. 다이치가 가져다 달라고 했던건 그 전에도 스트레스가 심할 때 먹었던 수면제였을거라면서요. 즉, 사나에가 오빠를 살해했다는 거지요.

묘사도 빼어납니다. 특히 사라진 줄 알았던 R이 다시 등장하여 신견이 서서히 폭주해나가는 과정, 그리고 사나에 가정이 붕괴되는 과정 등 극한 상황으로 빠져드는 과정이 아주 실감납니다. 신견의 심리 묘사도 탁월하고요. 아쿠타카와 상을 수상한 작가다운 필력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런 전개 과정에서 신견이 자기 머리 속에 R이라는 범죄자같은 인격을 품고 있었다는 중2병스러운 설정을 비교적 적절한 복선으로 사용하고 있는게 좀 놀라왔습니다. 마음이 병들어 있던 사나에가 그런 신견을 중학생 때 보고 관심을 가진게 지금 시점에서 둘이 만나게 된 계기였다고 하거든요. 이런 사소한 디테일이 잘 짜여져 있다는 느낌을 전해주는 것 같아요.

그러나 문제가 없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경찰이 뒷문 방범 카메라가 조작되었다는걸 눈치채지 못했다는건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무려 3명이나 되는 가족이 살해당한 강력 사건인데 , 이렇게 허술하게 수사가 이루어졌다는건 납득하기 힘들죠. 정신과 의사가 다이치가 치료 중 그렸던 그림과 공작이 사건 현장과 동일하다는, 즉 다이치가 범인이라는 명백한 증거를 숨기고 있었던 이유도 석연치 않고요.
또 추리, 범죄물을 기대하고 읽는다면, 다소 지루합니다. 추리, 범죄물보다는 심리 묘사에 중점을 둔 범죄 드라마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제 별점은 2.5점입니다.

2023/08/02

블랙 아담 (2022) - 자움 콜렛 세라 : 별점 1.5점


기원전 가장 번성하고 위대한 고대 국가였지만 현재는 국제 군사 조직 인터갱의 독재 국가로 전락한 칸다크. 인터갱의 눈을 피해 고대 유물을 찾던 '아드리아나'는 우연히 5000년 동안 잠들어 있던 '블랙 아담'을 깨우게 된다.
엄청난 괴력과 스피드, 방탄 능력과 자유자재의 고공비행, 번개를 쏘는 능력까지. 온몸이 무기인 '블랙 아담'은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인터갱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고 칸다크 국민들은 이에 열광한다.
한편, 그의 폭주를 막기 위해 '호크맨', '닥터 페이트', '아톰 스매셔', '사이클론' 으로 구성된 히어로 군단 '저스티스 소사이어티'가 칸다크에 나타나는데... (영화 소개 인용)


유럽으로 향하던 비행기에서 감상한 작품. 
듣던대로 액션은 좋더군요. 블랙 아담이 처음 각성해서 인터갱을 쓸어버리는 장면, 그리고 저스티스 소사이어티와 처음으로 격돌하는 장면 두 개가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인터갱 살육 장면에서는 악당을 그야말로 박살내서 무조건 지옥으로 보내버리는 화끈함이 제대로 전해졌고, 저스티스 소사이어티와의 격돌에서는 실사화가 어려울 것으로 보였던 호크맨을 날개의 움직임과 역동적인 모습을 통해 잘 살려내고 있으며, 닥터 페이트가 아주 멋지게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닥터 스트레인지'를 떠오르게 만드는, 같은 마법 계열 능력을 마법진이 아니라 일종의 결정 같은걸 구체화시키는 능력으로 그려낸게 독특하고 잘 어울렸습니다. 사이클론과 아톰 스매셔도 비중은 많지 않지만 능력은 충분히 선보여주었고요.
캐스팅도 좋아요. 특히 그냥 인간 자체가 블랙 아담으로 보이는 (인자블?) 더 락 드웨인 존스와 닥터 페이트 역의 피어스 브로스넌은 그야말로 찰떡이더군요. 블랙 아담이 진짜 영웅이 아니라 영웅의 아빠였다는 설정도 나름 적절하게 잘 써먹고 있고요.

그러나 각본이 너무 형편없어서 작품을 다 말아먹었네요. 힘에 의존하여 방해물을 모두 없애버리는, 안티 히어로에 가까운 응징자 블랙 아담과 이를 막으려는 저스티스 소사이어티와의 대결을 그렸어야 했는데, 결과물은 그냥 자기 고집이 세고 악당을 잘 죽인다 뿐 그냥 전형적인 슈퍼 히어로물이었거든요. 잘 알지도 못하는 아이 하나 살린다고 온갖 노력을 다하고, 사람들을 죽일뻔 했다고 자책하며 힘을 포기하는건 영 와 닿지 않았어요.
그나마 블랙 아담 이야기는 괜찮은 편인데. 칸타크 동네 소년 아몬이 관련된 이야기들은 끔찍했습니다. 아이 하나가 DDP 포즈 (아래)를 취한다고 민중들이 따라 일어선다? 이런 허황된 영웅담을 억지로 끼어넣을 이유는 없었습니다. 칸타크, 인터갱 등의 설정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도 없고요.



액션도 뒤로 갈 수록 처집니다. 특히 아크-톤 왕의 후손이라는 이스마엘이 사박의 힘을 얻어 악마로 부활한 뒤의 대결을 그린 클라이막스는 이야기 전개부터가 엉망입니다. 닥터 페이트가 죽음을 선택하여 홀로 사박과 맞서는 중에 감금되어 있던 아담을 깨우는데, 홀로 싸우지 말고 아담을 깨워서 같이 싸우면 되잖아요? 왜 개죽음을 택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박의 디자인과 존재감 모두 별로인데다가, 결말마저 힘으로 두 쪽을 내 버리는거라 너무 허무했고요. 이렇게 존재감없던 빌런이 또 있었나 싶네요. 또 블랙 아담의 힘으로 모든게 해결되는거였다면, 더더욱 닥터 페이트 죽음은 개죽음이라는 생각만 들더군요.

그래서 별점은 1.5점. 일부 액션씬은 볼만했지만, 이 정도라면 망한게 이해가 됩니다. 차라리 블랙 아담의 안티 히어로적인 속성에만 집중했더라면 훨씬 좋았을겁니다. 등급도 대폭 높여서요. 우리나라 '범죄도시' 시리즈의 흥행이 왜 성공했는지 - 악당들을 원펀치로 부숴버리는 희열! - 연구해보면 좋겠네요. 후속편 제작이 취소되었다니 이젠 다 필요없는 이야기가 되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