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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8

왕과 서커스 - 요네자와 호노부 / 김선영 : 별점 2점

왕과 서커스 - 4점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엘릭시르
아래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전 취재겸 대단한 목적없이 네팔에 도착한 <<월간 심층>>의 기자 다치아라이 마치는 우연히 네팔 왕실 가족 피살 사건을 알게되어 취재를 시작한다.그녀는 숙소 도쿄 로지의 여주인 차메리를 통해 왕궁 경비대 소속인 라제스와르 준위를 만나 인터뷰를 시도하나 준위는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을 거부한다.
다음날 다치아라이는 '밀고자'라는 단어가 몸에 새겨진 살해된 준위의 시체를 발견하고, 이를 기사의 핵심으로 쓰려 하나 이후 여러가지 단서들을 모아 사건의 진상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데...

어쩌다보니 국내 출간작은 거의 빼놓지 않고 읽고 있는 요네자와 호노부의 장편. <<안녕 요정>>의 등장인물이었던 다치아라이 마치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입니다. 작품 소개를 보니 이런저런 상도 많이 수상했더군요.

읽으면서 일종의 '사회파' 추리물이라는 점에 놀랐습니다. 네팔을 무대로 보도라는 행위가 무엇인지, 그 의미를 묻고 있는데, 작가의 전작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류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2001년 네팔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왕실 가족 살해 사건을 주제로 보도, 기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의미의 작품을 써 내려갔다는 점에서 그 노력과 열정에는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네요.

그리고 사회파라고는 하지만 추리적으로 요네자와 호노부라는 작가의 명성에 걸맞는 부분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라제스와르 준위의 시체 등에 새겨진 'INFORMER'라는 단어입니다. 사전적 의미로 자주 쓰지 않는 말이라는 것과 네팔의 문자가 아닌 영문자로 새겼다는 점에 주목하여 글자의 내용보다 글자를 새긴 이유, 행위에 집중하여 결과를 이끌어내는 부분입니다. 옷을 벗긴 이유를 숨기기 위해서라는 진상도 나쁘지 않았어요. 밝혀진 진상, 즉 범인과 시체를 옮긴 사람든 동일 인물이 아니라는 것 역시 꽤 기발했고요.

그 외에도 숙소 도쿄 로지와 다르마길, 인드라 초크, 타멜 지구 등 카트만두의 여러 거리들, 셀 로티와 달디단 치야와 모모, 하루에 두번 식사를 하는 네팔 사람들의 식습관 등 디테일한 풍광 묘사 역시 괜찮았습니다. 여정 미스터리의 느낌을 전해줄 정도였어요.

허나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그다지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추리보다 사회파적인 부분에 중심축이 놓여져 있는 탓이 큽니다. 작가가 독자들에게 무언가 물음을 던지기 위한 내용이 너무 길고 장황하거든요. 다치아라이가 네팔에 관광 관련 기사를 쓸까 하고 도착한 시점에서 왕실 가족이 살해당하고, 다치아라이가 비공개 인터뷰한 라제스와르 준위가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는 과정까지가 무려 300여페이지에 달할 정도입니다. 등장인물도 많고, 이런저런 소개할 것들이나 세세한 설정이 많긴 하지만 좀 지나치죠.
300여페이지에 달한 서두에서 정작 추리에 필요한 복선은 이웃방 미국 젊은이 롭의 말버릇이었던 '치프가 있다', 그리고 야쓰다에 대한 몇몇 세세한 설정들 뿐이라는 것도 지루함을 더합니다. 정작 롭의 말버릇과 총이 연결되는 과정은 일종의 숨은 그림 찾기일 뿐이며, 야쓰다와 대마초 밀매를 연결시키는 과정도 마찬가지라 이렇게 길게 풀어낼 필요가 있는지도 의문이에요. 마찬가지로 총이 없어졌을 때의 도쿄 로지내 사람들 위치도 표로 만들면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풀어 쓴 것에 불과합니다.

또 핵심 사건이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것도 문제입니다. 전혀 다른 동기, 전혀 다른 관계자가 우연히 한 장소에서 조우하여 각기 다른 의도를 펼칠 기회를 갖게 된다는 것인데 설득력이 낮아요. 자세히 설명해 드리자면, 앞서 이야기한 다치아라이의 추리, 즉 '글자를 새긴 것은 다른 의도가 있었다'는 라제스와르 준위 살인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준위가 살해당한 이유는 야쓰다와 대마초 밀매 관련 트러블이 벌어진 탓이며, 이를 위해서는 문구가 새겨지거나 시체가 이동될 필요가 없습니다. 준위의 시체를 옮겨 글자를 새기고 위장한 것은 다치아라이가 오보를 낼 것을 의도한 사가르의 부수적인 행동이고요. 이러한 일이 연쇄적으로 딱 맞게 일어날 확률은 기적에 가깝죠.

차라리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주제라도 공감이 갔더라면 그나마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겠지만 이 역시 전혀 공감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기레기' 라고 불리우는 기자의 행태들, 제대로 된 취재도 없이 자신의 기사가 어떠한 영향력을 발휘할지 생각도 하지않고 기사를 뿌려버리는 막장 행태는 저도 심하게 불만입니다. 하지만 다치아라이가 '라제스와르 준위는 기자와의 인터뷰 후 '밀고자'라는 글자가 새겨진 채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었다.'라는 사실을 시체 사진과 함께 기사화하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기까지는 사실이라 문제될게 전혀 없습니다. 독자들이 추측으로 '아마 왕실 내부의 정보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을 감추기 위한 누군가에게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생각하든 말든 그건 그 이후의 일이에요. 그리고 기사 발표 후 후속 기사를 준비하다가 사가르가 사실은 자기가 꾸민 짓이었다고 폭로한다? 솔직히 일본에서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겁니다. 다치아라이 역시 '사건은 미궁에 빠졌으며, 한 소년이 자작극이라고 주장하고 나섰지만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다.'정도로 마무리하고 네팔을 뜨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사가르의 말대로 기자들이 멍청한 쓰레기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은 아무리 생각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다치아라이가 기사를 쓰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먹고살기 위해서라고 작중에서 설명됩니다. 사실 먹고살기를 제외하면 '이곳이 어떤 곳인지, 내가 있는 곳이 어떤 곳인지, 밝혀내고 싶어.'라는 말. 많은 사람들이 같은 내용을 취재하고 보도하지만 그것은 세상이 어떤 곳인지를 알기 위한 무언가를 완성해가는 과정이다라는 말은 전부 이상일 뿐이에요.
이런 면에서 차라리 라제스와르 준위의 생각이 더 새겨들을만 합니다. 사람들이 기자를 믿을 하등의 이유는 없으며, 또한 진실만큼 왜곡되는 것도 없다는 것인데 100% 동의합니다. 어차피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이라는 점에서 말이죠. 다치아라이가 자신의 일에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항변하지만 "도둑에게는 도둑의 신념이, 사기꾼에게는 사기꾼의 신념이 있다. 신념을 갖는 것과 그것이 옳고 그름은 별개야." 라는 답에 할 말을 잃고 마는 것 역시 당연합니다. 맞는 말이니까요. 신념 운운하기 전에 먹고 실기 위해서, 그리고 일본의 독자들에게는 네팔 왕궁 사건 기사는 서커스 쇼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는게 보다 솔직한 태도였을 것입니다. '앎'을 위해서, 무언가 '완성'해 나가는 과정을 위해서라는 말은 솔직히 얼토당토않죠.
제가 이렇게 현실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나이가 든 탓도 크기야 하겠지만 이상과 현실은 엄청나게 다르다는 것은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이런 주제로 글을 쓰고 싶었다면 국내의 현실을 반영하여 쓰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네팔을 무대로 구태여 쓸 필요는 없어보였어요. 작가 스스로 네팔 왕실 사건을 일본 독자들에게 호기심거리고 던져 서커스화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드네요. 기자는 안되고 작가는 써도 되는건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작가의 전작에 비하면 추리와 재미면에서는 많이 부족했습니다. 딱히 추천드리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2016/11/27

역시 빵이 좋아! - 야마모토 아리 / 박정임 : 별점 1점

역시 빵이 좋아! - 2점
야마모토 아리 지음, 박정임 옮김/이봄

조리사 면허를 취득한 일러스트레이터, 만화가 야마모토 아리의 빵에 대한 에세이 만화... 인 줄 알았지만 생각과는 전혀 달랐던 작품.

130여종의 일본 빵집의 빵을 소개하고 있는데 빵 한개에 1~2페이지 분량으로 빵 그림, 재료와 맛에 대한 설명, 잘 어울리는 술이나 음료가 소개되고 끝납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에요.
1. 빵 소개 : 눈이 번쩍하는 매운맛, 캐슈너트와 블랙 페퍼.
2, 특징 소개 : 블랙 페퍼의 매운 맛이 찌릿찌릿! 수제 효모 베이스의 산미도 서서히 올라와! 이 맛 엄청 자극적!
3. 부가 정보 : 이건 틀림없이 육류와 어울리는 맛이야. 비엔나 소시지와 정말 잘 맞아! 화이트와인이랑 드세요.

