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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28

14시즌 베어스는 끝났습니다.

14년 베어스 전망 및 바램
작년말 이런 글을 남겼었는데 올 시즌은 역시나 예상대로, 아니 예상보다도 안좋게 진행되었습니다.
작년에 예상했던 14년 두산 베어스 대비 현재 엔트리는 아래와 같습니다. 작년 예상이 파란색, 현재가 빨간색이죠.

투수진 (12)
선발 : 니퍼트, 외국인 - 
볼스테드 (Out) - 마야 (In), 노경은, 유희관, 이용찬 - 정대현
중간 : 오현택, 홍상삼 (Out), 
윤명준, 이현승, 함덕주, 정재훈, 변진수
마무리 : 윤명준 - 
이용찬
예비군 : 이재우 (Out)

야수 (14)
포수 : 양의지, 최재훈
내야수 : 오재일 (Out) - 칸투 (1), 오재원 (2), 김재호 (유), 이원석 (Out), 허경민, 최주환
외야수 : 김현수, 민병헌, 정수빈, 장기영 (Out), 박건우
지명 : 홍성흔
+ 경기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 고영민, 김진형

로 1군 엔트리를 끼워 맞추고 있습니다. 뭐 몇몇 새로운 이름이 보이지만 부상을 빠진 선수를 제외하고는 제 예상과 별로 다르지는 않군요. 그래서 작년에도 올해 베어스의 목표는 우승이 아니라 버티기라고 예상했었죠. 아무래도 젊고 저렴한 팀을 지향하고 있으니까요. 2차 드래프트에서도 노장들이 대거 팀을 옮기게 되었고요.

그러나 작년 대비해서 투수진만큼은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누가 뭐래도 분명한 전력임이 분명한 이현승, 이용찬, 정재훈 선수가 정상적인 몸상태로 가세했으며 크리스 볼스테드 선수도 짐을 싸기는 했지만 작년의 두번째 외국인 투수보다는 확실히 좋은 선수였으니까요. 그에 반해 떠난 투수 중 실제 전력에 보탬이 됐을만한 선수는 김상현 선수정도? 때문에 기존 전력을 거의 유지한 타력에 강해진 투수력으로 승부를 충분히 볼만한 시즌이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어제의 패배로 6위. 4위가 가시권이라고는 해도 현재 두산의 모습으로는 4위보다 7위나 8위가 더 가까운 그러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책임을 누구에게 물으면 좋을까요? 당장은 코칭스태프 잘못이 크겠죠. 지난 겨울 훈련을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2년동안 국내 최고의 우완 중 한명이었던 노경은 선수가 거의 등판 이닝당 1점씩 실점하는 KBO 기록 수준의 방어율을 기록하며 몰락한 것, 그리고 애니콜스러운 출첵으로 심각한 구위저하 및 자신감 상실을 보이는 오현택, 윤명준, 이현승 선수의 부진이 과연 김진욱 감독 - 정명원 코치 휘하에서도 일어났을까? 저는 회의적으로 봅니다. 거기에 더해 유희관 선수가 시즌 중반에 심각한 슬럼프에 빠졌을 때 별다른 대처가 없던 것, 가을 시리즈때는 망했지만 시즌 중에는 사람구실했었던 홍상삼 선수는 물론 1차지명 신인이건 군제대 중고 신인이건 재활 중인 선수건 단 한명도 투수진에 보탬이 되지 않은 것 역시 코칭스태프의 잘못이고요. (그나마 함덕주 선수 하나만 반갑네요)
김진욱 감독이 욕을 많이 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두산의 투수진을 재건한데에는 큰 공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유산을, 그것도 이자까지 쳐서 받았는데 한시즌도 걸리지 않아 무너트리다니 정말 어이가 없을 뿐이에요.

이러한 투수진의 붕괴에 더해 타선도 문제가 많습니다. 물론 지표상으로, 또 포지션별로 보면 리그 중간 이상은 하고는 있죠. 그러나 준수한 포수인 최재훈 선수를 잘 이용하지 않고 오재일 선수를 대수비 전문의 반쪽짜리 선수로 만드는 등 있는 자원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도 못하고 매해 새로운 선수를 발굴했던 화수분 야구의 전통도 잇지 못한 점은 코칭스태프가 반성해야 할 일입니다. 누구나 터질거라 예상했던 박건우 선수가 시즌말 20인 내에 포함되지 못할 정도로 성장하지 못한 점을 포함해서 말이죠.

그러나 이러한 코칭스태프를 인선한 것은 다름아닌 프런트니 결국 문제의 핵심은 프런트! 누가 뭐래도 프런트입니다. 작년 글에서도 썼던 -김진욱 감독의 운영을 100% 찬성하지는 않지만 노경은, 홍상삼 선수를 사람 만든 공이라던가 불펜투수의 혹사 없이 어느정도 성적을 내었다는 점에서는 지지하는 편이었으며 한국 시리즈 경험을 바탕으로 내년에는 보다 좋은 모습을 보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너무 섣부른 경질이었다- 것이 현실이 된 것입니다.
게다가 어설펐던 트레이드가 부메랑이 된 것도 프런트 책임이죠. 홍성흔 선수가 좋은 선수이기는 하지만 고작 1년 뒤에 아무런 출혈없이 최준석 선수라는 대체제를 확보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영입한 것, 결국 주전 중심으로 돌릴거면서 외야수가 없다고 윤석민 선수를 트레이드한 것, 남들은 잘만 써먹는 노장 불펜 투수 영입조차 시도하지 않은 것 모두 프런트의 실수라 생각합니다.

때문에 베어스 몰락 책임의 거의 전부는 진두지휘한 프런트가 져야 합니다.

그게 팬들에 대한 올바른 자세입니다.

올 시즌은 이제 더 이상 야구를 진득하게 볼 일은 없을 것 같은데 프런트 및 코칭스태프의 정리라는 기쁜 소식이나 빨리 들려왔으면 합니다. 혹시 기적의 4강 막차를 탈 수도 있지만 그래도 볼 생각은 없어요. 이대로라면 제2의 베어스 암흑기가 머지 않은 듯... 아니 이미 시작되었나요?

