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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8

도덕의 시간 - 오승호 / 이연승 : 별점 3점

도덕의 시간 - 6점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블루홀식스(블루홀6)

<<아래 리뷰에는 진상, 반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꽤 이름이 알려진 영상 저널리스트 후시미는 몇 개월째 백수 상태였다. 진행하던 작업 중 자신이 하는 일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내의 도예 스승 난보의 장례식날, 아들 도시키가 친구 마코토를 때린 폭행 사건에 휘말렸다. 급전이 필요해진 후시미는 오랜 지인 다나베의 소개로 신예 감독 오치의 프로젝트 Q.M (Question of Morality, 도덕의 문제)에 카메라맨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프로젝트 Q.M은 13년 전 일어났던 마사키 쇼타로 살인 사건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다. 초등학교에서 강연 중 마사키는 옛 제자 무카이에게 살해되었고, 무카이는 현행범으로 체포되어 징역 15년 형을 선고받았다. 오치는 공개되지 않았던 사건 당시 현장을 찍었던 비디오 테이프, 그리고 무카이와의 인터뷰를 무기로 다큐멘터리를 만들 생각이었다.
오치는 무카이가 진범이 아니라 초등학교 선생으로 강연을 주도했던 미야모토가 진범일 수 있다는 식으로 끌고갔고, 후시미는 이를 반대했다. 그런 후시미에게 오치는 미리 찍어두었던 미야모토의 인터뷰 영상을 보여주었다. 무카이의 친구였던 미야모토, 가지무라는 미성년자로 매춘을 하던 무카이의 여동생 미유키의 손님이었고, 미유키가 바로 오치였다. 그녀는 Q.M을 만든건 둘에 대한 복수라고 했다.
후시미는 날조된 Q.M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개인적으로 오치 - 무카이 미유키 - 에 대한 조사에 나섰고, 무카이가 사건을 저지른 진짜 이유를 알아낸다. 그는 소설가로 성공하기 위해서, 유명해지기 위해 사건을 저질렀었다....

재일교포 오승호 (고 가쓰히로)의 데뷰작으로 제 61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입니다.
무카이가 과연 진범일까?에 대한 수수께끼를 다큐멘터리 촬영이라는 장치로 서서히 풀어나가는 전개는 흥미롭습니다. 마지막에 미야모토의 증언으로 왜 미야모토가 무카이의 이상을 감지하고 서둘러 나섰는지, 왜 강연을 촬영하던 카메라가 쓰러졌는지, 미유키는 왜 사라졌는지 등이 극적으로 밝혀지는 장면은 오치가 날조한 현재를 보여주고, 후시미 단독 촬영으로 무카이의 진짜 의도가 드러나는 일종의 반전이 이어지면서 Q.M이 완성되는 과정은 잘 짜여져 있습니다. 왜 후시미를 카메라 맨으로 선택했는지? 등 소소한 수수께끼도 나름 설명되고요. 오치는 후시미가 자기를 조사할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랍니다. 영상 저널리스트 후시미는 그런 인물이라서요
이 모든 과정이 다큐멘터리라는 설정에 맞춰, 주변 인물들의 증언과 명확한 증거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잘 어울렸습니다. 이를 통한 무카이와 미유키의 끔찍했던 유년 시절의 건조한 묘사는 이질적이면서도 기묘한 느낌을 전해줍니다. 이와시로 기자가 초등학교 때 무카이가 썼던 연극 대본 내용을 말해주는 장면 - 개를 잡아 먹었다는 - 는 정말 소름이 쫙 돋았어요.
Q.M과 함께 나루카와 시내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벌어졌던 경범죄와 난보 선생 사건에서 현장에 적혀있던 낙서, 그리고 후시미의 아들 도시키의 그림이 망가진 사건 등이 정리되고 해결되는 과정도 깔끔했습니다. 오히려 Q.M보다 이 사건 쪽이 추리적으로는 더 볼만합니다. 여러가지 단서가 비교적 공정하게 제공되며, 동기에 대한 설명도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덕분입니다. 예를 들어 그림이 망가진건 아이들이 난보 선생 집에서 놀았다는걸 감추기 위해서였다는 식으로요.