이외에 중간중간 아주 약간의 개그나 아이디어가 들어간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만화라고 부르려면 최소한의 이야기는 필요한데 이래서야 빵 소개 책자에 불과하죠. 그렇다고 딱히 작화가 빼어난 것도 아니고요.

빵집 순례를 위해서도 여러모로 아쉽습니다. 주로 도쿄에 있는 빵집들이 소개되지만 빵집 이름 뿐, 상세 주소나 지도도 소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레시피라도 실렸더라면 좀 나았을텐데, 빵이라는 소재 특성 상 집에서 만드는 것은 거의 무리이니 이 역시 기대할게 못됩니다. 약간의 어레인지 정도 (오븐 토스트에서 구워 먹는게 좋다던가) 만 실려있을 뿐입니다.

정보 소개 측면에서는 그나마 편의점에서 파는 빵인 (<<세븐 일레븐>>) '버터 스카치', '휩크림 듬뿍 데니시' 소개 정도만 괜찮았던 편인데 차라리 이런 소재로 끌고 가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빵이 아니라 '편의점이 좋아' 식으로 말이죠. (우리나라의 편의점 여왕 다인님이 한번 쓰셔도 좋을 듯)

여튼 빵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기대가 컸는데 아쉽습니다. 차라리 우리나라에서도 구할 수 있는 빵 소개였다면 점수가 조금은 높지 않았을까 싶은데 별로 건질게 없어요. 일본 맛집 소개 블로그를 보는게 더 낫지 싶습니다. 별점은 1점입니다.

2016/11/26

검색, 사전을 삼키다 - 정철 : 별점 2.5점

검색, 사전을 삼키다 - 6점
정철 지음/사계절


네이버, 다음 카카오에서 웹 사전을 만들고 있는 정철씨가 쓴 사전과 검색에 대한 책.
사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개괄 및 간략한 사전의 역사, 사전 역사에 있어 활약했던 유명 편집인과 저자들이 소개된 후 사전과 검색의 차이와 검색을 어떻게 구현하는지에 대한 간략한 이론과 저자의 경험, 그리고 검색의 문제와 미래에 대한 고찰로 이어지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전의 역사는 분량상 큰 변곡점만 짚어주고 있지만 개요를 이해하기에는 괜찮은 수준입니다. 무엇보다도 검색 전문가로서 사전을 만드는 방법을 디테일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장점만큼은 분명합니다. 흔히 이야기하지만 그 실체를 감잡기 어려웠던 '말뭉치 (코퍼스)'를 활용하여 어떻게 사전을 만드는데 응용하는지와 같은 것이 좋은 예입니다. 말뭉치는 빈도와 분포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예문을 뽑기도 좋고 저빈도 사용례를 찾아 사전에서 제시하는 것도 가능해 졌다는 것이 그것이죠. 그러면서 서울대학교의 '꼬꼬마 세종 말뭉치 활용 시스템'과 같은 사이트도 알려주는 등 제공되는 정보도 풍성해서 마음에 드네요.
과거 '백과전서'와 현대의 '위키 백과' 모두 마찬가지로 토론과 논쟁이 사전 편찬의 가장 중요한 항목이라는 것도 새겨 봄직 합니다. 실시간성, 정보의 진위 여부, 언론 통제 등을 극복하기 위해 당연한 방법이고 앞으로의 사전은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당연하겠죠.

검색 엔진의 검색 방법론인 '색인'에 대한 설명은 이런 저런 컨텐츠에서 많이 접해보기는 했지만 '넘나드며 읽기' 방식을 극대화했다는 이론이 독특하게 다가왔습니다. 책은 원래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필요가 없고, 무의미한 부분은 그냥 넘어가도 되는 매체이다. 검색 역시 지식을 효과적으로 소비할 수 있도록 지식과 지식 사이를 점프하며 둘러볼 수 있게 해 주는 도구라는 것인데 신선한 발상이었어요. 꼭 맞다라고 이야기하기는 좀 어렵겠지만요.
이후 검색이 진화하면서 랭킹 시스템이 도입되고, 야후에서 다단계 트리를 만들어 수작업 랭킹 시스템을 만든 후 구글이 페이지랭크로 천하 통일을 이루었다는 내용도 재미있었습니다. 많이 인용된 논문이 좋은 논문이듯이 많이 링크된 페이지가 좋은 페이지다라는 아이디어였다는데 참 그럴듯해요. 물론 지금은 단순 링크는 많이 사라진 만큼 다른 복잡한 방법론이 도입되었으나, 누구나 알 수 있고 그럴듯하며 아날로그 시대로부터 증명된 것이야말로 진실 그 자체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인 듯 합니다.

아울러 검색과 큐레이션 서비스의 비교는 현업에서의 고민거리와 조금 유사한 점이 있어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큐레이션은 검색 보다는 우연, 세렌디피티와 인스퍼레이션을 위한 것이라는 의견은 공감이 갑니다. 실제 개발을 위한 알고리즘, 서비스 방식에 있어 단순히 이렇게만 구분할 수는 없겠지만요.

그리고 네이버, 다음카카오 모두에서 검색 서비스를 기획 개발한 개발자로서의 경험담도 재미있었습니다. 저는 주로 네이버 사전을 쓰지만 다음에는 다음 사전도 한번 써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전의 미래와 좋은 검색이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도 생각할 거리가 많았고요.

이렇듯 재미있는 부분도 많고, 또 개인적으로 '백과사전'과 같은 형태의 책을 좋아하기도 하고 (<<사전, 시대를 엮다>>와 같은 책을 찾아 읽을 정도로), 또 오래전 전자사전을 만드는 회사에서 근무한 적도 있어서 그런지 더 재미있게 읽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단점도 명확합니다. 한권의 책으로서의 완성도가 문제에요. 저자의 개인 블로그, 개인 글을 두서없이 편집한 느낌이 강하거든요. 저자 스스로 아카이브를 만들고 DB화 하는 작업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목차, 순서는 그닥 정리되어 있지 못합니다. 사전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검색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러다가 유명 사전 편집자를 소개하고하는 식으로 이야기의 흐름이 두서가 없어요.
수록된 내용도 검색 방법론에 대한 내용을 제외하고는 비전문가가 쓴 티가 난다는 것도 역력합니다. 특히 사전의 역사에 대한 부분이 심한 편이에요. 전문 사학자가 아닌 만큼 한계는 명확했겠지만 이럴 바에야 잘 아는 분야에 집중해서 책을 쓰는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덧붙이자면 저자가 제기한 문제점, 국내에서 종이 사전이 사라지고 업데이트가 되지 않는 것에 대해 문제만 제기할 뿐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도 아쉽습니다. 개인으로서 한계야 있었겠지만 이 정도 책을 출간할 만한 위치와 경력의 소유자가 현실적인 문제만 이야기하는 것은 좀 부족하지 않나 생각되거든요. 특히나 이 문제는 제가 전자사전 업체에서 근무했던 거의 10여년 전부터 불거진 문제인데 해결책이 전혀 없이 현재까지 흘러왔다는 점에서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결론내리자면 재미도 있고 그런대로 건질거리도 있지만 보다 심도깊은 지식을 얻기 위한 시작점, 진입점 정도의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별점은 2.5점입니다.

2016/11/20

별도 없는 한밤에 - 스티븐 킹 / 장성주 : 별점 3점

별도 없는 한밤에 - 6점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황금가지

호러의 제왕 스티븐 킹의 중단편집. <<사계>>처럼 4편의 중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야기는 그야말로 압권입니다. 작품들 모두 어디선가 봤던 설정들이 대부분으로 아이디어는 대단치 않아요. 대단한 복선이나 극적인 반전이 있지도 않고요. 허나 독자를 몰입시키는 능력은 정말이지 극에 달해 있습니다. 읽으면서 정말이지 손에서 떼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600쪽 가까운 분량을 하루에 읽을 정도로 말이죠.

한마디로 왜 제왕이 제왕인지를 다시금 느낄 수 있게 하는 단편집입니다. 스티븐 킹과 장르 소설 애호가분들 모두에게 추천드립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길.

<<1922>>
1922년, 네브래스카 주 헤밍퍼드홈에 사는 윌프리드 릴런드 제임스는 아내 알렛을 아들 행크와 함께 처참하게 살해한다. 이유는 그녀가 땅을 팔지 못하게 하기 위해.
하지만 그 이후 그의 삶은 지옥으로 변해간다. 시체를 은닉하던 와중에 쥐떼에 뜯어먹히는 처참한 아내의 시체를 목격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서서히 정신적으로 붕괴되어 가던 아들 행크는 이웃집 딸 섀넌을 임신시키지만 섀넌의 아버지가 둘을 갈라놓자 가출한다. 그리고 섀넌을 되찾기 위해 강도가 되고만다. 결국 섀넌을 만나 도주하는데에는 성공하지만 '연인 강도단'으로 연이어 강도 행각을 벌이다가 둘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행크의 최후를 쥐에 물린 상처로 사경을 해메이던 중 아내의 유령과 함께 실시간으로 바라본 제임스는 이후 팔 하나와 그렇게까지 지키려 했던 땅도 잃어버린다.
그리고 그는 끝까지 가기 싫어했던 오마하로 가 홀로 8년을 버티다가 자살한다....