2014/08/27

제2차세계대전의 에이스들 - 김진영 : 별점 2점

제2차세계대전의 에이스들 - 4점
김진영 지음/가람기획


출판사 가람기획의 세계전사 시리즈 중 한권으로 이 시리즈는 이전에 <연합함대>를 읽은 적이 있죠
제목 그대로 2차 세계대전 중 각국의 에이스들을 다루고 있으며 독일 에이스 6명, 영국 에이스 6명, 미국 에이스 3명, 일본, 소련, 핀란드 각 1명으로 전부 18명의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저술되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절반 이상은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자료와 흡사한 내용이 많았습니다. 특히 독일군 에이스들 이야기가 그러합니다. 에리히 하르트만이나 아돌프 갈란드, 아프리카의 별 한스 요하임 마르세유,발터 노보트니 등은 이런 저런 류의 책은 물론이고 엔위하키 미러를 통해 더욱 자세한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인물들이죠. 게다가 이야기들의 분량이 인터넷 웹진에 한편씩 소개될 정도의 분량에 지나지 않아서 그닥 상세한 내용도 없습니다. 때문에 깊이도 없을 뿐더러 원하는 지식을 얻기에는 상당히 부족한 느낌이었어요. 단지 전투기술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인간적인 고뇌와 같은 디테일이 살아있었으면 했는데 말이죠.

그래도 워낙 많은 인물이 실려있는 덕분에 새롭게 알게된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자면 격추대수가 200대를 넘었던 슈퍼 에이스 중 한명이었던 헤르만 그라프는 독일 패망 후 소련에서 포로생활을 할 때 공산주의자가 되겠다고 하여 소련의 선전활동에 이용되어 결국 귀국은 일찍 했지만 배신자라는 낙인을 영원히 극복하지 못하고 용접공으로 여생을 보냈다고 하는 것 같은 이야기요. 만화 <수리부엉이>에도 비스무레한 캐릭터가 등장했었죠. (인터넷에 자세한 글이 있긴 한데 이 책 내용과 거의 동일해서 퍼나른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 상대적으로 유명한 독일군 에이스들에 비해 영국과 미국의 에이스들은 아무래도 격추 숫자가 독일군에 비하면 부족하고 (당연하겠지만요) 인기도 그닥 없는 편이기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이 책에서는 비슷한 비중으로 소개되고 있으며 내용도 꽤 흥미로와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어요. 영국의 전투기 무장사 출신으로 비교적 많은 나이에 기량이 만개하여 28기의 일본기를 격추했다는 프랭크 캐리, 38기의 독일기를 격추하고 전후 영국군 부원수 자리에까지 올랐다는 쟈니 존슨 등의 이야기가 그러하며 해당 에이스들의 전투 상황에 대한 디테일한 증언이 실려있는 것도 아주 괜찮았던 점입니다. 스핏파이어로 고도 4000미터에 도달한 뒤 슈퍼차저를 켜 속도를 올려 꽁무니를 잡은 적기를 따돌릴 수 있었다 같은 것 말이죠.

그러나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절반 가량이 인터넷 등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라는 점에서 감점합니다. 물론 이 책이 원전 중 하나일 수는 있겠지만 원전으로서의 독보적인 무언가가 있지는 않을 뿐더러 위인전으로 보기도 어렵고 미시사 서적으로 보기도 어렵고 전사로 보기도 어렵다는 모호한 책의 성격 역시도 감점 요인이에요. 2차 세계 대전에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관심 가져볼만하겠지만 그렇지 않으시다면 구태여 읽어보실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2014/08/25

바텐더 1~21 - 조 아라키, 나가토모 겐지 : 별점 2.5점

바텐더 Bartender 21 - 6점
조 아라키 지음, 나가토모 겐지 그림/학산문화사(만화)

바텐더 - 조 아라키 원작 / 나가토모 켄지 그림

몰랐었는데 이 만화도 완결되었군요. 주말에 몰아서 완독하였습니다.

작품은 크게 주인공 "신의 글라스" 류가 여러 바를 떠돌아 다니며 용병생활을 하는 전반부, 호텔 카디널의 바 이덴홀에서 근무하는 중반부, 그리고 독립하는 후반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와중에 바를 찾은 손님들과의 다양한 에피소드가 펼쳐지는 전개이죠.

요리만화 스타일의 배틀이 펼쳐지는 에피소드는 거의 없고 바를 찾아온 손님들에게 최고의 한잔을 대접한다는 치유물 계열의 이야기가 대부분으로 주인공이 천재라는 점만 빼면 <심야식당> 같은 분위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작품의 특성상 주인공 사사쿠라 류 보다는 손님과 주변인물들의 이야기가 인상적인 것이 많은데 개인적으로는 가와가미 쿄코가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우연히 바를 찾은 첫사랑에게 고백을 결심하나 그가 약혼자와 함께 나타나자 "라스트 키스"라는 칵테일을 만들어 주는 에피소드. (내내.. 내내.. 당신을 좋아했습니다) 또 그녀가 어머니를 급작스럽게 잃은 뒤 바텐더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핑크 리본"이라는 칵테일을 만드는 에피소드도 좋았어요. (이러한 점 때문에 이 작품의 히로인은 미와가 아니라 쿄코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명언이 등장하는 것도 명언 덕후로서 마음에 든 점이었고요.

그러나 아쉽게도 쿠루시마 타이조가 죽은 뒤 류가 독립하게 되기까지를 다룬 후반부는 재미가 덜했습니다.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인 치유물 분위기가 희석되고 류의 제자인 와쿠이 츠바사의 성장기, 혹은 독립을 하기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여러가지 배틀이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쿠루시마 미와와의 관계를 좀 더 진전시키거나, 아니면 미스터 퍼펙트와의 최종 결전과 같은 빅 이벤트로 마무리하는게 임팩트는 더 있었을텐데 이도저도 아니라 좀 아쉬웠어요.

뭐 그래도 새로 오픈한 이덴홀을 중심으로 이전처럼 끌고 갈 수도 있었을텐데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적절히 마무리한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재미고 뭐고 다 없어진채 좀비처럼 연명하는 일부 만화들 보다는 훨씬 나으니까요.

결론내리자면 제 별점은 2.5점. 후반부 이야기는 맥이 좀 빠지지만 전체적으로 잔잔하면서도 푸근한, 그러면서도 칵테일 한잔을 마시고 싶게 만드는 작품입니다. 이런 류의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2014/08/22

과학편집광의 비밀서재 - 릭 바이어 / 오공훈 : 별점 2.5점

과학편집광의 비밀서재 - 6점
릭 바이어 지음, 오공훈 옮김/알에이치코리아(RHK)


과학자들의 비밀스러운 작업이 연상되는 제목과는 다르게 발견과 발명에 대해 다루고 있는 미시사 서적.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그리스의 헤론, 아르키메데서의 유레카라던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같은 발견도 일부 실려있지만 90% 이상이 발명과 특허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또 역사적으로 의미있다기 보다는 순전한 "재미"로 선정된 것들도 제법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독서에서 재미를 중시하는 편일 뿐더러 여러가지 발명에 대한 에피소드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마음에 들었습니다.

