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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0

별도 없는 한밤에 - 스티븐 킹 / 장성주 : 별점 3점

별도 없는 한밤에 - 6점
스티븐 킹 지음, 장성주 옮김/황금가지

호러의 제왕 스티븐 킹의 중단편집. <<사계>>처럼 4편의 중단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야기는 그야말로 압권입니다. 작품들 모두 어디선가 봤던 설정들이 대부분으로 아이디어는 대단치 않아요. 대단한 복선이나 극적인 반전이 있지도 않고요. 허나 독자를 몰입시키는 능력은 정말이지 극에 달해 있습니다. 읽으면서 정말이지 손에서 떼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600쪽 가까운 분량을 하루에 읽을 정도로 말이죠.

한마디로 왜 제왕이 제왕인지를 다시금 느낄 수 있게 하는 단편집입니다. 스티븐 킹과 장르 소설 애호가분들 모두에게 추천드립니다. 별점은 3점입니다.

수록작별 상세리뷰는 아래와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스포일러 가득한 점 읽으시기 전 참고하시길.

<<1922>>
1922년, 네브래스카 주 헤밍퍼드홈에 사는 윌프리드 릴런드 제임스는 아내 알렛을 아들 행크와 함께 처참하게 살해한다. 이유는 그녀가 땅을 팔지 못하게 하기 위해.
하지만 그 이후 그의 삶은 지옥으로 변해간다. 시체를 은닉하던 와중에 쥐떼에 뜯어먹히는 처참한 아내의 시체를 목격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서서히 정신적으로 붕괴되어 가던 아들 행크는 이웃집 딸 섀넌을 임신시키지만 섀넌의 아버지가 둘을 갈라놓자 가출한다. 그리고 섀넌을 되찾기 위해 강도가 되고만다. 결국 섀넌을 만나 도주하는데에는 성공하지만 '연인 강도단'으로 연이어 강도 행각을 벌이다가 둘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행크의 최후를 쥐에 물린 상처로 사경을 해메이던 중 아내의 유령과 함께 실시간으로 바라본 제임스는 이후 팔 하나와 그렇게까지 지키려 했던 땅도 잃어버린다.
그리고 그는 끝까지 가기 싫어했던 오마하로 가 홀로 8년을 버티다가 자살한다....

자살한 사람과 살인자는 지옥에 떨어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길을 못 찾아서 헤멜 일은 없을 것이다. 지난 8년간 나는 그곳에서 살았으니까.

아들과 함께 아내를 죽인 뒤 파멸해가는 한 남자를 1인칭으로 그린 소설.

사실 내용은 별게 없습니다. 아내를 죽인 뒤 죄책감과 공포로 인해 서서히 붕괴해가는 주인공, 마찬가지로 비정상이 되어가는 아들 행크, 그리고 그 둘의 삶에 휩쓸려 무너져가는 이웃들을 그려내는 적나라한 묘사가 전부입니다. 범죄, 살인 이후 무너져가는 인물을 그린 작품이야 차고 넘칠 정도로 많죠.

그러나 이런 뻔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제왕의 필력이 너무나 압권이라 읽는 내내 손에서 떼기 힘든 작품입니다. 그야말로 생지옥이 펼쳐지거든요. 220여페이지에 달하는 중편인데 거의 모든 페이지에 공포와 혐오, 증오가 가득차 있습니다.
단순히 죄책감에서 비롯된 심리 묘사 뿐 아니라 제왕다운 고어한 묘사도 대단합니다. 그 중에서도 누구나 혐오스러워하는 '쥐'를 매개체로 한 일련의 묘사는 정말 최고에요. 아내의 시체는 물론 자살한 아들 시체까지 쥐에가 파먹힐 뿐더러, 본인 스스로는 환각을 보고 자기 자신을 씹어먹어 죽는다는 결말에 이르는 과정까지의 묘사는 흡사 크리쳐물을 읽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어요.