자살한 사람과 살인자는 지옥에 떨어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길을 못 찾아서 헤멜 일은 없을 것이다. 지난 8년간 나는 그곳에서 살았으니까.

아들과 함께 아내를 죽인 뒤 파멸해가는 한 남자를 1인칭으로 그린 소설.

사실 내용은 별게 없습니다. 아내를 죽인 뒤 죄책감과 공포로 인해 서서히 붕괴해가는 주인공, 마찬가지로 비정상이 되어가는 아들 행크, 그리고 그 둘의 삶에 휩쓸려 무너져가는 이웃들을 그려내는 적나라한 묘사가 전부입니다. 범죄, 살인 이후 무너져가는 인물을 그린 작품이야 차고 넘칠 정도로 많죠.

그러나 이런 뻔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제왕의 필력이 너무나 압권이라 읽는 내내 손에서 떼기 힘든 작품입니다. 그야말로 생지옥이 펼쳐지거든요. 220여페이지에 달하는 중편인데 거의 모든 페이지에 공포와 혐오, 증오가 가득차 있습니다.
단순히 죄책감에서 비롯된 심리 묘사 뿐 아니라 제왕다운 고어한 묘사도 대단합니다. 그 중에서도 누구나 혐오스러워하는 '쥐'를 매개체로 한 일련의 묘사는 정말 최고에요. 아내의 시체는 물론 자살한 아들 시체까지 쥐에가 파먹힐 뿐더러, 본인 스스로는 환각을 보고 자기 자신을 씹어먹어 죽는다는 결말에 이르는 과정까지의 묘사는 흡사 크리쳐물을 읽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어요.

그리고 생지옥에 대한 고어스러운 묘사만 펼쳐졌다면 반복으로 인해 조금은 둔감해 질 수도 있었겠지만 순수했던 아들 행크가 변해가는 과정이라던가 천사와 다름없었던 희생자 섀넌과 같은 피해자들에 대한 묘사를 통해 극적인 효과를 배가시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이러니라면 알렛이 한 말대로 했더라면 이 가족은 최소한 지옥을 겪지 않았으리라는 것에 있습니다. 특히나 만취한 알렛의 주정을 통해 행크가 어머니 살해를 결심하게 만든 "임신은 시키지 마. 원 없이 훑어도 좋아, 네 물건이 만족해서 토할 때까지. 하지만 안에다 토하면 절대 안 돼. 그랬다간 엄마랑 아빠처럼 평생 한 집에 갇혀 살게 될 테니까"라는 말은 정말로 진실이었어요. 최소한 행크가 임신만이라도 시키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역시 어른들 말은 틀린게 하나도 없습니다....

물론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상황부터가 문제이긴 해요. 아무리 아내를 'bitch'로 묘사했더라도 아내를 살해하는데 아들을 끌어들인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죄인지라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누가 보아도 인간 이하의 범죄죠.
또 흔한 설정만큼 캐릭터들도 진부합니다. 책을 좋아하며 소들에게 여신들 이름을 붙여주는 주인공 제임스도 기시감이 많이 들지만, 행크와 섀넌이 강도가 되어 극으로 달리는 부분은 '보니 앤 클라이드' 그 자체입니다. 여기서 보니와 클라이드는 범죄에 중독된 것이라 하더라도, 행크가 섀넌을 만난 이후 강도행각을 계속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것도 이해는 잘 안되었습니다. 아울러 장점이라고는 했지만 행크와 섀넌을 다룬 부분은 약간 신파 멜로물같을 정도로 지나치게 감성적이라 호불호가 조금은 갈리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하고요.
주인공이 결국 땅을 잃는 과정도 뻔하고 작위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류의 작품 초심자는 견디기 힘들 정도의 섬찟한 작품이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뭐 이 책을 읽으시려는 분들께는 당연히 칭찬이겠죠?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5점. 장점, 단점이 명확한데 읽는 내내 눈길을 떼기 힘든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빅 드라이버>>
'뜨개질 클럽 시리즈'라는 코지 미스터리 시리즈를 쓰는 추리작가 테스는 강연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한 남자를 만나 강간당해 버려진다. 시체가 쌓여있던 현장에서 겨우 도망쳐 나온 후, 그녀는 스스로 복수할 것을 결심하고 단서를 찾아 나서는데...

전작과 마찬가지로 설정은 뻔합니다. 성폭행 피해자가 스스로 범인을 단죄한다는 복수극은 널리고 널렸죠. 영화 쪽으로는 <<네 무덤에 피를 뱉어라>>, 본 작에서도 언급된 <<왼편 마지막 집>> 등등이 생각나네요.

하지만 독자를 사로잡는 매력은 전편 못지 않습니다. 특히 한편의 범죄 스릴러로 손색 없는 디테일이 아주 좋아요. 테스가 강간범의 모습을 떠올리고, 범행의 강연회를 주선한 라모나 노빌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 그녀의 주변을 캐고 범인이 어디 사는 누구인지 확인한 후 복수를 위해 벌이는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설득력이 아주 높기 때문입니다.
복수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돌발상황, 예를 들어 라모나 노빌이 진짜 사건에 연루된 것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 라모나에게 총을 빼앗기는 상황, 그리고 처음 죽인 남자가 범인인 동생이 아니라 큰 형 빅 드라이버였다 등의 상황이 쉴새없이 몰아치는 것 역시 읽는 내내 흥미를 자극합니다.

아울러 코지 미스터리 작가인 주인공 테스도 마음에 듭니다. 성격적으로 아주 개성이 넘친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코지 미스터리 작가가 하드보일드스러운 응징을 계획하고 수행한다는 이질적인 매력에 더해 애완동물이나 네비게이션 등과 대화하면서 디테일을 잡아나간다는 묘사라던가, 작품을 위해 권총을 사고 사격 연습을 받았다는 식으로 그녀의 작가적 능력 몇가지가 이야기에 도움을 준다는 아이디어가 괜찮았던 덕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경찰에 신고하기 전, 자신에게 닥칠 상황을 상상하고 신고 대신 복수를 선택하는 장면도 아주 인상적입니다. 피해자가 또다른 피해를 우려하여 신고를 포기한다는 이야기는 참 여러모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네요.

하지만 <<1922>>에 비해서 완성도가 높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앞서 범죄물로서 괜찮은 연결고리를 갖추었다고는 했지만 라모나 노빌 - 레스터 스트렐키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너무 뚜렷해서 딱히 추리의 여지가 없는 것은 조금 아쉽습니다. 대놓고 '내가 범인입니다' 라는 식인데 그런 것 치고는 연쇄 강간-살인이 너무 오래 지속된거 아닌가 싶거든요.
그리고 테스가 실종되었다면 마지막 강연 의뢰인인 라모나에게 경찰 수사가 미쳤으리라는 것은 불보듯 뻔한데 테스의 귀걸이를 라모나가 가지고 있다는 것도 석연치 않았습니다. 팔기도 뭐하고, 잘못 들통나기라도 하면 명백한 증거가 될 텐데 너무 부자연스러워요.

마지막으로 빅 드라이버를 죽인 후 자살을 기도하던 테스의 죄책감이 사라질만큼 빅 드라이버 역시 사건에 깊숙히 개입한 인물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과정, 유일한 증인이 될 수 있는 벳시 닐이 마찬가지로 성폭행 피해자로 범행을 눈감아 준다라는 결말은 지나칠 정도로 작위적이라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때문에 제 별점은 2.5점. 딸자식 가진 부모로서 분노를 가지고 몰입해서 읽기는 했지만 명확한 단점으로 감점합니다.

덧붙여, 2014년 TV용 영화로 영상화가 되었더군요. 그런데 예고편을 보니 작중 애완동물, 네비게이션과 1:1로 나누는 대화 부분을 테스의 인기 시리즈 '뜨개질 클럽' 주인공 할머니가 가상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살짝 각색이 된 듯 했습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 중 하난데 이렇게 각색을 하다니... 여러모로 딱히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네요.

<<공정한 거래>>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스트리터는 우연히 만난 노점상 엘비드와 거래를 한다. 그의 수명을 늘리려면 누군가에게 그것을 옮겨야 한다는 것. 스트리터는 불알친구 톰을 미워한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 씨발놈이 내 여자를 뺏어 갔다고요!"

악마와 거래한다는 내용의 작품 역시 쎄고 쎘죠. 굳이 예를 들자면 졸문 <<계약은 충실하게>>도 있고요.