워낙에 많은 이야기가 실려있기에 요약하기는 어려우니 몇개만 뽑아서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유명인들의 발명을 소개하는 항목에서는 링컨이 출원한 특허가 재미있었습니다. 모래톱에 올라간 배를 쉽게 뜨게 만드는 것이라네요. 뭐 별로 실용적이지는 않았다지만 정말 성공했다면 대통령 링컨이 아니라 발명가 링컨으로 알려졌을테니 성공하지 않은게 링컨으로서는 다행이었을 것 같군요.

그리고 지금은 굉장히 유명한 발명품에 대한 이야기들은 친숙한 물건들이 다수 등장해서 특히나 재미나게 읽었는데 먼저 방한용 귀마개을 소개해드립니다. 우리가 겨울에 쓰는 바로 그것이죠! 1873년 미국 메인주 파밍턴 출신의 15세 소년 체스터 그린우드가 발명해서 특허 출원하고 19세 되던 해부터 본격적 생산하여 돈방석에 (그가 죽을때 연간 30만개 귀마개 생산) 앉은 유서깊은 발명품이에요. 브랜드명은 챔피언 귀마개 (champion ear protector)! 나온지 백년도 넘었네요. 그나저나 이것도 특허가 있는지는 처음 알았습니다.
또 우리가 흔히 쓰는 수정액, 이른바 "화이트" 발명도 상세하게 소개되는데 타자가 서툴렀던 비서 베트 그레이엄의 발명입니다. 역시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인 법이겠죠. 그녀는 이것을 리퀴드 페이퍼라 이름지어 판매하여 대성공하고 그녀의 아들 마이클 네스미스는 60년대를 풍미했던 팝밴드 몽키스의 멤버였다고도 하니 참으로 복받은 가족이라 생각되네요.
복사기 발명 이야기는 지금도 유명한, 여러분들도 다 아실 "제록스"라는 회사의 창업담과도 연계됩니다. 우선 체스터 칼슨이 1938년 최초로 건식복사에 성공한 후 할로이드가 이 아이디어를 샀습니다. 홍보를 위해 그리스어로 건조한 xeros와 그리다라는 graphos를 합쳐 제로그라피라는 말을 탄생시켰고요. 아울러 회사명도 이 말에서 따온 제록스로 변경하여 최초의 복사기 모델a를 1949년에 출시한 것이 현대적 복사기, 그리고 "제록스"라는 기업의 시작이 된 것이죠.

우연한 발명품을 소개하는 것들도 재미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인공감미료 이야기가 제일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카린과 아스파탐의 발견이 순전한 우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처음 알았으니까요. 물론 우연이라도 이상한 점을 알아내고 이유가 무엇인지를 밝히려한 과학자들의 시도와 노력이 더욱 중요한건 사실입니다. 우연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지만 그것을 기회로 바꾸는 것도 역시나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것이겠죠.

마지막으로 실패한 발명가 이야기는 참으로 불쌍한, 안된 사람들 이야기가 많은데 특히나 고무맨 굿이어가 이 바닥의 끝판왕이더군요. 무려 5년동안 가난과 싸워가며, 가족까지 잃어가며 가황이라는 고무강화 방법을 찾아냈지만 가난때문에 특허권을 매각한 뒤 셋집에서 20만 달러나 되는 빚을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굿이어" 타이어 사명으로라도 이름이라도 남겼으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참 안됐어요. 누구는 귀마개 하나가지고 떼돈을 벌었는데 말이죠. 역시나 세상은 노력만으로는 안되는게 있는 법이에요.

여튼 이러한 많은 재미난 발견, 발명관련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는 책입니다. 각 이야기별 길이도 세네페이지 정도의 분량이기도 해서 심심풀이삼아 읽으면 좋은 책이에요. 별점은 2.5점입니다.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신다면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4/08/20

다빈치의 부엌 - 데이브 드위트 / 김지선 : 별점 2.5점

다빈치의 부엌 - 6점
데이브 드위트 지음, 김지선 옮김/빅하우스


요새 너무 바빠서 블로깅할 시간도 별로 없네요. 오랫만에 리뷰 남깁니다.

이 책은 다 빈치의 노트 및 해당 시기의 여러가지 기록을 통해 이탈리아 요리에 대해 탐구하는 미시사 서적으로 다 빈치의 삶과 그의 노트 속 요리가 중요하게 등장한다는 점에서 약간 <접시 위에 놓은 이야기 : 카사노바의 맛있는 유혹>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단순히 특정인물의 삶과 특정 요리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전반적인 음식 문화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훨씬 방대하고 복잡한 책이라는 뜻이죠.

목차별로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첫번째의 "음식 르네상스"는 새로운 요리들이 어디서 어떻게 전래되었으며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에 대한 알려주고 있는 전체를 조망하는 항목입니다. 후추와 향신료들을 사용한 이유 (후추는 의약품으로도 사용되었기 때문)와 그 때문에 변한 맛, 그리고 "거대한 존재의 사슬"이라는 르네상스의 지식관을 바탕으로 한 식재료들 같은 것은 상당히 새롭고 재미있었습니다. "거대한 존재의 사슬"은 일종의 등급표인데 양파 같은 구근식물은 최하등급이고 신 바로 아래에 있는 불의 범주인 불사조가 최상등급이라고 합니다. 이에 따른 식재료 순서는 돼지 - 양 - 쇠고기 - 송아지고기 순서이며 새들은 모든 동물 중 가장 윗자리로 오리와 거위 - 닭 - 일반 조류 순서라고 하네요. (앞에서 뒤로 갈 수록 등급이 높은 것입니다) 이 기준이면 치킨은 상당히 상위권 음식이군요. 참새구이는 불사조 바로 아래고!
두번째의 "최초의 요리왕"은 당대 이탈리아에서 "요리왕"이라고 불리웠던 마르티노의 요리책 <조리의 기술>에 실린 레시피가 중심인 항목입니다. 이후 르네상스 역사상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바르톨로메오 스카피의 요리책 <오페라>까지 소개되고 있죠. 암살을 막기 위한 연회의 구성까지 실려있는 등 당대 문화를 잘 반영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세번째의 "리조토, 마카로니, 설탕의 나라"에서는 제목 그대로 지금도 이탈리아 요리를 대표하는 리조토, 마카로니의 역사는 물론 설탕을 이용한 요리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네번째의 "화덕에서 주방까지"에서는 당대 주방의 모습과 주방에서 사용되었던 여러가지 기구들이 등장하며 다섯번째의 "다 빈치의 부엌"은 다 빈치가 고안한 주방기구의 소개에 이어 다 빈치가 실제로 어떤 것을 먹었을지에 대해 추리하는 내용이 이어집니다. 다 빈치가 당시에 어떻게 살았는지가 함께 설명되기 때문에 책의 제목에서 기대했던 내용과는 가장 잘 맞는 항목이었다 생각되네요.
여섯번째의 "환상적인 연회들"은 르네상스 시대 초기를 빛냈던 화려한 연회들과 연회들에 올라간 음식들이 소개되며 마지막 "세계 최고의 요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요리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는 항목으로 이탈리아 요리의 르네상스를 다룬 책의 마지막 목차에는 딱 맞는 항목이었어요.

