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저어 - 소네 게이스케 지음, 권일영 옮김/예담 |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망명 요청을 한 중국 외교관 류잉캉의 증언으로 후와는 멕베스는 조작이라 여기게 되었지만, 수사본부를 장악한 고미 일당은 아쿠타가와가 멕베스이며, 후와는 중국 밀정인 두더쥐로 생각했다. 후와는 어쩔 수 없이 멕베스 사건 지휘자 도쓰이 관리관에게 직접 보고했고, 류잉캉의 증언으로 또다른 거물급 정보원 '시벨리우스'를 체포해서 멕베스 조작설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이에 고미는 직접 류잉캉을 심문하러 나섰지만, 중국 공작원들에게 습격당해 류잉캉은 빼앗기고, 고미마저 치명상을 입었다. 후와의 직속 후배이자 부하 와카바야시는 이 사건이 자기 탓이라 자책했고, 그가 두더쥐였다는게 밝혀졌다.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 포섭되었었다. 그리고 사라져버린 와카바야시의 행방을 찾는 무리에 후와마저 납치당했다.
풀려난 후와는 도쓰이 관리관에게 베이징의 책략을 폭로했다. 알고보니 멕베스는 아쿠타가와 겐타로가 맞았고, 류잉캉의 증언을 포함한 모든 건 이를 들통나지 않게 하려는 계획이었다....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첩보 미스터리. 일본에서 국제적인 정보전이 펼쳐진다는 설정이 특이했는데, 흡입력은 상당합니다. 거물 공작원 멕베스가 누구인지, 멕베스의 존재 자체가 가짜가 아닌지, 경찰 내부의 두더쥐는 누구인지 등 다양한 수수께끼가 등장하는 덕분입니다. 국회의원으로 대표되는 입법부와 경찰 조직간의 역학 관계, 고미 일당과 후와 경부보간의 알력 다툼 등 여러 갈등도 재미를 더해주고요.
하지만 기본적인 이야기 전개에서 헛점이 느껴지는건 아쉽습니다. 우선, '멕베스'의 존재가 드러난건 수사본부 발족 2개월 전 미국에 망명했던 중국 고위층 인물 후샤오밍의 증언 때문입니다. 중국은 이 증언 자체가 가짜라고 여기게끔 공작을 벌이고요. 그래서 류잉캉에게 거짓 증언을 시켰죠. 목적은 당연히 멕베스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첫 번째는 왜 아쿠타카와의 비서 이토 마리가 우춘시엔과 만나는걸 방치했냐는 것입니다. 수사가 2개월 뒤에 시작되었으니, 이 만남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습니다. '멕베스가 아쿠타카와가 아닌가 생각되었지만 그건 조작이었다!'보다는 '멕베스는 조작으로 누구인지 실체가 없다!' 쪽이 훨씬 안전한 선택입니다.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두 번째는, 왜 이토 마리를 납치해서 살해하고 노트북에 비밀 서류가 있다고 조작했냐는 것입니다. 마리는 중국이 죽인걸로 보이는데, 앞서 말했듯 중국은 멕베스라는 존재 자체가 가짜라고 여기게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그렇다면 아쿠타카와가 의심을 살 단서를 조작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래서야 아쿠타카와에게 수사가 집중될 뿐입니다. 게다가 이토 마리의 만남은 후와의 수사로 문제가 없다는게 밝혀졌습니다. 자료는 '두더쥐' 와카바야시에게 넘겨주었으니 중국도 그 사실을 입수할 수 있었고요. 도대체 중국은 무슨 생각이었던걸까요?
일본측 목적도 잘 모르겠습니다. 일본은 아쿠타카와가 멕베스라는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아쿠타가와는 이중 스파이였으니까요. 수사에 나서지 않으면 중국이 이상하게 여길테니 외사과를 투입하기는 했지만, 아쿠타가와의 정체가 드러날 수사를 진행할 필요는 없었어요. 드러난 증거로 소모적인 수사만 시키다가, 멕베스가 조작된 정보라는 것만 고미 일당에게 충분히 설명해 주고 수사본부를 해산하면 됐습니다. 물론 이토 마리가 실종되고 노트북에서 기밀 정보가 발견된 이상, 누가 보아도 아쿠타카와를 수사해야 하는 상황이라 수사를 중지시키는건 어려워졌긴 했습니다만. 더더욱 중국의 의도를 알 수가 없어지는군요.
차라리 멕베스는 다른 누군가라고 후샤오밍이 명확하게 말했고, 중국은 그 사실을 숨기려고 "멕베스는 아쿠타카와다!"라고 속이기 위한 작전을 펼쳤으며, 일본은 "아니, 우리는 차라리 후샤오밍의 증언 자체가 조작된 것처럼 보이게 만들래"라고 받아치다가 후와에 의해 "알고보니 멕베스는 OOO이었다!"라고 드러나는 전개가 단순하지만 더 설득력있었을 겁니다.
이런 알 수 없는 양국 행태에 비하면 딸의 목숨을 살리기 위한 와카바야시의 두더쥐 활동은 차라리 깔끔한 편이기는 합니다. 일본측 - 도쓰이 관리관 - 이 와카바야시도 이중 스파이로 이용했다는 설정도 나쁘지 않았고요. 문제는 와카바야시를 커뮤니케이션이 지극히 떨어지는 기묘한 인물로 설정했다는 점입니다. 도무지 감정이입하기 힘들었습니다. 다른 인물들도 그리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후와 경부보는 일본 하드보일드물에 흔하디 흔한 한 마리 고독한 늑대, 고미 일당은 전형적인 깡패 형사들이고 그 외 인물들도 스테레오 타입에 가까운 탓입니다. 모든걸 알아챈 후와가 지인이자 어둠의 실력자 왕 영감의 도움으로 탈출하고 사라지면서, 뭔가 후속작에 대한 여운을 남기는 결말도 진부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단점을 잔뜩 언급하기는 했지만, 재미는 있습니다. 첩보물로의 미덕은 잘 살아있고요. 란포상 수상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재미삼아 한 번 읽어볼 만은 합니다.
덧붙이자면, 뒤에 함께 수록된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 소감이 놀랍습니다. 작가는 명문대 와세다 대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했는데, 그 이유가 "빤한 인생을 살기 싫다" 였다니까요. 그래서 일부러 망해가는 사우나, 어두컴컴한 만화 카페 등에서 일했고 만화 카페에서조차 급여와 직책이 오르기 시작하자 위기감을 느껴 사표를 냈다니 놀랍습니다. 1967년 생이니 이런 결심을 했을 때에는 이미 일본에서도 버블 경제는 끝나서 그렇게 만만한 삶을 살기는 힘들었을텐데 말이지요. 또 정작 발표한 작품은 비교적 뻔하다는걸 보면 인생관, 가치관과 결과물이 비례하는건 아니라는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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