그래도 노점상이 악마라는 것에서 시작하여, 시한부 인생 대신 15년 이상의 수명을 약속하고 이후 받게될 수익의 15%를 요구한다는 등의 디테일은 독특했습니다.
또 거래 후 톰에게 닥치는 불행의 연쇄반응 역시 스티븐 킹답더군요. 과정이 정말 끔찍하기 그지 없거든요. 1인칭으로 그리면 <<1922>>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죠.
아울러 스트리터와 톰의 행복 - 불행의 지수가 한쪽에 쏠리는 일종의 '행복 질량 보존 법칙' 같은, 아니면 흡사 동양의 윤회 사상 비스무레한 전개도 볼 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처지긴 합니다. 악마와의 거래 후에는 일방적인 행복 - 불행의 과정만 나열될 뿐 딱히 반전도 없고 결말도 애매하기 때문입니다. 스트리터가 톰이 가졌던 행운까지 차지하고 만다는 결말은 영 와 닿지 않았어요. 악마와의 거래가 이렇게 해피 엔딩으로 끝날리가 없는데 말이죠.
하긴, 애초에 스트리터가 톰을 팔아넘긴 것도 딱히 설득력이 없습니다. 여자를 빼앗긴 남자는 그게 수십년이 지나더라도 복수한다는 교훈을 주려고 했던 걸까요? 저는 솔직히 스트리터가 가공할 정도로 찌질하고 속이 좁다는 느낌밖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 다른 악마와의 거래 소재 작품에 비하면 딱히 쳐줄 부분이 없는 소품입니다. 딱히 찾아 읽어볼 필요는 없습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
다아시는 1982년 만난 회계사 밥 앤더슨과 결혼하여 27년간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온다. 그러나 밥이 출장간 어느날, 리모컨 건전지를 찾기 위해 차고를 뒤지다가 우연히 밥의 비밀 창고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녀는 밥이 유명한 연쇄살인마 '비디'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뭐 이 역시 소재는 뻔합니다. 아내, 혹은 남편에게 자신의 정체를 비밀로 한 배우자, 혹은 다른 가족을 다룬 작품은 널리고 널렸으니까요. 수많은 슈퍼 히어로물이 대체로 그러하고, <<트루 라이즈>>같은 작품 역시 마찬가지겠죠. 이 작품처럼 배우자가 범죄자라는 설정 역시 많고요.

이런 류의 작품에서 배우자의 '정체'가 중요하다면, 보통 배우자의 정체를 눈치챈 순간부터 극적 긴장감이 생기게 되는데 이 작품 역시 같습니다. 게다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결말 두가지, 즉 '배우자의 은밀한 생활에 동참하거나', '그만두게 하거나' 중 '그만두게 하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 역시 예상대로에요. 보통의 드라마가 부부 동반으로 비밀 정보원이 되거나 슈퍼 히어로가 된다면, 살인마 이야기는 함께 하는 쪽 보다는 당연히 그만두게 하는 쪽이 정상적일테니... 결국 다아시가 밥을 죽인다는 결말인데 솔직히 여기까지는 너무 뻔합니다.

하지만 다행히 거장의 솜씨가 작품을 살리고 있습니다. 우선은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묘사가 대박입니다. 다아시가 밥의 비밀 창고를 발견하는 과정과 정체를 알아가는 과정의 묘사라던가, 이후 자신의 정체를 아내가 알았다는 것을 눈치챈 밥이 다아시에게 찾아가 이야기하는 장면 묘사 등은 서늘함과 긴장감이 잘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들과 딸을 생각하여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는 다아시의 딜레마 역시 설득력있어서 뻔한 전개에 충분한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고요.

결말도 뻔하기는 하지만 노형사 홀트가 등장하여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것 역시 마음에 든 점입니다. 밥의 잔인한 범행을 경찰 입으로 밝혀주면서 응징의 정당성을 높여주면서, 결국 다아시가 밥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체포되었을 것이라는 말로 다아시의 죄책감을 줄이는 좋은 선택이었다 생각되거든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 뻔한 소재로도 볼만한 이야기를 뽑아내는 거장의 솜씨를 볼 수 있었던 작품입니다. 이래저래 많은 공부가 되었달까요. 과연 비슷한 소재로 쓸 때 저라면 어떻게 쓸지, 한번 고민해 봐야 겠습니다.

2016/11/19

백미진수 - 단 카즈오 / 심정명 : 별점 4점

백미진수 - 8점
단 카즈오 지음, 심정명 옮김/한빛비즈

나오키상 수상작가이자 일본 현대 문단의 원로로 다자이 오사무와 친구이기도 했던 단 카즈오의 4계절 음식을 다룬 에세이집. 저자가 음식을 정말로 좋아하고, 술을 정말로 사랑한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깊은 애정이 담겨있는 글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일단, 문단의 실력자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에 대해 글을 썼으니 애초에 재미가 없기는 힘들겠죠? 짙은 애정이 묻어나는 좋은 글들이 가득합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묘사 역시 빼어납니다. "바깥 껍질을 벗긴 멍게를 알맞은 크기로 썰어 오이와 함께 식초로 무쳐 먹으면 후두부를 콕 찌르는 것처럼 형언하기 어려운 냄새와 맛이 난다. 잊고 있던 여름. 잊고 있던 유카타를 입은 여인. 잊고 있던 여인의 색정. 문득 입에서 후두부 언저리에 걸쳐 이런 것들을 까닭도 없이 상기시키는 듯한 희한한 느낌이다." 라던가 예레반이라는 도시의 코냑을 설명하며 "내게 천상의 여인이 아니라 지그시 다가오는 지상의 여인 같은 맛이었다."라는 표현과 같이 공감각적이면서도 소재를 넘나드는 상상력을 그려낸 묘사가 특히 발군이에요.

요리를 즐겼다는 말에 어울릴만큼 인상적인 레시피도 몇가지 수록되어 있습니다. 몇가지 참고삼아 정리해 봅니다.

<<금병매>>에 적혀있는 족발 삶는 방법.
'돼지 발의 털을 깨끗이 밉니다. 그리고 긴 땔나무를 하나만 아궁이에 넣고, 기름과 간장을 큰 그릇에 가득 채운 뒤 향신료인 회향과 팔각을 더해 잘 섞은 다음 뚜껑을 꼭 닫습니다. 두 시간이 지나기 전에 좋은 냄새가 솔솔 올라오면서 다섯 가지 맛이 고루 갖춰지는데, 그러면 이것을 깨끗한 큰 접시에 담아 생강과 마늘을 넣은 작은 접시와 함께 찬합에 넣어...'

본인 스스로 본고장의 맛 (클램차우더?)과 비슷하다는 바지락 차우더.
우선 냄비에 물을 두세 컵 정도 넣어 끓인 뒤 바지락을 집어 넣고 뚜껑을 덮는다. 바지락이 입을 벌리면 바로 불을 끄고 그대로 식힌다. 베이컨은 가능하면 뜨거운 물에 데쳐 작게 조각내고 양파는 잘게 썬 다음 프라이팬에 버터를 넣고 약한 불로 살살 볶는다. 이 때 마늘을 조금 넣고 볶는 편이 더 맛있다.
양파가 반투명한 색이 되면 밀가루를 적당량 넣고 볶다가 밀가루, 베이컨, 양파가 흐물흐물 이겨지면 바지락 맛국물을 붓고 덩어리가 생기지 않도록 정성껏 섞는다. 다 풀렸다면 약한 불에서 잘 저으면서 우유를 두 통쯤 부으시라. 적당히 걸쭉하다 싶을 때까지 우유나 바지락 맛국물을 보태면서 끓인 다음 소금 간을 하면 수프는 완성이다.
이제 건더기 차례다. 바지락을 껍데기에서 분리해 조금 남은 맛굴물 속에다 헹궈 모래를 제거한다. 바지락은 기호에 따라 잘게 써는 편이 좋을 수 있다. 셀러리도 잘게 썬다. 그 외에 감자를 작게 깍둑썰기 해서 오 분 정도 소금물에 삶아 꺼내놓는다. 그다음 미리 만들어둔 걸쭉한 수프를 불에 올리고 셀러리와 감자를 넣어 한소끔 끓기 시작할 즈음 바지락을 더해주면 끝이다. 싱겁다 싶으면 소금을 치고 너무 되다 싶으면 우유로 묽히고 부드러움이 부족하다 싶으면 버터를 더 녹인다.

중국의 동남참게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
<<맛의 달인>>에서 완벽한 찜요리 대결에 나옴직한 독특한 조리법이네요. 뭔가 걸식계도 떠오르고요.

우선 동남참게를 잘 씻은 뒤 움직이지 못하도록 다리를 실로 묶는다. 따로 자잘한 톱밥을 준비해 이 톱밥 속에 다진 생강, 다진 파, 후추 등을 섞어둔다. 여기에 고급술과 식초를 따라 흠뻑 스며들게 한다. 이제 동남참게의 표면을 톱밥으로 빈틈없이 감싸고, 그 위에다 잘 반죽한 점토를 동그랗게 둘러싸서 굽는다. 점토에 전체적으로 금이 가기 시작하면 재빨리 점토와 톱밥을 치우고 아직 뜨거운 게살을 입맛에 맞는 간장에 찍어 먹는다.