내용도 재미있는 편이나 당대의 책들에서 가져온 참고용 도판도 만족스러우며 레시피도 충실합니다. 특히나 현대에도 재현할 수 있도록 일종의 대체 재료 및 현대 기준에 맞춰 수정하여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해 먹어도 충분히 맛있을 것 같더군요. 개중 가장 간단할 것 같은 다 빈치의 샐러드 드레싱을 소개해드리자면
신선한 이탈리아 파슬리 10작은술 (간 것), 신선한 스피어민트 1작은술 (간 것), 신선한 타임 1작은술 (간 것), 올리브유 3/4컵, 와인식초 1/4컵, 소금과 새로간 후추 (맛내기용) 을 더해 1컵으로 만들면 된다고 하니 참 쉽죠?

그러나 단점도 있기는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목차가 시기나 주제별로 잘 정리된 느낌은 아니었어요. 또 제목과 다르게 다 빈치에 대한 비중이 크지 않다는 것도 기대와는 다른 부분이었고요. 그래도 르네상스 초기 음식 역사에 대해서는 확실히 짚어줄 뿐더러 내용도 꽤 재미있는 편이라 음식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번쯤 읽어보셔도 괜찮을 것 같긴 합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책도 상당히 예쁘게 나온 만큼 소장용으로도 괜찮지 않을까 싶네요.

2014/08/15

한국음식문화박물지 - 황교익 : 별점 2.5점

한국음식문화박물지 - 6점
황교익 지음/따비


한국 음식 컬럼니스트로 유명한 황교익씨의 컬럼을 모아놓은 책. 여러가지 한국음식을 되돌아보고 그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들이죠. 수긍할 수 있는 내용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내용도 있고, 재미있는 내용도 있고 새롭게 알게된 것도 있는 등 다양한데 저자의 블로그에서 익히 보아왔던 독설들이 가득해서 쉽게 익숙해지지는 않더군요. 저자의 주장도 좀 센 편이고 말이죠.

수긍하기 어려웠던 것의 대표적인 예는 진상품 마케팅에 대해 이야기하며 진상품은 수탈의 역사이니 후손들이 자랑스러워할게 못된다, 조상이 당한 수탈을 자랑스러워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근대적 시민의식이 없는 것이다라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수탈이건 뭐건 지금은 마케팅 키워드일 뿐인데 그리 큰 의미를 둘 수 있을까요? 이런 논리면 성같은 문화재도 다 부역으로 만든거면 수탈의 역사이니 자랑할게 아니라는 것과 같은데 말이죠. 또 진상품이라는 타이틀은 그만큼 인정받았다는 충분한 증거는 되는 만큼 가치가 폄하될 이유도 없죠.
또 815콜라갸 실패한 이유를 코카콜라의 혼란 마케팅 탓으로 돌리는 것 역시 와닿지 않았습니다. 저도 해태콜라와 815콜라를 다 먹어본 세대인데 제 개인적 경험으로는 확연히 맛이 없었어요. 맛보다 마케팅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아무리 마케팅을 해도 맛이 없으면 안되는게 이쪽 시장의 진리라는 것은 불변의 사실이죠. 그렇게나 엄청나게 마케팅해댔던 뉴코크, 체리코크가 지금 없어진 것 처럼요. 그 외에 찜닭은 맛이 없다는 것 역시도 개인적으로 동의하기 어려웠고요.

그래도 새롭게 알게되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도 많았습니다. 이천쌀이 유명한 것은 진상품이었기 때문인데 진상된 이유가 맛 때문이 아니라 이천 토종쌀 중 자채벼라는 품종이 한반도에서 가장 일찍 수확되는 것이라 조선 왕가가 처음 수확된 쌀로 제사지내기 위해 종묘에 바친 것이 이천 진상미의 근원이라고 하는군요. 일종의 보졸레누보 같은거랄까요? 지금은 재배되지 않는다고 하니 약간 아쉽네요.
그리고 설하멱이라는 조선시대 음식이 불고기의 원형일 수 있는데 레시피는 고기를 두드려 연하게 한 뒤 꼬챙이에 꿰어 숯불에 굽다가 구우면서 물에 담그기를 반복하는 것이라죠. 겉이 타지않게 하면서 속까지 익히려는 의도라는데 중국, 중앙아시아의 "샤슬릭"과 비슷한 것으로 설하멱이 샤슬릭의 음차어일 수도 있다는 발상은 아주 괜찮았습니다. 한국의 닭은 외래종이 대부분인데 이 닭의 고기는 구이나 튀김에 맞아 백숙이나 탕 등을 하면 맛이 많이 빌 수 있다는 것도 아주 그럴듯했어요.
무엇보다도 항상 궁금했었던, 한국 달걀이 갈색인 이유를 처음 알게 되어 기뻤습니다. 원래 산란계는 백색과 갈색이 있는데 한국에서만 유독 갈색 산란계를 선호해서이며 이유는 90년대 업자들이 갈색 달걀을 토종닭 달걀인듯 홍보한 탓이라고 합니다. 생산성이 떨어지면 토종닭이라고 속여파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고요. 백색 산란계가 사료효율도 좋고 질병에도 강하다하니 조금 안타깝기도 하네요. 우리의 토종음식 집착이 이런 비효율적이며 비합리적인 현상을 낳은 것도 씁쓸합니다. 여튼, 이제부터 같은 값이면 흰달걀을 사야겠습니다.

그 외에도 꿀꿀이죽, 유엔탕이 존슨탕이 된 것은 66년 미국 존슨 대통령의 방한때문이라는 것, 광고로도 유명한 수미감자가 현재 한국 감자의 80퍼센트를 차지하는데 삶으면 찐득해지는 점질감자라 식감이 떨어진다는 것 (어쩐지 옛날보다 삶은 감자가 맛이 없더라니!) 같은 재미난 이야기도 많고 파스타는 이탈리아의 대중음식으로 누구나 대충 요리해 먹는 음식인데 외국물먹은 요리사들에 의해 허영심이나 채우는 음식으로 전락했다는 수긍할 만한 주장도 있어서 좋았습니다. 파스타는 <맛의 달인>에서는 전채일 뿐이라 묘사되고 얼마전 읽었던 야마자키 마리의 만화에서도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간단한 음식으로 나오는데 정말 포지셔닝이 오버스럽기는 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별점은 2.5점. 너무 강한 주장탓에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는데 재미있고 유익한 이야기가 많은 것은 분명한만큼 한국 음식에 관심 많으시다면 한번쯤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2014/08/12