그리고 생지옥에 대한 고어스러운 묘사만 펼쳐졌다면 반복으로 인해 조금은 둔감해 질 수도 있었겠지만 순수했던 아들 행크가 변해가는 과정이라던가 천사와 다름없었던 희생자 섀넌과 같은 피해자들에 대한 묘사를 통해 극적인 효과를 배가시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이러니라면 알렛이 한 말대로 했더라면 이 가족은 최소한 지옥을 겪지 않았으리라는 것에 있습니다. 특히나 만취한 알렛의 주정을 통해 행크가 어머니 살해를 결심하게 만든 "임신은 시키지 마. 원 없이 훑어도 좋아, 네 물건이 만족해서 토할 때까지. 하지만 안에다 토하면 절대 안 돼. 그랬다간 엄마랑 아빠처럼 평생 한 집에 갇혀 살게 될 테니까"라는 말은 정말로 진실이었어요. 최소한 행크가 임신만이라도 시키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역시 어른들 말은 틀린게 하나도 없습니다....

물론 단점이 없지는 않습니다. 상황부터가 문제이긴 해요. 아무리 아내를 'bitch'로 묘사했더라도 아내를 살해하는데 아들을 끌어들인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죄인지라 주인공에게 감정이입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누가 보아도 인간 이하의 범죄죠.
또 흔한 설정만큼 캐릭터들도 진부합니다. 책을 좋아하며 소들에게 여신들 이름을 붙여주는 주인공 제임스도 기시감이 많이 들지만, 행크와 섀넌이 강도가 되어 극으로 달리는 부분은 '보니 앤 클라이드' 그 자체입니다. 여기서 보니와 클라이드는 범죄에 중독된 것이라 하더라도, 행크가 섀넌을 만난 이후 강도행각을 계속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 것도 이해는 잘 안되었습니다. 아울러 장점이라고는 했지만 행크와 섀넌을 다룬 부분은 약간 신파 멜로물같을 정도로 지나치게 감성적이라 호불호가 조금은 갈리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하고요.
주인공이 결국 땅을 잃는 과정도 뻔하고 작위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류의 작품 초심자는 견디기 힘들 정도의 섬찟한 작품이라는 점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뭐 이 책을 읽으시려는 분들께는 당연히 칭찬이겠죠?

그래서 결론내리자면 별점은 3.5점. 장점, 단점이 명확한데 읽는 내내 눈길을 떼기 힘든 작품임에는 분명합니다.

<<빅 드라이버>>
'뜨개질 클럽 시리즈'라는 코지 미스터리 시리즈를 쓰는 추리작가 테스는 강연회에서 돌아오는 길에 한 남자를 만나 강간당해 버려진다. 시체가 쌓여있던 현장에서 겨우 도망쳐 나온 후, 그녀는 스스로 복수할 것을 결심하고 단서를 찾아 나서는데...

전작과 마찬가지로 설정은 뻔합니다. 성폭행 피해자가 스스로 범인을 단죄한다는 복수극은 널리고 널렸죠. 영화 쪽으로는 <<네 무덤에 피를 뱉어라>>, 본 작에서도 언급된 <<왼편 마지막 집>> 등등이 생각나네요.

하지만 독자를 사로잡는 매력은 전편 못지 않습니다. 특히 한편의 범죄 스릴러로 손색 없는 디테일이 아주 좋아요. 테스가 강간범의 모습을 떠올리고, 범행의 강연회를 주선한 라모나 노빌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은 후, 그녀의 주변을 캐고 범인이 어디 사는 누구인지 확인한 후 복수를 위해 벌이는 과정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설득력이 아주 높기 때문입니다.
복수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돌발상황, 예를 들어 라모나 노빌이 진짜 사건에 연루된 것이 맞는지?에 대한 고민, 라모나에게 총을 빼앗기는 상황, 그리고 처음 죽인 남자가 범인인 동생이 아니라 큰 형 빅 드라이버였다 등의 상황이 쉴새없이 몰아치는 것 역시 읽는 내내 흥미를 자극합니다.