이외에도, 단순히 음식 이야기만 수록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두터운 작가의 인맥을 활용한 이야기들, 또 전쟁 당시에는 중국에서 보도반원 생활을 했고, 그 외 해외 여행 경험 등 워낙 파란만장한 삶을 보냈기에 이야기의 폭이 아주 넓어요. 여기에 본인의 유쾌하면서 대책없고 화끈한 성격이 더해져 즐겁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꼽는 베스트 에피소드는 중국 신징 근처 러시아인 부락에서 러시아인 바우스 부부와 1년 정도 함께 살 때의 잼 만들기 에피소드입니다. 보드카를 마시면서 잼 만들기를 하는데 부부가 다른 곳으로 가게되어 단 가즈오가 잼 젓기를 맡았는데, 그들이 돌아올 때 까지 젓기만 해서 결과물이 잼을 넘어선 그 무언가가 되었다는 결말인데 러시아인과 보드카, 그리고 단 가즈오가 만나서 제대로 시너지를 보여주는 그런 이야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듯 즐겁고 재미있으며 때로는 유용한 좋은 에세이집입니다. 최근 읽은 음식, 요리 관련 에세이 중에서도 최고로 꼽고 싶네요. 제 별점은 4점. 음식과 요리를 사랑하시는 분들이라면 모두 즐겁게 읽으실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덧붙이자면 "술안주라는 놈만큼 반가운 게 없다. 정말 술꾼에게만 주어진 하늘의 은혜 같다. 마시는 사람이 마시지 않는 사람보다 신의 가호를 많이 받는다니, 술꾼으로 태어난 보람이 있지 않은가."라고 서슴없이 말할 정도로 대단한 애주가라는게 눈에 띄는데, 이러한 점과 대책없고 유쾌한 성격을 미루어 볼 때 로산진이 우미하라(가이바라)라면, 단 가즈오는 이와마 소다츠같은 캐릭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간만에 준 4점이라는 높은 점수는 제가 <<술 한잔 인생 한입>>의 광팬인 탓 역시 클 듯 합니다.

2016/11/18

천사들의 탐정 - 하라 료 / 권일영 : 별점 3점

천사들의 탐정 - 6점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비채


일본 하드보일드의 대표 작가 중 한명인 하라 료의 (현재까지는) 유일한 단편집. 시리즈 캐릭터인 골초 사립탐정 사와자키가 등장하는 6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하드보일드의 거장답게 수록작 모두가 정통 하드보일드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의뢰인이 찾아오고, 시건을 의뢰받지만 또다른 의외의 사건이 벌어지며, 이에 휘말린 탐정이 진상을 파악하여 해결한다는 전형적 전개로만 이루어져 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빼어난 재미와 몰입감을 선사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합니다. 하드보일드 작품답게 추리적으로 정교하거나 놀라운 부분은 많지 않으나 몇몇 작품의 경우는 디테일이 상당한 수준이라 추리 애호가를 기쁘게 해 주기도 합니다. 작가 특유의 빼어난 묘사와 문체, 캐릭터들도 기대에 값하는 것은 물론이며, 전형적인 하드보일드물이 발표 당시 (1990년) 일본 상황에 꼭 들어맞도록 정교하게 배치되어 있다는 것 역시 놀라왔습니다.

아울러 후기 이후 작가의 말을 또 다른 짤막한 단편으로 대신하고 있다는 것도 특이하네요. <<선택받은 남자>>의 슌이치가 몇년 후 사와자키를 찾아와 탐정이 되고 싶다고 부탁하는 내용인데 한편으로의 완성도가 높지는 않지만 단편집을 마무리하기에는 아주 적절했습니다. 그만큼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노력일테고, 이러한 노력에는 찬사를 보낼 수 밖에 없네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점. 믿고 보는 하라 료 작품다운 수준의 좋은 단편집이었어요. 하라 료의 팬이 아니더라도 하드 보일드를 좋아하신다면 꼭 읽어보셔야 할 단편집입니다.

작품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기 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소년이 본 남자>>
어느 비오는 날, 사와자키에서 초등학교 5학년 소년이 찾아와 우연히 한 여성의 청부 살해 음모를 전해 들었다며 그녀를 보호해 줄 것을 요청한다.
마지못해 사건을 맡게 된 사와자키는 소년이 말한 여성을 미행하다가 은행의 은행장이 개인 권총으로 은행 강도를 쏘아 죽이고 본인도 중상을 입는 대형 은행 강도 사건에 휩쓸리는데...

단점부터 이야기하자면 미행하던 여성 니시다 사치코가 은행장 무토 에이지의 아내라는 것, 의뢰한 소년이 사실은 무토와 니사다의 아들이라는 것이 순차적으로 밝혀지는 과정은 딱히 추리의 여지가 없기에 아쉬웠습니다. 결국 소년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할 것으로 여겨 보디가드를 부탁한 것이고, 그 이유는 '총이 사라진 것 (공범인 은행 강도를 죽이기 위해)' 때문이라는 진상은 너무 쉽게 드러나니까요.

그래도 반대로 이야기하면 그만큼 진상의 설득력은 높습니다. 결국 소년의 의뢰가 아버지를 옭아매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결말은 여운을 남기기도 하고요.
아울러 초등학생 소년이 사건을 의뢰한다는 도입부가 흥미롭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우며, 여성에 대한 청부 살인 의뢰가 은행 강도 사건으로 바뀌는 과정 역시 절묘합니다. 상대가 누구건간에 정식 의뢰인으로 대하는 사와자키의 캐릭터 역시 인상적이었어요.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5점. 어딘가에서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다시 읽어도 좋네요. 사와자키 시리즈를 말할 때 빼놓지 않고 언급해야 할 수작이라 생각합니다.

<<자식을 잃은 남자>>
자기 공포를 혼자서 이겨낼 줄 모르면 아무리 나이를 먹었어도 어른이라고 할 수 없다. - 사와자키가 들이닥쳤을 때 두려움을 보이는 협박범 아소 사다유키를 보고 사와자키가 하는 생각.

유명 음악가 최정희는 사와자키에게 자기 딸이 당한 뺑소니 사건에 대해 무언가 아는 것이 없는지 문의차 찾아온다. 별 소득없이 돌아간 다음날, 그는 사와자키를 다시 찾아와 사건을 의뢰한다. 의뢰는 오래전 자신의 옛 연인에게 보냈던 연애 편지를 사라는 협박 사건 거래 현장에 동참해 줄 것....

주역인 최정희가 사실은 한국의 정보원이었다는 설정은 한국인으로서 아주 흥미롭습니다. 박정희를 위해 일하다가 민주 세력쪽으로 전향한 인물로, 그의 핵심 임무 중 하나가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 사건 (그랜드팰리스 호텔에서 '신민당' 대통령 후부 출신인 야당 지도자가 납치되었다!)이었다는 식의 디테일은 상당히 자세하게 우리나라를 조사했구나 싶었습니다.
아울러 최정희 협박 사건은 뺑소니와 아무 관련 없으며, 꽃뱀과 야쿠자가 얽힌 일종의 사기극이었다는 진상도 좋았습니다. 설득력도 높고요.

그러나 아주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렵습니다. 여섯살 먹은 딸의 사고사에 옛 애인이 낳은 아들이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까지는 아주 그럴듯한데, 그 이후 과정이 시시하기 짝이 없기 때문입니다. 협박범이 사실은 자신의 아들이라는 막장 드라마스러운 설정도 마음에 들지 않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한국인이 등장한다는 것 외에는 그냥저냥한 평작입니다.

<<240호실의 남자>>
카페 체인의 사장 니시오는 사와자키에게 딸의 조사를 의뢰한다. 사와자키는 딸이 니시오가 바람피우는 현장들을 따라다녔다는 조사 결과를 알려주고, 니시오는 다시는 여자와 그런 짓 않겠다는 말과 함께 떠난다.
그러나 며칠 뒤 니시오가 언제나처럼 러브호텔 240호실에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되고, 사와자키는 관련자로 사건에 연루되는데...

이 단편집 수록작 중 가장 추리적인 요소가 높은 작품. 니시오의 아내 미유키의 자백을 듣고, 그 자백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찾아내어 다시 딸 후미코의 자백을 이끌어내는 과정도 놀랍지만 두 번의 자백이 이어짐에도 사소한 증언의 실수를 찾아내어 진범을 마지막에 밝혀내는 사와자키의 추리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작중 등장하는 증언들에 의한 추리라 독자에게 공정하게 정보가 제공되는데, 이러한 점을 보면 본격물이라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에요.
니시오 후미코가 왜 아버지를 미행했는지와 같은 디테일, 거기서 이어지는 일종의 근친상간과 그에 따른 배신감을 암시하는 묘사도 상당히 극적이고요.

허나 긴자의 빨간머리 호스티스의 협박이라던가 니시오의 변태적인 성욕은 구태여 등장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였다 생각됩니다. 그냥 니시오가 문란했다 정도였어도 충분했을텐데 말이죠. 하라 료도 피해갈 수 없을 정도로 변태적 성묘사가 당대의 트렌드였던 걸까요?

별점은 3점. 과한 성적 묘사는 부담스럽지만 하드보일드 추리물로는 수작입니다.

<<이니셜이 'M'인 남자>>
새벽 1시, 와타나베 탐정 사무소로 전화가 걸려온다. 전화를 벋은 사와자키에게 한 여성이 자기가 곧 자살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유명 아이돌 아사부키 유미 자살 사건을 다룬 소품. 소재면에서는 실존했던 오카다 유키코 사건을 연상케 합니다. 당대 (80년대 후반~) 아이돌들의 실명이 살짝 등장하는 것도 반가왔고요.