식사는 하셨어요? Buonappetito! - 야마자키 마리 : 별점 3점

식사는 하셨어요? Buonappetito! - 6점
야마자키 마리 지음/애니북스


<테르마에 로마에>로 대박을 친 작가 야마자키 마리의 일상계 요리만화. 작가의 이탈리아 유학시절과 결혼 후 이탈리아, 포르투칼을 오가며 살고 있는 삶에서 벌어졌던 일화들과 함께 여러가지 요리들을 즐겁게 소개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무대가 무대인지라 거의 전부 이탈리아 요리인데 "나폴리탄 스파게티"로 만화가 시작되는 것이 특이하더군요. 나폴리탄 스파게티는 사무라 히로아키의 <이사>, 츠치야마 시게루의 <대결! 궁극의 맛>에서는 별볼일 없는 요리로 묘사되었었는데 추억 보정 덕분에 의외로 맛있는 요리로 소개되고 있거든요. 심지어 무대가 이탈리아임에도 불구하고! 요리에 케찹을 사용하는 것은 사도라고 비난하던 나폴리 출신 룸메이트 티나조차도 먹어보고 맛있다고 했다니 뭐 말 다 했죠. 맛이라는건 역시나 국경이 없나봐요.
그 외의 다양한 이탈리아 요리들을 적절한 이야기들로 재미나게 풀어나가고 있는데 작가의 어린 시절 환상의 요리였던 곰 세마리의 곰의 수프, 하이디의 흰빵을 이야기하다가 알프스에서 빵으로 만든 완자를 넣고 끓인 수프 카네데를리를 소개하는 식이죠. 또 포르투칼인이 아리가토의 어원이 포르투칼어 오브리가도라고 이야기하며 뻐긴다던가 (땡큐라는 뜻이니 정말일지도?) 열정적인 이탈리아인이 더 큰 열정을 찾아 방문하는 나라 no.1이 브라질이라는 일종의 지역특화된 개그도 재미있었습니다. 시어머니를 조금 과격하게 묘사한 감이 있는데 어딜가나 며느리들 생각은 다 똑같은가 싶어서 괜시래 웃기기도 했고요.

아울러 에피소드 말미에 등장했던 요리들 레시피를 짤막하게나마 실어주는 것도 아주 좋았습니다. 물론 집에서 과연 해 먹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게 많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고학생의 상징으로 묘사된 야채 미네스트로네는 시도해볼만 하겠더라고요. 샐러리 토마토 양파 당근 감자 시금치 까치콩은 모르겠지만 올리브오일과 물 스톡이 재료의 전부고 냄비에 오일 두르고 양파를 살짝 볶다가 나머지 채소와 물만 넣고 끓이면 끝이라고 하니까요.
앞서 소개드린 하이디의 빵과 곰 수프가 결합된 카네데를리 역시 굉장히 간단하게 소개되어 있어서 욕심이 납니다. 생햄이 필요한데 베이컨으로 대체해서 도전해볼까해요. 나도 곰의 수프를 먹어보고 싶다고!

여튼. 다른 일상계 요리만화와는 다르게 이탈리아 요리가 소개된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별점이 있을 뿐더러 <테르마에 로마에>만큼은 아니지만 작가 특유의 센스도 마음에 들기에 별점은 3점입니다. 그림도 괜찮은 만큼 이런 류의 만화를 좋아하시는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2014/08/11

사망 추정 시각 - 사쿠 다쓰키 / 이수미 : 별점 3점

사망 추정 시각 - 6점
사쿠 다쓰키 지음, 이수미 옮김/소담출판사


지역 유지 와타나베 쓰네조의 외동딸 미카가 유괴당하고 1억원의 몸값을 요구하는 전화가 걸려온다. 바로 수사에 나선 경찰은 치밀한 범인의 계획때문에 몸값을 잃을까 우려하여 전달하는 것을 포기하나 이후 곧바로 미카의 시체가 발견되자 경찰은 수사상의 문제가 아니었는지에 대한 비난위기에 직면한다. 특히나 쓰네조로부터 검은 돈을 받아왔던 현경의 모리타 본부장은 심한 압박을 받게되어 어쩔 수 없이 사망 추정 시각에 대한 검시 조서를 조작하고 동네 건달인 쇼지를 범인으로 날조하게 되는데....

잘 몰랐던 작가의 신선한 법정물. 미카 사건의 상세한 수사과정이 펼쳐지는 초반부, 시체 근처의 지갑에서 돈을 훔친 뒤 시체를 발견하고 도망간 동네건달 고바야시 쇼지를 범인으로 날조하는 과정이 그려지는 중반부, 가와이 도모아키 변호사가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쇼지의 국선 변호인으로 임명된 뒤 조사해본 기록들을 통해 쇼지가 진범이 아님을 확신하고 항소심에 임하는 후반부로 나뉘어집니다.

일단 장점이라면 법조인 출신이라는 작가의 이력다운 디테일이 정말 압권입니다. 때문에 작품을 읽는 내내 강하게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특히나 쇼지에게 누명을 씌우는 수사기관의 조작 과정은 정말 숨이 막힐 정도였어요. 본부장 이하 모든 담당자가 어떻게든 쇼지를 범인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날조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펼쳐지기 때문인데 이후 가와이 변호사가 그 헛점을 여러개 눈치챌 정도로 허술한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정말 이 정도까지 적극적으로 나서면 그 누구도 쉽게 빠져나갈 수 없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천라지망"이랄까요. 검찰, 경찰때문에 실형을 선고받은 뒤 무죄가 된 실제 사례가 떠오릅니다. 바로 얼마전에도 "친딸 살해 누명을 20년만에 벗어났다" 는 뉴스가 떴기도 했으니까요.
아울러 초반부 유괴범이 몸값을 받아내려는 작전도 추리적으로 꽤 괜찮은 편이었으며 이후 가와이 변호사가 항소를 준비하고 법정에서 승부를 벌이는 후반부 이야기는 법정물의 모범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긴박감이 잘 살아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첫번째는 2001년이 무대인데 촌동네이고 동네 건달을 상대로 한 조작 수사라 하더라도 그 과정은 지나친 감이 있다는 점입니다. 인권을 무시한 강요된 수사인데 미란다 원칙에 대한 설명도 없고 변호사도 없는 상태에서 밤을 세워가면서 폭력으로 진술을 얻어낸다는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돼잖아요? 이게 20세기 초중반, 아니 한 80년대만 되도 그러려니 했을텐데...
그리고 초반부터 와타나베 쓰네조는 범인을 이미 짐작한 것으로 보이나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도 앞뒤가 맞아보이지 않습니다. 유력한 용의자의 이름을 초반에 대지 않는 것도 이상할 뿐더러 쓰네조라는 인물 자체가 딸은 금지옥엽처럼 귀하게 키웠을 뿐더러 자신의 적은 가차없이 부숴버리는 냉혈한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합니다. 딸이 죽은 다음에 모든 활력을 잃었다고는 해도 최소한 복수는 했을 것 같은 인물인데 말이죠. 범인이 유카를 죽인 이유도 솔직히 잘 와닿지 않았고요.
마지막으로 가와이 변호사의 노력은 항소재판은 속심이 아니라 사후심이라는 것, 즉 1심 판결이 타당한지만 본다고 하는 재판장의 논리로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고 끝나는데 타당성 여부를 검토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리송한 부분이었어요. 경찰 수사의 왜곡이야 본부장이 검은 돈을 받은 것이 원인이라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법부가, 그것도 현장과 떨어진 도쿄에서의 재판이 이렇게까지 대충 이루어진다는 것은 제대로 설명되지 않아서 납득하기가 좀 어려웠어요.
무엇보다도 작품의 가장 특이한 점이기도 한 부분, 즉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는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고 쇼지의 누명역시 벗겨지지 않는다는 점때문에 작품이 약간 모호해지는 느낌이 들더군요. 신사회파라는 소갯글에도 적합한, 사법제도의 부조리를 드러내기에는 적합한 내용이나 하나의 완성된 소설로 보기에는 모자란 부분도 있다 생각됩니다. 범인도 멀쩡히 있고 쇼지는 누명을 쓴 채 무기징역인데 가와이 변호사 혼자 사법제도의 모순을 깨닫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라는 식으로 끝맺으니 약간 맥이 빠질 수 밖에요. 뭐 논픽션, 르포르타쥬 수준의 사회 고발성 강한 작품으로 본다면 큰 단점은 아니긴 합니다. 현실적이기도 할테고요.