아울러 코지 미스터리 작가인 주인공 테스도 마음에 듭니다. 성격적으로 아주 개성이 넘친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코지 미스터리 작가가 하드보일드스러운 응징을 계획하고 수행한다는 이질적인 매력에 더해 애완동물이나 네비게이션 등과 대화하면서 디테일을 잡아나간다는 묘사라던가, 작품을 위해 권총을 사고 사격 연습을 받았다는 식으로 그녀의 작가적 능력 몇가지가 이야기에 도움을 준다는 아이디어가 괜찮았던 덕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경찰에 신고하기 전, 자신에게 닥칠 상황을 상상하고 신고 대신 복수를 선택하는 장면도 아주 인상적입니다. 피해자가 또다른 피해를 우려하여 신고를 포기한다는 이야기는 참 여러모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네요.

하지만 <<1922>>에 비해서 완성도가 높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앞서 범죄물로서 괜찮은 연결고리를 갖추었다고는 했지만 라모나 노빌 - 레스터 스트렐키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너무 뚜렷해서 딱히 추리의 여지가 없는 것은 조금 아쉽습니다. 대놓고 '내가 범인입니다' 라는 식인데 그런 것 치고는 연쇄 강간-살인이 너무 오래 지속된거 아닌가 싶거든요.
그리고 테스가 실종되었다면 마지막 강연 의뢰인인 라모나에게 경찰 수사가 미쳤으리라는 것은 불보듯 뻔한데 테스의 귀걸이를 라모나가 가지고 있다는 것도 석연치 않았습니다. 팔기도 뭐하고, 잘못 들통나기라도 하면 명백한 증거가 될 텐데 너무 부자연스러워요.

마지막으로 빅 드라이버를 죽인 후 자살을 기도하던 테스의 죄책감이 사라질만큼 빅 드라이버 역시 사건에 깊숙히 개입한 인물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과정, 유일한 증인이 될 수 있는 벳시 닐이 마찬가지로 성폭행 피해자로 범행을 눈감아 준다라는 결말은 지나칠 정도로 작위적이라 높은 점수를 주기는 힘듭니다. 때문에 제 별점은 2.5점. 딸자식 가진 부모로서 분노를 가지고 몰입해서 읽기는 했지만 명확한 단점으로 감점합니다.

덧붙여, 2014년 TV용 영화로 영상화가 되었더군요. 그런데 예고편을 보니 작중 애완동물, 네비게이션과 1:1로 나누는 대화 부분을 테스의 인기 시리즈 '뜨개질 클럽' 주인공 할머니가 가상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살짝 각색이 된 듯 했습니다. 이 작품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 중 하난데 이렇게 각색을 하다니... 여러모로 딱히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는 않네요.

<<공정한 거래>>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스트리터는 우연히 만난 노점상 엘비드와 거래를 한다. 그의 수명을 늘리려면 누군가에게 그것을 옮겨야 한다는 것. 스트리터는 불알친구 톰을 미워한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그 씨발놈이 내 여자를 뺏어 갔다고요!"

악마와 거래한다는 내용의 작품 역시 쎄고 쎘죠. 굳이 예를 들자면 졸문 <<계약은 충실하게>>도 있고요.