하지만 사와자키에게 걸려온 전화는 '현장에 있었던 관계자 마쓰누마가 자신의 안전을 위해 매니저 미즈타니 세쓰코와 공모한 간단한 알리바이 트릭일 뿐' 이라는 것은 명백히 단점입니다. 일단 너무 작위적이에요. 그런 전화 한통 받았다고 스스로 사건 수사에 뛰어든다는 것도 설득력이 낮고요.
그리고 스타의 성장 과정을 낱낱이 기록하여 데이터로 남긴다는 마쓰누마 교수의 계획은 기발하지만, 이것이 아사부키 유미의 자살과 연결되는 과정의 설득력 역시 높지 않습니다. 이러한 묘한 설정과는 무관하게 마쓰누마와 결혼하지 못하여 환김에 자살한, 쉽게 이야기하자면 단순한 치정 문제에 의한 자살일 뿐이거든요.
매니저 미즈타니 세쓰코가 유미의 죽음 이후 용돈 벌이를 하는 과정을 무언가 있는 것처럼 그려낸 것 역시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드네요. 이것을 밝혀내는 탐문 수사 묘사가 내용의 대부분인데 별 것도 아닌 이야기에 지나치게 긴 분량이 할애된 느낌입니다.

결론적으로 별점은 2점. 아무리 사와자키라도 연예계와 얽히면 재미를 전해주기는 어렵네요. 노리즈키 린타로의 연예계 무대 장편 <<또다시 붉은 악몽>>이 망작인 것과 같은 이치랄까요?

<<육교의 남자>>
사와자키에게 동종업계 종사자 나루시마가 찾아와 후시미씨의 의뢰를 받아들이지 말 것을 요구한다. 그녀가 찾는 손자는 흉악한 범죄자로 그 사실을 알면 후시미 노부인은 심장 발작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 이유.
그러나 사와자키는 후시미 부인에게 사건을 의뢰받은 적이 없기에, 독자적으로 무슨 이유인지를 밝히려 나서고 그 와중에 나루시마가 육교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게 되는데...

사와자키에게 나루시마가 찾아온 이유는 후시미 노부인이 탐정 사무소 건물로 들어온 것을 멋대로 추측한 것에 불과했다는 설정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박제 가게와 같은 탐정 사무소 건물에 있는 기묘한 가게들에 대한 묘사도 꽤 흥미롭고요.

그러나 후시미 가족에게서 사건을 의뢰받아 조사하고 있던 나루시마가 후시미 부인의 시동생이 누구인지 몰랐다는 것은 말도 안돼죠. 동생 후지오가 이 건물에서 우표상회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고요. 후시미가의 재산을 둘러싼 뭔가 있어보이는 설정 역시 사족에 불과합니다.

별점은 2.5점. 약간은 팬 서비스같은 느낌의 소품이었습니다.

<<선택받은 남자>>
사와자키는 가시와기 에미코라는 의뢰인으로 부터 아들 슌이치를 찾아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살인 사건에 휘말렸다는 아들을 도와달라는 그녀의 부탁에 시의원에 출마한 청소년 선도위원 구사나기 이치로와 함께 소년과 사건의 진범을 찾아 나서는데...

의뢰를 받은 후 사건 관계자를 찾고, 피해자 구보야마 준키의 거처를 찾고, 피해자의 가족을 찾아 다니는 전형적인 탐문 수사가 펼쳐지는 작품.

일단 청소년들을 위해 분투하는 선도위원 구사나기 캐릭터는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드보일드에서 보기드문 '끝까지 잘되는 정말로 좋은 사람' 이라는 점도 특이했고요. 보통 하드보일드에서는 이런 인물은 죽거나, 아니면 범인이나 흑막인 경우가 많은데 말이죠.
추리적으로도 대단치는 않지만 구사나기가 구보야마 살해범으로 몰리는 마지막 위기에서 사와자키가 피해자 가족과의 만남을 떠올리며 경찰에게 진범을 알게 해 주는 장면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티셔츠 프린팅이라는 나름 최신 수법이 등장해서 신선하며, 이야기의 앞 뒤도 잘 맞아 떨어지는 편이니까요. 완벽한 해피엔딩이라는 점도 괜찮았고요.
어떻게보면 작가의 가치관이 좀 변해가는 과정에서 탄생한 작품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세상에 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메세지가 강하게 느껴지거든요.

하지만 우직하게 발로 뛰는 수사로 모든 진상이 쉽게 밝혀지는 전개는 조금 시시하긴 합니다. 슌이치의 거처가 친구의 증언으로 쉽게 밝혀지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러한 수사 과정에서의 우연도 많아 작위적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앞서 괜찮다 이야기하긴 했지만 티셔츠에 프린팅 된 사진보다는 원본이 더 중요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의외로 사진 원본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 조금 의아했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그간의 시리즈와는 조금 다른 느낌인데, 이후 작품이 어떻게 발전할지 궁금해집니다.

2016/11/13

오무라이스 잼잼 7 - 조경규 : 별점 2점

오무라이스 잼잼 7 - 4점
조경규 글.그림/씨네21북스


한 때 국내 음식 만화 중 최고봉이었던 <<오무라이스 잼잼>>의 최신간.

한 때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이 만화를 아직도 음식 만화라고 해야 할 지 아리송하기 때문입니다.
이전과 같이 일상과 음식에 대한 정보가 잘 조화를 이루는 에피소드가 없지는 않습니다. 누텔라 (와 베지마이트)를 다룬 <<누텔라 마이트>>라던가 양장피 (와 짜차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양장피는 어떤 모양인가요?>>, <<156 대전 두부 두루치기 블루스>>, <<핫덕 말고 핫도그>> 에피소드는 예전 수준의 밀도를 보여줍니다. 작화 역시 음식을 맛있게 보이는 데에는 최고였습니다. 조경규 작가의 창작 비법을 소개한 후기는 가장 마음에 든 부분이고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음식에 대한 비중이 이전에 비하면 훨씬 못합니다. 작가 가족을 다룬 일상툰에 아주 약간 음식관련 정보가 들어간 만화로 보는게 나을 정도에요. 딸 은영이가 시력이 나빠져 블루베리 베이글을 먹인다는 <<베이글과 안경>>, 가족끼리 망원 시장 나들이를 나간다는 <<150차 닭강정 워크숍>>, 여행 중 냉장고가 고장나 음식을 전부 버려야 하지만 김치만큼은 푹 잘 쉬어 맛난 김치 찌개를 먹는다는 <<151 김치 찌개 고장 사건>>, <<인스턴트 분유>> 등등등 대부분의 에피소드들이 그러합니다. 전체 비중으로 따지면 일상 이야기 80에 음식 이야기 20 정도 비중이랄까요?
저도 일상툰이라는 장르를 무척 좋아하고 이러한 변화만을 단점이라고 하기는 어렵긴 합니다. 허나 <<생활의 참견>> 등과 같은 빵빵 터지는 일상툰에 비교하면 평이한 이야기들인데다가 작가 아이들을 소재로 한 비슷한 이야기들이 반복되어 지루하더군요. 그나마 이번 권에서만 그랬다면 괜찮았겠지만... 이러한 이야기들이 계속된 것은 이미 제법 오래된 터라 더더욱 그러합니다.

연재분에 더하여진, 책을 구입한 독자를 위한 서비스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별도의 아이디어가 들어간 새로운 내용보다는 사진 중심의 정보 제공 페이지가 많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성심당' 탐방 기사와 같이 인터넷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컨텐츠가 포함된 것은 영 별로였습니다.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점. 몇몇 에피소드와 작화 때문에 기본 점수는 주지만 여러모로 제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고 15,000원이라는 가격에 어울리는 내용은 전혀 아니었다 생각됩니다. 앞으로도 계속 구입해야 할 지는 추후 연재분을 보고 고민을 좀 해 봐야겠습니다.

2016/11/12

Q.E.D. iff 증명종료 (큐이디 이프) 01 - 카토 모토히로 : 별점 3점

[고화질] Q.E.D. iff 증명종료 (큐이디 이프) 01 - 6점
카토 모토히로 지음/학산문화사

자주 찾아가는 LionHeart님 블로그를 통해 정보를 입수하여 읽게된 <<Q.E.D>> 시리즈 신작.
시즌 2지만, 바뀐거라고는 한학년 올라간거와 토마가 이사한 것 정도밖에는 없습니다. 이래서야 구태여 시즌을 나눌 필요가 있었을까 싶은데 LionHeart님 블로그 댓글을 보니 연재 잡지가 바뀐 탓이 큰 듯 하네요.
 
시즌 1때와 같이 두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두 편 모두 나름 강력 범죄가 등장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일상계 이야기들은 아니에요. 허나 두 편 모두 재미면에는 기본 이상은 하는 작품이라 만족스러웠습니다. 작가 스스로 매너리즘을 털어내고 새롭게 접근하기 위한 시도 자체는 나름 성공적이랄까요. 시즌 2의 첫 출발은 아주 좋아보이는데, 다음 권도 기대됩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에피소드별 상세 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읽으시기 전 참고 부탁드립니다.

<<iff>>
season 2의 부제이기도 한 iff가 제목인 시즌 2의 첫 작품. 
조각가 미사고가 밀실인 아틀리에에서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목의 의미는 범인이기 위한 필요 충분 조건이 무엇이냐... 에 대한 것이죠.