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으나 최소한 "신사회파"라는 홍보문구에는 걸맞게 이 사회의 모순과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재미 또한 별로 빠지지 않는 만큼 법정물에 관심있으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2014/08/07

맨발의 청춘 - 후지와라 신지 / 김현영 : 별점 1.5점

맨발의 청춘 - 4점
후지와라 신지 지음, 김현영 옮김/눈과마음(스쿨타운)


제목 그대로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희대의 표절작 <맨발의 청춘>의 원작인 표제작 외 9편, 총 10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는 단편집.
50~60년대를 무대로 한 작품들로 힘들고 아픈, 심리적으로 연약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이 많고 이색적인 문체와 분위기는 제법 인상적입니다. 2차대전 직전, 직후의 생활상, 시대상에 대한 묘사가 특히 괜찮은 편이고요.

그러나 지금 읽기에는 너무 낡아빠진 고색창연한 설정이 가득하며 등장인물과 내용이 비슷비슷한 문제가 너무 크네요. 또 전개도 급하게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것이 많아서 제대로 된 작품이 아닌 요약된 시놉시스를 보는 느낌마저 들어서 짤막한 작품들임에도 불구하고 읽는게 좀 힘들었습니다. 이런 부분은 작가의 유명세, 수상경력이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어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1.5점. 개인적으로는 관심이 많았던 작품이기에 완독했다는 기쁨은 있지만 딱히 구해서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Oldies이기는 하지만 Goodies는 아니었습니다.

10편 중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던 3편을 짤막하게 소개하며 리뷰를 마칩니다.

<무정한 여자>
1952년 나오키상 수상작. 남편이 있는 술집 여자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

사랑하는 남자를 떠나는 장면은 "눈이 펑펑 쏟아지는데 땅끝까지 걸어갈 것 처럼 앞으로 나아갔다"라는 마지막 묘사처럼 자뭇 웅장한 맛까지 느껴지기는 한데 솔직히 나오키 상을 탈 정도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사랑은 하지만 교도소에서 곧 출옥할 남편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당신을 떠납니다.. 라는 너무너무너무나도 낡아빠진 설정 탓이 크죠. 지금 읽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른 것 같습니다.

<맨발의 청춘>
원제는 <진흙투성이의 순정>. 거의 유일하게 순정파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야쿠자 꼬붕 겐이 우연히 구해준 재벌이자 화족의 딸 마사미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죠. 당연히 영화하고도 거의 똑같은 내용이고요. 너무나도 전형적이라서 지금 읽으니 솔직히 좀 웃기기까지 했습니다만 "동반 자살한 여자는 완전한 처녀의 몸이었다"라는 마지막의 약간의 반전은 좀 놀라웠습니다. 그야말로 플라토릭 러브랄까?

<잘가요>
가정이 있는 여자와 남자의 짤막한 일탈을 다룬 작품인데 내용과 전개 모두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불륜이라는 감정에 휩싸이는 과정이 디테일한 심리묘사로 잘 그려지고 있을 뿐더러 일상으로 돌아가는 마무리까지 제법 괜찮았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하나 만큼은 시간이 흘렀어도 기본적인 작품 내의 설정이나 감정이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네요.

2014/08/06

중국역사 암호 44 - 허이 / 서아담 : 별점 2.5점

중국역사 암호 44 - 6점
허이 지음, 서아담 옮김/은행나무


중국 5천년 역사 중 호기심을 자아내는 44개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 <중국사의 숨겨진 이야기>와 거의 동일한 구성입니다. 깊이있는 역사책이라기 보다는 가쉽거리를 모아놓은 잡지책같은 느낌인데 가볍게, 편한 마음으로 한두개씩 읽어나가는데 안성맞춤이라 아주 좋았습니다. 44개나 되는 이야기가 실려있지만 이야기별로 10페이지 정도로 짤막하게 정리되어 있을 뿐더러 내용도 흥미로운 것이 많기도 했고 말이죠.

물론 역사 속 수수께끼에 대해 명확하게 결론내리지 못하는 것도 있으며 저자의 의견이라기 보다는 학계의 이론만 모아놓았다는 한계는 뚜렷하긴 합니다만 재미 자체를 부인하기는 어려운만큼 별점은 2.5점입니다. 역사 속의 미스테리라는 주제에 관심있으신 분들께는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덧붙여, 절대적인 갯수가 많아서 모든 내용을 요약하기는 어렵기에 제가 재미있게 읽었던 것 몇개만 소개해봅니다.

<누구도 찾지 못하는 칭기즈칸의 무덤>
칭기즈칸의 무덤을 아직 아무도 찾지 못했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전 세계를 뒤흔든 대제국의 창시자 무덤이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니... 저는 당연히 어딘가에 위치해있고 도굴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였어요. 칭기즈칸 뿐 아니라 모든 원대 황제의 무덤은 밀장을 한 탓에 밝혀진게 하나도 없다고 하는데 "밀장"이라는 것 자체가 훗사람에게 발견되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겠지만 언젠가는 발견되어 부장품이 공개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생기네요.

