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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11

사망 추정 시각 - 사쿠 다쓰키 / 이수미 : 별점 3점

사망 추정 시각 - 6점
사쿠 다쓰키 지음, 이수미 옮김/소담출판사


지역 유지 와타나베 쓰네조의 외동딸 미카가 유괴당하고 1억원의 몸값을 요구하는 전화가 걸려온다. 바로 수사에 나선 경찰은 치밀한 범인의 계획때문에 몸값을 잃을까 우려하여 전달하는 것을 포기하나 이후 곧바로 미카의 시체가 발견되자 경찰은 수사상의 문제가 아니었는지에 대한 비난위기에 직면한다. 특히나 쓰네조로부터 검은 돈을 받아왔던 현경의 모리타 본부장은 심한 압박을 받게되어 어쩔 수 없이 사망 추정 시각에 대한 검시 조서를 조작하고 동네 건달인 쇼지를 범인으로 날조하게 되는데....

잘 몰랐던 작가의 신선한 법정물. 미카 사건의 상세한 수사과정이 펼쳐지는 초반부, 시체 근처의 지갑에서 돈을 훔친 뒤 시체를 발견하고 도망간 동네건달 고바야시 쇼지를 범인으로 날조하는 과정이 그려지는 중반부, 가와이 도모아키 변호사가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쇼지의 국선 변호인으로 임명된 뒤 조사해본 기록들을 통해 쇼지가 진범이 아님을 확신하고 항소심에 임하는 후반부로 나뉘어집니다.

일단 장점이라면 법조인 출신이라는 작가의 이력다운 디테일이 정말 압권입니다. 때문에 작품을 읽는 내내 강하게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특히나 쇼지에게 누명을 씌우는 수사기관의 조작 과정은 정말 숨이 막힐 정도였어요. 본부장 이하 모든 담당자가 어떻게든 쇼지를 범인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날조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펼쳐지기 때문인데 이후 가와이 변호사가 그 헛점을 여러개 눈치챌 정도로 허술한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정말 이 정도까지 적극적으로 나서면 그 누구도 쉽게 빠져나갈 수 없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천라지망"이랄까요. 검찰, 경찰때문에 실형을 선고받은 뒤 무죄가 된 실제 사례가 떠오릅니다. 바로 얼마전에도 "친딸 살해 누명을 20년만에 벗어났다" 는 뉴스가 떴기도 했으니까요.
아울러 초반부 유괴범이 몸값을 받아내려는 작전도 추리적으로 꽤 괜찮은 편이었으며 이후 가와이 변호사가 항소를 준비하고 법정에서 승부를 벌이는 후반부 이야기는 법정물의 모범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긴박감이 잘 살아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습니다. 첫번째는 2001년이 무대인데 촌동네이고 동네 건달을 상대로 한 조작 수사라 하더라도 그 과정은 지나친 감이 있다는 점입니다. 인권을 무시한 강요된 수사인데 미란다 원칙에 대한 설명도 없고 변호사도 없는 상태에서 밤을 세워가면서 폭력으로 진술을 얻어낸다는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돼잖아요? 이게 20세기 초중반, 아니 한 80년대만 되도 그러려니 했을텐데...
그리고 초반부터 와타나베 쓰네조는 범인을 이미 짐작한 것으로 보이나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도 앞뒤가 맞아보이지 않습니다. 유력한 용의자의 이름을 초반에 대지 않는 것도 이상할 뿐더러 쓰네조라는 인물 자체가 딸은 금지옥엽처럼 귀하게 키웠을 뿐더러 자신의 적은 가차없이 부숴버리는 냉혈한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합니다. 딸이 죽은 다음에 모든 활력을 잃었다고는 해도 최소한 복수는 했을 것 같은 인물인데 말이죠. 범인이 유카를 죽인 이유도 솔직히 잘 와닿지 않았고요.
마지막으로 가와이 변호사의 노력은 항소재판은 속심이 아니라 사후심이라는 것, 즉 1심 판결이 타당한지만 본다고 하는 재판장의 논리로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고 끝나는데 타당성 여부를 검토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리송한 부분이었어요. 경찰 수사의 왜곡이야 본부장이 검은 돈을 받은 것이 원인이라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법부가, 그것도 현장과 떨어진 도쿄에서의 재판이 이렇게까지 대충 이루어진다는 것은 제대로 설명되지 않아서 납득하기가 좀 어려웠어요.
무엇보다도 작품의 가장 특이한 점이기도 한 부분, 즉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는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고 쇼지의 누명역시 벗겨지지 않는다는 점때문에 작품이 약간 모호해지는 느낌이 들더군요. 신사회파라는 소갯글에도 적합한, 사법제도의 부조리를 드러내기에는 적합한 내용이나 하나의 완성된 소설로 보기에는 모자란 부분도 있다 생각됩니다. 범인도 멀쩡히 있고 쇼지는 누명을 쓴 채 무기징역인데 가와이 변호사 혼자 사법제도의 모순을 깨닫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라는 식으로 끝맺으니 약간 맥이 빠질 수 밖에요. 뭐 논픽션, 르포르타쥬 수준의 사회 고발성 강한 작품으로 본다면 큰 단점은 아니긴 합니다. 현실적이기도 할테고요.

여튼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으나 최소한 "신사회파"라는 홍보문구에는 걸맞게 이 사회의 모순과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좋은 작품입니다. 재미 또한 별로 빠지지 않는 만큼 법정물에 관심있으신 모든 분들께 추천드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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