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 철도의 비밀 - 아리스가와 아리스 지음, 최고은 옮김/북홀릭(bookholic) |
"희망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말이군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하죠."
출국 시간이 정해져있는 히무라에게 아즈란이 시간 내 사건 해결이 가능할지를 물은 상황에서 오가는 대사.
말레이시아의 낭만적인 휴양지 카메론 하일랜드로 여행을 떠난 히무라와 아리스가와. 대학시절 친구인 타이론의 초대를 받아 여유로운 여행을 즐기던 그들은 그곳에서 우연히 알게 된 일본인 모모세 준코의 초대를 받아 그녀의 집을 방문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의문의 변사체를 발견한 히무라와 아리스가와는 연이어 일어나는 사악한 범죄의 한가운데에 서게 되는데…
일본의 신본격 작가인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시리즈 탐정인 범죄학자 히무라 히데오, 추리소설가 아리스가와 아리스 컴비가 등장하는 국명 시리즈 장편. 이 시리즈는 단편집으로 두어권 읽어 본 정도이며 장편은 처음입니다.
읽기 전에는 별로 기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작가의 타율 자체가 낮은 편이기도 하고... 하지만 읽어보니 생각보다 괜찮더군요!
가장 큰 장점이라면 신본격 기수 중 한명이라는 작가의 명성과 엘러리 퀸 국명 시리즈를 오마쥬하고 있는 시리즈 특성에 걸맞는 수준의 본격 추리물이라는 점입니다. 첫 사건부터 본격물다운 불가능 범죄를 선보이고 있기도 하고요. 기묘한 밀실 - 피해자 웡후가 살해된 채 발견된 트레일러 하우스의 모든 출입문, 창문은 안쪽에서 테이프로 봉해져 있는 상태였다는 - 살인 사건이 등장하거든요.
아울러 사용된 트릭도 상당히 괜찮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현장을 외부에서 조작하여 범인이 원하는 형태를 만들었다는 것은 오래 전에 읽었던 삼색털 고양이 홈즈 시리즈 첫 작품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추리>>와 비슷하나 <<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추리>>에서는 거대한 크레인을 필요로 하는 등 스케일이 너무 커서 현실성이 떨어졌다면, 이 작품에서는 간단하게 차량수리용 잭을 활용하는 것으로 실현할 수 있기에 보다 설득력이 높습니다.
또 이를 설득력있게 만들기 위해 묘사된 습도 조절용 물컵과 같은 디테일 역시 빛을 발합니다. 컵을 접착제로 붙이고 물을 얼려놓는다는 설정은 그 자체만으로 트릭으로 사용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울러 정보와 단서 모두가 독자에게 모두 공정하게 제공된다는 점 역시 본격물답습니다. 특히 기발했던 부분은 아리스가와 아리스가 영어실력이 부족하다는 설정, 현지 카페 주인 존을 영국인 작가 앨런 글래드스턴이 영국식으로 '잭'이라고 부른다는 설정을 교묘하게 결합하여 글래드스턴 살인사건으로 이르는 동기와 범인을 밝혀내게끔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최근 읽었던 작품 중에서도 손에 꼽을만큼 잘 짜여진 장면이었어요.
그 외에도 두 컴비가 오래전 지인 위 타이론을 만나기 위해 말레이시아의 휴양지 카메론 하일랜드 (하이랜드) 여행을 떠난다는 설정이라 여정 미스터리물 느낌도 많이 난다는 것도 독특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 풍광과 현지 명소에 대한 묘사가 많아 읽는 것도 즐거웠어요.
그러나 단점도 분명합니다 일단 아리스가와 아리스 작품에서 항상 느낄 수 있는 점인데, 그다지 글을 잘 쓴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불필요한 설정과 묘사가 너무 많아요. 딱히 필요해 보이지 않는 페미니즘 관련 묘사가 대표적입니다. 반딧불 어쩌구 하면서 사랑 이야기를 장황하게 풀어내는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고요.
그리고 대부분의 본격물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인 작위적인 상황 설정도 눈에 거슬리는 부분입니다. 첫 번째 범행인 웡후 살인부터 그러합니다. 복수를 위해 모모세를 덮치지만 되려 살해당한다는 것부터 작위적일 뿐더러, 말레이시아 법률은 잘 모르겠지만 모모세가 웡후 살인 사건을 자살, 혹은 다른 범죄로 위장할 이유가 있을까요? 림 의사를 살해한건 히키이며 모모세는 실행범이 아닙니다. 아무런 증거없이 죽어가는 히키의 전화만으로 모모세가 범인이라 우길 근거는 너무 빈약하죠. 제가 모모세라면 모든건 오해라고 당당하게 맞섰을 겁니다. 웡후를 죽인 후에라도 같은 이유로 경찰에게 역시 당당했을 수 있었을테고요.
게다가 두번째 츠쿠이 살인은 순전히 우연에 기인한 것입니다. 아울러 앞부분 묘사에서 모모세 준코의 차에 잭이 있다는 것이 설명되니 모모세가 잭을 구하러 멀리 갈 필요도 없죠.
또 앞서 트릭을 칭찬하기는 했지만 현장을 조작하는 방법 외에는 약점도 존재합니다. 실제로 트레일러하우스를 좀 기울이는 정도로 과연 창문의 테이프를 잘 붙일 수 있었을지 의문이거든요. 만화라면 모를까 여러모로 설득력이 약하죠.
마지막으로 모모세가 과거 보험금으로 사업을 일으킨 점 등 트릭을 모르더라도 정황 증거만 조합하면 대충 범인이 누군지 답이 나온다는 것도 조금은 아쉬웠고요.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2.5점. 추리만 놓고보면 나쁘지는 않지만 이런저런 단점과 구멍이 존재하는 것도 분명합니다. 허나 본격물 팬이시라면 추리적으로 즐길거리가 많으니 한번 읽어보셔도 괜찮을 것 같네요.
덧 : 초반 언급되는 마츠모토 세이초가 썼다는, 카메론 하일랜드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과 타이의 실크왕 짐 톰슨 실종사건을 엮어서 만든 <<뜨거운 비단>>이라는 작품이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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