<제갈량이 만든 목우와 유마는 무엇일까>
목유유마랍시고 영화 <모험왕>에서 뭔가 거대한 기계장치 같은 것을 등장시켰던 기억이 나는군요. 이렇듯 이런저런 곳에서 많이 다루었던 소재죠. 여러 사람들이 과연 이게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의견을 낸 모양인데 결론은 일륜차, 혹은 삼륜차일 것이다라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별스레 고단하지 않고 소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다'라는 구절 때문에 자동기계장치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중국인 특유의 과장이거나 정말로 소는 사용하지 않고 인력만 사용한 그런 물건이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거란족의 '집단 실종' 미스터리>
한때 대륙을 호령했지만 명대 이후 집단적으로 사라져 소식이 끊겨버린 거란족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사학계에서 크게 세가지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고 합니다. 첫번째는 다른 민족에 융합되었을 것이라는 것, 두번째는 서요 멸망 후 이란 지역으로 이동하여 완전히 이슬람화된 다른 민족이 되었을 가능성, 세번째는 금나라와 몽골 사이의 전쟁이 일어났을 때 거란인들이 몽골에 귀부해 정벌에 나서며 전국 각지로 흩어졌을 가능성이라고 하는군요. 그 외에도 "다우르족"이라는 유목 생활을 하는 민족이나 운남성의 거란문자를 사용하는, 자신들을 "본인"이라고 칭하는 집단이 거란의 후예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중국에서 DNA 기술을 이용하여 비교한 결과 다우르족이 가장 거란족과 유사하며 운남성 '본인'은 다우르족과 부계기원이 비슷한, 몽골 군대 내의 거란 관군의 후예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까지는 밝혀졌다고 하는군요.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전국 옥새는 어디로 사라졌나>
진시황이 화씨벽으로 만든 전국 옥새. 계속된 여러 왕조의 흥망성쇠를 거의 1,500여년동안 함께하다가 명 건국 초기 원나라 조정이 몽골 초원으로 도망가면서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전 읽은 책에서는 파괴된 것으로 묘사되기는 했는데 여러가지 설이 있나보네요. 대만 고궁박물원에 있다는 설도 있으나 대만에서는 시인하지 않는다는군요. 여튼 실물을 한번 보고 싶은 것 중 하나입니다. 진시황, 화씨벽이라는 말만 들어도 뭔가 두근거리니까요.

<명대 북경에서 일어난 대폭발의 정체>
명대에 실제로 일어났었던 어마어마한 대폭발. 남겨진 증언에 의하면 많은 사람들이 실종되고 발견된 사체는 옷이 벗겨져 있었지만 불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아직까지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는데 진상이 정말로 궁금할 뿐입니다.

2014/08/05

만화가 상경기 - 사이바라 리에코 / 김동욱 : 별점 3점

만화가 상경기 - 6점
사이바라 리에코 지음, 김동욱 옮김/에이케이(AK)


처절한 현실을 일깨워주는 개그만화라는 지극히 비현실적인 주제의 작품. 저자인 사이바라 리에코가 도쿄 상경 후 만화가가 되기 이전까지의 가난하고 비참했던 현실을 담담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주제, 쉽게 그린듯한 (그러나 사실 정말 잘그린 그림입니다) 작화, 그리고 일상적인 분위기는 <자학의 시>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자전적 이야기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실종일기>보다 상황 자체는 더욱 처절한 편이고요. 아울러 미니스커트 클럽에서 호스티스로 일했다는 경험은 신조 마유의 <바보도 따라할 수 있는 만화교실>이 살짝 떠오르기도 하는데 신조 마유는 나름 화려한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이는 것에 반해 (지명 넘버 원이라고 했던가...) 사이바라 리에코는 이보다 더 막장일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어렵게 살았다는 차이점이 있죠.
<만화의 시간>에서 이시카와 쥰이 말했듯 파란만장한 인생경험을 갖춘 것은 만화가에게 굉장히 큰 무기다!라는 말에 딱 어울리는 그런 인생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잠깐 조사해보니 원래 가정도 만만치 않은 그런 환경이었으니까 말이죠. 그렇다고 학대를 받거나 한 것은 아니라 좀 다행이긴 합니다만.

여튼 만화 자체는 상당히 깨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만화가가 나오는 만화는 다 재미있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생각은 아직까지는 유효하달까요.
그러나 너무 처절하고 우울하다보니 개그만화라는데 도대체 어디서 웃어야할지도 감을 잡기 어렵다는 점과 어려웠던 생활을 졸업하게되는 과정이 너무 쉽게 그려진 점은 약간 아쉬웠습니다. 데뷰까지가 어려웠지 성인지라도 한번 그림을 싣기 시작하니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는게 전부라 앞부분의 강한 임팩트가 희석되거든요. 이건 신조 마유와 좀 비슷하기도 하네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정도? 작가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 아니라면 그림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고 모든 분들께 어울릴 작품은 아니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찾으신다면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그나저나 딱 한가지 궁금한 것은 일본에서도 미술 계열로는 명문이라 할 수 있는 "무사시노 미술대학"을 80년대에 졸업한 것으로 보이는데 한창 거품 전성기에 명문 미대를 졸업하고 먹고살게 없어서 호스티스를 했다는 것은 좀 이해하기 어렵더군요. 혹시 이유를 알고 계신 분?

2014/08/04

타블로이드 전쟁 - 폴 콜린스 / 홍한별 : 별점 4점

타블로이드 전쟁 - 8점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양철북

19세기말, 토막난채 발견된 시체가 신원이 마사지사 굴든수프로 밝혀진 후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 마틴 손에 대한 재판, 그리고 사건에 대해 보도하며 선정적 보도의 끝을 보여준 퓰리처의 월드와 허스트의 저널지의 경쟁을 그린 논픽션.