일단 추리적으로 완성도가 상당합니다. 4명의 용의자들 모두가 일단 범인임을 가정한 후, 어떻게 범행했을지를 들려준 뒤 "하지만 그럴리는 없다"고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솜씨가 아주 일품이에요.
또 핵심 트릭인 조각상으로 분장한 모델이 이미 죽은 조각가를 움직여 알리바이를 조작했다는 것 역시 아주 뛰어나지는 않지만, '만화라는 매체에 딱 맞는' 트릭이라 꽤 볼만했습니다. 빈 상자의 수수께끼도 해명되며 그 외 몇가지 단서들도 모두 해결되기도 하고요. 작업 중이던 조각상의 얼굴을 부순 이유 (작업이 진행되지 않았음을 숨기기 위해) 라던가....
아울러 조각가 미사고가 그녀를 보고 영감을 얻어 조각을 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은 것 (딸이니까 당연하겠죠), 미사고가 사람 내면을 드러내는 작품을 만드는데 마지막 작품의 완성이 늦어진 것은 두 손이 "안는 것"이냐 "목을 조르는 것"이냐의 갈등이었다라는 결말의 여운 등도 마음에 듭니다.

물론 범인임을 증명하는 결정적 단서가 범인의 말실수 - 조각상의 얼굴이 부숴졌다는 것을 알고 있어다는 것 - 라는 것은 많이 약하며, 용의자 모두의 과거를 조사하면 드러날 수 있는 동기였다는 점에서 무모한 범행에 대한 설득력이 높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최근 삼진, 병살을 반복하던 시리즈에 숨통이 트이는, 오랫만에 터진 깨끗한 안타와 같은 작품이라 생각되네요. 별점은 3점입니다.

<<양자역학의 해에>>
1920년대의 신흥종교 교주가 산속 은거지에서 자살한 시체가 발견된다. 시체 옆에 놓여있던 당시 과학잡지를 구입한 인연으로 토마와 가나 일행은 사건 현장을 방문하여 과거 벌어졌던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게 되는데...

거의 100년 전, 원수와 피해자가 공존하는 궁극의 종교 공동체에서 벌어진 집단 학살과 조직 붕괴, 뒤이은 교주의 자살에 얽힌 진상을 파헤치는 작품. 단서라고는 당시 신문기사와 과학잡지 속에서 발견된 과학잡지 기자의 노트가 전부라 안락의자 탐정물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100여년 전 종교집단을 이끌던 교주 카이지로 캐릭터였습니다. 똑똑하고 나름 카리스마가 있는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지는데, 주사위를 예로 들며 마이너스 확률을 설명하는 장면 같은 것은 그 중에서도 백미라 할 수 있습니다. 1920년대를 배경으로 신흥종교 집단을 그린 묘사도 재미있었고 말이죠.

하지만 카이지로의 능력 - 거울과 아픈 사람을 치료해 주는 것 - 은 아산화질소를 사용한 일종의 사기 행각이었다는 진상은 많이 실망스럽습니다. 게다가 아내와 아이까지 일가족을 살해당한 피해자보고 원수를 용서하라니 가당치도 않죠. 그것도 수상쩍은 내세 세계관을 내세워 가족을 다시 만날 것이라 약속한다? 솔직히 천벌을 받아도 싼 놈이라 생각합니다.
아울러 아부미가 논리의 모순을 깨닫는 과정 역시 전형적인 Q.E.D 스타일이지만 너무 복잡할 뿐더러 상황을 고려한다면 그닥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어차피 어설픈 사기였으니만큼 이렇게 복잡한 과정 없이도 결국 뽀록이 났을테죠. 양자역학이 구태여 등장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감점 요소였고요.

그래서 별점은 2.5점. 부분 부분 재미있기는 하나 추리적으로는 부족하고 전체적으로는 조금 아쉬웠던 작품입니다.

2016/11/09

말레이 철도의 비밀 - 아리스가와 아리스 / 최고은 : 별점 2.5점

말레이 철도의 비밀 - 6점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북홀릭(bookholic)


'하기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희망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말이군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하죠."
출국 시간이 정해져있는 히무라에게 아즈란이 시간 내 사건 해결이 가능할지를 물은 상황에서 오가는 대사.


말레이시아의 낭만적인 휴양지 카메론 하일랜드로 여행을 떠난 히무라와 아리스가와. 대학시절 친구인 타이론의 초대를 받아 여유로운 여행을 즐기던 그들은 그곳에서 우연히 알게 된 일본인 모모세 준코의 초대를 받아 그녀의 집을 방문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의문의 변사체를 발견한 히무라와 아리스가와는 연이어 일어나는 사악한 범죄의 한가운데에 서게 되는데…

일본의 신본격 작가인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시리즈 탐정인 범죄학자 히무라 히데오, 추리소설가 아리스가와 아리스 컴비가 등장하는 국명 시리즈 장편. 이 시리즈는 단편집으로 두어권 읽어 본 정도이며 장편은 처음입니다.
읽기 전에는 별로 기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작가의 타율 자체가 낮은 편이기도 하고... 하지만 읽어보니 생각보다 괜찮더군요!

가장 큰 장점이라면 신본격 기수 중 한명이라는 작가의 명성과 엘러리 퀸 국명 시리즈를 오마쥬하고 있는 시리즈 특성에 걸맞는 수준의 본격 추리물이라는 점입니다. 첫 사건부터 본격물다운 불가능 범죄를 선보이고 있기도 하고요. 기묘한 밀실 - 피해자 웡후가 살해된 채 발견된 트레일러 하우스의 모든 출입문, 창문은 안쪽에서 테이프로 봉해져 있는 상태였다는 - 살인 사건이 등장하거든요.
아울러 사용된 트릭도 상당히 괜찮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현장을 외부에서 조작하여 범인이 원하는 형태를 만들었다는 것은 오래 전에 읽었던 삼색털 고양이 홈즈 시리즈 첫 작품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추리>>와 비슷하나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추리>>에서는 거대한 크레인을 필요로 하는 등 스케일이 너무 커서 현실성이 떨어졌다면, 이 작품에서는 간단하게 차량수리용 잭을 활용하는 것으로 실현할 수 있기에 보다 설득력이 높습니다.
또 이를 설득력있게 만들기 위해 묘사된 습도 조절용 물컵과 같은 디테일 역시 빛을 발합니다. 컵을 접착제로 붙이고 물을 얼려놓는다는 설정은 그 자체만으로 트릭으로 사용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울러 정보와 단서 모두가 독자에게 모두 공정하게 제공된다는 점 역시 본격물답습니다. 특히 기발했던 부분은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영어실력이 부족하다는 설정, 현지 카페 주인 존을 영국인 작가 앨런 글래드스턴이 영국식으로 '잭'이라고 부른다는 설정을 교묘하게 결합하여 글래드스턴 살인사건으로 이르는 동기와 범인을 밝혀내게끔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최근 읽었던 작품 중에서도 손에 꼽을만큼 잘 짜여진 장면이었어요.

그 외에도 두 컴비가 오래전 지인 위 타이론을 만나기 위해 말레이시아의 휴양지 카메론 하일랜드 (하이랜드) 여행을 떠난다는 설정이라 여정 미스터리물 느낌도 많이 난다는 것도 독특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현지 명소에 대한 묘사가 많아 읽는 것도 즐거웠어요.

그러나 단점도 분명합니다 일단 아리스가와 아리스 작품에서 항상 느낄 수 있는 점인데, 그다지 글을 잘 쓴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불필요한 설정과 묘사가 너무 많아요. 딱히 필요해 보이지 않는 페미니즘 관련 묘사가 대표적입니다. 반딧불 어쩌구 하면서 사랑 이야기를 장황하게 풀어내는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그리고 대부분의 본격물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인 작위적인 상황 설정도 눈에 거슬리는 부분입니다. 첫 번째 범행인 웡후 살인부터 그러합니다. 복수를 위해 모모세를 덮치지만 되려 살해당한다는 것부터 작위적일 뿐더러, 말레이시아 법률은 잘 모르겠지만 모모세가 웡후 살인 사건을 자살, 혹은 다른 범죄로 위장할 이유가 있을까요? 림 의사를 살해한건 히키이며 모모세는 실행범이 아닙니다. 아무런 증거없이 죽어가는 히키의 전화만으로 모모세가 범인이라 우길 근거는 너무 빈약하죠. 제가 모모세라면 모든건 오해라고 당당하게 맞섰을 겁니다. 웡후를 죽인 후에라도 같은 이유로 경찰에게 역시 당당했을 수 있었을테고요.
게다가 두번째 츠쿠이 살인은 순전히 우연에 기인한 것입니다. 아울러 앞부분 묘사에서 모모세 준코의 차에 잭이 있다는 것이 설명되니 모모세가 잭을 구하러 멀리 갈 필요도 없죠.
또 앞서 트릭을 칭찬하기는 했지만 현장을 조작하는 방법 외에는 약점도 존재합니다. 실제로 트레일러하우스를 좀 기울이는 정도로 과연 창문의 테이프를 잘 붙일 수 있었을지 의문이거든요. 만화라면 모를까 여러모로 설득력이 약하죠.