그래도 노점상이 악마라는 것에서 시작하여, 시한부 인생 대신 15년 이상의 수명을 약속하고 이후 받게될 수익의 15%를 요구한다는 등의 디테일은 독특했습니다.
또 거래 후 톰에게 닥치는 불행의 연쇄반응 역시 스티븐 킹답더군요. 과정이 정말 끔찍하기 그지 없거든요. 1인칭으로 그리면 <<1922>>가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죠.
아울러 스트리터와 톰의 행복 - 불행의 지수가 한쪽에 쏠리는 일종의 '행복 질량 보존 법칙' 같은, 아니면 흡사 동양의 윤회 사상 비스무레한 전개도 볼 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의 수록작 중에서는 가장 처지긴 합니다. 악마와의 거래 후에는 일방적인 행복 - 불행의 과정만 나열될 뿐 딱히 반전도 없고 결말도 애매하기 때문입니다. 스트리터가 톰이 가졌던 행운까지 차지하고 만다는 결말은 영 와 닿지 않았어요. 악마와의 거래가 이렇게 해피 엔딩으로 끝날리가 없는데 말이죠.
하긴, 애초에 스트리터가 톰을 팔아넘긴 것도 딱히 설득력이 없습니다. 여자를 빼앗긴 남자는 그게 수십년이 지나더라도 복수한다는 교훈을 주려고 했던 걸까요? 저는 솔직히 스트리터가 가공할 정도로 찌질하고 속이 좁다는 느낌밖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별점은 1.5점. 다른 악마와의 거래 소재 작품에 비하면 딱히 쳐줄 부분이 없는 소품입니다. 딱히 찾아 읽어볼 필요는 없습니다.

<<행복한 결혼 생활>>
다아시는 1982년 만난 회계사 밥 앤더슨과 결혼하여 27년간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이어온다. 그러나 밥이 출장간 어느날, 리모컨 건전지를 찾기 위해 차고를 뒤지다가 우연히 밥의 비밀 창고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녀는 밥이 유명한 연쇄살인마 '비디'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뭐 이 역시 소재는 뻔합니다. 아내, 혹은 남편에게 자신의 정체를 비밀로 한 배우자, 혹은 다른 가족을 다룬 작품은 널리고 널렸으니까요. 수많은 슈퍼 히어로물이 대체로 그러하고, <<트루 라이즈>>같은 작품 역시 마찬가지겠죠. 이 작품처럼 배우자가 범죄자라는 설정 역시 많고요.

이런 류의 작품에서 배우자의 '정체'가 중요하다면, 보통 배우자의 정체를 눈치챈 순간부터 극적 긴장감이 생기게 되는데 이 작품 역시 같습니다. 게다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결말 두가지, 즉 '배우자의 은밀한 생활에 동참하거나', '그만두게 하거나' 중 '그만두게 하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 역시 예상대로에요. 보통의 드라마가 부부 동반으로 비밀 정보원이 되거나 슈퍼 히어로가 된다면, 살인마 이야기는 함께 하는 쪽 보다는 당연히 그만두게 하는 쪽이 정상적일테니... 결국 다아시가 밥을 죽인다는 결말인데 솔직히 여기까지는 너무 뻔합니다.

하지만 다행히 거장의 솜씨가 작품을 살리고 있습니다. 우선은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묘사가 대박입니다. 다아시가 밥의 비밀 창고를 발견하는 과정과 정체를 알아가는 과정의 묘사라던가, 이후 자신의 정체를 아내가 알았다는 것을 눈치챈 밥이 다아시에게 찾아가 이야기하는 장면 묘사 등은 서늘함과 긴장감이 잘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들과 딸을 생각하여 경찰에 신고하지 못하는 다아시의 딜레마 역시 설득력있어서 뻔한 전개에 충분한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고요.

결말도 뻔하기는 하지만 노형사 홀트가 등장하여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것 역시 마음에 든 점입니다. 밥의 잔인한 범행을 경찰 입으로 밝혀주면서 응징의 정당성을 높여주면서, 결국 다아시가 밥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체포되었을 것이라는 말로 다아시의 죄책감을 줄이는 좋은 선택이었다 생각되거든요.

결론적으로 별점은 2.5점. 뻔한 소재로도 볼만한 이야기를 뽑아내는 거장의 솜씨를 볼 수 있었던 작품입니다. 이래저래 많은 공부가 되었달까요. 과연 비슷한 소재로 쓸 때 저라면 어떻게 쓸지, 한번 고민해 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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