일단 추리애호가로서 빅토리아시대 말, 그야말로 셜록 홈즈 전성기에 디테일하게 그려자는 사건 수사와 재판과정은 굉장한 볼거리였습니다. 과학 수사의 초창기로 아직 지문 대신 베르티용 측정법이 사용되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혈흔 등에 대해서는 과학수사가 펼쳐지는 부분, 시체가 포장되어 있던 종이의 출처를 밝히는 부분, 여러 목격 증언을 통해 용의자를 특정하는 과정 등은 현대 수사물이라 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고문에 의존하지 않는 냉정한 수사라는 점도 의외였습니다. <살인의 추억> 보다도 더 현대적인 수사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드네요.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 시체 없는 (또는 시체의 정체가 불명확한) 사건에 대해 혐의를 물을 수 있느냐라는 쟁점이 부각되는 것도 좋았고 마틴 손의 변호를 맡았던 당대 최고의 변호사 하우의 뛰어난 솜씨도 인상적으로 피고인을 무죄로 만드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고 하며 그것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행동도 주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 예를 들어 이전 사건에서는 사건의 핵심 증인을 돈을 주고 홍콩으로 이민을 보내기까지 했다고 묘사됩니다 - 페리 메이슨이 연상되기도 하더군요. 특히 잔재주가 아니라 실제 변론 솜씨도 일품이었다는 점에서 그러한 생각을 뒷받침해 줍니다. 오거스터 낵이 마틴 손이 범인이라고 자백한 후 법정에서 그녀를 박살내버리는 장면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죠. 검찰측 증거를 반박하는 증거를 확보하는 솜씨 (사건 현장의 욕조는 굴든수프의 몸을 담아 썰기에는 너무 작았다!) 역시 마찬가지고요. 마틴 손이 사형선고를 받은 뒤에도 배심원단의 음주행위를 적발하는 등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도 무척 멋져 보였습니다. 뭐 개인의 명예가 달렸던 문제이긴 했겠지만....

아울러 정말로 진상이 무엇인지 결국 재판이나 수사로는 밝혀지지는 않지만 책에서 나름대로 결론내린 것도 마음에 든 부분입니다. 굴든수프의 사체를 조사했을때 반항한 흔적은 있어도 섬유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오거스터 낵 체포 시 사건 당시에 발생했을 것으로 의심되는 멍자국이 있었던 점, 그리고 간과되었지만 범행현장에서 빈 와인병이 발견되었다는 점... 즉 굴든수프와 와인을 마시고 알몸으로 있다가 갑자기 칼로 찌를 수 있는 사람이 누구였을까? 라는 단순한 질문의 답인 것이죠. 굴든수프가 게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상대방이 마틴 손일리는 없었을테니 답은 오거스터 낵! 
사건과 재판의 흐름, 이후의 행동을 보아도 오거스터 낵은 정말로 대단한 팜므파탈로 그녀의 자기 합리화와 자기 확신을 지금 시각으로 보면 소시오패스라 해도 무방한 인물이라 생각되는데 예전에 읽었었던, 비슷한 시대를 무대로한 <밀랍 인형>의 미리엄과 좋은 비교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책의 또다른 축인 황색지의 보도경쟁은 현재 시점에서도 계속 반복되는 것이기에 씁쓸함이 느껴지기는 했습니다만 치열한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네요. 저 역시도 선정적인 보도에 휩쓸려다니는 일반인 속성에 더 가깝기도 하고요. 무엇보다도 허스트의 말대로 사건을 실제로 만들어서까지 특종을 만들고 판매부수를 올린다는 전략은 지금 보아도 대단하다 싶습니다. 추리 앤솔로지에서 보았던, 정말로 사건이 없는 시골 촌마을 신문사에서 기사를 마련하기 위해 강력 사건을 저지른다는 단편소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사건에 관련된 여러가지 촌극들, 예컨데 굴든수프 사체의 음경 특징에 대해 재판정에서 논하는 부분, 마틴 손의 잘생겼던 얼굴을 평한 여러명의 증언이라던가 일종의 "아이돌"이 되었다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마틴 손의 최후와 오거스터 낵이 어떻게 되었는지, 신문들의 경쟁이 어떻게 마무리되었으며 사건을 맡았던 기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등 후일담이 꼼꼼한 것도 좋았고요.

결론내리자면 범죄 논픽션으로 보아도 손색없으며 황색언론의 치열했던 보도행태를 다룬 기록물로 보아도 손색없는 책이기에 별점은 4점입니다. 추리, 범죄물 애호가나 논픽션 애호가분들께 적극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2014/08/01

순교자 - 김은국 / 도정일 : 별점 3점

순교자 (양장) - 6점
김은국 지음, 도정일 옮김/문학동네


6.25 전쟁 중 국군이 평양을 탈환한 후, 이대위는 장대령의 지시로 평양 목사 14명이 북한군에게 끌려가 12명이 총살당하고 두명만 살아남은 사건의 진상 조사를 시작한다.
생존자 중 신목사는 사건의 진상을 계속 감추는데 과연 12명 순교자에 얽힌 진실은 무엇인가?


6.25를 배경으로 종교가 무엇인지,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해 쓴 순문학 (이 링크의 작품들은 대부분 순문학 스타일의 장르문학입니다만) 중편.
원래 저의 독서 취향이라면 거들떠도 보지 않을 책이죠. 문학동네 책들은 여러권 읽어봤지만 세계문학전집은 손에 잡은게 대체 얼마만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여튼 읽게 된 이유는 순교자로 대접받는 12인의 목사의 죽음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미스터리 형태로 다루었다는 소갯글을 어디에선가 보았기 때문입니다.

의도는 약간 불순했지만 생각보다는 훨씬 괜찮은 작품이기는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확실히 종교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된 것이 좋았어요. 결국 종교란 비참한 현실 뒤에 더 나은 무언가가 있다고 믿게 만드는, 어떻게 보면 일종의 마약과 같다는 것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사실 기독교든 불교든 이슬람교든 조로아스터교든 그게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결국 다 신자들의 "믿음" 문제일 뿐이죠.
덧붙이자면 이런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문학이구나 싶은 생각도 오랫만에 들었어요. 그동안 너무 가벼운 독서만 했나 봅니다.

아울러 14명의 목사가 잡혀가서 12명은 처형당하고 2명만 살아남은 사건의 진상이 무엇인지 밝혀나가는 미스터리 스타일의 전개도 꽤나 흥미로운 부분이었어요. 군대 내에서 벌어진 죽음 뒤에 숨겨진 진실이 무엇인지를 파헤친다는 점에서 약간 jsa가 떠오르기도 했고요. 아쉽게도 진상, 결국 죽은 12명 중에 배신자가 있었던 것이고 신목사와 한목사가 살아남은 것은 끝까지 당당했고 운이 좋게 처형 순서가 뒷 순서였다는, 단지 운에 불과했다는 진상이 중반부에서 밝혀지기에 살짝 김이 빠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충분한 재미를 가져다 줌과 동시에 진짜 순교자는 살아남은 신목사라는 것에서 짙은 여운을 남깁니다. 6.25, 특히 평양을 점령했던 때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 역시 볼거리이고 말이죠.
장르문학 팬으로서 조금 덧붙이자면 이대위의 조사활동을 조금 더 디테일하게, 그리고 하드보일드스럽게 그렸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랬다면 정말로 <공동경비구역 JSA>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감상적인 측면에서 지금 읽기에는 조금 낡은 기분도 들고 중반 이후의 재미는 떨어지나 좋은 작품임에는 분명한 만큼 관심이 있으시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분량도 적절하다는 미덕도 갖추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