마사키 쇼타로의 교육론, 후시미가 실제로 고뇌하는 자식 교육 문제 등으로 '교육'에 대해 이런저런 담론을 전개하는 것도 좋았습니다. 후시미가 동네 주민 고마이와의 대화가 개인적으로는 인상적이었어요. 일본에서 문제가 되고 있던 '유토리' 교육 방침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유토리 교육 (예유있는 교육)은 학력이라는 획일화된 평가 기준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되어, 각각의 다양한 특기와 재능을 살리자는 취지의 교육이었다고 합니다. 방침은 아주 좋죠. 그러나 실패는 필연이었습니다. 사회가 그런 방침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특기와 재능을 살려봤자, 사회에서 성공하는건 고학력자들이 대부분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학력은 사회에서 부여한 과제를 잘 처리하는 능력을 가늠하는 기준이기에, 당연하다고 설명하고요. 저도 오랜 직장 생활 경험자로서 많이 공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만화 <<신입사원>>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결국 사회 (대표적인게 회사)에서 어떤 사람을 평가하려면, 가장 쉽고 일반적인 기준은 학력이지요.
마사키 쇼타로가 '모두 씨'라고 부른 '도덕' 개념도 그럴듯했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는 나를 지켜보는 '누군가'가 항상 있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 같아요. 내가 하는걸 항상 누군가 지켜보니 행동에 조심하라는 뜻이지요. '신'의 존재를 초등학교 아이들 수준으로 알기 쉽게 해석한 듯 한데, 나쁘지 않았어요. 작품에서 잘 활용하고 있기도 하고요.
후시미가 좌절했던 계기였던 사건 이야기도 스쳐 지나가는 수준이지만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다 죽어가는 노인과 결혼하여 재산을 물려받은 여자를 취재했는데, 그 여자가 사는 아파트의 노인 주변은 화려한 꽃들로 장식되어 있었다는 내용입니다. 노인은 몸을 움직이지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심지어 마르거나 시든 꽃도 없었고요. 즉, 여자는 그 노인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는데, 후시미 혼자 멋대로 여자가 나쁘다고 단정짓고 악을 만들어 버렸다는 이야기지요. 뭐든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한다는, 오래된 진리를 다시 떠오르게 만듭니다.

그러나 범행을 저질러 유명해진 뒤, 그 명성으로 소설가가 되겠다! 라는 무카이의 동기는 잘 와 닿지 않더군요. 범행을 저지르기 전에 소설가로서의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은걸로 보입니다. 본인, 그리고 동생의 끔찍했던 과거를 노출시키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고요. 살인보다는 이런 노력들을 먼저 하는게 당연하지 않았을까요? 현재의 전개로는 살인까지 저지렀어야 했던 절박함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살인 대상이 마사키 선생님이었던 이유도 사회에 충격을 주기 위한 목적 말고는 없었다는데, 저같으면 현장에서 미야모토를 죽였을겁니다. 그래야 가지무라를 - 그리고 미유키를 - 구태여 현장에 불러 촬영을 맡긴 이유가 설명이 되니까요. 미야모토는 줄일 예정이니 촬영을 맡길 수가 없잖아요? 그리고 친구인줄 알았던 가지무라와 미야모토가 여동생의 손님이었다, 여동생은 내가 지켜주지 못했다, 그래서 죄인 둘에게 단죄와 경고를, 여동생에게는 내가 앞으로 지켜주겠다! 는 의지를 보여준거다... 같이 독자가 납득할 수 있는 설명도 가능했고요. 아니면 인격자인줄 알았던 마사키 선생님마저도 미유키의 손님이었다는 충격적인 반전이라도 드러내는게 나았을겁니다.
제목에서부터 노골적으로 강조되는 '도덕'에 대한 설정과 문답들은 작위적입니다. 마사키 쇼타로 선생의 모두 씨 개념, 저널리스트로서 날조를 막아야 하는 양심, 그리고 경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도덕에 관한 문장 등 '도덕'이라는 말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야기 핵심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무카이의 동기를 독자에게 숨기기 위한 추리적인 장치, 그리고 작품을 뭔가 있어보이게 하는 소재에 불과합니다. 괜히 머리만 아프게 만드네요.
아울러 후시미는 일본 사회파, 하드보일드 작품에서 흔히 보는 고집 센 한 마리 늑대와 다를바 없습니다. 많이 뻔했어요.

그래도 데뷰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완성도의 수작입니다. <<스완>>은 충격적인 설정에 비하면 다소 심심하고 억지스러운 전개로 실망했었는데, 이 작품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 작가가 최근 뜨거운지 잘 알려주는 좋은 작품이었어요. 제 별점은 3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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