마지막으로 모모세가 과거 보험금으로 사업을 일으킨 점 등 트릭을 모르더라도 정황 증거만 조합하면 대충 범인이 누군지 답이 나온다는 것도 조금은 아쉬웠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추리만 놓고보면 나쁘지는 않지만 이런저런 단점과 구멍이 존재하는 것도 분명합니다. 허나 본격물 팬이시라면 추리적으로 즐길거리가 많으니 한번 읽어보셔도 괜찮을 것 같네요.

덧 : 초반 언급되는 마츠모토 세이초가 썼다는, 카메론 하일랜드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과 타이의 실크왕 짐 톰슨 실종사건을 엮어서 만든 <<뜨거운 비단>>이라는 작품이 궁금해집니다.

2016/11/07

김명호의 생물학 공방 - 그래픽 노블로 떠나는 매혹과 신비의 생물 대탐험 : 별점 2점.

김명호의 생물학 공방 - 4점
김명호 글.그림/사이언스북스
과학 전문 일러스트레이터 김명호가 그려낸 생물학 만화. 사이언스 북스의 소갯글도 흥미로왔을 뿐더러, 연재 당시 한두꼭지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어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좀 미묘했습니다. 주제도 흥미롭고 내용도 나쁘지는 않지만 만화로서의 완성도가 뛰어나냐 하면 그건 아니였거든요. 가장 큰 이유는 '만화로 그려낸' 장점이 없다는 것입니다. 학습 만화를 읽는 이유는 일반 과학서보다는 재미있고 이해가 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닥 재미가 있지도 않고, 이해가 쉽지도 않습니다.

또 만화라면 기승전결, 그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완성된 이야기 구조를 갖추어야 하나 이 책에 수록된 5편의 이야기 모두 완결성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심지어는 주인공도 애매하고요. 그냥 해당 주제에 대해 어떤 연구가 누구에 의해 행해졌고,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그림으로 보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야기도 잘 짜여져있다기 보다는 이곳저곳을 찔러보는 느낌입니다. 박쥐가 어둠 속을 비행하는 메카니즘을 알아내기 위한 여러 과학자들의 노력이 펼쳐지는 <<박쥐의 난제>>편이 좋은 예인데 스팔란차니, 쥐닌, 거기에 퀴비에라는 과학자들의 실험과 연구 이야기가 소개되다가 갑자기 '음향학'이 등장하는 식입니다.
<<투구게>>이야기도 마찬가지. 초반에는 19세기 출산 시 산욕열로 사망하는 산모가 많았다는 이야기에서 시작하는데 그 다음 갑자기 투구게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투구게에 대해 잠깐 소개하다가 이윽고 투구게 혈액 이야기로 넘어가죠. 그리고 투구게의 혈액 응고 반응을 이용하여 내독소 검사가 등장하는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한 후 바이오센서 등 최신 기술을 소개하며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과정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별로 자연스럽지 않을 뿐더러 한정된 지면에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소개하려는 욕심이 지나칩니다. 때문에 지루하고 읽기 힘들었어요. 이래서야 만화의 장점을 전혀 살렸다고 할 수 없죠.

물론 아주 건질게 없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바다나리>> 이야기는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바다나리라는 극피 동물에 대해 이렇게 쉽게 이해될 수 있도록 소개한 책은 이 책이 유일하다 싶을 정도로 잘 소개되어 있거든요. 앞서 말한 단점은 그대로이지만 그래도 이 이야기만큼은 '바다나리'를 주인공으로하여 확실하게 소개하는 것에 치중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림 역시 아주 마음에 듭니다.

그래도 결론내리자면 제 별점은 2점. 앞서 말씀드렸듯 학습 만화로서의 장점은 거의 없기에 평상시 관심이 있던 주제가 아니라면 구태여 이 책을 선택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 점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덧붙여, '그래픽 노블'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왜 '그래픽 노블'인거죠? 제가 봤을 때에는 '학습 만화'가 맞는데요. '그래픽 노블'이 더 고급스럽게 들려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네요.

2016/11/04

롱 워크 - 스티븐 킹 / 송경아 : 별점 2.5점

롱 워크 - 6점
스티븐 킹 지음, 송경아 옮김/황금가지

레이 개러티는 '롱 워크' 대회에 참여한다. 100명의 도전자가 몇가지 조건에 따라 걷기 시작하여 최후의 1명만 살아남아 우승하여 모든 것을 거머쥐는 대회. 개러티는 피터 맥브라이스, 올슨, 베이커, 하크니스 등 여러 친구들의 죽음을 목격하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걷기를 계속하는데...

'통령'이라는 존재가 지배하는 군사국가 하에서 벌어지는 생존 경쟁 게임을 그린 작품으로 호러계의 마에스트로 스티븐 킹이 고등학교 때 쓴 장편. 여러가지 이유로 리처드 바크만이라는 필명으로 발표되었었다고 합니다.

어머무시한 몰입감만큼은 정말 최고인 작품으로, 430여페이지에 달하는 대장편인데 한번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놓기 어려운 흡입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굉장히 드라마틱한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나가는 내용밖에는 없는데 디테일한 상황, 심리묘사와 명확한 캐릭터 설정 등을 통해 재미를 극대화하는 능력은 역시나 스티븐 킹다왔습니다. 이 지옥을 '마치 셜리 잭슨의 단편 속을 걸어가고 있는 것 처럼 느꼈다.'와 같이 묘사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병에 걸리거나, 사고가 일어나거나, 정신이 나가거나, 아니면 심지어 '성욕' 때문에 한명 한명 쓰러져나가는 과정의 긴장감은 정말이지 장난이 아닙니다.
이러한 묘사와 함께 '롱 워크'에 대한 탄탄한 설정 역시 볼거리입니다. 어떻게 먹고 배설하는지, 게임에 설정되어 있는 제약 사항이 무엇인지 등 디테일이 빼어나서 읽는 재미를 더합니다.

하지만 인터넷 등을 통해 익히 알려진 만큼의 걸작이냐 하면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이야기에 드라마라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롱 워크에 참여한 100명의 워커가 길을 떠나고 하나씩, 하나씩 길 위에서 죽어나가다가 한 명이 살아남아 우승한다는 것이 전부거든요. '롱 워크' 중 경쟁을 통한 긴장감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게임의 규칙 - 워커들끼리의 다툼, 방해는 금지되어 있고 그냥 걷기만 가능 - 때문에 등장인물들간의 알력은 말싸움으로만 일어날 뿐입니다. 또 등장인물들 모두 너무나 착하고 짧은 시간이지만 생사를 넘나드는 경험을 같이한 탓인지 어떻게든 동료들을 도와주지 못해 안달난 모습만 보여주고요. 덕분에 스크램의 최후와 같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려는 가슴 뭉클한 장면도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래서야 너무 심심하죠. 그나마 끝판왕격인 스테빈스가 마지막까지 생존하여 주인공 개러티와 경쟁하기는 하는데 마지막 한 순간에 무너진다는 결말은 시시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기-승-전-결'의 이야기 구조가 아니라 '기-승-승-승.... 아주 약간의 결' 구조로 극적인 맛을 느끼기는 힘듭니다. 이렇게 그냥 등장인물들의 죽음에 대한 자극적인 묘사가 전부라면 포르노와 별로 다를게 없죠. 자극적 묘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문학적인 성취를 보여준다는 점을 차이점이라고 주장한다면, 거장이 찍은 포르노와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요?
'롱 워크' 만으로 드라마가 어려웠더라면 '롱 워크'에 얽힌 비밀이 밝혀진다던가 - 스테빈스가 통령의 사생아라는 설정이니 이런 이야기를 집어 넣기 용이했을텐데 말이죠- 아니면 개러티가 우승한 이후 또다른 무언가가 벌어진다던가 - 우승자가 다음 통령이 된다던가, 소문처럼 우승해도 바로 죽인다던가... - 하는 또다른 거대한 이야기라도 필요했다 생각됩니다.

아울러 무한 경쟁 사회에 내몰린 현재의 학생들, 직장인들을 연상케 하는 설정 역시 몰입을 도와주기는 하나 현재의 학생들과 직장인들은 모두 상대방을 밟고 일어서야 내가 살아남아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금수저', '흙수저' 처럼 태어날 때 부터 출발선이 다르다는 인식은 이미 상식이 되어 버린지 오래고요.
<<롱워크>>처럼 가혹하지만 참가자 모두에게 공정한 출발선과 경쟁 기회를 준다면, 패배했을 때의 벌칙이 가혹하더라도 오히려 작금의 현실보다는 낫다 생각되기에 더욱 씁쓸하네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몰입감은 작가 명성에 값하나 목숨을 걸고 상대방을 이겨야 하는 상황에서 피어나는 우정과 인간미, 최선을 다해 공정하게 노력을 경주하는 순진한 사고방식은 90년대에 유통 기한이 만료된 것이죠. 작가가 고등학생 때 썼다는 것이 이해가 될 정도에요.
숱하게 좌절한 뒤 이 아이디어로 글을 썼다면 아마 지옥도를 그려 내었을것 같은데, 그런 점에서 고등학생 리처드 바크만이 아니라 성공한 호러 소설가 스티븐 킹이 쓴 <<롱 워크>>를 읽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